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유럽을 요새화 시키기 위해 만든 '대서양 방벽'
히틀러는 영국 본토 항공전의 실패로 더 이상 영국을 점령할 수 없게 되었고 연합국 해군 전력을 차단해 상륙을 사전 저지하는 것도 힘들어지자 연합국이 프랑스에 상륙하는걸 저지하기 위해 거대한 대서양 방벽(Atlantic Wall)이라는 방어선을 구축하게 됩니다.
구간은 프랑스의 비스케이만에서 네덜란드와 독일의 국경까지, 실제적으로는 노르망디에서 시작하여 파 드 깔레까지 이어지는 총 연장이 3,860Km에 이르는 거대한 방어선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방벽을 건설을 시작하였는데 바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히틀러는 전문가도 아니였는데 불필요한 간섭을 자주 했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독일 내 자원수급 문제까지 발생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량 콘크리트나 철강이 필요한 요새를 짓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결정적으로 이런 방어선을 당장 전선에 필요한 물자를 대량으로 소모하면서 만들 필요까지는 없다는 독일군의 상당수 고위층의 의견때문에 공사의 진척도는 바닥을 달렸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이 패배하면서 궁지에 몰렸던 에르빈 롬멜 장군이 새로 만들어진 B집단군의 사령관이 되었고 분위기가 좀 바뀌게 되었습니다. 원래 롬멜 장군은 대서양 방벽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나, 연합군이 상륙작전에 성공해서 프랑스를 교두보를 만들면 더 이상 독일이 막아낼 수 없다고 판단하고 결정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건설물자와 장비는 히틀러가 중시했던 파 드 칼레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채널 제도에 집중되었습니다. 물론 채널 제도에는 중장갑을 갖춘 해안포 진지를 설치하는 등 대서양 방벽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방어진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연합군이 상륙할 노르망디는 물자도 제대로 못 받아서 제대로 된 요새시설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계획했던 연합군은 독일군의 대서양 방어 방벽을 독일의 지원부대가 도착하기 전에 돌파했습니다.
하지만 꼭 노르망디가 아니더라도 연합군의 상륙작전은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독일군이 아무리 잘 막는다고 하더라도 3,869km에 이르는 거대한 구역을 한정된 독일의 군대가 수비한다는 것은 불가능이었습니다. 또한 독일군은 분산되어있었고 연합군은 엄청난 밀집도를 가지고 취약한 부분 한 곳을 돌파하기 때문에 에초에 그 넓은 구역을 방어한다는 것이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또한 독일은 상륙작전을 저지하는 것보다 소련에 대한 침공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많은분들이 방벽 덕분에 상륙 이후 연합군을 한달여간 저지할 수 있었으며 만약 노르망디 지역에까지 본격적으로 방벽 건설이 되었으면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실시한 당시 상황을 보면 이 대서양 방벽이 완벽하게 요새화가 완성되었다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을수도 있고 상륙작전이 실패했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여담으로 연합군은 여기에 쓰인 방벽 구조물중 철근빔으로 만들어진 대전차장애물을 활용하여 '헷지 차퍼' 혹은 ' 헷지 블로 커터'라는 전차 장비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이 대서양 방벽이 많이 남아있는 이유 중 첫번째는 철거공사비용이 천문학적이여서 감당할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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