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미국이 핵폭탄 개발에 성공하고 4년이나 지나서야 독자적인 핵폭탄 개발에 성공한 소련은 핵무기 보유고에서도 미국에 뒤졌지만 미국의 핵공격시 보복 핵무기를 적국으로 실어나를 수송수단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대륙간 폭격기 제작은 기존의 비행기술사양을 훨씬 능가하는 비행기를 만드는 고도로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그러한 폭격기의 설계 임무는 당시 뛰어난 항공기 설계자였던 안드레이 투폴레프에게 맡겨졌지만, 그는 임무수행을 단호하게 거절했고 이 때문에 스탈린을 직접 대면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결과적으로 최단 기간 내에 신형 폭격기를 설계하는 책임은 투폴레프의 제자인 블라디미르 먀시셰프(В. Мясищев)에게로 1951년 넘겨졌습니다. 신형 폭격기 제작 프로젝트를 위해 제23시험설계국이 다시 문을 열었고 먀시셰프가 수석 설계자로 임명됐습니다. 소련 정부 앞으로 낸 보고서에서 먀시셰프는 시속 900km, 항속거리 11,000~12,000km의 원거리 폭격기를 제작 계획을 밝혔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6개월 후 집중된 작업이 결과 먀시셰프의 설계를 재현한 미래의 폭격기 실물크기모형이 완성됐습니다. 최초의 시제기 제작은 하루 24시간 3교대 작업으로 진행되어 불과 몇 개월만에 이륙가능한 비행기가 완성됐습니다. 그리고 1953년 1월 20일 10분 간의 M-4 처녀비행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뒤를 이어 공장 시험 1단계에서 추가로 27회의 비행이 이어졌습니다. M-4 폭격기의 주력 무기는 2.9Mt급 수소폭탄 RDS-37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이 RDS-37은 한 도시 전체 또는 한 산업지역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었습니다.

 

 

M-4는 그 외에도 폭발력이 좀더 작은 핵폭탄 및 재래식 폭탄, 기뢰, 어뢰 및 유도미사일도 운반할 수 있었으며 23mm포 NR-23 9대 또는 23mm 포 AM-23 6대 등 강력한 방어무기도 갖추게되었습니다. 그렇게 M-4는 맞상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전략폭격기 B-52보다 몇 달 앞서 공군에 편성돼 운용이 시작되었고 전투 부대에 실전 배치된 세계 최초의 대륙간 핵무기 수송기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 M-4 폭격기는 미국에서 소련의 들소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신형 폭격기의 운용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조종시스템의 잦은 고장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상당히 오랫 동안 설계자들을 가장 괴롭힌 문제였습니다. M-4는 조종이 매우 까다로운 기계로 여겨졌으며 특히 이착륙시 조종간 제어에 엄청난 체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취약한 온도조절 시스템은 조종사들에게는 큰 고통을 안겨주었는데 높은 고도로 올라가면 조종실 내 온도가 영하로 떨어졌기 때문에 조종사들은 체온유지를 위해 모피옷을 입고 비행기를 조종해야 했습니다.

 


실전배치 후 찻 3년 간 수 많은 사고가 있었고 6건 이상이 재난급의 사고가 있었습니다. 급기야는 M-4의 주력기지가 있었던 엥겔스 시에서 사M-4 조종사들의 부인들이 활주로로 뛰쳐나와 비행을 중단시킨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습다. 게다가 M-4를 새로 개발된 세계 최강의 수소폭탄 차르봄바(Царь-бомба)투하를 냉전의 자식이라 불렸던 동시대 폭격기 Tu-95에게 뺏았겻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시험 과정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항속거리였습니다. M-4의 최대 항속거리는 약속된 수치의 절반인 9,500km에 불과했습니다. 그것은 미국 본토로 날아가 폭탄을 투하한 후 자대로 복귀할 연료가 부족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효과적인 수단은 단 하나, 공중재급유였습니다. M-4를 위한 특별 공중재급유 시스템 '코누스'는 사실상 또 다른 M-4를 공중급유기로 개조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M-4는 1957년 2월 8일 두 차례의 재급유를 받아며 17시간에 걸쳐 1만 4,500km를 비행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땐 이미 M-4를 성능에서 훨씬 능가하는 최신 폭격기 3M이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생산된 M-4 전량을 항공급유기로 개조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으며 최강의 폭격기를 꿈꿨던 M-4는 하늘을 나는 주유소가 되어 90년대 초까지 사용됐습니다. 그리고 결국 1997년 8월 M-4 전량 폐기되어 고철로 분해되며 쓸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초음속 전투기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다 보면 비행기의 노즐 뒤로 긴 불꽃을 내 뿜으며 비행하는 전투기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전투기가 초음속으로 비행하기 위해 애프터버너(After burner)를 작동시키는 것인데 보통 비행기의 제트엔진은 자체 가진 추진력으로 초음속을 돌파하기 어렵고 애프터버너를 통해 초음속을 돌파할 수 있습니다.

 

 

애프터버너는 터보제트엔진의 추진력을 향상시키는 장치로 한번 연소가 이루어진 제트엔진 고온의 배기가스에 제트 엔진의 터빈 뒤쪽에서 다시 연료를 분사하여 더 큰 추진력을 얻게 해주는데 애프터버너의 긴 파이프처럼 생긴 구조물은 실제로는 자세히 보면 표면에 작은 구멍들이 무수히 나있으며, 이곳에서 연료가 분사됩니다.

 

 

애프터버너는 이미 뜨거워진 배기가스에 연소를 분사하기 때문에 별도의 점화장치도 필요없습니다. 다만 연료와 배기가스가 잘 섞이도록 불꽃안정기란 구조물이 있는데 제트엔진 뒤에서 보면 동심원 모양으로 여러개의 고리가 보이는 그 구조물입니다. 이것이 와류를 만들어 배기가스를 일부러 흐트러트려서 연료와 잘 섞이게 해줍니다.

 

 

애프터버너를 사용하면 굉장히 큰 소음이 발생하는데, 대형 여객기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소형인 제트전투기가 이륙시에 더 시끄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큰 불꽃이 생기는데 여객기와 달리 전투기의 노즐에서만 이륙시 불꽃이 생기는 것도 이 애프터버너 때문이다. 이 불꽃에는 다이아몬드나 원판 모양의 무늬가 생기기도 하는데, 불꽃 내부에서 복잡한 충격파들이 생기다 보니 부분적으로 공기밀도와 온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애프터버너를 작동시키면 통상적으로 기존 엔진보다 1.5배의 추진력이 증가합니다. 하지만, 1차로 연소된 배기가스에 2차로 다시 연료를 분사하기 때문에 연료 소비가 2~3배 이상 증가합니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전투기는 계속 애프터버너를 사용하지 않고 급하게 이륙하거나, 적기를 향해 고속으로 비행해야 할 때, 그리고 초음속 이상의 속도로 비행해야 할 때 애프터버너를 사용합니다. 

 

 

또한 너무 자주 애프터버너를 사용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엔진 수명을 깎아 먹습니다. 최근에는 제트엔진의 고성능화 덕분에 애프터버너를 이용하지 않고도 초음속 이상의 속도를 얻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슈퍼크루징(Supercruising) 능력이라고 부릅니다.

 

 

미국의 최신예 전투기인  F-22 렙터에 장착된 F119 엔진의 경우, F100보다 22%나 강해진 추력 덕분에 애프터버너를 안 켜고 마하 1.72의 속도로 초음속 비행이 가능합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제트 엔진의 고성능화와 비행기 기체의 최첨단 설계로 가까운 미래에는 애프터버너 없이도 초음속이 가능한 비행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