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 영예로운 죽음 영국군의 "해피밸리"전투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한국전쟁에 일어난 전투중
하나로 영예로운 죽음을 맞이한
영국군의 해피밸리전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게요.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모두가
잘아실거라 생각됩니다.
영국은 멋진 근위대가 있고 한때
전세계를 호령했엇으며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작은나라 한국을 위해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파견해준 나라입니다.
낙동강 전투 당시 미 25사단의 마산 방어전이
유엔군 후방을 안전히 지키고 반격의 서막을
울릴 수있게 해줬고 미해병 1사단의 장진호전투가
10만명의 피난민들에게 공산군으로부터
벗어날 수있게 해줬던 전투라면 해피밸리 전투는
1.4후퇴 당시에 중공군으로부터 서울시민들이
안전하게 서울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준 전투입니다..
그럼 자세히 좀 들여다 보도록할게요
1951년 1월 1일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에 밀린 유엔군은
전면 퇴각을 결정하고 38선 이남
서울까지 밀리게 됩니다.
미1군단 예비부대로 있던 영국 29여단이
부랴부랴 서울방어를 위해서 지금의
양주시쪽에 전개하는데 29여단은
그중 얼스터 대대를 장흥면
삼하리일대에 전개시킵니다.
얼스터 대대는 1793년 북아일랜드에서
창설된 부대입니다
제1.2차세계대전에도 참전한 경력도
있는 유서깊은 부대입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얼스터 연대 예하
1대대가 참전하였습니다.
▲ 베레모를 자세히보면 얼스터 부대문양이있습니다.
얼스터 대대를 지원하기 위해서
크롬웰 전차 14대도 함께 지원을
도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한국전쟁 당시 최강의 전차였던
센츄리온 전차가 지원을 와야했지만 삼하리
일대 도로사정이 워낙 안좋아서 한 급수 낮은
크롬웰전차가 지원을 오게된거였습니다.
얼스터를 중심으로 동쪽 송추 쪽에는 퓨질리에
대대가 전개하고 서쪽에는 미군 1개중대가
후방에 글로스터 대대가 예비로 있었습니다.
얼스터 대대는 곧있을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시작하게됩니다.
하지만 중공군은 당초 영국군의 예상과 달리
북쪽이 아닌 서쪽 고양동쪽에서 공격을해
들어왔고 남경수목원 선상의 능선들을
방어하던 얼스터 대대는 밀려 퇴각하게됩니다.
하지만 미공군의 지원과 더불어 반격을 시작하여
다시 능선 진지들을 탈환합니다.
송추쪽에 있던 퓨질리에 대대도 중공군 20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며 중공군의 진격을
막아내며 하루를 더 벌었고 50만명 이상의
서울시민들이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전황은 유엔군에게 불리하게
돌아갔고 서울을 포기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모든 부대에 퇴각명령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서쪽에 있는 미군 중대는 1시간 반만에
곧바로 철수했습니다.
동쪽에 있던 퓨질리 대대는 얼스터 대대보다
1시간먼저철수명령을 받고 철수를하였습니다.
얼스터 대대는 곡릉철교를 지나 아를식물원이
있는 메네미 고개쪽으로 철수하기로합니다.
중공군에게 철수하는것을 들키지 않기위해
소음이 큰 전차부대는 마지막에 움직이기로
하고 치밀하게 철수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좀 일찍 철수를한 미군 1개중대가 있던
고지에 중공군이 점령하고 대기하고 있었고
그들은 영국군이 철수하는걸 다 지켜봅니다.
중공군은 서쪽으로 은밀히 이동하여
영국군의 퇴로를 막고 기습을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철교 주변에서 기습공격을 통해
영국군의 지휘체계를 분쇄시키고
얼스터대원들을 혼란에 빠트립니다.
그리고 난후 아를식물원 쪽 당시 메네미
고개라고 불리던 곳에서도 중공군의 공격이
시작이 되었고 중공군은 수류탄과
로켓포를 이용해 집요하게 크롬웰 전차의
취약한 궤도를 파괴하고 공격을해 14대
모두 전멸 시킵니다.
전차 지원도 없어진 얼스터 대원들은
끝까지 싸웠고 마지막 대원까지 사투를
벌이며 철수를 완료했지만
대대장 포함 157명이 전사하고 20명의
포로가 생겼습니다.
그래도 이들이 정말 영예롭게 전사한이유는
영국군은 대부분이 서쪽을 바라본채
죽어있었다고 합니다.
서쪽에서 몰아치는 중공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는 뜻이었겠죠.
전투가 끝나고 삼하리 마을사람들은 방치된
영국군 시체들을 모아 집단묘지를 몇개
만들어 줬다고 합니다.
그리고...3월
유엔군이 서울을 재탈환하고 중공군은 후퇴를
반복하다가 어느 터널로 숨게 되는데 얼스터대대가
본부로 쓰던 제현궁터널로 숨게된거죠
터널엔 전사한 얼스터 대대의 한이 서렸는지
미공군의 네이팜탄이 정확하게 터널을 맞춰
안에있던 중공군들을 모조리 불태웠다고합니다.
이후 영국군이 다시 해피밸리전투가
있었던 삼하리로 돌아왔고
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흩어져있던
집단묘지들을 메네미고개 쪽에 통합해
추모비를 만들고 묘지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영국군들은 주기적으로 들려서
추모를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휴전이후 얼스터대대
휴해들은 부산에 잇는 유엔공원이나 본국으로
후송되었다고 합니다.
위에 사진왼쪽에 있는 추모비는 방치되다가
이송되었다가 1968년 연대가 개편되면서
사라지자 또 방치되다가 2008년 부대가있던
땅이 개발이 되자 얼스터 노병들은
모금운동을 하였고
이떄 북아일랜드에 있던 삼성전자가
비용을 냈다고 합니다.
▲얼스터대대 노병들모습
(왼쪽분이 해피밸리 전투당시 고지를
방어하던 중대장)
해피밸리전투는 영국에서도 유명한
전투가 아닙니다.
추모비가 장기간 방치된것만 봐도
알수가 있습니다.
한국도 물론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을주민들 외에는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삼성전자가 2010년 지원한일
말고는 크게 움직임이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013년 4월 24일
해피밸리 전적지에서 아일랜드 참전용사
추모행사가 열렸습니다 (30사단장)
▲얼스터 연대마크가 부착된 모자를 쓴
노병이 헌화하는 모습
당시 참전 용사들과 유족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얼스터연대는 영국군인데 영국이아닌 아일랜드
국기가 있는 이유는 얼스터 연대는
북아이랜드에서 태어난 부대였고
아일랜드는 유엔소속도 아니지만 한국전쟁
당시에 영국군 얼스터 연대 소속으로
참전했다고합니다.
2015년 6월들어서 2013년부터 시작된
아일랜드 대사관 주고나 모금운동이 빛을보며
해피밸리전투 안내판 제막식이 열렸습니다.
60년전 그들의 전우와 아버지가
바라보던 그땅에...
늦었지만 그들의 영예로운 죽음을
알릴 수 있게 됐습니다.
▲고향의 흙을 뿌리는 모습
삼하리 일대에서 끝까지 목숨걸고 싸워
전사했던 전우들을 위해서
영혼이나마 행복하라고 전투지역을
"해피밸리(happy valley)"라고 지었다고합니다.
얼스터 대대원들은 수십만명의 서울시민을
공산군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해주었고
영국군으로써 영예로운 죽음을 맞이한
진정한 영웅들입니다.
이밖에도 우리가 잊으면 안될 수많은 영웅들이
있습니다.. 혹시나 고양동 근처를 지나가면
한번쯤들리는것도 좋은방법입일거같습니다.
주소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산90-44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 곳에서
영예롭게 싸우신 아일랜드와 영국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정신에 경의와 존경을 표합니다.
해피밸리전투 안내판 설치를 통해 그날의
역사를 깊이 새기고 조국수호를 위해 몸바친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2015년 6월26일 해피밸리전투
안내판 제막식 기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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