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이승엽-

 

이승엽은 누구나 인정하는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슈퍼스타이자 살아있는 레전드입니다. 많이 알려진 별명은 라이온 킹, 국민타자입니다. 이승엽은 1995년 입단해 2017년 올해를 끝으로 은퇴를 예고하였습니다. 어느덧 프로 23년 차에 접어든 이승엽이 남긴 기록들을 살펴보록 하겠습니다.


 

1. 이승엽의 데뷔 첫 홈런

경북고를 졸업한 뒤 1995년 삼성에 입단한 이승엽은 1995년 5월 2일 광주 해태전에서 이강철을 상대로 데뷔 첫 홈런을 터트렸습니다. 이승엽은 데뷔 첫해 13개의 아치를 쏘아 올리며 거포 탄생을 예고했습니다.

 

2. 데뷔 3년 만에 홈런왕 등극

이승엽은 1997년 32홈런을 터트리며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그해 타율 3할2푼9리(517타수 170안타) 32홈런 114타점 96득점을 기록하며 안타, 홈런, 타점 등 3관왕에 등극했다. 이승엽은 정규시즌 MVP와 1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동시 석권하는 기쁨을 맛봤다.

 

3.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

이승엽은 1999년 9월 2일 대구 LG전 5회 2사 1,2루 상황에서 좌완 방동민의 4구째를 받아쳐 좌월 스리런을 터트려 데뷔 첫 50홈런 고지를 밟았습니다. 그리고 1999년 54홈런을 기록한 이승엽은 2003년 심정수(당시 현대)와 대포 경쟁을 벌이며 56개의 아치를 터트리면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4. 영원한 홈런타자 이승엽

이승엽은 1997년 데뷔 첫 홈런왕(32개)에 오른 뒤 1999년(54개), 2001년(39개), 2002년(47개), 2003년(56개) 등 5차례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하며 홈런 타자의 대명사로 불렸습니다.

 

5. 6경기 연속 경기 홈런

이승엽은 데뷔 첫 50홈런 고지를 돌파한 1999년 7월 19일 사직 롯데전부터 7월 25일 대구 해태전까지 6경기 연속 대포를 가동했습니다. 6경기 연속 홈런을 때린 타자는 이승엽을 비롯해 찰스 스미스(당시 삼성), 이호준(당시 SK) 등 3명. 이후 이대호(당시 롯데)가 2010년 8월 4일 잠실 두산전부터 2010년 8월 14일 광주 KIA전까지 9경기 연속 홈런을 쏘아 올렸습니다.

 

6. 프로 최초 8년 연속 20홈런 이상 기록

이승엽은 1997년 데뷔 처음으로 20홈런 이상을 기록한 뒤 지난해 8월 11일 대구 LG전 3회 상대 선발 김광삼의 초구를 받아쳐 시즌 20번째 우월 솔로포를 터트리며 한국프로야구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7. 세계 최연소 개인 통산 300홈런

이승엽은 2003년 6월 22일 대구 SK전서 2-3으로 뒤진 8회 SK 세 번째 투수 김원형의 1구째 직구(139km)를 잡아 당겨 우월 솔로 아치로 연결시켰습니다. 이승엽은 26세 10개월 4일의 나이로 일본 왕정치가 1967년에 기록했던 27세 3개월 11일을 무려 5개월 여 앞당긴 세계 최연소 기록을 세웠습니다.

 

8. KBO리그 최고 개인 통산 400홈런
이승엽은 2015년 6월 3일 포항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6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 3회 롯데 선발 구승민에게서 홈런을 쏘아 올렸습니다. 시즌 10호째이자 개인 통산 400호째 홈런. 한국프로야구의 새 역사를 쓰는 순간이었습니다

 

9. 한일 통산 600홈런

작년 9월 14일 한화와의 홈경기에서 이재우의 3구째를 공략해 우월 솔로 아치를 쏘아 올리며 한일 통산 600홈런을 달성했습니다.

 

10. 통산 최다득점 달성

올해 5월 2일 두산과 경기에서 9회말 2사에서 슬라이딩으로 홈플레이트를 찍으면서 KBO리스 통산 1300득점을 달성했습니다. 이 득점으로 양중혁의 종전 기록 1299점을 넘어서며 KBO 역사에 또다 른 페이지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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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특급으로 불렸던 박찬호는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였습니다. 주무기는 빠른 강속구와 파워 커브, 슬로 커브, 슬러브이며 특히 파워 커브는 메이저 최고의 명품 구질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국인 야구선수로 메이저리그에서 최초로 홈런을 친 타자이기도 합니다.

 

 

박찬호는 공주고등학교 시절 고3이었던 1991년에 한미일 청소년 야구대회에 청소년대표로 미국에 간 적이 있었고, 그때부터 MLB에 대한 꿈을 가졌습니다. 공주고등학교 당시에는 4번타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당시 초특급 유망주였던 조성민, 임선동, 손경수 등 이른바 Top 3에 비해서는 그리 이름을 날리지 못했습니다. 고향팀 빙그레 이글스와 계약금 5,000만원에 거의 합의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인해 한양대학교에 진학하였습니다.

 

 

그리고 박찬호는 1991년 한미일 청소년 대회 때 숙소를 제공해 준 것으로 인연을 맺은 스티브 김을 통해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받았음을 확인했고 1994년 1월 11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계약금 120만 달러를 받고 정식으로 입단하게 됩니다. 당시 박찬호는 그 해에 NL에서 두번째로 어린 선수였습니다.

 

 

첫해인 1994년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바로 메이저리그로 직행하였으며 5선발 자리를 두고 여러선수들과 경쟁하였습니다. 그리고 박찬호의 최전성기는 많은 정상급 타자들이 약물을 복용하여 타고투저 현상이 극심하던 1997년에서 2001년 사이로 당시 그의 위치는 LA 다저스의 1선발이었습니다.

 

 

그는 그 기간 동안 시속 160KM에 육박하는 강속구와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도하는 슬러브 및 파워커브로 연평균 15승/200이닝/200삼진/3점대 방어율이라는 성적을 기록하면서 당대 내셔널리그 우완 최고 투수 중 한 명이라 평가받으며 메이저 리그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사이영상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성적을 바탕으로 FA 시장에서 투수 부문 1위로 평가받은 그는 2002년 텍사스와 5년 6500만 달러(옵션 포함 7100만 달러) 라는 초대형 계약을 맺기도 하였습니다.

 

 

1998년 아시안게임에서는 대표팀 에이스로서 야구 대표팀을 이끌었고 금메달을 획득하여 병역 면제를 받았습니다. 2006년에는 제 1회 WBC에도 참가하여 부동의 에이스로서 1승 3세이브 무실점의 성적을 보이며 4강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2010년을 끝으로 메이저 리그에서의 커리어를 마감한 그는 2011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에서 잠시 뛰기도 하였습니다.

 

 

현재까지도 패스트볼의 구위만으로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압도한 동양인 선발투수는 박찬호와 일본의 노모뿐입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고향 팀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의 대미를 장식하고 그 해 11월 29일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그리고 야인이 된 박찬호는 골프에 푹 빠져살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파워 히터인 박찬호는 탄탄한 하체를 기반으로 빠르게 클럽 헤드를 끌어내리면서 최고 137마일(220km)의 드라이버 헤드 스피드를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 평균(113마일·181km)은 물론,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127마일·204km)보다도 헤드 스피드가 빠릅니다.

 

 

그런데 최근 한화에 김성근 감독이 사퇴하고 난 후 차기 감독 후보로 다시 박찬호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한화는 이번에도 이름값 있는 감독을 선택할 확률이 높습니다. 팀이 크게 흔들린 상황에서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추슬러야 하는 입장입니다. 여기에 박찬호는 충남 공주 출신으로 지역 야구를 대표하는 스타라는 상징성도 있습니다.

 

 

한화는 “여러 가능성을 놓고, 다양한 후보를 접촉중인 단계”라며 신중한 입장입니다. 박찬호는 현재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야구 최고의 스타인 박찬호가 다시 한번 감독으로 제2의 야구 전성기를 맞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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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미국의 NASA는 우주왕복선을 개발하면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미국의 라이벌이었던 소련도 우주왕복선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러시아어로 '눈보라'라는 뜻으로 소련의 우주오아복선 계획에 의해 유일하게 완성된 부란(Буран)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부란은 미국에 비해 늦게 만들어진 만큼 미국의 우주왕복선과 달리 제작 당시 동원할 수 있는 최신 우주기술을 총동원하여 제작되었습니다.

 

 

부란의 제원은 전장 36.4M 날개 너비 24M 전체 중량 105톤, 발사 시 탑재 가능 중량 30톤, 귀환시 탑재 가능 중량은 20톤이였으며 탑승 가능 인원은 승무원 2~4명, 탑승객 6명으로 총 10명까지 가능하였습니다.

 

 

그리고 1988년 11월 15일 눈구름과 발마이 강한 카자흐스탄의 바이콘르 코스모드롬에서 부란은 거대한 에네르기아 로켓에 실려 발사되었습니다. 부란은 세 시간 동안 지구를 두 바퀴 돈 후에 아무런 오점을 남기지 않고 안전하게 착륙하였습니다.

 

▲미국 나사의 우주왕복선과 부란의 비교 사진

이 우주왕복선 오토파일럿 기능은 지상 관제 센터에서 컴퓨터로 원격 조작한 것인데, 우주선의 원격 조작은 비행기의 원격 조작이나 오토파일럿과는 차원이 다른 극도로 어려운 작업이며, 소련이 우주왕복선의 무인 비행에 성공하자 NASA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결국 NASA도 우주왕복선의 오토파일럿 기술 개발에 착수했지만 끝끝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부란은 2010년 미국의 X-37이 재돌입 후 자동 착륙을 하기까지 유일한 자동재돌입 및 착륙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작업용 로봇팔도 미국 우주왕복선은 1개밖에 없지만 부란에는 2개가 달려 하나가 고장나거나 파괴되더라도 다른 하나로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당시 NASA는 우주왕복선이 대기권 진입시 기체 내부의 온도 상승을 막는 기술이 없어서 우주왕복선의 연료가 대기권 진입시에 기체의 온도 상승이나 기체 내 압력 폭증으로 인해 폭발하지 않도록 모든 연료를 우주상에 버리고 대기권에 진입했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우주왕복선은 활공 비행을 통해 지구로 귀환했고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폭풍이 온다면 우주왕복선의 비행 경로가 틀어져 지정된 지점으로 귀환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우주왕복선은 발사 당일뿐만 아니라 귀환 당일에도 기상이 좋아야 했고, 당연히 발사일을 선정하기가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그러나 부란의 경우에는 대기권 진입시에도 기체 내의 압력과 기온을 안정되게 유지하는 기술이 적용되어 우주상에서 연료를 버리지 않고 대기권을 진입하였으며, 대기권 진입 이후에는 제트엔진을 가동하여 목표지점으로 얼마든지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단, 1988년 우주비행을 한 1호기에는 제트엔진이 없었습니다. 비행 이후 제트엔진을 달았지만 소련이 붕괴되어 처녀 비행이 마지막 비행이 되어 버렸고 유인 비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트엔진을 장착한 부란은 전시물로 전락하였습니다.

 

2002년 5월 12일에 부란이 격납고가 폭발로 무너지면서 파괴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사고가 아니라 러시아에서 직접 폭발시켜 묻어버린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실제로 부란을 보관하던 격납고는 북측동과 남측동 총 2개 동으로 1986년에 건축한 것인데 이 중 북측동은 부란을 조립하는 곳으로, 엄청난 무게의 부란을 격납고 공중에 매달아 둘 정도로 견고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너진 것을 보면 북측동과 남측동이 함께 붙어있는데도 북측동만 도려낸 듯이 무너져 버렸고 이는 폭탄에 의한 발파가 아니면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러시아 우주당국은 이 사건이 일어나자 부란의 시체잔해물과 건물의 잔해물을 씯어낸 듯이 치워버려 이러한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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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하다 보니 이기자는 생각 없이 대충 뒀는데 이겼네요

-중국 구리 九단에게 대역전승을 거둔 직후 인터뷰-

 

이세돌은 조훈현, 이창호에 이은 세계 바둑 최강의 계보를 이어가는 바둑기사입니다. 세계대회 우승 횟수가 이창호 다음으로 많고, 12세에 입단하여 한국 프로 기사 중 최연소 입단 4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1995년에 입단하지만 2000년부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이세돌은 2000년에 32연승이라는 역대 연승 3위 기록을 세우며 '불패소년'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창호의 바둑이 느긋하면서도 안정적인 계산으로 끝내기를 통해 상대를 제압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세돌은 압도적인 수읽기를 통한 흔들기로 난전으로 끌어들여 상대를 혼란시키고 압살해버리는 스타일입니다.

 

 

그리고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구글 딥마인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 대국을 치렀습니다. 알파고는 이세돌 이전에 2013-2015년 중국 프로 기사이자 유럽 바둑 챔피언인 판 후이(2단)과 대국을 하였는데 5-0으로 알파고가 이겨버렸는데, 인공지능이 현역 프로 바둑기사를 이긴 건 사상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세돌 본인은 물론 커제나 이창호를 비롯한 대부분의 바둑기사가 판 후이와의 대결 양상을 기준으로 이세돌의 5-0 완승 또는 4-1로 이길 것을 자신했으나, 판 후이와의 대결 이후 알파고의 무서운 성능 향상으로 9일에 열린 1국에서 알파고가 186수 만에
불계승, 10일에 열린 2국에서도 알파고의 불계승으로 이세돌이 2패를 당했고, 12일에 열린 3국 역시 초읽기에 들어가는 접전 끝에 알파고의 176수 불계승으로 결국 3-0이 되며 알파고의 승리로 끝이 나버리며 인공지능에 압도당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바둑계의 대사탄으로 간주되던 이세돌이 한낱 기계 앞에 대굴욕을 맛보며 처참하게 박살나는 모습에, 이 때까지만 해도 바둑계 전체는 물론 인류가 인공지능 앞에 허무하게 몰락하는 게 아니냐는 비관적이고 패배주의적인 사상이 대한민국 전체를 강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4국에서 드디어 이세돌이 알파고를 상대로 승리했습니다. 4국에서 불리한 형세에 들어간 알파고가 승률이 낮아질수록 더더욱 잦은 실수를 하였고 이세돌은 1개 남은 초읽기로 1시간가량 버티는 대혈전 끝에 알파고를 이겨 불계승을 거두었습니다. 알파고가 팝업창으로 "AlphaGo resigns. The result "W+Resign" was added to the game information"이라는 메시지를 보이며 패배를 선언하였고 해설진들은 78수를 신의 한 수라고 평가했습니다.

 


알파고와 바둑을 하면서 오히려 기력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알파고와의 대국을 중계하던 프로 9단 해설진들이 알파고의 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세돌은 표정에서 동요를 보이며 알파고의 수를 이해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세돌이 세 판 내리 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계를 제외한 인간 중에서는 최정상급의 자리를 지키는 이유를 잘 보여주는 대국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인공지능(AI) 알파고가 27일 세계 바둑 행킹 1위 커제(柯潔) 9단과의 대국을 마친 뒤 바둑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커제9단은 사실 이세돌 9단이 지난해 알파고와 첫 번째 대국에서 패배하자  "알파고가 이세돌마저 꺾었지만 나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는가 하면 두 번째 대국 패배 뒤에는 "인류 대표의 자격이 없다"며 신랄하게 비판하였지만 알파고에 완패했습니다.

 

 

이에 따라 알파고의 전적은 이세돌 9단과 5번기, 연초 인터넷 대국 60판, 커제 9단과 3번기, 단체 상담기까지 합쳐 모두 68승 1패로 남게 됐습니다. 알파고가 지난해 1월 네이처 논문으로 정식 데뷔하기 전 판후이(樊麾) 2단에게 5전 전승을 거둔 것까지 합하면 73승 1패입니다. 그렇게 알파고에 유일한 패배를 안긴 주인공은 이세돌 9단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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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에게 명품가방이 있다면 남자들에게는 바로 명품시계가 있습니다. 명품시계 하나 잘 가지고 있으면 대대로 물려줘도 된다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값어치 또한 올라갈 수 있어 명품시계 재테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2017년 최고의 기술력이 만든 명품시계 브랜드 순위 TOP10을 소개합니다.

 

10위 율리스 나르당

(Ulysse Nardin)

 

율리스 나르당(Ulysse Nardin)은 미닛리피터와 트루비용으로 이루어진 많은 하이 컴플리케이션 모델을 보유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고 중 최고로 불리는 모델이 있는데 시계가 괴물 같다고 하여 프리크(Freak)라고 불리는 컬렉션입니다. 프리크 컬렉션은 트루비용을 대표 컴플리케이션으로 하여 듀얼 이스케이프먼트와 실리콘 재질의 휠을 그 주요 특징으로 하지만 이런 특징을 넘어서는 심지어 괴기스럽게까지 보이는 독특하고 독창적인 외형으로 인하여 그 인지도를 얻고 있는 모델입니다.


 

9위 예거 르쿨트르

(Jaeger Lecoultre)

 

예거 르쿨트르는 우수한 시계 제작 기술력으로 인정받는 하이엔드 시계브랜드입니다. 4.05mm밖에 안 되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시계중 하나를 만들며, 3축으로 회전하는 자이로 뚜르비옹을 제작할 수 있는 회사이며 그랑 컴플리케이션도 손꼽히게 잘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계중 하나인 Hybris mechanica à grande sonnerie도 제작하여 판매중입니다.롤렉스, Omega 등의 럭셔리 워치에서 하이엔드 타임피스로 넘어갈 때 가장 많이 추천되는 브랜드입니다


 

8위 피아제

(Piaget)

 

1874년 조르주 피아제(Georges Piaget)가 스위스 쥐라 지역에 설립한 시계 제조회사이자 브랜드입니다. 기술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한데 일례로 두께 2.3mm인 세계에서 가장 얇은 시계를 제작하여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습니다. 그밖에 스포티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널리 알려진 Polo 시리즈 등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7위 블랑팡

(Blancpain)

 

스와치 그룹의 최상위 시계 브랜드입니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시계 브랜드이며, 최초의 다이버 시계인 피프티 패덤즈 등의 라인업이 유명하며 문 페이즈에 적용되는 문 디스크의 표정 또한 독특하기로 유명합니다.


 

6위 글라슈테 오리지날

(Glashutte Original)

 

전쟁이 끝나면서 독일 지역에 진주한 소련군이 이 지역의 시계 공방들을 폐쇄시켰고, 뒤이어 1951년 동독 정부가 글라스휘테 지역의 시계 공방들을 강제 통폐합함으로써 국영 시계 회사 'VEB 글라스휘테 시계공장(Volkseigener-Betrieb Glashütter Uhrenbetriebe, GUB)'을 만들었습니다.


 

5위 브레게

(Breguet)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Abraham Louis Breguet)가 1775년에 창립했으며, 이는 유명한 시계 브랜드들 중에서도 오래된 축에 속합니다. 창립 이래 많은 유럽왕족, 귀족들에게 인기를 끌었는데 마리 앙투아네트, 나폴레옹, 빅토리아 여왕, 윈스턴 처칠 등이 착용했습니다. 한마디로 당대 최고의 시계였습니다.


 

4위 아 랑게 운트 죄네

(A Lange & Sohne)

 

아 랑게 운트 죄네(A. Lange & Söhne)는 브랜드 복합 기업 리슈몽 그룹이 소유한 명품 시계 브랜드입니다. 리치몬드 그룹에 속해있는 Lange Uhren GmbH 사의 브랜드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시계브랜드를 꼽을때 빠지지 않습니다. 모든 아 랑에 운트 죄네 시계는 쿼츠 무브먼트 대신 기계식 무브먼트를 사용합니다. 또한 아 랑에 운트 죄네에 사용되는 나사는 300도에서 천천히 가열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 과정속에서 매우 얇은 자철광 막이 형성되고, 팔랑개비국화와 같은 아름다운 파란색을 띠게 됩니다.


 

3위 오데마 피게

(Audemars Piguet)

 

스위스의 시계회사로 파텍 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아 랑에 운트 죄네, 브레게와 함께 최고 하이엔드급 시계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가 딸의 14살 생일 선물로 1억 4천만원 정도하는 오데마 피게를 사주었으며 드라마 혼술남녀에서 극중 하석진이 최고로 퀄리티 있는 치장을 해야겠다고 할 때 선택한 시계로 오데마피게 로얄오크 듀얼타임을 착용하였던 시계는 약 4000만원이였습니다.


 

2위 바쉐론 콘스탄틴

(Vacheron Constantin)

 

1755년 창업하여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시계회사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존속하고 있는 하이엔드 시계회사입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 교황 비오 11세, 해리 트루먼 대통령, 순종 등이 바쉐론 콘스탄틴의 시계를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위 파텍필립

(Patek Philippe)

 

창립 이래 계속해서 시계 기술을 선도해 온 회사입니다. 1845년 세계 최초의 미니트 리피터 회중시계를 출시했고, 1925년에는 퍼페추얼 캘린더가 장착된 손목시계를 처음으로 출시하는 등 수많은 시계브랜드 중 단연 최고등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설계부터 실제 조립까지 기계화된 생산공정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마지막 마감 부분에서는 전문가들의 조정이 손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한정된 수량'과 '높은 가격'이라는 고가 브랜드의 특성을 어김없이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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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리 스웨트 CF는 단순 이온 음료 광고를 넘어 청순하고 트렌디한 여배우만이 할 수 있는 광고로 통합니다. 일명 '포카리걸' 이라 불리는 역대 20명에 대해 소개합니다.

 

1. 최윤희(1987년,1988년)

 

 

아시아 인어라고 불렸던 수영 선수 최윤희는 포카리 스웨트 광고 모델로 1987년과 1988년에 활동하였습니다. 조오련 이후 10년만에 나온 아시안 게임 수영 금메달이라는 실력에 미모를 겸비했기에 당시 최윤희는 최고의 여자 스포츠스타였고 일찍이 국민 여동생의 위치에 올랐었습니다

 

2. 박영선(1989년)

 

 

2대 포카리 걸 박영선은 긴머리에 청순한 얼굴로 1989년 광고에 출연했습니다.

 

3. 김혜수(1990년)

 

 

앳된 모습의 김혜수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타고난 미인입니다. 얼굴, 몸매도 되는데 연기력까지 출중하고 예능감도 좋습니다.

 

4. 고현정(1991년)

 

 

당시 최고의 여배우였던 고현정은 해변에서 정말 청순한 모습을 보여주며 남심을 사로잡았습니다.

 

5. 김윤정(1992년)

 

 

배유 김윤정은 이 광고에서 대학생 역할을 맡아 청순하면서 풋풋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6. 김지수(1993년)

 

 

1992년 SBS 2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배우 김지수는 데뷔 1년만에 포카리 걸로 해변에서 광고를 찍었습니다.

 

7. 심은하(1994년)

 

 

많은 남자들의 이상형 배우 심은하도 포카리 스웨트 광고를 거쳤습니다.

 

8. 장진영(1997년)

 

 

1993년 미스 대전·충남 진으로 뽑힌 후 광고 모델로 활동하다 인기에 힘입어 포카리 걸이 되었습니다.

 

9. 김규리(1998년)

 

 

1994년 KBS '신고합니다'로 데뷔한 배우 김규리는 여행 컨셉로 포카리 스웨트 광고를 찍었습니다.

 

10. 손예진(2001년,2002년,2007년,2008년)

 

 

이 시리즈물의 컨셉을 정립한 손예진의 CF를 보면, 긴 생머리의 미녀가 순 백색의 옷을 입고 머리카락을 찰랑 휘날리며 남유럽의 하얀집과 푸른 해변가의 강렬한 색채 대비에 광고모델의 청순함을 극대화 시키는 CM송까지 가미하는 등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시킨 좋은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11. 한지민(2003년)

 

 

 

 

손예진에 이어 포카리 스웨트 광고 모델을 한 한지민은 워낙 순수하고 청순한 이미지였기에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12. 박신혜(2004년)

 

 

2003년 이승환의 뮤직비디오로 데뷔하고 탄력을 받아 2004년 포카리 스웨트 모델로 활동했습니다.

 

13. 이연희(2005년)

 

 

 

하얀 피부와 아름다운 미소로 지금까지도 청순함으로 많은 남심을 사로잡고 있는 이연희도 2004년 집을 짓는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으로 나왔습니다.

 

14. 고은아(2006년)

 

 

양재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2004년 9월에 데뷔하여 8개월 만에 무려 7편의 CF에 출연하며 결국 포카리 스웨트까지 출연하였습니다.

 

15. 김소은(1998년)

 

 

'지칠 떈 하늘을 봐' 귀여운 모습으로 해변에서 신발 던지기를 하는 모습이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16. 양진성(2010년)

 

 

이화여대 조형예술학을 전공한 배우 양진성은 2010년 포카리 스웨트 모델로 뽑혔습니다.

 

17. 문채원(2011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네요 문채원은 2011년 포카리 스웨트를 찍었는데 손예진 다음으로 가장 잘 어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18. 박세영(2013년)

 

 

상명대 영화과를 졸업한 박세영은 지난 2013년 포카리 스웨트 모델로 뽑혔습니다.

 

19. 이다인(2014년)

 

 

배우 견미리의 딸 이다인은 2014년 도시편 포카리 스웨트 광고에 출연하였습니다.

 

20. 김소현(2015년)

 

 

밝고 건강한 느낌을 주는 김소현은 개인적으로 손예진에 이어 장기적으로 활동해도 될 정도로 정말 잘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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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맥주의 대명사 기네스(Guiness)는 흐리고 어두운 날씨에도 잘 어울립니다. 1759년 당시 34세의 아서 기네스는 아일랜드 더블린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에서 9000년간 연간 45 파운드의 임대료를 내는 조건으로 문닫은 맥주 공장을 인수해 명명했습니다. 세계 150여개국에서 매일 1000만잔 이상이 소비되는 흑맥주(Stout)의 대명사입니다.

 

 

기네스 맥주는 까맣게 볶은 보리로 만들기 때문에 다른 맥주에 비해 맛이 매우 진합니다. 또한 기네스 맥주 캔 안에는 위젯이란 플라스틱 공이 하나 들어 있는데 캔을 따는 순간 압력차로 공 안의 질소 가스가 뿜어져나옴으로써 기네스 특유의 크림 거품을 만들어냅니다. 특허가 걸려 있는 물건으로 개발에 100억 정도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다고 합니다. 자 그렇다면 엔터테인먼트 칼럼니스느 로스 보네인더가 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기네스 맥주의 비밀 5가지’를 소개합니다.


 

1. 기네스 맥주 공장 5개 중 3개는 아프리카에 있습니다.

 

기네스 맥주는 49개국에서 만들어져 150개국에서 팔리고 있지만 기네스 본사가 전세계에 거느리고 있는 직영 공장은 본사가 있는 더블린의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 공장을 비롯해 다섯 군데 밖에 없습니다. 말레이시아에 1개가 있고 나머지는 모두 아프리카에 있습니다. 나이지리아, 가나, 카메룬에 있으며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은 세계에서 기네스 맥주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로 손꼽힙니다. 하지만 아일랜드, 영국, 미국서 많이 마시는 기네스 맥주는 아프리카에서 인기 있는 기네스와는 조금 다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생맥주(약 4.0%)보다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기네스 엑스트라 포린 스타우트’(7.5%)를 즐겨 마십니다.


 

2. 기네스 생맥주는 같은 양의 오렌지 주스보다 칼로리가 낮습니다.

 

기네스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칼로리에 관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기네스 생맥주 350㏄는 125㎈ 밖에 안 되며 같은 양의 오렌지 주스(183㎈)보다 칼로리가 낮습니다. 탈지유(135㎈)보다도 낮습니다. 타 맥주 레귤러 버드와이저(143㎈), 쿠어스 오리지널(148㎈), 밀러 제뉴인(143㎈), 새뮤얼 애덤스 보스턴 라거(160㎈) 등 대부분의 맥주보다 낮습니다. 도수가 높은 ‘기네스 포린 엑스트라 스타우트’는 350㏄당 176㎈이지만 도수에 비해선 높은 칼로리는 아닙니다.


 

3. 아서 기네스는 흑맥주를 만든 적이 없습니다.

 

기네스 하면 금방 흑맥주를 떠올리지만 아서 기네스는 흑맥주(stout)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지 않았습니다. 맥주 애호가들은 포터주(브라운 에일의 일종)와 스타우트 맥주를 애써 구분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하겠지만, 아서 기네스는 창업 후 10년간은 에일 맥주를 만들었고 1770년대에 들어 더블린에 포터주가 유행함에 따라 아서도 포터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799년부터는 완전히 포터주만 생산했습니다. 4년 후 맥주 공장이 본 궤도에 오를 때쯤 아서 기네스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1821년 그의 아들 아서 기네스 2세가 ‘기네스 엑스트라 슈페리어 포터’를 만드는 양조 방법을 창안했는데 그 맥주가 오늘날 세계적으로 알려진 기네스 흑맥주의 전신입니다..


 

 

 

4. 기네스는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을 구했습니다..

 

기네스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 중 하나는 아일랜드의 수호 성인 세인트 패트릭에게 바쳐진 대성당 이야기 입니다. 기네스와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의 관계는 기네스의 창업자 아서 기네스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서는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의 채플 스쿨에 250 기니를 기부했습니다. 그후 아서의 손자인 벤자민 리 기네스는 1860년부터 1865년 사이에 쇠락한 대성당 건물의 개보수 공사를 위해 15만 파운드를 기부했습니다.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의 앞마당에는 벤자민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5. 쥐가 죽은 것과 기네스의 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기네스에 관한 전설 중 하나는 기네스 맥주는 처음엔 별로 맛이 없었는데 어느날 양조 탱크를 열어보니 쥐가 맥주에 빠져 죽어 있었고 쥐가 들어 있는 맥주를 마셔보니 맛이 기가 막히더라는 것입니다. 그후로 맥주 맛을 내기 위해 쥐의 뼈를 넣어 발효시킨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이며 기네스 흑맥주는 개발과 동시에 지금과 같은 맛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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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들의 쿨한 열애 인정이 이어지면서 나이 차이 역시 쿨하게 패스해버리는 커플들이 대거 탄생하고 있습니다. 나이는 숫자일 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며 띠동갑 이상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예쁜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연예계 커플 톱 11을 소개합니다.


 

11. 11살차이

송승헌  유역비

 

국제적으로 인기 있는 1976년생 송승헌과 중국에서 인정해 주는 집안에 잘나가는 스타이자 중국 4대 미녀인 1987년생 유역비 커플입니다. 국적을 뛰어넘어 부족할게 없는 선남선녀의 만남인 듯 합니다.


 

10. 11살차이

문정혁  나혜미

 

오늘 2월 23일 그룹 신화의 에릭(본명 문정혁·38)이 연기자 나혜미(26)와의 교제 사실을 3년 만에 인정했습니다. 에릭의 소속사 측은 23일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고 반복했지만, 현재 연인으로 지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좋은 선후배 관계를 이어오다 최근 연인사이로 발전한 것이며 결혼설은 아직 사실 무근이라고 합니다.


9. 12살차이 띠동갑!

이병헌  이민정

 

연예계 대표 톱스타 부부인 이민정과 이병헌은 12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한 띠동갑 커플입니다. 결혼 이후 여러 사건이 있었지만 간간히 SNS를 통해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며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8. 13살차이

문희준  크레용팝 소율

 

결혼 발표를 하기 전까지 단 한번의 열애설도 나지 않아 팬들을 더욱 놀라게 했던 문희준 소율 커플! 문희준은 1978년생, 소율은 1991년생으로 이들은 13살의 나이차이가 납니다. 가요계 선후배로 만나 지난 2016년 4월부터 연인으로 발전해 2017년 2월 12일 결혼을 하였습니다.


 

 

7. 13살차이

배용준  박수진

 

소속사 대표와 연기자로 인연을 맺어 결혼에 성공한 배용준-박수진 부부 역시 13살 나이 차이를 극복한 커플입니다. 특히 이들은 교제 3개월만에 초고속으로 결혼을 발표해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6. 14살차이

최자  설리

 

14살의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벌써 연예계 장수커플에 접어든 설리와 최자입니다. 이 둘은 특히 SNS에 깨가 쏟아지는 데이트 사진들을 올리며 여전히 연애전선에 이상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일 SNS에 올리는 사진이 화제가 되고 있으며 최근에도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연예계 대표 사랑꾼 커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5. 15살차이

백종원  소유진

 

소유진과 백종원의 나이차이는 무려 15살입니다. 백종원은 소유진과 결혼 이후 방송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이어가며 '백주부'라는 별명으로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소유진 역시 결혼 이후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종종 방송에서 서로를 언급하며 달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 16살차이

서태지  이은성

 

결혼하지 않을 것 같았던 1972년생 서태지와 1988년생 이은성 부부의 나이차이는 16살입니다. 이은성이 서태지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게 되면서 처음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서태지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까지 골인했습니다. 지난 2013년에 결혼한 이후 종종 서태지 공식 홈페이지에 결혼 생활 사진을 올리며 팬들에게 근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3. 17살차이

김주혁  이유영

 

이유영과 김주혁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연인 호흡을 맞추며 실제 연인으로 발전했습니다. 김주혁의 뱀파이어 같은 외모 덕분에 비주얼은 큰 나이차이가 느껴지지 않지만 이들은 실제 17살의 나이차이로 많은 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2. 17살차이

마동석  예정화

 

1971년생인 마동석과 1988년생인 예정화 역시 17살 차이 커플입니다. 예정화는 각종 방송에서 마동석이 이상형임을 밝힌 적이 있는데 이후 실제 연인으로 거듭나면서 예정화의 짝사랑도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1. 17살차이

신하균  김고은

 

17살 차이 커플이 또 있습니다. '도깨비 신부' 김고은과 신하균입니다.  스킨스쿠버 동호회에서 만난 이들은 신하균의 고백으로 연인으로 발전했습니다. 이후 둘은 쿨하게 열애를 인정하며 각자의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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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규모가 크며 이용자 수가 많은 지하철 시스템은 뉴욕 지하철, 베이징 지하철, 상하이 지하철, 런던 지하철이 대표적입니다. 그렇다면 미국 자동차 전문 매체 잘롭닉(Jaloprik.com)에서 청결, 편리, 안전을 기준으로 전 세계 최고의 지하철 시스템을 갖춘 국가 상위 10개 나라를 선정하였는데 어느 나라 지하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0위 스페인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는 광범위한 지하철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그러나 규모나 범위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특정 지하철역에 있는 쇼핑센터입니다. 이 쇼핑센터 옆에는 스포츠 종합 단지가 있는데 소형 실내 경주용 자동차 트랙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9위 북한 평양

 

북한 평양이 9위라는 사실에 놀라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평양의 지하철은 매우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세계 어느 지하철 보다 깊은 곳 (약110m)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8위 캐나다 몬트리올

 

캐나다 몬트리올 지하철 열차는 낡은 편이지만 노선이 이해하기 쉽고 아주 논리적입니다. 각각의 역을 지역 예술가가 도시 개성에 맞춰 디자인한 것이 특징입니다.


7위 러시아 모스크바

 

모스크바 역시 평양의 지하철처럼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역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멋진 모습을 자랑합니다.


6위 미국 뉴욕

 

뉴욕 지하철 노선도는 처음 보는 사람이 이해하기 힘들어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스위치나 레일은 모두 낡았고 역은 더러운 편이며 쥐가 돌아다닌 것을 목격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승강기 내부는 매우 혼잡합니다. 그런데 6위라는 높은 순위에 선정된 것은 거대한 도시 뉴욕을 지하철이 이동하고 있다는 정말 큰 장점이 있습니다.


5위 영국 런던

 

영국 런던 지하철은 고급스러울 뿐만 아니라 전쟁 시 거대 방공호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도시를 잘 연결하며 운영에 있어서도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또한 훌륭한 스마트 카드 시스템도 갖추고 있습니다.


4위 홍콩 홍콩

 

홍콩 지하철은 청결하고 효율적이며 처음 이용하는 여행객들도 지하철 노선 이해가 아주 쉽습니다.


3위 프랑스 파리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라는 도시에 걸맞게 자유로운 분위기와 클래식한 분위기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2위 일본 도쿄

 

깨끗함과 질서의 극치를 보여주는 도쿄 지하철은 승객들이 열차 내부에서 음식을 먹거나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또한 열차 도착시간은 굉장히 잘 맞습니다.


1위 대한민국 서울

 

서울 지하철 역시 도쿄 지하철과 같이 깨끗하고 평온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이용하기 편한 노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거의 모든 역은 사람이 뛰어내릴 수 없도록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어 미래의 시설을 보는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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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여러분 집에 동전을 모아두는 저금통이 있으신가요? 혹시 모르는 돈이 저금통에서 잠들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오늘은 우리나라의 오래된 동전들의 값어치에 대해 알려드리게습니다.

 

 

일단 500원 동전 값어치가 가장 비싼년도는 1998년으로 미사용동전 기준으로 100만원 이상에 거래됩니다. 199년 동전은 우리나라가 IMF시절에 대략 8000개 정도밖에 생산이 되지않아서 깨끗하게 보존되어있는 500원 동전이 많지 않으며 물량도 적기때문에 동전 수집가들 사이에서 1998년 동전을 얻기위해 아주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50원짜리 동전도 값어치가 굉장히 비쌉니다. 50원 짜리 동전에서 가장 값어치가 나가는 년도는 1972년도 입니다. 1972년에 50원짜리 동전이 최초로 발급되어서 처음에 의미가 있으며 가격은 미사용기준 30만원이 넘어갑니다.

 

 

10원짜리 동전도 예외가 아닙니다. 가장 비싼 값어치를 자랑하는 년도는 1966년 미사용기준으로 30만원이 넘어간다고 합니다. 위에 소개한 년도 외에도 비싼 값어치를 자랑하는 년도가 있습니다. 정리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0원

1966년 - 300,000원 이상

1976년 - 50,000 ~ 70,000원

1968년 150,000 ~ 250,000원

1970년 100,000 ~ 150,000원 (황동기준)

1970년 300,000 ~ 1,000,000원 (적동기준)

1981년 7,000 ~ 8,000원

 

50

1972년 - 150,000원

500원

1998년 - 300,000원 ~ 500,000원

(사용했을 경우)

1,000,000 ~ 1,200,000원

(미사용 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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