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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특급으로 불렸던 박찬호는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였습니다. 주무기는 빠른 강속구와 파워 커브, 슬로 커브, 슬러브이며 특히 파워 커브는 메이저 최고의 명품 구질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국인 야구선수로 메이저리그에서 최초로 홈런을 친 타자이기도 합니다.

 

 

박찬호는 공주고등학교 시절 고3이었던 1991년에 한미일 청소년 야구대회에 청소년대표로 미국에 간 적이 있었고, 그때부터 MLB에 대한 꿈을 가졌습니다. 공주고등학교 당시에는 4번타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당시 초특급 유망주였던 조성민, 임선동, 손경수 등 이른바 Top 3에 비해서는 그리 이름을 날리지 못했습니다. 고향팀 빙그레 이글스와 계약금 5,000만원에 거의 합의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인해 한양대학교에 진학하였습니다.

 

 

그리고 박찬호는 1991년 한미일 청소년 대회 때 숙소를 제공해 준 것으로 인연을 맺은 스티브 김을 통해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받았음을 확인했고 1994년 1월 11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계약금 120만 달러를 받고 정식으로 입단하게 됩니다. 당시 박찬호는 그 해에 NL에서 두번째로 어린 선수였습니다.

 

 

첫해인 1994년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바로 메이저리그로 직행하였으며 5선발 자리를 두고 여러선수들과 경쟁하였습니다. 그리고 박찬호의 최전성기는 많은 정상급 타자들이 약물을 복용하여 타고투저 현상이 극심하던 1997년에서 2001년 사이로 당시 그의 위치는 LA 다저스의 1선발이었습니다.

 

 

그는 그 기간 동안 시속 160KM에 육박하는 강속구와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도하는 슬러브 및 파워커브로 연평균 15승/200이닝/200삼진/3점대 방어율이라는 성적을 기록하면서 당대 내셔널리그 우완 최고 투수 중 한 명이라 평가받으며 메이저 리그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사이영상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성적을 바탕으로 FA 시장에서 투수 부문 1위로 평가받은 그는 2002년 텍사스와 5년 6500만 달러(옵션 포함 7100만 달러) 라는 초대형 계약을 맺기도 하였습니다.

 

 

1998년 아시안게임에서는 대표팀 에이스로서 야구 대표팀을 이끌었고 금메달을 획득하여 병역 면제를 받았습니다. 2006년에는 제 1회 WBC에도 참가하여 부동의 에이스로서 1승 3세이브 무실점의 성적을 보이며 4강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2010년을 끝으로 메이저 리그에서의 커리어를 마감한 그는 2011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에서 잠시 뛰기도 하였습니다.

 

 

현재까지도 패스트볼의 구위만으로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압도한 동양인 선발투수는 박찬호와 일본의 노모뿐입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고향 팀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의 대미를 장식하고 그 해 11월 29일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그리고 야인이 된 박찬호는 골프에 푹 빠져살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파워 히터인 박찬호는 탄탄한 하체를 기반으로 빠르게 클럽 헤드를 끌어내리면서 최고 137마일(220km)의 드라이버 헤드 스피드를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 평균(113마일·181km)은 물론,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127마일·204km)보다도 헤드 스피드가 빠릅니다.

 

 

그런데 최근 한화에 김성근 감독이 사퇴하고 난 후 차기 감독 후보로 다시 박찬호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한화는 이번에도 이름값 있는 감독을 선택할 확률이 높습니다. 팀이 크게 흔들린 상황에서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추슬러야 하는 입장입니다. 여기에 박찬호는 충남 공주 출신으로 지역 야구를 대표하는 스타라는 상징성도 있습니다.

 

 

한화는 “여러 가능성을 놓고, 다양한 후보를 접촉중인 단계”라며 신중한 입장입니다. 박찬호는 현재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야구 최고의 스타인 박찬호가 다시 한번 감독으로 제2의 야구 전성기를 맞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