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안녕하세요 !

 

이번에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

 

불패신화를 썻던 강력했던 우리 대한민국

 

국군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참전 부대와 함께 엄청난 성과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볼게요

 

 

주월사 (주월 한국군 사령부)
The Head quarters Republic of Korea forces in Vietnam

 

부대창설 : 1965.9.25 서울필동(채명신 소장)

 

참전기간 : 1965.9.25 - 1973.3.23

 

참전군인 : 13,133명 (4,064명,사병9,069명)

 

희생 : 전사 45명(장교18명,사병9.069명)

부상 54명(장교9명, 사병 45명)

 

사령관 : 초대중장 채명신 , 2대 중장 이세호

 

부대지휘 : 주월사를 비롯하여

 

 3개전투부대 (맹호,백마,청룡)와

 

1개 군수 지원부대(십자성),1개 군사원조단(비둘기)

 

2개 수송전대 (백마,은마)등 8개

 

전과 :  1964.7.18부터 1973.3.23까지

 

대부대작전 1,174회와 소부대작전

 

576,302회등 총 577,476회의 작전을 실시

 

한국군 전술책임 지역 7,000평방km를 평정하고

 

월남 난민 120만 여명에 대한

 

 거주를 정착시켰습니다.

   

대민사업 : 진료3,523,364명 , 싱략 18,640톤

 

의류 461,764,농기구 6,406대,가옥및교실 3,319동

 

교량 132개,도로394km 태권도보급902,060명

 

경로및어린이잔치6,848회 연예공연 2,304회

 

자매결연 3,364곳 등 끈끈한 정으로

 

평정사업과 대민사업을 병행실시,진정한

 

우정을 심었던 결과로 월남국민들이

 

따이한을 믿고 따르며 잊지못하게했습니다.

 

 

십자성부대 (제100군수 사령부)
The 100th Logistic Command

 

파월 : 1965.10.12 여의도광장에서

 

맹호부대와 함께 출범합니다.

 

1965.10.16 부산항3부두를 출발하여

 

1965.10.22퀴논에 상륙 맹호부대사령부와

 

함께 퀴논 인접지역에 주둔합니다.

 

출국당시에는 군시지원 사령부였으나

 

1966.6.1퀴논에서 부대명칭을

 

100군수사령부로 개정합니다.

 

1966.8.20  나트랑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사령관 : 초대 이벙준 사령관에 이어 유학성,이영일

 

이창복,김종달,신유정 준장이 사령관을

 

맡아 부대를 지휘하였습니다.

 

참전기간 : 1965.9.25 - 1973.3.23

 

희생: 전사 213명(장교 26명,사병187명)

 

부상 439명(장교 27명,사병 412명)

 

전투 : 106665대의 차량수송과 396,019명의

 

병력수송 및 233,669동의 군수등 수송작을

 

치루었습니다. 군수업무를 수행하면서

 

민사 심리전으로 베트공마을을 찾아다니면서

 

환자진료와 구호품을 전달하여, 전쟁의 적은

 

있어도 인류의 적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평소에 심자성 사령부를 위협하던 지역내

 

혼톰산 일대에 1969.3.1~3.11일간에 걸쳐

 

십자성 3호 작전(일명 올개미작전)을

 

전개하였습니다. 작전에 참가한 부대는

 

116공병대대,237수송대대,경비중대로서

 

적을 적 4명사살 포로 1명 용의자 6명

 

소화기5정 문서 8점,취사기구등 150여점을

 

노획하였습니다.

 

대민사업 : 사찰,교회,교량,유치원 등을 설치하고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스니다.

 

또한 한국군이 빛나는 전과를 세울수

 

있었던 것은 난관을 극복하면서 적기 적소에

 

군수 지원을 원활히 수행한 지대한 공로로

 

평가되고있습니다. 그러므로 파월 한국군

 

부대의 동맥과 젖줄로 그 소임을 다해온

 

심자성부대는 어머니상으로 영원히

 

기억될것입니다.

 

 

 

 

 

비둘기부대 (건설 지원단)
The Construction Support Group



한국군 부대로써는 최초로 파월된

 

 비둘기 부대는 이름이 상징하듯이

의료진과 건설 공병으로

 

구성된 평화의 사도 전사부대입니다.

건설 지원단은 국방부 명령(육)제2호에

 

의거 서울에서 장교 16명, 사병8명으로

파월 편성을 위한 주월 한국군

 

군사원조단 본부를 창설하였으며

(초대단장 조문환 준장) 예하 부대로서

 

육군 제127공병대대 제1이동 경비대대,

제8이송중대, 해병 제1독립 공병 중대를

 

 핵심으로 부대편성을 하였습니다.

1965년 2월5일 보병 제6사단 지역인

 

경기도 현리에서 국방부 장관 임석하에

주월한국군 군사 원조단 결단식을 갖게 되었으며,  

2월13일 파월 제1진으로 선발대가 출발하여

 

 2월 24일에 월남 사이공 도착하고,

3월 16일에는 전부대가 숙영지 도착과

 

동시에 불명확한 적정과 지형조건하에

자체 능력으로 경계 및 수색활동을 전개하면서

도로 및 교량보수에 착수 하였으며,

 

파월이래 처음으로

 

 베트콩의 기습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파월 초창기의

 

 여려운 환경속에서 건설 지원단은

도로 신설공사를 비롯하여 교량,학교, 진료소 공사와

 

태권도 지도 및 심리전 활동등

한국군의 개척자로써 많은 업적을 남겨 놓았습니다.


 

 

 

청룡부대 (해병 제2여단)
The 2nd Marine Brigade

 

파월 : 1965.9.20 경북포항에서 출범하여

 

1965.10.3 한국을 떠납니다.

 

1965.10.9 캄란에 상륙하여

 

1967.12.12 호이안에 주둔하게 됩니다.

 

 

사령관 : 이봉출 여단장의 뒤를 이어

 

김연상,이동호,이동용,허홍 준장

 

참전기간 : 1965.10.9~1972.2.24

 

참전군인 : 37.340명 (장교 2,166명 사병 35,174명)

 

희생 : 전사 1,202명 (장교 42명,사병 1,160명)

 

부상 2,904명 (장교99명,사병2,805명)

 

전투 : 151,522회

(대부대전투175회,소부대전투151,347회)

 


 

 

맹호부대 (수도사단)
The Capital Division (Tiger)

 

파월 : 1965.10.16 부산 3부두를 출발하여

 

1965.10.22 월남 퀴논에 상륙합니다.

 

참전기간 : 1965 .10.22 - 1973.3.7

 

참전군인 : 114,902명(장교7,652명,사병107,340명)

 

희생 : 전사 2,111명(장교186명,사병1,925명)

 

부상 4,474명(장교246명,사병4,228명)

 

전투 : 175,107회

(대부대전투521회,소부대전투14,586회)

 

대민사업: 퀴논지역에 문화센터,학교건물 건축등

 

수많은 대민지원사업을 벌였으며

 

1972.4.18부터 5.15까지 약한달동안

 

파월한국군이 가장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안케패스전투를 비롯하여 수많은 전투에서

 

많은 전과를 올렸습니다.

 

 

맹후부대의 주요작전을 자세히

 

한번 살펴보고갈게요

 

작전 개요

 

- 주 둔 지 : 퀴논(제1연대/기갑연대/제26연대)

 

 - 작전기간 : 1965년 10월부터 1973년 3월 철수까지

 

- 작전지역 : 퀴논을 중심으로 1,200㎢ 전술책임지역


  1. 비호6호 작전

 

   - 일시 : 1966. 1. 9 ~ 1. 10

 

   - 내용 : 푸캇, 안녕, 푸이폭 지역에서

 

맹호 1연대, 2개대대가 투입된 연대규모작전

 

- 결과 : 1개대대 규모(E-2B대대)의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

  

2 . 두코 전투

 

   - 일시 : 1966. 8. 9 밤 22:40~익일 새벽 4:30(6시간)

 

   - 내용 : 이춘근 대위가  지휘하는  기갑연대  제9중대가

 

 미 기갑사단의 ‘파울리비아’ 작전을 측면

 

           지원하던 중 월맹군 2개대대의 공격

 

   - 결과 : 적을 완전 격퇴

 

    (적사살 184, 포로 6, 소화기 62,

공용화기 28, 기타많은 실탄노획)

 

 

  3. 맹호 5호 작전

 

- 일시 : 1966. 3. 23 ~ 3. 26

 

- 내용 : 맹호 제1연대 및 기갑연대가 투입되어

 

퀴논 북방 20㎞지점 일대에서 사단전술지역확장과

 

지역내 적을 수색 소탕하여 평야지대의 적 식량

 

공급원을 제거하고 주민의 수확을

 

 보호할 목적으로 실시된 최초의 사단작전

 

- 결과 : 포위망을 형성하고 적 퇴로 및

 

증원군을 방지하여 와해된 적을 서서히

 

압축 공격하여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적사살 331, 포로 287, 용의자 412

소화기 25, 공용화기 4정등 노획)

 

 

4. 맹호 6호 작전

 

- 일시 : 1966. 9. 23 ~ 11. 9 (48일간)

 

- 내용 : 맹호 제1연대, 제26연대  및 기갑연대 제2대대가

 

 투입되어 「빈딩」성 「푸캇」군에

 

 위치한 전형적인 산악, 밀림 및

 

동굴지대에서 실시된 맹호사단

 

두 번째의 사단 규모 작전입니다.

 

- 결과 : 「빈딩」성의 적주력인 「E2 B」대대와

 

제24 및 25중대에 대한 섬멸적인

 

타격을 가하여 「푸캇」산악지역의

 

적의 근거지를 완전히 소탕하고 북방산악

 

 지역 600㎢의 사단전술책임지역을 확장하여

 

사단 북방 지역에 대한

 

장차 작전의토대 조성합니다.

 

(적사살 1, 161, 포로 518, 용의자 653,

소화기 454, 공용화기 43 획득)

 

5. 맹호 7호 작전

 

- 일시 : 1966. 11. 11 ~ 11. 25 (25일간)

 

 - 내용 : 「빈딩」성, 「빈케」군 일대에서 맹호기갑연대와

 

 제26연대 1개 대대가 투입,

 

맹호 6호 작전이 종료되면서 확장된

 

전술 책임지역을 평정하기 위하여

 

 실시된 작전입니다.

 

- 결과 : 사단의 서북부 「빈케」군 산악 일대의 적을 소탕하고

 

 19번 도로의 안전을 위협하는 적을 제거하였으며,

 

신설「푸캇」비행장의 안전을 도모하고 「통간」

 

 일대의 월남국민의 식량공급원을

 

확보함으로써 월남 평정계획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적사살 48, 포로 54, 용의자 54,

소화기 20의 전과획득)

 

 

6. 맹호 8호 작전

 

- 일시 : 1967. 1. 3 ~ 3. 4 (61일간)

 

- 내용 : 맹호6호, 7호 작전에서 사단의 북방지역에

 

대한 차기작전의 토대를 구축하면서

 

남방지역 「푸엔」성, 「송카우」, 「동수안」

 

군 일대의 미수복지구에

 

대한 계획된 작전입니다.

 

- 결과 : 지역내의 적을 완전소탕, 지하조직을

 

파괴하여 2만명의 인구를 월남정부

 

제하에 들어오게 했으며 700㎢

 

새로운 전술 책임지역을 남으로 확장하여

 

오작교 작전을 실시할 수 있는

 

직접적인 토대 조성하였습니다.

 

 7. 오작교 작전

 

 - 일시 : 1967. 3. 15 ~ 4. 18 (35일간)

 

 - 내용 : 주월한국군이 최초로 맹호, 백마 2개사단을

 

투입하여 양개사단의 연결작전을

 

 시도한 작전으로서 수도사단은

 

 「푸엔」성, 「송카우」, 「투이안」,  「동수안」군

 

 일대에서 계획적인 단계별 작전을

 

시도하여 제대별 포위기동,  지역내를

 

정밀 반복 수색하면서 계획적인

 

민사심리전을 병행 실시하여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성과를 획득한 작전입니다.

 

 - 결과 : 「봉손」으로부터 「판랑」까지의 1번도로를

 

 개통하게 되었으며, 월남국민 53,000명을

 

 적의 통치로부터 해방시켜 530평방킬로미터의

 

 사단전술 책임지역을 확장하여 베트콩 보급루트 및

 

식량보급원을 제거하고 「푸엔」성 주력군과 면 및

 

촌 「게릴라」를 완전소탕하였으며

 

주월한국군의 민사심리전을 입증하게 되었습니다.

(적사살 608, 포로 272, 귀순 165,

소화기 456, 공용화기 26의 전과 획득)

 

 

8. 홍길동 작전

 

- 일시 : 1967. 7. 9 ~ 8. 26 (49일간)

 

- 내용 : 주월한국군이 두 번째로 맹호, 백마 2개 사단을

 

투입 실시한 광범위한 작전으로서

 

한국군 전술책임지역을 위협하려고

 

「동트레」와 「쿵숀」간 지역에  집결중인

 

월맹군 5사단 95연대와 「베트콩」85연대 및

 

지방 게릴라 2개중대에 대한 선제

 

공격을 목적으로 실시된 작전입니다.

 

- 결과 : 수도사단은 사단 전술책임지역의

 

 서남방지역인 3개성에 7개군의 광범위한 6개

 

           작전지대로 구분하고 보병 1개대대 규모를

 

 동시 공수기동, 점진적, 단계별 전을

 

시도하여 2개 중첩 포위망을 형성,

 

지역내의 적주력을 완전포착 섬멸 함으로써 

 

월남정부의 정, 부통령 선거에 대비전

 

새로운 수복지구에 대한 안전을

 

확보하여 월남 정부 평정사업을

 

결정적으로 지원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적사살 394, 포로 58, 귀순 25,

소화기 230, 공용화기 45의 전과를 획득)

 

 

9. 맹호 9호 작전

 

 - 일시 : 1967. 12. 17 ~ 68. 1. 30 (45일간)

 

- 내용 : 수도사단 제1연대 및 기갑연대와

 

26연대 1개 대대가 투입되어 「빈딩」성, 「푸캇」

 

산악일대에 침입해온 월맹군

 

제3사단 제18연대본부 및 예하 7, 8, 9대대를

 

 포착 섬멸하고 「고보이」평야와 1번도로를

 

중심으로 지역내 군사시설에 대한 적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하여 실시된 작전입니다.

 

- 결과 : 사단은 80여대의 헬리콥터에 의한

 

대규모 공중기동작전을 감행, 작전 초기에

 

있어서는 우기를 당한 「푸캇」산악의 밀림과

 

주력을 포착하기에 많은 난관을

 

겪었으나 표화적인 기만 및 양동작전,

 

기동예비대의 효과적인 활용, 파월이후

 

최초의 보전 협동 공격을 감행하여 월맹군

 

제18연대 부연대장을 비롯한 적 간부급

 

요원을 대부분 체포 또는 사살함으로써

 

적의 지휘 체제를 완전 분쇄하였습니다.

 

10. 맹호 10호 작전

 

- 일시 : 1968. 2. 27 ~ 4. 1 (45일간)

 

- 내용 : 수도 3연대가 투입되어 구정 공세 이후

 

 차기 공세준비에 임하고 있는 적의 예상 중간

 

집결지를 선제 공격함으로써 차기 공세기도를

 

분쇄하고 구정공세로 인하여 동요된 민심을

 

 수습하며 지역내 추수 보호작전으로 적의

 

 식량획득을 거부할 목적으로 실시된 작전입니다.

 

- 결과 : 지역내 적정의 추이에 따라 작전을

 

3단계로 구분 실시하였으며, 특히 2단계

 

「고보이」작전에서 직경 5킬로미터의

 

협소한 지역에 사단 단일 포위권을 형성,

 

월맹군 제18연대 7대대 및 9대대의 주력과

 

지방 게릴라를 포착, 완전 섬멸하였으며

 

적의 제2차 퀴논 공세기도를

 

분쇄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적사살 664, 포로 60, 소화기 210,

공용화기 38의 전과 획득)

 

 

 11. 맹호 11호 작전

 

- 일시 : 1968. 4. 20 ~ 4. 27 (8일간)

 

 - 내용 : 맹호 1연대 및 26연대와 기갑연대

 

 3대대가 투입되어 「빈딩」성 「푸캇」산악과

 

퀴논지역가느이 중간지역인 「투이」폭 해안지역에서

 

맹호 9호 및 10호 작전이후 잔적으로 판단되는

 

월맹군 제3사단 제18연대 8대대 및 E-2B대대와

 

300세파 대대 및 지방 게릴라에 대한 포위 섬멸

 

 작전으로서 사단은 파월이후

 

가장 효과적인 재병 연합작전이였습니다.

 

 - 결과 : 해상에서는 PBR-10척으로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보병 및 기갑부대로서 적을  포위 압축하면서

 

항공 및 포병화력으로 적의 전의를

 

상실케하여 지역내를 반복 탐색함으로써

 

 적의 중간 집결지인 「토이폭」해안지대의

 

강력한 거점을 완전  분쇄 하였으며 구정 공세이후

 

 퀴논시를 비롯한 1번도로 주변에 대한 계속적인

 

 적의 위협을 제거하여 평정된 지역을

 

월남 행정기관에 인계함으로써 평정사업

 

기초를 이룩하였습니다.

(적사살 201, 포로 79, 귀순 1, 소화기 96,

공용화기 14의 전과를 획득)

 

 12. 맹호 12호 작전

 

- 일시 : 1968. 6. 11 ~ 7. 19

 

- 내용 : 「빈딩」성, 「푸캇」산악지역과 「고보이」평야

 

일대에서 수도사단 전 부대가 투입되어

 

 지역내에 침입한 월맹정규군 및

 

지방 게릴라를 포착섬멸하기 위한 작전입니다.

 

 13. 호랑이 작전

 

- 일시 : 1970. 7. 16 ~ 7. 31

 

- 참가부대 : 제1연대, 기갑연대, 제26연대

 

- 적군 : 월맹군 제3사단 제18연대 Binh Dinh성 VC.

 

- 활동개요 : 사단은 Binh Dinh성 고원지대에

 

3개연대를 공수 투입하여 수직포위권을

 

형성한 다음 반복탐색으로 적을 격멸하였다.

 

- 전과 : 적사살 97, 개인화기 110정, 공용화기 13

 

- 손실 : 전사 13명, 부상 44명

 

 

 14. 돌풍 작전

 

- 일시 : 1970. 10. 8 ~ 11. 2

 

- 참가부대 : 제26연대

 

- 적군 : 월맹군 C-23 고사포중대 및 Phu Yen 성 VC

 

- 활동개요 : 연대는 Hon Rung Gia(산) ~ Hon Chong(산)

 

 일대에서 유동하는 적을 도보 및 공수 기동으로

 

 포위권을 형성하여 격멸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63명, 개인화기 32정, 공용화기 4문

 

 - 손실 : 부상 24명

 

 

 

15. 독수리 71-1호 작전

 

- 일시 : 1971. 2. 22 ~ 3. 16

 

 - 참가부대 : 수도사단 제26연대(기갑연대 제3대대 배속)

 

 제9사단(제28, 29연대)

 

- 적군 : 월맹군 제13, 96여대, K-13연대, BK-7중대

 

- 활동개요 : 군은 파월이후 네 번째로

 

군단급 작전을 감행하였습니다.

 

제9사단 2개연대와 수도사단의 증강된 1개 연대는

 

 적의 아성으로 알려진 「동수안」 「망망」 계곡으로부터

 

 「닥」산에 이르는 1,200평방킬로미터의

 

정글지대를 누비면서 적을 색출 격멸하였습니다.

 

- 전과 :적사살 427, 포로 3,

 

개인화기 82, 공용화기 12문

 

 - 손실 : 전사 23, 부상 75

 

 16. 맹호 16호 작전

 

   - 일시 : 1971. 4. 19 ~ 5. 14

 

- 적군 : 월맹군 제5군구 전방지휘소,

 

월맹군 제12연대, 「빈딘」성 VC일부

 

- 활동개요 : 사단은 미 제173공수여단과 

 

합동작전으로  적의  226기지로  통칭하는

 

Nui Giang(산)~ Hon Ngang(산) ~ AnHoi 계곡 일대를

 

 포위 공격과 통로차단 및 잔류 매복등의

 

다양한 작전수단으로 적을 포착 전멸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252, 포로 3,

 

 개인화기 110정, 공용화기 35문

 

- 손실 : 전사 13, 부상 60

 

 

 17. 맹호 17호 작전

 

- 일시 : 1971. 6. 25 ~ 7. 11

 

- 적군 : 월맹군 제12연대, 「빈딩」성 VC후군부

 

 - 활동개요 : 사단은 Nui Vo Ca(산)과 Nui Glaket(산) 일대에

 

 2개연대를 전개하여 지역내에 잠거하고 있는

 

적을 격멸하고 비축된 각종 물자와

 

시설 등을 색출 제거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213명, 개인화기 134정, 공용화기 7문

 

- 손실 : 부상 21명

 

18. 혜산진 10호 작전

 

 - 일시 : 1971. 7. 13 ~ 7. 27

 

- 참가부대 : 수도사단 26연대 및 수색중대

 

 - 적군 : 월맹군 K-9대대, DK-11중대

 

 - 활동개요 : 연대는 Mo Cheo(산)일대의 적을

 

격멸하기 위하여 작전 주변마을에서

 

 주민분류 작전을 전개하여 적을 기만한 다음

 

기습공격으로 이를 포위 격멸하여

 

작전을 성공리에 종결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173명, 포로 4명,

 

개인화기 78정, 공용화기 4문

 

- 손실 : 부상 4명

 

 

 19. 번개 23호 작전

 

 - 일시 : 1971. 9. 9 ~ 9. 21

 

- 적군 : 월맹군 K-9중대, VC 병원 및 생산요원

 

- 활동개요 : 연대는 Hon Dong(산)과 Kylo 계곡 및

 

 Soui Dap(계곡)일대에 전개하여 적정과

 

지형에 따라 중대장 재량으로 탐색 속도를

 

 조정하고 접적을 계속 유지하면서

 

적을 포착 격멸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173, 포로 4명,

 

개인화기 78정, 공용화기 4문

 

- 손실 : 부상 4명

 

 

 

20. 비호 26호 작전

 

 - 일시 : 1972. 1. 14 ~ 1. 31

 

 - 참가부대 : 수도사단 제1연대

 

 - 적군 : VC, E-210연대, D-10공병중대, 지방VC

 

 - 활동개요 : Hoa Duc 및 Quang Nghep 마을에

 

 주둔하고 있는 월남 지방군 중대가 적과 조우하게

 

되자 연대는 공수기동으로 즉각

 

Long Hau 마을 일대에 전개하여

 

차단과 추격 끝에 많은 적을 격멸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129명, 포로 1명,

 

개인화기 73정, 공용화기 9문

  

- 손실 : 전사 6명, 부상 9명

 

 

 21. 혜산진 11호 작전

 

- 일시 : 1972. 1. 22 ~ 2. 7

 

 - 참가부대 : 수도사단 제26연대(기갑연대 3대대 배속)

 

- 적군 : 월맹군 K-9대대, DK-11중대

 

 - 활동개요 : 연대는 Nui Mo Cheo(산)

 

~HonKa(산)~Honke(산)

 

 일대에서 유동하는 적을 유인하여 기습적인

 

 포위 공격으로 격멸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137명, 개인화기 59정, 공용화기 2문

 

- 손실 : 부상 11명

 

 22. 안케패스 작전

 

- 일시 : 1972. 4. 1 ~ 4. 26

 

- 참가부대 : 수도사단 기갑연대

 

 - 적군 : 월맹군 제3사단 제12연대

 

- 활동개요 : 적은 72년 춘계공세에서 퀴논과

 

Pleiku를 거쳐 캄보디아 국경에 이르는 19번

 

 도로상의 요충지인 안케통로를 기습공격하여 한 때

 

이 도로가 차단되었습니다. 맹호26연대는

 

희생을 무릅쓰고 여러차례 공격을 감행하여

 

참담한 격전 끝에 638고지를 탈환함으로써

 

도로를 다시 개통케 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705명, 개인화기 70정, 공용화기 13문

 

- 손실 : 전사 75명, 부상 109명

 

 

23. 혜산진 12호 작전

 

- 일시 : 1972. 9. 7 ~ 1972. 9. 18

 

- 참가부대 : 수도사단 제26연대

 

- 적군 : 「동수안」군 VC, DK-9 중대 게릴러

 

 - 활동개요 : 적의 춘계공세로 RF의 전술기지와

 

비행장이 피탈되자 연대는 Hon Xuyen(산)과

 

 Nui Hon Cam(산)일대에 전개하여  주민을  

 

안전지대로  소개하고 지역내의

 

적을 격멸한 다음 실지를 회복하여

 

월남군에게 인계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241명, 포로 4명, 용의자 93명,

 

개인화기 47정, 공용화기 7문

  

- 손실 : 전사 1명, 부상 27명

 

 

 

 

 

 

 

 

백마부대 (보병 제9사단)
The 9th Division (White horse)

 

 

파월 : 1966.9.16 부산3부두를 출발하여

 

1966.9.22 월남 나트랑에 상륙하여

 

인근지역인 닌호아에 주둔하였습니다.

 

 

사령관 : 초대 이소동소장에 이어서

 

박현신,유창훈,정규환,조천성,김연선, 소장이

 

지휘하였습니다.

 

참전기간 : 1966.9.22 - 1973.3.11

 

참전군인 : 100.336명(장교6,445명,사병98,891명)

 

희생 : 전사1,328명(장교78명,사병1,250명)

 

부상2,410명(장교160명,사병2,250명)

 

전투 : 211,714회

(대부대전투478회,수부대전투211,236회)

 

1967.1.29혼바산에서 벌인 백마1호작전을

 

비롯하여 1967.3.8 맹호부대와 합동으로

 

월남의 동맥인 1번도로를 개통한 오작교작전과

 

1967.7.9 투이호아에서 실시한

 

홍길동작전을 비롯하여 박쥐작전,도깨비작전 등

 

엄청난 전과를 올려 천하무적

 

백마부대의 전설을 남겼습니다.

 

대민사업 : 대민농사,의료봉사,도로 및 주택건설

 

급수시설 등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맹후부대의 주요작전을 자세히

 

한번 살펴보고갈게요

 

주둔지 : 닌호아

 

 작전지역 : 「투이호아」로부터 1번도로와

 

철도를 연하여 「판랑」까지의

 

 254킬로미터에 달합니다.

 

 1. 백마 1호 작전

 

 - 일시 : 1967. 1. 29 ~ 3. 5 (35일간)

 

 - 내용 : 백마 제29연대와 30연대가 투입되어

 

「나트랑」북방 25킬로미터 「닌호아」

 

서남방「카오」계곡과 「혼바」산 일대에서

 

「베트콩」「칸호아」성 본부 및 그 예하부대와

 

 월맹군 18B 연대의 일부를 포착

 

 섬멸하기 위해 실시된 작전입니다.

 

- 결과 : 3단계 작전을 실시 적의

 

근거지를 완전 소탕

 

- 전과 : 적사살 393명, 포로 31명, 귀순 1명,

 

용의자 8명, 소화기 271, 공용화기 33정,

 

기타 많은 실탄과 장비를 노획.

 

 

  2. 오작교 작전(한국군 개통)

 

- 일시 : 1967. 3. 8 ~ 5. 31

 

- 내용 : 주월사령관 진두 지휘하에 3단계로

 

구분 실시되었습니다.

 

백마사단의 작전지역은 「푸엔」성,

 

「휴성」군 및 「투이호아」군 일대의

 

광범위한 지역으로서 위에설명한

 

맹호부대 오작교 작전 참조하시면됩니다.

 

 - 결과 : 사단은 이 작전에서 수직포위 기동,

 

촌락수색 및 주민분리 후송으로 지역내에서

          

활동하는 「푸엔」성 주력군  85대대  및 

 

「투이호아」군  DK 3, 7중대와 「투이호아」

 

CQ14중대를 포착, 섬멸하고 전술 책임지역을

 

323평방킬로미터로 확장하여

 

 맹호사단과의 연결에 성공합니다.

 

- 전과 : 적사살 240, 포로 148, 귀순 26, 소화기 177,

 

공용화기 3 기타 많은 실탄을 노획하였으며

 

맹호지역의 「송카우」로부터 백마지역의

 

「투이호아」에 이르는 1번 도로를

 

개통하게 되었습니다.

 

 

  3. 마두 1호 작전

 

   - 일시 : 1967. 1. 21 ~ 2. 7

 

- 내용 : 백마 제28연대 3개대대와 연대 수색중대가

 

참가하여 「투이호아」남방 「혹넘」 및 「챠이」산 일대의

 

적 활동을 분쇄하고 전술 책임지역을

 

 확보하기 위한 작전입니다.

 

- 결과 : 연대는 「챠이」산의 적 근거지를

 

완전히 포위 압축하여 적 주력을

 

 포착, 섬멸하는데 성공합니다.

 

- 전과 : 적사살 339명, 포로 124명, 귀순 303명,

 

용의자 301명과 소화기 504정, 공용화기 10정,

 

기타 9만여발의 실탄을 노획


4. 불도우저 5호 작전

 

 - 일시 : 1966. 11. 15 ~ 11. 22 (8일간)

 

- 내용 : 보병 29연대는 「불도우저」1, 2, 3, 4호 작전으로

 

 「투이호아」에서 「판랑」까지의 1번도로 개통하고

 

이어서 이 도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작전을 실시합니다.

 

 

- 결과 : 이 작전은 주민의 생명, 재산보호를

 

기본지침으로 투항권고 전단살포, 귀순권고,

            

피난민 호송 등 심리작전을 실시하여

 

 11,000여명의 피난민을 안전하게 후송합니다.

 

 - 전과 : 적사살 12명, 포로 12명, 용의자 139명,

 

귀순 3명과 소화기 10정

 

기타 2만여발의 실탄을 노획

 

5. 역마 1호 작전

 

- 일시 : 1966. 11. 7 ~ 11. 11

 

 - 내용 : 보병 제30연대가 실시한 작전으로서

 

작전임무는 특수임무보대를 편성,

 

둑미」로 부터 「BQ」602040간에 배치,

 

월남군 23사단의 보급수송차량을 엄호하는

 

작전으로서 제1단계는 부대이동, 제2단계는 도로경계,

 

 제3단계는 복귀단계호 실시되었습니다.

 

 - 결과 : 월남군 차량 566대를 무사히 「캄란」에서

 

 「바메소트」까지 이동시켰고

 

복귀 차량 427대를 무사히 복귀시키는데 성공

 

 

  6. 홍길동 작전

 

- 일시 : 1967. 7. 9 ~ 8. 26

 

 - 내용 : 주월사령부 통제하에 맹호, 백마 양개사단이

 

투입된 두 번째의 대규모 작전입니다.

 

 - 결과 : 제9사단은 「푸엣」성, 「손호아」군 「투이안」군

 

 「투이호아」군 일대에서 적을 수직포위공격,

 

우세한 화력 지원하에 장거리 정찰대 운용,

 

지구전으로 탐색작전을 전개하여 월맹군 325사단

 

 예하 95연대와 「혼바」산 북부 산악 및

 

「닌흥」계곡 일대의 18B연대 예하 8대대를 포착,

 

 섬멸하고 전술책임지역의 안전을 도모,

 

7번 B도로를 일시적으로 개통하여 미, 월군의

 

보급후송작전을 지원 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231명, 포로 30명,

 

귀순 1명, 소화기 118정,

 

 공용화기 49정 기타 많은 실탄  및 장비를 노획

 


7. 백마 9호 작전

 

- 일시 : 1968. 5. 5 ~ 6. 7

 

- 내용 : 대규모 사단 작전으로서 선행작전으로

 

1단계, 2단계로 구분 실시되었습니다.

 

- 결과 : 선행작전은 적을 기만하기 위하여

 

예정 작전지역으로 적을 유인하기 위한

 

작전이었으며, 제1단계는 「혼바」산과

 

「슈오이카오」계곡일대에서, 제2단계는 「혼슈」산 일대에서

 

지금까지 한.월군 공히 발을 디디지 못한 험준한 정글과

 

산악지대를 기만과 전격적인 기습을 달성하여

 

 「칸호아」성 「베트콩」위원회 및 그 예하부대를

 

 소탕하고 월맹군 18B연대 본부와

 

 그 직할대 및 「혼슈」지역

           

생산대원을 포착, 섬멸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370명, 포로 6명, 귀순 19명,

 

 소화기 147정, 공용화기 8정

 

기타 많은 서를 노획

 

8. 독수리.도깨비 6호 작전

 

- 일시 : 1968. 4. 5 ~ 4. 7

 

- 내용 : 백마 제28연대 7개중대가 「투이호아」

 

서남방「푸록」부락에 침투한 월맹군 95연대

 

 4대대 및 6대대와 지방 게릴라를 포착,

 

섬멸하기 위하여 실시간 작전입니다

 

- 결과 : 백마 제28연대는

 

7개 중대를 공수기동하여

 

적의 퇴로를 완전 차단하고 주력을

 

 완전 포위하여 총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 전과 : 월맹군 중대장을 비롯하여 24명의

 

포로와 귀순 2명, 적사살 236명과 소화기 103정

 

기타 많은 포탄을 노획

 

 

8. 철마 3호 작전

 

 - 일시 : 1968. 3. 14 ~ 3. 27

 

- 내용 : 「캄람」서쪽 15킬로미터 지점의

 

험준한 원시림으로 쌓인 「따루아」산 일대에서

 

「캄람」과 「나트랑」간에 위치한 연합군의

 

군사시설을 위협해 오던 적의 중간 기지를

 

분쇄하기 위한 작전입니다.

 

- 결과 : 이 작전의 특징은 헬리콥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2개대대 병력이 도보로 침투하여 완전

 

기습을 달성하였습니다.

 

작전결과 적의 병참기지를 탈취하여 많은 쌀과

 

돼지, 포탄과 장비를 노획하는

 

 전과를 획득하였습니다.

 

 

9. 도깨비 19호 작전

 

- 일시 : 1970. 10. 14 ~ 10. 21

 

- 참가부대 : 제9사단 제28연대

 

 - 적군 : 월맹군 75공병중대, VC, DK-3중대, C-19중대

 

 - 활동개요 : Hon Ca(산)과 Suoi Cai(계곡)에서

 

7B도로에 빈번하게 출몰하면서 차량을

 

기습하는 적을 탐색격멸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55, 개인화기 23정, 공용화기 4문

 

- 손실 : 전사 5명, 부상 8명

 

10. 박쥐 25호 작전

 

- 일시 : 1971. 1. 30 ~ 2. 5

 

- 참가부대 : 9사단 29연대

 

- 적군 : 월맹군 포병 제95중대, 닌호아군 VC

 

- 활동개요 : 닌호아로부터 Ban Me Thuot에

 

이르는 21번 도로를 위협하고 있는 적의

 

 집결지를 기습하여 포위 격멸함으로써

 

TAOR내의 안전을 기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31명, 용의자 24명,

 

개인화기 6정, 공용화기 6문

 

 - 손실 : 부상 1명

 


11. 동보 15호 작전

 

- 일시 : 1971. 3. 22 ~ 4. 2

 

 - 참가부대 : 9사단 30연대

 

- 적군 : Khanh Hoa성 VC 위원회 및 지방 VC

 

- 활동개요 : Hon Giu(산)지역에 잠복한 적이

 

 1번 및 420번 도로를 파괴하고 수송

 

차량을 기습하므로 즉시 보병 3개대대를

 

전개하여 정밀 탐색으로 격멸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83명, 개인화기 29정, 공용화기 2문

 

- 손실 : 전사 1명, 부상 1명

 

 12. 도깨비 20호 작전

 

 - 일시 : 1971. 4. 25 ~ 5. 9

 

 - 적군 : 「푸엔」성 VC

 

- 활동개요 : 연대는 크메르 및 라오스부터  투이호아로

 

 이르는 중요한 요충지인 Nui Dak(산)

 

근거지를 두고 유동하는 적을 포위 공격하여

 

지역내의 안전을 도모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267명, 개인화기 65정, 공용화기 7문

 

- 손실 : 전사 9명, 부상 14명

 

 

 13. 박쥐 26호 작전

 

 - 일시 : 1971. 6. 22 ~ 7. 6

 

- 참가부대 : 9사단 29연대

 

- 적군 : 월맹군 포병 제95대대 Khanh Hoa성 VC

 

- 활동개요 : 나트랑 서북쪽에 있는 Hon Giu(산)과

 

혼비산 일대에서 기지를 구축하고있는

 

적을 선제공격함으로써

 

적의 출몰을 봉쇄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227명, 개인화기 115정, 공용화기 3문

 

- 손실 : 전사 5명, 부상 7명

 

 14. 동보 17호 작전

 

- 일시 : 1971. 7. 11 ~ 7. 26

 

- 참가부대 : 9사단 30연대

 

 - 적군 : VC, KM-407대대

 

- 활동개요 : 캄람과 지근거리에 있는

 

 Nui Mo Hon(산)일대의 분지를 이용하여

 

반 영구 기지를 구축하고 있는 적을 격멸코자

 

 공수기동으로 선제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245명, 개인화기 126정, 공용화기 11문

 

 - 손실 : 전사 1명, 부상 3명

 

 


15. 도깨비 21호 작전

 

- 일시 : 1971. 8. 10 ~ 8. 24

 

- 참가부대 : 제9사단 28연대

 

 - 적군 : 월맹군 제5사단 18B연대

 

예하 2개중대 및 지방 VC

 

- 활동개요 : 투이호아 서북쪽에 있는 Nui Dak(산)과

 

 Ong Nom계곡에 근거지를 두고

 

하계공세를 준비하고 있는 적을 공수기동으로서

 

포위한 다음 이를 2단계로 탐색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297명, 포로 28명,

 

개인화기 27정, 공용화기 22문

 

- 손실 : 전사 3명, 부상 14명

 

 

16. 동보 18호 작전

 

 - 일시 : 1972. 1. 7 ~ 1. 25

 

 - 참가부대 : 9사단 30연대

 

- 적군 : Khanh Hoa(성) VC

 

- 활동개요 : 나트랑 서쪽 산악지의 혼쥬산 일대에

 

 다시 침습하여 구정내지 춘계공세를

 

 준비하고 있는 적을 포위와 탐색전을

 

2단계로 전개하여 지역내에 있는 적을

 

격멸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124명, 개인화기 80정, 공용화기 7문

 

- 손실 : 전사 2명, 부상 10명

 

17. 박쥐 27호 작전

 

- 일시 : 1972. 3. 18 ~ 4. 5

 

- 참가부대 : 9사단 29연대 및 수색중대

 

- 적군 : VC, K-65중대, VC, C-7중대

 

 - 활동개요 : 연대서쪽 Nui Hon Ba(산)을 중심으로

 

 출몰하고 있는 적은 1번 도로상에서 운행되고

 

 있는 우군 차량을 자주 기습하므로 공격부대와

 

차단부대로 나누어 적을 격멸하였습니다.

 

- 전과 : 적사살 53명, 포로 4명,

 

개인화기 28정, 공용화기 2문

 

 - 손실 : 부상 7명

 

 

18. 성마 72-1호 작전

 

- 일시 : 1972. 7. 16 ~ 8. 4

 

 - 참가부대 : 9사단 28, 29, 30연대

 

- 적군 : 월맹군 제5가단 예하 K-13대대,

 

 제96대대, 지방 VC

 

- 활동개요 : 월맹군 춘계공세 이후 월남군 반격작전에

 

 보조를 맞추고 철군을 앞둔 한국군의

 

마지막 사단급 작전으로 적의 정예부대를

 

격멸하여 월남군의 사기를 진작시켰습니다.

 

 - 전과 : 적사살 637명, 포로 9명,

 

귀순 11명, 개인화기 206정

   

- 손실 : 전사 21명, 부상 32명


 

 

 

 

 

 

백구부대 (해군 수송전대)-바다의 제왕
The Naval Transport Group



주월 한국군 파월초기부터

 

 해상수송 임무를 맡은 해군의 활약은

지상군들의 눈부신 전과를 올리는

 

 힘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사이공에서 다낭까지 800마일 해상항로를 따라

 

 탄약과 중장비 등의 해상수송임무와

의료및 대민지원사업 및

 

 민사심리전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1965년 3월4일 한국함대로부터

 

LST 1척 812함이 파월되어

비둘기 부대에 편입된 후

 

해상수송임무를 개시하였습니다.

 



1966년 3월15일 LST 2척,LSM 2척을 증파하면서

해군 수송전대 백구부대로 개칭하고,

 

비둘기부대에서 배속 해제됨과 동시에

주월한국군 사령부 직할대로 승격되어

 

해상 수송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1969년 8월29일 월남 해군본부로부터

 

쿠롱(CUULONG)기지로 이동하였습니다.

 


 

은마부대 (공군 지원단)-하늘의 보라매
The Aerial support Group


1967년 7월 1일 탄손누트 공항에서

대한민국 공군의 은마부대는 4대의

 

 C54기를 주축으로 월남전에서

공중수송의 지원활동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하여 결단식를 가졌습니다.



창설경위 : 주월한국군사령부 공군지원단은

자유세계 안전과 보호를 위한

 

 자유우방군의 일원으로

월남전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주월한국군 지상군 작전을 지원하기 위하여

1966년 6월1일 야전사령부에

 

전술 항공지원대를 설치하여 수행하던

전술 항공지원 업무와 주월한국군 사령부에서

 

 담당하던 항공수송 지원업무를

1967년 7월1일 C-46 미 항공기 파월을

 

 계기로 보다 효율적인 작전지원과

부대운영을 위하여 분산되어있는 모든 기능을

 

통합운영코져 공군지원단이 창설되었습니다.

 

 

 

▣ 영국 런던 타임즈에서 바라본 월남전의 한국군 ▣


If the Korean forces had taken charge of the whole of South Vietnam
or the U.S forces had drawn a lesson from "Go Boi",
the Vietnam war would already have been won.
When one takes a ride in a car for 96 kilometers in the pitch-back
dark,there is not a single sign of rifle shooting or ambush attack.
None but the Korean soldiers could do so anywhere in South Vietnam
-The London Times.


만일 한국군이 전 월남을 장악하였거나


미군들이 "고보이" 교훈을 배울 수

 

있었더라면 월남전은 벌써 이겼을 것이다.


칠흙같은 어둠속을 96키로나 자동차로 달려도


총격도 복병기습의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월남 지역의 그 어느곳에서도

 

 그와 같이 할자는 한국군 이외는 아무도 없다.

- 영국 런던 타임즈에서.


※ "고보이 교훈"이란?...

맹호부대 포병대대가 퀴논(Qui Nhon)근처

 

 고보이(Go Boi)평야에


건기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고보이댐을

 

 건설해주는 공사를 했습니다다.


열대지방 베트남의 2모작 농사에서

 

3모작이 가능하게한 퀴논 댐이었습니다.


전투부대가 대민지원을 하는것을

 

 보고 영국기자가 놀랐다고합니다..

 




▣ 미국 저널지의 시각으로 본 월남의 대한민국 국군 ▣


What would happen of six hundred thousand Koreans were exclusively
conducting the Vietnam war? only fifty thausand Koreans repelled the
enemy from their strategic responsibility area just overnight during
the enemy''s Tet offensive...... The central coast area which Viet Cong
had been occupying since their anti-French war is now completely
under Koreans''s control.
- Evansille Journal, U.S.A- March,1966


월남의 모든 사람을 다 제쳐놓고

 

60만 한국군에게 전쟁을 맡겨 보는 것이 어떨까?


5만에 불과한 한국군은 적의 구정 공세

 

 기간중 전술 책임구역 내에 침입한 적을


단 하룻만에 격퇴했다...... 


베트콩의 항불전쟁 이래

 

베트콩에 장악되어 있던


중부 해안 지대가 지금은 한국군에

 

의하여 완전히 통활되고 있다.

- 1966.3 미국 에빈스빌 저널-





▣ 미 뉴스위크지가 바라보는 한국군 ▣

The Americans in South Vietnam give the Koreans top markes both as
fighting men and for their pacification efforts.
Indeed, some Americans who have worked with the ROKs believe that
it would not hurt the U.S to study their methods.
"It''s a little bit like being a teacher and having an extraor dinary student."
mused ond U.S offical
"You come to class one morning and discover he has gone past you."
-News week 10 April 1967 -


월남에 있는 미국인들은 전투에

 

있어서나 평정사업에 있어서나


한국군을 최고로 높이 평가한다.


사실 한국군과 함께 작전을 수행해본

 

일부 미군들은 미군이 한국군의 방법(전술)을


배워도 좋으리라고 믿게 되었다.


"마치 미국은 한국이라는 비범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된 것과 같다.


어느날 아침 교실에 와서 선생님 미국보다

 

학생인 한국군이 앞서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과 같다." 라고 한 미국 관리는 심각하게 말했다.

- 1967.4.10 뉴우스 위크지에서 -





▣ 67년 미국 옵져버지가 바라보는 한국군대 ▣

It was in June 17 years ago that the North Korean Communists,
attacking across the 38th parallet, began a full-scale invasion of
the Republic of Korea. The South Korean Army, at that time,
was much like the South Vietnamese Army of today.
Now, many years later and many miles form the Pusan perimeter,
the Bay of Inchon, the frozen waters of the Yalu and the hills of
Chorwon.the ROK Armed Forces are again facing Communists in combat.
- The Observer 24 May 1967 -


공산군이 38선을 넘어 남침할 당시

 

이 한국군은 지금의 월남군과 같았다.


그러나 17년이 지난 지금,

 

한국군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떠나,


철원의 고지를 떠나, 그리고 인천항,

 

 부산항을 떠나 수천만리 이역땅에서


다시 공산주의자와 싸우고 있다.

- 미 옵져버지 기사에서..1967. 5.24 -






▣ 뉴욕 타임지에서 노획한 베트콩 지령문 ▣

Captured Viet Cong orders now stipulate that contact with the Koreans
is to be avoided at all costs unless a Viet Cong victory is 100% certain.
Never defy Korean soldiers without discrimination, even when are not
armed, for they all well trained with Taekwondo.
- An excerpt from an enemy directive seized


노획한 베트콩 문서에 의하면

 

베트콩은 100% 승리의 확신이 없는 한


한국군과의 교전을 무조건 피하도록

 

 지시가 되어 있다.


한국군은 모두 태권도로 단련된

 

군대이니 비무장한 한국군인에게도


함부로 덤비지 마라.

- 1966.7.22 뉴욕 타임지에서-





▣ 미국 뉴우스 앤드 월드리포트지 기사 ▣

U.S has found a valuable ally in the South Koreans.
They''re rugged fighter- and more. As "combat politicians" the ROKs make
of their Oriental kinship whth Vietnamese.
Americans feel they can learn some lessons.
- U.S News & World Report 15 May 1967 -


미국은 한국이라는

 

귀한 동맹국을 찾아 내었다.


그들은 건강한 투사,그 이상이다.


싸우는 정치인들로서 한국인은 동양에서

 

월남인들과 가장 친근해졌을 뿐더러


미국은 어떤 교훈을 한국으로 부터

 

배울 수 있으리라 느끼게 되었다.

- 미국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 1967. 5.15 -





▣ 사이공 포스트가 바라보는 한국군 ▣

Koreans killing ratio has been 15:1, and they drove out the enemy from
the swamp area of Vin Dhing, where both the French and Vidtnamese
were not successful during the past 20 years.
The basic characteristic of Koreans is their unending fighting spiril.
It is not at all surprising that the enemy is avoiding contact with
the Tiger,White Horse and Blue Dragon Warriors.
Capured enemy documents indicate that the VC are instructed not
to make contact with Koreans.
- Saigon Post March,20,1968 -


한국군은 우군 피해에 대해서 15:1 이라는

 

 비율로 적을 사살했으며,


프랑스와 월남이 20년간 시도하다

 

실패한 빈딩성의 늪지 해안으로부터 적을 추격,


격파시켰다.


기본적인 한국인의 특성으로

 

지적할 만한것은 불굴의 정신이다.


맹호,백마,청룡용사들에 대하여 적이 조심하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전혀 없다.


노획된 베트콩이나 월맹군의 문서에 의하며

 

한국군과는 가급적 접전을 피하도록


전 병사들은 명령 받고 있다.

- 사이공 포스트 1968년 3월 20일 -





▣ 월남 띠엔 반지가 바라보는 한국 군대 ▣

The central area of this country where ROK Forces are stationed is
best secured area.
ROK soldiers are brave enough to guard the area of their responsibility
against the enemy, who is skilful in particualr tactics.
They are also mutually understandable to the regional people,
and experienced ROK surgeons kindly take medical care of the people.
- Tieng Vang(New Paper) 17 Feb 1968 -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중부는 가장 안전한 곳이다.


한국군은 아주 특술한 전술을 가진 적에

 

 대하여 방심하지 않고 경계를 하고


있는 대담한 군인이다.


또한 지방 농민과 잘 어울리고 농사일에는

 

 모도 심어주고 우수한 군의관은


대민 진료를 열심히 해주고 있다.

- 월남 띠엔.반 지에서 1968. 2.17 -





▣ 리챠드 닉슨이 한국군에 대하여 ▣

The enormous contribution which your country has made towards
a free future for South Vietnam is tangible proof that
both the confidence and assistance.
America placed in Free Korea 17 years ago was the wisest of investments.
- Richard Nixon 17 Dec 1967 -


자유 월남의 장래를 위한 한국이 이룩해 온

 

 커다란 공헌은 17년전 미국이 한국에


심었던 신뢰와 협조가 헛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명이 되고 있다.

-1967.12.17 리차드.닉슨 -







"한국군을 만나면 무조건 피하라! 특히 "맹호"를 만나면 


모든 작전을 취소하고 철수하여 병력과

 

 장비등 인민의 재산을 보존하라! (호지명) 

 

 

 



"대체 한국군은 어찌이리 용맹한가?

 

 

 

 백마의 병사들은 자신의 목숨조차도 아깝지 않단말인가?


나는 이것을 단순한 "군인정신"이라 인정할 수 없다! (호지명) 






"12년간 수백만발의 포탄을 쏘아대고,

 

수천명의 전사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과 월남군, 미군에게마저 실패와

 

좌절을 안겨준 공산군의 요새를 


한국해병대가 단 두시간만에 점령했다,

 

대체 우리연합군에게 무엇이 문제였단 말인가?" (르몽드) 


-- 2시간의 전투결과보고는 단 세마디..

 

“목표제압완료, 아군피해 무, 생포한 적 압송중!!”






한국군의 전술과 미군 전술과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한국군은 적으로부터 사격을 받으면

 

즉각 2개 내지 그 이상의 방향에서 공격을 가하여 


베트콩이 도망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미군은 적으로부터 


사격을 받으면 뒤로 물러나 포병지원을

 

요청하거나 공중폭격을 요청한다. 


그 다음에 공격을 하게 되니

 

적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만다.


- 미국 하원의 증언록에 실려있는 하원 국방위원장의 증언 - 

 



 

우리한국군은 용병으로 돈에 팔려서

 

 그곳에 간것이 아닙니다.


북한의 군사력, 경제력 등

 

 국력의 우리보다 강했던때..


한국군이 도와주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빼서 보낸다는 미국의 '협조요청'과


 

 

 

월남 부수상이 직접 방한해서

 

간절히 한국군 파병을 요청했고 


게다가 냉전시대 이전 전쟁의

 

첫 희생자로 자유진영의 도움을 받았던 우리가


동일한 희생자가 된 월남을 돕는다는

 

 상기의 복합적인 이유로 파병을 하게 된것이지

절대로 돈에 팔려 간 것이 절대 아닙니다.

 


경제적인 이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원래 전쟁이 일어난 곳엔 피가 흐르고

 

그 주변엔 돈이 흐르는 법입니다. 


한국전쟁을 통해 일본이 일어났듯이

 

우리가 그때 지금정도의 국력만 됐어도

 

 자비로 참전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숭고한 피와 그 시대정신을

 

마음속에 기억하겠습니다.

 

자랑스러운 한국군 보병화기발전사

http://kimssine51.tistory.com/139

6.25치열했던 결사항전 용문산전투

http://kimssine51.tistory.com/84

나라를구한 처참했던 낙동강전투

http://kimssine51.tistory.com/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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