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안녕하세요

 

인류는 수없이 전쟁을 치루며 수없이

 

많은 신세계와 영웅들을 탄생시켜왔습니다.

 

이번에는 지금은 만날수는 없지만

 

세기의 영웅들의 심정을 짐작할수있는

 

유명한 어록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게요

 

 

 

 

"목마른 병사들을 두고 나 홀로

 

 물을 마셔 갈증을 해소할 수는없노라."

 

인도 원정길의 알렉산더대왕

 

인도의 사막지대를 행군하던 알렉산더의

 

군대는 뜨거운 열기와 물 부족으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말에서 내려 병사들과 같이 행군하던

 

 알렉산더도 목이 말랐었습니다.

 

그때 부하가 물을 구해 그에게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혼자서만 목을 축일 수 없다'며

 

 잔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적을 치기 전에 부하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던겁니다

 

 

 

"참호를 파는 것은 곧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것이다.

 

미심쩍을 때는 무조건 공격하라."

 

2차 세계대전 당시 미3군 사령관

 

 조지 패튼 장군

 

역사상 가장 저돌적인 장군 패튼의 기갑부대는

 

 프랑스를 횡단해 노르망디에 있던

 

 독일군의 운명에 종지부를 찍었고,

 

기갑부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교과서적 실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에게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고,

 

 병사의 본분은 참호를 파는 것이

 

 아니라적을 무찌르는 것이었습니


 

"길을 찾을 수 없다면 만들어라"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군을

 

격파한 카르타고의 한니발

 

기원전 218년 2차 포에니전쟁에서

 

 한니발은 로마군이 '카르타고 군대가 설마

 

 알프스산을 넘어 공격할까'방심할 때,

 

추위와 눈사태를 이겨내고 보름 만에

 

알프스 산을 넘어 티치노 강변에서

 

 로마군을 무찔렀습니다.

 

그래서 그는 실현 불가능한 전쟁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승리를 쟁취하는

 

'군사 전략의 아버지'라고 불리웁니다


 

 

"해병에게 후퇴는 없다.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공격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 해병 1사단장

 

올리버 프린스 스미스 소장

 

북한 내륙 깊숙히 전진했다가 6배가 넘는

 

 중공군에 포위된 미 해병 1사단장

 

 스미스 장군이 홍남으로 후퇴할 것을

 명령하면서 한 말입니다

 

당시 장진호까지 북진한 미 해병 1사단이

 

 철수하는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선

 

중공군에게 막힌 길을 뚫고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투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

 

유명한 이 경구는 사실

 

그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맥아더는 필리핀에서 일본군에게 기습을 당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중공군 개입에 대한

 

온갖 정보를 무시하고 무리한 북진에 나섰다가

 

 뼈아픈 기습을 혀용했습니다.

 

 그 결과 유엔군은 전면 후퇴를 면치못했고

 

 전쟁은 장기화되었습니다

 


 

 

"가장 훌륭한 싸움은 적이 지키지 않는

 

지점을 소수의 병력으로

 

차지하는 것이다."

 

프랑스를 당대 최강의 국가로 만든

 

 나폴레옹

 

나폴레옹 전략 개념의 핵심은 적의 방어를

 

 분산하고 나서 적의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빠른 기동력으로 하나씩 격파하는 방식입니다

 

약한 적은 한꺼번에 무찌르고

 

강한 적은 나뉘서 격파하라

 

 이것이 나폴레옹의 핵심 전략이였습니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능히 1000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충무공 이순신 제독

 

백의종군한 충무공에게는

 

전선 13척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가지고 압도적으로 우세한 왜선133척과

 

 정면 대결하는 것은 절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충무공은 전투가 시작되자

 

후퇴하면서 왜선을 명량의 좁은 해협

 

 울돌목으유인했습니다

 

절대 불리한 전력으로 적과 정면대결한 것이 아니라

 

 적을 좁은 골짜기로 몰아넣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전선 13척으로 하나씩 격파하는 것입니다

 

즉 이길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놓고 싸운 것이었습니다


 

 

 

 

"로마 군대는 곡괭이로 싸운다."

 

 제정 로마 시대 코르불르 장군

 

로마군은 전원이 토목기사이자

 

 유능한 공병이기도 했습니다

 

로마군은 작전상 필요한 교량과

 

 도로 건설을 군대 자체에서 수행했습니다

 

병참의 개념을 넓은 관점에서 바라본 로마군은

 

 이것을 '전장에서 필요한 인간의 모든 기술'로

 

정의했었습니다

 

즉 후방에서 전방으로 군수품을 운반하고

 

 수송하는 협의의 병참이 아니라

 

병사들의 훈련과 물자의 보급

 

필요한 사회간접자본의 가설로 바라본 것입니다

 

 

 

"우리는 독일의 동맹국이 아니다.

 

 같은 적 소련을 상대로 함께

 

 싸우는 친구일 뿐이다."

 

핀란드의 카를 구스타프 에밀

 

 폰 만네르하임 원수

 

2차 세계대전 당시 강국 소련의 침공에

 

 맞선 핀란드는 적은 인구와 보잘것 없는

 

 규모의 군대로 고슴도치처럼 끈질긴

 

 저항을 이어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같은 적을 상대로 싸운 독일군과

 

 손잡기도 했지만 독일의 동맹 제의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약소국 핀란드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 담긴 말입니다

 

 

 

 

 

"우리는 진주만을 공습하고

 

 6개월 동안은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장담할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

 

미국과 전쟁을 피하려던 그는

 

 일본 해군 군부에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인물이고,주미 일본대사관 무관을

 

지냈기 때문에 미국의 공업 생산력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예상대로 진주만 공습 6개월 후인

 

 1943년 6월 5일부터 사흘 간 벌어진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은

 

치명적인 패배를 맛봐야 했습니다

 

야마모토 제독 역시 이듬해 4월 전사합니다

 

 

 

 

"후퇴는 없다. 포로도 안 된다.

 

우리는 마지막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싸운다."

 

한국전쟁 당시 미 8군 사령관

 

 월턴 해리스 워커 중장

 

1950년 8월부터 9월까지 한국의 운명은

 

 백척간두에 있었습니다

 

국토를 대부분 잃고 낙동강을

 

교두보로 하는 좁은 땅만 남았는데

 

방어전을 지휘하던 워커 장군이 내린 이 명령이

 

 미국 내에 보도되면서 '비민주적인 명령'이라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맥아더 원수는 이 비판에대해

 

 "군대에 민주주의는 없다"는 말로

 

 부하를 옹호했습니다

 

이는 군대가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상명하복의 엄중한 위계질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소수의 손에 이토록 많은

 

사람의 운명이 걸린 적은 일찍이 없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

 

1940년 여름, 영국은 대륙을 석권한

 

나치 독일의 공격에 맞서 외롭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영국 공군은 7월 9일부터 시작된

 

독일 공군의 공습에 맞서 영웅적인

 

 항전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영국 공군 조종사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전시 내각의 수장이던 처칠은 의연하게

 

국민을 이끌었고, 영국 공군은 마침내 독일군의

 

 공습에서 영국을 지켜냈습니다

 

이 말은 처칠 수상이 영국 공군에 바친 헌사입니다


 

 

 

 "다른 군대를 누를 수 있는 힘은

 

 규모가 아니라 규율에서 나온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대륙군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

 

대륙군은 영국군에 비해 수적으로나

 

 장비 면에서 현저히 열세에 놓였고

 

 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았었습니다

 

게다가 애국심으로 전쟁에 자원한 병사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지쳐갔었습니다

 

워싱턴은 대륙군의 취약점에서

 

문제의 해결을 찾았습니다

 

조직의 규율을 정립하고 충실히

 

지키게 한 것이었습니다

 

 영국군을 상대로 최후의 승리를 얻은 비결은

 

 병사들이 워싱턴이 세운 규율을

 

 잘 이행했기 때문다

 

 

 

"3차 세계대전에는 어떤 무기가

 

 사용될지 몰라도

 

 4차 세계대전에서는

 

돌과 방망이로 싸울 것이다."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으로 핵무기 개발이

 

이론적 단초를 제공한 아인슈타인은

 

 열렬한 반전평화주의자입니다

 

이 말은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과

 

살상력을 단적으로 표현합니다.

 

즉 핵무기를 사용한 전쟁은 인류의 문명을

 

 송두리째 파괴해 원시 상태로

 

돌아가리란 것을 경고한 말입니다

 

 

 

 

"나는 이제 만족해. 조국을 위해

 

내 임무를 완수하게 해준

 

하느님께 감사한다."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격파하고 전사한

 

 호레이쇼 넬슨 제독

 

1805년 10월 21일, 스페인 트라팔가르 곶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맞이한

 

 넬슨의 영국 함대는 33대 27의 수적인 열세에도

 

 치밀하고 대담한 작전으로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이 해전 이후 영국은 세계의 바다를 지배했고

 

 나폴레옹의 영국 침공 계획은 좌절되었습니다

 

그러나 넬슨은 이 승리를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전사해, 이 말이 그의 유언이 되었습니다


 

 

 


 

 

"훌륭한 장군은 전락을 배우고

 

 유능한 장군은 병참학을 공부한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군은

 

 날씨를 아느 장군이다."

 

유럽 전선 연합군 최고 사령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원수

 

노르망디상륙작전은 미군250만 명을 포함

 

 총 350만명이 동원된 작전입니다

 

당초 디데이로 결정한 6월 5일에 임박해

 

날씨는 나빠지기 시작했고

 

바다는 거칠어 졌습니다

 

상륙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선 연합군의 제공권이

 

 중요했는데, 날씨가 나쁘면 노르망디에 상륙한다고

 

 해도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었기에

 

 작전은 하루 연기되었습니다

 

6일 낮까지 날씨가 일시적으로 좋을 것이란

 

 보고를 받은 아이젠하워는 마침내

 

 작전을 단행했습니다

 

반변 당시 날씨가 나빠 상륙작전이 불가능하다는

 

 보고를 받은 독일군의 롬멜은 독일로 휴가를 떠났고

 

독일군의 경계는 소홀해졌습니다

 

 

"우리가 교범에서 배운 대로 싸웠다면

 

 미군 전체가 붕괴하는 데는

 

20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

 

참모총장 조지 마셜 원수

 

마셜은 융통성 있는 사고를 강조 했는데

 

그는 미래에 벌어질 전쟁은

 

'규칙보다 예외'에 따라 주도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교범과는 정반대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마셜은 2차 세계대전이 터질 당시

 

 17만 명에 불과하던 미 육군을 5년 만에

 

첨단 무기를 갖춘 830만 명 규모로 증강했고

 

 6만 마일(약 9만 6500km)에 달하는

 

 보급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그 결과 미 육군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대가 되었습니다

 

 

 

"장교가 우유부단하면 사태를

 

위험하게 만들고 총사령관이

 

우유부단하면 이는 범죄에 해당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버나드 몽고메리 원수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진 상태에서

 

 전쟁을 수행할 확률은 거의 없기에

 

군 지휘관에게 필요한 개인적인

 

자질이 있습니다

.

예를 들면 적응력, 지략, 즉흥적 대처 능력

 

무엇보다도 결단력입니다

 

이러한 자질이 없다면 아무리 분석적 사고와

 

명민함을 자랑하는 지휘관이라도

 

 전자계산기만도 못할 것입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춘추시대 오나라 왕 합려를 섬기던 손무

 

전쟁이 발발한 후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은 차선책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전쟁 자체가 엄청난 인적

 

 물적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겠죠

 

따라서 최선의 방책은 예방함으로써

 

 불행한 질병을 피해 가는 것처럼

 

전쟁에 철저히 대비함으로써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입니다


 

 

 

 

"전쟁은 냉혹한 스승이다."

 

그리스의 장군이자 역사가 투키디데스

 

엄밀한 사료 비판과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로 역사서의 고전으로 평가 받는

 

<<펠로폰네소스전쟁사>>를 저술한

 

 투키디데스가 전쟁을 정의한 말입니다.

 

그는 기원전 431년에서 404년까지

 

펠로폰네소스전쟁에 아테네군

 

지휘관으로 참전했습니다

 

패배 이후 유죄 판결을 받고

 

 20여 년간 추방당했는데

 

그는 전쟁을 본 목격자로서 열정과 사실을

 

 기록해야겠다는 의무감으로

 

<<펠로폰네소스전쟁사>>(전 8권)을

 

 저술했습니다

 

당시 아테네의 입장은 제국주의적 야망이

 

 강하게 구현된 것이지만, 투키디데스는

 

인도주의적이고 평화를 지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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