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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후에 상륙한 10군단을 워커 8군(낙동강 방어선) 밑으로 넣지 않고 그대로 경쟁시키며 진격을 지시하였습니다. 그렇게 10군단은 동부전선, 8군은 서부전선으로 나뉘어 진격하다가 중공군의 대대적인 역습에 큰 피해를 입고 서울을 다시 내주게 됩니다. 일선 지휘관들은 중공군이 이미 들어와 있다는 경보를 계속 울렸지만 최고사령부가 완전히 무시했고 중공군의 포위망 안으로 병력을 밀어넣는 오판을 하고맙니다. 그 중에서 가장 참담했던 장진호 전투 그리고 전멸당하고도 언급조차 안되는 부대 이야기입니다.

 

 

 

위 그림을 보시면 한국전쟁 당시 최정예 미 제1해병사단이 중공군의 포위망 안에 들어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진호에서 해병부대만 중공군의 공격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미 제7 보병사단 기동부대 맥클린은 군단의 우익을 방어했지만 그들의 운명은 잘 알려지지않았으며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이 없습니다.

 

 

장진호 전투에서 붉은 색 화살표가 있는 지역이 맥클린 기동부대의 위치입니다. 이 부대는 포병, 대공포와 차량을 갖춘 3개 대대, 총 3,200명의 병력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맥클린 기동부대는 해병대에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해병대는 2차대전을 겪은 역전의 용사들인 반면에 맥클린 기동부대는 훈련이 되지 않은 병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해병대는 방한복을 잘 갖춰입은 반면에 맥클린 부대는 영하 30도 아래의 기온에서도 면군복을 입어야 했습니다.

 

(왼쪽이 맥클린 대령, 오른쪽이 페이스 중령)
맥클린 부대는 1950년 11월 27일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정찰소대를 내보냈는데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날 밤, 중공군 사단병력이 산개된 방어선 안으로 쏟아져들어왔습니다. 첫날밤 전투에서 100명의 병사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튿날 맥클린은 모든 병력을 불러들였고 페이스 중령에게 퇴각로인 방어선 남쪽을 보강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페이스는 남쪽으로 이동하던 중에 얼어붙은 장진호 반대편의 사격을 받았습니다. 그와 부대원은 대응사격을 했지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맥클린은 아군의 오인사격이라고 생각하고 얼음판 위로 달려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중공군의 사격을 받아 쓰러졌고 중공군이 와서 쓰러진 그를 끌고 갔습니다. 그러면서 맥클린 부대는 페이스 부대가 되었습니다. 새 지휘관이 된 페이스 중령은 방어선을 제대로 정비하고 해병 전폭기의 화력지원과 탄약보급을 받으며 버텼습니다. 그렇게 버티면서 지원군을 기다렸지만 후방의 모든 부대가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포위된 페이스 부대는 이제 자력으로 장진호에서 빠져나가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페이스는 부상병을 트럭에 싣고 후방으로 향하는 위험한 길에 나섰습니다. 얼어붙은 장진호를 건널 것인지 아니면 꼬불거리는 산악로를 따라 내려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페이스 중령은 장진호의 얼음이 너무 얇아서 트럭이 건널 수 없다고 보고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개활지에서 몸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는데,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바로 중공군의 매복 공격을 받았는데 중공군과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전투를 벌이다 보니 지원을 나온 미 전폭기가 아군과 중공군 사이에 네이팜탄을 터뜨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온몸이 화염에 뒤덮인 병사들이 땅에 구르고 동료들이 불을 끄려고 했지만 인화물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트럭은 부상자로 가득찼고 규율이 무너지면서 장진호로 도망치는 병사들이 속출했습니다.

 


밤이 되자, 페이스 중령은 퇴로에 사격을 퍼붓고 있는 고지 1221을 점령하고 퇴로를 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페이스 중령은 총을 쥘 수 있는 부상병까지 모아 고지로 올라가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렇게 고지로 올라간 병사들은 중공군을 몰아내는데 성공했지만 당황스럽게도 돌아오지 않고 산을 넘어 남쪽으로 향했고 페이스 부대의 나머지 병력과 트럭은 그대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밤 전투 그리고 병력이탈로 전력이 크게 약해진 페이스 부대는 날이 새면서 중공군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중공군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버려지는 트럭이 늘어갔고 갈수록 도로봉쇄망이 두터워졌습니다. 버려진 미군전차로 중공군이 막고있는 도로를 도저히 뚫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페이스 부대의 최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밝으면서 중공군은 얼마 남지 않은 페이스 부대에게 달려들어 트럭 안에 수류탄을 던져넣고 나머지 병사를 죽이거나 포로로 잡았습니다. 이제 남은 탈출로는 장진호 얼음판이었습니다. 동상에 걸린 병사들이 얼음 위로 기어갔고 반대편 해병대가 달려와서 그들을 구조하는데 성공하였고 결국 3,200명 중 겨우 385명이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페이스 부대의 비극과 분투는 많은 시간이 흘러스 재조명되었으며 1999년 페이스 부대에 훈장을 수여했고 2000년에는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가 해병대의 초대를 받아 장진호 전투 행사에 참석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자료에서 그들의 희생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