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일본 자위대는 최근 유사시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파워와 속도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육상자위대는 기동군으로 거듭나고 있고, 해상자위대는 이미 욱일기를 휘날리며 대양을 누비며 항공자위대는 북핵 위기를 빌미로 장거리 공격 능력까지 갖추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우주 상황을 감시할 우주감시부대까지 창설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처럼 일본 자위대 전력이 수직 급상승하자 일본 여러 커뮤니티들에는 한국군의 부정적인 이슈나 방산비리 사건들을 묶어서 한국군 수준이라는 제목이 올라와 한국군을 비웃고 있습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우리군 사건보다 일본 자위대 사건 사고는 더욱 다이나믹하고 기가 막힙니다. 그래서 오늘은 해외에서 놀림감이 된 일본 자위대의 굴욕적인 사건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군 F-15J 격추 사건

 

1995년 11월 22일 미사일 사격훈련중이던 항공자위대 제 6항공단 303비행대 소속 F-15J 전투기 편대 중 1기에서 갑자기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이 발사되었고 앞에 있던 동료 F-15J 전투기 후미에 명중해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팀킬....) 이 사건은 현재까지도 세계 여러 F-15 운영국에서 일본을 놀리고 있는 전설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지스함이 어선 충돌

 

일본이 자랑하는 최첨단 이지스함이 2008년 2월 19일 새벽 태평양 연안에서 어선이 근접하는 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충돌했습니다. 사고 당시 해역은 어둡기는 했지만 풍속 7, 파도 0.5, 시계는 20㎞ 정도로 양호한 상태였습니다. 이 사고로 소형 어선은 두토막 난 채 침몰했으며, 어선에 타고 있던 어부 2명이 실종됐습니다. 당시 사고 함정은 길이 16, 배수량 7700t 규모 성능이 크게 향상된 최신 이지스함이라는 점이 큰 충격이었습니다.

 

 

  잠수함 추격 사건

 

어선을 충돌해 큰 망신을 당한 일본의 이지스함 아타고함이 얼마지나지 않은 2008년 9월 14일 또 다시 황당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고치현 주변 해역을 항해하던 아타고함은 영해 안쪽 7㎞ 지점에서 잠수함의 잠망경으로 보이는 물체를 발견하고 2시간 가까이 추적했습니다. 그러나 그 물체는 아타고함의 추적을 따돌리고 유유히 영해를 벗어나 사라졌습니다. 이후 일본 군사 전문가들은 '일본의 군사 태세를 점검하려는 중국 해군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였지만 당시 아타고함이 고래를 잠수함으로 오인하여 추격했던 해프닝으로 결론지어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일본은 국민들로 엄청난 조롱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화물선과 호위함 충돌

 

2009년 10월 27일 해상자위대 제2호위대 소속 시라네급 호위함 2번함이 우리나라 화물선(7천톤급)과 충돌했습니다. 사고 당시 우리나라 화물선이 앞에 가는 배를 추월하기 위해 중앙선 침범을 하다가 반대편 수로에서 오는 일본 호위함과 충돌했다고 알려졌지만 우리나라 화물선에게 중앙선 침범을 지시한 게 바로 일본 통행관제소였습니다. 선원이 20여명도 안되는 우리나라 화물선은 당시 발생한 화재 등 재난 대처를 잘했지만 백명이 넘는 인원이 있었던 일본 구축함은 화재를 진압하는데 11시간이 걸렸습니다. 군사전문가들은 첨단 레이더를 장착한 해상자위대 군함들이 왜 충돌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습니다.

 

 

  Tu-95 초계기 일본열도 순방 사건

 

2011년 9월 8일 냉전시대 당시 정찰·폭격을 담당했던 러시아의 폭격기 투폴레프 TU-95 2대가 일본열도를 전역을 돌아다녔습니다. TU-95는 오전 6시쯤 쓰시마섬 동쪽에서 일본 영공에 접근하여 오후 8시쯤 러시아로 돌아갔으며 그 중간에 러·일 간 영토분쟁 지역인 쿠릴열도 부근 상공에서는 공중급유기 IL78과 합류하여 공중급유까지 받았습니다. 그렇게 무려 14시간 동안 일본열도를 묵묵히 비행했습니다.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러시아군 폭격기가 일본열도 주변 상공을 완전히 일주하였으며 일본은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는 굴욕을 겪었습니다.

 

 

  8만명을 동원한 대규모 수색 작전

 

2013년 10월 12일 훈련장 내를 소형 사륜구동 차량으로 이동 중 자위대원이 89식 소총을 분실하였고 자위대는 즉각 훈련을 중지하고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총 수색에 총 8만명의 인원을 투입하여 2개월 동안 수색했지만 결국 발견하는데 실패하였습니다. 이 수색 작전은 일본 자위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 작전으로 남았습니다.

 

 

  10식 전차 궤도 이탈

 

2015년 후지 종합화력연습에서는 3.5세대 10식 전차 기동훈련중 궤도가 빠져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최신식 전차가 평지주행중 궤도가 빠져버리는 모습은 해외까지 널리 알려졌고 일본 체면은 제대로 구겨졌습니다. 더 재밌는 점은 이걸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한 시간 가까이 고생만하다가 결국 그냥 견인해버렸습니다.

 

 

  장갑차 바퀴 이탈

 

2016년 11월,오이타 주둔지에서 59주년 육상자위대 행사 도중 96식 장갑차의 차축이 부러져 앞바퀴가 빠져버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후 장갑차는 정지 후, 후진을 시도했으나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공개 기념행사 중이라 세계적 망신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일본 네티즌들도 '또 한국한테 덜미잡혀 바보 취급당하겠구나' '러시아제 40년 된 BTR이 더 잘 달릴 것 같다'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국전쟁이 발생하자 세계 각국에서 지원병을 머나먼 땅 대한민국까지 파병보냈습니다. 터키는 타흐신 야즈즈 소장이 이끄는 1개 사단 + 1개 여단의 부대를 파병하여 미국과 영국 이외에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했으며 프랑스 몽클라르 장군은 한국전쟁 당시 자신의 계급까지 스스로 강등시켜가면서 전투의 참전을 고집했으며 그 휘하 부하들도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총검돌격을 불사하면서까지 매우 적극적으로 한반도를 방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경우 셀라시에 황제가 자신의 친위대를 보내면서까지 대한민국을 지원했습니다. 그 외에도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이나 여러 나라 또는 부족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돕겠다고 서로 발벗고 나섰습니다. 특히 대한민국과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단순한 혈맹국 이상으로 가까워졌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살았다!'를 외친 나라가 있었는데 바로 일본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 일본 도쿄 풍경

 

한국전쟁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극빈과 최악의 경제 상황,패전에 대한 아픔으로 신음하던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당시 일본 경제는 1920년대 수준으로 돌아간 상태였으며 모든 물자가 부족했고 전력난으로 모든 공장은 가동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천우신조다!

한국전쟁을 발판으로 일본 경제를 다시 일으킬 수 있다!'

-당시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였고 국제적으로는 태평양 전쟁 이후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전후복구에 전념하던 일본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에서 대량의 보급물자 생산 및 수송을 발주받은 덕에 불황을 조기에 벗어나 경제 성장의 발판을 다졌습니다. 오직 소독약만 팔아서 부자된 사람들도 존재했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1950년 7월 8일 맥아더는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 총리에게 7만 5천명 규모의 경찰예비대 창설을 요구했고 일본은 차출된 미군 병력의 공백을 막기 위해 자위대의 전신인 경찰 예비대를 75,000명이라는 엄청난 숫자로 창설하였습니다. 이들은 결국 1952년 보안대로 변경했다가 1954년 자위대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날 최첨단 자위대라는 막강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한국전쟁이 아니면 자위대는 커녕 제대로 된 군사력을 조금도 보유할 수 없는 원초적 국가였지만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한국전쟁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다름 아닌 일본이었습니다.

 

 

오죽하면 1990년대 말,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불황이 크게 생기자 일부 정신나간 일본인들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일본이 다시 일어난다는 소리까지 해댔습니다. 지금 현재도 일부 일본인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일본 경제 부흥이라는 헛소리를 하고 있지만 만약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져서 중국군이 개입하더라도 전선은 수도권 인근에서 고착될 가능성이 크고, 후방 지역 공업지대는 전쟁 경제로 전환하여 물자를 생산하기 때문에 일본이 이익을 볼 것은 거의 없습니다.

 

 

한편 중국은 국공내전에 승리하여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1년 내에 대만까지 침공해 중국 완전 통일을 계획했었습니다. 하지만 공격 개시 넉 달을 남겨두고 김일성이 한국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미국이 참전하였고 미국의 제7함대는 작전범위가 대만까지 가능했습니다.

 

*1950년 10월 16일 입북하는 중공군을 환영하는 신의주 북한 주민들

 

그리고 1950년 10월1일 북한의 김일성이 중국 정부에 파병을 정식 요청하면서 대만을 침공하기 위한 병력과 장비도 북한을 돕기 위해 투입되버렸습니다. 당시 미국은 중국에게 북한에 파병을 하지 않으면 즉각 외교관계를 맺겠다고 했지만 중국은 미국이 공산사회를 이간질하기 위해 꾸민 음모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이후 한국전쟁이 휴전되고 마오쩌둥은 러시아 소련대사와의 개인 면담에서 '내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을 도와준 것을 정말 후회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 중공군 사망자 14만8천600명, 부상자는 79만8천400명 이상으로 추정)

 

 

만약 중국이 북한을 그대로 방치하고 한국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대만을 침공해 완전한 중국통일을 이루었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또한 북한을 포기했다면 국제사회에서 더 빨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얻어 현재보다 더 빨리 강대국이 되었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결국 한국전쟁으로 일본은 웃고 중국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항공모함은 항공기를 발착시키는 넓은 갑판과 격납고 및 수리 설비를 갖추고 있으며 보통 1개 항공모함에는 6000~7000여 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전투기 80여 대가 탑재돼 있어 떠다니는 공군기지로 불리며 작전반경은 1,000km에 달합니다. 사실 우리나라도 1996년 김영삼 정부 당시 독도 문제를 둘러싼 일본 정부와의 갈등이 심화되자 항공모함 도입을 추진했지만 이듬해 발생한 금융위기로 인해 좌절됐습니다. 현재 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당장 항공모함을 도입하거나 운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합니다. 일단 그 이유를 크게 3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대한민국 해군 특성상 불필요하다.

 

우리나라도 항공모함을 가지면 멋진 해군이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그 필요성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일단 우리나라 해군의 개념은 대양해군이 아닌 연안해군입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작전지역이 넓지 않기 때문에 장거리를 기동하는 항공모함이 별로 필요치 않습니다. 떠다니는 비행장이라 불리는 항공모함이 없어도 북한까지의 작전거리가 짧기 때문에 육지의 비행장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합니다.

 

 

 항공모함 전단을 구성하기 부족하다.

 

항공모함 한 대의 위력도 놀랍지만 더 위력적인 것은 항공모함이 이끌고 다니는 항모전단의 전투력입니다. 항공모함만 만들어서 함재기를 운용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일반적으로 항공모함은 단독운영을 하지 않고 이지스 구축함이나 순양함, 핵추진 잠수함 등으로 구성된 항모전단과 같이 움직입니다.

 

 

미 해군은 평시에 이지스 순양함 1~2척, 이지스 구축함 2~3척 등 8~13척 규모의 함대를 항공모함과 함께 운용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해군은 순양함도 보유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장 우리나라가 항모전단을 운용하려면 최소 30여대의 함재기와 2척 이상의 이지스 함이 필요합니다.참고로 미국 제3함대 소속의 칼빈슨호의 경우 항모전단을 구축하는데 예산이 18조원 이상 들어갔습니다.

  

 

셋째 막대한 개발.건조 비용과 운영비를 감당하기 힘들다.

 

항공모함의 뛰어난 전투능력과 작전반경 때문에 세계 많은 나라들이 항공모함을 보유하길 원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기술력이라면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노력하면 항공모함을 보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대한 개발비와 건조.운영비 때문에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항모 1척 건조비용만 5조~6조원 가량 듭니다. 그리고 한 해 국방비가 40조원에 불과한 현재 상황에서 연간 1~2조원이라는 막대한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력이나 경제수준은 이같은 무기체계를 운영할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한국 해군에게

항모보다 더 필요한 무기

 

 

하나 최신예 원자력 잠수함

 

기존의 재래식 잠수함의 경우 디젤엔진과 발전기를 사용해서 연속 3일 정도만 수중 항해가 가능하고, 계속적으로 공기를 흡입해야 하기 때문에 적에게 쉽게 노출될 뿐만 아니라 속도도 매우 느린 편입니다. 하지만 원자력 잠수함은 적게는 10여 년에서 많게는 30년 동안 핵연료를 교체하지 않아도 돼, 수개월 이상 연속 잠항이 충분히 가능하고, 속도 역시 디젤 잠수함보다 두 배 이상을 낼 수 있습니다.

 

 

이런 원자력 잠수함은 북한 SLBM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대응책입니다. 북한은 신포급 이후에 더 많은 SLBM을 탑재할 신형 잠수함을 현재 건조 중인데 건조 중인 잠수함이 아무리 재래식 잠수함이라고 해도 우리 해군이 현재 보유 중인 잠수함인 209급이나 214급으로는 대응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오랜 기간 잠항할 수 있는 원자력 잠수함을 이용해 SLBM 탑재 북한 잠수함을 출항할 때부터 끈질기게 추적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해군은 현재 북한에게 뒤쳐지지 않지만 중국과 일본에는 절대적으로 열세입니다. 특히 중국 해군은 수년 이내에 4척의 항모 전단이 완성되어 미국 해군에 이은 제2의 세력을 갖출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 항모전단에게 원자력 잠수함의 존재는 가장 부담스럽고 치명적인 전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부담스러운 점은 최신예 원자력 잠수함의 경우 한 척당 2조~3조 원으로 최소 3~6척은 보유해야 우리가 원하는 북한 SLBM 대응임무와 중국의 항공모함 전단 견제에 투입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지만 원자력 잠수함이 가져다주는 전략적 효과는 그 이상일 것입니다.

 

 

 순양함

 

순양함은 독자적인 전투능력과 충분한 군수품을 적재하여 대서양을 왕복 항해하면서 작전할 수 있는 순양능력을 갖춘 함정입니다. 1만 톤 이상의 대형 전투함으로 항공모함 다음으로 큰 군함으로 구축함보다 한 단계 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금 현재 순양함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 뿐입니다.

 

 

우리나라에게는 현실적으로 항공모함보다는 순양함이 더 필요해보입니다. 순양함은 기본적으로 육해공 그리고 해저까지 완벽하게 커버할 수 있는 종합대응체계를 갖춥니다. 또한 순양함은 일반적으로 대잠수함 작전을 수행할 대형대잠헬기 2대, 각종 수중레이더(소나), 전자장비 그리고 대공미사일과 지상공격용 순항미사일 50기 이상을 보유합니다. 물론 우리 해군은 미국의 이지스 구축함을 제외하고는 성능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고 있는 세종대왕함을 보유하고 있지만 순양함을 보유한다면 우리 해군의 위상 자체가 달라질 것입니다.

 

 

 초음속 대함 미사일

 

수만톤에 이르는 거대한 군함을 격침시키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초음속 대함 미사일을 도입하거나 개발중에 있습니다. 아무리 중국이 강력한 항공모함 전단을 보유한다고 해도 우리나라가 초음속 대함 미사일을 보유한다면 우리나라를 상대로 분쟁을 절대 일으키지 못합니다. 현재 개발되는 초음속 대함 미사일의 요격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2000년부터 한국형 초음속 대함 미사일 개발을 시작하였으며 현재 개발이 완료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전배치까지 이루어지면 중국과 일본 해군은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이처럼 현재 우리나라 해군은 항공모함이라는 화려함보다는 꾸준하고 실질적인 해군전력 증강이 필요합니다.

 

현무 미사일은 현재 우리군이 가진 장비 중 가장 강한 전략 무기이며 북한에 대한 핵심적인 억제수단이자 효과적인 비대칭전력입니다. 현무 미사일은 1970년대 초 개발 시도된 백곰 미사일 계획의 후신으로 국방과학연구소의 주도로 개발되었습니다. 우리군은 1986년 현무-1을 시작으로 2006년 현무-2, 현무-3 시리즈를 배치하면서 미사일 전력을 꾸준히 증강하고 있습니다. 현무 미사일은 앞으로 미래에도 우리군을 대표하는 미사일이며 주변국들을 긴장하게 만들 무기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현무 미사일은 계속 개발이 진행되면서 강력해지고 있으며 이에 주변 국가들은 우리군 현무 미사일 배치에 대해 반발하며 긴장하고 있습니다.

 

 

  북한 공군이 가장 두려워했던 현무-1

 

사실 처음 등장한 현무-1은 탄도 중량 500kg, 마하 3 수준의 탄도미사일로 사거리가 180km로 짧아 북한이 보유한 미사일과 비교당하기도 하였으며 국내 밀덕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북한 공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무기가 바로 현무-1이었습니다. 북한 공군은 휴전선 인근에 집중배치되어있는 비행장을 제대로 가동하려면 현무-1부터 제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군 특수부대에게는 현무-1을 발견하면 기존 목표를 제쳐놓고라도 먼저 파괴하라는 지침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현무-1은 200기 이상 생산돼 차량용 발사대에 장착되어 나이키를 운용하던 강화 진지에서 운용되다가 현무-2에 임무를 넘기고 퇴역돼 예비 전력으로 보관중입니다. 그리고 최근 한화의 표적 탄도탄 K-BATS(Korean Ballistic Aerial Target System)이 공개되면서 현무-1의 모습은 더욱 보기 힘들어 졌습니다. 

 

 

  북한은 물론 중국,일본까지 겨냥한 현무-2


사거리 현무-2A 300 km, 2B 500 km, 2C 800 km,

탄두중량 현무-2A 2,000 kg, 2B 1,000 kg, 2C 500 kg

 

현무-1이 나이키 미사일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현무-2는 완전히 새로운 정밀 타격용 미사일로 개발되었습니다. 현무-2A/B는 전술 탄도 미사일 중 가장 뛰어난 생존력을 자랑해 방어 불능의 미사일이라 평가받았던 러시아의 이스칸다르(SS-26)와 매우 비슷합니다. 또한 현무-2는 사거리가 상당히 가변적인 미사일이며 궤도 정점 45~50km 이하 고도에서 A형 기준 300km의 사거리가 나오는데 이는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하는 중국과 일본을 염두에 둔 비행궤도입니다. 

 

*2017년 9월 15일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우리나라가 6분만에 2발을 발사했던 미사일이 현무-2A입니다

 

2015년 6월 공개된 현무-2B는 사거리가 500km까지 연장되었으며 발사속도는 이스칸다르와 동일한 마하 7입니다. 2016년 1월에 공개한 현무-2C는 사거리 800km이며 탄두부에 카나드(작은 날개)가 추가되었습니다. 이는 기존 현무-2A/B와는 달리 추진체 연소 종료 후 1단 로켓을 분리하고 재돌입체만 돌입하는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만약 포항에서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북한 전역의 미사일 기지를 안정적으로 타격할 수 있으며 최남단 제주도에서 발사해도 북한 신의주까지 날아갑니다. 만약 서해 5도에서 발사할 경우 중국 베이징도 타격이 가능합니다. 또한 2017년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에서 탄두중량 제한 규정을 없애기로 합의함에 따라 추후 탄두가 최소 1톤 이상으로 더 강화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2021년에는 실전 배치가 3000톤급 1번 잠수함의 6개 수직발사관에서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현무2-B/C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중국이 사드보다 심하게 반발하는 현무-3


탄두중량 현무-3A/B/C/D 500kg

사거리 현무-3A 500 km, 현무-3B 1,000 km, 3C 1,500 km, 3D 3,000km(개발중)

 

육군 미사일 사령부와 해군의 제7기동전단, 잠수함 사령부에서 운용중인 순항 미사일입니다. 제7기동전단의 세종대왕급 구축함,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에서 장착되어 있는데 일본, 북한, 중국 동북지방, 러시아 극동지방까지 타격이 가능합니다. 특히 한반도 어디에서든지 베이징은 언제든 타격이 가능합니다. 북한은 우리나라의 현무-3 미사일을 특수부대로 무력화 시키겠다고 주장하며 특수부대를 훈련시키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얼마나 부담스러웠으면...)

 

 

 

현무-2/3 모두 북한의 군시설을 무력화하기 위한 주요 무기지만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무-3는 제트엔진을 통해 음속 이하의 속도를 유지하며 저고도로 비행하기에 포착이 어렵고 정확도도 높습니다. 다만 비행속도는 로켓엔진을 사용하여 음속 이상으로 비행하는 현무2보다 많이 느립니다. 많은 분들이 미국의 토마호크와 많이 비교하지만 사실 기술적으론 러시아산 클럽 미사일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군은 현무-2C를 포함한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등 1000기 이상 확보할 예정입니다.

 

 

  사실상 전술 핵무기급 무기 현무-4


엔진 2단 고체연료

속력 마하 8 사거리 800 km 탄두중량 2톤

(유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탄두중량에 따라 사거리는 더 늘어납니다.)

 

우리군은 작년 문재인 대통령 지시하에 추진되었던 미국과의 미사일 지침 개정을 통해 탄두 중량을 2톤 이상으로 늘린 현무-4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개전 초 북한 정권 지도부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위한 고위력 탄도미사일입니다. 탄두 중량 2t인 현무-4 미사일이 개발되면, 미사일이 마하10 가량의 속도로 지상에 낙하하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면 항공기에서 투하하는 GBU-28이나 GBU-57보다 2∼3배의 파괴력과 지하 관통력을 가지게 됩니다.

 

 

이는 사실상 전술 핵무기급의 전략무기를 보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중국이 우리나라를 조준하고 있는 대표적인 핵 미사일은 14톤 DF-21 MRBM, 18톤 DF-26 IRBM입니다. 현무-4는 중국의 DF-26 IRBM과 무게가 비슷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계 정복을 꿈꾸었던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역대 존재했던 국가들 중 가장 군국주의적인 광기의 나라였습니다. 당시 군인 뿐만 아니라 경찰도 경찰복이 따로 지급되지 않고 군복을 입었으며 심지어 무장 단체가 전혀 아닌 소방관이나 공무원들까지 군복을 입었습니다. 나치 독일의 어린이들은 만 10세가 되면 의무적으로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해야 했으며 만 18세가 되면 남성은 국방군에 입대하거나 혹은 친위대에 입대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나치 독일 무기들의 성능이 우수한 편이었으며 비밀병기로 불리는 독특한 무기들도 굉장히 많이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1939년 9월 고작 1달만에 육군력이 강력했던 폴란드를 철저히 격파하고 단 6주만에 프랑스군을 패퇴시켜 항복을 받아내는 등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여주며 승승장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절대 패배하지 않을 것 같았던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히틀러의 죽음과 함께 13년 만에 멸망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세계정복을 꿈꾸었던 나치 독일이 멸망한 이유 10가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준비가 완벽하게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나치 독일은 완전히 전쟁 준비를 갖춘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공군의 경우 당시 충분할 만큼의 조종사와 조종사 양성 교육기관이 없었으며 이 문제는 전쟁 중반부터 나타났습니다. 또한 영국과 소련 내륙을 공격할 만한 장거리 폭격기 개발이 안된 상태였습니다. 해군의 경우 영국과 싸우기엔 턱없이 부족했으며 실제로 당시 해군 사령관들이 히틀러에게 전쟁을 1945년까지 미루자고 건의했었습니다. 육군의 경우에도 전차의 숫자는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군대의 기계화가 완료되지 않아 개전 당시 상당히 많은 독일군이 마차를 이끌고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전쟁 중반부터 무기 부족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경제 전반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씻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치를 만큼의 경제력이 받쳐주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히틀러의 위험천만한 도박이 성공하고 전격전이란 생소한 신개념의 전술이 성공하여 유럽을 석권할 수는 있었으나 탄탄한 공업기반을 갖춘 미국, 소련에게 전쟁을 패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히틀러는 후퇴를 허락치 않았습니다.

 

히틀러는 어떠한 악 조건속에서도 절대 후퇴를 허락치 않았습니다. 덕분에 후퇴 후 반격할수있는 작전에도 절대 후퇴는 없다를 외치며 작전을 무산시키는데 일조하였습니다. 결국 스탈린그라드에서 육군 원수 파울루스와 독일 제 6군을 한꺼번에 잃는 참패까지 겪게됩니다. 히틀러는 패망 직전인 1945년 연합군의 협상 제안에도 절대 협상, 항복은 없다를 외칠 정도로 적에게 굴복하는것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지도부는 지나친 전략 간섭을 하였습니다.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지도부는 전선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지나친 간섭을 하였습니다. 최전선에 나가서 싸우는 사령관들의 판단이 본국 사령부의 판단보다 훨씬 정확하며 이는 전쟁 초반 전격전에서 입증되었습니다. 하지만 전쟁 중반부터 시작된 히틀러의 지나친 간섭으로 모스크바 공방전, 스탈린 그라드 전투를 패배하였습니다.

 

 

 

  유럽 석권한 후 영국을 바로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나치 독일이 유럽을 석권한 후에 영국을 치지 않은 점은 중대한 전략적 실책이었습니다. 이 잠시동안의 기간동안 영국은 독일의 공격을 막을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레이더와 울트라의 등장도 독일이 영국침략 실패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만약 독일이 영국을 점령했더라면 전쟁의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지 몰랐을 것입니다.

 

 

 

  히틀러는 영국을 마무리 짓지 못한 상황에서 소련을 공격했습니다.


영국을 목표로 뒀던 히틀러는 이제 눈을 돌려 소련을 공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의 부하들은 무모한 짓이라며 히틀러를 설득하려했지만 히틀러는 오직 자신만의 생각대로 계획을 실행에 옮겨나갔습니다. 그렇게 1941년 6월 22일 소련을 기습 침공하여 초반은 순조롭게 소련 영토의 대부분을 점령하는데 성공했지만 히틀러는 끝까지 전쟁의 경험이 많은 부하들의 말은 전혀 듣지 않았고 결국 전략상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포로가 되어 수용소로 끌려온 독일 제6군의 병사들

 

그리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독일군들은 혹독한 소련의 겨울 추위와 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극한의 추위로 수많은 독일군들이 동상에 걸리거나 얼어죽었고 무기의 고장도 잦아졌습니다. 그리고 소련의 포위 전술로 인해 보급선 마저 끊기면서 결국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 제6군은 포위되어 항복하였습니다.

 

 

 

  히틀러는 무모하게 영국과 소련을 남겨두고 미국에게 선전포고하였습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었던 직후 독일은 일본과 맺은 조약에 따라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영국과 소련을 마무리짓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정말 미친짓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주만 공습이 있었던 직후가 1941년 12월 즈음이라 히틀러 입장에서는 동부전선 소련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한 상황에 자신감이 넘치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동부전선에서 소련에게 참패를 겪게되었고 이후 미국이 직접 유럽에 상륙하여 서쪽을 공략하였습니다. 이로인해 영국과 미국, 소련에 둘러쌓이게 되었습니다.  

 

 

  동맹국 이탈리아를 너무 믿었습니다.


나치 독일은 제대로 전쟁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던 것은 이탈리아에 대한 믿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실제 전력은 기대 이하였고 독일은 안 그래도 부족했던 전력을 이탈리아를 돕기 위해 빼돌려야 했습니다. 만약 해군 강국이었던 이탈리아의 믿었던 만큼 해군이 잘 싸웠다면 독일 해군이 영국 해군에게 밀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지휘에 소질없는 괴링에게 독일 공군 지휘권을 넘겨주었습니다.

 

괴링은 비록 1차 세계대전 공군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지만 지휘에는 소질이 없었을 뿐더러 약물 중독자였습니다. 그런 괴링이 올바른 지휘로 공군을 이끌어 나갈지 의문이었습니다. 결국 예상대로 괴릉은 무능한 지휘관으로 낙인 찍히며 영국 항공전에서 실질적 패배를 맛보게 됩니다. 그렇게 괴링의 신뢰도는 급격하게 떨어졌지만 히틀러는 괴링의 공군 지휘권을 박탈시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괴링은 독일 공군을 말아 먹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일본을 너무 믿고 있었습니다.

 

히틀러는 소련과의 전쟁이 시작되면 일본군이 만주지역에서 소련군을 공격해 줄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은 태평양에서 미국과의 전쟁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은 소련의 뒤를 공격할 파트너로써 일본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일본은 독일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히틀러는 세계 최초의 제트기 Me-262를 오용했습니다.


1943년 전쟁 말 독일은 세계 최초의 제트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 제트기의 이름은 바로 Me-262로 명명되었고 처음부터 요격기로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히틀러는 이 Me-262를 요격기로 생산하지 않고 전투 폭격기로 생산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결국 엔진 부품과 다른 기계적인 부품들을 전혀 다른 방면으로 다시 개조해야되었고 Me-262는 1944년 말이 되서야 전투 폭격기로 뒤늦게 생산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이를 후회한 히틀러는 뒤늦게 다시 요격기로 생산을 명하였지만 그떄는 제공권을 되찾기에 너무 늦어버린 상태였습니다.

 

우리 대한민국과 북한은 4월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하면서 많은 네티즌들 모두 큰 기대와 함께 한층 들떠있습니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대화 의지를 분명히 하고,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추가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했습니다. 또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 밝혔습니다.

 

 

평창올림픽 이후 정말 빠른 속도로 한반도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북한의 비핵화 없이는 한반도에서 영구적인 평화를 달성할 수 없으며 북한이 핵 개발을 지속한다면 국제사회의 제재는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에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한반도에 평화적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남북통일도 그렇게 먼 이야기는 아닌 듯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좀 흥미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만약 한반도 통일이 이뤄질 경우 주변국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중국

 

과거 중국에 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한반도 통일이 중국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북한이 주한미군과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북한을 지지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아직도 북한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입니다. 중국으로선 예나 지금이나 미군과 직접 접경지대에 마주하는 걸 극도로 꺼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반도 통일이 오히려 중국에 유리하다는 의견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주한미군이 더는 대한민국에 주둔할 필요가 없어지며 한국인들도 주한미군 주둔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나라에 배치되어 있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도 철수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결론 : 중국은 부담스러운 주한미군만 한반도에서 철수한다면 한반도 통일을 반길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

 

러시아는 한반도 통일에 대하여 중국보다는 우호적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통일이 평화롭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러시아는 중국이나 일본과도 상당히 대립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한반도가 통일되면 자동적으로 중국과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또 다른 세력이 생긴다는 점을 반길것입니다. 또한 러시아는 2008년부터 오랫동안 한반도를 잇는 가스관을 건설하고 시베리아횡단철도와 한반도횡단철도를 잇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도 결국 주한미군이 있는 한 한반도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결론 : 러시아는 중국보다는 한반도 통일에 대해 우호적입니다. 그러나 중국과 마찬가지로 주한 미군 철수라는 전재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

 

일본의 아베 총리는 북핵 위협을 빌미로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일본의 군사력을 증강시켰습니다. 일본은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태로 남북통일이 이뤄지는 것을 가장 걱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일부 극우들은 통일 한국은 일본의 가상적국이기 때문에 한반도 분단을 고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나라 주도로 이뤄지는 한반도 통일은 일본에게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일단 북한으로부터 미사일 위협을 제거시키고 한반도는 자본주의 시장체제로 운영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결론 : 일본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핵을 보유한 상태에 한반도 통일입니다.

 

 

 

  미국

 

미국은 한반도를 일제로부터 독립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해준 우방국입니다. 그리고 6·25전쟁에서 남한의 공산화를 막아준 은인과 같은 나라입니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한반도 통일 후 주한 미군의 존재를 놓고 논란이 일겠지만 동북아 안보 질서를 위해서는 미군이 계속 한반도에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남북통일을 가장 원치 않는 나라는 미국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중국, 러시아, 일본보다는 한반도 통일을 찬성하는 나라가 미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현재 미국도 대북 군사력 사용을 꺼려하고 있습니다. 

 

결론 : 주한미군 철수는 반대하겠지만 한반도 통일은 찬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1958년 가정용 핵 대피소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1991년 12월의 소련 붕괴되기까지 미국과 소련은 총성없는 전쟁을 치뤄야 했습니다. 이 기간은 우주 경쟁, 군비경쟁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핵전쟁의 위협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으며 소련과 미국은 서로에게 수없이 많은 ICBM을 겨냥해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이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핵무기를 이용해 ICBM을 요격하는 방안이었습니다. 이러한 계획하에 1958-62년에 걸쳐 미국은 7차례, 소련은 4차례에 걸쳐 우주 공간에서 핵실험을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우주 핵실험은 군사적 목적을 충족시키기는커녕 많은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일부 지역에서 정전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미국과 소련은 1967년 우주의 군사적 이용 금지 조약을 통해 우주의 이용은 민간용으로 제한하고,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군사기지 및 무기 배치를 금지시켰으며 1972년 ABM 조약을 통해서는 미국과 소련 모두 우주 배치 미사일방어망(MD) 구축을 금지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하지만 1983년 3월 24일 미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백악관에서 소련이 가지고 있던 ICBM으로 인한 위협에서부터 미국을 방어하기위해 인류 역사상 최고가 미사일 방어 체계(Strategic Defense Initiative)를 발표하게 됩니다.

 

 

당시 신문사들은 이 계획을 인기 SF 영화 스타워즈에 빗대 스타워즈 계획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미사일 방어 체계의 초기목표는 소련의 ICBM 2000발을 착탄 전에 격추하고, 그사이에 핵보복을 가한다는 것이었는데 말로는 쉽지만 이런 계획을 실현한다는 자체가 당시 미국이 아니면 불가능했으며 투입되는 예산도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스타워즈 계획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단 조기경보 인공위성이 소련의 ICBM이나 SLBM 발사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만약 소련에서 ICBM이나 SLBM을 발사하게 되면 1단계 요격용으로 지상에서 레이저 빔을 쏘아 올리고 레이저 빔이 인공위성의 반사판으로 반사하여 궤도로 올라오는 소련 미사일에 명중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1단계 레이저 빔으로 요격에 실패하게 되어 미사일이 재돌입체(Re-entry Vehicle) 분리 단계까지 진행되면 인공위성에서 레이저 빔으로 요격하여 격추시킵니다. 하지만 2단계에서까지 완벽히 제거하지 못할 경우 3단계 요격인 지상 격추 단계로 돌입합니다. 이때 지상으로 돌입하는 소련의 탄두를 인공위성이 경로를 추적하여 지상에서 요격 미사일을 발사하여 완벽하게 격추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미국의 말도 안되는 스타워즈 계획이 성공하게 되어 소련이 발사하는 미사일들을 모두 격추하게 되면 그 순간 미국과 소련의 전략적 균형이 붕괴되는 것을 뜻하였습니다. 이에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는 유럽에 배치된 중거리 핵미사일을 일방적으로 철수하겠다고 했으며 이후 소련 영토의 핵무기까지도 폐기한다고 밝혔습니다.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스위스 제네바의 한 호텔에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

 

그러자 1985년 1월 20일 두 번째 취임 연설에서 레이건은 핵무기의 완전 제거를 소련에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1986년 10월에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은 모든 핵무기를 폐기한다는 내용의 회담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 스타워즈 계획에 반대하는 고르바초프에 대해 레이건은 시험을 계속하겠다고 고집하면서 핵폐기 합의는 실패하였습니다. 사실 핵무기가 문제가 된다면 폐기하면 그만이었는데 없어질 핵무기를 방어하는 시스템인 스타워즈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한마디로 소련을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후 소련도 미국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스타워즈 계획와 비슷한 폴류스(Polyus)라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소련은 1987년 5월 15일, 시험 모델 스키프-DM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발사시켰지만 여러가지 문제점이 드러나며 실패하였고 예산만 잡아먹은채 계획은 전부 취소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스타워즈 계획 또한 1993년 10년 동안 약 3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24조원이란 천문학적인 돈을 집어삼킨 채 하늘에서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습니다. 스타워즈 계획은 사실상 기술적 한계로 인해 실패하였습니다. 1986년 1월 28일 NASA의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가 폭발했하는 전대미문의 대참사가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미 본토 방어는 역대 어느 안보전략보다 강조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미 본토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미사일 요격 능력 향상을 위한 우주공간에서의 미사일 감시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것은 기존의 스타워즈 계획을 다시 꺼내 드는 것으로 다만 소련에서 북한으로 상대가 바뀐 것입니다.

 

 

작년 2017년 12월 18일 미 트럼프 대통령은 출범 11개월여 만에 미국 외교와 안보의 큰 그림을 담은 새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보고서를 직접 발표하였는데 보고서에는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해 미사일 발사 전 미사일 위협에 대응 체계 등 다층의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직접 발표한 새 국가안보전략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레이건 독트린(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강력한 압박정책)의 판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예전부터 레이건을 존경해왔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공군도 2015년부터 한국형 스타워즈 계획을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스타워즈 계획은 3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1단계는 2020년까지 COP를 발전시키고 위성을 감시할 수 있는 전자광학망원경을 도입해 우주작전 기반을 다지며 2단계로 2030년까지 우주기상예보와 경보체계, 레이더 우주감시체계, 조기경보위성체계 등을 확보하는게 목표입니다. 마지막 3단계는 2040년 이후 우주물체를 요격하는 대위성요격체계, 지상에서 적 위성을 격추하는 지상기반 레이저 무기체계, 정찰·타격용 우주비행체 확보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공군은 아직 정보와 장비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도 15년 이상 우주작전 능력이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이런 스타워즈 계획에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는 것인데 실시간 우주감시에 필요한 레이더 체계 구축에만 5000억원 이상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국형 스타워즈 계획이 실현되기만 한다면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을 독자적으로 감시할 조기경보위성, 적성국가 위성을 공격할 레이저 등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작년 2017년에 이어 올해에도 북한이 핵실험을 핑계로 미사일 실험을 실행할 경우 미국이 바로 김정은 참수작전을 실행한다는 한반도 4월 전쟁설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2017년에 경우 4월에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를 포함한 미국 항공모함 3척이 한반도로 향하고, 일본과 타이완의 일부 언론들은 중국군이 압록강 인근으로 전진 배치됐다는 기사들이 나오면서 그 내용은 SNS를 통해 4월 전쟁설과 함께 급속도로 번졌습니다.

 

 

그리고 당시 방독면 판매가 10배 급증하였으며 라면, 부탄가스 등 전쟁 비상용품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었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전쟁 공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문제는 모두 가짜뉴스였습니다.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은 싱가포르 남쪽 인도양에서 호주 해군과 합동 훈련을 하고 있었으며 중국군의 전진 배치됐다는 것은 중국 인터넷에서 돌던 찌라시에 불과했습니다.

 

 

1년이 지난 2018년 3월 지금 현재에도 '평창올림픽이 끝나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이른바 4월 전쟁설이 또 다시 무서운 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4월 전쟁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라고 주장하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미국 언론에서 나온 기사 내용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주장은 기사 전체적인 내용이 아닌 제목이나 일부 내용만 가지고 전쟁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사 본문을 보면 전쟁 가능성이 낮다는 내용도 담겨 있지만 그 내용은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지난 2월 백악관에서는 선제타격설을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핵중단을 위한 선제타격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미 공화당 상원의원은 '코피 전략 같은 건 없고, 이를 이야기해본 적도, 고려한 적도, 이 용어를 사용한 적도 없다'고 합니다. 코피 작전 관련 보도 모두 워싱턴 D.C.를 맴도는 언론들이 내놓은 추측성 보도에 불과했습니다.

 

 

작년에는 북한과 미국이 서로 말폭탄을 주고 받으며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지만 지금 현재 전쟁이 임박했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북한이라는 적이 있고, 북한과는 종전이 아닌 휴전중인 상황을 고려하면 한반도에서 언제든 전쟁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실이 아닌 거짓으로 지금 전쟁이 일어날 징후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가 큽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북한을 선제 타격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사실 2017년에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국에 대한 안보 위협 중에서 북한의 핵과 탄도탄을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위협으로 상정하고 있어서 실현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북한의 대공포나 대공 미사일 등 방공망은 매우 밀집해 있지만 레이더 등 대공 탐지능력은 떨어지고 그나마도 주로 수도인 평양 주변에 집중되어 있어 미국이 최신의 전자전 기술과 스텔스 폭격기와 전투기를 동원하면 괌 기지에서 발진한 뒤 영변 핵시설 등 노출된 시설을 타격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 관련 핵심 시설 등은 거의 지하의 동굴과 시설에 엄중히 은폐, 은닉되어 있어 원자로나 발사대 같은 일부 노출된 시설들을 폭격한다고 해도 핵심 개발 능력은 보존되어 핵개발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벙커버스터를 이용해 모두 파괴하면 된다고 생각은 되지만 문제는 완벽하게 파괴하려면 지하시설과 방호시설 등의 위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필요로합니다.

 

 

지금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선제 타격 옵션은 대부분 폭격기 등에 의한 공습 중심이며 지상군은 참수작전을 위한 소규모 특수부대의 제한적 특수전 중심의 투입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이 있는데 6.25 전쟁 부터 북한과 군사적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입니다. 미국이 군사작전을 감행할 경우 중국은 6.25 당시 정전휴전협정 체결조인당사국으로서 정전협정이 파기되어 군사충돌시 제네바협정 및 국제법 관례에 따라 군수지원 및 참전의 명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2018년 2월 23일 트럼프는 최대 규모의 대북 제재의 효과가 없으면 미국은 제2단계(Phase Two)로 가야 할 것이다. 제2단계는 매우 거친 것이 될 수도 있고, 전 세계에 매우, 매우 불행할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트럼프의 발언과 이전에 행동을 살펴보면 이전보다 선제 타격 가능성은 높아보입니다.

 

만약 실행된다면 한반도 피해 규모는  

 

북한은 지금 현재 대놓고 70만 이상의 병력을 평양-원산선 이남에 배치하고 있으며 모든 전력을 공세 위주로 편제하고 있고 장사정포만 서울을 겨냥해 1,000문 이상 배치해놓은 상황입니다. 북한이 보유한 장사정포 300여 문만으로도 1시간 동안 쏟아부으면 23,000명의 사망자와2,000억 달러의 재산피해가 발생합니다.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해 원자로나 탄도탄 발사대 등 시설을 파괴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북한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이 아닌 우리나라를 타격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것이 전면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가 대북 폭격 계획을 최종단계에서 취소한 것도 예상되는 한국의 피해가 최악의 경우 100만 이상의 인명손실이 예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USA투데이는 북한이 도발해 한반도에 전쟁이 난다면 1차 세계대전 수준의 엄청난 희생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참고로 1차 세계대전 당시 공식 집계된 19개국 사상자는 약 3,252만명, 전사자 938만명이었습니다. 이어 USA투데이는 100만이 넘는 북한군 병력을 60만 한국군과 미군 2만 8500명이 막아야 하며 북한의 전차 대부분은 노후화 된 모델이지만 휴전선을 넘기엔 충분한 숫자라고 예측했습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윌리엄 페리는 최근 단기간 내에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외교 노력을 다시 기울여야만 하며 그래야 전쟁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북한군이 우리를 위협하는 북한의 전력 중에서 사용 확률이 높으면서 충격이 큰 것이 바로 수도권 불바다 위협의 수단인 갱도형 장사정포들입니다. 북한은 휴전선 북쪽에 사정거리 54~65㎞에 이르는 170㎜ 자주포와 240㎜ 방사포 340여문을 배치해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군은 이를 갱동화시켜서 대화력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간당 약 5,000발의 포탄을 사격할 수 있는 북한군 장사정포들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타격해 부숴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나 미국은 선제공격을 금지하고 있기에 평시에 먼저 공격할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100%는 아니라도 북한군의 장사정포가 불을 뿜는 것과 동시에 타격을 가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무기가 바로 공대지 무기입니다. 공대지 무기는 1991년에 발발한 걸프전 당시 미군 전투기가 이라크의 주요 군사시설을 타격하는 장면이 전 세계 TV를 통해 그 위력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현재 다양한 공대지 무기가 개발되었으며 사거리 또한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거리가 늘어나면 위협지역 밖에서 무기를 발사하기 때문에 그만큼 전투기의 생존성을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2010년 11월에 발생한 연평도 포격 사태 당시 출격한 공군의 F-15K가 북한 방사포 진지에 대한 공격을 주저했던 이유는 전진 배치되어 있었던 북한군 지대공미사일에 의해 전투기가 격추 될 가능성이 존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도입한 공대지 미사일이 바로 타우러스(KEPD 350 TAURUS)입니다.  

 

 

사거리가 약 500km에 달하는 타우러스는 원거리 작전에 유리하며 종심이 긴 전장에서 운용성이 탁월합니다. 또한 관통력도 뛰어나 지하의 견고한 표적을 비롯해 강화 콘크리트 구조물 등 북한 지하 군사시설을 효과적으로 타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우러스를 북한 장사정포나 해안포를 타격하기에는 가격이 한 발당 20억원으로 너무 비쌉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타우러스를 운용할 기체는 F-15K 뿐입니다. 우리 공군이 운용하는 F-16계열은 타우러스를 굳이 운용할 이유가 적고 비용 문제가 있어서 통합되지 않았으며 또한 향후 도입할 F-35또한 타우러스를 통합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타우러스는 김정은 집무실 등 북한 지휘부 건물과 핵심시설을 정밀 타격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그래서 국방과학연구소와 LIG넥스원은 우리 공군의 요청으로 2013년 1월 14일부터 수도권을 노리는 1,000여문에 달하는 북한 장거리포가 배치된 갱도형 진지의 입구를 폭격하기 위한 GPS 유도폭탄을 개발하기 시작하였으며 가성비가 매우 우수한 한국형 유도폭탄 KGGB(Korea GPS Guided Bomb) 개발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또한 KGGB 한 발당 가격은 1억원으로 매우 저렴합니다. 참고로 현재 우리나라 공군이 운용하는 팝아이-2는 11억원, 슬램-ER 23억원으로 가격차이가 많이 납니다.

 

 

KGGB는 JDAM과 마찬가지로 GPS/INS 복합유도방식이지만 최대사거리가 30km인 JDAM와 달리 활강날개를 달아서 최대사거리가 100km로 JDAM 보다 3~4배 가량 길어 대공미사일, 전투기 등으로 구성되는 북한군 방공전력의 요격권 밖에서 안전하게 지상표적을 공격이 가능합니다. (목표물과의 오차 범위는 3m내외) 또한 JDAM은 투하 후 경로 변경이 힘들지만 KGGB는 충분히 경로변경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KGGB는 항공전자체계와의 통합이 필요없어 F-4 같은 구형 전투기에도 장착할 수 있습니다.

 

*KGGB 실무장 사격 영상(출처:대한민국 공군)

 

우리 육군의 포병이 단독으로 북한 장거리포에 대응하는 것보다 KGGB까지 장착한 우리 공군이 합세하는 것이 북한 장사포 전력을 제거하는데 훨씬 빠릅니다. 기본적으로 북한 갱도 진지 입구가 북쪽을 향해 있기 때문에 포병 전력만으로는 완벽히 타격하기 힘들기 때문에 KGGB가 북한쪽으로 비행하다가 다시 경로를 틀어 남쪽으로 진입하여 북한 갱도 입구를 타격해주어야 합니다. 또한 합동 공격을 하게되면 우리 포병이 대응포격 후 재장전하는 공백까지 공군이 완벽하게 매꿔줄 수 있습니다. 

 

*북한군이 사용중인 러시아산 무선교란장비 R-330Zh Zhitel

 

지금까지 우리군은 천무 다련장 로켓이나 현무 순항미사일까지 상업용 GPS를 사용해왔는데 이는 북한의 GPS 교란등에 취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북한의 GPS 교란장비는 러시아제 장비로서, 차량 탑재형으로 유효 방해거리는 100 km이며 최근에는 우리나라 전역을 거의 커버하는 400 km 고출력 방해장비도 러시아에서 수입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기존 KGGB는 미 군용 GPS를 장착하지 못하고 상업용 GPS를 달아 북한의 전파 교란에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적 교란 발생 상황에서도 임무 성공 보장을 위해 미국 정부에 협력을 요청했고 미국은 북한군 GPS 교란에 대응이 가능한 군사용 GPS 수출을 승인하면서 올해부터 생산되는 KGGB에는 군용 GPS를 탑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올해까지 1,200발이 실전 배치 될 예정입니다.

 

과거 많은 나라들이 수많은 전쟁을 일으켰으며 그 결과 국가의 명을 받아 전쟁에 나가 싸운 군인들은 전쟁터 총알받이가 되어야 했습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여성들과 아이들은 2차 피해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만에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현재도 시리아를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서는 아직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전쟁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집을 잃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민간인 피해는 250만명이나 되었으며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가 10만명, 전쟁을 피해 살던 곳을 등져야 했던 사람이 370만명으로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고통은 계속되었습니다. 이처럼 전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끔찍하며 고통이라는 커다란 흔적을 남깁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진을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전쟁의 참혹함을 여러분께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전쟁터로 떠나는 군인 남친과 헤어지기 싫어

슬픈 표정으로 작별 인사를 하는 여성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한달음에 달려온 여성이 창문을 통해 군인 남친과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있는 모습

 

전장으로 향하고 있는 군인과

그 군인 아버지를 따라가려는 아들

 

1943년 쿠르스크 전투 당시 전투를 앞두고 러시아

군인이 두려움을 잊기 위해 십자가 목걸이에 키스하는 모습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여학생까지

사격술을 가르쳤던 일본

 

625전쟁 중 고아와 만난 국군

 

마가렛 히긴스 기자가 1951년에

호남 지방을 방문하여 취재한 사진

 

군위관이 심폐소생술을 사용하여

병사 한 명을 살리려는 모습

 

1950년 9월 28일 서울

전쟁의 비참함을 보여주는 전쟁고아

 

피난길에 지친 한가족이 연합군이

배급한 급식으로 허기를 메우는 모습

 

1950년 7월29일 국군의 소개명령으로 지게나 소가 끄는

수레에 가재도구를 싣고 남쪽으로 향하는 피란민 행렬

 

 

 

한국전쟁 당시 부모와 헤어진 고아들

 

1951년 1월 8일 부산에서

담배와 껌을 목판에 담고 파는 소년 

 

하늘이 무너질 듯한 강력한 폭음에

귀를 막고 있는 두 아이

 

미군 병사가 부상당한 중공군을

응급처치 해주는 모습

 

1968년 베트남에 어린 소년 

 

베트남 원주민들이 군인들에게 들키지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진흙탕에 숨어 있는 모습

 

베트남전쟁에서 포로로 잡혀있던 미국인이 종전으로

풀려나 가족과 재회하는 모습

 

하루 하루 공포 속에서 사는 아이

 

시리아 내전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가

부모 무덤 사이에서 자다가 일어난 모습 
 

시리아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에 수십시간 동안

생매장됐다가 기적적으로 구조되는 어린아이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아프간 빈민가 소년

 

 

 

시리아 주민 수천명이 국경을 넘어 터키로 탈출하고 있는 모습

 

남오세티야의 수도 츠힌발리의 전쟁 참상

 

폭탄 테러에 의해서 희생된 동료를

추모하고 있는 동료 군인들

 

아프간에서 목숨을 잃은 동료들을

추모하고 있는 미군 장병들

 

부상당한 동료 손을 꼭 잡고 이동하고 있는 모습

 

이스라엘 미사일 공격으로 숨진 가족의 시신 앞에서

슬픔에 잠긴 팔레스타인 여인(왼쪽)과

숨진 동료의 명복을 비는 이스라엘 여군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무장조직의 매복에

걸려 전사한 라 데이비드 존슨 병장의 아내가

남편의 관을 붙들고 울고 있습니다.

 

퇴역군인이 동료의 비석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그날의 공포와 충격

그리고 슬픔과 분노는 평생 잊혀지지 않습니다.

 

포트 후드 총기난사 사건에 희생된 동료를

추모하며 눈물을 흘리는 동료 군인

 

엄마 군인이 파병갔다 귀환 후

딸을 끌어앉고 눈물흘리고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동료를 잃은 슬픔에 빠진 군인들

 

그동안 고마웠어…

11년 동안 함께 동고동락했던

군견 죽음 앞에 오열하는 군인

 

전쟁터에서 돌아온 아빠를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어린 딸

 

처참한 광경에 충격받아 눈물을 흘리는 종군기자

 

폭발로 먼지를 뒤집어쓴 이라크 군인

 

북한의 도발로 일어난 천안함 격침사건으로

순국한 장병의 어머니

 

전쟁에서 전사한 남편을 차마 떠나보내지 못하는 아내

 

이라크전쟁에 참전한 두 친구는 둘 중 한명이 죽으면

장례식에 우스꽝스런 여자 옷차림을 하고

오자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둘 모두 무사히 살아서 돌아가자고 한 농담이었지만

고국에는 한 친구만 걸어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친구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 소녀의 아버지는 아프간에서

걸어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품에서 잠든 아이

 

누구보다 용감하고 앞장섰던 동료를

떠나보내는 군견과 동료

 

총을 겨눈 영국군 옆의 평화의 상징 비둘기

 

이라크 전쟁에서 시신이 되어 돌아온 남편이 묘지에

안치되기 하루 전 아내는 남편의 시신 옆에서

그가 생전 좋아하던 노랠 들으면서

그와의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주검이 되어 돌아온 아버지와 아버지 품으로 가고싶은 딸

 

이라크전쟁에 참전한 남편의 사망소식을 접한 아내

 

미 역사상 최장기 전쟁으로 기록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파병된 미 해병대원들이 참호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

 

어느 노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이

몰았던 전차 앞에서 오열하는 모습

 

부상병들이 고통에 울부짖으며

손을 서로 꽉 맞잡고 있는 모습

 

인류가 전쟁을 없애지 않는다면

전쟁이 인류를 없앨 것이다.

 

- 존 F. 케네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