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일본의 나가토급 전함 2번함인 무츠가 건조될 당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한창 진행중이었습니다. 당연히 영미 측에서는 무츠를 폐기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로 인해 당시 막 완성된 나가토급 전함 나가토와 메릴랜드는 해당사항이 없었으나 그외는 모두 폐기하거나 다른 함선(대부분 항공모함)으로 용도변경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조약에 따라서 16인치(406mm)포를 장착한 전함은 전 세계에 딱 2척인 일본의 나가토와 미국의 메릴랜드만 남게 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거함거포주의적 시각에서는 나가토를 실제 작전에 쓰려면 전대를 구성할 동형함이 1척은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일본 해군에게는 이미 투입한 돈과 자재와 인원이 아까웠으며 사실 무츠는 거의 완성직전으로 의장공사만 끝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그래서 일본 해군은 해군병원에 입원한 장병들을 무츠의 의무실로 옮긴 다음에 이미 취역해서 활동중이라고 주장하였고 어쩔 수 없이 영국과 미국도 일본 전함 무츠를 인정해주었습니다.

▲미국의 콜로라도급 전함


그 대신 미국과 영국은 일본이 무츠를 보유하였으니 자신들도 16인치급 주포 실은 전함 두 척씩 더 건조한다고 제안하였고 일본도 허락하였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넬슨급 전함 2척을 신규로 건조할 권한을 얻었고, 미국은 이미 건조중인 콜로라도급 전함 4척중 이미 조약으로 생존이 언급된 메릴랜드 외 2척을 추가로 완공해서 총 3척을 보유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의 넬슨급 전함

 

결론적으로 일본 해군은 무츠 1척을 가지려고 가상 적국들에게 40cm급 주포 탑재 전함 4척을 준 것입니다. 아마 일본 해군은 자신들의 우월한 전략전술과 개함전투력으로 그정도 숫자의 차이는 극복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렇게까지 무리한 제안은 아니었는데, 해당 시점에서는 일본은 16인치 주포 탑재 고속전함을 2척이나 바로 전쟁에 투입할 수 있는 상태로 보유해서 압도적인 우위에 서지만, 미국은 동급 주포를 갖추었으나 속도가 크게 느린 전함을 건조중단 상태에서 계속 공사를 추가로 더 진행한 후에야 2척 더 보유할 수 있게 된 것이고, 영국은 아예 설계도도 없는 상황에서 16인치 주포 탑재 전함을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그래서 나온 것이 넬슨급이였습니다.

 

 

한마디로 일본은 저 4척이 취역할 때까지는 전함 전력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겨우 그 몇년동안 1척의 우세를 더 차지하겠다고 4척이나 되는 전함을 만들게 둔 것은 지나치게 단기적 관점만 가지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무츠는 미국과 영국의 전함 4척이 현역에 취역하기 전이나 그 뒤에나 제대로 실전에 투입되지 못했습니다.

 

 

무츠는 1943년 6월 8일, 히로시마 하시라지마(柱島)에 정박했다가 오후 12시 10분쯤에 갑자기 폭발과 같이 침몰해버렸고, 승조원 1,474명 가운데 353명만 생존했습니다. 그 원인으로 여러가지가 제기되었는데 연합군 잠수함에 의한 기습, 스파이에 의한 파괴공작, 탄약고 내의 자연발화, 폭뢰폭발설 등이 있었습니다.

 

 

▲침몰 후 수십년 뒤에 건져낸 무츠 주포탑

 

결국 무츠가 침몰한 원인은 3번 포탑 내 탄약고에서 난 불이 탄약고를 유폭시킨 것으로 결론이 났으나, 화재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존재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찾지 못했습니다. 탄약고 하나에 불이 붙었다고 거대한 전함이 침몰할 수 있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전함의 주포탑에는 탄약고가 집중배치되어서 내부에는 수백kg 이상의 작약과 주포탄이 수백발이나 적재되었으며, 주포탄을 발사할 장약도 대량으로 적재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주포 탄약고에 불이라도 나면 그야말로 거대한 전함이 두쪽 날 수준의 위력이 충분히 발휘합니다.


일본군은 처음에는 무츠를 인양해서 수리 후 재취역하려고 했고, 공사기간도 3개월 정도면 다시 전력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포탑 폭발로 굉침한 선체가 멀쩡할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쟁기간중에는 무츠는 방치상태로 버려졌으며, 전쟁이 진행될수록 연료가 매우 부족한 상황에 이르자, 1944년 7월에 무츠의 연료 탱크에서 중유를 600톤 정도 회수했습니다. 태평양 전쟁이 일본의 패전으로 끝난 후, 1948년에 서일본 해양산업 주식회사라는 업체가 무츠에 탑재된 물자나 고철을 회수할 목적으로 인양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원래 허용범위를 초과하는 무리한 작업끝에 사고가 발생해서 작업이 중단되었습니다.
 

 

▲해양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무츠의 주포


그래서 본격적인 인양은 1970년에 후카다 구조 건설공사 주도로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때 함수의 일부와 주포탑 등의 무장 일부, 승무원의 유품등을 인양했습니다. 인양작업의 초창기에는 1500t 크레인으로 함미도 인양하려고 했으나, 와이어가 끊어지는 등의 사고로 인해 포기했고, 다시 시도한 끝에 1971년 3월 15일에 함미부분도 인양했습니다. 동시에 4번 주포탑도 인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