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후 러시아의 경제 사정이 극도로 나빠지자 러시아 해군은 심각한 제정난에 직면하게 됩니다. 1993년 러시아 정부는 해군에게 함정운용 척수를 줄이라는 지시를하게 됩니다. 이에 그라모프 당시 러시아 해군 사령관은 러시아 함대 중 가장 함정 유지비 지출이 큰 태평양 함대에 함정 매각 명령을 내리고 이 매각 명령안에는 민스크(Minsk) 항공모함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키예프(Kiev)급 2번함 민스크 항공모함은 러시아 태평양 함대 소속으로 만재배수량 4만 5500톤, 길이, 274미터 전폭, 32.6미터, 전속 32노트로 순항이 가능하고 함재기로는 YAK-41,38 수직 이착륙기 22대와 KA-27 헬기 16대를 운용하며 승조원 1,200여 명이 탑승하는 항공모함이였습니다.

 

 

그리고 냉전당시 미해군이 민스크 항공모함을 껄끄럽게 생각한 이유는 무장 때문이였는데 당시의 미국항모는 몆기의 대공미사일을 빼고는 자체 무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민스크 항공모함의 경우 76.2mm 함포 3문에 그 앞은 바잘트 대함미사일 센드박스 대함미사일 12발에 고블렛 대공미사일 40기와 대잠미사일 12기 그리고 결정적으로 센드박스 대함미사일엔 상황에 따라 핵을 장착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 해군은 민스크를 일반 항모로 분류하지 않고 중순양 항공모함으로 분류했었습니다. 사실상 순양함급 전투함에 비행갑판을 붙여놓은 것과 비슷했습니다. 그리고 민스크는 1978년에 실전배치된 항모로써 15년 밖에 운용하지 않은 함이였습니다. 보통 항모는 짧게는 30년 길게는 45년까지 운용하는데 민스크는 평균 항모 운용년수의 절반도 안된 상황에 매각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던겁니다.

 

 

러시아 태평양 함대 이반 칼리반 사령관은 "보급품 부족현상이 있지만 당분간 버틸만큼 연료비축분을 가지고 있으며 소속함정들은 계속 작전하고 있다"고 항변했지만 민스크에 들어가는 연간 1억 500만 달러의 유지비를 댈수 없다는 러시아 정부는 매각을 추진했습니다. 그렇게 멀쩡한 상태의 민스크 항공모함을 매각한다는 공고가 뜨자 엄청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중국 인도등의 33개 회사들이 입찰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중엔 한국의 영유통이란 중소 무역회사도 있었는데 영유통은 국회 외무통일위 소속 국회의원을 통해 러시아 하원 의원들을 소개받았고 그들을 통해 러시아 콤파스사에 접근했습니다. 러시아 콤파스사는 구소련 퇴역 장성들이 설립한 회사로 민스크의 판매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회사였습니다.

 

노보로시스크(Novorossiysk)항공모함


당시 중국은 유령 민간회사를 만들어 중국정부가 나설만큼 적극적이였는데 러시아 콤파스사는 한국 영유통의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해 1월 대형 화재가 나서 항구에 정박해있던 민스크 항모와 동형함 노보로시스크(Novorossiysk)까지 영유통에 매각하는걸로 결정이 났습니다. 키예프급 3번함 노보로시스크의 경우 취역한지 11년 밖에 되지않은 민스크 보다도 더 운용기간이 짧은 항모였습니다. 당시 안기부장은 "러시아가 6.25전쟁에서 간접적으로 싸웠던 한국에 군사 장비를 판 것은 순전히 영유통의 수완"이라고 말하였는데 정말 기적에 가까웠습니다.

 


그렇게 1994년 11월 러시아 국방부는 항모 2척의 한국 판매를 승인하게 됩니다그런데 이때부터 도쿄신문과 NHK가 달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도쿄신문은 94년 11월 러시아 국방부가 한국 판매 승인을 발표하기도 전에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1995년에는 사실상 민스크와 노보로시스크는 현역 항모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NHK가 러시아쪽 시설 관리자에게 돈을 주고 민스크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샅샅이 촬영을 하여 방송에 공개함으로써 일본은 물론 러시아 정부까지 당황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민스크 항공모함의 실제는 고철덩어리라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주요 장비들이 멀쩡했습니다.

 


일본의 탐사취재 보도가 나가고 세계적으로도 꽤 관심을 일으키게 되었고 서방의 언론에서도 한국이 구소련의 항모를 사들여 재 취역 시킬것이라는 중심의 보도가 나가기도 하면서 러시아 정부는 압박을 느꼈는지 민스크의 주요 시설물들을 필요 이상으로 철저히 파괴해버립니다. 당시 김영삼 정부와 국방부는 개인 무역회사의 거래여서 러시아의 항모 파괴를 막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한국으로 들어온 뒤 바라본 민스크 항공모함은 정말 꼼꼼하게도 부셔진 모습이였습니다. 2차세계대전 전에 영국의 고철항모들을 수입해서 뜯어보고 자신들의 항모를 건조했던 경험이 있는 일본으로서는 많이 신경쓰였던 걸로 생각됩니다. 당시 영유통이 수입한 가격은 민스크 항모는 460만 달러(당시 환율로 한화 약 37억원) 노보로시스크 항모는 430만 달러(34억원)으로 20년전 물가를 생각해도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이였습니다.

 

 

참고로 국산 K2(흑표) 전차 1대 가격이 50억원을 넘는 것을 감안할 때 항공모함 1척이 전차 1대 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사들인 것입니다. 러시아가 이 항모의 주요 무기와 전자 장비 등을 제거하고 t당 170달러의 고철가격으로 팔았기 때문이였습니다.

 

 

1995년 10월 민스크와 노보로시스크는 러시아 소비에츠카 가반 항구에서 러시아 태평양 함대 전용 예인선으로 5일을 항해해 포항시 양포항으로 들어왔는데 민스크와 노보로시스를 맞이한 것은 영유통 회사의 직원들이나 항만 관계자들이 아닌 지역 시민단체와 환경단체 들이였습니다.

 


민스크와 노보로시스크가 항구에 접안시 돌과 파이프를 던지고 항모쪽을 향해 소변을 누는등 반대가 극렬했다고 합니다. 콤파스사 소속으로 특수 예인선을 몰고온 예비역 이고르 마호닌 제독(당시 78살 해군참모차장 역임)은 웃통을 벗고 항구로 나가 "다 덤버라"라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건재했던 태평양함대의 주력 항공모함이 갑자기 한국으로 쫒겨와 고철로 분해 될 지경에 시민단체들이 러시아말로 "로스께 꺼져라"라고 소리치니 참을수 없었던 겁니다.

 


1996년 초 노보로시스는 포항시 남구 장기면 앞바다에서 포항제절의 주도로 해체되게 됩니다. 당시 노보로시스크의 비행갑판은 티타늄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막상 해체해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보기힘든 특수강이였다고 합니다. 노보로시스크는 그렇게 해체됐지만 민스크는 시민단체와 환경단체의 극렬한 반대로 포항에서 해체작업이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이후 민스크는 경남 고성으로,  진해 잠수함 부두 옆으로 여기저기 쫒겨 다니게 되었는데 사실상 시민단체들과 환경단체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어디에서도 해체가 어려워진 영유통은 1996년 8월에서 10월에 걸친 협상을 통해 러시아 국방부로부터 용도변경 허가를 받아냅니다. 조덕영 영유통 회장은 노보로시스크 해체때 겪은 온갖 어려움에 민스크를 다시 해체하려니 엄두가 안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문정수 부산시장이 민스크를 해상호텔로 사용하는 것에 관심을 나타냈지만 정작 정말 추진하겠다는 업체가 나타나지 않아 무산되었고 당시 민스크는 해군의 배려로 해군작전사령부의 한 곳에 정박되 있는 상태였는데 조덕영 영유통 회장은 이제 해군에 눈치도 보이고 하루에 1억원씩 까먹으며 동해와 서해 그리고 남해바다를 쫒겨다니며 유랑하는 민스크를 보고 차라리 동해에 수장시켜버리고 싶다고 눈물을 글썽거리며 힘들어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IMF가 터지고 투자자를 찾지 못한 영유통은 1998년 제3국으로 매각을 추진하게 됩니다. 그리고 1998년 8월 민스크 항공모함은 한국에 온지 3년 6개월 만에 중국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이후 광저우에서 16개월 동안 내부수리및 개조작업을 받고 해상 테마파크가 되서 현재 중국 심천에 있습니다.

 

 

당시 민스크와 노보로시스크 경쟁입찰에서 탈락한 중국 지도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크라이나가 건조 중이던 키예프급 후속형인 쿠즈네초프(Kuznetsov·소련 해군의 아버지)급 항모를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개조를 통해 랴오닝함으로 탄생시켰으나, 우리는 환경단체들의 집요한 반대로 항모 2척 가운데 한 척을 중국으로 팔아넘겼습니다. 

 

 

대한민국은 소련 붕괴 후 굴러들어온 ‘러시아 보물’을 놓쳤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최초로 수유권을 가졌던 항공모함의 운명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