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차 세계대전으로 미소를 보인 이유
1920년대 미국 경기는 호황세였고 주가는 계속 상승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 대부분 모두 차를 몰고 넓은 집에서 살았으며 여유롭게 여가생활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부풀어 오르기만 하던 거품이 마침내 터져버렸고 1930년대 미국은 실로 암울했습니다. 10달러에 팔리던 물건들은 5달러에 내놓아도 팔리지 않았고 3달러... 2달러 가격은 계속 내려갔습니다. 1932년 미국의 실업자는 1,200만 명을 넘어섰고 14만 개의 기업이 문을 닫았습니다.
이런 대공황을 미국이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1939년 유럽에서 발발한 전쟁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 세계의 5대륙 6대양 모든 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그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약 6천만 명이 넘습니다.
그런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곳은 바로 독일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은 승전국들과 맺은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 입장에선 거의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연합국이 과도한 배상금을 독일에게 물렸기 때문입니다. 이 조약으로 인해 독일은 국제 사회에서 거의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음과 동시에 심한 모욕감을 느끼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미국의 대공황은 독일에게까지 영향을 미쳤고 독일은 점점 나락으로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독일에 나타난건 바로 아돌프 히틀러였습니다.
1933년, 나치당 당수였던 히틀러는 독일의 총리로 임명되면서 권력을 얻었습니다. 1934년 독일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히틀러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총리가 대통령의 지위를 겸하게 하는 법을 개정하면서 스스로 총통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히틀러가 총통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독일인들을 세뇌시키는 작업이었습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고 있던 독일인들에게 초토화된 독일을 재건하자며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히틀러는 집권한지 5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베르사유 조약을 어기고 빼앗긴 옛 독일의 영토인 오스트리아와 체코 슬로바키아를 합병하였고 1939년에 폴란드를 침공하였습니다. 문제는 폴란드는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동맹국이었습니다. 즉, 상호 방위조약에 의해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고 그로 인해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은 어떻게든 전쟁을 막기 위해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시기에서도 히틀러의 비위를 맞추고 달랬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히틀러의 목표는 3개국 합병이 아니라 유럽 정복이었습니다.
미국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다가 1941년 마지막 무렵에야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습니다. 미국 정부가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목격하고 난 후 다른 나라들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고립주의 노선을 택했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지만 사실 그것은 좋게 포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고립주의 노선을 채택한 진짜 이유는 돈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은 이미 1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군수 물품을 각국에게 수출하면서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대공황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때 2차 세계대전이 또 발발하였습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상 유례가 없는 인력을 동원하여 군수 공장을 가동하였습니다. 당시 미국에 있던 모든 공장들의 40%가 군수 생산 공장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군수 공장이였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전쟁이 벌어진 약 5년의 기간 동안 전투기 324,750대, 탱크 88,000여 대, 군함 7,600척 등을 생산해 냈습니다. 참고로 미국 미시간주 윌로런의 포드 공장에서는 B-24 리버레이터 폭격기가 하루에 22대꼴로 4년간 1만8000대가 생산되었으며 독일의 타이거 전차가 1대 생산되는 시간에 미국의 M4 셔먼 전차는 37대가 생산되었습니다. 그렇게 미국은 단독으로 전 세계 군수 물품 생산량의 41%를 생산해 내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이어지는 6년 동안 미국은 연합군에게 많은 무기, 탄약,식량, 연료를 제공하면서 ‘민주주의의 병기창’이라고 불렸습니다. 소련 공군이 보유했던 항공기의 15%인 1만8000대가 미제였고 미국이 지원한 40만대의 트럭과 1500만켤레의 전투화, 1800량의 기관차와 1만1000량의 화차는 소련군의 발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미국 군수 산업의 원동력은 바로 노동력이었습니다. 대공황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였던 미국에는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1943년 미국에 거의 모든 국민이 군수 공장으로 인해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여성들도 군수 공장에서 24시간 동안 교대로 일을 하며 비행기, 탱크, 무기, 탄약 등을 생산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여성들을 리벳공 로지라고 불렀습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겉으로는 고립주의 노선을 택하여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결론적으로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미국은 엄청난 돈을 벌었고 벗어나기 힘들어보였던 대공황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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