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1982년 2월 5일, 육군특수전사령부 제707특수임무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장병과 공군 장병들이 갑작스럽게 동원되었습니다. 이유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다음날인 2월 6일 제주공항 신활주로 건설 준공식에 참석하자 이의 경호, 일명 '봉황새 작전'의 수행을 위한 것으로 C-123 수송기 3대가 출격 투입되었습니다.

 

 

 

그러나 출발지인 서울공항은 물론 도착지인 제주공항 역시 눈이 내리는 악천후로 곤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강설로 인해 성남 서울공항 통제국은 모든 항공기 이륙을 통제했고, 제5전술공수비행단에서조차 이륙이 불가능하다는 보고를 2번씩이나 했습니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이륙이었습니다.

 

 

문제는 C-123 수송기 중 한대의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이에 공군기가 출동해 제주해역에 대한 수색작업을 실시하였지만 바다를 샅샅이 뒤져도 비행기 잔해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제주 근해에 대한 수색에서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한라산에 추락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래서 한라산 일대에 대한 수색이 시작되었습니다.

 

▲추락한 C-123 수송기 잔해

 

결국 다음 날인 2월 6일 오후 4시경 한라산 해발 1,060m 지점 동탐라계곡과 서탐라계곡 사이의 작은 골짜기인 개미등 부근에서 추락한 기체가 발견되었습니다. 구조대가 도착했을 당시 사건현장은 수송기 파편들이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고로 53명의 군인들이 전원 사망하였습니다. 당시 수송기가 추락하면서 대원들이 지니고 있던 수류탄과 폭약들도 함께 폭발했었습니다.

 

▲당시 특전사령관이 707대대장에게 봉황새 박전을 대간첩 침투작전으로 훈련 명칭을 변경하라고 보낸 메시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 전쟁을 제외하고 평시 작전 중 군인들이 한꺼번에 사망했던 이 사건은 매우 큰 사건이었지만 단순기사거리로 취급되었습니다. 국방부는 "지난 5일 오후 3시께 제주도지역에서 대침투작전 훈련중이던 C-123 군용수송기 1대가 악천후로 한라산 정상 부근에 추락, 이 수송기에 타고 있던 육군과 공군 장병 53명 전원이 순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공식발표하였는데 대통령 경호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었으며 훈련중 사고였다는 점만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사고로 숨진 장병들이 속해있던 육군 쪽 인사들은 이 사고의 책임을 지기는 커녕 이 사건 이후에도 승승장구했습니다.

 

 

수송기가 추락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 지점에는 추락 지점을 알리는 원점비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해 5월 15일에는 당시 특전사령관과 군 관계자, 유족들이 모여 충혼비를 세우면서 불의의 사고로 산화한 젊은 넋들을 위로했습니다. 문제는 원점비 비문에는 당시 사고가 대침투 작전 중 벌어진 일이라고 쓰여있었습니다. 

 

 

 

이후 유족들에게 당시 사고로 인한 법정 보상금 약 2,500만원 정도씩 지급되었고 대통령의 한마디 사과도 없이 사건은 종결되었습니다. 유족들은 이후 오랜기간 동안 군당국의 엉터리 조사와 사후처리에 항의하고 정권이 바뀔때마다 국회 및 청와대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검찰에 당시 지휘관들을 고소하기도 하면서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현재는 사고지점인 관음사 주차장 옆에 충성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여기에 추모비가 세워져 있어 1년마다 추모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시된 당시 사고기의 잔해가 이 사고가 얼마나 끔찍한 사고였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주에 훈련을 오는 특전사 부대들은 항상 충성공원을 찾아 신고식을 겸한 추모행사를 갖고 있으며 현충일이나 국군의 날, 명절 때에도 빠짐없이 참배하고 있습니다.

 

 

이 봉황새 작전은 기상상태도 고려치 않고 작전을 무리하게 감행해 앞날이 창창했던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안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이 땅의 군인으로 살다가 숨진 이들에 대한 진실 규명과 진정한 사과가 이루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