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서열 22위 역대 최고 거물 간첩 이선실의 최후
1990년대 최대 간첩사건인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 당시 사건의 장본인은 거물 남파간첩 이선실(여·1916년생)이었습니다. 반세기에 걸친 남북 첩보사에서도 그는 가장 완벽했고, 또 드라마틱한 인물로 기억됩니다. 약 30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공작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실수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선실은 1990년대 남파공작원 중 최고위급으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을 지냈습니다. ‘남한 내 합법적인 북한 전위정당을 구축한다’는 목표로 일본에 건너간 뒤 1980년 재일교포 ‘신순녀’로 신분을 위장하고 남한에 침투했습니다. 이후 남한과 일본을 오가며 민중당 대표를 맡고 있던 간첩 김낙중, 중부지역당 총책 황인오 등 400여명을 포섭해 북한을 지지하는 대중정당과 지하당 구축을 시도했습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1992년 이 사건을 조사해 이선실과 협력한 김낙중, 손병선 등 124명을 검거했습니다. 하지만 이선실은 사건이 불거지기 전인 1990년10월 17일경 강화도 해안에 대기 중이던 반잠수정을 타고 북한으로 귀환하면서 공작원으로서의 30년 활동을 화려하게 마무리했습니다.
그렇게 북한에 복귀한 이선실은 영웅이었습니다. 이선실은 북에 북귀 직후 자신의 30년 공작원 세월을 뒤돌아 봤는지 평양 김일성 동상 앞에 서서 한동안 깊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북한의 영웅이 된 이선실은 김정일로부터 공화국 2중영웅, 국기훈장 1급, 조국통일상을 수여받았고, 북 통일전선부 산하 대남연락소 남파간첩 교육을 담당하며 공작원 양성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는 돌연 자신의 전공과는 거리가 먼 당 경공업부로 배치됩니다. 경공업부 책임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였습니다. 이선실의 불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데 오랜 기간 자본주의 사회에서 활동했던 그에게 있어서 공화국의 현실은 처참했습니다. 그녀가 경공업부에 배치됐을 때, 북한은 집단 아사사태를 야기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상부에 외자유치와 개혁개방을 주장했는데 김경희를 비롯한 지도부의 눈에는 곱게 받아들여질 리 만무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북한에 ‘심화조 사건’이 터졌습니다. 심화조 사건이란 1996~1999년 사이 발생한 사상 검증 대학살 사건입니다. 심화조 사건은 단순한 사상검증 사건이 아니고 김일성 사후 김정일로 권력이 이양되는 혼란기, 공포를 통해 권력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기획되었는데 해당 기간 동안 당의 본류에 벗어난다는 명목으로 당 인사 2만 5000명이 제거되었습니다.
주동자는 공교롭게도 김정은 권력이양 시기 죽음을 당한 장성택 당시 당 부부장이었습니다. 장성택은 자신의 최측근 채문덕 사회안전성 정치국장을 앞세워 이러한 광란의 살육을 자행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영웅이었던 이선실은 심화조 사건 말미였던 1999년 ‘간첩’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미제의 간첩으로 남한의 지하조직을 파괴하고 내부(북한)를 와해시키기 위한 임무를 띠고 침투된 자.’
일평생 북한을 위해 남한의 지하조직을 공고히 한 공으로 영웅이 된 그녀의 혐의는 간첩이었고 이선실은 당시 여든을 훌쩍 넘긴 노파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처형이 아닌 고문 중 사망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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