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모든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내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용기를 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에는 살신성인의 희생정신과 용기를 실천한 진정한 군인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런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한 진정한 군인분들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이원등 상사

 

이원등 상사는 1935년 경상북도 경주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후 1959년 육군 공수특전단에서 공수기본 교육을 수료하고 1961년 미국 포트리 육군군사방위학교에서 낙하산 정비교육을 수료했습니다. 이원등 상사는 152회의 강하 기록을 보유한 특전인인 동시에 한국 최초의 스카이다이버였습니다.

 

 

그러던 1966년 2월4일 한강변에서 고공강하 훈련이 있던 날 제 1공수특전여단 소속이었던 이원등 상사는 조장으로서 6명의 교육생들과 함께  C-47 수송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원등 상사는 살을 파고들 듯한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고도 4,500 피트 상공에서 강하했습니다. 그러나 찬 겨울 공기를 가르고  강하하는 쾌감을 채 느끼기도 전에 이원등 상사는 바로 앞에 강하하고 있던 조원 김병만 중사가 낙하산을 개방하지 못한 채 몸의 균형을 잃어 회전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강 노들섬에 세워진 이원등 상사의 동상

 

당시 강하기록이 152회나 되는 베테랑으로 강하조장이었던 이원등 상사는위험에 처한 동료를 못 본 척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동료에게 접근했습니다. 그러나 낙하산이 급작스럽게 펴지면서 이 상사의 팔이 줄에 걸려 부러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또한 급속도로

낙하하는 바람에 이 상사는 자세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이원등 상사는 지상에 너무 접근해 있었습니다. 결국 이원등 상사는  자신의 낙하산이 미처 산개되기 전에 강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한강의 2미터 두께의 얼음판 위로 떨어져 산화 했습니다.

 

 

 

 

  강재구 소령

 

강재구 소령은 1965년 한국군 1개 사단의 월남 파병이 결정됨에 따라 맹호부대 제1연대 제10중대장에 보직되었습니다. 그해 10월 4일 베트남으로 파병을 앞두고 홍천군 부근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실시했는데 부임 전 제1군 부사관학교에서 수류탄 교관으로 근무했던 그는 누구보다 수류탄의 위력과 유의사항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고 당시 강재구 소령이 신고 있던 군화

 

그런데 훈련 중에 한 이등병이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실수로 놓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손을 몸 뒤쪽으로 올린 상태에서 놓친 터라 수류탄은 불행히도 몸 뒤로 빠져 중대원들 쪽으로 굴러갔고 그 광경을 본 강재구 소령은 본능적으로 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막았습니다. 수류탄은 매정하게 터져버렸고 강재구 소령은 중대원 100여 명의 목숨을 구하고 산화했습니다. 강재구 소령이 몸을 날려 수류탄의 파편을 막아준 덕에 주위에 있던 중대원들은 큰 부상이나 사망자 없이 전원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인호 소령

 

이인호 소령은 1966년 8월 11일 청룡부대는 투이호아 일대에서 해풍작전을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3대대 정보장교였던 이인호 대위는 생포한 여자 베트콩이 제공한 정보에 의해 1개 소대를 이끌고 베트콩이 숨어있는 동굴을 수색하던 중 캄캄한 동굴 속으로부터 적의 수류탄이 날아왔습니다.

 

*해풍작전중 동국수색을 하는 이인호 소령의 전사직전 모습

 

*이인호 소령 장례식


하지만 이인호 대위는 침착하게 수류탄을 재빨리 주워 던져 베트콩 5명을 사살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날아온 또 하나의 수류탄을 처치할 겨를도 없이 폭발할 것을 직감하자 이인호 대위는 부하들에게 "모두 엎드려!" 라고 고함치며 터지는 수류탄 위에 자신의 몸을 덮쳐 버렸습니다. 이인호 소령은 그렇게 자신을 희생해 대원들의 생명을 살렸습니다.그의 살신성인 정신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고 전군의 귀감이 됐습니다. 이후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되고 대위에서 소령으로 특진했습니다.

 

 

  김도현 소령

 

김도현 소령은 1992년 공군사관학교 44기로 입교하였고 졸업 후 F-5의 전투조종사로 복무하다 2005년 2월부터 블랙이글스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 5월 5일, 공군 수원 비행장에서 어린이날을 맞아 블랙이글스의 에어쇼가 있었고 김도현 소령은 A-37B에 올라 이륙하였습니다. 하지만 11시 51분 경 각종 비행을 선보이다 나이프 엣지(Knife Edge)라는 기동을 시도하였는데 김도현 소령의 기체는 상승하지 못하고 활주로로 추락했습니다.

 

 

그런데 김도현 소령은 탈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콕핏에 남겨져 오른손에 조종간을 쥐고 왼손에 스로틀 레버를 잡은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김도현 소령이 끝까지 콕핏에 남았던 이유는 만약 자신이 탈출하고 기체의 방향이 약간이라도 틀어지면 관람석에 앉은 천여 명의 아이들을 포함한 3천여 명의 관객들이 크게 다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었습니다.

 

 

  이상희 대위

 

이상희 대위는 당시 제1전투비행단 소속으로, 정식으로 파일럿이 되기 위한 마지막 단계를 밟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1년 12월 13일 오후 3시경 광주 상공에서 F-5A 4번기에 탑승하여 훈련 비행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상공에서 훈련비행을 마친 뒤 착륙하려다 동료가 몰던 다른 공군기와 충돌했습니다. 상대 공군기에 타고 있던 조종사는 낙하산으로 비상탈출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희 대위는 덕흥 마을의 밭에서 전투기와 함께 산화했습니다. 이후 기체의 잔해에서 회수된 블랙박스 기록에 따르면 마지막에 탈출을 결심했으나 민가를 확인하고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전방에 마을이 보인다. 탈출 불가”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장렬히 23세라는 젊은 나이에 산화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마을 주민은 충돌한 비행기 중 한대가 추락지점을 찾듯이 방향을 바꿨으며 만약 그대로 추락했더라면 민가를 덮쳐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그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한주호 준위

 

한주호 준위는 교육훈련대에서 18년간 교관경력을 비롯해 특공대 팀장, 교육훈련반장, 특임대대 지원반장 등을 거쳤고, 2000년 준위로 임관했습니다. 청해부대원들은 항상 다른 후배보다 먼저 앞장서서 작업하는 한주호 준위에게 젊은 오빠라고 불르며 잘 따랐습니다. 그러던 2010년 3월 27일 한준호 준위는 천안함 피격사건 하루 뒤 새벽 백령도로 급히 파견됐습니다.

 

 

당시 한주호 준위는 잠수요원으로 투입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현장의 상황을 둘러보고 누구보다 바다의 무서움을 잘 아는 그였지만 깊은 찬 바다 속에 갇혀 있을 후배들을 생각하면 잠시도 지체하면 안 된다고 판단하여 누가 말릴 겨를도 없이 "내가 들어간다" 짧고 간결한 한마디와 함께 구조작전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함수 부분에서 탐색구조작업을 펼치다 잠수병으로 실신해 미 해군 구난함에서 치료를 받던 중 오후 5시쯤 순직하셨습니다. 구조작업 전에 한주호 준위는 동료들과의 통화에서 '오늘 안으로 모든 실종자들을 책임지고 구조해내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Comment +0

 

1950년 5월 31일 미국 극동군사령부가 통제하는 각종 작전기는 1,172대였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극동군사령부는 1950년 6월 28일 1개 중폭격기 편대, 1개 경폭격기 편대, 8개 전투기 대대를 한반도에 투입하였다. 당시 북한군의 주력 전투기는 일류신(Ilyushin)-10과 야크(Yak)-9였지만 미군의 주력 전투기는 P-80로 1세대 제트기였습니다. 하지만 1950년 6월 27일 북한군의 일류신-10 8대가 김포비행장을 공습하면서 우리 국군의 작전기 7대를 파괴하였고 6월 28일 북한군 야크-9 4대가 수원비행장을 공습하면서 미군 F-82 1대, B-26 1대, C-54 2대를 파괴하였으며 6월 29일에는 C-54 1대까지 파괴하였습니다.

 

 

문제는 이후에 소련이 중공군과 인민군을 지원하고 자신들의 최신형 전투기를 테스트해보고 싶은 욕심에 MiG-15를 한국전쟁에 대거 투입였습니니다. 물론 국제분쟁을 피하기 위해 신분을 감추고 투입하였습니다. 예상대로 MiG-15는 미군의 F-80를 손쉽게 제압했으며 미 폭격기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계속해서 미 주력 제트 전투기였던 P-80가 소련군 제트 전투기 MiG-15에 격추되자 미 공군은 결국 F-86 세이버(Sabre)를 전선에 투입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F-86은 MiG-15와 비행성능은 비슷하였지만 무장은 MiG-15보다 우세했습니다. 그리고 MiG-15와 F-86의 공중전이 치열하게 벌어졌습니다. MiG-15가 23mm기관포 2정, 37mm 기관포 1정이라는 강력한 화력을 뽐내고 있을 때 F-86는 발사 속도가 1.5배 빨라진 M3 중기관총 6정을 사용해 화력면에서 호각을 이뤘고 기체도 A형과 E형을 거쳐 후기형인 후기형인 F형에 이르러서야 전반적인 성능에서 MiG-15를 압도하며, MiG-15의 개량형인 MiG-15bis와 거의 비등해졌습니다.

 

* MiG-15 건 카메라에 잡힌 B-29의 모습. 미그15의 공격에 의해 B-29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폭격임무가 전면 중지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었습니다.

 

하지만 1951년 4월 12일 미군을 충격에 빠트렸던 공중전이 있었습니다. 당시 미군이 B-29 72대로 편성된 대규모 폭격편대와 F-86 32대로 편성된 대규모 요격편대를 출격시켰습니다. 중공군은 미군에 맞서 MiG-15 60대를 대응출격시켰습니다. 그리고 164대가 40분 동안 치열하게 공중전을 벌였는데 MiG-15는 한 대도 격추되지 않았고, B-29 16대, F-86 10대가 격추되었습니다. (참고로 중공군은 미군의 F-86와 싸우기 위해 한번에 미그기 200대를 출격시킨 일도 있었습니다.)

 

 

 

이후 한국전쟁이 끝나고 시간이 흐르자 미국 공군 역사연구실(Historical Studies Office)은 한국전쟁에서 F-86은 MiG-15 792대를 격추하였고, F-86은 78대밖에 격추되지 않았다고 말하며 결국 공중전에서 미군이 승리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련군의 전쟁사 자료에 한국전쟁 당시 소련군이 F-86 약 600대를 격추하였지만 MiG-15는 345대 격추당했다는 기록이 공개되면서 미국은 격추률을 10:1에서 1:1.5로 낮췄습니다.

 

*해외에서 공개한 F-86sabre vs MiG-15영상

 

사실 당시 소련군은 한국전쟁에 전면적으로 참전하지 않았고 전투기와 조종사를 만주에 보내 압록강 상공을 넘나들며 제한적인 공중전만 벌였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F-86의 50구경으로는 MiG-15 제트 전투기를 격추하기에는 화력이 부족했습니다. 당시 격추시켜버린 줄 알았던 MiG-15들은 연기를 내뿜으며 압록강을 넘어서 귀환한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참고로 소련은 1952년 10월에 실전배치한 당시 최신예 전투기 MiG-17을 한반도 전선에 보내지도 않았습니다.

 

* 북한의 노금석 소위가 몰고 투항한 MiG-15 전투기(고유번호:2015357)

 

아직도 한국전쟁에서 미국과 소련이 뜨겁게 달궜던 공중전 승패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물론 당시 제공권을 MiG-15에 빼앗길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한반도 상공에 등장해 활약하면서 상공을 지켜낸 F-86은 한국전쟁의 명검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F-86이 한국전쟁에서 MiG-15를 큰 차이로 압도했다고 잘못 알고 계신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의 MiG-15은 사실 발 및 시험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엿고 결함을 잡기 위한 테스트가 진행 중인 미완성 기종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 현재도 F-86 VS MiG-15에 대해 해외 밀리터리 사이트나 유투브에서는 아직도 치열한 댓글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Comment +0

 

현대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전투기입니다. 많은 나라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시작으로 상대방의 전투기를 격추시킬 수 있는 성능 좋은 전투기를 개발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투자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레이더, 엔진, 디스플레이 등 많은 분야들이 급속도로 성장하였으며 자연스럽게 뛰어난 성능의 전투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언제나 전장에서 정점에 서 있었던 전투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수많은 전투기들 가운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최고의 전투기 TOP 10을 소개드리겠습니다.

 

 

10위 F-22 Raptor

실전사례 IS 공습

최대속도 마하 2.25

생산국가 미국

 

F-22의 전투 수행 능력은 2018년 현재도 압도적인 수준입니다. 러시아의 PAK-FA, 중국의 J-20가 렙터의 대항마라 불리긴 하지만 2005년에 실전배치된 F-22와 비교한다는 자체가 말도 안되며 사실 성능도 F-22에 미치지 못합니다. 미 공군에서 F-35가 미군의 마지막 유인 전투기가 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F-22는 인류 역사상 최강의 유인 전투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9위 AV-8B Harrier II 

실전사례 걸프전

최고속도 마하 0.89

생산국가 영국

 

영국에서 개발되었으나 그 개발 과정에 미국 신무기 개발부서들과 미 국방성, 미 해병대가 깊이 관여하였습니다. AV-8B Harrier II는 1991년 걸프전쟁에서 본격적인 실전을 치루었는데 당시 3개 비행대 총 60기의 AV-8B가 투입되어 SAM이나 대공포, 사고 등으로 6기의 손실이 있었지만 훌륭한 능력을 보여주며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지금 현재는 대만에서 F-35B 전투기를 얻으려면 최소 20년을 기다려야 된다고 판단하고 2019년에 퇴역한 AV-8B 해리어 Harrier II를 구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8위 SOPWITH CAMEL 1917 

실전사례 제1차 세계대전

최고속도 마하 0.15

생산국가 영국

 

솝위드 카멜 전투기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어떤 전투기들 보다 선회가 빨랐으며 특유의 기동력으로 독일군 전투기들을 제압해 나갔습니다. 당시 RAF 소속의 윌리암 베이커 소령은 1917년 9월 부터 1918년 9월 까지 46대의 전투기와 정찰 기구를 격추시켰는데 대부분 이 솝위드 카멜로 달성했습니다. 솝위드 카멜은 한치 앞도 보이지않는 열악한 야간 전투에서도 많은 활약을 했으며 전쟁 말기에는 본연의 요격 임무에서 지상공격 임무로 전환되었지만 지상공격 임무에서도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7위 Messerschmitt Me252 Schwalbe 

실전사례 제2차 세계대전

최고속도 마하 0.69

생산국가 독일

 

메서슈미트Me 262 슈발베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공군이 개발한 세계 최초로 실전 배치된 제트전투기입니다. 당시 1,400대 이상이 생산되었습니다. 이 전투기는 당시 발트 노보트니, 아돌프 갈란트 등 최고의 에이스 조종사들이 탑승하여 많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당시 연합군들은 이 전투기를 봤을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프로펠러로 움직이는 기존의 전투기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빠른 속도를 자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6위 Spitfire Mk Vb 

실전사례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최고속도 마하 0.48

생산국가 영국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항공기 제조사인 슈퍼마린사가 슈나이더 컵 항공대회를 휩쓴 자사의 경주용 항공기들을 기초로 개발한 전투기입니다. 당시 프랑스의 항복으로 유럽에서 나치 독일을 저지할 마지막 국가는 영국이었는데 스핏파이어는 이전 까지 어떤 전투기도 능가하지 못했던 독일 공군 Bf109를 상대로 대등한 성능을 과시하며 영국 상공을 지켜내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에도 스핏파이어는 영국 공군에서 한동안 운용되었고 한국전쟁 때에도 스핏파이어 함재기 버전 시파이어가 영국 해군 항공모함에 실려 한국전쟁에도 참가했습니다.

 

 

5위 MiG-15

실전사례 한국전쟁

최고속도 마하 0.87

생산국가 소련

 

한국전쟁 당시 북한 공군에 대량으로 지원되어 우리에게 악연이 깊은 전투기입니다. 당시 북한군은 파일럿이 모자랐기 때문에 많은 소련군 조종사들이 북한 MiG-15를 타고 참전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미합중국 공군의 주력기인 F-80 슈팅스타, F-84 썬더제트 등은 MiG-15를 상대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 소련은 한국전쟁에서 MiG-15가 10:1이라는 격추비를 기록했다고 자랑하면서 그렇게 많이 알려졌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2008년 미국 RAND 연구소의 자료에 의하면 1.8:1 수준이었습니다.

 

 

4위 F-86 SABER 

실전사례 한국전쟁, 인도-파키스탄 전쟁

최고속도 마하 0.9

생산국가 미국

 

1940년대에 만들어져서 전투기 세대 중 1세대에 속하는 아음속 전투기입니다. 초기형의 경우 주적인 MiG-15에 비해 일부 성능에서 열세를 보이다가 후기형인 F형에 이르러서야 전반적인 성능에서 MiG-15를 압도하였습니다. 당시 MiG-15를 상대로 800:75, 약 10:1이라는 압도적인 전적을 거두어 대량으로 생산되었고, 전후 세계 각지에도 팝콘처럼 잘 팔려나갔습니다.

 

 

3위 F-4 PHANTOM 

실전사례 베트남전,중동전쟁,걸프전쟁

최고속도 마하 2.27

생산국가 미국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제작된 제트 전투기 중 가장 성공적인 전투기입니다. 5,000대 이상 생산되어 서방제 초음속 전투기 중에서는 최대 생산수를 자랑합니다. 지상 공격력이 워낙 출중해서 아직도 10개국에서 운용중이지만 점차 퇴역중입니다. 한 때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기종이었으나 이제는 F-16과 F-15K에 주력기 자리를 물려주었으며, 차후 도입될 F-35와 KFX로 교체될 예정입니다.

 

 

2위 F-15 EAGLE 

실전사례 걸프전, 이라크 전쟁,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최고속도 마하 2.177

생산국가 미국

 

F-4가 괜찮은 성능을 보여주었지만 베트남전에서 막상 공중전을 벌이자 크게 고전하자 개발한 전투기가 바로 F-15입니다. 1979년에 이스라엘 공군 소속 F-15A가 시리아 소속 전투기를 격추하면서 최초로 격추 기록을 세웠으며 1979년부터 1981년 사이에 총 15대의 시리아군 소속 전투기를 떨궜는데 MiG-25 2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현재는 대한민국 공군을 대표하는 전투기이며 아직도 많은 국가에서 운용중입니다.

 

 

1위 P-51 MUSTANG

실전사례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 한국전쟁

최고속도 마하 0.57

생산국가 미국

 

P-51 머스탱은 실질적인 활약은 1943년 11월부터였는데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동안 P-51가 파괴한 적기는 공중전에서 4,950대, 지상파괴 4,131대였습니다. 당시 나치 독일 공군 사령관 헤르만 괴링은 베를린 상공에 나타난 P-51 머스탱을 본 순간 좌절하며 "졌어, 우리는 이미 전쟁에 진 거야."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실제로 P-51은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하고 나치 독일이 항복하는 날까지 독일 영공을 완전히 장악하였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P-51은 무려 1984년까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운용되었습니다.

Comment +1

 

크기가 작고 적외선 탐색기를 사용하는 휴대용 대공미사일(Portable Surface-to-Air Missile)은 거의 모든 전장에서 등장하는 무기체계가 되었습니다. 1973년 중동전에서 이집트와 시리아가 구소련 휴대용 대공미사일 SA-7를 처음 사용하면서 이스라엘에 엄청난 피해를 피해를 입혔으며 그 이후에도 베트남전, 걸프전, 이라크전 등에서 많은 전투기와 헬기 등 많은 군용기들을 격추하였습니다. 특히 걸프전에서 추락한 군용기 29대 중에 12대가 바로 휴대용 대공미사일에 격추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헬기의 공격에 취약한 보병부대에서는 대공포와 함께 휴대용 대공미사일로 단거리 대공방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군사강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 어떤 휴대용 대공미사일을 운용하고 있을까요

 


● 영국│스타스트릭

 

영국은 1980년부터 휴대용 대공미사일로 재블린과 스타버스트를 운용했었지만 1997년부터는 스타스트릭을 현재까지 운용하고 있습니다. 스타스트릭은 레이저 유도방식을 채용했으며, 2단 추진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조금 특별한 점은 실제 목표 파괴용 탄두가 기존의 단일탄두가 아닌 트리플 다트(Triple Dart)식을 사용합니다. 레이저로 유도되는 1단 추진 체계로 목표물에 접근하다가 목표에 근접하게 되면 발사체 선단의 3개의 소형 탄두인 다트(Dart)가 발사되어, 각기 목표물을 추적, 파괴하는 방식입니다. 1999년에 한국군 차기 지대공 미사일 구매 선정 계획에서 미국의 스팅어, 프랑스의 미스트랄과 경쟁하기도 했었지만 우리나라처럼 산지가 많은 지형에서 사용하기에는 목표를 시야에서 놓치는 경우가 많아 스타스트릭의 레이저 유도방식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밀렸습니다.

 

● 스웨덴│RBS-70

 

스웨덴은 육/해/공 가릴 것 없이 다양한 무기들을 자체 개발한 나라입니다. 자국산 휴대용 대공미사일 RBS-70은 1977년부터 배치해 운용하기 시작하였고 계속적으로 개량되었습니다. 발사관 길이 1.32m, 직경 106mm이며 미사일은 중량 15kg로 다른 국가의 휴대용 대공미사일에 비해 엄청난 크기를 자랑합니다. 2003년 BOLIDE 개량시스템이 도입된 RBS-70 Mk 2 향상된 표적 갱신과 새로운 탄두를 갖추고 있으며 사거리와 높이 모두 늘어났습니다. 지금 현재 RBS-70는 약 20개 국가에서 운용중입니다.

 

● 프랑스│미스트랄

 

미스트랄은 MBDA사가 개발해 1988년부터 실전배치가 이뤄진 아주 유명한 휴대용 대공미사일입니다. 유효사거리 5.5km, 탄두 2.95kg로 최고 수준의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무게가 엄청나갑니다. 발사체와 발사대의 무개만 각각 20kg이 넘습니다. 하지만 위력면에서는 라이벌이라고도 불리는 스팅어나 이글라를 압도합니다. 오죽하면 차량, 고정포대, 빌딩 GOP, 심지어 헬기나 함정에서도 운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25개국에서 운용하고 있으며 그 중 최대 보유국은 우리나라입니다.

 


● 중국│치엔웨이

 

중국은 1990년대 초반부터 러시아의 SA-18 이글라와 유사한 성능의 휴대용 대공미사일 개발에 착수했고 1994년부터 QW-1을 생산해 실전배치였습니다. 사실 개발이라기 보다는 러시아의 SA-18 이글라를 수입하여 역설계한 것으로 한마디로 짝퉁입니다. QW-1는 이란에서도 도입하였는데 이란은 QW-1를 또 역설계해 Misagh-1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개량형까지 만들어 운용중입니다. 그래도 QW-1는 생각보다 우수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추가적인 계열화 무기인 QW-3는 지상 차량과 소형 함정에도 장착해 운용하고 있습니다.

 

● 일본│91식

 

일본은 미국산 스팅어를 대체하기 위해 1983년부터 자국산 휴대용 대공미사일 개발에 착수하였고 1991년부터 개발된 91식의 실전배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일반적인 적외선 유도 센서 외에도 CCD 카메라를 달아 가시광선 영역에서도 기체를 식별, 추적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므로 적기가 엔진 배기열을 노출하지 않은 채 앞 쪽으로 마주보며 와도 발사할 수 있고 플레어에도 잘 속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발사관 길이는 1.43m이며 사정거리 5km, 직경 80mm, 속도 마하 1.9, 중량 14kg입니다.

 

● 한국│신궁

 

신궁(新弓)이란 이름은 새로운 활이란 뜻으로 우리 군의 차세대 휴대용 대공미사일로 실전 배치되어 있습니다. 우리 군은 영국의 재블린, 미국의 스팅어, 러시아의 이글라 등 세계 최강이라는 휴대용 대공미사일을 모두 운용해보았기 때문에 모든 장점들만 모아 만든 것이 바로 신궁입니다. 그래서인지 미스트랄보다 6kg정도 가볍고 95% 이상의 명중률을 가지고 있으며 가격은 미스트랄보다 5천만원 정도 저렴합니다. 또한 신궁은 대공방어 능력이 부족한 일부 해군 함정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에 판매되면서 수출 기록도 세웠습니다.

 

 

● 러시아│이글라

 

가장 뛰어난 휴대용 대공미사일을 개발하고 보유한 나라를 뽑으라면 당연히 미국과 러시아입니다. 러시아는 1960년대 소련 시절부터 휴대용 대공미사일 스트렐라를 개발해 실전배치 하였습니다. 성능이 얼마나 좋으면 스트렐라는 RPG-7 못지 않게 전세계 에서 활약했으며, 현재까지도 시리아에서는 아직도 현역으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북한에서는 현재 화승총이란 이름으로 면허 생산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스트렐라보다 유명한게 바로 1981년부터 실전배치 된 이글라인데 이글라는 걸프전에서 영국군 파나비아 토네이도, 미군의 AC-130 스펙터 등을 격추시켰으며 이라크 전쟁에서는 미군 헬기가 가장 무서워한 무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2014년부터 신형 휴대용 대공미사일 베르바가 이글라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 미국│스팅어

 

미국은 한국 전쟁이 끝난 후 제트 전투기에 대응하기 위한 무기 개발을 시작하였고 1967년 5월부터 휴대용 대공미사일 레드아이 생산이 시작되어 1968년부터 실전배치되었으며 수많은 미국 동맹국들에게도 수출되었습니다. 이후 1972년 미국은 레드아이의 후계기종 스팅어를 개발하여 대체하였습니다. 보통 2인 1조로 운용하 미사일의 크기가 워낙에 작다보니 보통의 미사일들이 근접신관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스팅어는 오직 지연식 충격신관만 사용합니다. 최근까지 사실 스팅어는 뒷전으로 밀려난 상태지만 늘어나는 드론 위협으로 미국은 다시 스팅어 미사일 조작 훈련을 시작하였습니다. 문제는 10~20만원하는 소형 드론을 격추시키기 위해 한 발당 가격이 4천60만 원이나 되는 스팅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커다란 단점이 있습니다.

Comment +0

 

고대, 중세, 근대, 현대를 통틀어 인류가 보유한 당대의 온갖 최첨단 기술들은 여러 분야 중에서도 특히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쓰여왔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현재 세계 곳곳에서는 테러리스트들이 활개치는 곳도 있고 국지적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곳도 많습니다. 그런 수많은 전쟁 속에서 셀 수 없는 다양한 무기들이 탄생합니다. 그 수많은 무기들 중에는 이름도 알라지 못한채 사라진 무기들이 대부분이지만 놀라운 기술력으로 만들어져 등장부터 외계인을 고문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무기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인류 역사상 임펙트가 가장 강했던 무기 10가지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MBT-70

 

냉전시대에 강대해지는 소련군의 전차 군단에 맞서기 위해, 미국과 서독이 손잡고 만든 차세대 주력 전차로 1963년부터 개발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놀라운건 MBT-70은 1960년대에 개발되었지만 3세대 전차와 비슷한 성능을 이미 갖춘것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3세대 전차의 핵심 요소인 헌터-킬러 기능을 탑재하였으며 3세대 전차에서도 일부 기종에만 달린 유압식 현가장치와 3세대 전차의 표준 조준장치인 레이저 거리측정기가 세계 최초로 탑재되었습니다. 문제는 가격이 대당 100만 달러로 그 당시의 주력 전차 5대를 도입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 높았습니다.

 

 

 SR-71

 

SR-71은 미국에서 개발한 초음속 전략정찰기로 지상에서 27km 높이를 마하 3 이상의 속도로 순항비행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 정찰기가 1960년대에 개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서 제작 관련 자료를 파기하고, 전용 공구도 전부 폐기 처분되었고 현재 SR-71을 다시 만들 수 있느냐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습니다. SR-71은 희대의 천재 엔지니어 켈리 존슨이 이끄는 스컹크 웍스의 힘이 없었으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M1911

 

미국의 콜트사에서 만든 자동권총으로 1911이라는 숫자는 미군이 이 권총을 제식 채용한 연도가 1911년이기 때문입니다. 이 권총은 100년이 넘는 실전을 통해 확실하게 검증된 명품 중에 명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권총의 손잡이 각도는 가장 이상적인 각도로 칭송을 받고 있으며 다른 권총들에 비해 월등히 튼튼하고 간단한 구조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벌어지는 .45 ACP를 사용하는 권총 사격 대회에서 이 권총으로 우승한 기록이 많습니다. (압도적으로..)

 

 

 Glock

 

오스트리아에서 1980년대 개발한 권총으로 프레임 대부분이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가격이 매우 저렴합니다. 그리고 무게까지 매우 가볍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비슷한 장탄수를 가진 대부분의 권총이 1kg이 넘지만 글록은 고작 500g~800g 수준입니다. 이 외에 많은 장점때문에 유명한 S&W도 글록의 카피판 S&W 시그마을 생산하였지만 글록과는 달리 악평을 받았습니다. 글록은 저렴하고 튼튼하고 가볍고 총알까지 구하기가 쉬워 권총계에 AK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미국의 경찰 중 대부분 글록을 사용하며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경호실이나 경찰특공대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PKM

 

PKM 기관총은 기존 PK 기관총의 총열과 총몸을 좀더 단순화시킨 개량형으로 PK에서 문제가 되었던 총열을 방열홈이 없는 매끄러운 형태의 것으로 바꾸고 소염기의 길이도 줄였습니다. 이 덕분에 길이도 116.3cm로 줄어들었으며 기타 총몸 등을 좀더 단순화시켰는데 이로 인해 무게까지 7.8kg으로 경량화되었습니다. 덕분에 러시아군은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다용도 기관총을 보유하면서 현재까지도 PKM을 주력 기관총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워낙 명품이기 때문에 중국의 중국북방공업이 PKM을 80식 기관총으로 카피해 생산하였고 중국 해병대와 특수부대 등에서 사용중입니다.

 

 

통구스카

 

러시아군에 1982년부터 배치되어 지금까지 사용 중인 무서운 자주 대공포입니다. 동시 교전 개수는 2기로서 대공 차량으로 이동 간 사격이 가능합니다. 사실 미국도 M247 셔전트 요크에서 이런 기능을 구현하려다 예산이 없어 취소되었습니다. 그래서 퉁구스카는 가격이 무려 1천2백만 달러로 엄청 비쌉니다. 물론 성능은 너무 좋지만 가격 문제 때문에 개발국인 러시아를 제외하고 인도만 채택해 운용하고고 있습니다.

 

 

차르 봄바

 

차르 봄바는 현재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폭탄으로 위력은 무려 57메가 톤입니다. 1961년 10월 30일 11시 32분, 미튜시하 만의 핵실험장에 걸쳐 북극해의 노바야 제믈랴 섬의 북쪽에서 폭파되었습니다. 차르 붐바 무게가 27톤이고 길이 8m, 지름 2m로 폭탄이 워낙 커서 수송기 Tu-95v는 자체 폭탄 탑재 도어를 만들어야 했고 동체의 보조 연료탱크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당시 폭발 후의 버섯구름은 높이 64km, 폭 30~40km까지 자라났으며 900km 떨어진 핀란드의 건물 유리창 일부가 깨지기도 했습니다.

 

 

B-2

 

외모부터 UFO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전익기로 전폭이 50m가 넘고 최대 이륙 중량이 171톤에 육박하지만 레이더 피탐지 면적은 가오리 수준인 미국의 스텔스 전략 폭격기입니다. 그리고 현존 유일의 핵 투발 능력을 가진 스텔스 전략 폭격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하는데 같은 무게의 금값과 맞먹는 기체 가격과 천문학적으로 나가는 유지비용이 문제입니다.

 

 

F-117

 

세계 최초의 스텔스 전투기로 외계인을 고문하고 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록히드 마틴의 특수설계팀인 스컹크 웍스에서 개발하였습니다. F-117은 정말 UFO를 연상시키는 각진 후퇴익과 다이아몬드 형상의 동체를 가지고 있으며 RCS를 0.01㎡까지 낮추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스텔스 성능은 오히려 한참 뒤에 생산된 현존 최고의 전투기 F-22 랩터 그 이상입니다.

 

 

PzH2000H

 

1980년대부터 개발을 시작해 독일답게 사기적인 스펙으로 만들어진 자주포입니다. PzH 2000 자주포는 우리나라가 개발한 K-9 자주포의 라이벌로 알려져 있지만 1980년대부터 개발을 시작되어 사실 비교를 한다는 자체가 무리입니다. PzH 2000 자주포는 모듈 장약과 항력감소탄을 적용하여 39.6km 라는 최대 사거리를 자랑하며 연속 사격도 뛰어납니다. 성능은 사실 K-9보다 PZH 2000가 뛰어나다고 볼 수 있지만 가격대비면 성능을 보면 K-9이 압도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Comment +0

 

1920년대 미국 경기는 호황세였고 주가는 계속 상승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 대부분 모두 차를 몰고 넓은 집에서 살았으며 여유롭게 여가생활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부풀어 오르기만 하던 거품이 마침내 터져버렸고 1930년대 미국은 실로 암울했습니다. 10달러에 팔리던 물건들은 5달러에 내놓아도 팔리지 않았고 3달러... 2달러 가격은 계속 내려갔습니다. 1932년 미국의 실업자는 1,200만 명을 넘어섰고 14만 개의 기업이 문을 닫았습니다.

 

 

이런 대공황을 미국이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1939년 유럽에서 발발한 전쟁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 세계의 5대륙 6대양 모든 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그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약 6천만 명이 넘습니다.

 

 

그런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곳은 바로 독일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은 승전국들과 맺은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 입장에선 거의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연합국이 과도한 배상금을 독일에게 물렸기 때문입니다. 이 조약으로 인해 독일은 국제 사회에서 거의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음과 동시에 심한 모욕감을 느끼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미국의 대공황은 독일에게까지 영향을 미쳤고 독일은 점점 나락으로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독일에 나타난건 바로 아돌프 히틀러였습니다.

 

 

1933년, 나치당 당수였던 히틀러는 독일의 총리로 임명되면서 권력을 얻었습니다. 1934년 독일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히틀러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총리가 대통령의 지위를 겸하게 하는 법을 개정하면서 스스로 총통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히틀러가 총통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독일인들을 세뇌시키는 작업이었습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고 있던 독일인들에게 초토화된 독일을 재건하자며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히틀러는 집권한지 5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베르사유 조약을 어기고 빼앗긴 옛 독일의 영토인 오스트리아와 체코 슬로바키아를 합병하였고 1939년에 폴란드를 침공하였습니다. 문제는 폴란드는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동맹국이었습니다. 즉, 상호 방위조약에 의해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고 그로 인해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은 어떻게든 전쟁을 막기 위해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시기에서도 히틀러의 비위를 맞추고 달랬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히틀러의 목표는 3개국 합병이 아니라 유럽 정복이었습니다. 

 


미국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다가 1941년 마지막 무렵에야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습니다. 미국 정부가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목격하고 난 후 다른 나라들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고립주의 노선을 택했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지만 사실 그것은 좋게 포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고립주의 노선을 채택한 진짜 이유는 돈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은 이미 1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군수 물품을 각국에게 수출하면서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대공황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때 2차 세계대전이 또 발발하였습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상 유례가 없는 인력을 동원하여 군수 공장을 가동하였습니다. 당시 미국에 있던 모든 공장들의 40%가 군수 생산 공장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군수 공장이였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전쟁이 벌어진 약 5년의 기간 동안 전투기 324,750대, 탱크 88,000여 대, 군함 7,600척 등을 생산해 냈습니다. 참고로 미국 미시간주 윌로런의 포드 공장에서는 B-24 리버레이터 폭격기가 하루에 22대꼴로 4년간 1만8000대가 생산되었으며 독일의 타이거 전차가 1대 생산되는 시간에 미국의 M4 셔먼 전차는 37대가 생산되었습니다. 그렇게 미국은 단독으로 전 세계 군수 물품 생산량의 41%를 생산해 내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이어지는 6년 동안 미국은 연합군에게 많은 무기, 탄약,식량, 연료를 제공하면서 ‘민주주의의 병기창’이라고 불렸습니다. 소련 공군이 보유했던 항공기의 15%인 1만8000대가 미제였고 미국이 지원한 40만대의 트럭과 1500만켤레의 전투화, 1800량의 기관차와 1만1000량의 화차는 소련군의 발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미국 군수 산업의 원동력은 바로 노동력이었습니다. 대공황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였던 미국에는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1943년 미국에 거의 모든 국민이 군수 공장으로 인해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여성들도 군수 공장에서 24시간 동안 교대로 일을 하며 비행기, 탱크, 무기, 탄약 등을 생산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여성들을 리벳공 로지라고 불렀습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겉으로는 고립주의 노선을 택하여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결론적으로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미국은 엄청난 돈을 벌었고 벗어나기 힘들어보였던 대공황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Comment +0

 

기상청이 발표한 3개월 기상전망에 따르면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기온이 평년을 훨씬 웃돌 전망입니다. 최근 낮에는 벌써 무더위가 시작된 것처럼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 130년간 지구 평균기온은 0,85℃ 상승했지만 우리나라 전국 7대 대도시의 평균기온은 지난 100여 년간 1.85℃ 상승할 만큼 도시열섬 현상이 심각합니다.

 

 

사실 지표면의 온도를 높이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대부분의 땅을 덮고 있는 아스팔트 도로입니다. 아스팔트 도로에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자동차들이 지나다니기 때문에 타이어와 아스팔트 도로 사이의 마찰열도 매우 높고 아스팔트 색깔이 어두워 빛의 반사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열을 쉽게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스팔트 도로의 뜨거운 열기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한 장치가 도로 위에 숨어있습니다.그 정체는 바로 클린로드(Clean Road)라 불리는 작은 정사각형 물체입니다. 클린로드는 주로 도로 중앙선에 약 1m 간격으로 설치되어 깨끗한 지하수를 1분에 42L씩 도로 중앙 노즐을 통해 분사해 봄철 골치덩어리 미세먼지와 황사를 씻어내고 여름철에는 아스팔트 도로의 복사열을 냉각시키기 위한 물 세척 시스템입니다.

 

 

클린로드는 2006년 세계에서 최초로 시범 운영을 시작하였고 현재는 대표적인 무더위 도시 대구를 시작으로 서울, 포항 등 대도시 도로에 설치가 되어있습니다. 대구시에서는 클린로드 가동에 따른 미세먼지를 측정하여 저감 효과를 분석했는데 클린로드가 설치된 곳과 설치되지 않은 곳의 미세먼지 감소율이 6% 차이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사실 클린로드는 원래 더러워진 도로를 청소하기 위해 설치했지만 더운 여름에 뜨거운 도로 열을 식혀주는데도 아주 뛰어난 효과를 보여주었고 보통 태양열이 강한 점심시간이나 차량통행이 비교적 적은 저녁시간에 운영됩니다. 많은 시민들은 도로의 미세먼지 제거는 물론 폭염 시 도로의 지열을 떨어뜨려 이전에 물탱크를 차량에 싣고 운행하면서 도로에 물을 뿌리는 도로 물청소 방법보다 더 효과적이라며 높은 만족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클린로드가 도심 온도 낮추기에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지만 차량 오염을 우려하는 운전자들의 불만도 크다고 합니다. 도로가 뜨거워지는 낮시간에는 운전자들 대부분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지만 새벽 시간이나 퇴근시간대에는 미세먼지를 씻어낸 물이 곳곳에서 튀어서 피해를 보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특히 세차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차량이나 오토바이, 자전거의 피해가 많습니다. 하지만 클린로드는 꼭 필요하다고 느껴지며 다만 가동 시간과 수량 조절은 필요해보입니다.

Comment +0

*인도-파키스탄 전쟁 당시의 비크란트 항공모함

 

인도는 2차 세계대전중 건조되다 중단된 영국의 허큘리스함을 1957년에 구입하였고 4년에 걸쳐 대대적인 개조 뒤에 1961년 11월 비크란트 항공모함을 실전 배치하였습니다. 그리고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이 터지자 시 호크 전투기 18대, 알제리 대잠초계기 4대 등을 탑재한 비크란트 항공모함은 파키스탄의 군사기지와 비행장 항구들을 공습하여 48시간 안에 모두 파괴하는 등 엄청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사실 이전에는 비싼 항공모함 도입 비용과 부족한 함재기의 성능과 숫자라는 문제점으로 인해 인도 내에서는 항공모함 도입 및 운영에 상당한 반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크란트 항공모함의 활약으로 인해 인도는 항공모함의 전략적, 전술적 가치에 대한 의문을 더 이상 가지지 않고 계속 항공모함을 유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현재는 스쿠버 다이버들의 다이빙 포인트로 바뀐 비크란트 항공모함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인도 해군이 보유하고 있던 항공모함 비크란트와 추가로 도입한 비라트의 함령이 40년을 돌파하면서 출항시간보다 수리시간이 점점 더 늘어나는 심각한 노후화 문제가 발생하면서 인도는 후속 항공모함이 절실한 상황에 처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존에 운용하던 씨 해리어 FRS.51 수직이착륙기까지 성능 부족과 노후화 문제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1997년 1월 31일에 비크란트가 퇴역하여 기념관으로 전환되면서 인도에 남은 현역 항공모함은 비라트 한 척만 남게 되었습니다.

 

 

당시 인도는 비크란트을 대체하기 위해 1989년에 발표한 ADS라는 신형 항공모함 2척 건조계획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2010년은 지나야 자국산 신형 항공모함 건조를 마치고 실전배치 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이에 마음이 급한 인도는 결국 1998년 5월부터 러시아와 교섭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소련이 붕괴되면서 심각한 제정적 문제로 항공모함을 운용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인도는 러시아의 정통 항공모함은 아니지만 전통갑판형 항공순양함 고르시코프로 노후화 된 바크란트를 대체할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고르시코프는 1991년 수직이착륙 전투기 Yak-41가 착함 시험 중 갑판에 충돌하면서 복구공사를 시행하였지만 1994년 보일러실에서 폭발사고까지 발생하였고 결국 가동불능 상태에 빠지면서 일선에서 퇴역하였고 1995년 7월부터 예비역으로 편입되어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1999년 러시아 국방장관이 인도를 방문하면서 고르시코프의 구매협상을 체결하였으며 2004년에 1월 함재기 포함 15억 달러에 고르시코프를 개조하고 업그레이드해서 인도하는 조건으로 인도와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당시 함체는 무상양도하고 선체 개조비용 8억달러만을 인도가 부담, 함재기는 러시아제 MiG-29K를 사용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또한 승조원 1500명의 훈련 역시 러시아가 담당하기로 하였습니다. 사실 인도는 시 해리어의 탑재를 검토하고 있었지만, 고온 다습한 인​​도양에서 이착함시 엔진 추력이 딸려 STOVL기는 불안하다는 운용 경험에서 결국 러시아의 MiG-29K를 구매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중요 개조 내용은 신형 KVG-2D(KVG-2M-GM) 보일러를 장착하며 P-500 바잘트 대함미사일 12기와 함교전방에 위치한 모든 무장을 철거하고 14.3도의 경사를 가진 스키점프대를 설치하고 함미에는 어레스팅 기어와 착함유도장치가 새로 장착되고 고정익기 운영을 위한 항법지원 시스템도 탑재하고 엘리베이터는 3대 중 함교후방의 엘리베이터만 용량이 20톤이여서 MiG-29K를 운용하기 위한 30톤으로 강화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2008년까지 개조와 업그레이드가 완료되면 인도해군에게 인도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개조공사가 2006년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2007년 1월부터 공사비용을 모두 소모하여 개조공사의 진척 상황은 지지부지하였습니다. 결국 러시아는 비용이 더 들어간다는 이유로 12억 달러를 인도측에 더 요구했고 인도는 당연히 반발하면서 결국 개조공사는 중단되었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인도의 비라트 항공모함의 퇴역이 임박하고 인도 해군의 국산 항공모함 비크란트의 건조도 지연되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하게 밀고 나갔던 것이었습니다.

 

*인도 함대에 공식 양도되는 모습

 

결국 마음이 급했던 2008년 2월 인도가 8억 달러를 더 지불하기로하면서 다시 개조가 시작되었습니다. 문제는 러시아는 한번 더 추가 대금지불을 요구하면서 인도는 총 23억 3천만 달러를 지불하였습니다. (처음보다 두배가 넘는 가격을...) 인도는 니미츠급 항공모함의 절반 가격이라는 것에 위안으로 삼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2012년 건조가 완료되어 시험 항해까지 실시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엔진 8개 중 7개가 고장 나면서 인도 해군에 인도하는 날짜가 또다시 연기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2013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정식으로 인도 해군 편제로 갔으며 2014년 인도 카르와르 기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렇게 개조 된 항공모함은 인도 신화에서 시바에 강림했다는 전설의 황자의 이름인 비크라마디티야라는 함명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비크라마디티야는 전통갑판형 항공순양함에서 항공모함으로 개조공사를 한 것이기 때문에 배수량에 비해 격납고의 크기와 면적이 작고 가용수명이 짧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비크라마디티야의 수명은 약 30년 정도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사실 해외에서는 러시아가 돈이 없어서 해군 주력함을 인도에 헐값에 넘겼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개조 후 인도에 판매하면서 당시 세베로드빈스크 조선소는 2000명의 고용효과를 얻었고 추가 비용까지 더 받아내었으며 MiG-29K와 항공기 이륙과 착함에 필요한 장비까지 판매하였습니다. 그리고 차기 항공모함을 위한 항공모함 건조능력이 향상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러시아 항공순양함을 개조해 인도에게 판매한 것은 신의 한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Comment +0

 

마하 2를 넘어가는 무서운 속도로 비행하는 전투기들의 연료통은 어디에 있으며 어떤 연료를 사용할까하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투기 날개에도 연료가 채워져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전투기 날개는 의외로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요 장치를 제외하고는 공간이 많이 남습니다. 바로 그 여유 공간에 연료를 채우게 됩니다. 우리나라 주력 전투기 F-15K 한쪽 날개에는 약 500갤런(1,878리터)의 연료를 채울 수 있습니다. 양쪽 날개를 합치면 약 1000갤런으로 엄청납니다.  F-16 한쪽 날개에는 약 80갤런, F-4는 약 300갤런의 연료가 채워집니다.

 

 

그렇다고 연료가 날개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투기는 외부 연료탱크 뿐만 아니라 기체 내에도 연료를 급유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는 급유구와 연료탱크가 하나지만 전투기는 외부 연료탱크만 2~3개이며 기체 내부에도 따로 연료를 보관하는 곳이 있어 기체 전체가 연료탱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F-15K의 경우 3개의 연료탱크를 장착하고 비행할 수 있으며 각 연료탱크마다 약 600갤론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날개를 포함한 기체 내부에도 2,000갤론의 연료가 들어갑니다.

 


전투기 날개 밑에 달려있는 커다란 연료탱크까지 미사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연료탱크는 전투기와 같은 색으로 도색되어 있으며 미사일이나 전자전 무기들은 전투기와 다른 색을 띄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무와 무장장착 상태에 따라 필요로 하는 연료의 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항상 연료탱크를 장착하고 비행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짧은 시간을 비행할 경우에는 연료탱크를 장착하지 않고 기체 내부의 연료로만 충분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연료 소모가 많은 임무를 수행할때는 연료탱크를 장착해야겠죠.

 

 

문제는 외부 연료탱크가 연료 탑재량을 획기적으로 늘려주지만 지상에서 전투기가 부담해야할 최대이륙중량에 포함돼 이륙 시 극심한 연료소모를 유발하고 비행 중인 전투기를 뒤로 미는 힘인 항력도 증가하게 됩니다. (결국 공중급유기가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합니다)

 

 

전투기 제트엔진에는 어떤 연료를 사용할까

 

기본적으로 항공기에 들어가는 연료는 기온이 매우 낮은 높은 고도에서 사용하므로 결빙현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때문에 등유를 기반으로 얼지 않도록 각종 첨가제를 넣어 만들어집니다. 군용 제트엔진 연료는 험난한 환경과 피탄시 폭발가능성을 줄여야하기 때문에 민간 제트연료보다 더많은 첨가제를 넣어서 만듭니다. 그만큼 휘발성이 낮아서 라이터나 성냥을 떨어트리면 불이 꺼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폭발력 자체는 휘발유 보다 훨씬 강합니다. 그래서 고온의 제트엔진에서 큰 출력을 내기 좋은 것이죠.

 

 

그리고 기본적으로 수분검사, 결빙방지 검사, 인화성 검사, 전도성 검사 등 여러 검사를 거쳐야만 실제 연료로 사용됩니다. 색깔은 석유처럼 시커멀 것 같지만 맑은 물과 같은 색깔입니다. 이런 연료의 명칭은 JET Propellant이며 줄여서 JP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런 연료는 옥탄가와 납 함유량에 따라 JP-1, 2, 3, 5, 6, 8, JP-TS의 등급으로 나뉘게 됩니다.

 

 

미국과 우리나라 전투기에 사용하는 연료는 JP-1,2,3,5,6,8 중 JP-8입니다. JP-8은 무엇보다 안정성이 우수하고 연소성이 좋으며 발열량이 큰 연료입니다. 위급 상황 시, 경유를 사용하는 차량과 탱크에서도 활용이 가능합니다.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미군도 여러 종류의 연료를 구입해서 사용하는 것 대신 JP-8 연료로 통일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산하고 있는 전투기 연료도 JP-8입니다.

Comment +0

 

야심차게 만들었지만 본전도 못 찾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비운의 트럭이 있습니다. 그 비운의 주인공은 삼성상용차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1톤 상용차 '야무진' 입니다. 야무진은 1998년 11월 판매명 SV110으로 출시되었으며 1999년 9월 야무진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야무진은 ‘Yes! Mount the Zone of Imagine’의 이니셜을 따 조합한 말로 우리말 야무지다의 형용사형과 같은 발음으로 소비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지었다고 합니다. 야무진은 현대의 '포터' 그리고 기아의 '봉고'보다 저렴했고 톤수도 0.2톤 높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도로에서 야무진의 모습은 찾아보기도 힘들고 야무진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큰 기대를 받았던 야무진은 왜 소리도 없이 사라졌을까요.  

 

당시 삼성상용차는 야무진을 현대와 기아가 독점하던 1톤 트럭 시장에 보다 저렴한 가격과 삼성이라는 이름으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했습니다.  또한 삼성상용차는 1t트럭 야무진 출시에 맞춰 직영정비사업소를 1개소에서 10개소로 확대하고 영업거점도 34개소에서 100개소로 확충하면서 신속한 A/S까지 준비했습니다. 당시 삼성은 야무진 흥행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야무진은 사실 삼성상용차가 독자 개발 능력이 없었기에 닛산 아틀라스 100 트럭을 베이스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엔진도 당연히 닛산 TD27였고 그런 이유인지 경쟁 차종이었던 포터와 봉고 프론티어에 비해 힘이 좋았습니다. 보통 1톤트럭을 소규모 영업용으로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좁은 골목길이나 비탈길을 오를 때의 기동성은 1톤 트럭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야무진은 저속 기어비를 크게 해 등판능력이 37.4℃로 포터와 봉고보다 앞서고 최소회전반경이 5.2m로 가장 좋으며 최저지상고(150mm)와 무게중심(570mm)이 낮게 설정되어 코너를 안정되게 돌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야무진은 1톤 트럭이지만 엔진에 소음을 줄인 타이밍 기어를 쓰고 일체형 패널의 도어와 바닥에 흡음재를 사용해 외부 소음까지 막으면서 실내 정숙성에도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왜 야무진은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까

 


우선 주차 브레이크는 일반적인 핸드 파킹 브레이크가 아닌 케이블 파킹 브레이크였습니다. 게다가 브레이크가 자꾸 빠지는 결함이 잦았습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서스펜션과 프레임도 취약하여 조금만 과적이 심해도 주저앉고 무너졌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특성상 과적이 심한편이긴 하지만 야무진은 너무 심할정도로 약골이였습니다.

 

 

만약 1톤이 넘는 짐을 싣고 오랫동안 주행을 할 경우 고무로된 로어 암 볼이 뭉개지며 빠져버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바퀴가 빠지기 직전의 상황처럼 휠이 누워버립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남아있는 야무진 차량들은 프론티어나 포터용 볼조인트로 개조한 차량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설상가상으로 2000년 삼성자동차의 파산과 함께 삼성상용차가 없어져버렸고 SM510, SM530 중대형 트럭과 함께 야무진도 사라져버렸습니다. 문제는 르노삼성자동차가 삼성상용차 시절 화물차의 부품수급과 A/S에 관련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지금 현재 야무진을 봤다는 목격담과 사진이 가끔씩 자동차 관련 커뮤니티에 올라오면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