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베트남전 상황이 점점 진흙탕으로 변해가자 미국도 동맹국으로 병력을 지원받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였습니다. 그리고 1964년 5월 존슨 미국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파병을 정식 요청하였고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처음에 맹호부대만 보내려고 했는데 해병대 측이 참전 의사를 강하게 표명한 데다가 채명신 파월 사령관까지 해병대도 전투 경험을 갖게 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하여 상부에 건의하면서 해병대 청룡부대까지 파병하였습니다.  

1966년 9월 3일. 서울 중앙청 앞 광장에 도열한 백마부대

이후 미국 험프리 부통령이 서울로 급하게 날아와 박정희 대통령에게 월남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1개 사단을 추가로 증파해 달라고 요청을 하면서 맹호부대, 청룡부대에 이어 육군 9사단 백마부대의 베트남전 참전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1966년 9월 3일 백마부대 출정식에서 고등학생, 연예인, 종교인 등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장병들의 목에 꽃다발을 걸어주며 무운장구를 빌었습니다. 시내는 발딛을 틈 없이 인파로 가득했으며 시민들의 응원이 이어졌습니다.

"군인 아저씨, 이기고 돌아오세요."

 "공산군에게 대한남아의 기백을 보여주시오."

"무운을 빕니다. 다치지 말고 돌아오세요."

-월남전과 한국, 백마부대 참전자 수기 -

 

그렇게 백마부대는 1966년 9월 16일 부산 3부두에서 출발하였고 1966년 9월 22일 베트남 나트랑에 상륙하였습니다.  이후 백마부대는 1967년 1월 29일 혼바산에서 벌인 백마 1호작전을 비롯하여 1967년 7월 9일 투이호아에서 벌인 홍길동 작전을 비롯하여 박쥐작전, 도깨비 작전 등

 

 

1973년 3월 11일 철수할때까지 211,714회(대부대 전투 478회, 소부대 전투 211,236회)에 걸쳐 끝없는 전투를 치루며 엄청난 전과를 올리면서 천하무적 백마부대라는 전설을 남겼습니다. 특히 1967년 3월 8일부터 5월 31일까지 2개월간에 걸쳐 맹호부대와 함께 군단급으로 실시한 오작교 작전이 유명합니다. 

 

 

당시 1번국도가 핵심 교통로였기 때문에 반드시 베트콩을 소탕 평정하여 도로를 개통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특히 백마부대가 1966년 9월에 배치되면서 맹호부대와 백마부대간의 상호 연계와 지역 안정화를 위해서 판랑와 퀴논간 사이 약 400km구간 1번국도의 개통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남베트남이나 미국으로서도 1번국도의 개통은 남베트남의 물류수송등이나 군사작전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군들도 1번국도를 개통하기 위해 작전을 펼쳤지만 맹렬한 베트콩들의 반격으로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미군들은 자신들도 못한일을 한국군이 작전을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3월 8일 백마부대 28연대가 베트콩이 취약한 후방지역에서 소탕작전을 시작하였고 3월 15일 맹호부대는 5개 대대의 병력을 연대마다 차출하여 송꺼우 남단 3km에서부터 대규모 소탕작전을 진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3월 17일 백마부대는 1번 국도로 계속 북진하면서 투이호아와 밀접한 1번국도 외곽의 서쪽과 북쪽에서 북진의 기반과 맹호부대와 연계를 위한 소탕작전을 시행하였습니다.

 

 

그런데 4월 10일 백마부대 28연대 3대대 11중대가 작전을 마치고 복귀하여 기지에서 쉬고 있었는데 베트콩들이 침투하여 내무반(생활관)에 소련제 방망이 슈류탄이 투척되면서 아군 12명이 전사하고 22명이 부상을 입는 큰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실탄 통행금지

이에 화가 난 맹호부대와 백마부대는 빠른 작전수행을 보이며 연결작전에 들어갔고 맹호부대는 608명 사살 272명 생포의 전과를 올렸으며 백마부대는 265명 사살 145명 생포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총 873명 사살하였으며 아군은 35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후 맹호부대 선봉인 26연대 3대대 11중대가 M113 6대를 앞세워서 남진을 백마부대 선봉인 28연대 2대대 7중대가 북진을 시작으로 투이호아 18km 북쪽의 1번 국도 지점의 호아다 마을에서 만나는 작전을 시작하였고 5월 31일까지 소탕작전을 펼치면서 당시 작전 지역내 베트콩들은 모두 소탕되면서 오작교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오작교 작전 성공으로 남베트남 중부 해안 도로가 완전히 개통되었고 야간에도 민간버스들과 트럭들이 활발하게 움직일수 있는 기반이 확보되었으며 한국군은 1번 국도를 중심으로 북쪽 봉선~판랑까지 총 6800㎢의 작전면적으로 작전활동이 확대되었습니다. 이 작전은 당시 남베트남 정부의 물류수송-경제-통치영향력을 강화하는 결정적 작용을 했기 때문에 당시 북베트남과 베트콩들에게는 매우 큰 타격이 된 작전이었습니다.

 

 

당시 이 작전에 대해서 미국은 물론 많은 해외 언론들이 한국군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미군사령관 웨스트 모얼랜드는 "나의 군대 생활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한국군의 오작교 작전이며 전략적인 방침과 장병들의 완전 무결한 전술적인 행동으로 상상할 수 없는 베트남전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라고 공식 석상에서 여러차례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현재도 베트남 닌호아에서 1번도로를 타고 투이호아 방향으로 가다보면 조그만 언덕이 있습니다. 그 언덕은 예전 백마부대 비행장 옆입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조그만 길로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면 통신용 송신탑이 세워져 있고 창살너머로 백마 전적비가 아직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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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고속으로 달릴 수 있게 만든 도로를 고속도로라고 부릅니다. 고속의 기준은 나라마다 다르며 우리나라에서는 제한속도 100km/h 이상의 도로를 고속도로로 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오토바이가 고속도로에 들어갈 수 없지만 일본은 126cc이상, 이탈리아는 150cc이상, 필리핀은 400cc이상 오토바이가 고속도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각 나라마다 고속도로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고속도로를 갖춘 나라들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미국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미국의 고속도로는 일부 대도시들을 제외하고 요금이 무료입니다. 미국은 영토가 넓고 산이 거의 없는 곳도 많아 끝없이 뻗은 도로에서 거의 핸들도 틀 필요가 없이 직진만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도로 포장이 매우 나쁘고 야생동물이 많이 나타나 로드킬이 자주 일어납니다. 

 

 

또한 넓은 대륙에 사람이 살기 힘든 척박한 황야도 가로질러 건설된 고속도로이다 보니, 80-90마일로 한시간 가까이 달려도 사람 사는 곳이 안 나오는 구간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같은 체계화된 휴게소들은 드물고 중간중간에 나타나는 주유소나 햄버거 가게, 그리고 작은 마을들이 휴게소의 역할을 합니다.


  캐나다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

미국보다는 고속도로 관리가 잘되어 있습니다. 특히 주요 도시를 지나는 구간은 도로 포장은 우리나라 수준으로 잘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외곽 고속도로 경우 곰같은 맹수도 주변에 많이 서식하고 있기때문에 야생동물 출몰 표지판을 보면 감속해서 운전하는게 좋습니다.

 

 

속도는 일반적으로 100km/h이며 도심지는 80km/h까지 내려갑니다. 과속 카메라는 따라 없고 경찰들이 매복해서 단속을 합니다. 하지만 과속해서 잡히면 벌점 3점에 $300 캐나다 달러를 지불해야 합니다.


  독일 아우토반

아우토반은 전 구간이 왕복 4차로~왕복 6차로로 구성되어 있으며 왕복 8차로 이상인 구간은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특징은 전 구간의 50%가 제한속도가 없습니다. 철저한 지정차로제 준수를 통해 평균 200 km/h 이상, 순간 300 km/h 이상의 안전한 초고속 주행이 가능합니다.

 

 

다른 특징 중 하나는 통행료가 없습니다. 그리고 휴게소는 단순히 주차장만 있는 경우부터 식당이나 바베큐 시설, 호텔까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휴게소을 한번 출입하는데 70센트(유로화)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탈리아 아우토스트라다

많은 사람들이 독일의 아우토반이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라고 알고 있지만 아우토스트라다가 세계 최초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나들목을 살펴보면 나팔관 형태의 입체 교차로로 설계되었는데 바로 아우토스트라다를 모델로 삼아 설계된 것입니다. 그리고 고속도로의 90%이상이 유료도로입니다.


  일본 고속도로

일본의 고속도로 중에서는 최고제한속도 110km/h인 곳이 없습니다. 또 어떤 왕복 4차선 고속도로는 도로선형이나 도심지를 통과하느냐에 따라서 최고제한속도가 80km/h인 경우 외에도 최고제한속도가 70km/h이거나 60km/h인 경우도 있습니다.

 

 

일본이 물가가 높고 교통비는 특히 비싸기 때문에 고속도로 통행료도 매우 비싸서 1~2인의 경우 차로 장거리 여행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고속도로 1km 당 평균 요금은 30엔(290원) 정도입니다.


  중국 국가고속공로망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 시스템을 가진 나라입니다. 중국 고속도로를 처음보는 외국인들은 생각보다 잘 되어있어 놀란다고 합니다.교통량이 많은 고속도로 구간에는 많은 휴게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작년에는 베이징과 우루무치를 잇는 총길이 2천582㎞의 고속도로가 개통하였습니다.(그 중 930㎞구간은 사막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대만 중화민국국도

대만의 고속도로도 대부분 구간이 유료로 운영되고 있지만 통행료 지불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도로마다 중간 중간에 요금소가 설치되어 있어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종이로 된 통행권을 내거나 현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요금소 하나를 지날때마다 40원이며 선불로 통행권을 구입할 경우 장당 38원에 이용이 가능합니다. 단점은 휴게소 간 거리가 우리나라의 2~3배 정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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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한 뒤 격분한 팔레스타인의 정당이자 무장 테러단체인 하마스와 이스라엘 군이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계속해서 충돌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이스라엘군이 하마스가 이스라엘 영토내로 뚫어놓은 수백 미터의 지하 터널을 발견해 파괴하면서 하마스는 터널 파괴에 대한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말한 뒤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하였고 이에 이스라엘 군은 보복으로 공중 폭격을 가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계속해서 이스라엘 군은 전차를 이용해 하마스 군기지를 향해 포격하는 등 끊임없이 전투가 벌어지면서 양측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루살렘을 두고 싸우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대표 무기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하마스 대표무기

□ 불새-2

하마스 대전차 무기중 하나인 불새-2는 이스라엘 군에게 위협적인 무기입니다. 거치대와 조준장치가 무겁고 성능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옛 동유럽 국가들과 북한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에서 운용되고 있습니다. 정교한 밀수 로드를 통해서 하마스에 대량 밀수출된것이 확인되었고 이란에서도 하마스에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하마스의 알카삼 여단과 알나세르 여단에서 불새-2 미사일을 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 까삼

하마스가 애용하는 로켓무기 까삼(Qassam)입니다. 제조 과정이 간단하고 가격이 저렴합니다.(까삼 1개 제작비용은 80만원 정도) 뉴스에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로켓 또는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고 나오면 90%이상 이 까삼을 사용한 것입니다. 까삼로켓의 추진체는 주로 설탕, 질산칼륨 등을 섞어서 만들며 위력도 나름 준수한 편이라 사거리는 5km(까삼3은 10km) 정도이며 30cm 콘크리트 정도는 간단히 파괴합니다.


□ 파즈르-5

현재 하마스가 보유한 무기 중 사정거리가 가장 긴 로켓 파즈르-5입니다. 이란에서 들여온 이란제 파지르-5는 사거리는 75km에 로켓 발사중량 1.5톤, 탄두 무게는 175kg에 이르는, 사실상 정규군 수준의 무기입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감시를 피해 이 로켓을 이란에서 수단으로 운송하고 거기서 분해한 뒤 시나이의 땅굴을 통해 가자지구로 옮겨 조립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 테크니컬 차량

민수용 차량에 중화기를 설치한 트럭으로 AK-47, 알라의 요술봉과 함께 테러리스트 3종 세트 중 하나로 불립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트럭을 다연장로켓 발사기로 개조하였습니다. 하마스는 이 차량을 평범한 트럭으로 가장해 사격위치까지 기동한 후 로켓을 발사합니다. 로켓은 99% 까삼 로켓을 사용합니다. 


 

  이스라엘 대표무기

□ 메르카바

메르카바는 이스라엘군이 운용하는 주력 전차입니다. 이 전차는 RPG나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갖고 싸우는 하마스를 상대로 승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력을 극도로 높이면서 기형적으로 진화하다 보니 정규전에선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보니 무겁기로 유명한 M1A2 에이브람스 전차보다 2톤이 더 무겁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개량되면서 꽤 강력한 전차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나메르

나메르는 메르카바 Mk4 전차의 차체를 개조해서 만든 중장갑차로 M2 중기관총이나 Mk.19 고속유탄기관총, FN MAG 7.62mm 기관총, 60mm 박격포를 원격조종해서 공격할 수 있으며 12명까지 탑승이 가능합니다.

 

 

이스라엘 군이 시가전에서 마주치는 하마스는 대전차 로켓, 대전차미사일, 박격포, 다연장로켓, 급조폭발물 등의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나메르는 다른 국가의 3세대 전차보다도 뛰어난 방어력을 자랑합니다. 한마디로 나메르는 시가전에서 게릴라 상대로 싸우는 데 최적화된 중장갑차입니다.


 

□ F-16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에서 가장 막강한 공군력을 가진 나라로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상당히 앞서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F-16은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개량하여 아직까지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이 하마스에 공중 폭격했다고 하면 대부분 F-16D/I이나 F-15I입니다.


□ 아이언돔

아이언돔은 이스라엘 군이 개발한 대공 미사일로 전투기나 미사일을 요격하기보다는 주로 하마스가 사용하는 까삼 로켓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주장에 따르면 14년 7월 벌어진 이스라엘 하마스 전투 중 아이언 돔이 보인 명중률은 90%에 달합니다. 문제는 80만원짜리 하마스의 까삼 로켓을 막기위해 수천만원에 달하는 아이언 돔을 사용하는게 큰 부담이기 때문에 미국이 예산지원까지 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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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F-2(Joint Task Force-2)는 1993년 100여 명의 지원자로 창설된 캐나다군의 특수부대로 이들의 활동은 캐나다 정부에 의해 매우 비밀스럽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캐나다 정부는 처음에 JTF-2의 존재조차 부정했었습니다. JTF-2라는 부대가 있다는게 알려진게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이었습니다.

 

 

40여명의 JTF-2 대원이 아프간 남부에 전개되어 탈레반 요인을 체포한 후에 미군에게 인도하는 사진이 찍혀 파병 한참 뒤인 몇 달 후에 알려졌습니다. 재밌는 건 캐나다 총리조차 JTF-2부대가 아프간에 파병 간 사실을 사진을 통해 알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JTF-2가 다국적 특수전 Task Force에 소속되어 항구적 자유작전중 탈레반 요인을 체포/사살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JTF-2는 그동안 아프간과 이라크 등지에서 미군 특수부대와 다수의 합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왔으며 아프간내에서 외국 특수전 부대로는 유일하게 미군의 Tier 1 부대들과 합동작전을 펼친 부대입니다. 그리고 미군 특수부대들과 고위급들은 JTF-2의 능력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프간 파병은 JTF-2라는 부대가 알려진 계기가 되었을 뿐 파병 자체는 1995년에 보스니아전에서 UN 평화유지군을 공격하는 세르비아 저격수들을 찾아 소탕하기 위한 2인 1조 팀들을 다수 파병하였습니다. 특히 캐나다 저격조는 전 세계에서 불과 몇 명만이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최고의 기술로 훈련돼 있습니다. 그만큼 캐나다는 뛰어난 저격수들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2017년에는 JTF-2 소속의 한 저격수가 이라크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도중 IS 대원을 3,450m 밖에서 사살하여 8년만에 저격 세계 신기록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저격에는 맥밀란 TAC-50 저격소총이 사용되었으며 총알이 목표에 맞기까지 10초를 비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이전 영국군 저격수가 세운 기록과 비교해 거의 1km나 늘어난 것으로 앞으로 10년 동안은 깨지기 힘들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로 세계 저격수 기록 TOP5 중 3명이 JTF-2 소속)

 

 

JTF-2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년을 정규군(Regular Force)에서 복무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원 자격이 갖춰지면 첫 평가로 푸쉬업 풀업 밴치프래스 싯업 달리기 등 체력을 평가하는데 총점수제로 적어도 70%를 받아야 합니다.

 

 

만약 모든 평가를 통과하면 온타리오주에 있는 Dwyer Hill Training Centre에서의 7개월 가량 특수전 훈련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이 훈련 프로그램은 델타포스의 훈련 프로그램을 본떠 총 4단계로 나눈 것으로 매우 가혹한 강도를 자랑합니다. 높은 수준의 육체적 능력, 지구력, 정신력을 요구합니다.

 

 

현재 캐나다 미디어가 JTF-2에 대해 알아낸 또 다른 사실은 JTF-2는 200명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간 2억여달러의 예산을 쓰고 타격대 중에서도 공격전문 어썰터Assaulter가 되면 6단위 숫자의 봉급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방수상의 해외순방이나 정부고위층의 해외 위험지구 방문 때도 이들을 보호하고 캐나다 시민들이 해외에서 납치됐을 때도 출동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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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휴전 협상이 진행되면서 공산군과 UN군의 대규모 공세는 멈추었습니다. 그 당시 양측 모두 상대를 궤멸시키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전선을 유지한 채 휴전을 하기로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선을 유지한다고 해서 양측의 교전이 멈춘 것은 아니였으며 조금이라도 중요한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고지쟁탈전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국전쟁 막바지에 펼쳐진 가장 치열했던 3대 고지전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9사단 백마부대

  주인이 12번 바뀐 백마고지전투

1952년 10월에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395고지)를 확보하고 있던 국군 9사단이 중공군 내 정예 부대라 불렸던 중공군 38군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열흘 동안이나 이를 막아내며 고지를 사수한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국군 9사단은 중공군 38군 소속 3개 사단의 연속적인 공격을 받아 이를 물리치는 동안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나, 국군 1포병단의 화력지원과 유엔 공군의 항공근접지원하에 끈질기게 저항하던 중공군 1만여 명을 격멸하고 백마고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포격으로 민둥산이 된 백마고지

백마고지 전투는 10일 동안의 전투기간 동안에만 고지의 주인이 무려 12번이나 바뀔 정도로 치열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과 미군은 21만 9954발, 중공군은 5만 5000발, 총 27만 4954발의 포탄을 쏟아부었습니다. 6.25 전쟁 중 단일 최다 포탄소비 전투이며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1사단 전진부대

  국군 36vs 중공군 800 베티고지전투

베티고지전투는 중공군의 최후 공세인 7·13공세 당시 중공군 1군단 예하 1사단이 임진강 서안 고양대 부근의 국군1사단 11연대의 전초 베티고지를 공격하자 김만술 소위를 비롯한 소대 병력이 이틀간 백병전을 펼친 끝에 대대 규모의 중공군을 격파한 방어전투입니다. 서부전선의 요충지였던 베티고지는 그 지리적 위치 및 정치적 중요성으로 인해 국군과 중공군 간에 이를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치열했습니다.

 

▲김만술 대위(당시 계급은 소위)

김만술 소위의 소대가 베티고지에 투입되었을 당시에 3개의 봉우리중 중앙과 동쪽은 제 1 보병사단이 사수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서봉은 중공군에게 빼았긴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사실상 1개 소대로 그 수많은 중공군을 공격하는것은 자살행위에 가까웠으나 김만술 소위는 도박을 걸어보기로 합니다. 바로 기습공격을 감행한 것이었습니다. 항상 공격에 급급했던 중공군은 예측하지 못한 공격에 당황하였고 김만술 소대는 8부 능선을 돌파하여 서봉을 탈환했습니다.

 

 

서봉을 탈환 후에 김만술 대위는 바로 소대원들에게 방어선 구축을 명령하고 19시 30분 중공군은 서봉 재탈환을 위하여 2개 중대로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중공군 중대는 야포와 박격포의 지원을 받았으나 김만술 소위는 상부에 포격지원을 요청하였으나 그마저도 포격으로 인해 통신두절이 되어버렸습니다.

 

 

소총과 수류탄으로 대항하던 김만술 대위의 소대는 중공군 2개 중대가 공격해오자 백병전을 통해 방어에 성공하였습니다. 2개 중대가 박살나자 화난 중공군은 2개 대대를 투입하였는데 대략 800명정도 되는 인원이었습니다. 김만술 소위는 소대원들에게 참호에 들어갈것을 명령하였고

상부에는 진지에 계속해서 포격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김만술 소대는 소총과 수류탄이 모자라자 철모와 야전삽 , 개머리판 손에 닥치는데로 무기가 되는것을 집어서 중공군을 사살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전투는 19시 30분에 시작되어 13시간 동안 새벽 동이 틀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공군의 대규모 공격을 4차례 막아내고 승리하였습니다. 비록 소대원 36명중 24명이 전사하였지만 중공군 피해는 전사 314명, 부상 450명, 포로 3명으로 엄청났습니다.


 제7사단 칠성부대

  휴전선을 35km 북상시킨 425고지 전투

화천 425고지 고지전은 정전협정을 불과 일주일여 앞두고 벌어진 마지막 전투입니다. 425고지는 강원도 화천군 북방 철책선 1.2km 앞 비무장지대(DMZ)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당시 우리나라의 주요 전력 공급원인 화천댐에 이르는 요충지였습니다. 중공군 135사단은 전략고지인 425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특유의 인해전술을 펼치는 등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이에 국군 7사단 8연대 1대대 1중대장이었던 김한준 대위는 60밀리미터 박격포를 이용해 1개 중대 병력으로 중공군 1개 대대를 섬멸하였으며 196명 중대원들은 굳건한 의지와 단결로 사흘간에 걸친 최후의 격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로 국군은 화천댐을 사수하고 휴전선을 38선으로부터 35km나 북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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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요소는 연비, 안전, 디자인 그리고 승차감입니다. 승차감은 넓은 의미로 종합적인 쾌적함을 말하기도 하지만 주로 차량의 진동에 대한 느낌을 말합니다. 아무리 자동차 스펙이 좋다고해도 승차감이 나쁘면 좋은 자동차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최근 출시되는 SUV들도 승차감에 신경을 쓰면서 많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자동차 승차감을 결정짓는 요소 5 가지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서스펜션

서스펜션은 차체의 무게를 지탱하는 스프링 등 차량의 충격흡수시스템을 통칭합니다. 서스펜션의 주된 역할은 노면의 진동이 차체나 탑승자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서스펜션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승차감의 차이가 크게 달라집니다. 서스펜션을 단단하게 설정하면 코너링이나 노면 접지력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이지만 노면의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래 운전할 경우 허리가 아프고 멀미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세스펜션을 무르게 설정하면 저속 주행 시 노면의 충격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지만 고속 주행에서는 차체를 지지하는 것이 불안정하여 차가 출렁거리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만약 노면의 요철을 밟고 지나갔을 때 전달되는 충격량은 적을 수 있지만 진동이 오랫동안 차체에 남아있습니다. 때문에 자신의 운전 성향에 맞게 설정되어있는 차량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타이어

편한 신발을 신어야 걷기 편한 것처럼 자동차도 꼭 맞는 타이어를 장착해야 승차감이 좋아집니다. 노면에서 발생하는 충격을 1차적으로 걸러주는 장치가 타이어입니다. 타이어는 고무를 주재료로 사용하고 내부는 공기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우리가 느끼는 승차감은 타이어의 사이드월이나 타이어 공기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흔히 타이어 측면 부분을 사이드월이라고 부르는데 사이드월의 높이가 승차감에 큰 영향을 줍니다. 만약 휠 인치업을 할 경우 사이드월은 얇아지고 두꺼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노면의 충격이 차량으로 전달되기가 쉬워 승차감은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타이어의 공기압이 높을수록 승차감은 나빠집니다. 차량 제조사에서는 이러한 승차감을 고려하기 때문에 적정 공기압을 상대적으로 낮게 설정합니다. 하지만 공기압이 낮으면 타이어의 마모 속도도 빠르고 안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속 주행을 많이 하는 차는 높은 공기압을 유지하는 것이 좋고 시내 주행을 주로 하거나 승차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공기압이 조금 낮은 것이 좋습니다.


  시트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자동차 시트는 그저 단순한 의자의 기능만을 수행할 뿐이었습니다. 현재는 여러 가지 인체공학적 자동차 시트가 개발되어 장거리 주행 시에도 피로를 적게 받고, 고속주행이나 급격한 코너링을 할 때도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등 탑승자의 편의를 고려한 특수 목적의 자동차 시트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최근 단점이 많은 직물 시트는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고 급하게 회전을 할 때 운전자의 몸을 안정감 있게 고정해주는 버킷 시트나 가장 편안한 자세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저중력 시트 등이 인기라고 합니다.


 

  엔진과 변속기

자동차 시동만 건 상태에서도 차량의 진동과 소음이 발생하는데 이는 엔진 때문입니다. 엔진의  진동과 소음관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엔진의 컨디션 유지인데 올바른 교체시기에 엔진오일을 교체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디젤 차량의 진동과 소음이 심한편이기 때문에 디젤 차량의 경우는 연료 첨가제를 이용한다면 더 좋습니다.

 

 

또한 외부 주차시엔 차량의 냉간샅애가 길어져서 자동차의 진동과 소음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차는 가급적 지하주차를 이용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변속기도 마찬가지인데 울컥거리는 등 변속충격이 발생하거나 동력을 매끄럽게 전달하지 못하면 승차감을 해치게 됩니다. 기술적으로 듀얼 클러치 변속기가 앞선 것으로 평가 받고 있음에도 아직 부드러움 측면에서는 자동변속기를 앞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체 강성

뛰어난 승차감을 위해서는 차체 강성도 중요합니다. 차체가 튼튼하지 못하면 진동이나 소음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그대로 운전자와 탑승자에게 전달됩니다. 차체 강성은 충돌 안정성과 주행성능, 승차감까지 결정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차체 강성을 무조건 단단하게 높여도 외부의 충격을 차체가 흡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동차 회사들은 차체 강성과 다양한 조건을 분석하여 차체 강성의 황금비율을 찾아내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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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은 6.25 전쟁의 판도를 뒤엎고 대한민국을 구해낸 작전이자 세계의 유명 작전 중에서도 손꼽히는 작전입니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인천상륙작전이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인천상륙작전 만큼 기억되길 바라는 제2차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951년 1월 4일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을 등에 업고 수도 서울을 탈환한 국군과 UN군이 한국-중국령 만주 국경을 향해 북진하던 중 중국에서 내려오는 중공군의 대공세로 인해 국군과 UN군은 서울을 다시 내주고 북위 37도선인 평택-삼척선까지 밀렸습니다.

 

 

중공군의 예상못한 한국전쟁 참전은 눈앞에 다가웠던 통일의 꿈을 한순간에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북한군은 지뢰 등을 매설해 다시는 인천과 인천 바다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미 제8군 사령관 리지웨이는 다시 인천을 탈환할 수 있는 소규모의 작전을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그 작전은 상륙작전이 아닌 월미도 포격이었습니다. 월미도를 포격하여 북한군이 인천상륙작전을 다시 떠올리고 병력을 인천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UN군이 다시 서울을 탈환하는데 수월할 것이며 인천까지 다시 탈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2월 3일 백두산함은 북한군이 장악하고 있는 인천항 안으로 돌입하여 월미도 전방 1000m 지점에서 북한군의 포대와 초소에 포격을 했습니다. (참고로 백두산함은 해군 장교 부인들이 바자회를 운영하고 장교는 월급의 10%, 병조장은 7%, 하사관과 수병은 5%씩 모으고 국민까지 모금운동하여 모인 돈으로 구입한 대한민국 해군 유일의 군함이었습니다.) 미국과 영국 순양함, 구축함 등도 백두산함과 함께 북한군 진지를 포격했습니다.

 

▲제2차 인천상륙작전 상황도

그런데 포격으로 살펴보니 인천항에 주둔하고 있던 북한군의 포대의 위치와 화력 규모가 그렇게 강력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었고 작전은 상륙작전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2월 10일을 D-DAY로 정하고 제2차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작전을 하달받는 수병들 모습

하지만 2월 10일 D-DAY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아군 함대가 포격을 가하여 탄막을 만드는 동안 100여 명의 우리나라 해병대가 상륙하여 교두보를 확보해야 했는데 해병대가 기상악화로 인천 외항에 도착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같은 소식을 접한 백두산함의 노명호 함장과 김종기 소령은 만조시간을 놓치면 안 된다고 판단하여 인천 외항에 집결한 각 함정의 수병들 중에서 지원자를 모집해 총 70명의 특공대로 구성된 상륙 부대를 긴급 편성하였습니다.

 

제2차 인천상륙작전, <1951년 2월 10일 18:00시>

그리고 오후5시 미국과 영국의 함정의 함포사격으로 제2차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었습니다. 1시간 뒤 함정승조원으로 편성된 특공대 70명은 만석동 해안으로 상륙을 감행하였습니다. 당시 특공대를 지휘한 김종기 소령은 지난 인천상륙작전 당시 해병대 제2대대를 이끌었기에 만석동 해안 지리에 익숙했습니다.

 

제2차 인천상륙작전의 주역들. 왼쪽부터 노명호 소령, 스미스 제독, 통역관 최병해 대위, 김종기 소령, 최영섭 소위.

육상 전투 훈련도 받지 않았지만 틍공대 임무에 지원한 해군 수병들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던 오후 7시 뒤늦게 도착한 100명의 해병대까지 만석동 해안에 상륙하였고 전의를 상실한 북한군은 방어를 포기하고 시 외곽으로 도주하였고 오후9시에 목표했던 기상대 고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위 사진은 제1차 인천상륙작전 기상대 고지 점령모습

그것으로 제2차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 해군과 해병대는 소규모 상륙부대로 작전을 수행하여 인천과 서울을 재탈환하고 38도선 진격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 대한민국 해군은 제2차 인천상륙작전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용사들의 전공을 현양하기 위해 지난해 1월부터 전승비 건립계획을 추진하였고 2017년 11월 15일에 제2차 인천상륙작전을 기리는 전승비 제막식이 인천 중구 월미공원 맥아더길 입구에서 거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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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대에서는 현재까지 카를로스 헤스콕(Carlos Norman Hathcock)을 최고이자 전설적인 저격수로 부르고 있습니다. 헤스콕은 One Shot, One Kill이라는 말을 만든 인물입니다. 베트남 전쟁중 그의 공식 사살전과는 93명으로 미국 기준 제4위이나, 당시 미국 사살판정기준이 별도의 장교가 사살을 직접 확인해야지만 인정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실제 사살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아, 총 전과는 300명을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베트콩들은 헤스콕을 하얀 깃털(white feather)이라고 부르며 두려워 했으며 헤스콕을 잡기위해 개인으로서는 최고금액인 3만달러의 현상금을 걸기까지 했습니다. 헤스콕은 베트남전에서 많은 활약을 펼쳤지만 지금도 전설적인 인물로 불리는 이유는 불가능한 임무를 해냈기 때문입니다. 일명 '자살 임무'

 

(왼쪽M21 SWS를 들고 있는 헤스콕)

당시 제대가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 헤스콕은 위험천만한 단독 작전에 자원하였습니다. 그런 임무에 나서면 목숨을 잃기 마련이지만 헤스콕은 동료들이 죽는게 싫어서 혼자 나섰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이 해야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작전 장소는 적진 속으로 수킬로미터 들어간 곳이었으며 임무는 본부에 있는 북베트남 육군 장군을 사살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임무에 성공한다고 해도 지원군이 없었기 때문에 자살 임무로 불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헤스콕이 기적으로 북베트남 장군을 사살하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복귀까지 할 수 있는 확률은 1%도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저하지 않고 헤스콕은 적진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북베트남 육군 장군의 본부까지는 1.8킬로의 평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헤스콕은 적진에 도착하자마자 지도와 정찰 사진으로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그의 계획은 1.2km를 기어간 다음 저격을 감행할 계획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목표지점까지는 640m거리였습니다. 그리고 단 한 발로 북베트남 육군 장군을 사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위치를 발각당하지 않는다면 그는 얕은 협곡을 따라 도망칠 생각이었습니다.

 

 

헤스콕은 계획을 세운 뒤 목숨을 걸고 적진을 향해 포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적군들이 살피지 않는 곳을 찾아서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9미터 떨어진 곳에서 헤스콕이 두려워하던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적군 순찰병이 가까운 곳까지 온것입니다. 그때 순찰병에게 발각당한다면 헤스콕은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하지만 순찰병이 끌고온 순찰견들까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지나갔습니다.

 

 

이후 헤스콕은 사흘간 안 먹고 안 자고 계속 포복한 끝에 사격 위치에 도착하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남았었는데 목표의 신분을 파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헤스콕은 리더들은 손가락 질을 좋아하고 손가락 질하며 말한다는 특징을 생각하고 금방 목표를 알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헤스콕은 단 한 발로 북베트남 육군 장군을 사살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람의 방향을 고려해 목표의 가슴 왼쪽을 겨냥했습니다. 만약 빗나가거나 상처만 입힌다면 작전은 실패였습니다. 헤스콕은 기술적인 호흡으로 심박수를 떨어뜨렸습니다. 심장이 안 뛰는 순간에 총을 쏴야 정확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해스콕은 총을 쐈습니다. 음속의 두 배로 날아간 총알은 총성이 들리기도 전에 북베트남 육군 장군 가슴에 박혔습니다.

 

 

이제 헤스콕에게 도망가는 일만 남았었습니다. 그런데 사격 위치 주변 왼쪽, 오른쪽에는 기관총이 각각 2대씩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베트남 육군 장군이 총에 맞아 쓰러지자 베트콩들은 모두 반대편으로 가는 동시에 기관총을 쏘았습니다. 그 이유는 헤스콕 반대편에는 나무가 있었고 헤스콕이 있는 위치는 평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헤스콕은 완벽하게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였습니다.

 

 

헤스콕이 나흘 동안 들키지 않은 것도 대단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640m 거리에서 쏜 한 발이었습니다. 헤스콕은 베트남전에서 물위를 달리는 고속보트 위에서 대략 700m거리밖의 베트콩을 저격하기도 하였으며 헤스콕은 M2 중기관총으로 세계 최장거리 저격기록(약 2,300m)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이 기록은 35년이나 흘러서야 겨우 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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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길이는 2017년 기준으로 4,716km 정도로 국토 면적에 비해 매우 촘촘하게 고속도로망이 짜여져 있습니다. 그만큼 고속도로를 이용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고속도로는 평균 80km~120km로 주행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대형 교통사고로 확대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고속도로 교통사고 주요 원인으로 운전 중 다른 일을 하느라 앞을 잘 못 본 주시 태만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 졸음운전, 과속운전, 안전거리 미확보 등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교통사고 가운데 운전자 과실에 의한 교통사고가 전체 교통사고 원인의 90%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오늘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고속도로 교통사고 8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8  서해안 고속도로 9중 추돌사고

원인 운전자 부주의

인명피해 부상9명

2017년 11월 21일 서해안고속도로 상행선 서산나들목 부근에서 발생한 연쇄 추돌사고입니다. 화물차가 가장먼저 서행하던 SM7 차량을 가격하고 앞에 있던 아우디 A6차량과 NF 쏘나타 차량 등을 추돌하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아우디 A6 차량은 앞부분만 남았고 쏘나타 차량은 트럭에 밀려가면서 앞에 있던 화물차에 측면으로 충돌하면서 심하게 파손되었습니다. 생존한것이 기적일정도인데 당시 이국종 교수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고당시 2명의 위급한 중상자가 있었는데 헬리콥터로 위급한 환자를 이송하고 수술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7  천안논산고속도로 8중 추돌사고

원인 졸음운전

인명피해 사망2명 부상9명

2017년 9월 2일 오후 5시에, 천안논산고속도로 논산 방향 266km 지점에서 발생한 연쇄 추돌사고로서, 총 8중 추돌사고입니다. 금호고속 소속의 고흥발 서울행 고속버스가 정차 중이던 차들을 그대로 추돌했습니다. 버스에 직접적으로 추돌당한 1세대 싼타페는 처참하게 부서졌고, 차량에 탑승한 40대 부부가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고속버스는 싼타페를 추돌한 뒤에도 앞에 있었던 QM3 차량과 혼다 어코드를 밀어버리면서 다른 차량들도 크게 파손되었습니다. 현장은 정말 참혹하고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6  경부고속도로 양재IC 7중 추돌사고

원인 졸음운전

인명피해 사망2명 부상10여 명

2017년 7월 9일 오후 2시 45분에 경부고속도로 서울방향 양재IC 인근에서 오산교통 M5532번 버스가 기아 K5 차량을 포함한 승용차 7대를 들이받은 사고입니다. 공개된 버스 내부 CCTV 영상에 따르면 사고 버스의 기사는 졸음운전으로 인해 사고 직전까지도 전방의 정체를 인지하지 못했고, 그대로 멈춰있던 차량들을 추돌했습니다.

 

 

버스의 속도가 빨랐고 기사도 사고 직전까지 앞에 차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해 처음 부딪힌 K5 차량은 매우 심하게 파손되었으며, 1차로까지 밀려났습니다.


5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연쇄 추돌 사고

원인 졸음운전

인명피해 사망4명 부상37명

2016년 7월 17일 오후 5시 54분에, 영동고속도로 인천방향 평창군 봉평터널 입구에서 발생한 연쇄 추돌사고로 버스가 졸음운전으로 1차로에서 앞에 정차되어 있는 K5를 그대로 받아버리고 버스가 K5 차량 위로 올라타버리며 그 앞에 정차하고 있던 Q5, 그랜저, SM5, 5시리즈 GT 까지 연쇄 추돌하였습니다.

 

 

버스 바로 앞에 있던 K5 승용차에 탑승한 20대 여대생 4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K5 승용차 운전자는 중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습니다. 버스 기사 방 모는 코뼈 골절 등의 가벼운 부상을 입었습니다. 충격적인건 추돌 당시 버스의 속력은 무려 105km/h였습니다.


4  서해안 고속도로 17중 연쇄추돌

원인 짙은 안개

인명피해 사망1명 부상14명

2016년 1월 3일 오전 8시20분쯤 충남 홍성군 광천읍 서해안고속도로 서울방면 광천나들목 부근에서 발생한 17중 연쇄 추돌사고입니다. 당시 충남 지역에는 오전 7시를 기해 가시거리 40~140m의 안개 예보가 내려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짙은 안개속에서 쏘나타가 첫 사고를 낸 뒤 뒤따르던 차량들이 감속하지 못해 8중, 3중 추돌사고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8중 추돌사고의 5번째 운전자가 사고 수습을 위해 도로위에 나섰다 다른 차량에 치이면서 2차사고까지 발생하였습니다.


3  중앙고속도로 43중 연쇄 추돌

원인 눈길, 안전거리 미확보

인명피해 부상23명

2015년 1월 16일 오전 10시 17분경, 횡성군 공근면 인근 중앙고속도로 부산방향 구간에서 발생한 사고입니다. 사고 당일 해당구간에는 약 3mm의 눈이 내렸으며, 안개로 인해 시야도 제한된 상황이었습니다. 사고 구간을 운행중이던 승용차 1대가 눈길에 미끄러지며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회전하면서 재차 중앙분리대를 충격한 후 1차로와 2차로에 걸쳐지며 정지했습니다.

 

 

승용차의 탑승자들은 사고후 차에서 내려 황급히 갓길을 이용해 회피하던 도중 다른 차량이 또다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멈춰서면서 후속 차량들이 연쇄적으로 추돌하였습니다. 사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구조대, 견인차 등이 접근하여 사고수습을 하는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후방에서 추돌사고가 연이어 발생하였습니다.


2  영종대교 106중 추돌사고

원인 안개, 과속, 안전거리 미확보

인명피해 사망2명 부상130명

2015년 2월 11일 오전 9시 39분쯤 영종대교 상부도로 서울방향 3.8km지점에서 발생한 106중 연쇄 추돌사고입니다. 관광버스가 앞서 가던 검은색 쏘나타 승용차를 들이받은 것을 시작으로 뒤따라오던 차량들이 연쇄적으로 충돌하면서 발생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사고의 규모와는 반대로 사망자가 2명으로 사망자의 존재 자체는 안타까웠지만 생각보다 적게 나온 사건이기도 합니다. 2명중 1명의 사망자는 회색 스타렉스운전자인데 안개때문에 앞을 못 보고 앞에 있던 트럭을 추돌하면서 운전자가 숨지게 되었습니다.


1  서해대교 29중 연쇄추돌

원인 안개, 과속

인명피해 사망12명 부상49명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는 2006년 10월 3일,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 구간 상행선에서 일어난 최악의 교통사고입니다. 당시 서해대교에는 안개가 매우 짙었기에 서해대교 입구 전광판에 '안개 조심'이라는 경고가 떴으나 1차 추돌사고를 일으킨 25톤 트럭이 전방이 보이지 않아서 서해대교를 빨리 빠져나가기 위해 과속을 하다 앞서가던 1톤 트럭을 미쳐 발견하지 못하고 추돌하면서 사고가 시작되었습니다.

 

잠시 뒤 화성의 김치 공장으로 출근하는 근로자 10명을 태운 통근 승합차가 25톤 트럭과 추돌하였고 잠시 뒤 승합차 뒤로 승용차가 사고현장을 발견해 급히 제동을 걸어 멈추었지만, 승용차 뒤를 따라오던 택시가 미처 현장을 발견하지 못하고 승용차를 들이박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승용차 2대가 또 추돌하였습니다.

 

 

이때 운전자들은 안개 때문에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일단 밖으로 나왔는데 잠시 뒤 1차로로 달리던 트레일러가 밖으로 나온 사고 차량 운전자를 발견하고는 브레이크를 밟은 뒤 콘크리트 방호벽과 부딪혔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서울로 가던 고속버스가 트레일러와 추돌하였고 3차로를 달리던 또 다른 1톤 트럭이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2차로를 달리던 시멘트를 실은 탱크로리가 1톤 트럭과 사고현장에 있던 차들과 추돌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뒤를 대형트럭 2대가 각각 2차로와 3차로에 있던 차들을 추돌하고 그러고 나서 또 다른 탱크로리가 2차로에 있던 차들과 추돌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고 여파로 화물차의 엔진이 튀어나오면서 시멘트를 실은 트럭 밑에 깔리는 바람에 폭발해 순식간에 대형화재가 발생하면서 사고차량들과 운전자들을 휩쓸어 버리기 시작했고 불이 난 사고 차량을 발견한 차들이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추가 추돌사고가 발생하면서 29중 추돌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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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는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 중 하나입니다. 고속도로에서 차량 결함으로 발생한 사망사고의 63%가 타이어 관련일 정도입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전국 고속도로에서 타이어 파손으로 일어난 사고가 476건이나 되며 50명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최근 일부 고급 수입차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런플랫 타이어(Run-flat Tir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요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ZP : 공기압이 전혀 없는 상태)

 런플렛 타이어는 무엇인가?

주행 중 손상에 의해 타이어 내의 공기압이 제로가 되어도 80km/h의 속도로 100km 전후 거리의 주행이 가능한 타이어를 런플랫 타이어라고 합니다. 타이어 옆 부위에 강도가 센 특수고무를 덧대어 타이어 내부에 있던 공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더라도 타이어 외형을 유지하면서 주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런플렛 타이어는 기술적으로는 단순하기 때문에 지난 1930년 대에 첫 선을 보였는데 당시에는 험로를 다니거나 타이어의 손상이 발생할 수 있는 전장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군용 차량이나 특수 차량 그리고 방탄 차량 등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런플렛 타이어의 다른 장점은?

타이어 손상을 대비하여 적재공간까지 차지하는 스페어 타이어를 갖고 다닐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또한 그만큼 연비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둘째 주행 중 타이어가 펑크나면 도로 위의 위험한 환경에서 타이어를 교체해야 하거나, 보험회사 긴급출동 서비스를 이용하는 등 번거로움이 사라집니다.

 

 런플렛 타이어의 단점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런플렛 타이어는 일반 타이어에 비해 가격이 비쌉니다. 통상적으로 같은 사이즈일 경우 30%이상 비싸고 사이즈가 일반 타이어처럼 다양하지 못합니다.

 

둘째 런플랫 타이어는 펑크가 나도 계속 주행이 가능하다는 큰 장점이 있지만 펑크가 난 상태로 주행하게되면 타이어 측면의 손상은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일반 타이어 경우 측면이 손상되지 않으면 수리를 통해 그 후에도 사용할 수 있지만 런플랫 타이어는 교체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셋째 런플랫 타이어는 일반 타이어에 비해 승차감과 소음이 좋지 않아 많이 외면받아 왔습니다. 그래서 요즘 많은 회사들이 런플랫 타이어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런플랫 타이어 3세대는 약 120%의 무게까지 줄어들었고 승차감도 상당히 개선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4세대가 개발중이나 점차 나아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론

‘펑크가 나지 않는 타이어’로 안전성과 편의성이 강조된 제품이지만 국내에서는 사실 수요가 제한적이었습니다. 위급상황에서 이동하는 물리적인 거리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짧을 뿐 아니라 견인서비스 망이 촘촘하게 구축돼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고속도로 2차 사고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해준다는 장점때문에 수요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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