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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공작원을 훈련시켜 북으로 보냈던 HID(Higher Intelligence Department)는 한국군이 미군과 별도로 조직해 만든 첩보부대입니다. 194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며, 전쟁 당시 활동했던 북파공작원들은 HID의 고유명칭을 육군첩보부대로, 통상명칭을 육군 4863부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HID는 전쟁 당시 약 30개의 부대를 운영했습니다. 당시 국군 15개 사단에 파견대를 두고 있었으며, 전방의 주요지역에는 따로 부대를 조직했습니다.

 

 

그런데 제4863부대(HID)소속 부대중에 SC지대라는 부대가 있었습니다. 200명 정도로 구성됐으며 특징은 부대원이 화교인 외인부대라는 것이였습니다. SC란 말 자체는 서울 차이니스(seoul chinese)의 준말로 한국에 체류했던 화교란 뜻입니다. 10주간의 양성훈련 후에 장병들은 12명씩 조를 나눠 육군방첩부대에 분산배치되었습니다.

 

▲북파 공작원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SC부대원

 

그리고 중국어, 한국어가 능통했기에 무장공작대원 70명은 전방에 배치되어 중공군을 만나면 중국어를 사용하고 북한군을 만나면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적들의 부대, 인원, 위치같은 첩보수집을 하며 때로는 요인암살, 납치, 파괴공작까지 완벽하게 펼쳤습니다. 이들이 적진에 들어가면 10명중 3명만 살아 돌아올 정도로 위험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특히 서부전선에서의 전투와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 철의 삼각지대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1953년 9월에 SC지대가 해체되기 전까지 많은 공적들을 남기게 됩니다. 하지만 부대 해체 당시 무장공작대원 생존자는 20명 정도밖에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끝까지 군에 남아 중공군 포로 설득과 대북 방송 중국어 파트 등과 심리전 등에서 근무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군번도 한국인도 아니라는 이유로 보상과 혜택없이 서서히 잊혀졌습니다. 그나마 1971년 부대원 53명이 종군기장을 받았고 75년에 10명이 보국포장을 받았으면서 위안이 됐겠지만 화교참전용사로서 끝내 유공자로 지정되지 못하였고 대부분의 화교용사들은 조용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 화교참전용사들을 위한 추모비 건립이 추진되기도 하였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국적이 어디든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영웅들이 이렇게 잊혀지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우리나라의 적이었던 중공군 유해들은 정성스럽게 송환시켜주면서 우리를 위해서 목숨바친 이들을 위한 추모비가 없다는게 정말 아이러니 한 상황입니다. 대부분 화교참전용사들은 정말 우리의 기억 속에 잊혀져 쓸쓸히 생을 마감하였고 그들이 원했던 군번없는 용사들의 공적비와 국립묘지 안장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왜 중국으로 가지 않았냐고? 허허, 내 피로 지킨 이 땅이 바로 내 고향이고 나도 한국사람과 다를 바 없어. 국적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화교참전용사 지건반씨가 2003년 한 잡지사와 인터뷰에서 남긴말-

 

자유대한민국을 지켰던 무명용사들이여.. 감사합니다...그리고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