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6.25 한국전쟁 중 일반인들에게는

 

 많이 잘 알려지지않은

 

용문산 전투에 대해 써보려고해요

 

 

 

 

6사단용문산 전투

 

1951.5.17~ 1951.5.21  경기도 가평군 용문산

 

 

국군 6사단 VS 중공군 187.188.189 사단

 

군대에대해 잘모르시는분들을위해 하나 설명드릴게요

 

분대<소대<중대<대대<연대<사단<군단

 

예하부대 3~4개가 뭉치면 한개의

 

 상급부대가 생각하시면되요.

 

ex) 3개의 대대 = 1개연대 , 3개의 연대 = 1개의사단

 

 

<당시 6사단장 장도영 준장>

 

평은 그렇게 좋은 장군은 아니였어요.

 

용문산전투가 바로 장도영준장의

 

 최대업적일꺼라 생각되요.

 

 

51년 4월말 1차 춘계대공세를 실패한 중공군은


다가오는 5월에 2차 춘계대공세를 펼치게 되는데


그 장소가 바로 군사,교통의

 

 요충지였단 용문산 일대에요.

 

6사단한국전쟁 개전 초기인

 

춘천-홍천 전투에서 북한군

 

저지하면서 유명세를 떨친 사단이었어요


 

 

 

하지만 6사단은 이전에 사창리 전투에서

 

치욕적인 패배를 맛보았기에


 

장병 모두가 결사 (죽기를 각오) 라는 문구를


철모나 머리띠에 적고 나서 전투에 임합니다.


 

 

 

 

주 저항선에는 7연대19연대가 위치해 있고


그 위로 2연대 1대대는 미사리 2대대는 울럽산

 

3대대는 353고지에 진지를 구축했어요.

 


 

 

 

 

2연대 1대대중공군 187사단

 

공격을 해오자


적 한개 연대 급을 격파하고 나산까지 후퇴를 합니다.


대대가 연대급을 격파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거죠;

그 시각 중공군 188사단

 

공격으로 2연대 2대대


 

무려 하루라는 시간 동안 버티고 버티다

 

끝내 427 고지로 후퇴를 합니다

 

<중공군의 도하>

출처 : 6.25 60주년 사업단


 

역시나 한개 대대가 사단급을

 

 상대로 하루를 버틴것도

 

 역시나 엄청나고 말도안된다고 생각됩니다.

 

아무리 지형을끼고 싸웠다고해도

 

 한대대가 한사단급을 상대로

 

가능하다는게 신기할정도입니다.


그리고 원래 작전은 후퇴하게 될 경우

 

사단의 주 저항선 이남까지 후퇴해라

 
이거 였는데 2연대 독단적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바로 후방의 고지로 들어가서 항전을 하게 되는겁니다


 

 

역시나 중공군 187사단188사단

 

2연대 섹터를 공격했어요.


여기서 중공군은 상대가 방어가

 

너무 탄탄하다고 느꼈고


그러다 보니 2연대의 독자적 저항선을

 

6사단의 주 저항선이라

 

착각을 해서후방에 있던 예비사단인

 

189사단 까지 공격에 가세.

 

국군 2연대 VS 중공군 3개 사단이 싸우게 됩니다.

 

병력차이만 어마어마 함에도

 

불구하고 결사 정신과


후방의 화력지원 밑 공군 공습으로

 

끈질기게 방어를 합니다.

 

초반에 말했듯이 3개연대가

 

모여야 1개사단입니다..


 

<미 포병대의 지원 사격 >


 

 

 

그런데 중공군 3개 사단이 총력을

 

다해서 한개 연대를 치는걸알고

 

기회다 싶어 주 저항선을 지키던

 

 7연대19연대는 적의 후방을 쳤어요.

 

중공군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자신들보다

 

 많은 병력이라고 착각을 하고는


스스로가 와해되서 대규모의 피해를 입고


21일이 되자 도망을 치게 됩니다.

 

이 여세를 몰아 국군 6사단

 

 70~80km 까지 추격하고


이 때부터 미군도 적극적으로 가세합니다.


결국 화천호에서 퇴로가 막힌 중공군 대부분을 섬멸해요


 

 

 

 

이렇게 해서 전투는 24일 까지 이어져요.


용문산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는 용문산 전투


추격 끝에 섬멸하게 되는 것을

 

파로호 전투라고 불리는데


용문산 전투 안에 파로호 전투

 

포함 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국군 피해 전사 107명, 부상 494명, 실종 33명

 

중공군 전사 1만 7,177명 포로 2,183명

 

1명당 100명 이상 죽였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전과라고 할 수 있죠.

 

<용문산 전투가 끝난 후 제 6사단 2연대 1대대

중화기소대 장병들이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미지 출처=유용원의 군사세계)

 

단일 전투로서 이만한 전과는 한국전쟁 통틀어

 

그 예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대승이였습니다..


 

 

 <중공군 포로>

<중공군 포로>


 

<승전 소식 후 이곳을 찾은 이승만 대통령 (뒤에 타있는 사람이 당시 장도영 준장)>

 

 

중공군을 섬멸한 장소가 화천호이지만

 

후에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오랑캐를 무찌른 호수) 라 명명해서


이 곳의 명칭이 지금까지도 파로호라고 불리고 있어요

 

 

 

 

<그 후에 세워진 기념비>

 

<용문산전투전적비>


 

좌.장도영 장군  우.박정희 장군

(이 때는 박정희보다 높은 자리였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부의장.  )

 

 

 

장도영 장군은 후에 국방부장관 까지 오르지만

 

박정희와 권력다툼하다 쫒겨나고

 

미국에서 생을 마감합니다.(치매도 온다)

 

아무튼 비운의 인생을 살다가신 분이죠.

 

<푸른별 제6사단 청성부대>

 

지금까지 용문산전투에대해 알아보았는데요..

 

6사단출신으로써 정신교육때 많이들었전투였지만

 

많은사람들이 모르기에 한번 써봤습니다..

 

인천상륙작전.낙동강전투등처럼 기

 

억되야할 전투라고 생각됩니다^^

 

 

 

 

출처 및 참고자료 : 나무위키.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