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쎈돌 이세돌] 2편 시작한다!!
 

이세돌 九단

지난 1편에서
이세돌은 첫 세계 대회 결승전이었던 
'LG배 세계 기왕전 결승 5번기'에 진출했다

사실 이 LG배는 이세돌에게 여러가지 의미로 뜻깊은 대회야

 

96년 입단 직후 LG배 창설기념 조훈현 九단과의 기념대국 장면
정선(백에게 덤이 없는 일종의 접바둑)으로 조훈현과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당시 바둑팬들이 가장 기다렸던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라섰던 이창호와 32연승을 달리던 
'무패소년' '리틀 조훈현' 
이세돌의 첫 세계 타이틀 전
 

 

LG배 결승 5번기 제 1국

이세돌은 이 대결 직전까지 파죽지세의 기세를 보이고 있었어
결승전에 올라오기 까지 
중국의 창하오, 루이나이웨이, 저우허양을 연달아 꺾고 결승전에 진출하며
"내 적수는 이창호 사범님 밖에는 없다.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내가 더 센것 같다."라며
당시 신예 바둑기사로서는 파격적인 도발을 하며 
바둑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있었지

하지만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돌한 신예의 패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반면 이창호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던 스승 조훈현의 시대를 종식시키며
92년도 부터 최연소 세계 챔피언에 올랐어
수 많은 타이틀을 따냈고 
2000년
세계 최강의 등용문, 응씨배 마저 거머쥐며 
이창호가 패도를 걷고 있던 시절
그의 앞길은 어떤 문으로도 가로막혀 있지 않아 보였다 

당시
이세돌은 '뛰어난 유망주'
이창호는 '최강의 일인자'
승부는 뻔해보였어
누가봐도 이창호의 압승이 유력한 상황
이세돌은 첫 세계대회 결승전에 진출한 것 만으로도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었지

하지만 이세돌은 그 정도에 만족하는 기사가 아니었다는 게 문제야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이 우러러보던 이창호라는 
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어

 

 

매서운 눈빛의 이세돌 당시 三단


위 사진처럼 이세돌은 대국 중에 자주 상대를 매섭게 쏘아보곤 해
바둑이 안 풀릴 때나 상대가 알 수 없는 묘한 수를 두었을 때
그는 상대를 매섭게 관찰해
상대가 반상의 어느 곳을 응시하는지
나의 어느 약점을 파고들 것인지
상대의 약점이 어느 곳인지
어느 곳에 두어야 가장 고통스러워할지
표정을 보면 어느정도 느껴진다고 해
천성적으로 상대의 약점을 알아채는 재능을 가진 이세돌이었어

바둑계에서는
바둑을
'수담 手談을 나눈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바둑은 곧 '손으로 나누는 이야기'라는 것

반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앉아
몇시간 씩 바둑을 두다보면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노리는지 서로의 손 끝에서 느껴지기 마련이지

 

이창호와 이세돌

하지만 이창호는 당시 '石佛 돌부처'로 불리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했던 기사
전성기 시절 이창호는 100수 앞까지도 수읽기가 가능했다고 한다
100수 앞을 내다보고 두는 100수 전의 수
보통의 기사라면 그 수의 깊이를 헤아리기 힘들었을거야
이 무렵에는 해설가들 조차 이창호의 한 수 한 수를 
제대로 이해하고 해설해내지 못 할 때가 많았어
'방금 저 수는 무슨 수죠?'

또한
이창호는 대국 중에 절대 상대를 쳐다보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해
상대를 파악하고 상대에 맞춰두는 이세돌과는 달리
상대에 관계없이 오로지 자신의 바둑을 두어가는 이창호
무엇이 맞다고 할 수는 없어
이렇게 이세돌과 이창호는 작은 부분에서도 큰 부분에서도 차이점을 보였다

그렇게 시작된
상극의 대결

이창호와 이세돌의 첫 대국은
 

이창호와 이세돌

하지만 이창호는 당시 '石佛 돌부처'로 불리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했던 기사
전성기 시절 이창호는 100수 앞까지도 수읽기가 가능했다고 한다
100수 앞을 내다보고 두는 100수 전의 수
보통의 기사라면 그 수의 깊이를 헤아리기 힘들었을거야
이 무렵에는 해설가들 조차 이창호의 한 수 한 수를 
제대로 이해하고 해설해내지 못 할 때가 많았어
'방금 저 수는 무슨 수죠?'

또한
이창호는 대국 중에 절대 상대를 쳐다보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해
상대를 파악하고 상대에 맞춰두는 이세돌과는 달리
상대에 관계없이 오로지 자신의 바둑을 두어가는 이창호
무엇이 맞다고 할 수는 없어
이렇게 이세돌과 이창호는 작은 부분에서도 큰 부분에서도 차이점을 보였다

그렇게 시작된
상극의 대결

이창호와 이세돌의 첫 대국은

 

제 5회 LG배 세계 기왕전 결승 제 2국 

그러나 다음날 이어진 제 2국의 결과 또한 이창호의 완패

이 5번기에서 이세돌의 승리를 예측했던 사람은 없었어
모든 이가 최강자 이창호의 승리를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상황에 나온
이창호의 2연패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말았지

하지만 그 누구보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충격적인 연패를 당한 이창호 본인 이었을거야
승리 후에도 언제나 시종일관 표정을 짓지 않던 석불이
2연패 후 찡그리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말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패배에 당혹스러움이 역력해 보였다

2001년 LG배 2연승 후 월간바둑의 표지를 장식한 이세돌 당시 三단 


신선한 충격을 받은 바둑계는 새로운 천재의 탄생이라며 이세돌을 추켜세웠고
이창호를 '뚫린 방패'라고 표현하며 위기론이 대두되었어


3국은 약 두 달 뒤에 속개되었다
당시 LG배는 결승 5번기를 1차로 1,2국을 진행하고 중간에 시간을 가진 뒤
2차로 나머지 대국을 마무리했어
 까마득한 후배에게 2연타를 얻어맞은 이창호의 표정은 결연해 보였다
반면 2연승을 거두고 있었던 이세돌은
내친김에 3연승으로 끝내버리기 위해 
"3국은 제게 있어 결승국입니다. 이곳에서 끝을 내겠습니다."
라며 승부욕에 불을 지폈지

이 날의 바둑 역시
이세돌이 초반 부터 승기를 잡으며 모든 흐름을 주도하고 있었어
공교롭게도 TV에서는 이창호의 스승 조훈현이 대국을 해설 중이었는데
조훈현은 중반 이후 대국의 상황에 대해 
"이세돌 三단의 우승이 확실시 되고 있습니다."라고 말 할 정도 였다

하지만 이창호라는 벽은 그렇게 쉽게 무너져 주지 않았다
대국이 중반에서 끝내기로 넘어갈 때 쯤
이세돌은 초읽기에 몰렸고 연속 두 번 실착(실수)을 하게 돼
이전에도 손이 너무 빠르게 나오는 탓에
가끔 나오는 경솔한 수가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었던 이세돌이었어
그런데
하필 그때 실수가 연달아 두번이나 터져 버렸다

이창호는 이런 후배의 실수에 관대한 사람이 아니었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이창호는 이세돌의 빈틈을 후벼팠고
이세돌은 초반부터 중반까지 다 잡았던 우승컵을
제 손으로 내동댕이 쳐버렸다
 

3국을 승리한 후 인터뷰 중인 이창호


이 날 인터뷰에서 이창호는 
"전반적으로 바둑이 맘에 들지 않았는데 
내일은 실수없이 더 좋은 바둑을 둘 수 있도록 하겠다."
라며 승리에 대한 안도감을 밝혔다

거의 손 안에 다 들어왔던 첫 우승컵을 놓쳐버린 이세돌은
망연 자실한 표정으로 대국장을 떠났어

그리고 이틀 뒤 이어진
제 4국에서도 이세돌은 자신의 스타일대로 초반부터 맹공을 퍼부었으나
이창호 식 타개에 막혀 결국 제 풀에 지쳐 쓰러져 버리고 말지
결국 종합전적 2 대 2로
승부는 균형추를 다시 맞추게 되었어

이어진 제 5국은
나흘 뒤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렸다

제 5회 LG배 세계 기왕전 결승 제 5국

2연승 후 2연패를 당한 이세돌은
이미 그 기세가 꺾여버린 상태였고
오히려 기세는 이창호에게로 넘어와 있었어
이창호는 관록을 뽐내며 이세돌을 압도했고 242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두게 된다

패배 후 이세돌은
"이번 결승전은 오랫동안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이 세 번의 패배가 나의 바둑인생에 보약이 될 것 같다."
"역시 이창호 사범님이 상대하기 가장 까다롭다."라며
승부 전에 자신이 이창호 보다 더 강하다며 도발해오던 모습에서 한 발 물러서게 됐다

2연패 후 3연승을 거두며
짜릿한 역전 우승을 차지한 이창호
하지만 최강자 이창호를 벼랑 끝 까지 몰아붙이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이세돌 또한 값진 경험을 얻게 되었다

제 5회 LG배는
이창호의 국내외 통산 타이틀 100회 차지라는 기록과 
그렇게 풍성한 화제거리를 낳으며 마무리 되었다
약 6개월 뒤 국내기전인 '제 20기 KBS 바둑왕전'에서
다시 만난 이창호와 이세돌의 대결은
이창호의 2:0 승리로 싱겁게 마무리 되고 만다

이후 이세돌은 다음해인 2002년
주요 세계기전 중 하나인 '후지쯔 배'에서 첫 세계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감을 높였다

 

 

제 15회 후지쯔배에서 유창혁 九단을 상대로 우승컵을 거머쥔 이세돌 당시 三단

우승 후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세돌은
"확실히 세계 최강은 접니다."
라며 다시 한 번 이창호를 도발했다
이세돌의 이전까지는 이런 스타일의 기사가 없었어
바둑은 예禮와 도道를 중시하는 스포츠
무엇보다 바둑기사가 갖춰야 할 기본적 소양은 '겸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세돌은 그러한 틀을 깨고
프로에게 있어 쇼맨십이란 무엇인가를 팬들에게 일깨워준 첫번째 기사였다

팬들은 이런 이세돌의 당돌한 모습을 오히려 반겼고
이세돌의 이런 당돌한 모습은 매력 포인트가 되어 그의 개성이 되었어
하지만 후에 이런 모습은 해외팬들로 하여금
이세돌에 대한 반감을 갖게 만들어
특히 중국은 아직도 이세돌을 엄청나게 싫어해
이창호 만큼 중국기사들을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였고
또 승리를 거둔 후에 중국을 상대로 도발에 망설이지 않았거든 


그리고 이듬해 
2003년
이세돌은 지난 5회 대회에서 자신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준 
이창호와 다시 한 번 결승전에서 만나게 된다 
 

 

7회 LG배 결승전에서 다시 만나게 된 이창호와 이세돌

준결승에서 동기 조한승 三단을 꺾고 결승에 먼저 진출한 이세돌

이창호는 당시 주목받던 신예 기사였던 원성진五단을 꺾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지난 번에는 2연승 후 
뒷심 부족으로 3연패 하며 우승컵을 내준 이세돌이었지만
이미 작년 후지쯔 배에서 유창혁 九단을 꺾고 
첫 세계 대회 우승을 맛본 이세돌은 자신감이 충만해져 있는 상태였다

이세돌은 자신에게 세계 대회 타이틀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었던 이창호를 상대로
확실한 복수극을 펼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어

 

제 7회 LG배 세계 기왕전 결승 5번기 제 1국

그렇게 시작된 1국은
지난 번 이창호와 이세돌의 대결의 양상과 같았어
언제나 공격을 주도하는 것은 이세돌
그리고 그 공격을 막아내며 타개(위기를 해쳐 나가는 것)해 나가는 것은 이창호였지

흔드느냐 막아내느냐
분명 창과 방패의 대결이라는 비유가 필요한 그들의 대국이었어

초반 승기를 잡은 것은 공격을 주도하던 이세돌이었다
지난 번 패배 이후 초반에 이창호를 흔들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세돌은 매우 거세게 이창호를 흔들었고
이창호는 중반 이후에는 초읽기에 몰려 이미 패색이 짙어져 버렸지

하지만 이창호는 쉽게 돌을 던지지 않고 바둑을 끝내기까지 끌고갔고
지켜보던 이들은 이창호가 돌을 너무 늦게 던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했어
이에 이창호는
"중반 이후 초읽기에 너무 빨리 몰려서 정확한 형세판단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는데
누구보다 형세판단에 능한 기사였던 이창호로서는
말이 안되는 변명이었다
분명 이창호도 이 대국이 자신의 패색이 짙어졌다는 것은 느꼈을 테지만
과연 이세돌이 얼마나 성장했을지 가늠해 보고자 했을 터였다
아마도 이창호는 이번 결승전 또한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절감했을거야 

 

제 7회 LG배 세계 기왕전 결승 5번기 제 2국

이어진 2국에서는 이창호가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세돌이 무섭게 성장하며 이창호의 턱 밑에 칼을 들이밀 때 까지
정상을 지키던 이창호 또한 지켜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
이세돌의 공격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바둑을 두어가며 이세돌의 실수를 이끌어내 
반격에 성공했다

그렇게 1차 라운도 1,2국을 1대1의 스코어로 마무리한 이세돌과 이창호는
약 한달 후 2차 라운드를 치르게 돼

 

제 7회 LG 세계 기왕전 결승 5번기 제 3국

3국은 종반의 종반을 거듭하며
치열한 끝내기 승부로 가게된다
패싸움을 거듭하며 서로 초읽기에 몰렸던 이 대국은
265수 만에 이세돌의 흑 불계승으로 끝이 나게 돼
(보통 180~200수를 넘어가면 끝내기에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2국에서 반격에 성공했던 이창호로서는 맥이 확 빠지는 순간이었어
게다가 이창호는 '끝내기의 승부사'
미세한 승부에서 누구보다 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이창호였어
미세한 끝내기 승부에서 이세돌에게 패했다는 것에
이창호는 패배의 아픔이 곱절로 다가왔을거야

 

 

제 7회 LG배 세계 기왕전 결승 5번기 제 4국

이세돌이 종합전적 2승 1패로 앞서가며 맞게 된 4국
3국과 마찬가지로 대국은 접전에 접전을 거듭했어
여기서 패배하면 그대로 우승을 내주게 되는 
이창호 또한 더이상 물러설 수 없었고
반드시 이곳에서 우승을 결정지어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으려는 
이세돌 또한 물러설 곳은 없었다


결국 4국의 승자는
 

 

제 7회 LG배 세계 기왕전 시상식
우승 이세돌 三단 
준우승 이창호 九단


이세돌이 승리를 거두며
처음으로 이창호를 상대로 타이틀을 따내는 순간이었다
이세돌은 이 대회에서 몇가지 기록을 만들어내게 되는데

이때까지 이창호는 제 1회 LG 배를 시작으로
1,3,5회를 우승하여 홀수 회차 대회를 모두 우승하고 있었는데 
그런 이창호의 기록을 깨버렸고
이창호의 후배 기사중에서는 이창호를 상대로
타이틀 결승전에서 최초로 승리를 거둔 기사로 기록되었다

 

 

상금과 상패를 받고있는 이세돌과 이창호



우승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이세돌은
"이창호 사범님이 역시 최강이다."라며 
오히려 또다시 한 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어

이하는 우승 직후 인터뷰 내용 발췌
(월간바둑 구기호 기자 - 2003년 월간바둑 5월호)

- 이번 결승전만 놓고 보면 영락없이 세력바둑으로 오인받기 십상인데...
자신이 추구하는 기풍의 진짜 색깔은? 
[PS.닉네임 '리틀조'가 말해주듯 이세돌 6단(우승후 3단 승단)의 기풍은 
전신(戰神)으로 통하는 조훈현 9단과 매우 흡사하다. 엷은 듯 하지만 타개가 탁월하고 치고 빠지기에 능하며 
때론 상대를 거칠게 몰아붙여 단박에 승부를 결정짓는 등 탁월한 몸싸움 실력을 겸비했다. 
이번 결승전에서도 네판 모두 이창호 9단의 대마를 잡는 괴력을 선보였다.]
"실리와 세력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바둑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실리바둑으로 갈 건지 아니면 세력바둑으로 가든지 결정할 뿐이다. 
이번 결승에선 판을 짜다 보니까 두텁게 두었을 뿐이다."

-형세가 유리하면 적당히 타협해 판을 닦아 나가기 마련인데... 
평소 바둑을 보면 형세가 유리해 굳이 수를 내러가지 않을 상황에서도 돌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PS. 끈임없이 최선의 수를 찾는 노력은 어쩌면 프로, 전문기사들의 사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문기사도 사람인지라 유리하면 '부자 몸조심'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평소 이세돌의 모습은 달랐다.]
"수가 보이면 손이 근질근질해 참지를 못한다.(대부분 그것으로 승부가 끝나지만) 
그래서 역전패를 당해도 어쩔 수 없다."

-후배기사와의 대국때 부담을 많이 느끼는가?
(결승전 대국에서 조훈현,이창호,유창혁,이창호 9단은 가장 큰 부담으로 하나 같이 후배기사와의 대국을 꼽았다. 
선배기사와 두면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데,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아니면 제자등 어린기사와 둘 때면 심리적으로 편치 않다고 고백했었다.)
"나보다 어린 상대가 꽤 있지만 어려봐야 세살 정도 차이다. 큰 부담을 못 느낀다."

- 이번 결승전 준비는 어떻게 했고, 앞으로 목표는?
[큰 대국을 앞두면 누구든 스케줄 관리에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이번 결승전에 대비해 두 기사는 나름대로 스케줄을 관리했을 텐데... 
대국일정으로만 보면 이창호가 좀 더 빡빡했다.]
"2년전 LG배 세계기왕전 기보를 반복 검토하며 이번 결승전에 임했다. 
올해 목표였던 LG배 우승을 이뤄 기쁘다. 다른대회에서도 잘해 볼 생각이다.


같은 해 이세돌은
당시 송태곤4단을 결승에서 꺾고 후지쯔배 2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2002년 제 15회 우승에 이어
2003년 제 16회 후지쯔 배 우승을 차지하는 이세돌

이무렵 이세돌은 
계속해서 승단대회에 참가를 거부하고
三단에 머물러 있었는데
대회 일정도 바쁜 와중에 불필요한 승단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한국기원의 참가 명령을 거부했어

이때까지 프로기사들은 단수를 올리려면
매년 열리는 승단대회에 참가해 
다른 기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승단을 해야했다
사실 승단대회의 존재이유에 대한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나
현역 프로기사가 직접 한국기원을 상대로
거부의사를 밝힌 것은 이세돌이 처음이었다

세계 대회에서 저단자가 연이어 고단자들을 꺾어 나가니
언론은 더욱더 승단대회의 불필요성을 제기했고
한국기원 입장에서도 난처한 상황이 계속되었어

결국 2003년 한국기원은 승단규칙에 
'세계대회 우승시 三단 승단, 준우승 시 一단 승단의 특별승단을 인정한다.'
라는 조항을 추가했고
후지쯔 배의 우승을 통해 이세돌은 
三단에서 七단으로 승단한 뒤
이후 최단 시간 내에 九단까지 승단하게 된다

이 조항은 후에 '이세돌 법'으로 불리며
한국기원은 아예 승단대회 자체를 폐지하고
국내외 주요 기전의 예선 및 본선 성적을 기준으로 승단심사를 진행하여
자동으로 승단이 될 수 있게끔 조항을 고치게 된다

이때부터
프로기사들은 승단대회의 부담을 덜고 대회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으며 
프로기사 중 九단의 숫자가 대폭 늘어나게 된다
이세돌의 큰 업적 중 하나로 평가받는 부분이야

그리고 이세돌은
후지쯔 배 2연패 이후
이세돌은 최정상급의 궤도에 오른듯 타이틀 수집을 시작하게 된다
다음 해인 2004년에는 왕시 5단을 상대로 2대0 승리를 거둬
세계 기전인 삼성화재배에서 우승을 거두고
2005년 창하오 九단을 상대로 도요타 덴소 배에서 우승
2005년 국내기전 맥심 입신최강전에서 우승



이세돌은 곧
이창호의 패도에 거대한 문이 되어
이창호의 시대를 위협하는 무서운 다크호스로 거듭나게 돼

 

반면
2004년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해내며
중국에서 '상하이 대첩'이라는 역사를 만들어낸
6회 농심신라면 배를 한국의 역전 우승으로 이끈 이창호

아직은 선배 이창호가 위용을 떨치고 있던 2000년대 중반
이세돌은 언제쯤 이창호를 누르고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2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