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4 팬텀이 한국에서 전투기 그 이상 의미를 갖는 이유
1960년대 후반 당시 북한 공군은 15분내 150대 전투기를 전기지에서 비상출격 할 수 있었고, 레이더 기지를 포함한 완벽한 방공망을 구축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군은 보유기 숫자상 북한의 절반수준으로 주력 전투기로 F-5 A/B 프리덤 파이터와 F-86 세이버 전투기로 겨우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일본과 대만도 이미 저공에서는 거의 따라올 비행기가 없을 정도의 고속성능을 지닌 F-105 스타파이터를 운용하고 있는 상황이였습니다.
1968년 초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사건과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납북사건이 동시 터지면서 한반도내 위기가 고조되자 미 사이런스 밴스 특사가 방한하면서 팬텀 전투기 도입에 대한 이야기가 흘렀습니다. 그리고 4월 18일 호놀룰루에서 개최된 한·미 정성회담에서 대북 즉각보복문제를 주장하였고 5월 28일 34대의 팬텀 전투기(F-4D 블록 26~28)의 연내도입에 합의 하게 되면서 우리나라에도 당시 최강의 전투기 팬텀을 운용하게 되었습니다.
1969년 그렇게 우리나라는 당시 최강의 기종인 팬텀을 미국과 영국 그리고 이스라엘에 이어 4번째로 보유하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최신예 전투기를 보유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단 시간내에 팬텀을 도입한 배경에는 우리군의 베트남 파병이 주효했습니다. 앞서 우리나라는 미국의 요청으로 1964년 4월부터 파병을 시작해 1973년 3월까지 8여 년 동안 총 34만 여 명이 참전해 많은 전과를 올리고 있었고 우리정부는 팬텀 도입협상을 위한 카드로 베트남 철군을 뽑아 들었습니다. (베트남 파병에서 전사한 한국군은 5,066명이었습니다.)
사실 당시 팬텀의 대당가격은 1947년에 선보인 F-86의 22만달러보다 10배 이상 되는 240만달러로 구매할 여력을 지닌 나라가 많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당시 우리나라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210 $ 수준이었습니다. 만약 머나먼 베트남에서 피땀을 흘린 군인들이 없었다면 한국군 무기현대화는 물론, 최신예 전투기 F-4 팬텀을 도입하는데 더 많을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팬텀은 우리나라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전투기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후 팬텀 전투기를 운용하기 위해 우리 공군은 1970년대 말까지 팬텀 작전준비태세를 완비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조종·정비·무기 등 각 분야 요원 112명을 미국에 급파해 자제적 운용을 위한 준비에 나섰고 1969년 8월 29일 6명이 태평양을 건너 대구기지로 직접 팬텀을 몰고 오면서 제151전투비행대대(팬텀대대)가 창설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팬텀으로 동북 아시아 최강의 항공전력을 보유하게 되자 깜짝 놀란 일본도 1970년 도입을 결정해 1973년에 F-4D보다 더욱 개량된 최신형 F-4E 팬텀를 도입하기도 하였습니다.
1974년 미국이 베트남전 패망 이후 "아시아 국가의 안보는 아시아 국가의 책임"이라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고 주한 미군 감축 논의가 급진전되자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서 자주국방을 이룩하자는 방위성금 모금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났고 단 시일내 163억원이라는 큰 돈이 모아졌습니다. 그리고 163억원에서 65억원으로 1975년 12월 12일 5대의 F-4 팬텀 전투기를 방위성금헌납기로 추가 도입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1989년까지 총 80대가 도입돼 조국 영공방위의 최일선을 누비며 1983년 구 소련 TU-16, 1984년 구 소련 TU-95 및 핵잠수함, 1985년 부산 앞바다 간첩선, 1998년 동해 출현 러시아 정찰기(IL-20) 식별·요격 등 눈부신 전과를 올렸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가장 마지막 생산된 팬텀 전투기인 5,057번째 기체가 우리 공군에 있습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F-4 팬텀 전투기는 방위성금헌납기라는 이미지가 강하며 국민들 관심이 많이 받아서 방위성금헌납기 프라모델도 한정 수량으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잠시 방위성금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방위성금은 1973년 10월부터 모금이 시작돼 1988년 8월 폐지될 때까지 약 15년 간 국민과 기업체, 해외 동포 등으로부터 약 609억 원이 모금되었습니다.
당시 모금된 방위성금은 F-4D 팬텀기와 500MD 헬리콥터 구입 및 한국형 장갑차 개발 등 군사장비 보강에 257억 원, 군사시설 보강에 119억 원, 방어진지 구축에 6억 원, 예비군 전투력 보강 2억 원 등 총 465억 원을 사용하였고 약 144억 원은 군사전투력 증강사업에 계속 투자되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애써 모은 방위성금에 관련된 고위층의 부정부패 등이 발생하면서 1988년 9월부터 폐지되었습니다. 참 아쉽습니다. 지금도 북한이 지속적으로 도발을 하고 있고 다시 한 번 국방력 강화에 힘을 모은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당연히 방위성금이 부활한다면 투명성이 확보되고 성금 부정 유용 시 강력한 처벌이라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천안함 46용사인 고 민평기 상사 모교인 충남 부여고등학교에 고 민평기 상사의 흉상
최근 가장 기억남는 방위성금은 연평도 도발 사건 당시 걸그룹 티아라가 방위성금 2천만 기탁했던 것과 천안함 침몰 사고로 전사한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가 청와대에 "이런 일이 또다시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 1억원이 적지만 무기구입에 사용해 우리 영해, 영토에 한 발짝이라도 침범하는 자들을 응징하는 데 사용해 달라"며 1억원의 방위성금을 기탁한 일이 기억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렇게 소중한 팬텀 전투기는 우리 공군에게 여전히 중요한 자산으로 지금 현재도 청주에 위치한 제17전투비행단에서 우리 공군의 핵심전력으로 영공방위를 위한 비행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F-15K가 도입되면서 함께 들어온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인 슬램ER 이전까지는 팬텀의 팝아이 미사일이 항공 타격력으로는 유일하게 평양까지 폭격할 수 있는 무기였습니다.
팬텀 전투기가 도태되는 2019년이 되면 제17전투비행단은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됩니다. 도깨비들이 떠나고 번개돌이가 자리 잡게 됩니다. 차기 전투기로 낙점된 최신예 스텔스 F-35A 라이트닝II 전투기가 팬텀 전투기의 화려한 역사를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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