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북한은 탄도미사일(SLBM) 탑재가 가능한 '신포급' 잠수함의 해상 기동훈련에 나서고 있으며 또 신포급보다 더 큰 잠수함 제작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 건설작업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신포급 신형 잠수함은 구 소련제 SSN-6 잠수함(2000톤급)으로 러시아로부터 들여온 잠수함의 짧은 길이(67m)를 SLBM 장착 부분이 함교까지 이어지도록 북한이 역설계하면서 탄도미사일발사가 가능해졌으며 탄도미사일은 2발 탑재 가능합니다.

 

 

경량급 잠수함에 탄도미사일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신포급 잠수함은 수중미사일발사관 2문을 함교 안에 수직으로 설치하였습니다. 그 발사관 안에 탄도미사일이 들어있습니다. 다른 핵강국들이 운용하는 중량급 전략잠수함들은 함교가 아닌 함체 안에 수중미사일발사관을 10문 이상 수직으로 설치하였지만 북한의 잠수함은 그처럼 많은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북한이 주장하는 말하는 최후일격은 한 방으로 끝내버리는 핵타격이기 때문입니다.

 

 

신포급 잠수함 함교부분을 확대한 사진을 보면 붉은 원으로 표시된 부분은 잠수함으로 드나드는 2개의 출입문입니다. 함교 안에 수중미사일발사관 2문을 설치하였으므로, 출입문을은 함교 바깥쪽에 냈습니다. 푸른 원으로 표시된 미확인 물체가 함교 꼭대기에 설치되었습니다. 북한 신포급 잠수함은 함교 안에 수중미사일발사관을 설치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잠망경, 레이더장대, 전자교란장대, 통신장대를 함교에 일렬로 길게 늘어놓지 않고 그 물체 안에 모두 집어넣었습니다.

 

 

작년 북한이 신포급 잠수함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후 근접 촬영 사진을 공개했었는데 수상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함정으로 치면 함교와 같은 잠수함의 코닝 타워(conning tower), 즉 사령탑에 다른 잠수함에는 흔치 않은 작은 창 32개가 새로 생겼습니다.

 


작은 창은 위치로 봤을 때 탄도미사일 수중 사출시 발생하는 압력과 소음, 가스를 발산하는 용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심 몇십 미터의 바다 속에서 잠수함 수직 발사관이 엄청난 압력으로 탄도미사일을 물 밖으로 튕겨 내보낼 때 생기는 압력과 소음, 가스를 없애기 위한 것 입니다.

 

미국의 해군전문 웹싸이트 <커벗 쇼어즈(Covert Shores)>에 현시된 ‘분석-신포급 탄도미사일 잠수함’이라는 제목의 자료에 따르면, 신포급 잠수함의 함체길이는 수중배수량 2,500~3,000t, 함체길이는 67m, 함체폭은 6.6m로 추산됩니다.

 


신포급 잠수함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에서 김정은은 "북한이 북극성-1호를 보유한 것은 적대세력들의 뒤잔등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탄을 매달아놓은 것이며 적대세력들의 수역에서 타격소멸할 수 있는 세계적 수준의 전략무기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신포급 전략잠수함이 북극성-1호(탄도미사일)을 싣고 대서양에 가서 미국 본토 동부지역을 불시에 기습타격하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전시에 북한의 신포급 전략잠수함이 대서양수중매복구역으로 가기 위해 북서항로를 지나려면 거대한 빙산들이 들어찬 북극해 바다속을 잠항해야 하는데, 디젤전동식 잠수함은 빙산바다 속을 잠항하지 못합니다. 핵추진 잠수함이라야 북극해 바다속을 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미국과의 최후결전을 대비하기 위해 경량급 핵추진 잠수함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이유입니다.

 

1990년대 최대 간첩사건인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 당시 사건의 장본인은 거물 남파간첩 이선실(여·1916년생)이었습니다. 반세기에 걸친 남북 첩보사에서도 그는 가장 완벽했고, 또 드라마틱한 인물로 기억됩니다. 약 30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공작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실수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선실은 1990년대 남파공작원 중 최고위급으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을 지냈습니다. ‘남한 내 합법적인 북한 전위정당을 구축한다’는 목표로 일본에 건너간 뒤 1980년 재일교포 ‘신순녀’로 신분을 위장하고 남한에 침투했습니다. 이후 남한과 일본을 오가며 민중당 대표를 맡고 있던 간첩 김낙중, 중부지역당 총책 황인오 등 400여명을 포섭해 북한을 지지하는 대중정당과 지하당 구축을 시도했습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1992년 이 사건을 조사해 이선실과 협력한 김낙중, 손병선 등 124명을 검거했습니다. 하지만 이선실은 사건이 불거지기 전인 1990년10월 17일경 강화도 해안에 대기 중이던 반잠수정을 타고 북한으로 귀환하면서 공작원으로서의 30년 활동을 화려하게 마무리했습니다.

 

 

그렇게 북한에 복귀한 이선실은 영웅이었습니다. 이선실은 북에 북귀 직후 자신의 30년 공작원 세월을 뒤돌아 봤는지 평양 김일성 동상 앞에 서서 한동안 깊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북한의 영웅이 된 이선실은 김정일로부터 공화국 2중영웅, 국기훈장 1급, 조국통일상을 수여받았고, 북 통일전선부 산하 대남연락소 남파간첩 교육을 담당하며 공작원 양성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는 돌연 자신의 전공과는 거리가 먼 당 경공업부로 배치됩니다. 경공업부 책임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였습니다. 이선실의 불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데 오랜 기간 자본주의 사회에서 활동했던 그에게 있어서 공화국의 현실은 처참했습니다. 그녀가 경공업부에 배치됐을 때, 북한은 집단 아사사태를 야기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상부에 외자유치와 개혁개방을 주장했는데 김경희를 비롯한 지도부의 눈에는 곱게 받아들여질 리 만무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북한에 ‘심화조 사건’이 터졌습니다. 심화조 사건이란 1996~1999년 사이 발생한 사상 검증 대학살 사건입니다.  심화조 사건은 단순한 사상검증 사건이 아니고 김일성 사후 김정일로 권력이 이양되는 혼란기, 공포를 통해 권력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기획되었는데 해당 기간 동안 당의 본류에 벗어난다는 명목으로 당 인사 2만 5000명이 제거되었습니다. 

 

 

주동자는 공교롭게도 김정은 권력이양 시기 죽음을 당한 장성택 당시 당 부부장이었습니다. 장성택은 자신의 최측근 채문덕 사회안전성 정치국장을 앞세워 이러한 광란의 살육을 자행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영웅이었던 이선실은 심화조 사건 말미였던 1999년 ‘간첩’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미제의 간첩으로 남한의 지하조직을 파괴하고 내부(북한)를 와해시키기 위한 임무를 띠고 침투된 자.’ 

 


일평생 북한을 위해 남한의 지하조직을 공고히 한 공으로 영웅이 된 그녀의 혐의는 간첩이었고 이선실은 당시 여든을 훌쩍 넘긴 노파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처형이 아닌 고문 중 사망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