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한국인만 모르는, 미국에선 유명한 한국의 고양이가 있습니다. 위에 사진은 미국인들이 살면서 꼭 한번씩 보게되는 한 장의 사진입니다. 1952년 한국전쟁에서 해병대 프랭크 프레이터(Frank D. Praytor)상사가 태어난지 2주 된 새끼고양이 미스 햅(Miss Hap)에게 스포이드로 우유를 먹이는 모습입니다. 프랭크 프레이터 상사는 이 새끼 고양이에게 '미스 햅(Miss Hap)'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그 뜻은 '나쁜 때에 나쁜 장소에서 태어났다'입니다.

 

 

미스 햅은 한국전쟁에서 어떻게 미 해병대원을 만나게 되었을까..

미 해병대 1사단은 1952년 8월경부터 서부전선에 위치한 벙커 힐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들의 임무는 중공군으로부터 고지를 사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0월 6일 중공군들은 시간당 1,000발에 달할 정도의 엄청난 곡사포와 박격포를 쏘며 총공세를 펼쳤지만 미 해병대는 필사적으로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전처부대로 나간 다른 해병대원이 고양이가 울어대자 사살했고 어미 곁에 있던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를 발견해서 데리고 오게 됩니다. 하지만 미 해병대 흥보부는 사실을 말하면 부정적인 인식이 야기될 것을 우려해 '중공군 박격포탄에 의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각색했고 프랭크 프레이터 상사도 침묵했습니다.

 

 

그렇게 미스 햅을 맡은 프랭크 프레이터 상사는 분유캔을 따서 미스 햅에게 스포이드로 먹이는 등 자식처럼 고양이를 정말 아겼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마틴 라일리 하사가 이 모습을 촬영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프레이터 상사는 이 사진을 '월간 해병대(Leatherneck Magzine)에 사진과 함께 이야기를 보냈다가 1953년 AP통신과 뉴욕타임즈 등 수많은 신문에 게재되며 특종이 되었습니다.

 

 

이후 프레이터 상사는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미스 햅은 한국에 남아 해병대 공보부처(PIO)의 마스코트가 되면서 전 해병대원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습니다. 그리고 미스 햅은 공보부처의 직원중에서도 콘라드 피셔 상병을 마치 엄마처럼 따랐습니다.

 

 

그리고 시카고 트리뷴의 월터 시몬즈 기자는 1953년 2월 21일자 기사로 미스 햅의 자란 모습을 기사로 다루었는데 피셔상병의 어깨에 올라탄 미스 햅이 자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군 해병대가 한국에서 철수할 때 '미스 햅'도 함께 미국으로 떠났고 미국의 언론들은 미스 햅을 '전쟁터에서 피어난 소중한 생명'이라고 보도하며 환영했습니다.

 

중국군이 배치한 상대방의 눈을 멀게하는 ‘실명(失明) 레이저 무기’에 대해, 미국 국무부는 중국이 국제협약을 위반했다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최근 수년간 중국이 실명 레이저 무기의 독자 개발에 힘을 쏟아왔습니다. 중국군에 배치된 실명 레이저 무기는 표적을 일시적으로 실명시키거나 현혹할 수 있는 BBQ-905 LDW(Laser Dazzler Weapon), WJG-2002레이저 총, PY131A, PY132A BLW(Blinding Laser Weapon)등 실명 레이저 무기는 4종류로 밝혀졌습니다.

 

중국 무기체계 전문가인 릭 피셔 국제평가전략센터 연구원은 이 레이저 무기들은 겉으로는 경찰 지원 화기처럼 보이지만 전쟁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며 중국이 해외 판매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중국은 실명 레이저 무기 사용금지를 규정한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CCW)에 가입하였습니다. 이 협약에는 실명 레이저 무기를 전투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의정서(1998년 체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명 레이저 무기는 사람의 안구에 레이저를 발사해 망막을 태워 실명하게 하거나 광학탐색기를 파괴해 정확한 목표물을 인식하지 못하게 합니다. 유엔의 특정 무기 사용 금지조약에 따르면, 실명 레이저 무기를 포함해 과잉 및 무차별 살상하는 재래식 무기 사용을 금지하고 제한합니다.

 

 

지난 1997년에 미 서부 워싱턴주 포트 엔젤레스 부근에서 미 해군 정보관을 지낸 퇴역 군인 잭 달리는 헬기에 탑승하고 있을 때 워싱턴 인근에서 러시아 정보 수집함이 발사한 레이저에 안구가 손상된 사례가 있습니다. 사고 당시 부상당한 잭 달리는 "항공기를 겨냥한 레이저 포인터가 미국 내에서 문제가 된 상황에서 중국의 이런 레이저 총이 미국에 들어온다면 비행 중 항공기 승무원들이 눈이 멀거나 이보다 더 나쁜 결과가 빚어질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잭 달리의 지적처럼 미 FBI는 2014년에 불법으로 항공기 조종실을 겨냥한 레이저 포인터 사례를 신고하는 사람들에게 포상금까지 내걸기도 했습니다.

 

 

현재 미군은 항공기, 드론, 미사일 등을 겨냥한 레이저 무기를 꾸준히 개발중이긴 하지만 중국처럼 군대에 레이저 총을 배치할 계획은 없습니다. 반대로 중국군은 국제법에서 사용이 금지된 무기를 쓴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보고됐습니다.  1989년 무력으로 진압한 중국의 학생 민주화 운동인 톈안먼 사건에서 덤덤탄을 사용한 것은 유족과 생존자, 의료 관계자 등 각계각층의 증언에서 밝혀졌습니다. 덤덤탄은 살상력이 높은 호로포인트탄의 일종으로 탄착의 충격으로 탄두가 체내에서 파열해 퍼져 총에 맞은 사람에게 참혹한 치명상을 입힙니다.

 

지금 현재 중국은 미국의 전략 우위를 없애고 정밀 공격을 가능하게하는 미군의 정보 통신 항법 위성 그룹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해 지향성 에너지 무기 "Light War" 개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우주 배치 레이저포 구상은 2013년 12월 중국의 화학지에서 밝혀졌으며 2023년에는 실전배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의 재래식 동력함인 CV-63 키티호크(Kitty Hawk)가 2009년 퇴역하면서 미국의 모든 항공모함들이 핵추진함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을 만큼 이제는 의의가 많이 감소하였지만 엔터프라이즈는 세계 최초의 핵추진 항공모함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1961년 취역하였으니 벌써 50여년 가까이 바다를 누비고 있는 셈인데, 수차례에 걸쳐 실전 투입도 되었고 한반도에 군사적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에도 등장하여 그 위용을 뽐내고는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엔터프라이즈인 CVN-65 가 미 해군 최초의 엔터프라이즈는 아닙니다. 통상 해군의 군함명은 인물명, 지역명, 역사적 사건명 등 여러 사유로 결정되는데 그렇게 작명된 수많은 선명 중에서도 두고두고 기억하여야 할 가치를 지닌 특별한 선명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해군의 충무공 또는 이순신과 같은 함명이 바로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영예로운 선명을 지닌 군함이 퇴역하면 새로운 군함이 선명을 승계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세계최강 미 해군에서는 엔터프라이즈가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 되는데, 미 해군 함명들 중 가장 많이 계승 되어온 이름이며 또한 이름에 걸맞게 많은 전공을 세웠던 선명이기도 합니다. 1775년 5월 18일 영국으로부터 노획한 70톤짜리 소형 범선이 최초로 엔터프라이즈로 명명된 이후 여러 차례 이름을 승계하여 왔습니다. 2012년 12월 1일에는 미 해군의 8번째 엔터프라이즈 CVN-65가 버지니아주 노포크 군항에서 퇴역하였는데 버락 오바마까지 참석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미 해군 불침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라는 함명이 미국의 차세대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의 3번함으로 계승될 것이 선언되었습니다.

 

 

 

사실 엔터프라이즈 중에서 전사에 그 명성을 길이 남긴 것은 7호 엔터프라이즈인 항공모함 CV-6 입니다.  1938년 5월 12일 요크타운 클래스 ( Yorktown Class )의 2번 함으로 취역한 CV-6는 미드웨이해전에서 승리를 엮었고 솔로몬해전에서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은 미 해군의 전설이 된 함정입니다. 바로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이 불침의 영광과 전통이 되도록 만든 주인공이었습니다.

 

 

미 해군에 비하면 역사가 일천한 우리 해군은 앞에서 언급한 충무공처럼 역사적인 인물 외에는 승계하여 사용할 만큼 전통 있는 함정명이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비록 함정명은 아니지만 함번으로 한국 해군의 전설이 되고 있는 자랑스러운 이름이 있습니다. 1999년 발발한 제1연평해전과 2009년 벌어진 대청해전에서 연거푸 대승을 이끈 참수리 325호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특히 참수리 325호의 승전이 빛난 이유는 아군의 피해는 거의 전무한 상태로 압도적인 승리를 이끌어 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전쟁이후 남북 정규군간의 최초 충돌이었던 1999년 1차 연평해전은 국군에게 더 할 수 없는 자신감을 이끌었는데 당시 북한 경비정을 패퇴시킨 것이 바로 참수리 325호였습니다. 그리고 2009년의 대청해전은 잘못된 교전 규칙으로 인해 많은 인명피해를 입은 승리였던 2002년 제2차 연평해전의 아쉬움을 한방에 날려 보낸 쾌거였습니다.

 

 

참고로 대청해전 당시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 있던 해군 고속정 4척 가운데 ‘참수리 325호’만을 표적으로 삼아 선제공격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당시 군 당국은 "북한 경비정은 우리 고속정 4척 중 참수리 325호를 겨냥, 25㎜와 37㎜ 함포 50여발을 쏴 이 중 15발이 명중되었는데 당시 북한군이 NLL을 넘기 전부터 참수리 325호를 목표로 삼아 도발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었습니다. 

 

325호라는 함번이 정식 함명이 되기는 곤란한 점이 있겠지만 이미 325호는 한국 해군에게 함번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훗날 고속정들이 노후화 되어 퇴역하더라도 미 해군의 엔터프라이즈처럼 후속함정에게 325호의 전통이 승계되어 계속 사용됨으로써 그 용기와 기백이 영원히 알려지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전쟁은 누구도 좋아서 하는게 아니오. 이건 의무이지. 국민이 침략의 희생자가 되었을 때 싸워서 스스로를 지키는 것 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소.' -아흐마드 샤 마수드-

 

 

아흐마드 샤 마수드(페르시아어:احمد شاه مسعود)는 판지시르의 사자, 아프가니스탄의 국가 영웅, 세계 최강이었던 외세의 압제와 맞서 싸우며 민중의 안생과 조국의 발전을 도모한 리더, 이슬람의 이순신으로 불립니다. 마수드는 1978년 아프가니스탄 공산당 세력이 쿠데타로 아프가니스탄 인민 공화국을 수립하자 마수드는 자신의 고향인 판지시르 계곡에 본거지를 구축하고 게릴라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1979년,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자신들의 꼭두각시 카르말 정권을 출범시키자 마수드는 이들을 몰아내기 위한 전략적 계획을 짜게 됩니다. 첫쨰, 민중들의 지원을 받는 게릴라 군대 양성 둘쨰, 비정규전의 수행과 그 동안 거점인 판지시르의 적극적 사수 셋째 "전략적 공세"로 마수드의 군대가 북 아프가니스탄의 대부분을 제압 , 넷째 마수드의 원리를 나라 전체에 일반적으로 적용하여 최종적으로 아프가니스탄 공산주의 정권을의 붕괴였습니다.

 

 

1980년, 파키스탄 쪽의 루트로부터 어렵게 입수한 7백여 정의 구식 소총과 제대로 훈련되어 있지 않은 1천여 명에 불과한 병사들을 이끌고 마수드는 무자헤딘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난민이나 마찬가지였던 마수드 휘하의 무자헤딘은 마수드의 지도를 거치면서 1984년 5천 명의 강병으로 성장했고, 종전이 된 1989년, 마수드 휘하 무자헤딘의 수는 무려 1만 3천 명에 이르렀습니다. 마수드는 적의 주력과 정면에서 맞붙어야 하면서 외부의 지원은 거의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 휘하의 무자헤딘을 엄청난 규모로 만들었습니다.


소련군 역시 자신들의 유일한 보급로를 위협하고 있는 마수드를 최우선 제거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수드와 그 휘하의 무자헤딘에 활약에 화가난 소련이 수천 명 규모의 게릴라를 때려잡겠다고 스페츠나츠를 포함하여 만 명 단위의 병력을 동원하고 폭격기까지 투입해서 대공세를 가한 횟수만 무려 9회였습니다.

 


1983년, 소련은 마수드에게 정전을 제안하였고 마수드는 고민 끝에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소련의 속셈은 일단 자신들의 전력을 재정비하고 다른 곳부터 정리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 기간을 적절히 사용한 것은 오히려 마수드였습니다. 1983년 7월 마수드는 파완, 라그만, 카피사, 쿠나르, 바다크샨 타카르, 바그란과 쿤드즈를 포함하는 북 아프가니스탄 7개 주의 130명의 무자헤딘 지도자들을 모았고, 그 곳에서 무자헤딘들의 행동을 확실히 조절하기 위한 군사 협의체인 감독 의회(Shura-ye-nazar)를 창설합니다. 감독 의회를 통해 마수드는 정치적, 인종적인 문제로 분열되어 있어서 각자 움직이던 무자헤딘 세력들을 하나로 묶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로써 마수드의 영향력은 본거지인 판지시르를 넘어 타카르, 발한 주까지 뻗어나갔고 카르말 정권은 기겁하며 소련군에게 판지시르에 대한 공격재개를 요청합니다. 자신들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당황하기는 소련군도 마찬가지였고 아예 마수드 세력의 씨를 말려버리겠다며 Tu-16 폭격기를 동원하여 판지시르 계곡에 전략 폭격을 감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수드는 이미 카르말 정권에 침투시킨 첩자로부터 이 사실을 전달받았고 소련군의 폭탄은 5만 명의 거주민이 모두 떠난 텅 빈 계곡에 떨어졌습니다.

 


1984년, 소련-공산 아프간 군은 2만 1천여 명이 동원된 7차 공세를 시작했으나... 무자헤딘 5천여 명의 반격에 2천 5백여 명의 사상자를 남긴 채 후퇴해야 했고, 1985년의 9차 공세에서는 공산 아프간 군 5백여 명이 무자헤딘 측에 가담한 데 이어 공산 아프간 군 여단장이 무자헤딘의 공격에 사망하면서 결국 소련측은 1986년 판지시르에 대한 공세를 중단, 1988년 즈음 소련군은 판지시르 계곡에서 완전히 철수했습니다.

 


당시 마수드는 미국 정부의 군사적 지원을 받을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애초부터 마수드는 자신의 조국 아프가니스탄이 외세에게 휘둘리지 않는 자주적인 국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갑자기 쳐들어와서 꼭두각시 정부를 세운 소련이나 이를 핑계로 무자헤딘에게 무기 지원을 하려는 미국이나 똑같은 외세로 봤기 때문이였습니다.



2001년 9월 9일, 벨기에 여권을 소지한 서방 기자들이 마수드를 취재하러 왔었고 그들을 응대하던 마수드는 기자들로 위장한 알 카에다 소속 자폭테러범들에게 암살당했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가 48세였습니다.

 

 

이틀 후 9.11 테러가 벌어졌습니다.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내놓으라고 탈레반에게 요구했으나 자신들의 숙적인 마수드를 제거해준 알 카에다를 탈레반 정권이 내놓지 않았고 결과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수많은 아프간인들이 슬퍼했습니다.

 

 

 

마수드는 '판지시르의 사자'등의 별명으로 불렸으며 말 그대로 전설이나 다름없는 게릴라 지도자였습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시기에는 타지크족이라는 특성상 미국의 지원을 거의 못 받는 상황에서도 가장 혁혁한 전공을 올렸습니다. 현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수립된 후 마수드는 국가의 영웅으로 선포되었고 기일인 9월 9일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국가기념일이기도 합니다. (비탈레반 지역에서만)

 

하마스 (Hamas)는 어느 관점이냐 따라 평가가 나뉘어 지는데, 팔레스타인의 정당이면서, 무장 단체, 테러조직이기도 합니다. 아랍어로 하마스는 알라를 따르는 헌신과 열정을 뜻하기도 하며 하마스 단체에서는 "힘과 용기"로 설명합니다. 1989년 이스라엘군을 공격해 2명의 이스라엘 병사를 사살하면서 그 이름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리고 하마스는 여성들에게 억압적인 규제를 강요하고, 이 중 물담배 금지령 같은 부분은 전통 이슬람 율법에도 언급이 없는 부분이라 반감을 사기도 했으며, 자살 폭탄 테러를 주도하는 집단으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이들의 테러는 이스라엘 민간인,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예루살렘 등지에서 폭탄 테러, 그것도 여자들까지 가담하는 자살 폭탄 테러로 그 과격성이 수많은 팔레스타인 저항 조직들 중에서도 가장 심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은 2003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이스라엘인 민간인에 대한 테러를 저지르는 하마스를 계속된 처벌 요구에도 벌하지 못하자, 웨스트뱅크와 동예루살렘을 공격해 팔레스타인 정부 청사 건물을 박살내고 팔레스타인의 수장 야세르 아라파트를 사실상 가두고 촛불에 의존하여 집무를 하게 만드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팔레스타인의 자치권을 박탈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의 강경책은 오히려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를 사 이스라엘과의 타협을 주도해온 파타에 등을 돌리고 과격파인 하마스를 지지하는 역효과를 낳았습니다. 2006년 6월 이스라엘의 함정이 가자 지구의 해변에 포격을 가해 피서를 즐기고 있던 수십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이스라엘 정부는 인명피해가 하마스가 해변에 묻어놓은 지뢰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너무 말이 안되는 주장이었기에 국제적인 비난을 샀으며 이 도발을 계기로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2012년 11월 초 이스라엘군은 당시 하마스의 리더였던 아흐메드 알 자바리를 미사일로 공격해 사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어린이도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애초부터 후계자가 지정되어 있기에 리더의 사망은 혼란을 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보복에 나선 하마스측의 로켓 공격으로 11월 15일 이스라엘 민간인 3명이 사망했다고 했습니다.

 

 

이에 반격으로 하마스는 포격을 가하지만 이스라엘의 요격 병기 아이언돔이 90% 가량의 요격률을 보이면서 대부분 막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포격을 잘 막는다고 무작정 좋아만 할일이 아닌것이 아이언 돔은 그 가격이 하마스가 쏴대는 까삼 로켓의 수십배에 달하는 비싼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하마스는 극렬 테러리스트들로부터 팔레스타인 독립의 희망이라고 불리는 등 정말 다양한 평가를 받습니다. 현재 캐나다, 유럽 연합, 미국, 이스라엘 등으로부터 테러리즘 단체로 지정된 상황이나 러시아, 중국, 그리고 주변 아랍 국가는 하마스를 독립군으로 보고있으며 테러 단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마스는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는 공격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항상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학교와 식당 등 전략적 가치도 없고 전투 지역이 아님이 분명한 곳임에도 자살폭탄테러를 저지르고 하마스가 가하는 로켓 공격은 민간인 피해를 불러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마스의 리더인 칼레드 마살은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최대한 자제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하마스는 민간인에 대한 로켓 공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또한 하마스는 과격한 이슬람 근본주의를 신봉하는 것으로 악명높습니다. 여성들에게 히잡을 강요하여 강제로 쓰게하지 않나 해변, 수영장, 결혼식 및 각종 행사장에서 남녀를 분리하게 하는 성차별을 실시하며 서양 스타일의 의복과 문물, 음악을 악마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하며 비보이나 힙합도 싫어하여 못하게 합니다. 또한 술 역시 싫어하여 집에서만 마시게 합니다.

 

 

하마스의 알-카삼 사단은 이스라엘 국방부가 추정하기로는 약 1만 5천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5개의 여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중 약 1~2천명 정도가 이란이나 시리아에서 정규 훈련을 받고 돌아온 정예병이며 이 정예병들은 하마스의 특수부대원들로 전투력이 이스라엘 특수부대들과 비슷한 전력입니다.

 

 

그리고 기계화부대가 없어서 일반 자동차를 개조한 테크니컬을 사용하며 이스라엘 전차에 맞서기 위해 대전차무기를 상당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복장도 중동의 무장단체들과는 확실히 다른데 테러리스트가 아닌 정규군이라 할수 있는 수준입니다. 공군과 포병이 없어서 그렇지 보병전이랑 시가전에서는 중동에서 최고라는 이스라엘군에 밀리지 않습니다.

 

 

하마스는 서구권에서 테러 단체로 지정되어 있고 이스라엘의 감시 때문에 대놓고 무기를 수입하기 힘든 상황이기에 대부분의 무기를 가자 지구에 자력으로 만들어 사용하거나 무기상으로부터 이란, 레바논, 시리아, 이집트에서 시나이 반도를 통해 밀수합니다. 특히 하마스의 후원국인 이란에서 무기를 지원받다보니 무기들의 상당수가 이란제입니다.

 


이렇듯 전쟁도 불사하며 앙숙관계를 이어온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현재는 '암묵적 동맹관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는 가자지구를 IS가 장악하려고 하기때문입니다. 또한 이슬람 극단주의자 단체인 '살라피스트'를 비롯한 여러 소규모 단체들은 호시탐탐 하마스의 자리를 넘보고 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은 현재 하마스와 충돌 없는 상황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의 투표는 아주 간단합니다. 일단, 유권자가 투표소에 신분증(북한에서는 '공민증'이라고 부릅니다)을 지참하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선거인명부와 대조하여 신원을 확인하고 투표용지를 받습니다. 여기까지는 여느 나라의 투표방식이랑 똑같습니다. (위 사진의 보이는 포스터를 보면 "모두 다 찬성 투표하자!"라는 무서운 말이 쓰여있습니다.)

 

 

하지만 투표 방식에서 북한은 단일후보에 대한 찬성과 반대 두 가지 뿐입니다. 투표용지 앞면은 후보의 이름이 적혀 있고 뒷면에는 '찬성표'가 적혀 있습니다. 찬성하는 경우 투표용지를 반으로 접어 투표함에 넣고 반대하는 경우에는 후보자 이름 옆에 X표를 한 후에 넣습니다.

 

 

하지만 투표장 안의 감시와 통제는 엄격합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없어서 조선노동당이 후보를 등록에서 투표, 개표관리까지 모든 과정을 통제하고 감시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반대를 표하기란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북한의 100% 만장일치 선거 결과가 가능한 이유입니다. 간혹 드물게 반대에 투표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한 북한에는 특별한 선거 유세활동이 없습니다. 북한의 대의원 단일후보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뽑아 달라는 홍보나 선전 활동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선거 연령대도 우리나라와 다릅니다. 만 19세 이상의 국민이 참여하게 되어 있는 우리와 비교해 북한은 만 17세부터 투표할 수 있으며 아무리 몸이 아파서 하루종일 누워 있다던가, 기타 다른 사정이 있어도 무조건 참여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북한 선거에서 당선자는 정해져 있고 유권자는 그걸 그냥 투표함에 넣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의 선거는 말이 선거지, 사실상 당에서 지정한 후보를 인민에게 한번 보여주면서 주민들의 당에 대한 충성심을 시험해보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선거 시기가 되면 몰래 탈북한 탈북자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북한으로 다시 들어오게 됩니다.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일종의 출석 체크이기 때문에, 만약에 오지 않는다면 연좌제로 가족들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게 됩니다.

 

 

2014년 3월 김정은 집권 이후의 첫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국회의원 선거였습니다. 그렇게 13기 최고인민회의 선출된 대의원은 모두 687명이였으며 대의원들은 국가 최고지도자로 당연히 김정은을 추대하는 데 100% 찬성했습니다.

 

북한은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 통일 하려는 최종전략 목표를 두고, 당면 전략으로 대남혁명수행을 목표로 가진 우리의 적국입니다. 하지만 북한과의 대치 상황에 많이 익숙해져있어 최근 북한의 핵문제에 비해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감이 생각보다 낮은 것 같습니다. 북한은 언제나 도발을 해왔습니다. 이에 잘 대응하기 위해서는 북한군의 강점과 약점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북한군의 강점 10가지와 약점 10가지를 소개해보겠습니다. 


 

 북한군 강점

1. 대량살상무기 실전배치

 

북한군은 현재 핵무기, 생화학 무기를 전국에 상당수 갖추고 있으며 실전배치 수순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북한은 2500~5000톤 규모의 다양한 화학 작용제를 전국에 분산해 보관하고 있습니다. 북한군의 대량살상무기 실전배치 지점 위치를 정확히 분석해서 유사시 북한군이 이를 사용하기 이전에 신속히 선제타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2. 모둔 군부대 거점의 요새화

 

북한 헌법 제60조를 보면 ‘국가는 군대와 인민을 정치사상적으로 무장시키는 기초 위에서 전군 간부화, 전군 현대화, 전민 무장화, 전국 요새화를 기본 내용으로 하는 자위적 군사 로선을 관철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른바 4대 군사 노선인데, 이 가운데 네번째인 전국 요새화 노선은 모든 군사 시설을 지하에 건설한다는 전략입니다. 북한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전국토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살려 과거 수십 년 동안, 거의 모든 군사 시설을 땅 속으로 옮겨놓는데 성공했습니다. 우리 공군이 벙커버스터로 공격한다고 해도 쉽지 않은 깊이로 요새화되어 있습니다.


 

3. 저렴한 군사력 유지비 및 군사장비 개발 비용

 

북한군이 한국군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한 강점으로 들 수 있는 것이 한국군에 비해 군사비가 규모가 적어도 한국군과 대등한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군은 인건비가 거의 들지 않고 국영공장에서 군사장비를 생산하기 때문에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자체 생산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군은 전차 1대 생산하려면 200억 원이 든다면, 북한군은 10~20억 원이면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우리가 훨씬 많은 군사비를 지출해도 북한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못한 전력투자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북한군의 군사비가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적다고 해서 우습게 봐서는 안 됩니다.


 

4. 전방지역의 수많은 장사정포 화력

 

북한군이 실전 배치한 장사정포는 총 4,800여 문입니다. 이 가운데 전방지역으로 배치돼 서울과 수도권을 표적으로 삼고 있는 장사정포 전력은 170mm 자주포 140~150여문, 240mm 방사포 200여문 등 총 350여문 정도입니다. 이들 장사정포는 시간당 1만여 발의 포격을 가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만약 북한군이 장사정포에 화학탄을 발사할 경우 그 피해는 상상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이러한 북한군의 장사정포 위협에 대비해 우리군은 대화력전 능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각종 정찰 수단을 동원해 24시간 북한군의 장사정포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5. 엄청난 숫자의 특수부대

 

북한 특수부대는 핵 위협 못지않게 대한민국에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북한 특수부대(정식명칭 조선인민군 특수부대·NKSOF)의 병력 규모는 약 18만명에서 20만명 사이로 추산됩니다. 세부적으로 나누면 경보병 14만명과 특수전 전문병력 6만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군사강국인 미국 특수부대가 5만명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유례없는 규모로 볼 수 있습니다.


 

6. 세계 최대 수준의 잠수함 전력

 

북한의 비대칭 전력의 핵심이라는 평가를 받는 북한군 잠수함 보유량은 세계 1위권입니다. 북한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꾸준하게 새로운 잠수함 세력확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하면 이를 잠수함에 탑재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그려집니다. 실전 배치될 경우 탄도미사일 발사 징후를 사전에 탐지하기 어려워 우리 군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비해 구축하고 있는 '킬 체인'도 무력화 되고 독자적으로 막아낼 방법도 없어집니다.


 

7. 수륙양용 기동이 가능한 군사장비

 

북한군은 육지와 수상을 마음대로 기동할 수 있는 기동장비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공병도하부대가 사실상 필요가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전차'와 '장갑차'는 거의 대다수 스노클 장비가 부착되어 있거나, 한국군 해병대의 수륙양용장갑차 처럼 수상기동이 가능한 기계화부대들로 편성이 되어 있어 왠만한 강이나 하천은 모두 신속히 도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군은 해상과 육상 기동이 가능한 '공기방석정'도 다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8. 중국 인접지역에 위치한 군수공장

 

북한에서 무기 및 장비, 화약류 등등 병기 및 군수품을 제조하는 핵심 군수공장과 병참기지들 약 200여 정도가 중국과 인접한 자강도와 양강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미 연합군의 항공폭격이나, 미사일 타격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칫 중국 지역으로 오폭이라도 나는 경우에는 세계대전으로 확전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군수시설들은 항공기나 미사일로 타격하지 말고,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타격하여야 합니다.


 

9. 북한군의 유격전, 산악전 전술

 

북한군은 과거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을 통해 미군 등 연합군의 공격 방법을 확실히 배웠습니다. 이에 북한은 미군에 대항하기 위해 훈련을 유격전과 산악전에 맞춰서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군은 지휘부가 타격받아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소부대 단위로 끝까지 저항할 것을 철저히 교육받고 있습니다.


 

10. 오랜 군생활을 통한 북한군의 경험

 

한국군보다 군사복무 경험이 많은 북한군의 전투능력과 조직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점으로 판단됩니다. 단지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인해 제대로 된 군사훈련을 받지 못한 측면은 있지만, 병사들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개인화기인 소총만 잘 사용할 수 있으면 되고, 명령이 떨어지면 앞으로 돌격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군은 한국군에 비해 많은 강점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북한군 약

1. 노후화된 군사무기와 장비

 

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 (IISS)는 최근 펴낸 `2016세계 군사균형 보고서’에서 북한 군의 현대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북한군은 갈수록 노후화가 진행 중인 러시아와 중국산 장비 등에 계속 의존하고 있습니다. 최근 새롭게 도색한 전투기만이 지난 20년 넘게 새 전투기를 도입하지 못한 (공군) 전력을 위장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한군이 정기적으로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지만 자주 연출용일 뿐 입니다.


 

 

2. 전쟁 지속력

 

현대 전쟁은 그 나라의 경제력이 어느 정도 수준이냐가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전쟁 지속력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비해 북한은 경제적으로 많이 뒤쳐지기 때문에, 한국보다 전쟁 지속력이 낫다고 평가됩니다. 북한의 전쟁지속 능력은 2~3개월로 중국으로부터 지원이 없을 경우 장기전은 불가능합니다.


 

3. 김정은에게 집중되어있는 권력

 

북한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김정은을 중심으로 하는 독재국가입니다. 따라서, 김정은이 살상되면 굳이 전쟁을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곳입니다. 따라서, 유사시 김정은을 조기에 제거하여 북한군의 전쟁 의지를 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미국의 특수부대 네이비실은 김정은 등 북한 수뇌부 암살과 납치를 포함한 작전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4. 떨어질때로 떨어진 군기강

 

북한수도 평양을 방위하는 군부대에서 전단이 살포되는 등 북한군의 기강 해이가 극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김정은은 이에 "우리 내부에 숨어서 때를 기다리는 불순 적대 분자들을 모조리 색출하여 무자비하게 징벌하여야 한다"면서 군 기강 확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5. 식량난으로 인한 군인들 체형

 

북한의 국가기관, 특히 군대의 식량 문제는 사상 최악의 상태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금 현재 북한에선 만 17세가 되면 신병으로 징집되며 징집되는 북한군 신병의 키 하한 기준을 142㎝낮췄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만 10세)의 평균키(140.2㎝) 보다 조금 큰 수준입니다. 


 

6. 혼란스러운 전 인민의 무장화

 

북한은 4대 군사노선을 오랫동안 주창해왔습니다. '전 인민의 무장화'도 그에 따라 진행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전시에 오히려 지휘체계와 군사작전에 혼란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정규군과 비정규군은 그 능력차이가 크기 때문에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에 대한 약점을 한국군이 잘 파고 든다면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7. 심각한 공군/해군력

 

북한 해군은 한국 해군에 견주어 함정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척당 평균 톤수가 123.5t으로 한국 함정 평균 t수의 3분의 1밖에 안되는 소형 함정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함정과 인력의 질이 한국 해군에 크게 뒤떨어집니다. 그리고 한국군 주력전투기는 F-15K입니다. F-15K는 최신 기종입니다. 우리나라에는 F-15K, 그와 비슷한 성능의 F-16까지 모두 합쳐서 200대가 넘습니다. 반면 북한에서 최고의 전투기는 미그 29인데 한 30대 정도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 공군의 F-15 2대면 미그29 10대 하고 맞먹는다는 점입니다.


 

8. 이중적 군사 지휘체계

 

북한군을 포함해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군사작전을 계획하고 지휘하는 '군사 지휘관'과 사상 및 정신교육을 담당하고 군사 지휘관을 감시 및 견제하는 '정치 군관'의 이중적인 군사 지휘체계를 갖고 있는 것이 하나의 강점일수도 있고, 큰 약점일수도 있습니다.


 

9. 복잡한 군수지원체계

 

우리나라 군은 직접 생산하거나,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무기체계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유사시 한미 연합군 사이에서 서로 군수지원이 가능합니다. 그에 비해 북한군은 자체 생산한 무기류도 다종화되어 복잡하고,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수입한 무기류도 많아서 이에 대한 군수지원이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10. 경제난으로 군사훈련이 멈춘 북한군

 

북한군은 경제난으로 인해 실병기동훈련 및 각종 사격훈련 등의 실질적인 군사훈련 횟수가 매우 부족합니다. 훈련을 거의 도상으로 진행하거나, 주둔지 교육훈련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통상적으로 전투기 조종사는 기량 유지를 위해서 연간 130~150시간가량을 비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북한 공군의 조종사 1인당 훈련시간은 통계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김정은이 처음 집권했을 때 무언가 큰 도박을 거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북한의 김씨 왕조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해 보입니다. 김정은은 흔들리는 입지를 다지기 위해 자신의 최측근은 물론 고모와 고모부와 같은 친척들에게까지도 갖은 죄를 뒤집어 씌어 숙청해왔습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자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은 군사정변을 꾀했다는 혐의로 2013년 지하 밀실에서 기관총으로 처형되었으며 고모 김경희는 독살되었습니다. 그리고 북한 내 군 서열 2위였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AK소총으로 공개처형하였으며 김정일 사망 애도 기간에 술을 마신 김철 인민무력부 부부장은 바로 끌려나가서 박격포로 처형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북한 김정은 체제의 주요인물들은 누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황병서 (북한의 제2인자)

 

북한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제1위원장인 김정은에 이어 북한의 제2인자입니다. 겸임으로 인민군 총정치국장,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조선로동당 정치국 상무위원도 겸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주로 인민군 서열 1위인 총정치국장으로 호칭하고 있으나 현재 북한 권력의 최고핵심인 국무위원회에서 위원장 김정은에 이어 부위원장으로 있으며 김정은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습니다. 


 

2.  최룡해 (김정은 시대의 부활)

 

최종 직책은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조선로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입니다. 김일성의 최측근인 최현의 아들로 혁명1세대 권력핵심의 2세들인 혁명유자녀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로 김정은 시대 모두 숙청을 당했음에도 다시금 권력의 정점에 복귀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야말로 불사신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박봉주 (내각총리)

 
장성택 사후, 장성택의 인맥으로 평가되면서도 오히려 권력서열이 오른 박봉주 내각총리는 ‘가장 뜬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김정은이 박봉주를 내각 총리직에 복귀시키면 힘을 실어줬습니다. 2016년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임되면서 김정은, 김영남, 황병서, 최룡해와 함께 빅5으로 꼽힙니다. 박봉주는 현재 북한경제를 재건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2017년 4월15일 태양절 105주년 열병식에서는 김정은의 바로 왼편에 위치해 강력한 실세임을 과시했습니다.


 

4.  김영남 (김씨왕조의 절대충성)

 

1928년 2월 4일 생. 2017년 기준으로 무려 90살입니다. 김정일 시대인 1998년부터 현재까지 북한의 헌법상 최고기관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을 줄곧 역임하면서 북한의 형식상 국가 수반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헌법상으로는 국가수반이나, 모두들 알다시피 북한의 최고집권자는 김정은입니다. 북한의 최고권력자에 도전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죄다 숙청되는 과정에서도 1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는 것만 봐도 이 사람은 3대에 걸친 김씨왕조에 절대충성을 다하고 있는 대표인물입니다.


 

5.  김영철 (대남도발 주도)

 

현재 정찰총국 국장을 맡고 있고 2월12일 현재 김양건을 이어 대남비서로 승진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정은의 측근이자, 북한의 군부 인사 중 대남 강경 정책을 지속적으로 밀고 있는 강경파로 알려져 있으며, 천안함 피격사건연평도 포격 사태 등의 굵직한 대남 도발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6년 신설된 북한의 국가최고기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었습니다.


 

6.  리수용 (외교담당)

 

리수용은 함경남도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한 후 김일성 시기 외교부 의례국장, 국제기구 국장, 제네바 대사관 대표부 공사 및 대사, 제네바 유엔사무국 대표부 상임대표 등을 역임습니다. 그리고 김정일 정권에서 주 스위스 대사, 주 리히텐슈타인 대사, 주 네덜란드 대사를 역임했을 정도로 외교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김정은 집권 후에도 외무상 직책을 역임하여 2014년에는 북한 외무상으로는 15년 만에 최초로 유엔총회에서 회원국 대표로 연설하여 북한 체제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7.  김평해 (인사담당)

 

김평해는 자강도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김일성 시기 평안북도 당위원회 비서직을 역임했고 김일성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현재 당 간부부 부장을 역임하고 있는데 당 간부부는 당 조직지도부와 함께 북한 체제의 검열 및 인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부서입니다. 내각의 부상 이하 간부, 외교관의 선발 및 배치, 최고인민회의의 대의원 추천, 대학 졸업자의 직장 배치 등 중하위급 인사에 대한 검열 및 인사를 담당합니다. 김정일 정권에 이어 김정은 정권에서도 당 간부부 부장을 역임하고 있는 만큼 적지 않은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8.  리만건 (핵미사일 책임자)

 

당 정치국 위원,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당 중앙위원회 위원,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당 중앙위원회 군수공업부 부장과 당 군수공업부 부장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리만건이 부장을 맡고 있는 당 군수공업부는 북한의 군수산업과 핵무기 개발을 총괄하는 부서입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 4차 핵실험 직후 채택한 결의안 2270호에 리만건 당 군수공업부 부장을 포함한 북한의 주요 간부의 이름을 포함시켰습니다. 리만건은 5차 핵실험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9.  조용원 (새로운 실세)

 

북한에서는 직위에 상관 없이 최고지도자와 얼마나 근접 거리에 있느냐가 실세의 기준이 됩니다. 조용원은 차관급이지만, 김정은의 신임을 받는 새로운 실세로 보입니다. 조용원은 2014년 12월 북한 매체에 처음 등장했고, 이후 김정은의 현지 시찰을 밀착 수행하는 모습이 자주 보도됐습니다. 워낙 갑자기 떠오른 인물이어서 우리 정부는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이가 50대이며, 조직지도부 말단 지도원에서 시작해 지난해 부부장으로 승진했다는 것 정도가 전부입니다.


 

10.  박태성 (숨겨진 비선 실세)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북한을 실제로 조종하는 실세가 따로 있다”며 3명을 뽑았는데 노동당 조직지도부 핵심 간부인 조연준, 조용원와 함께 박태성을 ‘비선 실세’로 지목했습니다. 박태성은 김정은이 2013년 12월 장성택을 숙청하기 직전 백두산 인근 삼지연(양강도)에 머물렀을 때 동행한 이른바 ‘삼지연 실세’ 그룹에 속한 인물입니다. 이후 평안남도 도당위원장에 올랐으며 지방에서 경험을 쌓은 후 조직지도부 등 권력 중심부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됩니다.

 

전장에서 병사들이 가는 저격수에 대한 공포는 총기 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 큰 위협이 되었으며 사정거리 1km 밖의 표적도 손쉽게 제거할 수 있으며 저격총의 유효사거리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격수 공포는 기술력이 발달하면서 더 큰 위협이 됐습니다.

 

미군은 2005년부터 주바(JUBA)로 불리는 정체불명의 이라크 저격수에게 140명이 넘는 병사를 잃었습니다. 이라크 바그다드 남부에서 주로 활동하는 주바는 단 한발의 사격으로 미군들의 목숨을 빼앗은 정확한 사격솜씨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이라크 저격수 주바로부터 뼈저린 교훈을 얻은 미군은 공포의 저격수를 잡아내기 위해 무기를 개발하였는데 그렇게 '부메랑 III'라는 탐지기가 탄생하였습니다. 이 탐지기는 적이 사격을 했을 때 발생하는 총구폭발음과 총탄이 초음속으로 비행할 때 발생하는 원추형 충격파 신호를 감지해 사격을 가한 저격수의 위치를 알아냅니다.

 

 

'부메랑 III'는 저격수가 총을 쏘면 1~2초 만에 음성과 문자로 적의 위치를 알려줍니다. 폭죽·바람 같은 소리는 무시하도록 프로그램이 되어 있어 오차가 거의 없습니다. 미국 래이언스 BBN 테크놀러지스사가 개발했으며 지상고정형과 차량탑재형이 있으며 탐지율은 무려 95% 정도입니다.

 

 

이에 영국은 QinetiQ사에서 SWATs이라는 저격수 탐지장비를 만들어서 전투부대에 이미 보급하였으며 중국은 360도 전방향 탐측과 고도각을 측정할 수 있는 저격수 탐지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저격수 탐지 시스템을 자인테크놀로지에서 지난 2014년 초에 개발을 완료하였습니다. 무게는 8kg로 아군이 저격수의 공격을 받으면 7개 마이크로폰이 감지한 충격파와 총성의 음파 도달 시간의 차이를 컴퓨터가 계산해 저격수의 방향과 거리를 통보합니다. 수십 나노(10억분의 1)초의 극히 짧은 시간을 계산하며 7개의 마이크로폰이 위치와 거리를 감지합니다.

 


컴퓨터상에 적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으로 거리오차의 경우 2~11%라고 하는데 2%는 평지이고 11%는 산지라고 합니다. 유효 탐지거리는 1034m라고 하여 왠만한 저격수가 총을 발사하면 거리와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저격수 탐지장비의 장점은 현재 가격대는 대당 1억원 정도로 미국의 부메랑(2억), 프랑스 필라(1억4천)에 비해 가격이 저렴합니다.

 

 

이 국내 개발한 자인테크놀로지의 신민철 대표는 '이번 장비를 응용한다면 북한군이 해안포를 발사하자마자 정확한 위치 파악이 가능해 ‘제2의 연평도 도발’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UFO와 군인들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일반인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지나고 UFO에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씩 공개되면서 미스터리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가장 화제가 되었던 사건은 60년 대 베트남전에서 미군과 UFO의 충돌이였습니다. 1968년 6월 15일 베트남 동하시의 해안 미군해군들이 해안가를 순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강렬한 빛을 발하는 비행물체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고 그즉시 미 해군 순찰함을 순식간에 침몰하였습니다.


당시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한 호주해군 군함의 켄 샌즈 함장은 베트남의 동하시 인근해상에서 동하시인근 해상에서 적군으로 의심되는 비행물체가 발견되었다고 지원요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원요청을 받은 켄 샌즈 함장 즉시 함대를 이끌고 현장으로 가보았는데 그곳 해상에는 미군의 순찰함이 떠있었고 해상 바로 위의 공중에는 두 개의 UFO가 휘황찬란한 빛을 내면서 떠있는 광경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미군 전투기 한 대가 출격을 하였고 미군 전투기는 미사일을 UFO에게 발사했는데 그 즉시 두 대의 UFO들은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후 미해군 순찰함이 갑자기 폭발해버렸고 바다속으로 침몰하는 하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바로 현장에서 있었던 켄 섄즈 함장은 미공군에게 공격 받은 UFO가 보복으로 미국 순찰함을 공격해서 침몰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2003년 미 공군을 퇴역한 예비역 대령 조지 파일러는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과 UFO간의 전투가 실제로 있었다고  또 한번 주장하였습니다. 조지 파일러는 베트남전 당시 1급비밀을 다루는 미군정보국 소속으로 근무하고 있었으며 베트남전에서 발생한 모든 정보들을 수집해서 총참모장인 조지 브라운장군에게 보고하는 업무를 담당했는데 해군순찰함이 괴비행물체에게 공격당해 침몰됐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그 사건을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그현장으로 출동했던 전투기조종사와 현장요원들의 증언을 들었는데 그 괴배행물체에게서 매우 이상한 점들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첫째 그당시 전투기가 출동했지만 레이더상에 그비행물체가 잡히지않았다고 합니다. 분명 조종사들의 눈에는 빛을 내면서 날아가는 괴비행물체들이 눈에 보였지만 레이더에는 전혀 잡히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둘째 그 괴비행물체 근처로 전투기가 가까이 다가가자 전투기의 모든 기기들이 오작동을 일으키는 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셋째 괴비행물체는 곧바로 사라져버렸는데 괴비행물체가 미군 전투기가 발사한 미사일을 맞고 추락한 것이 아니라 마치 순간이동처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 당시 현장조사를 담당했던 조지 파일러는 괴비행물체는 적군의 비행기가 아닌 미확인비행물체(UFO)라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베트남전 당시 UFO에 관한 보고는 이 뿐만이 아니라 수없이 많다고 합니다.

 


66년 6월 미군병사 4만명이 주둔하고 있는 군사기지가 있는 베트남의 나트랑해안가에서 밤 8시경 병사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북쪽 상공에서 두 개의 폭팔하는 듯한 섬광이 번쩍였고 그와 동시에 이륙하려던 두 대의 비행기와 불도저의 엔진이 모두 멈춰버렸다고 합니다. 또한 병사들이 막사앞에서 듣던 라디오들도 일제히 멈춰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한병사가 고향친구에게 보낸 편지 속 내용에는 ‘큰붚빛이 북쪽능선위 700미터 상공에 나타났고 그당시 4분동안 모든 기기들이 작동을 멈췄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또한 조지 파일러는 미군뿐만 아니라 소련군도 UFO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1965년 배트남 하노이시에 소련군이 도착했는데 그곳에 도착한 소련군 병사들의 상공에 하얀 불빛을 내는 괴비행물체가 다가왔다고 합니다. 소련군들은 그 비행물체가 적군의 전투기라고 판단하고 즉각 그 비행물체를 향해서 소총을 발사했는데 그 비행물체가 총을 발사하던 소련군들앞으로 접근해왔고 그 즉시 소련의 특수부대원 200명이 모두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CIA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실제 UFO 사진

 

그리고 최근 2017년 1월 18일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기밀이 해제된 1300만 쪽 분량의 문서를 공개했습니다. 이 기밀문서에는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의 심리실험과 미확인비행물체(UFO), 초능력 등 흥미로운 자료들이 공개되었는데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 냉전시대 전쟁 당시 해당기관들의 활동도 포함됐습니다. 이 기밀문서가 공개된 이유는 1995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25년 이상 지난 CIA 문건들은 보안을 해제하고 공개해 '역사적 가치'를 공유하라는 시행령을 발효했기 때문이였습니다.

 

▲추락한 UFO를 나르는 미군 헬기

 

이렇듯 베트남전에서 여러번에 걸쳐서 UFO들이 출몰했던 것은 사실로 보이며 그 UFO들이 미군이나 소련군과도 전투를 벌인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2차세계대전때에도 참전병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특히 공군기들이 공중에서 수많은 UFO들을 목격했다는 증언들이 속출했었습니다. 

 

 

외계인들이 지구상에서 수천만명을 희생시킨 2차세계대전의 참상을 목격한 후 또다시 대규모의 희생자를 발생시킬 수 있는 베트남전쟁의 참상을 막기위한 시도로 전쟁을 주도했던 미군과 소련군들에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 UFO군단을 출몰했킨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