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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중반은 한마디로 원자력 시대라고도 할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의 미 공군도 핵추진 전략 폭격기를 개발 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됩니다. 핵추진 전략 폭격기의 가장 큰 장점은 재급유가 필요없이 거의 무한한 항속거리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였습니다. 그러나 원자력 에너지 이용의 초창기에는 무엇보다도 방사능오염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되있지 못했습니다. 즉, 폭격기에 원자로를 탑재하기 위해서는 원자로의 개발 뿐이 아니라 방사선을 차단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핵추진 전략 폭격기에 큰 장점을 버릴 수 없었던 미 공군은 결국 1946년 5월에 항공기 추진을 위한 핵 에너지사용, NEPA(Nuclear Energy for the Propulsion of Aircraft)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제네럴 일렉트릭, 노스롭 등 미국 굴지의 기업들이 기초적인 실험을 실시하였지만 실제 핵추진 전략 폭격기를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미 공군은 이 핵추진 전략 폭격기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만하면 5년 이내에 개발을 완료할 수 있었다고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핵 융합로가 어떤 물건인지 이해하고 있던 물리학자 들은 5년 이내에 완성하겠다는 스케쥴 뿐 만 아니라 핵추진 항공기 자체가 공상과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NEPA 프로그램 자체는 어떤 가시적인 성과도 내놓지 못했지만 1949년 4월 28일에 열린 회의에서는 그때까지 진행된 개념적 연구와 실험을 바탕으로 미국 전체의 핵 에너지 사용을 총괄하는 핵 원자력 위원회 AEC와 국방성이 협력하여 원자력 추진 폭격기 실기를 만들어 내려는 프로그램 추진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ANP(Atomic Nuclear Propulsion) 프로그램 입니다.

 

 

 

(좌측이 직접순환방식, 우측이 간접순환방식)


두개의 다른 추진방식 개념이 ANP 프로그램에서 연구되었는데 직접 순환방식(direct cycle)방식과 간접 순환방식(indirect cycle)방식 입니다. 그리고 ANP 프로그램은 B-36 중폭격기를 기본 베이스로 하는 두 종류의 항공기를 개발하게 되는데 그 첫번째가 NTA(Nuclear Test Aircraft)였고 다른 하나는 X-6였습니다.

 

 

B-36이 실험기체로 선정된 이유는 다른게 있어서가 아니라 핵반응로와 그에 따르는 방사선 차폐막을 설치하고 비행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대형의 기체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계획에 따르면 NT 는 1기 그리고 X-6는 2기가 생산되도록 예정되어 있었으며, 이 두 종류의 기체에는 어떠한 실용적 가치도 의도되지 않았고 단지 일련의 실험을 통해 필요한 데이터를 축적하는 목적만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탑재되었던 ASTR 핵반응로


NTA 실험을 위하여 맨처음에는 지상실험용 핵반응로, GTR(Ground Test Reactor)가 실험 장비되어 1953년 11월 17일에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1954년 11월 17일에는 본격적인 실험용 핵반응로인 항공기 차폐 실험 반응로, ASTR(Aircraft Shielding Test Reactor)가 작동을 개시하여 본격적인 실험에 들어갔습니다. NTA 실험은 소형의 가동중인 핵반응로를 탑재한 채로 비행을 실시하여 방사능을 차단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실험이었습니다. 한마디로 ASTR 핵 반응로는 실험 기체에 어떠한 동력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이 핵 반응로를 탑재한 실험용 기체는 1955년 3월 11일 XB-36H로 명명되었다가 6월 6일에 NB-36H로 개칭되었습니다. 그렇게 NB-36H의 첫 비행은 1955년 9월 17일에 이루어 졌고 1957년 3월 까지 총 47회의 실험비행을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이 중 원자로를 가동한 횟수는 21회였습니다. 당시 실험때마다 C-97수송기에 탑승한 해병대원 1개 소대가 동행하여 추락사고에 대비, 사고 현장 주변을 차단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각종 실험 장비를 장착한 B-50D 기도 동반하여 데이터를 수집했습니다.

 

 

 

실험 실시 후 잠정적으로 내려진 결론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저공 비행시에도 방사능에 의한 위협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고시 화재가 발생하면 핵분열을 위한 연료봉이 용해되어 심각한 위협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당시 소련도 역시 NB-36H와 비슷한 개념으로 Tu-95 폭격기를 개조하여 소형 핵반응로의 탑재실험을 실시했하였고 이후 핵추진 방식의 쿠즈네초프(Kuznetsov) 터보 프롭엔진을 장착한 시험용 기체를 제작할 계획이었으나 이는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미국도 실험 결과에 따라 최대 1주일간 지상에 착륙하지 않아도 되는 상용모델을 제작할 계획이었지만 실험 결과, 수십 톤에 달하는 원자로, 차폐막 무게와 요격, 추락 등으로 인한 사고 발생 시 대형참사가 불가피했기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10.4억 달러를 투입한 미국의 핵추진 전략 폭격기 개발은 실용화 되지 못했고, 아이젠하워의 재임기간에 이루어진 국방 예산의 삭감은 미국의 재래식 전력을 크게 악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새로 취임한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3월 28일 ANP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종료시켰습니다. 그렇게 15년간 추진되었던 핵추진 전략 폭격기 개발계획의 흔적은 WS-125A 프로젝트의 개념도 몇장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물론 현재 미국이라면 핵추진 전략 폭격기를 만들 수 있지만 만들지 않을겁니다. (그 정도 크기의 폭격기를 격추시키는 미사일이 너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