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이번에 일본 지진으로 인해서 피해가난 건물임.

아닐수도 있지만 건축학을 전공한 사람이 보기에는 익스펜션 조인트 부분이 약해서 발생한 문제임


1. 익스펜션 조인트란?

 

 

 

큰 건물에 가면 이렇게 생긴 부분 본적있나?

이게바로 익스펜션 조인트다.

이걸 왜 설치하는가하면

철근과 콘크리트의 수축과 이완 떄문이다.


쉽게 말해서 철근은 더우면 늘어나고 추우면 줄어들고

콘크리트는 마르면서 부피가 줄어들고 등등의 이유로

건물의 길이에 변동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면 건물에 금이가고 수명이 짧아지겠지?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50~60m 간격마다부재의 신축에 대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게 대략적인 형태인데 전공자들이 보는거니 그냥 보고 넘겨라


 

 

쉽게 보면 위 사진처럼 틈을 주어서 길이변화에 대응하는 경우이다.







2. 익스펜션 조인트의 문제점.

콘크리트가 한방에 굳은 것과

2개로 나눈다음에 이은 것 중 어느 것이 견고할까?

당연하게 한방에 친 것이 더 견고하다 (단순한 단단함으로만 비교시)

따라서 익스펜션 조인트에는 누수, 균열이 발생해서

아주 주의깊게 시공하여야한다.


 

이게 조인트부의 균열 발생임.


 

 

 

 

 

 

3. 내가 아파트 갈라짐이 익스펜션 조인트라 생각한 이유

 

 

 

빨간 동그라미 부분을 봐라.

건물전체에 일정하게 균열이난 양측으로 무엇인가가 있다.


 

 

정확한 사진을 찾을 수가 없어서 대체한 것인데

하단부를 뚫린상태로 둘수 없으니 저런식으로 마감을 하는게 보통이다.

빨간생 동그라미 친부분을 저기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나는 조인트부라고 생각한 것이다.


또 2번에서 설명했듯이 단부가 긴 곳은 반드시 설치해주는데

위 아파트는 길이가 제법있어보였으면


조인트는 구조적으로 취약한 부분이므로

지진등의 강한 충격에 의해서 파괴가 가능하다.

 

 

 

 

 

 

4. 조인트 부분 복구


 


이론상으로는 위처럼 복구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저정도로 파괴된 단부가 복구가 가능할지는 전혀 모르겠다

미안하다..


 

 

 

10위 번지점프


죽을 확률 


50만 분의 1

 

 

9위 스쿠버 다이빙


죽을 확률 


20만분의 1


[

 

 

 

 

8위 스카이 다이빙


죽을 확률



16만분의 1


 

 

 

 

7위 스키점프 


죽을 확률


8천 3백 분의 1

 

 

6위 산악 스키


죽을 확률


5500분의 1


 

 

 

 

 

 

 

5위 절벽 다이빙


죽을 확률


2300분의 1


 

 

 

 

4위 프로복싱


선수 죽을 확률 


2200분의 1


 

 

 

 

 

3위 맨손 암벽타기


인공암벽 말고 자연암벽 타는 동호인 사망확률


1700분의 1


 

 

 

 

 

2위 모터싸이클


동호인이 죽을 확률 


1000분의 1


 

 

 

 

1위 행글라이딩



죽을 확률


최소  1000분의 1 이상


 

 

이건 음모론의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장기매매를 위해 사람을 납치하고 죽여서 장기를 끄집어내고

 

산이나 하수구에 유인한다라고 해

 

 

특히 언론들은 구지 장기밀매와 관련이 없다라고 보도를 하고 있는 실정이야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장기가 적출된 사람의 시신이 나온다라는

 

뉴스는 끊임 없이 계속 되고 있어.

 

 

과연 이건 누구의 소행일까?

 

아마도 장기밀매를 하는 사람들의 소행이다라고 보는 견해도 있어

 

 

장기 밀매를 하는 사람들은 주로 조선족조폭 + 그들과 한패인 한국인+ 중국의사등등

 

 

장기밀매는 중국쪽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중국에서는 사형죄를 입은 사람은 총살형을 하는데

 

총살하고 장기를 적출해가 그 이유는 돈이 많이 되니까

 

 

 

 

중국은 이런 인체신비전에 전시하는 모형도 사형수들이나 시체를 이용해서 만들고 있어.

 


 

 

중국은 장기가 고가로 거래되고 있어.

 

장기 수술을 하는 사람은 1만여명이 되는데

 

장기이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150만이상이나 되니

 

이것을 노리고 사람을 사냥한다라는 사람들이 있다라는거지.

 

돈이라면 사람도 죽여서 돈을 벌겠다라는 이런마인드로 인간 사냥이 시작된거야

 

중국 본토에서도 아이나 장애인, 여자등 힘이 약하고 가치가 별로 없는 사람들을

 

이용해 죽여서 장기밀매를 하고 있는 실정이야

 

하지만 중국은 법제도가 굉장히 강력해 이런 사실이 적발되면 처형당하기 쉬우니

 

법이 매우 약하고 만만한 대한민국을 선택 했다라는 거지

 

 

 

 

 

 

 

출처:  국민 안전 보호 연대

 

 

중국정부는 파룬궁이라는 단체가 공산당원에 가입한 사람의 숫자를 뛰어넘어  

 

나중에 공산당을 무너뜨릴 거대 세력으로 변할꺼라 예상하여 탄압하고 고문하고 있어.

 

고문중에 죽은자는 장기밀매를 하여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실정이고

 

이렇게 중국정부는 이런 사실을 숨기고 장기밀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공산당에 적대세력을 제거 하고 있어

 

조선족조폭은 상대적으로 법이 매우 약한 한국을 골라

 

힘이약한 여자나, 장애인등을 표적으로 장기밀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오원춘도 분명 이런 조직과도 한패라고 추측할뿐이다.


 

 

골리앗 ( Goliath )

 

미국에 있는 가장빠른 목재 롤러코스터

 

시속은 116 km

위 사진의 경사는 85도

 

 

 

 

 

 

더 비스트 ( The beast )

 

 

 

미국에 있는 가장 긴 목재 롤러코스터

 

2243 m 로 4분 10초 동안 탈수있음


 

 

 

 

 

 

 

엘 토로 ( El Toro )

 

 

 

 

 

 

미국에 있는 두번째로 긴 목재 롤러코스터

 

1341 m

 

 

독일에 있는 가장 높은 목재 롤러코스터

 

60m

( 목재 특성상 높이 지을수가 없다함 )

( 두번째로 높은건 우리나라 티 익스프레스 56m  )


 

 

 

 

 

 

 

 

 

 

 

타카비샤  ( Takaisha )


 

 

 

 

일본에 있는 롤러코스터

 

121 도의 경사를 자랑한다.

 

 

미국에 있는 롤러코스터

 

81도

 

시속 110km

( 골리앗이 나타나기전 까진 얘가 속도 1위였음 )

 

360 도 회전을 세번하면서 내려감

 

 

 

 

 

 

 

 

 

탑 스릴 드렉스터 ( Top Thrill Drgster )


 

 

 

미국에 있는 롤러코스터

두번째로 긴 하강트랙을 자랑한다.

 

90도로 하강

 

193 km

130m 높이에서 떨어짐


 

 

 

 

 

 

 

 

킹다 카 ( Kingda Ka )

 

 

 

 

 

 

미국에 있는 롤러코스터

 

세계에서 가장 높은 놈

 

206 km

139 m 높이에서 떨어짐

( 3.5 초만에 떨어진다ㅏㅏㅏ)

 

 

아랍 페라리월드에 있는 롤러코스터

 

시속 240 km

페라리 F1을 운전할 때와 비슷한 소음을 경험할 수 있다고함.


 

 

 

 

 

 

 

 

 

스틸 드래곤 2000 ( Steel Dragon 2000 )

 

 

 

 

 

일본에 있는 롤러코스터

 

2000년 용의 해에 만들어진 롤러코스터

2479 m 의 길이를 자랑함

 

 

 

 

먼저 이차는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마러시아 b2라는 차야

 

 

 

이렇게 유광+무광이 잘 어우러진 색상도있고.

 

 

 

뒷태는 이렇게생겼으며


 

 

옆라인도 나름 잘빠졌지?

 

V6엔진을 기반으로 3,500cc에 최대토크는 61.2kg이지

 

가격은 약 2억대라고 하네


 

 

그 다음 소개할차는 데빌 식스턴이라는 차야 (두바이성님이 1빠로구매했지)

 

이차로 말할것같으면


 

 

우선 후면이 거의 사이버포뮬러수준이다


 

 

 

도어개폐형식도 간지난다

 

자세한 제원이 안나온다 이차는 V16엔진에 다만 가격대는 16억원에 육박하다는정보만 나와있노!


 

이건 쉘비 투아타라라는 차다 컨셉카에서 양산형으로 나왔다


 

 

전투기를 본따서 만든형식이라 그런지 도어개폐형식도 전투기마냥 한번에 파악 올라갔다 파악 닫힌다고한다

 

6,942cc에 V8 6.9 G-Turbo엔진을 사용하며 최고시속은 444km라고한다...

 

 

 

 

이차는 엘리멘탈 RP-1 생각보다 작다 거의 소형차수준

 

I4 직분사에 배기량도 1,999cc로 비교적 적다 그래도 소장가치는 충분할듯


 

 

 

이차는 젠보 ST-1 이라는찬데

 

덴마크회사이며 V8엔진에 6,800cc 연비가 생각보다좋다 국내연비로 감안해도 리터당 7km정도

 

(근데 영국탑기어에서 이거 타다가 엔진과열로 통구이될뻔했지)


 

 

이차는 헤네시 베놈 GT라는찬데 약간 로터스비슷하지만 성능이깡패급.

 

V.8 7,0 엔진에 7,000cc  최고시속 435km

 

 

 

같은 회사에서 나온 헤네시 베놈 F5도있는데 이건 더씹깡패

 

최고시속 466km 이다

 

(참고로 헤네시는 미국국꺼임)


 

 

10위. Mountain Home Road, Woodside, Calif.

 

이곳은 바로 소프트뱅크의 창립자이자 사장인 재일교포 손정의의 집이다이기야. 손정의는 2015년 포브스에 의하면 일본에서 2번째로 부자라고 한다. 이 집의 가격은 1억1천7백5십만 달러고, 1달러당 1000원이라고 계산을 하면 1175억원이지. 이 거대한 토지 안에는 9000 sq ft(약 255평)의 저택, 1117 sq ft(약 31평)의 풀하우스, 수영장, 도서관, 정원 그리고 테니스 코트가 있다한다. 


9위. Xanadu 2.0, Seattle, Washington.

 

 

세계에서 두번째로 부자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 빌 게이츠의 집이다. 집값은 1억2천만 달러, 약 1200억원이다. 집 안에는 수중 스피커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는 수영장, 도서관, 천장이 돔 형태인 서재 그리고 2500 sq ft (약 70평) 크기의 헬스장이 존재한다 


8위. Blossom Estate, Palm Beach, Florida. 


 

 

 

이 집의 주인은 플로리다 태생, Kenneth Griffin 이라는 사업가의 집이다. 정확한 직업은 헤지 펀드 매니저이고 하버드 대학교를 나왔다이기. 집값은 1억3천만 달러, 1300억원정도 되겠다. 켄 그리핀은 이 해변가에 나란히 있는 집 4채를 몽땅 다 사버렸는데, 이 거대한 에스테이트의 면적만 8 에이커나 된다 (약 10000평). 


7위. Kensington Palace Gardens, London, U.K


 

 

 

여긴 바로 만은사람들도 다 아는 러시아 석유 재벌과 동시에 첼시의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사는 곳이다. 첼시의 경기장인, 스탬포드 브릿지와도 가까이 위치해있는데, 집값은 9천만 파운드다. 1파운드를 1800원이라 계산하면 집값은 약 1620억원정도 하겠다. 로만은 런던시한테 허락을 받고, 이 저택 지하에 테니스 코트, 헬스 센터 그리고 자동차 박물관을 지었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ㅋ


6위. Ellison Estate, Woodside, Calif.


[

 

 

이 에스테이트의 주인은 바로 Oracle, 컴퓨터 테크놀로지 회사의 설립자인 Larry Ellison이다. 에스테이트 이름도 자기 성을 본따서 엘리슨 에스테이트라고 지은거같다 2억 달러가 (약 2000억원) 이 에스테이트를 짓는데 들었다고한다. 래리 엘리슨의 에스테이트는 28000평 정도되고, 사진에도 볼 수 있듯이 건물들이 다 일본식으로 지어져있다. 에스테이트 안에는 10개의 건물이 있고 인공 호수도 존재한다


5위. One Hyde Park, London, U.K

 

. 이 아파트는 세상에서 제일 비싼 아파트로, 제일 비싸게 나온 아파트 한채가 2억2천1백만 달러에 팔렸다 (약 2210억원). 2210억원이나 주고 이 아파트를 구매한 사람은, 우크라이나 부호 Rinat Akhmetov인데, System Capital Management Group이라는 회사를 가지고 있고 세계에서 216번째 부자라고 포브스에서 발표를 하였다 이 아파트의 특징은 24시간 무장경비들이 항상 있다는거고 그리고 또 아파트 외부 유리벽들은 다 방탄유리다.


4위. Kensington Palace Gardens, London, U.K

 

이번에도 또 켄싱턴 팰리스 가든이 나왔는데, 켄싱턴 팰리스 가든은 그냥 여러 집이 모여있는 런던의 한 구역을 말하고 그 구역안에 따로 수많은 백만장자들이 사는 "Billionaires's Row"가 있다. 이번에 소개할 집 주인은 이곳에 집을 3채나 소유하고 있는 Lakshmi Mittal이다. 집의 가격은 다 합해서 1억 2천 5백만  파운드라고 한다 (약 2250억원). 집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진건 없다. 집 주인인 Lakshmi Mittal은 인도 태생의 철강 산업 부호다. 이 인도인 부호는 박지성이 뛰었던 퀸즈 파크 레인저스 팀의 구단주이기도 한데 토니 페르난데즈가 66%를 가지고 있고 락슈미 미탈이 나머지 34%를 가지고 있다 ㅋㅋ 또한 락슈미 미탈은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며 세계에서도 8번째로 부자다.


3위. Fair Field, Sagaponack, N.Y

 

이 집에는 침대방 29개, 화장실 39개, 개인 수영장 3개, 그리고 심지어 개인 발전소까지 존재한다. 집의 가격은 2억 4천 8백만 달러 (약 2480억원) 이고 Ira Rennert라는 사람이 소유하고있다. Ira Rennert는 뉴욕 태생의 투자자/비즈니스맨이다. 


2위. Villa Leopolda, Villefranche-sur-mer, France


 

 

 

이 집은 무려 5억 달러 (약 5000억원) 이나 한다. 토지 전체는 약 25000평. 근데 집에 대해서 자세한건 못찾았다...암튼 이 5000억원짜리 집의 주인은 바로 Lily Safra라는 여자인데, 브라질 출신 자선가인 Lily Safra는 4번의 결혼을 통해 아주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고 한다 ㅋㅋㅋㅋ 


1위. Antilia, Mumbai, India


 

 

 

대망의 1위를 차지한 집이다. 인도 뭄바이에 위치한 이 거대한 집은 신화속에서 존재했다는 대서양의 섬의 이름을 본따서 "Antilia" 라고 지었다고 한다. 이 집은 무려 27층이나 되고 8.0 강도의 지진도 버틸 수 있게 설계되었다. 이 건물 안에는 21개의 엘리베이터, 지하 6개층의 주차장, 3개의 헬리콥터 착륙장이 존재한다. 집에는 항상 600명의 스태프들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이 어마무시한 집의 가격은 무려 10억 달러, 1조원이나 한다 ㅋㅋㅋㅋㅋㅋ 세상에서 가장 비싼 집의 주인은 바로 Mukesh Ambani라는 인도인 비즈니스 부호인데, Reliance Industries라는 회사의 최대주주이다. 인도에서 제일 부자이고 아시아에서는 두번째로 부자라고한다. 

 

 

10위.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737-38 

이 집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아모레퍼시픽그룹의 회장인 서경배씨의 집이다. 아모레퍼시픽은 한때 주식 가치가 상승하면서 한때 이건희 삼성회장을 제치고 국내 주식부자 1위로 올라서기도했다이기. 이 주택의 건축 면적은 434.08 제곱 미터로 약 131평정도 되겠다. 집값은 74억 2천만원 이다. 

9위.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135-25

이 집은 호암재단 소유인데, 호암재단은 삼성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선생의 경영철학 후대에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설립된 재단 법인이다. 집의 건축 면적은 262.44 제곱미터로 80평이다. 가격은 75억 2천만원. 

8위.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164-1

(주)정석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집이다. 정석기업은 주식회사 한진의 최대주주이다. 집의 면적은 1092.83 제곱미터, 330평 되겠다. 집의 가격은 80억 7천만원이다. 

7위.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 1-102

남일선씨가 소유한 이 주택은 81억 4천만원으로 7위를 차지하였다. 집의 면적은 395.85 제곱미터, 120평이다. 

6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502 

 

6위는 바로 신세계그룹의 부회장 정용진이다. 참고로 정용진은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의 외손자. 집의 면적은 2226.13 제곱미터, 673평이 되겠고 집값은 82억 5천만원이다. 저택 외관은 스페인풍의 고전 건축미가 드러나게 설계됐으며, 테라코타 벽과 대리석등 최고급 수입자재로 치장되었다 한다. 

5위. 서울시 중구 장충동 1-110

99억 2천만원의 집값을 기록한 이 집의 주인은 바로 삼성전자의 회장 이건희이다. 1004.68 제곱미터, 약 303평의 건축 면적을 가지고 있는 주택이다. 이 주택은 고 이병철 초대회장이 살았던 곳이다. 

4위.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748-8

4위를 기록한 이 집의 주인은 신세계 그룹의 회장 이명희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이 딸이며,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의 여동생이기도 하다. 2008년 포브스 세계 부자 랭킹 발표를 보면 세계에서 605위를 차지하였고, 대한민국에선 국내 제일 여성 부호를 차지하였다. 이 집의 주인과 토지의 주인은 다른데 건물은 이명희 명의이고 토지는 이명희의 딸이자 정용진의 여동생인 신세계 부사장 정유경의 소유이다. 집의 면적은 1538 제곱미터로, 465평이 되겠고, 집값은 102억원이다.

3위.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84-3

 

3위를 차지한 이 집 또한 이건희의 소유이다. 국내에서 가장 비싼 집 Top 10안에 드는 집 중에서 유일하게 강남에 위치해 있는 집이다. 이 주택의 면적은 2225.62 제곱미터, 약 673평쯤 된다. 집값은 4위보다 8억원 더 비싼 110억원을 기록하였다. 

2위.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135-42

삼성미술관 리움의 관장이자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의 부인, 홍라희가 이 집의 주인이다. 찾아보다가 알았는데 홍라희는 전북 전주 출신이노 ㅋㅋ 집의 면적은 2645.72 제곱미터, 800평이고 집값은 117억원이 되겠다. 


1위.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135-50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집 대망의 1위를 차지한 집 역시 또한 이건희의 소유이다. 이 집의 건축 면적은 2138.16 제곱미터로 약 647평쯤 되겠다. 1위를 기록한 이 주택은 무려 149억으로 기록되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집들을 알아보았는데, 10군데 중 5곳은 서울시 용산구였고 그중에서도 3곳이 이태원동이였다. 또한 10채중 7채는 삼성의 소유이다. 10채 모두 다 주택이고 순위를 매긴 집들의 가격은 모두다 공시가격이 되겠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아파트를 보면 서울시 청담동에 위치한 마크힐스 아파트인데, 58평이 65억원으로 거래되었다. 흑석동에 위치한 같은 브랜드 아파트인 마크힐스에스는 장동건, 고소영 부부가 살았었고 현재는 김연아가 살고있다 한다. 현재 장동건, 고소영 부부집에는 이병헌, 이민정 부부가 이사를 들어갔다.

대한민국 고가 아파트 가격은 아래 사진 참고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전세계 32개국으로 수출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구글링을 해보았다.


이 드라마가 중국을 필두로 한 아시아권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건 확실히 알겠는데, 


수출국에 독일과 프랑스가 포함되어 있다는 건 다소 의외였음. 


현지에서 체류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얘네들이 아시아권 드라마를 TV로 방영하는 일은 


극히 드물거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보수적이다.


 


 

 

일단 구글링을 해보니 최근에 영국의 BBC에서 <태양의 후예>와 관련된 외신을 한 차례 내보내긴 했더라.


기사 내용을 요약하자면, '한국의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높은 인기를 누리며 아시아를 강타하고 있다' 정도.


다들 알다시피 BBC가 공영성으로 유명한 방송사인지라 국뽕을 한사발 들이킬 법도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이름이다. 


(Tessa Wong이라는 이름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중국인 혹은 중국계 영국인으로 추정됨)



 

그 동안 독일에 한국 드라마가 수출됐다는 뉴스를 드물게 접하긴 했지만, 독일에서 실제로 방영된 사례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한국 드라마가 재미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극적인 스토리 전개 자체가 걔네들 정서에 맞지 않는다. 


내가 파악하기로는 한국 드라마를 즐기는 소수의 독일어권 팬들이 존재하기는 한다.


K-Drama Heaven이나 VIKI 같은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면 현지인들이 자발적으로 독일어 자막을 만들어서 한국 드라마를 보긴 본다.


이러한 몇 개의 인터넷 사이트가 현지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접하는 유일한 통로이자 채널이다.


근데 시스템이 잘 만들어져 있고 업데이트가 활발한 사이트는 VIKI가 사실상 유일하고, 다른 사이트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거나


팬페이지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심지어 VIKI는 독일어권 사이트가 아니다. 전세계에 다양하게 퍼져 있는 한류 팬들이 정보를 교류하는 사이트라고 보면 된다. 


독일어권 한국 드라마 커뮤니티는 K-Drama Heaven이 유일함)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독일인들이 저녁에 맥주 마시면서 태양의 후예를 보는 건 아니라는 거지.



이처럼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 한류를 논하는 건 아직 이른 것 같다.


독일에서 체류할 때 한국 드라마를 본 적은 한 번도 없고, 아주 가끔 1년에 한두 차례 정도 김기덕이나 임권택 감독의 작품은 방영해 주더라.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처럼 한국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그런 영화들. 


내생각에는 얘네들이 그나마 흥미를 갖는 한국의 콘텐츠는 결국 저런 영화 정도다.

 

                                    

이세돌 九단


지난 3편에서 라이벌 구리와의 십번기에서 승리하며
침체된 한국 바둑을 되살리기 위해 
재도약의 의지를 불태운 이세돌이었어

보통 바둑기사들은 서른을 넘기면 하락세를 걷게 되는데
2014년 이세돌이 서른 둘이었어
20대 때 만큼 압도적인 우승 횟수를 보여주진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2014년까지 꾸준히 국내 기전과 세계기전에서
모두 우승을 거두며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었지



이 당시 한국 바둑계는 이세돌을 포함한
아래의 3강이 주도하는 모습이었어

 

               

박정환 九단

박정환은 93년 생으로
올해 4월까지 29개월 연속 한국 프로기사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는 
현재 한국 바둑계 1인자야
하지만 통산 세계 대회 우승이 2회 뿐이어서
'국내용'이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
분명 기재는 뛰어난데 뚜렷한 개성이 없어 아직 팬들로 부터 별명이 없어
그나마 얻은 별명이 '국내용'...
사실 별명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프로기사에게 별명은 굉장히 중요해
별명이 없다는 건 그만큼 팬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뜻이니까
기사가 가진 별명의 숫자로 그 기사를 판단하기도 해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기사 중에 하나야

 

김지석 九단

동안으로 유명한 김지석은 
89년생으로 의외로 나이가 꽤 돼
현재 박정환과 함께 한국 바둑계의 미래로 불리고 있는 기사야
예전 이세돌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뒤를 이어 최강이 될 만한 후배 기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김지석을 꼽은 적이 있다
공격적인 기풍으로 전성기 시절 이세돌과 가장 닮아있어
24세라는 이른 나이에 서울대학교 대학원 출신 일반인과 결혼하였고 
아버지가 대학교수, 어머니는 약사라는 점에서 '엄친아'라는 별명을 얻었다
 

박영훈 九단

이창호 이후 어린 시절 부터 형세판단 면에서 탁월한 기재를 보여
이창호의 '신산神算'이라는 별명을 이은 '소신산小神算'으로 유명했어
전투능력이나 승부감각 등은 위 두명에 비해 떨어지지만
셋 중 수읽기와 끝내기 능력은 박영훈이 가히 압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철한 九단


이 외에도 최철한,목진석,강동윤 등을 포함해 
확실한 최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가 이어져 오고 있었지
한 동안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켜온 이세돌의 위세가 약해졌으나
조훈현-이창호-이세돌의 계보를 잇는 
뚜렷한 최강자가 나오지는 않고 있다

그나마 박정환이 랭킹 1위를 오랫동안 유지하며 
이세돌의 후계자로 가장 유력해 보였는데
박정환 마저도 세계대회에서는 번번이 탈락하며 
프로기사의 커리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세계무대에서 유독 약한 모습을 보여
이세돌의 진정한 후계자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8,90년대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바둑이
2000년대 부터 차츰 인기를 잃어갔고
2010년대를 지나서는 그 인기가 바닥을 치게 되는데
(현재는 이세돌 덕분에 약간 상승세에 있어)

이세돌은 이러한 한국 바둑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프로 기사들이 세계무대에서 예전과 같은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수 밖에 없다며 후배 기사들을 독려했어
사실 구리와의 십번기도 뒤돌아선 바둑팬들의 관심을
다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어

그렇게 이세돌은 십번기 이후 맞이한
첫 세계 대회인 제 19회 삼성화재배에 출전하게 된다
 

 

2014년 제 19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8강 진출자

 

8강에서 탈락하게 된 이세돌 九단


아쉽게도 이세돌은 이 대회에서 
8강에서 만난 중국의 강호 스웨 九단에게 패해 탈락하게 돼
스웨는 이후 4강에서 한국의 김지석 九단을 만나 패하게 되고
김지석은 결승전에서 중국의 탕웨이싱을 만난다

 

 

2014 제 19회 삼성화재배 우승을 차지한 김지석 九단
 


이 대회는 김지석이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후 2015년 
이세돌은 제 20회 삼성화재배에서 
다시 한 번 이 대회 우승을 노리게 되는데
바로 이 대회 4강에서 중국의 커제 九단과 처음으로 맞부딪히게 돼

 

 

 

 

 

커제(柯洁) 九단

커제는 2008년 입단한 중국의 신예 기사야
사실 입단은 2008년에 했지만
2013년 까지 별다른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어
2013년에도 삼성화재배 16강 진출 정도의 성적이 고작이었지
그리고 이듬해 2014년 중국 국내기전인 아함동산배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는데
이마저도 중국 기전중에서 마이너로 분류되는 소규모 대회였어
이때까지 중국에서는 그저 그런 기사로 평가받고 있었는데
2015년 세계대회 제 2회 바이링배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첫 세계대회 우승을 거뒀어
단계적으로 실력을 키우면서 올라온 것이 아니라
갑자기 확 뜬 케이스야
그래서 작년까지도 커제는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는데
이제는 명실상부 세계최강으로 인정받고 있지

어쨌든 20회 삼성화재배에서 이세돌과의 악연이 시작된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여기서는 이세돌의 압승이 예상됐어
커제는 입단 후 이렇다 할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고
중국 내에서 평범한 기사로 평가받던 커제가 
갑작스레 메이저 세계대회인
삼성화재배 4강까지 진출한 상황이었으니까

 

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준결승
이세돌 대 커제

하지만 결과는 이세돌의 처참한 2대0 패배
이런 충격적인 결과에 중국 취재진은 물론 한국 취재진 모두 놀랄 수 밖에 없었어
이때 한국에서는 이세돌이 소위 꿀대진을 만났다며 낙관하고 있었는데
이세돌이 커제에게 힘 한 번 제대로 못 써보고 2대0으로 발려버렸다

이때 대국을 지켜보던 검토실의 어린 기사들은
"오늘 백(이세돌)처럼만 두면 나도 이길 수 있겠다"
라며 이세돌의 형편없는 경기력을 문제삼았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상대는 당시 족보도 없이
준결승 까지 올라온 커제였으니까

준결승전 해설을 맡았던 유창혁 九단도 이세돌의 경기력을 지적했다
 

 

경기 승리 후 인터뷰에서 커제는

“어릴 때 이세돌 9단의 기보를 보며 공부를 했었다.

이번이 첫 대결인데 역시 그의 번뜩이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다만 이세돌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승리할 수 있었다.

결승 상대는 누가 올라와도 어렵겠지만 스웨 9단과 두어보고 싶다.

그동안 전적도 비슷해서 좋은 승부가 될 것 같다. 현재 삼성화재배, LG배, 몽백합배를 남겨두고 있는데

백합배는 특히 중국 주최의 대회인데다 4강에 중국 선수로는 나 혼자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더 욕심이 난다. 솔직히 3개 중에 하나만 우승했으면 좋겠다”라며

이세돌과의 첫 대결 소감을 밝혔어


이후 커제는 자신이 대결 상대로 원하던 스웨 九단과 결승전에서 만나

승리를 거두고 내친김에 우승까지 차지하게 된다

 

 

 

2015년 제 20회 삼성화재배 우승을 차지한 커제

이에 중국과 한국의 바둑팬들은 모두 커제를 주목하기 시작해
당시 중국 바둑계도 우리나라와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압도적인 최강자 없이
스웨,탕웨이싱,판팅위,미위팅 등 다수의 기사들이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었지
이때 부터는 커제도 그들과 함께 우승경쟁을 펼치는 구도가 되었다

하지만 이세돌은 이때 까지도 커제를 그렇게 의식하지 않았어
물론 삼성화재배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긴 했지만
중국은 예전부터 반짝 활약하다 사라지는 기사들이 많았거든
꾸준히 압도적 강세를 이어왔던 적이 한번도 없었어
물론 그것이 당시에는 한국의 최강자들이 
너무 강한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래서 이세돌은 커제도 반짝 하다 말거라고 생각했을거야
이때까지는 말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커제와 이세돌은 다시 한 번 맞붙게 되는데
제 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결승전이었어
몽백합배는 2014년 중국에서 처음 개최된 신생 기전이야

이곳에서 이세돌은 커제에게 당한 수모를 갚아줄 좋은 기회를 얻게 되지
 

몽백합배 결승전 직전까지의 이세돌과 커제
아직도 커리어에서는 커제가 이세돌을 따라잡기엔 멀었지

 

2016년 월간바둑 2월호 표지를 장식한 이세돌과 커제

 

제 2회 몽백합배 준결승 박영훈 대 커제

커제는 여기서 한국의 강호 박영훈 九단을 꺾고 결승에 진출하게 돼
이 당시까지 커제는 중국 갑조리그에서 부터 이어진
백번으로 35연승을 이어가고 있었어
그리고 그 기세로 중국 자국랭킹 1위를 달리고 있었지

그래서 커제는 '백번불패'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지
흑번에서도 커제는 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백을 잡은 커제는 좀처럼 지는 법이 없었어 
때문에 중국에서는
백의 덤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게 돼

중국은 한국과 다르게 백에게 덤으로 7집반을 주고 있어
이에 반해 한국과 일본은 덤을 6집반이다
(덤은 흑이 먼저 두어서 얻는 이득을 백에게 집을 줌으로써 상쇄시키는 것)
 

이세돌을 도발하는 커제


그런데 결승전이 열리기 전 전야제에서
커제는 결승전에 대한 자신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세돌은 확실히 스웨보다 약하다. 
그가 우승할 확률은 5%에 불과하다. 결국 내가 95%의 확률로 우승을 거둘 것."
이라며 이세돌을 도발하게 된다

이건 마치 어린 시절 이세돌을 보는 듯한 파격적인 도발이었어
과거 이세돌은 
"이세돌 본인이 생각하는 세계 최강의 기사"
를 묻는 중국 기자를 상대로

"조훈현,이창호,요다 9단 정도가 세계최강이라 불릴 만한 기사들이다."
라고 답변하며 중국 기사를 언급하지 않은 적이 있거든

결국 그 중국 기자가 당시 중국 최정상급 기사였던
"마샤오춘 9단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재차 질문하자
"아 마샤오춘은 빼주세요"
라며 중국언론을 도발했던 적이 있어

이에 화가난 중국기자는
"그럼 일본에서 활약한 오청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그의 기보를 공부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라며
도발을 멈추지 않았지

한국팬의 입장에서는 재밌는 일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도발을 당한 중국인들의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 밖에 없는 일이었어
이 때문에 이세돌은 지금도 중국팬들에게 감정이 좋질 않아
그나마 이세돌이 과거에 쓰촨성 지진에
우승상금 전액을 기부했던 일로 조금 감정이 누그러지긴 했지만

아마도 커제는 상대가 과거에 중국을 도발했던 이세돌이었기에
이런 도발을 서슴치 않을 수 있었을 거야
만약 상대가 중국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신처럼 추앙받았던
이창호였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싶어

그렇게 화제를 낳으며 시작된 몽백합배 결승전 제 1국

 

제 2회 몽백합배 결승전 제 1국

공교롭게도 이 대국에서 커제는 백을 잡게 되었고
이세돌은 흑번으로 시작하게 되었어
백번에서 35연승을 달리며 무적의 모습을 보이고 있던 커제를 상대로는
출발이 좋지 못했지
 
 


 
제 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제 1국(장면도 1~143)

이세돌은 이 대국에서 처음부터 엄청난 공격을 퍼부으며
커제를 흔드는 작전을 펼치게 된다
커제는 흑을 쥐었을 때와 백을 쥐었을 때
기풍의 차이를 보여왔어
흑을 쥐었을 때는 초반부터 상대를 공격해서 실리로 앞서나가는 전략을 주로 썼고
백번일 때는 처음부터 단단하게 수비적으로 나가서 덤 7집반의 이점을 살리는 전략을 취했어
이세돌은 이런 커제의 전략을 알고 있었고
커제에게 초반부터 쉽게 집을 내주면 안된다고 판단을 한거지

이세돌에게 공격을 당하며 집으로 많이 손해를 본 커제는
좌변의 흑대마를 잡아야만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커제도 물러서지 않고 흑대마를 집요하게 공격하며 접전을 펼치게 돼
하지만 흑의 143수로 인해 백은 역으로 중아에 큰 집을 내주게 되었고
이 수가 결국 승착(승리를 결정짓는 수)이 되어
143수 만에 커제는 돌을 거두고 만다

사실 이세돌은 젊은 시절 공격 일변도의 기풍을 보였다면
서른을 넘기면서 부터는 그 기풍이 바뀌어서
수비적으로 실리를 취하는 기풍으로 바뀌게 되었거든
물론 이때까지도 상황에 따라 전투를 안한 것은 아니지만
전투보다는 상대의 공격을 역으로 받아치는
타개 위주의 기풍을 보이게 돼

보통 바둑 기사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기풍이 바뀌는 일이 흔하게 있어
전투와 실질적인 이득(집)을 선호했던 기사가 나중에는
타개와 세력을 선호하게 되고
속기를 중시하던 기사가 장고를 하게 되고
장고를 하던 기사는 속기로 두게 되고
이상하게 보이지만 이런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그런데 이세돌은 대국 전 도발에 대한 영향이었는지
상대에 대한 맞춤 전략이었는지
과거 '리틀 전신'으로 불리던 그 때의 이세돌 처럼
시종일관 커제를 공격해 커제에게 항복을 받아내며
커제의 백번 35연승 또한 여기서 멈추게 된다

이세돌이 먼저 승리를 거두며 기분좋은 출발을 보였어
그리고 다음날 이어진 제 2국

 

제 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제 2국

 

 

제 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제 2국(장면도 1~143)


1국에서 흑으로 기분좋은 승리를 거두었던 이세돌은
흑번에서는 백번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던 커제였기에
이 날도 이세돌의 승리가 예상됐어
그리고 실제로 이세돌이 대국 중반부터 중앙의 흑집을 부수며 
승기를 잡아 지기 힘든
유리한 상황을 연출해내며 2연승을 거두는 듯 싶었지만
흑의 131수로 좌상귀의 백이 모두 잡히게 되어
161수 만에 이세돌은 어이없는 패배를 당하게 된다

이세돌은 대국 후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내가 겪은 세계대회 결승전에서 가장 큰 역전패를 당했다."
라며 소감을 밝혔고
당시 해설을 맡았던 박정상 九단은 
"이기는 길이 무수히도 많았는데 도대체 왜 졌는지 모르겠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을 정도였어


그렇게 승부는 1대1로 팽팽해졌어
이틀 후 속개된
결승전 제 3국은 

 

제 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제 3국

이 바둑은 이세돌이 중앙의 흑대마를 살릴 수 있다면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 처럼 보였지만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커제는 집요하게 
이세돌의 흑대마를 공격했고 그 과정에서
이세돌이 집 손해를 거듭하며
결국 돌을 거두고 말았어


이후 이어진 제 4국

이후 이어진 4국에서 이세돌은 다른 때보다 더 비장해 보였어
2대1로 승부가 벼랑 끝 까지 몰렸기 때문도 있지만
2국의 대역전패 후 이어진 3국의 아쉬운 패배

아마 전 날의 패배를 기점으로 
이세돌은 커제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던 것 같아
'그저 겁없는 패기의 신예기사'에서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호적수'로서 생각을 바꾼거지

사실 나는 이세돌이
그동안 커제를 얕보고 있었다고 생각해
말도 안되는 역전패를 당한 것도 그렇고

앞서 커제가 삼성화재배에서 이세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던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이후의 행보를 보아도 결과론적으로 커제는 엄청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

바둑격언 중 가장 유명한 '경적필패輕敵必敗'라는 말이 있어
'적을 가벼이 여기면 반드시 패한다'는 뜻이지
이세돌은 다시 한 번 이 격언을 세기고 4국에 임했으리라 생각해

결국 4국의 결과는 162수만의 백 이세돌의 불계승이었다
승부는 결국 제 5국 결승국까지 가서야 가려지게 되었어
 

 

제 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제 5국(장면도 1~281)

시작된 승부는 초반부터 치열했어
양 쪽 모두 더이상 물러설 수 없었기에 최강수로 나올 수 밖에 없었지
전투는 거듭되었고
집의 균형은 계속해서 유지됐어
승부를 알 수 없었던 것이지
하지만 중반 이후 상중앙 백의 넉점(76,78,80,116수)이
흑에게 끊어 잡히게 되며 흑의 집이 크게 불어났고
우열을 가릴 수 없던 승부에서 백이 상당히 불리해져 버렸어
만약 이것이 결승국이 아니었다면 이 때 백이 돌을 던졌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불리했지

하지만 여기서 지면 그대로 끝이나는 상황이었기에
이세돌은 끝까지 추격했고 끝내기에서 상대의 실수를 유도해
결과를 뒤집는 수 밖에는 없었어
그 와중에 흑을 쥔 커제가 끝내기에서 245수째 작은 실수를 하며 
오히려 백이 반집승을 거둘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어
승부는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알 수 없는 상황까지 이어졌지

이 부분에서 잠시 설명하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는데
한국과 중국의 계가 방식이야

이 몽백합배는 중국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중국식 바둑 룰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중국식은 한국,일본식과 계가(집을 세는 것) 방식에 약간 차이가 있어

 

한국과 일본식의 계가


우선 위 사진은 정확히 따져서 완벽한 계가의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설명하자면
한국식으로 계가를 할 때는 
먼저 내가 따낸 상대의 돌(사진에서 빨간색으로 체크해놓은 돌)을 상대의 집에
메우고 각자 만들어진 
집(내 돌로 둘러싸인 안의 빈공간의 점 개수)을 세서 
서로의 총합에 백의 경우에는 덤까지 합산해서
총 집의 수를 비교하게 돼 

반면 중국식은 내가 따낸 상대의 돌은 상관치 않고
반상 위에 있는 자신의 돌 수를 세게 돼
뭐 어차피 결과적으로는 마찬가지야
상대의 죽은 돌로 집을 메우는 것이나
그렇게 하지 않고 반상의 각자의 돌을 세는 것이나 결과적으로는 같아
(중국식에서는 돌이 먹히게 될 경우 자신의 돌이 줄어드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 부분의 차이 때문에 마지막에 커제는
반패(서로 따내야 하는 집,끝내기 중 가장 이득이 작은 곳)를 잇지 않고
공배를 메워 자신의 돌을 늘리며 이득을 보게 된다

쉽게 말해서 끝내기에서 
한국식으로는 하면 손해가 되는 행동으로
중국식에서는 오히려 이득을 볼 수 있어

이걸로 결국 이세돌이 딱 반집 패배를 하고 말아

 

 

결승국 후 이세돌과 커제의 모습
 
이세돌의 패배 후 한국 언론에서는
'한국식 룰로 했으면 마지막에 이세돌이 이겼을 것이다'라며 
자위를 했지만
이세돌은 수년간 중국리그에서 활동해 온
한국기사 중 누구보다 중국식 바둑을 잘 두는 기사야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 중국식과 한국식 룰을 
오해해서 졌다는 것은 변명 조차 될 수가 없어

게다가 중국식 룰에서는 덤이 7집반인 백이 확실히 유리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상태에서 이세돌이 백을 쥐고 패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이세돌의 '완패'였어
물론 마지막에 역전승을 거둘 수도 있었기에 
아쉬움은 많이 남지만
커제가 실력으로 이세돌을 완벽히 꺾었다고 밖엔 볼 수가 없었다
 

몽백합배 우승 직후 인터뷰에 응하는 커제

그런데 대국 후 오히려 커제는
"역시 이세돌은 최강의 기사다. 그의 바둑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라며
이세돌을 인정해주고 오히려 자신을 높이는 소감을 밝혀
그리고 논란이 되었던 대국 전의 '5%' 발언에 대해서는
"그 당시 이세돌이라는 강자에게 기세에서 밀릴 수 없었다.
기세를 위해 과장을 했던 것."이라며
자신의 도발에 대한 해명도 덧붙였다

만약 커제가 승리후에도 이세돌이 별 볼일 없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면
오히려 커제를 인정할 수 없었을 거야
그런데 이런 우승 소감을 듣고난 후 에는 
모두가 커제를 최강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몽백합배의 우승으로 
커제는 한 순간에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지

이세돌은 패배 후 인터뷰에서
"커제는 강하다.확실히 이번에는 나의 완패다.
그러나 다음번엔 꺾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반격 의지를 보였어

이때까지
이세돌은 계속되는 대회 일정으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어
그리고 다들 잘 알다시피 몽백합배 이후 
올해 3월에 구글의 알파고와 대국을
예정지은 상태였기에
이세돌은 당초 타 대회 참가를 하지 않고 잠시 휴식기를 갖도록 되어 있었지

하지만 계획은 금방 어긋나 버렸어

휴식을 계획하고 있던 이세돌은 
후원사인 농심과 한국기원의 지속적인 간곡한 부탁으로
대표 선발전에 참가하지도 않았던
제 17회 농심 신라면배 한국 대표팀에 와일드카드로 뒤늦게 승선하게 돼
 

 

제 17회 농심 신라면배 개막식


당시 한국 대표팀의 멤버로는
백찬희 初단, 민상연 四단, 최철한 九단, 박정환 九단
그리고 이세돌 九단이 있었어 

 

 

 

 

 

 첫 세계 무대에 부담감이 컸던 탓인지 백찬희는 대국 내내 끌려다니다 패하고 말았어
백찬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일본의 이치리키 료는 연달아 중국의 판윈뤼를 꺾고
한국의 2장 민상연과의 대결에 나선다

 

당초 대회에 나서는 마음가짐에 대해
"팀의 허리를 맡고 있는 만큼 절대 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뱃심으로 밀고나가겠다."라는
당찬 각오를 밝힌 민상연이었기에
한국 팬들은 먼저 한국에 패배를 안겨준 이치리키 료를 반드시 잡아주길 기대하고 있었어 





그리고 결과는


연이은 한국 팀의 2연패
순식간에 믿었던 신예기사 둘이 연달아 패하며 한국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후 일본의 이치리키 료는 중국의 우광야를 맞아 패배하였고
한국의 3장으로 나서게 된 최철한으로서는 큰 부담감을 안은 채 승부에 임하게 되었지

 

 

 

한국 대표팀의 첫 승을 거두는 최철한

이어지는 한국의 최철한과 중국의 우광야의 대국은
최철한의 121수 만의 흑 불계승으로 최철한의 압승으로 끝이 났어

 

 

하지만 2연승을 거둔 최철한은 이어진 중국의 구리와의 대결에서 아쉽게 패하고 만다
이제 한국 대표팀은 박정환과 이세돌만이 남은 상황
물론 최철한이 제 몫을 해주었고 한국에겐 아직 최강의 카드 둘이 남긴 했지만
다소 불리한 것이 사실이었어
반드시 박정환이 최소 두명이상은 잡아주거나
될 수 있는 한 많은 승을 거두어 주어야만 했지
293수 까지 가는 대 혈투끝에 두집반 차이로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아쉬운 패배를 당하고 말아
이세돌 다음으로 믿고 있던 박정환이
최철한을 꺾었던 구리에게
어이없이 무너져 버리고 한국은 위기를 맞게 되었지

이세돌과의 대국을 바라고 있던 구리는 3연승 후 
일본의 2인자 무라카와 다이스케 八단을 만나 무너지게 되어
아쉽게도 구리와 이세돌의 대국은 성사되지 못했어
국내 1인자였던 박정환의 충격적인 패배 이후

일본에는 현재 일본의 2인자인 무라카와 八단과
부동의 1인자 이야마 유타 九단이 남아있었고

중국에는 롄샤오 七단과 이세돌의 천적 커제 九단이 남아 
이세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대표팀의 우승을 위해서는
이세돌이 연달아 네명을 모두 꺾어야 하는 상황

이는 곧 과거 이창호의 6회 농심 신라면배 
'상하이 대첩'과 같은 상황이었다

약 10년만에 재현되는 역사적인 상황에
바둑계는 한껏 달아오르게 되었어
과연 이세돌이 '제 2의 상하이 대첩'을 이루어 낼 수 있을지
온 바둑팬들의 기대가 모아졌지

보통의 기사라면 그 중압감에 짓눌려 무너져 버렸을테지만
이세돌은 달랐어
그는 천성적으로 팬들의 관심을 즐기며
위험한 승부를 오히려 반기는 사람이었으니까

아마도 선배 이창호만이 이룰 수 있었던 기적같은 역전우승을
자신도 이뤄낼 수 있다는 그 상황에 감사했을 이세돌이었다

이 당시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결전을 2주도 남겨놓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알파고와의 대결은 잊고 오직 농심배에 사력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밝혀

[

 

 

 

일본의 무라카와 다이스케 八단과 중국의 롄샤오 七단을 연이어 꺾은
이세돌 九단

자신보다 약체로 평가받던 일본과 중국의 기사들을 연이어 꺾어낸
이세돌은 당초 피로누적으로 휴식을 계획하고 있던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어
두 대국 모두 압도적인 기량차이를 보여주며 힘이 넘치는 바둑으로 압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일본의 주장
이야마 유타 九단과의 대국은
제아무리 이세돌이라 해도 쉽게 승리를 예측 할 수 없었어

 

 

현재 현재 일본바둑 부동의 1인자 이야마 유타 九단

이야마 유타는 현재 일본 내의 모든 기전을 독식하고 전관왕을 달성하며
홀로 외로운 독주를 펼치고 있는 일본 내에서는 유일무이한 1인자
아무리 일본 바둑이 한국과 중국에 밀렸다고 해도
이야마 유타 만큼은 그 무게감이 남달랐어 

그렇게 이전의 두 대국과는 다르게 시작된 이야마 유타와의 대결
 

 

박빙의 승부가 예상됐던 승부에서 손쉬운 승리를 거둔 이세돌

하지만 결과는 이세돌의 압승이었어
물론 이야마 유타도 강했지만 이세돌은 차원이 달랐다

반신반의 하며 '제 2의 상하이 대첩'을 기대하던 한국의 바둑팬들은
이세돌이 정말로 해낼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사로잡히게 되었어

이제 중국의 주장 커제만 넘으면 한국이 역전우승을 거두고
이세돌은 이창호에 이어 다시 한 번 세계무대에 역사를 쓰게 되는 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세돌 개인에게도 다음 대결은 분명히 중요했어
이전 대결에서 커제에게 번번이 무릎 꿇으며
승부사로서 치욕을 당했던 이세돌이었기에
커제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
여러가지 의미로 이세돌은 놓칠 수 없는 승부였다
 

하지만 질 수 없는 것은 커제도 마찬가지였어
농심배는 개인전이 아닌 바둑기전 유일의 국가 대항 단체전
첫 출전에서 중국의 주장으로서 자신의 손으로 자국의 우승을 결정짓고 싶었을 테니까
더군다나 중요한 대회마다 마주치던
이세돌과의 승부였으니 그 의미는 더 했지
 

제 17회 농심 신라면배 최종 결승국
이세돌 대 커제

서로 반드시 이겨야 하는 승부가 그렇게 시작되었어
사실 이전의 승부때도 늘 그랬지만
대국의 초반은 커제가 앞서나가게 되었어
사실 커제의 가장 강점은 초반 포석에 있어
반대로 이세돌은 초반 포석에 약하고 중반 전투에 가장 강한 모습을 보이지



초반 포석에서 많은 손해를 본 이세돌은
중반 전투에서 만회를 꾀했어
하지만 커제는 쉽게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더 빠르게 두어가며
이세돌을 시간으로 압박했어
결국 이세돌은 바둑을 난전으로 이끌어 역전을 노렸지만
커제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초반 벌어진 차이를 극복해내지 못하고 패하고 말아

 

우승을 확정지은 후 기뻐하는 커제

커제는 이세돌과의 승리로 중국에 우승을 선사함과 동시에
이번 대결까지 이세돌과의 상대 전적에서 8승 2패로 거듭 앞서 나가게 된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상 이세돌은 커제에게 못 당한다는 말 밖엔 할 수가 없는 상황

바둑계의 판도는 이 패배로 완전히 커제의 중국에게로 넘어가고 말았어

이세돌의 나이가 거듭 아쉽게만 느껴졌다

1997년 러시아의 세계 체스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가 
IBM 社의 인공지능 딥블루(Deep Blue)에게 패하는 순간


아시아권에 바둑이 있다면 
서양에는 대표적인 보드게임으로 체스가 있지
1997년 미국의 IBM이 개발한 딥블루는 인간 체스챔피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어
이때에도 인간이 인공지능에 곧 지배를 당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많이 나왔어
하지만 이 역사적인 대결도 금방 잊혀졌지


잠시 잊혀졌던 이 역사적인 사건을 이후로
다시 펼쳐지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
그것이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의 의미였어
 

이세돌과 알파고(Alpha Go)

인공지능 개발자들에게 있어 바둑의 세계는
크나큰 도전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었어
오목,장기,체스 인간이 즐기는 보드게임 중 대표적인 것들은
이미 모두 인공지능에게 추월당한 상황이었지만
바둑만큼은 예외였거든

지금까지 바둑은
그 경우의 수가 무한해서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을 넘어설 수는 없다고 여겨졌어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이 처음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였지만
그 실력은 형편없었고
알파고가 나오기 전 까지도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구글의 자회사인 '딥 마인드Deep Mind'가
올해 초 이세돌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지

사실 인공지능 사업은 2000년대 부터 지속적으로
주목 받아왔던 차세대 사업시장이야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기술로서 
생산,의료,금융,유통 등 거의 모든 사업에 접목시킬 수 있는
엄청난 잠재성을 가진 사업분야였기 때문에 미국은
이미 예전부터 사람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해 돈을 쏟아붇고 있었지

 

 

IBM 社의 차세대 인공지능 '왓슨Watson'

현재 인공지능 사업은 구글과 IBM의 양강구도가 이어지고 있는데
먼저 앞서나가기 시작한 것은 왓슨쪽이었어

 

 

2011년 미국 제퍼디쇼에 출연해 퀴즈 세계 챔피언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왓슨

2011년 미국의 인기 퀴즈쇼 '제퍼디 쇼Jeopardy Show'에 출연해
퀴즈 챔피언들을 꺾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며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 수준만큼 도달했다는 것을
대중들 앞에서 증명해내지
이 덕분에 IBM은 주가가 급등했고
인공지능사업 경쟁에서 IBM이 한 발 앞서나가게 된다

 

현재 인공지능 사업의 주요 적용분야인 의료기술

왓슨은 이미 미국에서
의료산업에 적용되어 암환자들을 위한 프로젝트에 사용되고 있어
구글의 알파고는 개발단계였던 것에 비해
왓슨은 이미 상용화 단계까지 접어든거지

 

 

왓슨이 의료기술에 특화되어 있다면 구글은 인공지능을 통해
수 년 전부터 무인자동차 시스템을 개발해왔어
그리고 현재 무인자동차 시스템은 개발이 끝나서
법적 제도만 갖춰진다면 언제든 상용화를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고 해

 

구글의 무인자동차

구글은 이러한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을 만한
'계기'가 필요했어
세계인의 이목을 끌 수만 있다면 
그 엄청난 '관심'이 엄청난 '투자'로 이어질테니까

그 계기가 될 수 있을 만한 것을 고민하던
구글이 선택한 것이
바로 '바둑'이었어

 

 

 

알파고와의 대결을 발표하는 자리의 이세돌

'알파고' 자체는 바둑을 주 목적으로 개발된 인공지능이 아니야
단지 인공지능의 학습방식이 얼마나 인간의 그것에 가까운 지를
보여주기 위해 인간 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바둑'을 활용한 것 뿐이지

 

2015년 10월 유럽 바둑챔피언 판후이 二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알파고

이세돌과의 대결 전에 이미 알파고는
유럽 바둑 챔피언 판후이를 꺾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어

하지만 판후이는 본래 중국에서 최약체로 평가받던
프로기사였기에 아무리 유럽 챔피언이라지만
인간을 대표할 만한 기력은 되지 못 했어
때문에 이때까지도 인공지능의 능력이 뛰어나서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니라
판후이의 기력이 형편없어서 패배한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대결 전 자신감을 내비치는 이세돌

그래서 이세돌도 처음에는
알파고를 상대로 '5대0 혹은 4대1'의 승리를 자신있게 예측할 수 있었던 거지
알파고 바로 이전의 인공지능들은
프로기사를 상대로 호선은 어림도 없고
접바둑으로도 될까말까한 수준이었기에
이세돌이 이런 자신감을 보인 것도
무리는 아니었어

나도 이때까지는 당연히 이세돌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측은 모두 빗나갔다
 
결과는 4:1로 이세돌의 처참한 패배
 

 

알파고와의 패배 후 괴로워 하는 이세돌

이세돌의 바둑을 예전부터 지켜봐 왔지만
이때 만큼 힘들고 괴로워 보인 적이 없었어
아무리 이세돌이
팬들의 관심과 승부에 걸린 부담감을 즐기는 타고난 승부사라 할지라도
알파고와의 대결은 자신의 바둑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이었니까

하지만 이세돌은 완전무결해 보였던 알파고를 상대로 1승을 거두며
알파고의 파훼법을 어느 정도 제시해주었어
그러나 알파고는 지금도 계속 개발 중이고 성장하고 있기에
인간과 인공지능의 승부를 다시 한다 해도
인간이 승리를 거둘 수 있는 확률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사실 아무리 바둑이 복잡한 게임이라해도
인공지능의 발전을 인간의 힘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이었어
다만 그것이 생각보다 빨리 온 것 뿐이지
이세돌이 알파고에 패했다고 해서
바둑이 끝나는 것은 아니야
알파고에게 졌다고해서 사람들이 바둑을 즐길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대결이 끝난 후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있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

이세돌은 대결 후에 구글의 개발진들을 향해 깊은 존경심을 전한다는
소감을 밝혔어
인공지능이 도달한 수준을 직접 느끼며 패배 후에 괴롭기도 했지만
반대로 즐겁게 승부에 임하기도 했다고 해

구글의 개발자들 역시 인간 대표로 대결에 나선 이세돌에게
깊은 존경심을 밝혔지

 

친필 사인이 담긴 바둑판을 선물하는 이세돌

그렇게 역사적인 대결은 마무리 되었고
이세돌은 올해 개최되는 응씨배에서 우승을 거두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고 해

이세돌이 두고두고 아쉬워 하는 것이 응씨배 우승이거든
이세돌이 꼭 이 대회에서 우승했으면 좋겠다
이세돌에게 관심이 많은 게이들은 
이 대회를 챙겨보면 보는 재미가 더 할거라 생각해




'한국 바둑계 최강자의 마지막 계보를 잇는 기사'
'승부를 두려워 하지 않고 오히려 위협을 즐기는 승부사' 

불의에도 굴복하지 않는 그의 인생에서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었어

 

 

                     이상으로 바둑 정보글 시리즈 마지막 [쎈돌 이세돌]편이 


 


그럼 [쎈돌 이세돌] 3편을 시작한다!!

이세돌 九단


지난 2편
패도무문의 최강자였던 이창호를 처음으로 꺾고 
세계대회 타이틀을 거머쥔 뒤
2002년,2003년 세계대회 후지쯔배 2연패 등
국내외 기전에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이창호의 독주를 견제하기 시작했던 이세돌이었다

이제 이세돌의 다음 목표는
과거 조훈현,서봉수,유창혁,이창호가 차례로 차지했던
'응씨배'였지
2000년 제 4회 응씨배를 우승했던 이창호가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고
 

제 3회 응씨배 우승자 유창혁 九단

 

제 4회 응씨배 우승자 이창호 九단

그런 이창호를 얼마전 LG배에서 꺾은 이세돌은
이제 최후의 등용문 응씨배만 우승하게 된다면
앞선 최강자들과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바둑 팬들의 예상이 이어졌어
정말 단순히 기재로만 본다면
전광석화와 같은 수읽기, 승부의 흐름을 읽는 감각은
조훈현 이후 최고의 천재성을 보이고 있던 이세돌이었기에
주위의 관심은 이처럼 남달랐다

하지만 예상은 크게 빗나갔고 
이세돌은 
2004년 제 5회 응씨배 예선 1회전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게 되는데
참고로 이 대회는 전기 대회 때 이창호에 막혀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던 중국의 창하오가
한국의 최철한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제 5회 잉창치배 세계 바둑 선수권 우승을 차지하는 창하오 九단


2004년은 이세돌에게 있어
치욕적인 한 해가 되고 말아
이세돌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이 시기에 갑작스럽게 급제동이 걸리며 
나서는 국내외 대회 마다 줄줄이 탈락했고 
거의 넘어설 수 있을 것 처럼 보였던 
이창호라는 벽의 높이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간신히 중국의 왕시 五단을 꺾고 
제 9회 삼성화재배 에서 우승하며
체면치레를 하긴 했지만
4년 마다 열리는 응씨배가 개최되며 다른 때 보다 
유난히 많은 세계 대회가 열렸던 한 해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두고두고 아쉬운 한 해가 아닐 수 없어
 

 

제 9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우승을 거머쥔 이세돌 九단

이세돌에게는 지우고 싶은 한 해였던 
이 2004년에

중국 갑조리그(프로바둑리그)에서
이세돌은 후에 자신과 숙명의 라이벌이 되는
중국의 구리 九단을 처음 만나게 된다

 

제 9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우승을 거머쥔 이세돌 九단

이세돌에게는 지우고 싶은 한 해였던 
이 2004년에

중국 갑조리그(프로바둑리그)에서
이세돌은 후에 자신과 숙명의 라이벌이 되는
중국의 구리 九단을 처음 만나게 된다

 

구리(古力) 九단

구리에 대해 잠시 설명하고 넘어가자면
83년생으로 이세돌과 동갑내기에 
공교롭게도 프로 입단년도 또한 95년도로 이세돌과 같아

중국의 창하오와 뤄시허를 견제할 수 있는 신예기사로 촉망받았던
그는 2006년 LG배를 우승하며 첫 세계대회 타이틀을 획득한다
2016년 현재 커제 九단이 등장하기 전 까지 부동의 중국 1인자였어

구리 九단은 그 실력에 걸맞지 않게 '최강의 아마추어'라는 
이상한 별명을 갖고 있는데
이건 그가 항상 어이없는 역전패를 자주 당해서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야
(보통 아마추어들이 이런 실수를 많이 해)

초반 포석과 중반 전투 그리고 전체적인 판을 구성하는 감각은 
라이벌인 이세돌을 능가한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지녔지만
후반 끝내기로 갈수록 약점을 드러내며 
다 잡은 승리를 놓친 적이 많았어

'조훈현에게 녜웨이핑이 있었고
이창호에게 창하오가 있었다면
이세돌에게는 구리가 있었다.'

구리는 라이벌이었던 이세돌을 무척 좋아했어
항상 세계대회나 행사에서 
이세돌과 만나면 먼저 나서서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고
대회 참석 차 한국에 오면 늘 이세돌부터 찾아간다고 해

 

 

2008년 구리 九단의 결혼식에 한국 기사로는 유일하게 초대받은 이세돌 九단

이런 둘의 일화 중에 하나는 
어느날 구리가 이세돌과 18번째 대결 전날 전야제 기자회견장 에서

"나는 2월 3일 생이고 당신은 3월 2일 생이니 

내가 형이고 당신이 동생이다. 나는 앞으로 5년, 10년 

아니 더 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도 우리가 더 가까운 사이로 지내길 바란다."며 

이세돌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어


함께 있던 취재진과 관객들이 하나같이 구리에게 

"그럼 동생을 안아줘라!"고 말하자 

구리는 자연스럽게 팔뚝을 벌려 이세돌을 껴안았지


 

2015년에는 
이세돌과 '십번기十番棋'라는 역사적인 승부를 겨루게 되는데
이 부분은 뒤에 자세히 언급될 내용이야

 

 

이세돌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증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중국의 최강자

그런 구리와의 첫 만남에서 이세돌은 완패를 당하고 말아
당시 이세돌은 잠시 침체기를 걷고 있었고
구리는 2003년 중국 천원전을 우승하며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었어

후에 이 둘은
수도 없이 많은 대회에서 마주치게 되는데
상대전적은 이세돌이 미세하게 앞서고 있

 

 

 

한중일 프로기사 역대 통산 세계대회 우승 횟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통산 세계대회 우승 횟수는 구리보다 이세돌이 훨씬 앞서고 있어
역대 세계대회 최다 우승자는 이창호이고
이세돌이 이창호의 기록을 깰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어
이제는 바둑기사로서 이세돌도 적지 않은 나이라서
앞으로 이창호가 세계 대회 우승트로피를 추가하지 못 한다고 가정하고
아마도 저 기록을 깨려면 마흔 전 까지는 깨야 할텐데
올해 이세돌이 서른넷이니까


아무튼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침체기를 뒤로하며 맞은 
2005년
이세돌은 작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다시 한 번 우승 행진을 달리게 되는데

2005년
제2회 도요타덴소배 우승 
제6회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우승
제18회 후지쯔배 우승 
제2회 중환배 준우승
 
2006년 
제7회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우승 
제19회 후지쯔배 4위 
제2회 한국물가정보배 
우승 
제25회 KBS 바둑왕전 
우승 
제11회 GS칼텍스배 
우승
2007년
제3회 도요타덴소배 우승
2006년 바둑대상 최우수기사상 수상
제8회 맥심커피배 우승
KB국민은행 2007 한국바둑리그 주장
제19회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
제3회 한국물가정보배 우승
제35회 강원랜드배 명인전 우승
2008년
제36회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우승
제12회 삼성화재배 우승
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우승
제20회 TV바둑아시아 우승
2009년
제52회 국수전(國手戰) 우승
제13회 삼성화재배 우승


침체기를 완벽히 걷어내며 
비로소 완전한 최강자의 면모를 갖추게 돼
2000년대 후반 이창호는 이제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고
바야흐로 이세돌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어
그렇게 전성기를 달리던 이세돌은

 

2009년 
돌연 '한국바둑프로리그'에 불참을 선언
일체 한국에서 개최되는 기전에는 참가하지 않고 
한국 바둑계를 떠나버린다

이 결정으로 온 바둑계는 충격에 빠졌어
한국 바둑을 이끌어 가고 있던 최강자가 돌연 바둑계를 떠나버린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었지
그런데 한술 더 떠 이세돌은 
한국에서는 활동하지 않겠다면서 중국리그에는 계속 참가하며
모든 이들의 공분을 샀어

또한 이세돌이 소속되어 있던 한국 프로팀은 
졸지에 에이스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팬들은 이러한 무책임한 이세돌의 행동들에 거센 비난을 가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말도 안되는 행동들이
계속해서 거듭되었다

 

2009년 휴직계 제출 관련 기자회견에 나선 이세돌 九단

이러한 일련의 논란에 대해 해명하고 정식으로 중국 활동을 포함한 
바둑기사로서의 활동을 전면 중단하고자 이세돌은 기자회견을 갖게 돼

인사말 전문에서 
"저를 아끼고 사랑해준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들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대회진행에 물의를 일으키고 피해를 끼쳐 스폰서분들께도 정말 고개숙여 사과드립니다. 
저는 그동안 루머 소문에 신경쓰고 싶지않아서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심정을 알리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어

이세돌은 프로대회 주최사, 후원사, 바둑팬들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거듭 죄송하다는 말을 세번 씩이나 하게 된다

또 한국에서는 활동하지 않으면서 중국에서는 활동했던 것에 대해

"휴직기간과 관계없이 계약이 있어, 계속 둘 수 밖에 없었다. 한국리그와 중국리그의 차별은 절대 아니다. 
중국리그는 계속 참가하는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한국기원의) 다른 조치가 취해진다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겠다. 
중국리그의 경우 바둑두기 최적의 조건이다. 제한시간도 그렇고 주장전으로 펼쳐지는 시스템도 그렇고. 
한국리그는 사실 상위 랭커들에게는 별로 매리트가 없는 기전.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곳에서 내가 최상의 가치가 있을 때 선수로 뛰고싶다."

"지금까지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다.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고 많은 대화를 하겠다."
라며 거듭 팬들에게 사과를 해

이렇게 기자회견을 마치고 이세돌은 약 1년 반 가량
바둑계를 떠나게 되는데


사실 이렇게 된 모든 문제의 발단은 이세돌이 아닌 
한국기원과 원로기사들에게 있었어




문제의 원인을 찾자면 한국의 프로제도가 
탄생하는 곳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해
 

 

 

2009년 휴직계 제출 관련 기자회견에 나선 이세돌 九단

이러한 일련의 논란에 대해 해명하고 정식으로 중국 활동을 포함한 
바둑기사로서의 활동을 전면 중단하고자 이세돌은 기자회견을 갖게 돼

인사말 전문에서 
"저를 아끼고 사랑해준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들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대회진행에 물의를 일으키고 피해를 끼쳐 스폰서분들께도 정말 고개숙여 사과드립니다. 
저는 그동안 루머 소문에 신경쓰고 싶지않아서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심정을 알리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어

이세돌은 프로대회 주최사, 후원사, 바둑팬들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거듭 죄송하다는 말을 세번 씩이나 하게 된다

또 한국에서는 활동하지 않으면서 중국에서는 활동했던 것에 대해

"휴직기간과 관계없이 계약이 있어, 계속 둘 수 밖에 없었다. 한국리그와 중국리그의 차별은 절대 아니다. 
중국리그는 계속 참가하는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한국기원의) 다른 조치가 취해진다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겠다. 
중국리그의 경우 바둑두기 최적의 조건이다. 제한시간도 그렇고 주장전으로 펼쳐지는 시스템도 그렇고. 
한국리그는 사실 상위 랭커들에게는 별로 매리트가 없는 기전.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곳에서 내가 최상의 가치가 있을 때 선수로 뛰고싶다."

"지금까지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다.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고 많은 대화를 하겠다."
라며 거듭 팬들에게 사과를 해

이렇게 기자회견을 마치고 이세돌은 약 1년 반 가량
바둑계를 떠나게 되는데


사실 이렇게 된 모든 문제의 발단은 이세돌이 아닌 
한국기원과 원로기사들에게 있었어




문제의 원인을 찾자면 한국의 프로제도가 
탄생하는 곳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해


 

서봉수와 조훈현

서봉수는 그나마 어느정도 마셨지만
조훈현은 소주 한 잔만 마셔도 몸을 못 가누는 편이라
둘 다 술을 즐기지 않았고
이때부턴 후배들에게 우승 후 술을 사던 관례가 사라지게 돼

우승이란 우승은 둘이 다 해먹으면서
돈은 돈대로 안쓴다며
다른 기사들의 불만이 커지게 된다

그래서 한국기원 측은 이때부터
우승상금에서 일정 금액을 떼어가게 돼
(이 금액이 언론에 정확히 발표는 되지 않아서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지만 꽤 많은 액수였던 것으로 보여)

명목은 한국기원 운영비용과 '기사회'라는 프로기사 복지회 사용기금이었어

기사회는 나이많은 기사들을 위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일정 나이를 넘기면 이곳에서 연금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돈을 젊은 기사들의 우승상금에서 충당한다는게 문제였어

프로기사의 특성상 일정 나이를 넘으면 
사실 대회에서 성적을 낸다는 것이 힘들어
보통 우승은 20~30대에 가장 많이 하게 되는데
자연히 어린 기사들은 나이든 기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구조가 될 수 밖에 없었지
그런데 웃긴건
연금이라는 건 현역을 은퇴한 사람들이 받아야 하는 것인데
프로기사들은 은퇴라고 할 것이 없어
나이가 들어도 은퇴를 하지 않고 대회에 참가하지 않아도 
심판이나 해설 등으로 부수입을 챙길 수 있거든
그런데 연금은 연금대로 받고
은퇴는 은퇴대로 안하고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 같지

옛날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조훈현은
젊은 시절 이렇게 우승상금을 반강탈 당하면서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어
당연하게 생각했지
그리고 이창호도 스승이 가만히 있는데
자신이 나설 수는 없었기에 꼬박꼬박 돈을 줄 수 밖에 없었지
그리고 애초에 이창호는 집안이 부유했어

또 하나의 문제는 '기보저작권'에 있었어
기보라는 것은 대국의 수순을 정리한 것인데
대국이라는 것은 두 대국자가 만들어내는 것이니
당연히 그 저작권 또한 선수들 본인에게 있는 것이 맞는 일이었지
하지만 이 기보에 대한 저작권이
한국기원 측에 있다는 것이 문제였어
이세돌은 이 부분도 문제를 삼았다

이런 잘못된 구조를 근본부터 비판하고 나선 거야
하지만 이세돌 또한 자신이 몸담고 있던 이러한 한국기원의 부조리를
외적으로 공론화 시키고 싶지는 않았고
자신의 선에서 마무리 짓고자 했는데

이로써 예전 승단대회를 거부할 때 부터
한국기원에 미운털이 박혔던 이세돌과
한국기원과의 보이지 않는 완력싸움이 벌어지게 돼

이 과정에서 조훈현은 이세돌을 찾아가
이세돌의 행동에 대해 나무랐다고 해
'자신도 젊을 때 다 당했던 것인데 네가 뭔데 왈가왈부하냐'
대충 이런 논리였지

이 때문에 이세돌은 한국기원 측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한국 대회에 대한 전면 불참 선언을 하게 된 것이었어
아무리 한국 최강자라고 해도 이세돌이 괴씸했던 한국기원 측은
모든 일을 이세돌의 탓으로 돌려 언플을 했고
이세돌은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 되어 공공의 적으로 낙인 찍히게 된다

결국 일은 한국기원과 원로기사들이 벌려놓고
욕이란 욕은 이세돌이 다 먹게 돼
이세돌은 늘 '불의에 대해선 할 말은 해야한다'라는 주의였기 때문에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후배들 에게도 이러한
말도 안되는 관례가 이어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해

이 일이 마무리 된 후에도 한국기원의 언플로 흐지부지 되어 버려서 
이세돌은 한 동안 팬들의 수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서 지금도 이세돌이 싸가지 없는 놈이라는 바둑팬들이 더러 있다
 

 

 

기자회견 중인 이세돌

보수적인 바둑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 어떻게 응징을 당하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어
이에 이세돌은 한국 바둑계에 염증을 느끼고 형 이상훈을 통해
한국기원 측에 정식으로 휴식계를 제출했다
휴직 기간은 1년 6개월,
2010년 12월 31일 까지였어

 하지만 이 일로 불안해진 것은 한국기원 측이었어
이세돌이 떠나자 각종 세계대회에서 중국 기사들이 타이틀을 휩쓸기 시작했거든
이세돌은 또 당장 자신들의 가장 큰 수입원 이기도 했고
어느정도 이 일에 대한 내막이 팬들에게 알려지며
한국기원 또한 비난을 피해갈 수 없었다

때문에 한국기원은 이세돌을 거듭 찾아가 휴직을 만류했고
결국 이세돌은 휴직 6개월 만인 2010년 1월 반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복귀 후 이세돌은 그간의 공백기가 무색할 만큼의 실력을 과시하며
소속팀인 '신안 천일염'팀의 첫 프로리그 우승을 이끌게 된다
그리고 이세돌은 시즌 MVP를 수상하게 된다

 

2010년 한국바둑프로리그 시즌 MVP를 수상하는 이세돌 九단

그리고 이어진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도 한국 대표팀으로 출전하게 되는데

 

 

태릉 선수촌에 입성한 이세돌과 이슬아

 

 

체력 훈련 중인 박정환과 이세돌

아시안 게임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바둑기사로서는 이례적으로 태릉 선수촌에 입성하여 체력 훈련도 받게 돼

 

 

이세돌 九단

이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은 단체전 부문 금메달을 차지하게 되고
이세돌은 원래 중학교 중퇴로 병역을 면제받은 상태였기에 관계 없지만
함께 출전했던 조한승 九단(당시 군 복무중)
박정환 九단 등은 여기서 병역 면제 혜택을 받게 된다
이창호도 이 대회에 출전해 금메달 획득에 보탬이 되었어
 

 

 

중국의 창하오 九단과 대국 중인 이창호 九단


그리고 이세돌은 이후

2010년 
제6회 한국 물가정보배 우승
제1회 olleh KT배 우승 
제2회 BC카드배 
우승 
2011년 
제6회 원익배 십단전 
우승  
제2회 olleh KT배 우승(2연패) 
제3회 BC카드배 
우승(2연패) 
제8회 춘란배 
우승
제10회 농심 신라면배 우승
2012년
제17회 GS칼텍스배 우승
제3회 olleh KT배 우승(3연패)
제40회 하이원 리조트배 명인전 우승
제16회 삼성화재배 우승
2013년
2014년
제32회 KBS 바둑왕전 우승
제15회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우승
제1회 렛츠런파크배 우승
제26회 TV바둑아시아 우승


무관에 머물렀던 2013년을 제외하고 꾸준한 우승가도를 보이며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지켜가게 된다

그리고 2014년 이세돌은 앞서 언급했던 
라이벌 구리 九단과의 '십번기十番碁'의 혈전을 갖게 된다

이 십번기는 바둑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어
 

 

 

2014년 십번기를 치르게 된 이세돌 九단과 구리 九단
 

 

오청원과 기타니 미노루의 십번기 모습
세기의 대결로 불리며 당시 엄청난 관심을 모았다

십번기는 예전 일본에서 두어지던 승부의 형식 중 하나로
'치수 고치기'가 그 목적이야

'치수'라는 것은 대국이 벌어지기 전 
대국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상대가 나보다 기력이 높다면 
어느정도 핸디캡을 주어야 하는지 정하는 것을 말하는데
치수에는

'호선(互先)'
나중에 두는 백에게 덤을 주고 선수의 효를 상쇄하여 
흑과 백이 '호각'으로 겨루는 방식, 현재의 프로대국은 모두 호선으로 이루어 진다
'선상선(先相先)'
세 판을 기준으로 하수가 흑,백,흑의 순서로 쥐어 흑을 한 번 더 둘 수 있게 하는 경우
'정선(定先)'
나중에 두는 백에게 덤을 주지 않는 방식, 백에게 덤이 없으므로 상수가 백을 쥐고 하수가 흑을 쥐게 된다


이렇게 세가지가 있고

그 외에 한 점 부터 아홉 점 까지의 접바둑이 있어
접바둑은 하수가 흑을 잡고
기력의 차이에 따라 몇 점을 먼저 착수한 뒤 
대국을 시작하는 것을 말해
물론 이 때에도 백에게 덤은 없다


십번기에 나서는 두 기사는
처음에 호선으로 시작했다가
패하면 선상선 정선 등으로 치수를 점차 내리게 돼

결국 여기서 패한 사람은 영원히 상대보다 '하수'라는 것을 인정해야 해
여기서 패배하는 기사는 죽을 때 까지 '~보다 하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지
다음에 만날 때는 전에 십번기에서 승리했던 승자가
패자에게 한 수를 접어주게 되니까
프로기사로서 이만한 치욕은 없지
참고로 일본에는 이 승부에서 패배를 거듭해서 자신의 성까지 갈았던 기사가 있다

명예를 목숨보다 중요시 하던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바둑식 '캐삭빵'이라고 할 수 있어

그래서 현대에 와서는 이러한 부담이 큰 십번기는 두어지지 않게 돼
특히 프로기사를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지

그런데
알고보면 이렇게 무시무시한 승부가
이세돌과 구리 사이에 성사되게 돼

사실 이 승부가 논의되기 시작한 당시
주위에서는 너무 무리한 승부라며 우려가 나왔어
그도 그럴 것이 타이틀 매치도 아니고 그저 두 기사가 합의 하에
치르는 친선 대국인데 이겨봤자 본전이고
반대로 지는 쪽은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얻게 되니까

 

 

십번기의 시작 전 서로에게 인사를 나누는 이세돌과 구리


때문에 이세돌과 구리는 십번기를 시작하기 전에
팬들에게 이번 승부를 명예를 걸고 하는 
본래의 십번기로 생각하지 말아주길 당부했어

대신 두 기사는 이번 승부의 상금을 '승자가 전부 가져가는 방식'으로 정했지
지는 쪽은 중국과 한국을 오고가는 승부에 필요한
비행기 값 외에는 일체 받지 못하고
승자가 우승상금 500만 위안(한화 8억 5천만원)을 독식하는거야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있던 라이벌인 이세돌과 구리는
이무렵 바둑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고민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거든

어느새 지루해져 버린 승부의 인생에
새로운 자극제가 필요했던 거야

이 십번기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흥미를 이끌어 내기도 좋은 승부였어

결국 이 십번기의 최종승자는



 

 

8국을 승리하며 종합전적 6대2로 십번기의 우승을 거머쥔 이세돌 九단


1,2국을 승리하고 3,4국을 패배한 이세돌이
나머지 대국을 내리 승리하며 먼저 6승을 기록했고
승부는 6대2로 이세돌이 승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하는
십번기 승자 이세돌 인터뷰 내용

- 우승 소감은? 
"세계대회는 자주 우승할 수 있지만, 이런 영광스런 10번기에서 승리를 했다는 건 기분이 다르다. 
기쁘다는 말보다 더 좋은 표현이 있겠지만, 다른 단어가 생각이 안 난다."

- 패한 구리에게 한마디를 한다면? 
"승패를 떠나서 나를 상대해 준 구리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구리가 없었다면 10번기 자체가 없었다. 가슴 깊이 감사한다." 

- 10번기 여정을 돌아본다면? 
"10번기가 시작할 때 두 사람 모두 컨디션이 안 좋은 상황이었다. 이제는 앞으로가 중요할 것 같다. 
구리가 졌으니 타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프지만 저력이 있는 기사이므로 그래도 빠른 시간 내에 올라설 수 있다고 본다. 
구리나 나나 앞으로 더 잘해야 이번 10번기가 의미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오늘 대국이 어땠나. 후반이 복잡했다. 
"굉장히 어려웠다. 후반에 흑이 좋아질 수도 있었다. 
마지막은구리가 초읽기에 몰렸고
나는 10분 정도 여유가 있어서 큰 잘못 없이 마무리 할 수 있었다."

- 이번 10번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바둑은 
"5국이다. 먼저 2승을 했을 때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후 3,4국과 다른 기전에서 2패를 당하는 등 내리 4연패를 했다. 
5국은 형세가 굉장히 나빴는데 운 좋게 역전할 수 있었고 
그 바둑의 승리가 10번기 우승의 결정적인 판이 되었다." 

-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딸인가 아내인가? 
"기왕이면 딸이라고 해야겠죠." (웃음)

- 최근에 자주 지는데 체력에 문제가 있나? 
"작년 춘란배와 삼성화재배에서 준우승에 머문 것은 다른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체력이나 나이, 이런 것들은 아직 큰 문제가 아니다. 세계대회와 10번기에서 10번기 쪽에 더 비중을 두었다. 
둘 다 성적을 잘 낸다는 것은 내 능력을 벗어난 일이었다. 
지금부터 잘해야 한다. "

- 휴식이 필요할텐데 다른 계획은 있나? 
"10월에 바로 삼성화재배가 있다. 바로 10번기 이후의 첫 대회이기 때문이다. 
사실 8국을 졌다면 모르겠지만 이겼으니 당연히 삼성화재배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이 대회를 마치고 좀 쉴 예정이다."

- 다시 10번기를 치를 수 있을까? 
"스폰서가 생긴 후의 문제다. 당장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일단 상대가 없다. 
10번기라는 것은 단순히 일인자라고 해서 두어지는 게 아니다. 
용호상박의 상대가 있고, 또 두 사람의 업적이 비슷해야 한다. 
최하 세계대회 5개 이상은 우승한 상대여야 하지 않을까?"

- 10번기에 등장한 사람이 중국 일본 사람뿐이었는데 이제 70년 만에 10번기를 소화한 첫 한국인이다. 느낌은? 
"굉장히 영광이다. 지금도 상황이 힘겨운데, 오청원시대는 부담이 엄청났을 텐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번에 이겼으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

- 마지막으로 바둑팬들에게 
"바둑팬 여러분 그리고 니장건 회장님, 구리, 기자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한국바둑의 침체기에 10번기를 이긴 것은 의미가 큽니다. 
중국바둑과의 대결에서 지는 모습도 많이 보여주었지만
이제부터는 중국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겠고 동료기사들도 앞으로 많은 승전보를 전해드릴 것입니다. 
바둑팬 여러분 사랑합니다."



여기까지 3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