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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술자리에서 군대 이야기는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북파공작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약간의 정보만 알고 있을 뿐 북파공작원들이 어떻게 훈련을 받았고 그들이 어떻게 북한땅까지 침투할 수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북파공작원의 경우 한반도 특성상 다른 나라 공작원들과 선발과정부터 좀 다릅니다.

 

 

사실 해외에서는 공작원을 선발할 때 자국인은 배제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공작원이 임무도중 생포되었다가 고문을 받고 정보를 모두 발설할 수 있고 모국의 개입을 부정하기 힘들어 외교관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북한같은 경우 같은 한민족이고 비슷한 외모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신분을 숨기기 좋아 자국 군대에서 선발합니다.

 

 

물론 자국에서 선발한다고 하더라도 체제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높아야합니다. 조금만 충성심이 흔들려도 붙잡히면 적국에 정보를 제공하고 전향할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에 철저한 신원조회를 통해 적국과 전혀 연고가 없는 사람 중 매우 충성심이 강한 자만이 공작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북파공작원은 키가 커서도 안됩니다. 북한 남자 평균 신장이 160cm도 안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체구가 작아야 합니다. 또한 공작원 체구가 크면 비트를 구축하여 은신할 때도 불리하고 식량도 더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북파공작원에 필수조건이 5가지가 있는데 첫째, 절대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이 강해야 합니다. 둘째, 우유부단한 성격은 절대 안되며 냉철해야 합니다. 셋째, 암기력이 우수해야 하며 지능도 평균 이상이어야 합니다. 만약 접선 장소나 귀환 방법이 적힌 쪽지를 갖고 붙잡히게 된다면 다른 공작원의 목숨까지 위험해 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넷번째는 누구보다 뛰어난 체력과 전투력입니다. 1990년대 북파공작원들은 매일 아침 12km를 달렸으며 모래조끼와 모래주머니까지 달고 경사높은 산을 뛰어오르는 체력 훈련을 받았습니다. 또한 북한군이 사용하는 총기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훈련과 크레모아 사용법, 모스 부호 수신 훈련, 침투, 사진촬영, 산나물 구별, 지뢰 제거, 잠수, 지형지물 극복 훈련 등을 받게 됩니다. 현재 특수부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전문성과 장비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지만 당시 북파공작원들은 정말 두려움을 모르는 용맹함과 무식한 체력이 주무기였습니다. 

 

 

필수조건 다섯번째는 바로 생존력입니다. 당연한거지만 침투 기간 동안에는 치약이나 비누를 절대 사용하지 못하며 많은 양에 식량을 가지고 갈 수 없기 때문에 날짜계산하여 마른걸로만 부족하게 챙겨 출발합니다. 부족한 식량은 산나물이나 작은 동물을 사냥해서 생존해야 합니다. 또한 중간중간 비트를 구축하여 은신해야되며 이동할 때마다 낙엽을 이용해 흔적을 지워야 됩니다.

 

 

또한 일반 특수부대와 다르게 북파공작원은 전투를 목적으로 침투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불필요한 전투를 최대한 피합니다. 탈출할 때에도 최대한 흔적 없이 적의 추격을 피해서 탈출해야 하기 때문에 침투와 탈출이 공작원들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에는 대부분 휴전선을 통해 침투하였는데 군사분계선에서부터 콘크리트 수조와 지뢰지대를 모두 통과해야 했습니다. 침투하는 인원은 일반적으로 3명이 한 조가 되어 이루어졌습니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로 1972년 7월 남북공동성명 때까지 북파된 공작원은 모두 7,726명으로 이중에서 사망 300명, 부상 203명, 북한에 체포 130명, 행방불명 4,849명, 기타 2,244명입니다. 그리고 당시 이들은 적발되었을 경우 공작원의 정체를 알 수 없게 하기 위해 군번과 계급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17년 전까지 북파공작원들의 근무사실조차 부정되었지만 2002년에 북파공작원을 인정하는 판결이 최초로 나오면서 북파공작원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는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지금 현재 알려진 북파공작원 중 가장 유명한 분은 북한에 침투하여 북한군 33명을 사살했던 이진삼 대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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