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공군력의 중요성을 절감한 각국은 앞다퉈 우수한 항공기 개발과 전술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현대 전쟁에서 제공권 장악은 전쟁의 판도를 바꿀만큼 중요합니다. 그 중에서도 전 세계의 공군력을 다 합쳐도 이길 수 없다는 미국과 영원한 미국의 라이벌 러시아의 제공권 능력은 다른 국가들보다 확실하게 강력합니다. 이 두나라의 공통점은 바로 명품 군용기를 생산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군용기 TOP10에는 모두 미국과 러시아의 전투기이며 이 군용기들은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군용기 중 약 3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군용기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0위 수호이 Su-27/30

 

러시아의 Su-27 계열 전투기는 오늘날 15개국에서 874대가 운용 중이며, 이 가운데 러시아 공군과 해군이 326대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확정 주문잔량이 159대가량으로, 여기에는 개량형인 Su-35가 포함됩니다. 이는 수호이가 5세대 전투기인 T-50/PAK-FA 개발을 마칠 때까지 몇 년 더 생산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9위 보잉 CH-47

 

AH-64 아파치가 공격헬기의 대명사라면, CH-47 치누크는 수송헬기의 대명사로 통합니다. 오늘날 882대가 운용되고 있고, 이 가운데 미군이 534대를 운용하고 있어 최다 운용국가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밖에 16개 국가에서 348대를 운용하고 있으며, 최신 모델인 F 모델은 미 육군, 캐나다, 이탈리아, 네덜란드, 아랍에미리트 등에 인도되었습니다.


8위 밀 Mi-24/35

 

구소련 시대의 기체인 Mi-24/35 하인드는 현재 54개국에서 897대가 여전히 가공할 성능의 공격헬기로 남아 있습니다. 이 가운데 러시아군이 310대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7위 보잉 AH-64

 

현재 최신형인 E형이 생산되고 있으며, 미 육군은 E형에 가디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습니다. 특히 미 육군은 D형 아파치 롱보를 포함해 AH-64를 756대 보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12개국이 아파치를 운용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영국이 65대를 운용하고 있어 미국에 이어 2번째로 아파치를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육군도 정말 오래도록 짝사랑해온 이 아파치를 36대 도입하여 작전배치하고 있습니다.


6위 록히드마틴 C-130/L-100

 

수송기의 전설로 통하는 록히드마틴의 C-130 허큘리스가 6위를 차지했습니다. 60년 전 처음 비행한 C-130은 취역에서 오늘날까지 세계 전술수송기 운용의 기준이 됐습니다. 현재도 C-130J의 수송, 급유, 특수 임무용 모델은 생산라인에서 미군과 해외 운용자들을 위해 계속 출고되고 있고, 민수용인 L-100의 후계 기종인 LM-100J도 개발 중입니다. 현재 64개국에서 1,143대가 운용 중이며, 이 가운데 미군이 549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5위 보잉 F/A-18

 

오늘날 세계 최강 전투기 중 하나로 평가받고 F-18 호넷 계열기가 5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현재 미 해군을 비롯해 캐나다, 핀란드, 쿠웨이트, 말레이시아, 스페인, 스위스 등에서 1,575대가 운용 중이며, 이 가운데 미 해군과 해병대가 1,169대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4위 벨 UH-1/212/412

 

국제적으로 ‘휴이(Huey)’라고 알려진 벨 UH-1은 지금도 여전히 폭넓게 쓰이고 있는 헬기입니다. 현재 36개국에서 1,845대가 비행하고 있으며, 주로 H 모델이 운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우도 육군과 해군이 도입해 지금까지 기동형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3위 밀 Mi-8/17

 

UH-60 만큼이나 흔히 볼 수 있는 헬기를 꼽으라면 바로 Mi-8/17 계열기입니다. 러시아에서 개발된 기체인 탓에 국내에서는 흔히 볼 수는 없지만, 범위를 세계로 넓히면 그야말로 흔히 볼 수 있는 헬기입니다. 현재 약 2,470여대가 운용 중이며, 160개국 중 78개국이 최소 한 가지 모델을 보유하고 있는 기종입니다. 이 가운데 러시아군이 518대를 운용하고 있어 전 세계 운용기체 수의 2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위 록히드마틴 F-16

 

지금도 여전히 생산 중인 F-16은 명실 공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기 중 하나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약 2,700여대가 운용되고 있으며 28번개 국가에서 운용중입니다. 생산라인은 올해 후반까지 계속 가동될 예정이며 현재 운용 중인 2,700여대 가운데 2,242대는 전투기이고, 나머지는 훈련용 기체입니다.


 

1위 시콜스키 S-70/UH-60

 

현재 약 3,600여대가 운용되는 S-70/UH-60 계열 헬기의 대다수는 미군이 운용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현재 미 육군이 2,150대 이상, 미 해군이 약 495대를 운용합니다. 총 23개국에서 비행하고 있는 블랙호크와 시호크로 국내외에서 성공을 거둔 시콜스키는 이 기종에 대해 ‘현대의 전설’이라는 겸손한 별명까지 붙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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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이 사망하고 흐루시쵸프가 후계자가 되면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흐루시쵸프가 소련의 지도자가 되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스탈린 격하운동이었습니다. 즉, "독소전은 스탈린때문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스탈린이 있어서 겨우 이겼던 전쟁이다"라고 말하며 흐루시쵸프는 스탈린과의 관계를 청산하려 했습니다.

 

 

이에 중국의 마오쩌둥은 흐루시쵸프에 대해 '수정주의자', '위선자'라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흐루시쵸프가 친서방노선을 택하면서 비난의 강도는 더 해졌습니다. 당시 중국의 입장에서 당연한 것이 중국 수뇌부들은 반서방노선을 국가의 기조로 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 흐루시쵸프가 예전에 스탈린과는 달리 중국에 대한 지원을 점점 줄여나가면서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소련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는 결정적 사건이 발생하는데 중국과 인도의 국경분쟁에서 보여준 소련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였습니다. 소련은 중국을 지원하는 척 하면서 원조를 해주지 않았고 반대로 인도에게는 전투기와 군사고문을 파견해주면서 지원해주며 중국을 철저하게 외면했습니다.

 

 

여기에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의에서 중국대표는 소련에게 '반레닌주의자'라며 비난의 강도를 높였는데 이는 공산주의의 양강이 적으로 변해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러던 도중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진원지는 우리나라와 멀지 않은 우수리강의 다민스키섬이었습니다.

 

 

1969년에 우수리강에서 큰 홍수가 났는데 이로 인해 강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중국과 소련의 국경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애초부터 자존심 싸움을 벌였던 중국과 소련의 국경수비대는 서로 눈치를 보다가 결국 주먹다짐까지 벌이게 되었습니다. 당시 총은 사용하지 않았는데 자칫 전면전으로 번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계속되는 주먹다짐에서 소련 국경수비대에게 밀리자 특수부대를 투입하는데 하필 이 특수부대가 가져간 무기가 곤봉이었습니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곤봉을 무기로 취급하지 않았는데 중국 특수부대는 곤봉을 가져다가 소련군을 두들겨 패기 시작하였습니다.

 

 

반대로 소련군의 눈에는 곤봉을 든 중국군이 무기를 든 적군으로 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소련군은 다음날부터 권총으로 중국군에 응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보다못한 중국은 1969년 3월 12일 3개 소대를 통해 2개 소대가 지키고 있었던 소련 국경수비대에 선제공격을 가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과는 중국군 30명이 사망하고 중국군은 철수하게 됩니다. 당시 소련의 사망자는 절반수준인 14명이었습니다. 당시 중국군은 보병이었지만 소련은 기계화사단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소련은 기다렸다는 듯 T-62전차, BM-21 다연장 로켓등을 통해 중국군에게 폭탄 세례를 퍼부었습니다. 당연히 결과는 소련의 압승. 중국군이 1천명 전사, 2천명이 부상을 당했으나 소련은 240명이 전사하는데 그쳤습니다.

 

 

당시 중국은 보병으로 싸운 반면 소련은 앞선 화력과 기술을 통해 병력이 아닌 우수한 무기로 중국을 압도했습니다. 애초에 중국을 눈앳가시로 봤던 소련은 아예 중국서부인 신장위구르지역까지 군대를 파견해 중국군을 섬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쯤에서 소련에서는 아예 중국을 지도에서 지우자는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일환으로 중국의 수도 북경에 핵을 떨어뜨리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이를 알아챈 중국 수뇌부들은 수도를 북경에서 충칭으로 옮기려 했고 실제로 충칭에는 당시 소련의 핵공격을 대비한 핵 방공호시설을 짓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중국은 영토를 더 차지하려다가 멸망할 수도 있는 위기에 몰렸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운이 좋았습니다. 그때 체코에서 소련에 대한 대대적인 반소운동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이에 소련은 기존 노선을 바꿔 중국이 아닌 체코로 총부리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후 중국과 소련은 외교적 분쟁을 계속 벌이다가 90년대에 국경협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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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중반은 한마디로 원자력 시대라고도 할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의 미 공군도 핵추진 전략 폭격기를 개발 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됩니다. 핵추진 전략 폭격기의 가장 큰 장점은 재급유가 필요없이 거의 무한한 항속거리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였습니다. 그러나 원자력 에너지 이용의 초창기에는 무엇보다도 방사능오염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되있지 못했습니다. 즉, 폭격기에 원자로를 탑재하기 위해서는 원자로의 개발 뿐이 아니라 방사선을 차단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핵추진 전략 폭격기에 큰 장점을 버릴 수 없었던 미 공군은 결국 1946년 5월에 항공기 추진을 위한 핵 에너지사용, NEPA(Nuclear Energy for the Propulsion of Aircraft)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제네럴 일렉트릭, 노스롭 등 미국 굴지의 기업들이 기초적인 실험을 실시하였지만 실제 핵추진 전략 폭격기를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미 공군은 이 핵추진 전략 폭격기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만하면 5년 이내에 개발을 완료할 수 있었다고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핵 융합로가 어떤 물건인지 이해하고 있던 물리학자 들은 5년 이내에 완성하겠다는 스케쥴 뿐 만 아니라 핵추진 항공기 자체가 공상과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NEPA 프로그램 자체는 어떤 가시적인 성과도 내놓지 못했지만 1949년 4월 28일에 열린 회의에서는 그때까지 진행된 개념적 연구와 실험을 바탕으로 미국 전체의 핵 에너지 사용을 총괄하는 핵 원자력 위원회 AEC와 국방성이 협력하여 원자력 추진 폭격기 실기를 만들어 내려는 프로그램 추진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ANP(Atomic Nuclear Propulsion) 프로그램 입니다.

 

 

 

(좌측이 직접순환방식, 우측이 간접순환방식)


두개의 다른 추진방식 개념이 ANP 프로그램에서 연구되었는데 직접 순환방식(direct cycle)방식과 간접 순환방식(indirect cycle)방식 입니다. 그리고 ANP 프로그램은 B-36 중폭격기를 기본 베이스로 하는 두 종류의 항공기를 개발하게 되는데 그 첫번째가 NTA(Nuclear Test Aircraft)였고 다른 하나는 X-6였습니다.

 

 

B-36이 실험기체로 선정된 이유는 다른게 있어서가 아니라 핵반응로와 그에 따르는 방사선 차폐막을 설치하고 비행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대형의 기체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계획에 따르면 NT 는 1기 그리고 X-6는 2기가 생산되도록 예정되어 있었으며, 이 두 종류의 기체에는 어떠한 실용적 가치도 의도되지 않았고 단지 일련의 실험을 통해 필요한 데이터를 축적하는 목적만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탑재되었던 ASTR 핵반응로


NTA 실험을 위하여 맨처음에는 지상실험용 핵반응로, GTR(Ground Test Reactor)가 실험 장비되어 1953년 11월 17일에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1954년 11월 17일에는 본격적인 실험용 핵반응로인 항공기 차폐 실험 반응로, ASTR(Aircraft Shielding Test Reactor)가 작동을 개시하여 본격적인 실험에 들어갔습니다. NTA 실험은 소형의 가동중인 핵반응로를 탑재한 채로 비행을 실시하여 방사능을 차단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실험이었습니다. 한마디로 ASTR 핵 반응로는 실험 기체에 어떠한 동력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이 핵 반응로를 탑재한 실험용 기체는 1955년 3월 11일 XB-36H로 명명되었다가 6월 6일에 NB-36H로 개칭되었습니다. 그렇게 NB-36H의 첫 비행은 1955년 9월 17일에 이루어 졌고 1957년 3월 까지 총 47회의 실험비행을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이 중 원자로를 가동한 횟수는 21회였습니다. 당시 실험때마다 C-97수송기에 탑승한 해병대원 1개 소대가 동행하여 추락사고에 대비, 사고 현장 주변을 차단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각종 실험 장비를 장착한 B-50D 기도 동반하여 데이터를 수집했습니다.

 

 

 

실험 실시 후 잠정적으로 내려진 결론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저공 비행시에도 방사능에 의한 위협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고시 화재가 발생하면 핵분열을 위한 연료봉이 용해되어 심각한 위협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당시 소련도 역시 NB-36H와 비슷한 개념으로 Tu-95 폭격기를 개조하여 소형 핵반응로의 탑재실험을 실시했하였고 이후 핵추진 방식의 쿠즈네초프(Kuznetsov) 터보 프롭엔진을 장착한 시험용 기체를 제작할 계획이었으나 이는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미국도 실험 결과에 따라 최대 1주일간 지상에 착륙하지 않아도 되는 상용모델을 제작할 계획이었지만 실험 결과, 수십 톤에 달하는 원자로, 차폐막 무게와 요격, 추락 등으로 인한 사고 발생 시 대형참사가 불가피했기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10.4억 달러를 투입한 미국의 핵추진 전략 폭격기 개발은 실용화 되지 못했고, 아이젠하워의 재임기간에 이루어진 국방 예산의 삭감은 미국의 재래식 전력을 크게 악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새로 취임한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3월 28일 ANP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종료시켰습니다. 그렇게 15년간 추진되었던 핵추진 전략 폭격기 개발계획의 흔적은 WS-125A 프로젝트의 개념도 몇장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물론 현재 미국이라면 핵추진 전략 폭격기를 만들 수 있지만 만들지 않을겁니다. (그 정도 크기의 폭격기를 격추시키는 미사일이 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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