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때는 1980년 3월 31일,

 

6명의 아랍인들이 런던 교외의 한 모텔에 투숙하게 되는데 이들은

 

바로 "아라비스탄 민주혁명해방전선(DRFLA)"이라 불리는

 

이란 내부의 분리주의 테러리스트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아라비스탄이 뜻하는 건 이란 남서쪽 후제스탄이라 불리는 지방의 옛이름인데

 

대부분이 페르시아인으로 구성된 이란 내부에서 아랍인들이 거주하는 땅이었고

 

예전부터 이란정부에 맞서 독립을 요구해오던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제스탄 지방은 유전지대였기 때문에 상당한 양의 부가 이곳을 통해

 

이란으로 흘러들었고 따라서 이란 정부는 독립을 시켜줄 생
각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에

 

분쟁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DRFLA는 그 와중에 탄생한 무장테러단체입니다.

 

 

보라색 테두리가 이란의 후제스탄 지방이구요.

 

1847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페르시아에 양도되었습니다



1979년 이란은 이란혁명이 일어나는 바람에 팔레비 왕조가 실각하고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주도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질서의 전제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주변국들은 이란 혁명의 여파가 자신들에게 미치는 것을 우려하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 가장 경계를 했던 나라는 접경국
인 이라크였는데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혁명 이후 문화혁명을 통해 반이슬람 세력을

 

탄압하는 등 이란을 중동짱깨로 부상시켰습니다.


이라크는 시아파 인구가 대다수인 이란과 마찬가지로 과반수가 넘는

 

시아파 무슬림들이 살고 있었음에도 사 고담 후세인의 쿠데타 때문에

 

소수의 수니파 정부의 지배를 받아야 했는데,

 

후세인은 이란에서 일어난 시아파의 혁명이

 

이라크 내부로 전파되어 폭동이 일어
나지 않을까 우려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라크가 이란의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해주고

 

이란이 이라크 내부의 폭도들을 지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후세인과 호메이니의 이런 대립구도는 정치군사적 긴장을 초래했고,

 

결국 1980년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번지게 됩니다.

 

 

 

이란-이라크 전쟁 중 이란 공군의 F-14 톰캣 전투기. 이란 혁명 이후 F-14의 기술은

 

소련으로 넘어가서 Su-27 전투기의 레이다 
시스템을 완성하게 됩니다.



1980년 3월 입국한 6명의 아랍 테러리스트들은 특별한 군사적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높은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닌 말 그대로 오합지졸의 집합체였고

 

리더인 오엔 알리 모하마드만 유일하게 대학문턱을 밟아본 사람이었습니다.

 

이놈들은 1달 전부터 영국에 들어와 쇼핑과 여자들만나기
,

 

음주가무에 한동안 빠져지내다가 

 

본래의 목적을 실천하기 시작하는데

테러리스트 리더 오엔 알리 모하마드



이들은 4월 30일 아마도 이라크 대사관을 통해 전달된 것으로

 

보이는 무기를 수령하고 곧바로 프린세스 게이트에 있는 주영 이란 대사관으로 직행합니다

 

소련제 권총과 기관단총, 파쇄수류탄으로 무장하고 대사관 정문으로 난입하여 경비를 보고

 

있던 메트로폴리스 순경 한 명
을 간단히 무장해제시키고 26명의 민간인-대부분이 아랍인,

 

대사관 직원-을 인질로 잡았습니다.

7분만에 런던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고 테러범 리더인 오엔과 전화를 통한 협상이 시작되었는데

 

이 때 최초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란은 후제스탄을 독립시키고 억류중인 아랍인 91명을 자유롭게

 

풀어주지 않으면 대사관을 폭파하고 인질을 모두 죽이겠다!'


근데 왜 하필이면 영국대사관이였을까요 

 

큰 이유는 없었던 것 같고 영국 내에 많은 무슬림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과 영국언론의 전달력을 빌어 자신들의 대의명분을

 

서구사회
에 확실히 전달하고 싶었던 걸로 보여집니다.

 

<1979년 미 대사관의 성조기가 불타고 있는모습>

 

당시 이란은 미 대사관직원들을 6개월째 테헤란에 억류중이었고,

 

호메이니는 주영 이
란대사관 점거 사태를 CIA와 MI6가

 

후제스탄 분리주의자들과 함께 공모한 보복성 공격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아무튼 사건 하루만에 각료들과 각 분야의 고문들로 구성된 위기관리위원회가 소집되었고,

 

마가렛 대처가 부재인 관계로 내무장관 윌리엄 화이트로가 의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대처는 비록 이란 대사관이 해외 영토로 취급되긴 하지만 영국 법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공권
력 투입을 고려하기 시작했고

 

대사관 실내를 재현한 목조 세트가 건설되어 SAS팀의 모의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마가렛 대처 수상과 22대대 SAS대원들>



첫째날에 오엔은 BBC뉴스데스크에 전화를 걸어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밝혔고

 

얼마 뒤에는 몸이 안좋은 인질 2명을 밖으로 풀어주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대사관의 다른 전화선을 모두 끊고 오엔과 협상을 계속하는 동시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느라

 

벽에 드릴을 뚫기
도 했는데 테러범들이 이 소리에 의심을 품자

 

공항공단의 협조를 얻어 비행기를 건물 저공으로 통과시키는 등 노이즈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1950년 창설된 SAS는 이전까지 전세계에 그 존재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테러범들은 곧 요구사항을 바꾸어 영국 언론이 자신들의 성명을 공개적으로 방송해줄 것과

 

아랍 대사를 통한 자신들의 안전한 출국을 요청했습니다.

 

영국정부는 일단 요르단, 알제리, 쿠웨이트, 레바논 등의 대사와 접촉하여

테러리스트들 하고 대화해주길 부탁했지만 요르단으로부터는

 

할수없다는 답변과 다른나라들은 일단 상의해보겠다는 대답만왔다고합니다.


외교가 진전이 없는 가운데 테러범들의 성명은 둘째날 저녁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하지만 왜곡된 부분이 많았는지 오엔이 전화를 걸어 

"날 속이다니, 넌 나쁜 아이야!"하며 날뛰자 BBC는 성명을 다시 발표하기로 했고,

 

경찰은 그 대신 두 명의 인질을 추가로 풀어달라는 요구를 얻어내어

 

2명이 더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DRFLA의 성명문을 기자에게 넘겨주는 테러범.

 

이들은 총 5명의 인질을 풀어줬습니다>




넷째날이 되자 영국정부는 다른 아랍국가들로부터

 

테러리스트와 이야기해볼생각이없다는 답변을 받게됩니다.

 

 그러는 사이에 SAS는 대사관 건물의 시공업자와 풀려난 인질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종합하여 돌격계획을 짜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테러리스트
의 숫자, 위치, 무장 등을 파악하는데

 

인질들의 정보가 매우 결정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 테러범들은 이란 외교부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보를 받는데,

"우리는 인질로 잡힌 이란 국민 여러분들이 순교자가 될 준비가 되었다고 믿는다 "

한마디로 구출할 생각이 없었던 거였죠.

테러범들은 45분 내로 아랍 대사를 불러주지 않으면 인질 한 명을

 

죽이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내게됩니다.

 

  영국 당국은 협상이 이미 결렬되었음에도 외교부가 아랍 대사와 계속 접촉하고 있다는

 

가짜뉴스를 흘려보내면서 시간을 끌지만

 

결국 이란인 한 명이 처형당하게됩니다.

 

 
대처는 영국 경찰의 현장지휘권을 국방부로 이양하는 것을

 

허락하게 되는데 이는 곧 SAS의 투입을 승인한다는 결정이었습니다.

 

 

 

 

<인접 건물에서 대사관 후미를 정찰중인 SAS>



SAS의 돌격플랜은 건물의 정면과 후면에서 동시에 기습하는 것이었어요.

 

4인1조 3개 팀으로 이루어진 레드팀은 옥상에서 레펠링을 통해 2층 
발코니로 진입,

 

3층과 4층까지 소탕하기로 되어있었고, 3개 조로 구성된 블루팀은 1층과 지하 담당이었습니다.

 

 

<이 작전은 '님로드 작전(Operation Nimrod)'이라고 알려집니다.>




오후 7시 대사관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SAS팀은 이어폰을 통해 작전개시를 뜻하는

 

"런던 브릿지"를 동시에 수신했습니다.

 

돌격팀 리더의 GOGO
하는 외침과 함께 SAS팀들은

 

저격수의 엄호를 받으면서 동시에 정해진 위치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1층 진입을 대기 중인 SAS>


건물 진입은 대사관 천장 중앙의 유리돔을 통해 섬광탄(스턴 그레네이드)

 

2개가 터지는 것을 신호로 동시다발적으로 기습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2층 발코니로 진입하기로 된 레드팀 한 명이 위치를 잡다가

 

실수로 유리를 깨뜨리는 바람에 오엔의 주목을 끌게 되었고,

 

섬광
탄을 기다리기도 전에 건물로 진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CS탄과 섬광탄을 건물로 던져넣긴 했지만

 

바닥 카펫에 뿌려진 등유에 불이 옮겨 붙었고

 

팀 리더는 레펠 도중 줄이 걸리는 바람에 화염에 노출되어 방독면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방독면을 벗고 CS가스로 가득찬 실내를 맨얼굴로 들어가는 근성을 보여줬다고합니다.

 

 

 

<가장 왼쪽에 혼자 방독면 벗고 있는 팀리더>



이제 섬광탄이 터지고 건물 정면 발코니에 폭약을 설치한 블루팀이

 

엄청난 폭발과 함께 실내로 진입하면서 마침 서있던

 

오엔을 사살했고 다른 팀들도 문을 부시고 CS탄과 섬광탄을

 

던지면서 맡은바 구역을 소탕하기 시작했습니다.

창문을 깨고 실내로 진입한 레드팀은 눈앞에 테러범이

 

어벙하게 서있는 것을 보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기고장때문에 총알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즉시 9밀리미터 권총을 꺼내 사살에 성공합니다.

 

 

<창문으로 진입하는 블루팀>



이제 테러범들은 전보실에 모여있는 인질들을 처형하기 시작했는데,

 

한 명이 총에 맞자마자 신속하게 진입한 레드팀의 사격으로

 

 머리가 관통됬고 나머지 테러범들은 무기를 버리고 대피하는 인질들의 인파에 섞여서,

 

몰래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인질들의 도움으로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사살되었습니다.

상황이 진압되자 SAS팀은 인질들과 함께 건물밖으로 대피했고

 

카메라를 피해서 조용하게 사라졌습니다.

 

 

 

<사건 이후 이란 대사관의 모습. 엄청난 폭발의 흔적>




모든 작전은 17분만에 끝났지만 그 여파는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돌격 도중에 사망한 인질은 1명, SAS팀 사상자는 부상1명에 불과했고,

 

테리러스트 5명 사살 1명 체포라는 대단히 성공적인 결과로 마무리된 경우였는데

 

위기관리위원회가 처음 예측한 40퍼센트의 인질 사
망률에 비교하면

 

얼마나 대단한지 알수있습니다.

체포된 테러범은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27년을 복역한 뒤

 

가석방되어 엄청 늙은모습으로 겨우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합니다. 

 

영국은 그를 이란으로 송환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그동네에서 처형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88년도 인권조례에 따라 참정권 없이

 

영국에서 살아
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습니다.

이란은 일주일 전 미국의 델타포스가 테헤란에 억류된 미 대사관

 

직원들을 구출하려다 실패한 사건을 빌미로 주영 이란 대사관 점거사태

 

미국과 영국이 이에 보복하고자 모의한 것이라며 비난하는 바람에

 

서구권과 이란 사이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지만 마가렛 대처는 이 
사건을 통해 공권력의

 

적시 적절한 투입과 정부기관의 긴밀한 협조, 명확히 구분된 책임분담을 보여주어

 

영국의 위신을 높이고 보수당
의 지지를 굳히게 되었습니다.

SAS가 원하지 않는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것과는 반대로

 

DRFLA의 존재는 후제스탄 분쟁의 이슈와 마찬가지로 잠깐 떠오르는가

 

싶었지만 
곧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에 온세상의 관심이 쏠리면서

 

다시 조용하게 묻혀버렸습니다.

 

 

 

출처 및 참고자료 : 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