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까지 투하해야 했던 이유
미국은 1945년 8월6일 일본 히로시마에 리틀보이로 불리는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3일 후에는 나가사키에 팻맨이라는 또 하나의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 그리고 5일 후인 8월15일에 일본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 길고 길었던 2차세계대전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이유는 당연히 승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미국은 이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기 이전부터 이른바 맨해튼 계획이라고 불리는 극비프로젝트를 통해 원자폭탄 제작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미국이 만든 원자폭탄은 지금까지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미국은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승리 후 계속해서 일본을 압박하고 있었으며 1945년 8월시점에는 일본의 코 앞까지 진주한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일본은 막강한 미국의 전력 앞에 공군력과 해군력을 완벽히 상실하면서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미국은 원자폭탄같은 신무기가 아니더라도 일본을 이길 수 있는 시점이었는데 굳이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더글라스 맥아더의 몰락작전 계획
일단 확실한 이유중 하나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의 결정이 컸다는 것입니다. 트루먼은 자신의 전임자였던 프랭클린 루즈벨트와는 달리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전쟁을 끝내고 싶어했습니다. 사실 그 당시 태평양사령관이었던 더글라스 맥아더는 이른바 몰락 작전을 통해 노르망디 상륙작전보다 더 큰 규모의 상륙전으로 일본 규슈와 혼슈에 상륙하여 일본 본토까지 완전히 장악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쟁 중 서거한 로즈벨트 대통령이었다면 맥아더의 계획을 승인했겠지만 하루 빨리 전쟁이 끝나기를 원했던 트루먼은 맥아더 계획은 미국의 희생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거부하였고 결국 원자폭탄 투하 명령서에 서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웃긴점은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를 승인한 트루먼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과 중국 만주 일대에 원자폭탄 투하를 건의했던 맥아더의 제안은 거부했습니다.
두번째 이유로는 일단 만들었으니 써봐야 했습니다. 미국은 4년간 18억 달러라는 천묵학적인 비용을 들여 맨해튼 계획을 진행했고 결국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맨해튼 계획에는 18억 달러와 약 2만여명의 인력이 투입된 만큼 결과보고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트루먼과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던 연구진들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얼마만큼의 피해를 줄 수 있는지를 알아봐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원자 폭탄이 일단 성공적으로 제조되면 바로 사용할 것이라는 점은 처음부터 자명한 사실이었고, 유일한 문제는 단지 시간, 지점 및 기타 기술 문제였지, 원자 폭탄을 사용하지 않는 문제는 애초에 진지하게 고려된 적이 없었습니다.
미국은 원자폭탄 투하 이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로 전문가를 보내 원자폭탄의 피해규모를 조사했는데 하나같이 이 정도로 큰 피해를 줄 지는 몰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맨해튼 계획을 진두지휘한 오펜하이머 박사는 '나는 파괴의 신이 되었다' 라는 말을 남기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된다며 인류에 경고를 하였습니다.
세번째 이유로는 일본 수뇌부의 욕심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일본과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고 4년이 지난 1945년 7월 영국, 중국이 참여한 포츠담 회담에서 선언서를 통해 일본에게 무조건 무조건 항복을 강요하였으며 이후에도 계속 항복을 요구하였지만 당시 일본의 수뇌부들은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고자 욕심을 부리면서 항복요구를 무시하였습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는 실제 영상
결국 미국은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하였고 투하 직후 일본 전역에 전단지를 뿌렸습니다. "우리는 원자 폭탄을 투하했다." "우리가 새롭게 개발한 원자 폭탄은 단 하나로도 우리의 B-29 폭격기 2000회의 출격과 맞먹는다." 그리고 다음날 트루먼 대통령은 "우리는 일본의 부두와 공장과 통신 시설을 파괴할 것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실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다."라며 일본에 경고를 하였지만 일본은 그래도 항복을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3일 뒤 나가사키에도 원폭이 투하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미군 문서들을 통해 밝혀진 놀라운 사실은 미국은 일본이 1945년 8월 1일까지 항복하지 않으면 투하 결정 지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외에도 교토, 요코하마, 고쿠라, 니가타, 도쿄 등에 훨씬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원폭 12발을 추가로 투하할 계획을 추진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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