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 지휘부가 정말로 두려워 했던 것은 자신들이 더이상 북쪽으로 후퇴할 곳이 없다는 상황이 아니였습니다. 또한 미군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미국이 베트남을 절대 집어삼키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당시 자신들과 전쟁을 하던 미군보다 베트남 위에 위치한 중국군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베트남을 침공, 병합하여 1천여년 간 지배하였으며 또 다시 베트남에 쳐들어와서 20여년 간 통치한 끝에 쫓겨나긴 했지만 언제나 베트남의 종주국 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런 중국이 만약 자신들을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베트남 전쟁에 전면개입을 한 다음 자국 영토라고 우기면서 강제합병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1979년 2월 17일, 중국이 5개 사단, 10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베트남을 전면 침공

 

베트남이 친중국노선을 걷던 캄보디아를 침공하자 중국이 발끈하여 1979년에 중월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물론 소련의 압박을 의식한 중국의 일방적인 전쟁 포기로 끝났지만 그 이후에도 1990년대까지 계속 국경에서 산발적인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평화조약을 맺었지만 중국이 지켜준다는 보장은 절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베트남은 중국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2014년 5월 2일 중국은 파라셀 제도 인근에 10억달러짜리 석유시추 장비(해양석유 981)를 설치하였습니다. 중국은 자원개발 자체보다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속셈이 컸습니다. 여기에 베트남은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중국이 불법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였지만 중국은 파라셀 제도는 중국의 고유한 영토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사실 파라셀 제도는 매우 작은 섬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거주하지 못하지만 매장된 자원의 경제적 가치는 엄청난 산호초의 작은 섬으로 사실 베트남 영토였지만 베트남 전쟁 중이던 1974년 1월 19일에 중국이 이 곳을 점령했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베트남과 중국, 대만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에 화가 난 베트남은 초계함을 현장에 보내어 중국에게 장비 철수를 요구했으나 중국은 함정 3척을 보내서 베트남 선박을 들이받고 물대포 등으로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5월 7일 중국은 항공기와 헬리콥터를 보내어 베트남 측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이런 양측의 충돌은 5월 12일까지 계속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베트남 경비대원 9명이 부상을 입고 선박 8척이 파손되었습니다.

 

 

베트남 경비대원 부상 소식을 들은 베트남 시민들은 5월 10일 하노이의 중국대사관 앞에서 100여 명이 격렬하게 항의를 시작하였고 다음 날인 5월 11일 베트남 중부 후에, 다낭에서 수천 명 규모의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5월 13일이 되자 베트남 남부 빈즈엉 성 산업공단에서 약 2만 명이 시위를 벌이는 등 시위 규모가 커지면서 시위 참가자들은 한자 간판이 붙어 있는 기업을 중국 국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로 시위를 엄격히 통제해 왔으나 이 시위는 베트남 정부가 분노한 국민들을 고려하여 시위를 허용하였습니다. 이 시위 기간동안 베트남 해커들이 며칠에 걸쳐 중국 정부 홈페이지 여러 곳을 공격하여 중국 기업 홈페이지에는 베트남 국기가 휘날리는 이미지 등으로 바뀌는 상황까지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자국을 떠나 세계에 퍼져 있는 베트남 인들은 여러 나라에서 중국을 규탄하는 시위를 전개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종로구와 부산, 광주 등에서도 중국 규탄 시위를 열렸습니다. 홍콩에서는 베트남 교민 50명이 혈서를 쓰고 시위를 하였으며 독일, 일본, 미국에서도 베트남인들의 시위는 멈춰질 줄 몰랐습니다.


 

이후 과열된 시위로 인해 베트남에 있던 중국 공장들은 불타기 시작하였으며 결국 베트남 근로자 4명, 중국인 16명이 사망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사태가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해지자 중국은 5월 18일 베트남에 머무르고 있는 중국인 3,000명을 본국으로 귀환시켰으며 5월 19일 1만 톤급 대형 선박을 파견하여 중국인 4천 명을 추가로 본국으로 귀환시켰습니다.

 

 

그렇게 반중시위가 잠잠해지는 듯 했지만 5월 26일 파라셀 제도 부근 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베트남 어선 1척을 중국 어선 40여 척이 둘러싼 뒤 들이받아 침몰시키면서 잠잠해지던 반중시위에 또 다시 불을 지피게 되었고 이에 중국은 7월 16일 꼬리를 내리고 파라셀 제도 인근에 설치했던 석유시추설비의 임무가 완료돼 철수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후 베트남 발표자료에 따르면 시위가 발생한 5월 베트남을 방문한 중국인 수는 전년도 동월에 비해 29.53 퍼센트 감소했지만 상반기 외국인 부동산 투자액은 전년도 대비 65 퍼센트 증가하였고 국가 전체 경제성장률 또한 외국인들의 지속적인 직접투자와 제조업 부문의 수출호조로 안정적 수치를 기록하였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당당하게 맞서는 베트남을 상대로 중국은 절대로 가벼이 보지 않고 있습니다. 이게 불과 4년도 지나지 않은 사건입니다. 현재 베트남인들은 프랑스와 미국, 중국을 몰아낸 강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이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