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의 상징 빨간 명찰을 얻기 위한 마지막 관문
대한민국 해병대는 병력 규모면에서 전세계 해병대 중 미 해병대에 이어 두번째로 많습니다.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해군이 보유한 상륙수송능력을 훨씬 초월하는 규모입니다. 그리고 해병대의 자부심 얼마나 강한지 말해주는 말이 있는데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입니다.
사실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명찰을 받기 위해서는 엄청난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특히 마지막 관문인 극기주는 정말 지옥과도 같다고 합니다. 극기주, 4시간 이하의 수면과 급격히 줄어든 식사량으로 극한의 전시상황을 극복하는 훈련입니다. 한덩이의 주먹밥과 몇조각의 깍두기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버텨내야 합니다.
아침에 사이렌을 울리며 비상소집을 해서 교관들이 극기주를 선포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4일동안 잠도 하루에 몇 시간 정도밖에 못 자고, 밥도 제한배식으로 줄어들고 각개전투훈련 같은 힘든 훈련을 이겨내야 합니다.
첫날은 비상소집과 냉·온수 견디기 등 전장 스트레스 상황을 가정한 뒤 이를 극복하는 것으로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2일차에는 체력적 한계와 공포심을 극복하기 위한 장거리 해상 패들링(Paddling)을 실시합니다.
3일차에는 상륙용 고무보트(IBS) 운용술을 숙달하고, 4일 차에는 80㎏이 넘는 IBS를 머리에 이고 이동하는 헤드캐링(Head Carrying)을 하게 됩니다. IBS는 소형고무보트의 약자이며 100kg가 넘는 IBS에 바람을 넣고 6~7명 대원이 각자 맡은바 임무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의 단결과 단합을 중점적으로 교육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인 목요일 오전에 진해 장복산맥 동쪽에 위치한 천자봉을 올라가는데 새벽에 출발해 오전에 복귀합니다. 완전무장에 병기 지참하고 오르는데다 체력이 한계치인 극기주에 하는 훈련이라 낙오자가 많을거 같지만 생각보다 그렇진 않습니다. 극기주 끝났다는 성취감과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명찰을 달것이라는 기대감에 대부분 낙오없이 완주한다고 합니다.
이 천자봉행군은 1949년 4월 15일 제1기 신병수료식을 기념하여 천자봉 정복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1985년 제2 해병훈련단이 진해에서 포항으로 이전함에 따라 천자봉의 혼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서 운재산 정상 9부 능선에 잇는 대왕암을 제2의 천자봉으로 명명하여 해병대의 자긍심과 각오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천자봉 고지정복훈련까지 끝나고 교육단에 복귀하면 교육단 근무 장교, 부사관, 기간병 및 후배 기수 훈련병 등이 길 가에 도열하여 완주한 훈련병들을 맞아 박수쳐줍니다. 그리고 군악대도 와서 축하 연주를 해 주는데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 속으로 대단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 명찰을 수여합니다. 빨간 명찰 수여식은 천자봉 등반과 마찬가지로 해병대에만 존재하는 전통 의식으로 훈련병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훈련을 함께한 훈련교관이 수여합니다. 그토록 원하던 빨간 명찰이 가슴에 부착되는 순간 훈련병들의 눈에는 뜨거운 감격의 눈물이 흐르게 됩니다.
이 빨간명찰의 진홍색은 피와 정열, 용기, 신의 그리고 약동하는 젊은을 조국에 바친 해병대의 전통을 상징하며 황색은 해병대는 신성하며 해병은 언제나 예의 바르고 명랑하며 활기차고, 땀과 인내의 결정체임을 상징합니다. 전역 후에도 많은 해병대 예비역들은 이러한 붉은 명찰을 소중히 여기고 힘들때나 지칠때 붉은 명찰을 보고 다시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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