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미 해병대는 전투공병대대(CEB-Combat Engineer Battalion)를 운용하고 있는데 전투공병대대의 임무는 근접전투에서 공병지원, 해병대의 기동로 지원, 진지 구축, 장애물 제거 등의 사단에서 요구하는 일반적인 공병임무를 지원합니다. 이런 전투공병대대는 미 해병대에 해병사단 소속으로 4개 대대가 편성되어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방작전 지역에 경로개척소대)

 

이 전투공병대대의 기본 편성은 본부/업무지원중대, 공병지원중대, 공병중대 4개가 편성되어 있으며 공병지원중대는 장비소대, 수송소대, 다용도소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 4개의 공병중대에서 3개의 전투공병중대와 1개의 기동강습중대로 나누어지는 기동강습중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새로 편성된 지뢰/IED 제거 전문부대로 경로개척소대와 전투공병차 소대로 나누어져 있으며 경로개척소대는 지뢰와 IED 제거 임무에서 병력을 보호하기 위해 MRAP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경로개척소대는 도로와 주변의 지뢰 및 IED를 수색.처리하기 위해 쿠거 MRAP와 폭발물 처리용 버팔로 MRAP 등 2종류의 MRAP를 운용하고 있으며 쿠거 MRAP에는 6명이 탑승하는 전투중량 17.2톤의 4x4 쿠거-와 12명이 탑승하는 전투중량 23.5톤의 6x6 쿠거-HE라는 2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M1 ABV소대가 포함되어 있는데 M1 ABV 소대는 가장 강력한 전투공병능력과 지뢰/IED제거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폭발물 제거와 통로개척 등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합니다.

 

 

M1 ABV 강습돌파전차는 걸프전을 통해 대지뢰전, 장갑방어력, 기동력에 한계를 느끼고 미 육군과 해병대에서 개발한 것입니다. 미 해병대는 미국 앨라베마주에 위치한 애니스톤 육군 제조창에서 M1 ABV 시제차량 5대를 제작하여 야전에서 운용실험을 실시하였는데 성능에 만족하였고 이후 2007년부터 본격적인 M1 ABV 생산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2012년 2월 16일 M1 ABV 강습돌파전차의 1차 생산분 52대가 생산을 완료하였습니다.

 

 

이 M1 ABV의 조달단가는 1대당 375만 달러(약 42억원) 수준이며 미 육군은 미 해병대의 M1 ABV 운용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여 187대의 M1 ABV를 기갑사단 중심으로 배치하였으며 2013년 8월 14일 주한미군 2사단은 포천에 위치한 영평사격장에서 M1 ABV의 통로개척임무 시현과 함께 언론에 처음 공개하였습니다.

 

 

M1 ABV의 개발시 주 임무는 적진 앞에서 신속한 장애물 제거와 지뢰지대 강행돌파능력, 해병 공지 합동 임무부대인 MAGTF(Marine Air-Ground Task Force)의 생존성과 기동성 향성이었고 개발 당시에는 IDE 대응능력은 들어가지 않았지만 대전차지뢰 제거능력덕분에 효과적인 IED제거 임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또한 1500마력의 출력을 자랑하는 AGT-1500 가스터빈 엔진을 탑재한 M1A1 주력전차 차체와 전투공병용 장비를 탑재한 포탑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차체 앞부분에는 유압구동식 대형 도저 블레이드를 장착하였고 차체 후부에 도저가 개척한 통로를 표시하는 LMS를 탑재하며 도저는 파손 등에 대비하여 예비용을 포함 기본적으로 2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장으로는 TWS(Thermal Weapon Sight)를 장착한 WPS(Weapon Platform Station)에 M2 12.7mm 중기관총을 탑재하며 내부에서도 사격이 가능합니다. 이 M2 중기관총은 자위용 무장과 지면에 노출된 푹발물 파괴에 사용됩니다. 이외에 포탑 좌우에 8연장 연막탄 발사기 2기와 IED 무선기폭 방해용 전파 방해장치, 원통형 방해용 안테나 등을 탑재하고 포탑 위 정면에 탑재된 회전식 복합 센서를 포함하여 6개 이상의 카메라와 레이저 등의 전자광학센서를 탑재하여 공병작업과 전장감시용 영상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M1 ABV 강습돌파전차는 미 해병대에서 지뢰지대 처리기 Mk.2라고 불리는 M353 트레일러 탑재형 지뢰처리장치(MICLIC)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지뢰처리장치는 유압식 조종장치를 가진 Mk.155 지뢰처리발사기, 7000개의 C4 폭약을 연결한 M58A4선형폭약, 적재된 선형폭약을 지뢰지대에 발사하는 Mk.22 로켓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M1 ABV가 탑재하는 LDCS(Linear Demolition Charge System)은 Mk.155를 베이스로 제작하였으며 장착/탈착이 가능한 모듈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포탑 후부에 모듈형 Mk.155 컨테이너 2기를 탑재합니다. 컨테이너에는 M58A4 선형폭약과 직경 127mm의 Mk.22 Mod 4 로켓을 탑재하며 발사기는 Mk.155와 같은 레일형 유압식 앙각 발사기를 사용하지만 만약을 위해 추가로 상부에 장갑 커버를 가지고 있으며 로켓의 재장전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집닌다.

 

 

컨테이너에 코일식으로 적재된 M58A4 선형폭약은 중량 2.3kg에 전장 15cm의 700개 C4 폭약이 나일론제 로프에 연결되어 있으며 로프의 길이는 107m, 후부에서 M1 ABV 강습돌파전차와 연결된 기폭용 신관이 있으며 선형폭약의 위력은 C4 폭약 총량인 794kg에 달하며 2000파운드급 항공폭탄과 거의 동급 수준의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Mk.22 Mod 4 로켓을 발사하면 로켓과 연결된 M58A4 선형폭약을 견인하느데 이 로켓의 사정거리는 90~162m로 코일 형식으로 적재된 선형폭약을 건인하여 지뢰나 IED가 매설된 목표지역의 지면으로 낙하하게 됩니다.

 

 

2009년부터 처음 실전투입에서 확약한 M1 ABV는 2010년 말부터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되어 미군에게 반드시 필요한 IED 제거무기가 되었으며 그 이후에도 2011년 블랙 샌드 작전(Operation Black Sand)과 이스턴 스톰 작전(Operation Eastern Storm)에서 큰 활약을 하였으며 지금 현재도 미군 전투부대 최선봉에서 완벽한 임무 수행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상륙 기계화보병사단 두개, 상륙장갑여단 1개, 육군 항공여단과 연대 11개, 공수부대 3개, 그리고 해병여단 두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해군은 전차상륙/상륙수송도크(LPD) 30척, 중형 상륙함 22척을 포함한 신형 선박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상륙 공기부양정 구입에 대해서 우크라이나와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런 중국의 상륙군 투자는 중국이 원정능력과 초수평선 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국의 목표는 연안 방어의 돌파 또는 포위, 상륙거점 마련과 건설, 대만 서부 해안의 북쪽 또는 남쪽의 지정된 상륙지점에 대한 인력과 물자 수송, 핵심표적 또는 섬 전체에 대한 포위와 점령을 위한 공격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중국은 지속적으로 함대 현대화와 합동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실행 능력과 상륙작전 수행능력을 계속 향상시키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바로 수륙양용장갑차량 ZBD-05와 양서돌격차 ZTD-05가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ZBD-2000라 부르는데 이는 수출명 모델명입니다. 중국의 해군육전대가 운영하던 77식 수륙양용장갑차와 63식 장갑차 , 86식 보병 전투차의 한계성으로 인하여 상륙작전의 한계 문제와 대만해협을 극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한계를 계속 지적받다가 결국 기존의 04식 보병전투차를 베이스로 하게 되어서 노리코에서 개발하게 된것입니다.

 

 

기본 베이스는 BMP-3를 바탕으로 하는 수륙양용장갑차이며 이 ZBD-05의 개발로 기존의 해군육전대가 운영하여 한계가 지적되던 63식 장갑차와 수륙양용전차 그리고 77식 수륙양용장갑차를 모두 대체하게 되는데 63식 장갑차를 베이스로 63식 수륙양용전차는 ZTD-05가 대체하게 됩니다. 이 중국의 상륙 장갑/전차는 대만해협도하를 목적으로 수상기동성을 살리고자 파도막이 엄청나게 길고 큽니다.

 

 

ZBD-05는 기본베이스였던 04식 보병전투차보다 좀더 대형화 되고 특히 차고가 높아졌으며 조종수와 포탑2명을 제외하고 하차전투원은 차체전방 2명+후방6명=8명이 탑승합니다. 또한 앞부분 파도막이 부분을, 파도를 헤치는 게 아니라 수면을 활주할 수 있게 개량하고, 워터젯을 거기 필요한 출력을 내도록 강화했습니다. 최고속력을 낼 때 물 위로 띄워야 하므로 장갑은 어느정도 포기하였습니다. 

 

 

하지만 기동성때문에 99식 전차용으로 개발되었던 1500hp급 디젤 엔진을 사용하고 있는데 정작 99식이 이 중국산 디젤엔진에 대한 성능불만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걸 생각하면 이 ZBD-05도 마찬가지의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중국 해군육전대는 기존의 04식보다 수상도하능력에서 기동성의 2배는 확보하였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ZTD-05는 ZBD-05를 지원함과 동시에 해군육전대의 직사화력등의 화력제공등을 위하여 개발되었습니다. 사실상의 경전차로 볼 수 있습니다. 해상도하중에서도 사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상륙작전에서 직접적인 기갑차량으로서의 역할 수행이 가능하며 기존의 63식 경전차보다 화력이 강력한 105mm 저반동포에 사격통제시스템도 개량했기 때문에 위협적입니다.

 

그리고 중국 해군육전대는 러시아 해군과 함께 최대 규모의 합동 상륙 훈련을 벌어는 등 중국의 상륙작전이 향상되고 있습니다. 현재 대만은 중국의 중요한 "전략적 방향"이며, 중국 지도부가 전략적 중요성을 부여한 지역중 하나입니다. 대만은 말그대로 중국의 태평양 접근을 막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해군육전대는 러시아 해군과 함께 최대 규모의 합동 상륙 훈련을 벌어는 등 중국의 상륙작전이 향상되고 있습니다. 이 중국의 상륙작전 능력향상은 대만에게만 재앙이 아니라, 일본은 센카구 그리고 우리 해안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되고있습니다.

 

교통기후환경연구소에서는 여름철(6~8월)에 발생한 교통사고 약 15만 건을 분석한 결과 여름철 폭염으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사고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바로 타이어 펑크사고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특히 기온이 30℃ 이상일 때, 그 이하일 때 보다 무려 42.8% 가량 더 발생하며 특히 교통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기는 바로 고속도로 이용이 많아지는 8월이라고 합니다. 이는 7월과 비교해보았을 때 약 29.4%p의 증가율을 보였다고 합니다.

 


타이어 펑크사고의 치사율은 일반 교통사고 대비 8.4배 높고, 중상자 발생률도 2.7배 높습니다. 교통안전공단이 고속주행 중 타이어 펑크의 위험성을 실험한 결과 주행 중 갑자기 펑크가 날 경우 운전자의 급격한 브레이크 조작에 의한 전복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름철 타이어 펑크의 가장 큰 이유는 기온이 30도일 때 노면은 70도 정도의 고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타이어로 전달되는 스탠딩 웨이브(Standing Wave)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탠딩 웨이브(Standing Wave)현상이란? 자동차 고속 주행 시, 타이어의 접지부에 열이 축적되면서 변형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스탠딩 웨이브가 발생할 경우, 진동과 같은 이상 징후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운전자가 이를 인지를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고속주행 중 타이어 펑크가 발생하면 당황하지 말고 조향핸들을 꽉 쥐어 직진방향을 유지하도록 하며, 비상등을 켠 뒤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채로 차량 속도가 어느 정도 줄어들면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키는 것이 대형사고를 피하는 방법입니다.

 

 

이런 타이어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월 1회 이상 점검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모한계 1.6㎜ 이하인 타이어와 균열된 타이어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여름철이나 고속도로 주행시에는 공기압을 10~15% 더 주입하는 것이 좋고 2시간 주행마다 10분씩 휴식함으로써 타이어 열을 식혀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장시간 주행이나 시속 160km이상으로 주행은 가급적 피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심리적 요인은 아니지만 졸음운전도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원인입니다. 여름철 운전 시에는 졸음 예방을 위해 에어컨의 온도를 20~23℃ 로 유지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 때 1시간에 10분 정도 창문을 내려 자동차 내부 공기를 환기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더운 여름, 에어컨 사용량이 많아짐에 따라 혹시 모를 방전에 대비해서 부스터 케이블도 준비하면 좋고, 타이어 손상시 대처할 휴대용 에어 컴프레션 이나 스페어 타이어를 준비해주시면 좋습니다. 모두 더운 여름철 안전운전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제72주년 광복절입니다. 광복(光(빛, 어둠을 물리치는 빛) 復(회복하다, 되돌리다)이라는 한자를 보면 빛을 회복한다는 뜻입니다. 일제강점기, 어둠 속에서 살아왔던 우리 민족이 1945년 8월 15일 빛을 다시 찾았다는 의미의 광복절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입니다.

 

 

8월 15일은 우리나라와 북한의 국경일 중 유일하게 겹치는 날인데, 북한은 광복절의 의미를 왜곡하여 ‘김일성 동지께서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치시며 찾아주신 조국해방의 날’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연 광복절의 의미와 수많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독립투사분들에 대한 모독입니다.

 

 

심지어 북한은 1963년 이전까지는 민족 해방 기념일이 되면 “소련군이 일제를 패망시키고 우리 민족을 해방시켜주었다”면서 소련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는데, 평양 모란봉 언덕에는 소련에 감사하는 의미를 담은 해방탑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독립을 위해 싸운 순국선열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아닌 북한의 김일성과 소련을 찬양하기 바빳던 북한은 1963년에는 자칭 ‘민족 해방 기념일’의 의미가 이전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소련을 찬양하기 바빳던 북한은 갑자기 “일제를 물리친 것은 소련군이 아니라 김일성이 이끈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새로운 왜곡된 주장을 내세웠으며 학교에서 다루는 역사 교과서의 내용도 ‘소련이 아닌 김일성의 항일 투쟁에 의하여 일제를 물리쳤다’는 내용으로 다시 억지로 왜곡된 교육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8월 15일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을 찾아 참배합니다. 그리고 북한 매체들은 매년 8월 15일 각계층 근로자들과 청소년 학생들이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꽃바구니와 꽃다발을 헌화했다는 소식과 사진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광복절에 여러가지 축제를 개최해 외국인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정말 다른 북한의 광복절 모습과 역사에 대해 잘못 세뇌당한 북한 주민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씁쓸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의 해군기지인 노포크 기지(Norfolk naval station)는 미 2함대 사령부가 있으며 미국이 보유 중인 12척의 항공 모함 가운데 5대가 이 곳을 모항으로 하고 있습니다. 11㎞나 걸쳐서 늘어서 있는 14곳의 부두에 신의 방패라 불리는 최첨단 이지스함을 비롯, 순양함, 구축함, 잠수함 등 미국 해군의 주력 함선 77척이 미 해군력의 위엄을 자랑하고 있는데 이 함정들만 보아도 규모가 어느정도 인지 알 수 있으며 부두의 직선거리만 6km가 넘어서 만약 걸어서 끝에서 끝까지 가면 1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합니다.

 

 

 

노포크 기지에는 14개의 선착장과 134대의 비행기를 수용할 수 있는 11개의 비행기 창고가 있으며 선착장에는 매년 3,100회 정도 함정들이 정박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군인 및 군무원은 8만여명으로 4만명은 기지 안에서 상주하고 있으며 포츠머스, 윌리엄스버그, 체사피그 등을 포함하는 햄프턴 로드 지역에는 100만여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해군기지는 아프리카 서부해안에서 남극, 북극, 지중해, 대서양 등을 통괄하는 대서양함대의 중추입니다. 그래서 미 2함대 사령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해군, 공군 최고 지휘관도 겸하고 있습니다.

 

 

이 곳은 사실 1968년 임무를 마치고 바다에 떨어진 유인우주선 아폴로 7호 우주인들을 해상에서 성공적으로 귀환시킨 일로도 널리며 240여년 전 해적 공격에서 상선 보호를 위해 군항이 만들어진 것이 기지의 기원입니다. 그러다 1917년 전략적 차원에서 초대규모 해군기지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웰스 포인트라 불리는 대서양을 향해 툭 튀어나온 작은 반도와 주위에 형성된 만(灣)에 걸쳐 조성돼 있으며 면적은 20㎢로 여의도 2.4배 넓이를 자랑합니다. 이곳에 또 하나 장점은 부두가 바다에서 움푹 들어가 있는 만 안에 건설돼 있어 적의 공격이나 해일, 폭풍 등에서 잘 보호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올해 7월 22일 노포크 기지에서 미국의 차세대 핵 추진 항공모함 ‘제럴드포드(CVN-78)’의 취역식이 열렸습니다. 이 항공모함은 제럴드 포드 전 미 대통령의 이름을 딴 항공모함은 신형 핵 발전 플랜트와 통합 전쟁 시스템, 이중 대역 레이더 등을 갖춘 ‘슈퍼 핵 항공모함’으로 불립니다.

 

 

미 해군의 11번째 핵 항모이자 가장 큰 규모의 제럴드포드호는 최신형 A1B 원자로 2기를 통해 동력을 20년간 무제한 공급받을 수 있고 함재기도 80대가량 탑재됩니다. 그리고 미 해군은 430억 달러(약 48조원)의 예산으로 차세대 제럴드포드급 항모 건조 계획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노포크 기지에 제럴드 포드 항공모함 취역식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힘은 세계 최강이며 현 행정부에서 매일 더 강해지고 커지고 있다. 미국 기업과 미국인의 손으로 전 세계를 향한 10만 톤짜리 메시지를 만들었다. 미국의 힘은 세계 최강이며, 현 정부에서 더욱 강해지고, 나아지고, 커지고 있다. 항공모함이 전진할 때면 미국이 오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우리의 동맹은 한숨을 돌리고 적은 두려움에 떨 것이다. 전투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공정한 싸움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승리를, ‘완전한 승리(total victory)’를 거둘 것이라 말하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습니다.

 

 

이에 언제나 미국을 따라가고 싶어하는 중국은 중국 남부 하이난 섬(해남도)에 있는 싼야(Sanya)에 있는 기지에 항공모함 두 척을 동시에 정박시킬 수 있는 도크(dock)를 건설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도크의 길이는 약 700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긴 도크이며, 도크 양쪽으로 항공모함이 정박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특히 유린(Yulin) 핵 잠수함 기지와 인접 지역에는 대규모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미 7함대 사령부가 있는 일본 요코스카 해군기지. 일본 해상자위대와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요코스카와 미국 버지니아의 노포크(Norfolk)의 항모기지의 도크의 길이는 400~430m를 고려하면 하이난 섬의 중국 도크는 대단히 긴 도크입니다. 물론 지금 중국이 항공모함을 건조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런 긴 도크가 필요한지 의문입니다.

 

미츠비시(Mitsubishi) A6M 제로(Zero)는 일본제국 해군 전투기로 미츠비시중공업에서 생산한 장거리 전투기입니다. 이 A6M의 제식명은 해군 0식 함상전투기로 파일럿들은 보통 제로 전투기라는 뜻의 레이센(Rei-sen)이라 불렀으며 대외적으로 유명한 명칭은 제로센 / 제로 파이터 입니다. 최초 시험생산한 A6M2 제로기 15대가 1940년 7월 실전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리고 9월 13일 13대의 A6M2 제로기가 중국 공군의 소련제 폴리카포프 I-15s, I-16s 27대와 최초로 공중전을 벌였는데 한대의 손실도 없이 27대 모두를 격추시켰으며 1941년 9월까지 99대의 중국 전투기를 격추시켰습니다.

 

▲1941년 진주만 공격을 위한 출격직전 항모에서 사케를 마시는 일본군 파일럿들

 

이후 1941년 태평양 전선에는 521대의 제로기가 배치되었으며 328대는 최일선에 배치되었습니다. 이때 연합군 항공기들과 공중전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는데 A6M 제로기는 2,600km에 이르는 엄청난 항소거리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연합군 사령관들은 실제보다 더 많은 전투기를 상대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으며 일본의 진주만 공격 후 A6M 제로기는 연합군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되었습니다.

 

 

A6M 제로기는 추축군의 모든 전투기를 뛰어 넘는 탁월한 기동성과 강력한 화력으로 1941년 태평양 전선에 파견된 연합군의 전투기로는 상대가 불가능하였으며 미 항공대 장군은 A6M 제로기가 영국 전투기보다 빠르지는 않지만 선회(out-turn)능력이 좋으며 가파른 각도로 상승이 가능했으며 연합군 전투기보다 3배나 오래 공중에 머물러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태치 위브(Thach Weave)전술에 따라 F4F 와일드캣의 정면 공격으로 격추되는 A6M 제로기

 

이에 연합군 파일럿들은 일본 A6M 제로기에 대처하는 전술을 개발하기 시작하였는데 공중전에서 탁월한 민첩성을 가진 A6M 제로기의 꼬리잡기 전술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도에서 빠른 속도로 강하해 순식간에 기총소사를 가하고 탈출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술은 존 s. 태치 중위가 개발한 태치 위브(Thach Weave)전술이었는데 미 해군 함재기 F4F 와일드캣의 기동력으로는 A6M 제로기를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두대의 전투기가 60m 간격으로 나란히 날다가 A6M 제로기가 한대의 꼬리에 붙으면 나머지 한대가 제로기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해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전술은 미드웨이해전과 솔로몬군도 전투에서 A6M 제로기를 상대로 큰 효과를 발휘하였습니다.

 

 

그리고 1942년 중반이 되자 미 해군이 신형 기체와 새로운 전수을 개발하면서  A6M 제로기와 대등하게 공중전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1943년 미치비시사에서 보다 강력한 엔진을 개발하려 했으나 실패하였고 취약점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미 해군의 함재기들이 A6M 제로기와 버금가는 기동성을 갖추게 되면서 파워와 무장, 장갑과 속도까지 앞서자  A6M 제로기의 공중전 우위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미국의 F6F 헬캣과 일본의 A6M 제로기

 

F6F 헬캣F4U 콜세어가 전선에 본격적으로 투입되는 1943년 후반이 되면, 제로센은 본격적으로 날아다니는 표적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와일드캣 후계기로 일선 항모의 주력 함재기가 된 F6F 헬캣과의 교환비는 무려 13:1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자랑하던 A6M 제로기는 레이테 만 해전에서 격추비만 30 : 239로 미국 F6F 헬캣의 좋은 먹이감이 되었으며 이 사건을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A6M 제로기는 최초의 카미카제 격침을 기록하였지만 그 덕에 지금까지도 자살공격기의 대명사로 남게됩니다.

 

▲미 항공모함을 향해 돌진하는 일본 카미카제 공격기

 

1944년에 A6M 제로는 완전히 구형화(outdated)되었지만 일본이 A6M 제로기를 대신할 기체를 개발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종전까지 최일선에서 계속 사용할 수 밖에 없었으며 태평양 전쟁 마지막 해인 1945년에도 일본은 A6M 제로기를 가장 많이 생산하였고 다른 기종과 함께 카미카제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제공, 제해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태평양의 섬이 하나 하나 미군에게 넘어가며 일본 본토에 미국의 폭격기인 B-29가 들이닥치자 A6M 제로기는 B-29 폭격기를 잡기위해 출격했으나 B-29 폭격기의 고도가 너무 높아서 폭격기 하나 잡지도 못하였고 B-29 폭격기보다 더 느렸습니다.

 

 

그렇게 마지막의 모습은 초라했지만 A6M 제로기는 처음 등장했을때 이 전투기는 훌륭한 기동성과 최장 항속거리를 가진 최고 성능의 함재기로 평가받았으며 일본 해군은 이 A6M 제로 전투기를 지상 기지에서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전초 12:1이라는 놀라운 격치비(Kill ratio)를 기록하면서 도그 파이터(Dog Fighter)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돌풍이라는 별칭을 가진 토네이도(TORNADO)는 여러 유럽국가에서 뛰어난 성능의 다목적 전투기를 얻기위해 실시한 MRCA(Multi-Role Combat Aircraft)프로젝트에서 최종적으로 남게 된 영국, 서독, 이탈리아가 공동으로 파나비아 항공회사를 설립하고 개발한 다목적 전투기입니다.

 


토네이도는 1974년 8월에 시제기가 비행에 성공하였으며 1976년 6월 영국, 서독, 이탈리아는 800여대의 토네이도 전투기를 생산하기로 결정하였고 1979년부터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1984년에 처음 배치된후 1999년까지 992대가 생산되었습니다. 토네이도 전투기는 임무에 따라 대지공격형인 IDS(InterDictor Strike), 요격기인 ADV(Air Defence Variant), 전자전 및 정찰형인 ECR(Electronic Combat Reconnaissance), 그리고 지상공격 및 정찰인 GR(Ground attack / Reconnaissance)로 분류됩니다. 영국의 GR 버전과 기타 국가의 IDS는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동일한 모델입니다.

 

 

냉전시절 구 소련과 바르샤바조약기구 군대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력한 방공망을 자랑했었는데 토네이도 전투기는 이 구 소련과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기갑전력과 비행장을 공격하기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토네이도 IDS 전투기는 적의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 지형지물을 따라 저공으로 침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기체는 가변익 방식을 적용하였는데 가변익은 비행중에 후퇴각이나 날개면적, 붙임각 등을 움직이는게 가능한 설계로 저고도에서도 안정되고  고속 장거리 비행에 적합한 형태를 갖게 되었으며 목표를 정확하게 공격할 수 있는 정밀항법체계와 자동 지형추적장치 등을 장착했습니다. 또한 기체의 생존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단 1회의 목표지역 통과로 다수의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는 자탄 살포기를 개발해 운용했습니다. MW-1 자탄 살포기를 장착한 독일 공군의 토네이도 전투기는 목표상공을 200피트(ft)(약 60m) 고도로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하면서, 좌우양쪽으로 200여 발의 소형 폭탄을 살포해 폭 185m, 길이 500m의 넓은 지역을 단번에 초토화 시킬 수 있었습니다.

 


1990년 걸프전이 발발하자 영국과 이탈리아 공군 소속의 토네이도 전투기가 다국적 군의 일원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으로 배치되었습니다. 영국 공군은 토네이도 60여대를 파견했으며, 이탈리아 공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10대의 토네이도를 국외 파병하였습니다. 사막의 폭풍작전이 시작되자, 영국공군의 토네이도 전투기는 특유의 저공비행능력을 살려 이라크 군의 공군기지 폭격에 집중적으로 투입되었습니다.

 


사막의 폭풍작전이 시작된 1991년 1월 17일 영국 공군의 토네이도 전투기가 이라크 군의 SA-16 이글라(Igla) 휴대용 대공 미사일에 격추된 것을 시작으로 이후 5대의 토네이도 전투기가 격추되었습니다. 이 중에는 JP233 자탄 살포기를 사용하다 격추된 토네이도 전투기도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공군의 토네이도 전투기 1대도 이라크 군의 방공망에 격추되면서 토네이도 전투기의 손실이 늘어나자 저고도 폭격은 중지되었고, 20,000피트 이상의 고도에서 폭격하는 것으로 전술을 변경하게 됩니다.

 

이후 영국 공군의 토네이도 전투기들은 고공에서 레이저 유도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토네이도 전투기에는 레이저 조사기가 없었기 때문에, 영국 공군은 퇴역시키려고 했던 버캐니어(Buccaneer) 공격기를 긴급히 파견하여, 레이저 유도기로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걸프전 기간 동안 토네이도 전투기는 약 10:1의 비율로 격추되었으며, 걸프전에 참가한 다국적 군 전투기 가운데 가장 높은 손실률을 기록하게 됩니다.

 


걸프전 이후 스마트 폭탄이 항공전의 핵심 무장으로 떠오르면서, 3개국에서 운용중인 토네이도 전투기들은 스마트 폭탄을 운용할 수 있도록 점차적으로 개량되었습니다. 이렇게 개량된 토네이도 전투기들은 걸프전 이후 벌어진 각종 전쟁에서 눈부신 전과를 기록하게 됩니다. 특히 영국 공군의 토네이도 GR.4 전투기는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에서 미국 이외의 국가로는 최초로, 실전에서 공중 발사 순항 미사일인 스톰 쉐도우(Storm Shadow)를 발사해 목표물을 성공적으로 파괴하였으며

 

 

2011년 대 리비아 공습작전에서는 12발의 브림스톤(Brimstone) 공대지 미사일을 탑재한 영국 공군의 토네이도 GR.4 전투기 1대가, 미사일을 연속 발사하여 카다피 군의 전차와 장갑차 10여대를 파괴하였습니다. 토네이도 전투기는 개발에 참가한 3개국 외에 유일하게 사우디아라비아 공군이 도입하여 운용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토네이도는 독일이 공/해군 합계 약 320대로 가장 많은 수를 보유하고있고, 영국공군 약 230대, 이탈리아 공군 약 100대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 공군의 토네이도 전투기 중 절반 이상이 정상적인 비행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으며 영국, 독일, 이탈리아 3국의 국방예산 감축에 따라 2020년 이후부터 점차 퇴역할 예정입니다.


여담으로 2007년 당시 람보르기니 레벤톤이 제작된지 얼마 안된날 성능을 테스트 하기위해 이탈리아에 위치한 브레시아 비행장에서 토네이도와 속도전을 벌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결과는 레벤톤의 아쉬운 패였지만, 레벤톤의 성능을 입증하기엔 충분하였고 2007년 가장 아름다운 차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전투기를 가지고 공중전을 펼치는 상황에서 Dead 6(죽음의 6시), 즉 나의 전투기 꼬리방향 6시 방향에 적기가 들러 붙었다면 거의 죽었다고 봐야합니다. 하지만 많은 영화들을 보면 주인공 전투기가 적기의 수많은 미사일을 회피하고 오히려 적기의 뒤쪽으로가 상대방을 격추시키는 장면을 많이 보셨을겁니다. 과연 그게 실제로도 가능할까요?

 

 

적의 미사일이 발사되었는지 확인이 되었다면 가장 먼저 외부연료통과 폭탄들을 다 버립니다. 그리고 조종사가 취할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ECM(레이더 교란장치)를 켜는 것이고 또 하는 회피기동을 하는 것입니다. 미사일을 피하는 대표적인 회피기동 두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빔 기동과 코브라 기동입니다. 만약 자신의 전투기가 Dead 6 상황에 빠졌다면 이 두가지 기동을 통해 상황을 200%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빔이란 전투기의 3시 방향과 9시 방향을 말하는데, 빔 기동은 적 미사일이 내 전투기의 3시나 9시 방향에 오도록 방향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빔 기동은 두 가지 효과가 있는데, 하나는 미사일이 계속 선회하도록 만들어서 미사일의 속도를 최대한 깎아 놓는것입니다. 미사일 입장에서는 방어측 전투기가 좌에서 우로,혹은 우에서 좌로 횡단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대부분의 대공미사일은 적기의 현재위치로 날아가는것이 아니라 적기의 예상위치로 날아가는 ‘비례항법방식’을 사용합니다.

 

 

그렇기에 미사일은 좌우로 가로질러 비행하는 적기를 쫓기 위해 더 빠른 원을 그리며 계속 적기의 예상 위치로 향하려 합니다. 물론 전투기 입장에서는 마찬가지로 계속 적 미사일이 자신의 옆구리 방향을 향하도록 해야 하므로 결과적으로 전투기는 큰 원을 그리며 선회하게 됩니다. 먼 거리에 있는 미사일을 상대로는 현란한 급기동을 해봤자 수십km 떨어져있는 미사일입장에서는 각도변화가 크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코브라 기동을 실시하면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적기가 자신을 지나치게 하는 상황, 즉 오버슛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즉 적기를 자신의 앞으로 오게 만들 수 있으며 상황이 역전돼 적기를 뒤에서 쫓는 형상이 됩니다. 한마디로 수평진행 중 진행방향과 고도를 바꾸지 않고 날개각을 올렸다가 수평자세로 되돌아가는 기동을 합니다. 이 코브라 기동은 가장 유명한 기동이며 전 세계적으로 에어쇼에서 펼쳐진 기동중 가장 드라마틱하고 힘든 것 중 하나입니다.

 

 

수호이의 테스트 파일럿 빅토르 푸가초프가 1989년 파리 르 부르제 에어쇼에서 수호이 Su-37기를 이용해 처음 선보인 뒤로 푸가초프의 코브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위 그림은 Su-37기를 판매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당연히 그림으로 보면 쉽게 가능해 보이지만 실제상황은 어렵습니다.

 

 

뿐만아니라 이 코브라 기동을 사용할 경우 미사일 회피가 아닌 공격 찬스를 2배 더 잡을 수 있으며 승률이 3배정도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F-35같은 최신예 전투기들은 아무리 가속력이 낮아도 이런 고받음각 기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작되고 있습니다. 실전에서는 미사일 회피보다는 공격적인 기동으로 더 많이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두가지 기동을 했다고 미사일을 모두 피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회피기동은 미사일에 격추될 확률을 10번에서 8번으로 줄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미사일에 격추될 확률을 더 낮추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이런 회피기동과 함께 교란탄인 채프(Chaff)와 플레어(Flare)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채프란 레이더에 크게 반사되는 알루미늄 조각들입니다. 채프는 유리섬유에 알루미늄등을 입한 것을 통안에 넣어뒀다가 필요하면 공중에 뿌려버리는 방식이며 플레어는 적외선 유도 미사일의 한계를 이용한 장비로 전투기에서 플레어가 투하되면 마그네슘과 나트륨 등이 혼합된 화합물질이 고온의 열을 내면서 타들어갑니다. 이 플레어 사출로 다수의 미사일이 한 번에 교란될 수 있으며 최신형 공대공 미사일의 경우 모두 사출해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적이 먼저 나를 탐지하고 선제공격을 했다는건 나보다 우월하다고 봐야합니다. 더 뛰어난 무기를 가졌거나 전장상황을 더 잘 인식한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공중전에서 그런 우월한 적을 상대로 유리하지 않으면 무조건 후퇴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로 피할곳도 숨을곳도 없는 현대의 해전과 공중전에선 변수가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소말리아 아덴만은 세계적인 해상교통로 요충지입니다. 하지만 사회체제가 붕괴한 소말리아의 상황으로 인해서 바다에는 해적이 들끓게 되었고, 이러한 소말리아의 해적질은 단순히 범죄를 넘어 해적 비즈니스로 불릴 정도로 국제적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이에 UN은 2008년 10월 7일 안보리에서 결의안 1838을 채택, 소말리아 해적들을 저지할 군사력을 요청하였습니다.


아덴만은 우리나라한테도 해상물류의 29%가 지나갈 정도로 중요한 곳으로, 해적에 의해 한국인들이 연이어 납치되자 대한민국 정부는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인 DDH-976 문무대왕함을 파견을 시작으로 청해부대를 결성하였습니다. 청해부대는 항구적 자유 작전 - 아프리카의 뿔을 위해 창설된 CTF-151 연합해군 함대에 배속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4~5개월 단위로 동급 함정을 교체투입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정예인 해군특수전전단(UDT/SEAL)의 대테러특임대 요원들이 탑승하고 있습니다.  

 

 

이 소말리아 해역호송전대는 옵스코어 헬멧에 HK416, MARS도트사이트 등 국군에서도 비교적 좋은 장비로 무장했으며 해군 작전용으로 최적의 헬리콥터중 하나인 링스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적극적 지원도 있고 부대원들의 긍지 또한 대단한데, 헬기에서의 저격이란 자체가 어려운데도 실전에서도 대단한 실력을 보이는 등 해적감시를 위한 연합부대에서도 대한민국 해군의 위상이 높습니다.

 

 

2011년 1월 21일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 아덴만 여명 작전에 돌입해 해적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 한국인 8명을 포함한 선원 21명 전원을 무사히 구출하는 데 성공한 아덴만 여명 작전은 대대적으로 보도된 큰 사건이지만, 평소에는 국적에 관계없이 상선 호위를 맡습니다. 물론 자국, 즉 대한민국 국적 상선 혹은 외국 국적 한국인 승선상선이 우선 보호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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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사실상 해상무역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국가이면서도 그동안은 해상무역로 보호에 무관심했었습니다. 대한민국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 상황 때문에 모든 지원이 육군에만 쏠리면서 대한민국 해군은 오랜 세월 북의 간첩선/고속정의 기습침투를 저지하는 연안해군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G20 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그 위치에 걸맞는 공헌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소말리아 해역호송전대의 역할과 위상은 더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상선만 보호하는 것도 손이 부족한 상황으로 추후 해군력 증강이 이루어진다면 부대 규모가 늘어날 가능성도 대단히 높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문제점을 이야기하자면 대한민국의 특성상 소말리아 해역호송전대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운용중인 무기체계에 대해선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과 주변국으로부터의 해양 군사위협보다는 상대적으로 위협의 우선순위가 적을 수밖에 없는 원양 상선단 호위에, 그렇지 않아도 주변국보다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주력 함대에서 군함을 차출함으로써 해군력의 공백을 야기하는 문제가 결코 간과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고작해야 소총, 박격포, RPG-7 정도로 무장한 해적을 상대하는데 대함미사일, 장거리 함대공미사일로 중무장한 최신형 군함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닌 것입니다. 제 생각에도 가능하다면 함포에 헬기의 탑재, 운용능력 정도만을 갖춘 경무장 다목적함이 해당 임무를 수행하는 편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에리히 하르트만은 제2차 세계대전 독일 공군으로써 엄청난 활약을 한 인류 역사상 최고의 격추왕입니다. 그 공식 격추 기록은 무려 352기로 격추 전과 300기를 넘긴 사람이 에리히 하르트만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 단 두 사람이고, 바르크호른이 301기라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에이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투입된 전투기 제로센, 나카지마가 정확히 352대였는데 이 352기를 혼자서 전부 다 격추했다고 생각하면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에리히 하르트만은 자신의 전투기를 검은색 계통으로 도색하였으며, 기수에 검은 튤립이라 불리게 되는 독특한 도색을 하였는데 이를보고 소련이 붙인 별명이 바로 검은 악마입니다. 에리히 하르트만의 전투기 이 도색만 보면 소련 공군 전투기들은 도망가기 바빴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에리히 하르트만은 다른 도색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하르트만의 대부분 격추 기록이 나치 독일이 소련에게 제공권에서 밀리기 시작할 때에 오히려 전성기를 누렸다는 점입니다.

 

에리히 하르트만은 1940년 3월 15일 독일 공군에 입대하여  1942년 동부전선의 JG52에 배속된 후 첫 공중전을 겪었는데 지금은 최고의 격추왕이라 불리지만 그는 첫 공중전에서 엄청난 바보짓을 저질렀습니다. 상대적으로 손쉬운 표적이었던 IL-2 슈트르모빅을 절호의 기습 기회를 잡아놓고 빗맞춰버렸으며 적기가 나타났다는 말에 그 적기를 피하려고 허둥지둥 구름 속으로 도망가다가 편대에서 낙오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어디인지도 모르는 하늘에서 헤매고 있다가 연료가 다 떨어지면서 불시착한 뒤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육군의 차를 얻어타고 복귀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엄청난 노력한 덕에 1944년 3월 2일, 하르트만의 격추기록은 202기를 기록, 200기를 돌파했습니다. 6월 24일에는 266기를 기록하여 백엽검 기사철십자장을 수상했으며, 8월 24일에는 하루에 10기를 격추시켜 전인미답의 201기까지 스코어를 올리게 됩니다. 이 공로로 하르트만은 대망의 다이아몬드검 백엽기사철십자장을 수여받았으며 소련의 스탈린은 그에게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300기 격추 기록을 달성하고 돌아오는 하르트만을 반기는 동료들


그리고 1945년 3월 10대1의 열세 속에서도 다시 격추행진을 재개, 4월 17일에는 250기를 돌파했으며, 독일이 항복한 5월 8일에 Yak-11을 1기 격추시킴으로써 총 352기로 그의 격추행진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총 출격횟수는 1,400회, 공중전 횟수는 약800회였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JG52 사령관헤르만 그라프와 함께 미군에 항복하지만 소련미국의 밀약에 의해 소련군에 신병이 인도되어 10년 동안 시베리아에서 유형생활을 하게 됩니다.


소련은 종전즈음에 '대전내내 동부전선에서 싸운 독일군 병사와 부대들은 설령 미군에 항복해도 자기네 포로'라는 협상을 한 상태였습니다.
이 때문에 동부전선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전쟁영웅들 중 초급간부들, 특히 공군의 에이스들 상당수가 소련에 인도, 고초를 치렀는데 에리히 하르트만도 전쟁포로로 상당히 고초를 치렀다고 합니다.

 

 

소련군들이 하르트만을 공산주의로 돌리려고 하거나 여러가지로 소련에 협력하라고 설득하려했지만 에리히 하르트만은 전혀 말을 듣지를 않고 독일을 위해 싸운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식의 발언을 해서 독방에도 자주 가고, 단식투쟁도 하고, 제대로 된 인간 대접은 못받았다고 합니다. 결국엔 전범 누명을 뒤집어쓰고 전쟁포로캠프에 10년하고도 6개월간 잡혀있었다가 1955년에 풀려나 서독에 돌아가 아내 우르슐라와 재회할 수 있었습니다.

 

 

복역을 마치고 1955년 고향으로 돌아온 뒤 신생 서독공군에 지원했하여 복무하였지만 1970년F-104의 채용에 반대했다가 대령으로 강제 퇴역당했습니다. 이후 F-104는 과부제조기로 악명을 떨쳤던걸 생각하면 에리히 하르트만의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역후 비행교관으로 근무했고,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 1993년뇌종양으로 사망했습니다.

 

 

에리히 하르트만은 전술은 지극히 단순해서, 동료의 엄호를 받으며 기습적으로 접근해서 사격하고 튀는(Boom and Zoom) 전술의 대가였으며 오로지 이 전법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적당한 위치에서 철저하게 기습한 후 빠르게 도망가는 전술 하나만으로 세계1위의 에이스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전쟁 기간 전체를 통틀어 동료 전투기를 한번도 잃지 않았는데 에리히 하르트만은 352대의 격추 기록보다도 전투기를 한번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자신의 진정한 자랑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