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베트남전 상황이 점점 진흙탕으로 변해가자 미국도 동맹국으로 병력을 지원받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였습니다. 그리고 1964년 5월 존슨 미국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파병을 정식 요청하였고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처음에 맹호부대만 보내려고 했는데 해병대 측이 참전 의사를 강하게 표명한 데다가 채명신 파월 사령관까지 해병대도 전투 경험을 갖게 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하여 상부에 건의하면서 해병대 청룡부대까지 파병하였습니다.  

1966년 9월 3일. 서울 중앙청 앞 광장에 도열한 백마부대

이후 미국 험프리 부통령이 서울로 급하게 날아와 박정희 대통령에게 월남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1개 사단을 추가로 증파해 달라고 요청을 하면서 맹호부대, 청룡부대에 이어 육군 9사단 백마부대의 베트남전 참전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1966년 9월 3일 백마부대 출정식에서 고등학생, 연예인, 종교인 등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장병들의 목에 꽃다발을 걸어주며 무운장구를 빌었습니다. 시내는 발딛을 틈 없이 인파로 가득했으며 시민들의 응원이 이어졌습니다.

"군인 아저씨, 이기고 돌아오세요."

 "공산군에게 대한남아의 기백을 보여주시오."

"무운을 빕니다. 다치지 말고 돌아오세요."

-월남전과 한국, 백마부대 참전자 수기 -

 

그렇게 백마부대는 1966년 9월 16일 부산 3부두에서 출발하였고 1966년 9월 22일 베트남 나트랑에 상륙하였습니다.  이후 백마부대는 1967년 1월 29일 혼바산에서 벌인 백마 1호작전을 비롯하여 1967년 7월 9일 투이호아에서 벌인 홍길동 작전을 비롯하여 박쥐작전, 도깨비 작전 등

 

 

1973년 3월 11일 철수할때까지 211,714회(대부대 전투 478회, 소부대 전투 211,236회)에 걸쳐 끝없는 전투를 치루며 엄청난 전과를 올리면서 천하무적 백마부대라는 전설을 남겼습니다. 특히 1967년 3월 8일부터 5월 31일까지 2개월간에 걸쳐 맹호부대와 함께 군단급으로 실시한 오작교 작전이 유명합니다. 

 

 

당시 1번국도가 핵심 교통로였기 때문에 반드시 베트콩을 소탕 평정하여 도로를 개통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특히 백마부대가 1966년 9월에 배치되면서 맹호부대와 백마부대간의 상호 연계와 지역 안정화를 위해서 판랑와 퀴논간 사이 약 400km구간 1번국도의 개통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남베트남이나 미국으로서도 1번국도의 개통은 남베트남의 물류수송등이나 군사작전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군들도 1번국도를 개통하기 위해 작전을 펼쳤지만 맹렬한 베트콩들의 반격으로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미군들은 자신들도 못한일을 한국군이 작전을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3월 8일 백마부대 28연대가 베트콩이 취약한 후방지역에서 소탕작전을 시작하였고 3월 15일 맹호부대는 5개 대대의 병력을 연대마다 차출하여 송꺼우 남단 3km에서부터 대규모 소탕작전을 진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3월 17일 백마부대는 1번 국도로 계속 북진하면서 투이호아와 밀접한 1번국도 외곽의 서쪽과 북쪽에서 북진의 기반과 맹호부대와 연계를 위한 소탕작전을 시행하였습니다.

 

 

그런데 4월 10일 백마부대 28연대 3대대 11중대가 작전을 마치고 복귀하여 기지에서 쉬고 있었는데 베트콩들이 침투하여 내무반(생활관)에 소련제 방망이 슈류탄이 투척되면서 아군 12명이 전사하고 22명이 부상을 입는 큰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실탄 통행금지

이에 화가 난 맹호부대와 백마부대는 빠른 작전수행을 보이며 연결작전에 들어갔고 맹호부대는 608명 사살 272명 생포의 전과를 올렸으며 백마부대는 265명 사살 145명 생포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총 873명 사살하였으며 아군은 35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후 맹호부대 선봉인 26연대 3대대 11중대가 M113 6대를 앞세워서 남진을 백마부대 선봉인 28연대 2대대 7중대가 북진을 시작으로 투이호아 18km 북쪽의 1번 국도 지점의 호아다 마을에서 만나는 작전을 시작하였고 5월 31일까지 소탕작전을 펼치면서 당시 작전 지역내 베트콩들은 모두 소탕되면서 오작교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오작교 작전 성공으로 남베트남 중부 해안 도로가 완전히 개통되었고 야간에도 민간버스들과 트럭들이 활발하게 움직일수 있는 기반이 확보되었으며 한국군은 1번 국도를 중심으로 북쪽 봉선~판랑까지 총 6800㎢의 작전면적으로 작전활동이 확대되었습니다. 이 작전은 당시 남베트남 정부의 물류수송-경제-통치영향력을 강화하는 결정적 작용을 했기 때문에 당시 북베트남과 베트콩들에게는 매우 큰 타격이 된 작전이었습니다.

 

 

당시 이 작전에 대해서 미국은 물론 많은 해외 언론들이 한국군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미군사령관 웨스트 모얼랜드는 "나의 군대 생활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한국군의 오작교 작전이며 전략적인 방침과 장병들의 완전 무결한 전술적인 행동으로 상상할 수 없는 베트남전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라고 공식 석상에서 여러차례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현재도 베트남 닌호아에서 1번도로를 타고 투이호아 방향으로 가다보면 조그만 언덕이 있습니다. 그 언덕은 예전 백마부대 비행장 옆입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조그만 길로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면 통신용 송신탑이 세워져 있고 창살너머로 백마 전적비가 아직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Comment +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한 뒤 격분한 팔레스타인의 정당이자 무장 테러단체인 하마스와 이스라엘 군이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계속해서 충돌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이스라엘군이 하마스가 이스라엘 영토내로 뚫어놓은 수백 미터의 지하 터널을 발견해 파괴하면서 하마스는 터널 파괴에 대한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말한 뒤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하였고 이에 이스라엘 군은 보복으로 공중 폭격을 가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계속해서 이스라엘 군은 전차를 이용해 하마스 군기지를 향해 포격하는 등 끊임없이 전투가 벌어지면서 양측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루살렘을 두고 싸우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대표 무기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하마스 대표무기

□ 불새-2

하마스 대전차 무기중 하나인 불새-2는 이스라엘 군에게 위협적인 무기입니다. 거치대와 조준장치가 무겁고 성능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옛 동유럽 국가들과 북한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에서 운용되고 있습니다. 정교한 밀수 로드를 통해서 하마스에 대량 밀수출된것이 확인되었고 이란에서도 하마스에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하마스의 알카삼 여단과 알나세르 여단에서 불새-2 미사일을 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 까삼

하마스가 애용하는 로켓무기 까삼(Qassam)입니다. 제조 과정이 간단하고 가격이 저렴합니다.(까삼 1개 제작비용은 80만원 정도) 뉴스에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로켓 또는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고 나오면 90%이상 이 까삼을 사용한 것입니다. 까삼로켓의 추진체는 주로 설탕, 질산칼륨 등을 섞어서 만들며 위력도 나름 준수한 편이라 사거리는 5km(까삼3은 10km) 정도이며 30cm 콘크리트 정도는 간단히 파괴합니다.


□ 파즈르-5

현재 하마스가 보유한 무기 중 사정거리가 가장 긴 로켓 파즈르-5입니다. 이란에서 들여온 이란제 파지르-5는 사거리는 75km에 로켓 발사중량 1.5톤, 탄두 무게는 175kg에 이르는, 사실상 정규군 수준의 무기입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감시를 피해 이 로켓을 이란에서 수단으로 운송하고 거기서 분해한 뒤 시나이의 땅굴을 통해 가자지구로 옮겨 조립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 테크니컬 차량

민수용 차량에 중화기를 설치한 트럭으로 AK-47, 알라의 요술봉과 함께 테러리스트 3종 세트 중 하나로 불립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트럭을 다연장로켓 발사기로 개조하였습니다. 하마스는 이 차량을 평범한 트럭으로 가장해 사격위치까지 기동한 후 로켓을 발사합니다. 로켓은 99% 까삼 로켓을 사용합니다. 


 

  이스라엘 대표무기

□ 메르카바

메르카바는 이스라엘군이 운용하는 주력 전차입니다. 이 전차는 RPG나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갖고 싸우는 하마스를 상대로 승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력을 극도로 높이면서 기형적으로 진화하다 보니 정규전에선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보니 무겁기로 유명한 M1A2 에이브람스 전차보다 2톤이 더 무겁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개량되면서 꽤 강력한 전차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나메르

나메르는 메르카바 Mk4 전차의 차체를 개조해서 만든 중장갑차로 M2 중기관총이나 Mk.19 고속유탄기관총, FN MAG 7.62mm 기관총, 60mm 박격포를 원격조종해서 공격할 수 있으며 12명까지 탑승이 가능합니다.

 

 

이스라엘 군이 시가전에서 마주치는 하마스는 대전차 로켓, 대전차미사일, 박격포, 다연장로켓, 급조폭발물 등의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나메르는 다른 국가의 3세대 전차보다도 뛰어난 방어력을 자랑합니다. 한마디로 나메르는 시가전에서 게릴라 상대로 싸우는 데 최적화된 중장갑차입니다.


 

□ F-16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에서 가장 막강한 공군력을 가진 나라로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상당히 앞서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F-16은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개량하여 아직까지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이 하마스에 공중 폭격했다고 하면 대부분 F-16D/I이나 F-15I입니다.


□ 아이언돔

아이언돔은 이스라엘 군이 개발한 대공 미사일로 전투기나 미사일을 요격하기보다는 주로 하마스가 사용하는 까삼 로켓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주장에 따르면 14년 7월 벌어진 이스라엘 하마스 전투 중 아이언 돔이 보인 명중률은 90%에 달합니다. 문제는 80만원짜리 하마스의 까삼 로켓을 막기위해 수천만원에 달하는 아이언 돔을 사용하는게 큰 부담이기 때문에 미국이 예산지원까지 해주고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Comment +0

 

JRF-2(Joint Task Force-2)는 1993년 100여 명의 지원자로 창설된 캐나다군의 특수부대로 이들의 활동은 캐나다 정부에 의해 매우 비밀스럽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캐나다 정부는 처음에 JTF-2의 존재조차 부정했었습니다. JTF-2라는 부대가 있다는게 알려진게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이었습니다.

 

 

40여명의 JTF-2 대원이 아프간 남부에 전개되어 탈레반 요인을 체포한 후에 미군에게 인도하는 사진이 찍혀 파병 한참 뒤인 몇 달 후에 알려졌습니다. 재밌는 건 캐나다 총리조차 JTF-2부대가 아프간에 파병 간 사실을 사진을 통해 알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JTF-2가 다국적 특수전 Task Force에 소속되어 항구적 자유작전중 탈레반 요인을 체포/사살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JTF-2는 그동안 아프간과 이라크 등지에서 미군 특수부대와 다수의 합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왔으며 아프간내에서 외국 특수전 부대로는 유일하게 미군의 Tier 1 부대들과 합동작전을 펼친 부대입니다. 그리고 미군 특수부대들과 고위급들은 JTF-2의 능력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프간 파병은 JTF-2라는 부대가 알려진 계기가 되었을 뿐 파병 자체는 1995년에 보스니아전에서 UN 평화유지군을 공격하는 세르비아 저격수들을 찾아 소탕하기 위한 2인 1조 팀들을 다수 파병하였습니다. 특히 캐나다 저격조는 전 세계에서 불과 몇 명만이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최고의 기술로 훈련돼 있습니다. 그만큼 캐나다는 뛰어난 저격수들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2017년에는 JTF-2 소속의 한 저격수가 이라크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도중 IS 대원을 3,450m 밖에서 사살하여 8년만에 저격 세계 신기록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저격에는 맥밀란 TAC-50 저격소총이 사용되었으며 총알이 목표에 맞기까지 10초를 비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이전 영국군 저격수가 세운 기록과 비교해 거의 1km나 늘어난 것으로 앞으로 10년 동안은 깨지기 힘들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로 세계 저격수 기록 TOP5 중 3명이 JTF-2 소속)

 

 

JTF-2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년을 정규군(Regular Force)에서 복무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원 자격이 갖춰지면 첫 평가로 푸쉬업 풀업 밴치프래스 싯업 달리기 등 체력을 평가하는데 총점수제로 적어도 70%를 받아야 합니다.

 

 

만약 모든 평가를 통과하면 온타리오주에 있는 Dwyer Hill Training Centre에서의 7개월 가량 특수전 훈련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이 훈련 프로그램은 델타포스의 훈련 프로그램을 본떠 총 4단계로 나눈 것으로 매우 가혹한 강도를 자랑합니다. 높은 수준의 육체적 능력, 지구력, 정신력을 요구합니다.

 

 

현재 캐나다 미디어가 JTF-2에 대해 알아낸 또 다른 사실은 JTF-2는 200명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간 2억여달러의 예산을 쓰고 타격대 중에서도 공격전문 어썰터Assaulter가 되면 6단위 숫자의 봉급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방수상의 해외순방이나 정부고위층의 해외 위험지구 방문 때도 이들을 보호하고 캐나다 시민들이 해외에서 납치됐을 때도 출동한다고 합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Comment +0

 

1951년 휴전 협상이 진행되면서 공산군과 UN군의 대규모 공세는 멈추었습니다. 그 당시 양측 모두 상대를 궤멸시키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전선을 유지한 채 휴전을 하기로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선을 유지한다고 해서 양측의 교전이 멈춘 것은 아니였으며 조금이라도 중요한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고지쟁탈전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국전쟁 막바지에 펼쳐진 가장 치열했던 3대 고지전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9사단 백마부대

  주인이 12번 바뀐 백마고지전투

1952년 10월에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395고지)를 확보하고 있던 국군 9사단이 중공군 내 정예 부대라 불렸던 중공군 38군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열흘 동안이나 이를 막아내며 고지를 사수한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국군 9사단은 중공군 38군 소속 3개 사단의 연속적인 공격을 받아 이를 물리치는 동안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나, 국군 1포병단의 화력지원과 유엔 공군의 항공근접지원하에 끈질기게 저항하던 중공군 1만여 명을 격멸하고 백마고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포격으로 민둥산이 된 백마고지

백마고지 전투는 10일 동안의 전투기간 동안에만 고지의 주인이 무려 12번이나 바뀔 정도로 치열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과 미군은 21만 9954발, 중공군은 5만 5000발, 총 27만 4954발의 포탄을 쏟아부었습니다. 6.25 전쟁 중 단일 최다 포탄소비 전투이며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1사단 전진부대

  국군 36vs 중공군 800 베티고지전투

베티고지전투는 중공군의 최후 공세인 7·13공세 당시 중공군 1군단 예하 1사단이 임진강 서안 고양대 부근의 국군1사단 11연대의 전초 베티고지를 공격하자 김만술 소위를 비롯한 소대 병력이 이틀간 백병전을 펼친 끝에 대대 규모의 중공군을 격파한 방어전투입니다. 서부전선의 요충지였던 베티고지는 그 지리적 위치 및 정치적 중요성으로 인해 국군과 중공군 간에 이를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치열했습니다.

 

▲김만술 대위(당시 계급은 소위)

김만술 소위의 소대가 베티고지에 투입되었을 당시에 3개의 봉우리중 중앙과 동쪽은 제 1 보병사단이 사수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서봉은 중공군에게 빼았긴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사실상 1개 소대로 그 수많은 중공군을 공격하는것은 자살행위에 가까웠으나 김만술 소위는 도박을 걸어보기로 합니다. 바로 기습공격을 감행한 것이었습니다. 항상 공격에 급급했던 중공군은 예측하지 못한 공격에 당황하였고 김만술 소대는 8부 능선을 돌파하여 서봉을 탈환했습니다.

 

 

서봉을 탈환 후에 김만술 대위는 바로 소대원들에게 방어선 구축을 명령하고 19시 30분 중공군은 서봉 재탈환을 위하여 2개 중대로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중공군 중대는 야포와 박격포의 지원을 받았으나 김만술 소위는 상부에 포격지원을 요청하였으나 그마저도 포격으로 인해 통신두절이 되어버렸습니다.

 

 

소총과 수류탄으로 대항하던 김만술 대위의 소대는 중공군 2개 중대가 공격해오자 백병전을 통해 방어에 성공하였습니다. 2개 중대가 박살나자 화난 중공군은 2개 대대를 투입하였는데 대략 800명정도 되는 인원이었습니다. 김만술 소위는 소대원들에게 참호에 들어갈것을 명령하였고

상부에는 진지에 계속해서 포격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김만술 소대는 소총과 수류탄이 모자라자 철모와 야전삽 , 개머리판 손에 닥치는데로 무기가 되는것을 집어서 중공군을 사살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전투는 19시 30분에 시작되어 13시간 동안 새벽 동이 틀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공군의 대규모 공격을 4차례 막아내고 승리하였습니다. 비록 소대원 36명중 24명이 전사하였지만 중공군 피해는 전사 314명, 부상 450명, 포로 3명으로 엄청났습니다.


 제7사단 칠성부대

  휴전선을 35km 북상시킨 425고지 전투

화천 425고지 고지전은 정전협정을 불과 일주일여 앞두고 벌어진 마지막 전투입니다. 425고지는 강원도 화천군 북방 철책선 1.2km 앞 비무장지대(DMZ)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당시 우리나라의 주요 전력 공급원인 화천댐에 이르는 요충지였습니다. 중공군 135사단은 전략고지인 425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특유의 인해전술을 펼치는 등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이에 국군 7사단 8연대 1대대 1중대장이었던 김한준 대위는 60밀리미터 박격포를 이용해 1개 중대 병력으로 중공군 1개 대대를 섬멸하였으며 196명 중대원들은 굳건한 의지와 단결로 사흘간에 걸친 최후의 격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로 국군은 화천댐을 사수하고 휴전선을 38선으로부터 35km나 북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Comment +0

 

인천상륙작전은 6.25 전쟁의 판도를 뒤엎고 대한민국을 구해낸 작전이자 세계의 유명 작전 중에서도 손꼽히는 작전입니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인천상륙작전이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인천상륙작전 만큼 기억되길 바라는 제2차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951년 1월 4일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을 등에 업고 수도 서울을 탈환한 국군과 UN군이 한국-중국령 만주 국경을 향해 북진하던 중 중국에서 내려오는 중공군의 대공세로 인해 국군과 UN군은 서울을 다시 내주고 북위 37도선인 평택-삼척선까지 밀렸습니다.

 

 

중공군의 예상못한 한국전쟁 참전은 눈앞에 다가웠던 통일의 꿈을 한순간에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북한군은 지뢰 등을 매설해 다시는 인천과 인천 바다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미 제8군 사령관 리지웨이는 다시 인천을 탈환할 수 있는 소규모의 작전을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그 작전은 상륙작전이 아닌 월미도 포격이었습니다. 월미도를 포격하여 북한군이 인천상륙작전을 다시 떠올리고 병력을 인천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UN군이 다시 서울을 탈환하는데 수월할 것이며 인천까지 다시 탈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2월 3일 백두산함은 북한군이 장악하고 있는 인천항 안으로 돌입하여 월미도 전방 1000m 지점에서 북한군의 포대와 초소에 포격을 했습니다. (참고로 백두산함은 해군 장교 부인들이 바자회를 운영하고 장교는 월급의 10%, 병조장은 7%, 하사관과 수병은 5%씩 모으고 국민까지 모금운동하여 모인 돈으로 구입한 대한민국 해군 유일의 군함이었습니다.) 미국과 영국 순양함, 구축함 등도 백두산함과 함께 북한군 진지를 포격했습니다.

 

▲제2차 인천상륙작전 상황도

그런데 포격으로 살펴보니 인천항에 주둔하고 있던 북한군의 포대의 위치와 화력 규모가 그렇게 강력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었고 작전은 상륙작전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2월 10일을 D-DAY로 정하고 제2차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작전을 하달받는 수병들 모습

하지만 2월 10일 D-DAY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아군 함대가 포격을 가하여 탄막을 만드는 동안 100여 명의 우리나라 해병대가 상륙하여 교두보를 확보해야 했는데 해병대가 기상악화로 인천 외항에 도착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같은 소식을 접한 백두산함의 노명호 함장과 김종기 소령은 만조시간을 놓치면 안 된다고 판단하여 인천 외항에 집결한 각 함정의 수병들 중에서 지원자를 모집해 총 70명의 특공대로 구성된 상륙 부대를 긴급 편성하였습니다.

 

제2차 인천상륙작전, <1951년 2월 10일 18:00시>

그리고 오후5시 미국과 영국의 함정의 함포사격으로 제2차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었습니다. 1시간 뒤 함정승조원으로 편성된 특공대 70명은 만석동 해안으로 상륙을 감행하였습니다. 당시 특공대를 지휘한 김종기 소령은 지난 인천상륙작전 당시 해병대 제2대대를 이끌었기에 만석동 해안 지리에 익숙했습니다.

 

제2차 인천상륙작전의 주역들. 왼쪽부터 노명호 소령, 스미스 제독, 통역관 최병해 대위, 김종기 소령, 최영섭 소위.

육상 전투 훈련도 받지 않았지만 틍공대 임무에 지원한 해군 수병들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던 오후 7시 뒤늦게 도착한 100명의 해병대까지 만석동 해안에 상륙하였고 전의를 상실한 북한군은 방어를 포기하고 시 외곽으로 도주하였고 오후9시에 목표했던 기상대 고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위 사진은 제1차 인천상륙작전 기상대 고지 점령모습

그것으로 제2차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 해군과 해병대는 소규모 상륙부대로 작전을 수행하여 인천과 서울을 재탈환하고 38도선 진격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 대한민국 해군은 제2차 인천상륙작전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용사들의 전공을 현양하기 위해 지난해 1월부터 전승비 건립계획을 추진하였고 2017년 11월 15일에 제2차 인천상륙작전을 기리는 전승비 제막식이 인천 중구 월미공원 맥아더길 입구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Comment +0

 

미 해병대에서는 현재까지 카를로스 헤스콕(Carlos Norman Hathcock)을 최고이자 전설적인 저격수로 부르고 있습니다. 헤스콕은 One Shot, One Kill이라는 말을 만든 인물입니다. 베트남 전쟁중 그의 공식 사살전과는 93명으로 미국 기준 제4위이나, 당시 미국 사살판정기준이 별도의 장교가 사살을 직접 확인해야지만 인정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실제 사살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아, 총 전과는 300명을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베트콩들은 헤스콕을 하얀 깃털(white feather)이라고 부르며 두려워 했으며 헤스콕을 잡기위해 개인으로서는 최고금액인 3만달러의 현상금을 걸기까지 했습니다. 헤스콕은 베트남전에서 많은 활약을 펼쳤지만 지금도 전설적인 인물로 불리는 이유는 불가능한 임무를 해냈기 때문입니다. 일명 '자살 임무'

 

(왼쪽M21 SWS를 들고 있는 헤스콕)

당시 제대가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 헤스콕은 위험천만한 단독 작전에 자원하였습니다. 그런 임무에 나서면 목숨을 잃기 마련이지만 헤스콕은 동료들이 죽는게 싫어서 혼자 나섰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이 해야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작전 장소는 적진 속으로 수킬로미터 들어간 곳이었으며 임무는 본부에 있는 북베트남 육군 장군을 사살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임무에 성공한다고 해도 지원군이 없었기 때문에 자살 임무로 불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헤스콕이 기적으로 북베트남 장군을 사살하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복귀까지 할 수 있는 확률은 1%도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저하지 않고 헤스콕은 적진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북베트남 육군 장군의 본부까지는 1.8킬로의 평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헤스콕은 적진에 도착하자마자 지도와 정찰 사진으로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그의 계획은 1.2km를 기어간 다음 저격을 감행할 계획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목표지점까지는 640m거리였습니다. 그리고 단 한 발로 북베트남 육군 장군을 사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위치를 발각당하지 않는다면 그는 얕은 협곡을 따라 도망칠 생각이었습니다.

 

 

헤스콕은 계획을 세운 뒤 목숨을 걸고 적진을 향해 포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적군들이 살피지 않는 곳을 찾아서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9미터 떨어진 곳에서 헤스콕이 두려워하던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적군 순찰병이 가까운 곳까지 온것입니다. 그때 순찰병에게 발각당한다면 헤스콕은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하지만 순찰병이 끌고온 순찰견들까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지나갔습니다.

 

 

이후 헤스콕은 사흘간 안 먹고 안 자고 계속 포복한 끝에 사격 위치에 도착하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남았었는데 목표의 신분을 파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헤스콕은 리더들은 손가락 질을 좋아하고 손가락 질하며 말한다는 특징을 생각하고 금방 목표를 알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헤스콕은 단 한 발로 북베트남 육군 장군을 사살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람의 방향을 고려해 목표의 가슴 왼쪽을 겨냥했습니다. 만약 빗나가거나 상처만 입힌다면 작전은 실패였습니다. 헤스콕은 기술적인 호흡으로 심박수를 떨어뜨렸습니다. 심장이 안 뛰는 순간에 총을 쏴야 정확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해스콕은 총을 쐈습니다. 음속의 두 배로 날아간 총알은 총성이 들리기도 전에 북베트남 육군 장군 가슴에 박혔습니다.

 

 

이제 헤스콕에게 도망가는 일만 남았었습니다. 그런데 사격 위치 주변 왼쪽, 오른쪽에는 기관총이 각각 2대씩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베트남 육군 장군이 총에 맞아 쓰러지자 베트콩들은 모두 반대편으로 가는 동시에 기관총을 쏘았습니다. 그 이유는 헤스콕 반대편에는 나무가 있었고 헤스콕이 있는 위치는 평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헤스콕은 완벽하게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였습니다.

 

 

헤스콕이 나흘 동안 들키지 않은 것도 대단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640m 거리에서 쏜 한 발이었습니다. 헤스콕은 베트남전에서 물위를 달리는 고속보트 위에서 대략 700m거리밖의 베트콩을 저격하기도 하였으며 헤스콕은 M2 중기관총으로 세계 최장거리 저격기록(약 2,300m)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이 기록은 35년이나 흘러서야 겨우 깨졌습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Comment +0

 

현대 전쟁의 승패는 제공권 장악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반도 경우 유사시 휴전선 인근에 배치된 북한군 전투기가 서울과 수도권을 공격할 수 있어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전투기가 전쟁에 날카로운 검이라면 방공포는 단단한 방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방공포 부대는 1955년 5월 12일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1고사포병여단으로 창설되었습니다.

 

▲1991년 7월 1일 수원기지에서 방공포병 전군식

이후 1964년 호크 유도탄 부대와 나이키 유도탄 부대가 창설되었으며 1972년 12월 1일 육군 방공포병사령부로 승격하였습니다. 그리고 41년 뒤인 1991년 7월 1일 육군 소속이었던 방공포병사령부가 공군으로 전군(轉軍)되었다가 주요 무기체계가 포에서 지대공유도탄으로 바뀌면서 2013년 6월부터 공군 방공유도탄사령부로 개칭되었습니다.

 

 

예하 부대는 북한의 실제 미사일이나 탄도탄이 발사되는것을 24시간감시레이더를 통해 감시하는 탄도탄감시대와 공군 유도탄 사격대회를 지원하는 사격지원대, 대구에 위치해 후방을 담당하는 제1방공유도탄여단, 천안에 위치하여 서해안부터 강원도 동해안까지 담당하는 제2방공유도탄여단, 서울 금천구에 위치해 최전방을 담당하는 제3방공유탄여단이 있습니다.

 

 

공군 방공유도탄사령부는 최근 계속되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때문에 이스라엘의 탄도탄 감시레이더 슈퍼 그린파인 레이더(EL/M-2080 Green Pine radar)를 도입하여 운용하고 있습니다. 이 레이더는 500KM의 탐지 거리를 가지며 3000m/s로 움직이는 목표를 30개 추적 가능하며 2017년 4월말 2대 추가 도입을 결정한 상태입니다. 

▲패트리어트 PAC-2

 

그리고 방공작전 중 초 고고도 및 고고도(15㎞ 이상)에서는 주로 우수한 지대공 미사일 패트리어트 PAC-2을 사용합니다. PAC-2는 탄두중량이 무려 90kg대이며, 일반 공대공 미사일의 20kg짜리 탄두와는 비교도 안되는 살상반경을 갖고 있습니다. 후기형인 PAC-3 성능은 탄도탄격추 성능에서는 세계 정상급이라서 우리나라도 2018년부터 전력화 될 것으로 예상되며 주한미군은 이미 PAC-3 64기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천궁

저공으로 침입해 오는 북한군 AN-2같은 수송기는 호크나 천궁으로 격추합니다. 현재 호크 미사일을 많이 운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개발한 더 뛰어난 성능의 천궁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북한군의 MiG-17, MiG-19 전투기 정도는 손쉽게 격추시킬 수 있습니다. 현제 서북도서에도 배치되어 중국 공군까지 견제하고 있습니다.

 

▲신궁

사거리 5㎞ 이내에서는 스팅어, 미스트랄(Mistral), 신궁 등의 휴대용 대공 미사일이을 사용합니다. 우리나라는 미스트랄 지대공 미사일의 최대 보유국이지만 미스트랄보다 6kg정도 가벼운 무게를 가지고 95% 이상의 명중률을 자랑하는 국산 무기 신궁으로 대체하고 있는 중입니다.

 

▲K-30 비호

마지막으로 사거리 3㎞ 이내의 근거리에서는 단거리 자주대공포 발칸, 오리콘(Oerlikon), K-30 비호 등의 대공포를 사용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K-30 비호는 30mm 기관포 2문과 수색레이더 및 대공 센서를 장비하여 최대 탐지거리가 17km, 유효 사거리는 3km이며 대당 가격은 45억 원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방공포 장병들은 육지에 발을 디디고 서서 하늘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가장 높은 산들에 위치해 있다 보니 평상시에 이들이 겪어야 하는 최대의 적은 계절에 따른 눈과 외로움입니다. 하지만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방공포 장병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대한민국 가장 높은 지상에서 그보다 높은 하늘을 주시하며 우리나라 영공을 지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하늘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 공군 방공유도탄사령부가 있어 든든합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Comment +0

 

일본은 군대가 아닌 자위대가 존재합니다. 물론 일본 자위대 전력은 웬만한 나라의 군사력보다 강력합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자위대는 정식 군대가 아닌 준군사조직이기 때문에 특수부대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일본 입장에서도 전범국이다 보니 특수부대를 만드는 것도 상당히 눈치가 보이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실 일본은 1958년 창설된 제1공정단이라는 특수부대가 존재합니다. 참고로 일본은 공수부대를 공정부대라고 부릅니다. 이 부대원은 1,900명 정도이며 2000년대 전까지 일본 유일의 특수부대였습니다. 그리고 2012년 호주에서 개최된 국제사격대회에 참가해 15나라 가운데 14위를 차지하면서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국제사격대회에 사격실력이 뛰어난 대원들을 선발한 뒤 5개월간 집중 훈련을 받고 대회에 내보낼 정도로 철저한 준비를 한고 합니다. 현재는 당연히 높은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2017년에도 근접 소총 사격(10m~25m) 부문과 450m 저격, 저격 부문 종합 1위를 차지하고 저격 부문 종합에서는 1,2위 모두 차지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특전사는 6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렇게 국제대회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이거나 자위대에서 가장 뛰어난 대원들은 베일에 쌓여있는 특수부대인 '특수작전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특수작전군은 편성, 장비, 훈련을 모두 델타 포스(티어1에 속하는 미 육군 특수부대)의 지도를 받고 있어 일본판 델타 포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유일하게 복면을 쓰지 않는 아라야 다케시

특수작전군은 위에 소개한 제1공정단 간부 출신이자 육자대 최초로 미군 그린베레 코스를 통과한 아라야 다케시를 중심으로 2004년에 창설되었으며 제1공정단 병력을 1998년에 델타 포스에게 교육받게 끔 미국으로 보낸 것이 시초입니다.

 

 

그리고 이 부대원 모두는 우리나라 707특임대처럼 훈련이나 작전 시에 얼굴을 가리는데 소수정예인 부대 특성상 테러범이나 적국 공작원들의 표적이 될 수 있으며 얼굴이 밝혀질 경우 가족에게도 협박이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행사 때 정복을 입고 나올 때도 얼굴을 가리고 명찰을 달지 않습니다.

 

 

부대 자체도 그냥 존재만 알려져 있고 방위성이 공개하는 장비 조달 문건에 이들이 쓰는 것으로 추측되는 장비들이 기록될 뿐 대외에는 무엇을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훈련하는지 사진은 커녕 아무런 정보도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방어 임무에 있어서는 우리나라 707특임대와 같이 특출날 것이 없지만 만약 이들이 전시에 공격 임무를 맡게 될 경우 대상은 다름아닌 북한입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에 개입하게 된다면 유사시 일본으로 날아올 수 있는 미사일 시설에 침투하여 파괴하는 임무를 수행할 수도 있습니다. 

 

 

이 부대에 대해 몇년 전부터 베일을 조금씩 벗고 정보를 공개하고 있는데 떠도는 소문으로는 이들을 보고 온 기자는 '한국의 특전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으며 오히려 뛰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 네티즌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었지만 그냥 헛소문인듯 합니다.

 

▲당시 추락한 나이트 스토커 소속 헬기 모습

조금 놀라운 건 특수작전군이 미 육군 특수부대 그린베레와 정기적으로 합동훈련을 벌이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2015년 8월 12일  미군의 특수전 강습 부대인 나이트 스토커 소속 헬기가 오키나와 인근 해상에서 추락해 탑승자 17명 중 그린베레 4명과 특수작전군 대원 2명이 부상 당하였는데 이런 사실을 미군 기지의 오키나와 이전에 반대했던 일본 정치인이 폭로했습니다. 

 

 

그리고 특수작전군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비싸고 실용적이지 못한 자국산 일제 장비보다 실전에서 검증 받은 외국산 무기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일반 자위대원과 같이 89식 소총과 9mm권총을 사용한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M4A1 또는 HK416 소총과 USP 권총을 사용하며 이 외에 MP5SD6, M4A1 SOPMOD block 1, M24 등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외에 일본판 재블린인 01식 대전차미사일과 91식 지대공 미사일 등 대전차/지대공 미사일도 운용하고 있으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개발 중에 있는 고기동차량인 고마츠 LAV도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우리나라 특전사보다 장비는 더 잘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러나 특수작전군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실전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이라는 국가적 특수성 때문에 해외 경험이 전무한 건 둘째 치고 국내 사례도 단 하나도 없습니다. 

 

 

가볍게 비교하자면 우리나라 특전사도 크고 작은 실전을 겪어 보았고, UDT/SEAL 같은 경우는 단 한 명도 다치지 않고 해적들을 모두 제압한 실전 사례가 있습니다. 아무리 일본이 특수부대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고 하나 대한민국 특수부대는 세계 최정상급으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Comment +0

 

북한 공군은 병력만 11만명이며 전투기 820여 대, 정찰기 30여 대, 공중기동기 330여 대, 헬리콥터 300여 대, 훈련기 170여 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공군과 단순히 전투기 숫자로 비교하면 두배 이상의 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 공군은 현재 4개 비행사단, 2개 전술수송여단, 2개 공군저격여단, 방공부대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평양~원산 이남 기지에 전투임무 기종의 약 40%를 전진 배치해 기습공격이 가능한 능력과 태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공군과 붙는다면 레이더와 전자장비 무장의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에 상대도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공군은 주력 전투기 KF-16이나 F-15K에 대한 업그레이드가 실행/계획하고 있고 F-35A를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에 북한 공군이 제공권을 장악할수 있는 확률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은 공군 병력과 전투기 숫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북한의 공군전력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전투기

  MiG-15 300대 이상 보유

MiG-15 전투기는 현재 전투기로서의 가치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군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폭용으로 개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MiG-15의 무서운 점은 바로 생산단가입니다. 북한은 이미 MiG-15 전투기 숫자가 수백대 단위로 보유하고 있기때문에 MiG-15 전투기를 자폭용으로 사용한다면 그 피해를 완전히 막기는 어렵습니다.


 

  MiG-17 100여 대 보유

MiG-17 전투기는 1952년 소련에서 생산되었으며 MiG-15의 개량형이기 때문에 겉으로도 큰 차이는 없습니다. MiG-17는 6.25 전쟁에서 활약한 전투기로 MiG-15와 함께 북한 공군의 보조전력으로 분류됩니다. 


  MiG-19 90여 대 보유

MiG-19 전투기는 1955년 소련에서 생상한 초음속 전투기로 북한 이웅평 대위가 몰고 귀순한 전투기로도 유명합니다. 현재 황해도 곡산비행장에 많이 배치되어있어 고속(최대속도 마하 1.45)으로 남하하면 5분안에 서울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노후화가 심각하고 부품 공급에 큰 어려움이 있어 비행훈련 도중 추락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MiG-21 150여 대 보유

MiG-21 전투기는 중국이 우호관계를 위해 북한에 지원해준 것들로 최신형은 아니고 비교적 구형인 MiG-21PF, MiG-21bis, 그리고 중국제 J-7, 복좌 훈련기인 MiG-21U 등 총 190여 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보유한 MiG-21의 대부분이 J-7이라고 오해하지만 J-7은 40대 정도입니다.


 

  MiG-23 56 대 보유

MiG-21 전투기는 1980년대 중반 북한은 MiG-21를 소련으로부터 도입하였습니다. 가변익을 채용한 것이 특징이며 하방 탐색과 공격이 가능합니다. 시계 외 교전 능력이 탁월하며 순간 최대 마하2의 속도로 비행할 수 있습니다. 연평도 포격 당시 출동해 우리나라 공군의 F-15K, KF-16와 대치했었는데 RWR(레이더 전파를 수신하여 자신이 탐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비)를 장착하고 있었는지 F-15K가 레이더를 조사하자 도망갔습니다.


  MiG-29 40여 대 보유

소련이 미국의 F-16/18의 대항마로 개발한 전투기로 지금 현재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전투기 중 유일한 4세대 전투기입니다. 그러나 F-15K에 비해 항공전자장비가 크게 떨어지는데다 일단 체급이 많이 차이나기 때문에 F-15K의 위협은 되지 못합니다.


 

 공격기

  A-5 40여 대 보유

중국에서 MiG-19기를 개량하여 지상공격 전용기로 개발한 기체입니다. 주익에는 각각 23mm기관포 1기총씩(총 2기총)을 탑재하고 있으며 동체아래 4군데 하드포인트가 있어 250kg급 폭탄을 장착하여 운용 할 수 있습니다. 개전초반에 우리 육군에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Su-25 36 대 보유

수호이 Su-25는 수호이사가 제작한 공격기로 탱크킬러로 잘 알려진 미 공군의 A-10과 자주 비교되는 모델입니다. 1인승, 쌍발엔진에, 최대이륙중량은 KF-16, A-10C과 비슷한 20톤입니다. 북한은 아시아 최초로 Su-25를 도입하여 순천공군기지 등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폭격기

  IL-28 80여 대 보유

디자인은 완전 구식이지만 우수한 성능 덕분에 60여 년간 여러나라에서 운용되고 있으며 현재 북한의 주력 폭격입니다. 물론 날라다니는 관 수준이지만 북한의 히든카드인 핵무기를 유일하게 투하할 수 있는 폭격기입니다.


 헬기

  Mi-2 140여 대 보유

북한은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에 폴란드 PZL사로부터 Mi-21 헬기를 도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북한에서는 Mi-2 헬기를 혁신 -2직승기로 부르는데 북한이 자체 생산한다는 정보도 있으나 아마 부품상태로 들여와 북한에서 조립 생산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유사시 저격여단 병력을 우리나라 공군기지에 침투시키는 임무맡고 있습니다.


  Mi-8 20여 대 보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헬기로 기체 외부에 무장장착대 6개가 있으며 로켓포와 대전차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서해 5도와 밀접한 곳에 Mi-8 헬기를 집중 배치하고 있습니다.


  Mi-26 4 대 보유

 MI-26은 양산형 헬리콥터 중 가장 거대한 헬기이며 최대 수송중량이 20톤이 달해 장갑차를 비롯한 기계화 전력을 수송할 수 있습니다. 보병의 경우 최대 90명까지 탑승이 가능하며 완전무장한 공수특전단의 경우 40-50명이 탑승 가능합니다.


  MD-500D 80여 대 보유

북한 1983~85년에 서독 회사를 통해 500MD를 밀수입하였는데 2013년 7월 27일, 정전 60주년 기념일에 처음으로 공개되었습니다. 작년 북한 원산 에어쇼에서는 9K11 Malyutka 대전차 미사일을 장착한 모습도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부품을 구할 수가 없어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다고 합니다.


 수송기

  AN-2 300여 대 보유

AN-2는 날개가 천으로 덮여 있어 레이더 반사면적이 적기때문에 레이더에 탐지될 확률이 낮으며 복엽기로 설계되어 단거리 이착륙 성능이 뛰어납니다. 유사 시 북한 특수부대의 침투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아주 높으며 2017년 8월 25일에는 백령도, 대연평도 점령 훈련에서 An-2가 북한 특작부대원을 초저공 낙하하는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AN-24 6 대 보유

평상시에는 AN-24는 고려항공에 소속되어 있지만 전시에는 북한공군으로 모두 동원되어 병력수송에 투입되며 북한은 이 AN-24 기종을 전자전용으로 개조하여 전시에 우리나라의 레이다망과 통신시설을 마비시킨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결론

  북한공군 위협적인 점

무엇보다 북한 공군의 양적인 우위 자체가 위협적인 요소입니다. 우리나라 공군전력과 비교해 대부분의 기종들이 노후하고 성능도 떨어지지만, 전쟁 초기 양적인 우위를 이용한 기습적인 도발을 한다면 질적인 우위로만 대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습니다. 특히 MiG-15와 MiG-17의 경우 부품을 북한이 직접 생산하고 정비도 용이해 가동률이 오히려 높아 실제로 전장 종심이 짧은 한반도에서 제한된 공중요격과 대지공격 등에 운용될 수 있습니다. 

 

  북한공군 단점

북한 공군은 연료 유류부족으로 정찰은 물론이고 통상적인 훈련조차 거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종사의 연간 비행 훈련 시간이 평균 12~15시간(우리나라는 130시간 이상)에 불과하며 수시로 전투기가 추락하는 등 극심한 성능 저하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공군이 보유한 MiG기를 비롯한 모든 구소련제 전술기들은 제대로 된 사양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낮은 성능을 발휘하도록 개조된 기종입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Comment +0

 

미국에서는 중국의 스파이 행위와 군사력 증대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중국산 부품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주요 선진국들의 무기 기술을 훔쳐다가 불법 복제품, 일명 짝퉁을 만드는 것으로 악명이 높기때문에 당연한 조치입니다.

 

 

그런데 미국 첨단 무기에 중국산 부품이 다수 사용되었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나라가 도입하는 최신예 전투기 F-35에 20달러 짜리 중국산 부품이 들어갔다면 어떠신가요.

 

 

지난 2014년에 미국 최신예 전투기 F-35에 중국산 부품이 사용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 국방부에서 대대적인 실태 조사에 나섰는데 국방부 조사팀은 F-35 이외에도 보잉사가 생산하는 B-1B 폭격기(사진), 록히드 마틴사가 제작하는 F-16 전투기, 레이시언사가 일본과 함께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SM-3 ⅡA 미사일에 중국산 부품이 사용되고 있는 사실을 찾아내면서 미국 전체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미국은 사실 방산업체가 중국 등 다른 나라 원자재를 사용하지못하도록 법으로 강하게 규제하고 있습니다. 외국산 원자재나 부품을 사용하면 향후 분쟁이 발생했을 때 외국의 공급자가 부품 제공을 중단하면 미군이 궁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중국산 부품이 그것도 가장 중요한 전투기에 들어갔을까요.

 

 

F-35 제조사인 노드롭과 하니웰은 F-35 개발 계획이 과도한 비용과 분명치 않은 개발완료 시점 등 여러가지 문제점을 노출하자 법까지 어겨가며 F-35에 잠재적 적국인 중국의 부품을 끼워넣은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 중국은 F-35를 모방한 듯한 스텔스기 젠-20을 개발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다른나라도 아니고 중국산 부품을 쓰는 말도 안되는 비상식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은 전투기 부품 제조회사인 하니웰이 F-35에 중국산 고성능 자석을 공급하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3920억달러 예산의 F-35 차세대 전투기 프로젝트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해 미 국방부에서 중국산 고성능 자석 사용을 허가했습니다.

 

 

허가의 이유가 중국산 고성능 자석을 사용하지 않고 미국 제품을 사용하면 F-35 개발 완료 시점이 계속 늦춰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중국산 제품을 사용하면 1천만 달러 이상의 비용 절약되며 2만5천 시간 이상의 개발 시간이 단축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첨단 무기에 사용 되는 레이더 장치는 수백만 달러에 달하지만 여기에 들어간 중국산 고성능 자석은 불과 20 달러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미 장착된 자석을 떼어내기 위해 레이더 장치를 분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미국 의회 회계 감사원(GAO)까지 미 국방부 조치에 대해 '미국 방산업체들이 미국의 잠재적인 적국으로부터 특수 금속을 사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고 미 국방부 결정에 대해 찬성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중국은 고열에 견디는 특수강 생산 및 공급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F-35 40대를 구매하기로 2013년 11월에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F-35가 북한의 레이더망을 피해 평양까지 조용히 날아가 김정은의 집무실을 타격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이제까지 유례가 없는 일까지 겪으며 탄생하게 된 F-35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의문입니다. 만약 F-35 전투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돈 먹고 욕만 먹는 전투기가 될수도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