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4대 군사노선은 한반도 지형의 특수성과 한국전쟁의 교훈을 토대로 첫째, 인민군대와 함께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전체 근로자를 사상적, 군사적으로 무장하는 전 인민 무장화 둘째, 자연 지리적 요건에 맞게 북한 전역을 군사 시설화 하고 갱도 화 하여 철벽의 요새로 만드는 전국요새화 셋째, 모든 군인을 유사시 한 등급 이상의 높은 직무를 수행토록 하는 전군간부화 넷째, 인민군대를 현대적 무기로 무장시켜 능숙하게 다루고 현대적 군사과학과 군사기술을 소유토록 하는 전군현대화를 말합니다. 그리고 6.25전쟁 북한이 채택한 북한의 모든 정책은 4대 군사노선의 연장선 상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반도를 순식간에 공산화 하기 위한 북한의 군사전략 '4대 군사노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첫째 전인민의 무장화

 

6.25 전쟁 발발 당시 북한군은 15만 명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정예고 훈련도가 높다고 하지만 이 정도로 전쟁을 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초반에는 손쉽게 승리를 거두었지만 지속적인 전투를 벌이면서 손실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북한이 6.25 전쟁 때 실패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예비대 부족이었습니다. 춘천-홍천 전투 초전에 춘천을 통해서 조공인 2군단이 경기도 한강 이남으로 우회기동하여 퇴로 차단, 포위 섬멸전을 펼치려고 했지만 국군 제6보병사단의 분전으로 2사단이 괴멸적인 타격(전투력 40% 손실)을 받자 순조롭게 공격 중이던 7사단을 돌려서 춘천 공격에 투입하였습니다. 덕분에 우리 6사단에 주력이 몽땅 묶인 2군단은 계획대로 공세에 나서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듯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은 예비대의 부족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북한군은 정규군을 꾸준하게 증강시켰습니다. 북한은  초반의 대규모 전력투사로 우리나라 군대를 섬멸 혹은 중대한 타격을 입히고 대량의 예비대를 이용해서 후방을 방호, 안정화 작전을 실시하고 차후에 미군의 상륙 등에 대비하여 방어전을 펼치기 위함입니다.


 

 둘째 전국토의 요새화

 

북한은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군의 상륙전 능력과 엄청난 미군의 화력을 온몸으로 겪은 후 우주방어가 답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전국토의 요새화는 단순한 방어시설 건설을 넘어서 전시생산 체계 자체를 정립합니다. 6.25 전쟁 시 후방 방호가 전무한 상태로 인천상륙 작전 한방에 뒤집힌 경험은 상륙전에 대한 대비에 신경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양면이 바다인 북한 입장에서 세계 최강의 해군을 배경으로 제해권을 잡고서 자유롭게 공격 지점을 택할 수 있는 미군에 대한 공포가 상당했습니다. 당장에 평안남도에 상륙하면 수도 평양이 코앞이었습니다. 평양은 서해라서 중국이 있으니 좀 낫지만 북한 제 2도시이자 평양과 직통으로 연결된 원산은 동해안의 대표 항구도시입니다. 당연히 언제든지 역으로 상륙전을 통해서 2전선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미군에 대한 대비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 공군의 전략폭격을 전쟁내내 당하면서 그야말로 멀쩡한 건물이 하나도 안 남은 상태에서 북한은 전쟁은 물론이고 일상생활까지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군수공장과 군사시설은 지하에 요새화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미군의 제공권을 상대로 전쟁을 하려면 어떻게든 버티면서 싸워야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최고의 우주방어를 위해서 세계에서 가장 조밀한 중저고도 방공망을 만들었습니다.


 

 

  전군의 간부화

 

북한은 6.25 전쟁 직전까지 대규모 군대를 양성해서 훈련을 시켰고 사단급까지 작전 수준을 향상시켰습니다. 당시 대대급 수준이었던 우리나라 군대보다는 대단하지만 북한군도 창군된지 얼마 안된 신생 군대였고 당연히 대부분의 간부가 급하게 양성된 상황이었습니다. 공세가 순조로울 때는 이런 면이 잘 안 드러났지만 낙동강 방어선의 심각한 상황에 마주치자 간부들의 질적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융통성 없는 공격, 지휘없는 퇴각, 명령을 따르지 않은 이동, 지휘관의 지휘소 방기 등등. 이런 상황에서 간부가 능력이 안되니 제대로 지휘와 통제가 될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전장에서 임무 대리 및 현지 진급, 부대 확장 등으로 간부화 된 인원이 즉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해야 할 필요성을 느꼇습니다. 이후 북한은 대규모로 군을 증강시키는 것과 더불어서 준군사조직도 대거 증설되었기 때문에 간부 확보와 교육을 필수적으로 실시하였습니다. 지금 북한군은 단순히 간부 확보를 넘어서 전군의 간부화를 목표로 계속해서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장비의 현대화

 

한국전쟁 중에 북한군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당연히 탱크였습니다. 문제는 이 탱크가 전투력을 발휘하는데 제한사항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산악 지형에 도로도 좁고 하천이 많은 한반도에서 탱크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공병의 지원, 그중에서도 도하장비의 지원이 필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원래 보병 중심의 군대였던 조선인민군이 기계화부대에 필요한 전투지원까지 세심하게 준비할 시간은 없었고 평탄한 의정부 방면, 도로가 정비된 수도권 일대를 벗어나자 당연히 기계화 부대의 기동력이 급격하게 떨어졌습니다. 당장 한강만 해도 도하장비가 없어서 한강철교만 제대로 폭파했어도 도하를 막았을 거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북한군은 공병을 대단히 중시합니다. 총참모부 직속으로 공병국이 있어서 공병부대를 보유하고 있고 각 군단, 사단에도 공병을 다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단순 숫자로만 보면 우리 국군보다 많은 부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도하장비 역시 다량 보유하고 있어서 교량전차의 종류도 여럿됩니다.


 

 하지만 드러나고 있는 북한의 현실

 

전 인민의 무장화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인구수가 급감했고, 급감한 인구수로는 자연히 이전의 군세를 유지하지 못하였고 또한 인구대비 5%에 복무기간 10년, 실질적으로는 무기한인 말도 안되는 조건의 징병제를 실시하다보니 징병제의 단점이 매우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전 국토의 요새화

북한이 한국전쟁 이후부터 죽어라 증강해놓은 중저고도 방공망은 정작 현대전에선 별 쓸모가 없습니다. 이미 현대 공군의 지상공격 트렌드는 고고도 정밀폭격으로 바뀌었는데, 엄청나게 건설해놓은 저고도 방공망의 유지비용 때문에 정작 현대 공군에 대응할수 있는 고고도 방공망은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전군의 간부화 

북한 특유의 신정정치에 가까운 국가 운영 때문에 간부를 육성한다 해봤자 군인으로서의 자질이 중요한게 아니라 당에 대한 충성심과 인맥이 모든걸 결정하고 있습니다. 군인으로서의 능력이 최악이더라도 핵심계층 출신이고 노동당과 인맥이 깊으며 당에 아부를 떨고 뇌물을 바치면 높은 자리가 보장됩니다. 설상가상으로 극한의 경제문제까지 겹치면서 간부 양성은 물건너갔고 이제는 군인의 신분을 가진 도적떼들이나 양성하는게 한계인 실정입니다.


장비의 현대화

북한의 심각한 경제상황 때문에 현재 북한군은 현대화는 커녕 오히려 철저하게 구식화 되어있습니다. 육군은 전세계에서 전쟁좀 할만하다는 나라들이 필수적으로 갖추고 있는 3.5세대 전차도 없고 해군, 공군은 차라리 없는게 낫다 칠 정도로 세력이 미약합니다. 이게 다 선군정치를 통한 생산성 저하와 1인 독재자 체제에서 기인한 경제적 실책들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