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스파이 엘리 코헨은 이집트에서 태어난 아랍계 유태인으로 1950년대에 이집트에서 스파이로서 활동했을 정도로 철저한 아랍어 및 현지적응력을 보였으나 이집트에선 적발되어 국외추방 당했습니다. 이후 남미를 거쳐 카말 아민 사베트라는 가짜 이름으로 철저하게 신분을 속인 그는 시리아 바트당에 가입하고 비행기 조종을 할 줄 아는 시리아 거부로 시리아 군부에 접근하여 온갖 처신으로 시리아 군부에서 입지를 다졌습니다.

 

 

시리아에선 이집트와 다르게 바트당을 좌우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습니다. 그 결과 시리아가 요단강 상류를 바꿈으로써 이스라엘의 물 공급을 막으려는 계획을 알아냈습니다. 그는 또한 팔레스타인들이 게릴라전을 통해 이스라엘 북쪽을 강타하려던 세부 계획 정보를 이스라엘에 제공했습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군 시리아의 계략을 막아내 시리아내 거점을 폭격했습니다.


1964년 바트당의 신설된 최고위직에 올라 골란 고원의 전략적 요새들을 촬영한 사진을 손에 넣었으며 이 정보를 비밀리에 이스라엘로 보내어 마침내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난공불락이라고 하던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이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엘리 코헨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연전연패에 화가난 시리아는 혹시나 하여 자국 인사들을 면밀히 조사했고, 그 과정에서 코헨이 보내던 무선통신이 결국 들키게 됩니다. 1965년 1월, 시리아는 소련의 기술협조로 그를 잡았는데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엘리 코헨은 국방차관까지 오른 최고위직이었습니다. 당시 시리아 군·정계는 난리가 났습니다.


시리아의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그는 이스라엘군을 교란시킬 가짜 통신을 보내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5월 18일 수만여 시리아 군중 앞에서 야유 속에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를 구하고자 막대한 돈을 주거나 시리아 스파이 10명과 교환하자는 여러가지 제의를 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당시 미국이나 프랑스도 중재를 나섰으며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게 그를 무기징역으로 살 수 있게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친미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조차 이런 요청은 무시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엘리 코헨의 시체라도 돌려달라고 했지만 시리아가 이마저도 무시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아직도 엘리 코헨을 영웅으로 부르고 있으며 죽은 지 50년이 넘은 지금도 그의 시체를 돌려줄 것을 요구하지만 시리아에선 하도 오래되어서 이제 국내에서도 어디에 묻혀진지 사람들이 모른다고 합니다. 당시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둔 것은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였습니다. 그 뒤에 전설적인 스파이 엘리 코헨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