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드레스덴 폭격은 영국이

 

 독일의 도시 '드레스덴'에 가한 폭격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영 연합군

 

 폭격기대의 대규모 폭격작전이구요

 

 종전 직전인 1945년 2월 13일~2월 15일

 

 걸쳐 행해졌구요

 

 유럽 전선의 폭격 작전 중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작전이자

 

가장 크게 논란을 일으키는

 

작전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피난민들이 넘쳐나던 도시에 폭격을 가해

 

엄청난 수의 민간인들이 죽었죠

 

그당시 드레스덴에는 폭격이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피난민들이 엄청 모여있었다고합니다..

 

 

 

드레스덴은 작센공국의 수도로,

 

유럽의 보석이라 할만큼

 

아주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1945년 2월 13일

 

밤 10시경 영국본토를 출발한

 

 영국의 "랭캐스터 폭격기"

 

234대가 드레스덴 상공에 



들어서고, 그 곳은

 

유럽의 보석이 아닌 불지옥으로

 

 순식간에 바뀌어버렸습니다.

 

 

 

도시 전체에 카펫를 깔듯 빈틈 없이 폭탄을 쏟아

 

붓는다는 뜻의 "융단 폭격(Carpet bombing)"

 

이라는 말이 생겨난 현장입니다. 

 

 초흥행을 한 대작영화를 일컫는 신조어

 

 "블록버스터(Blockbuster)"라는

 

 말도 이 썬더클랩작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어떻게 유래 된 것이냐,  

 

폭탄 1발이 도시의 한구획(Block)을


날려(Bust) 버릴  만큼 엄청난 화력을 가지고있어

 

 Block+Buster라는 말이 탄생했습니다.

 

 


234대의 랭캐스터 폭격기들의

 

폭격이 다끝난 후,

 

3시간뒤 무려 500여대의 영국폭격기가

 

추가폭격을 감행했습니다.



 

 

< 드레스덴에 폭격을 감행하는 미 제 384 폭격기 편대 >

 

그렇게 다끝나는가 했지만 끝이 아니었고 


이번엔 미국의 B-17플라잉

 

포트리스 폭격기 311대가 두차례에 걸쳐 


파괴하지 못한 나머지 구역을

 

 깔끔하게 없애 버렸습니다. 

 

<드레스덴 폭격 장면>



작전명 『Thunder Clap』..

 

이름처럼 천둥소리와 함께

 

유럽의 아름다운 보석이 새까만 잿더미로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 라이프매거진에 실렸던, 폭격 전의 드레스덴 >

< 폭격 후 모습 >

 

 

폭탄이 터질때에는 1000도씨의

 

온도로 도시전체가 불타오르고

 

시체들은 녹았다고합니다..

 

사람들은 녹은도로에 다리가

 

붙어 떨어지지않는다며

 

괴로워했다고합니다..



 

 

< 폭격으로 인해 잿더미로 변한 드레스덴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복원한 모습 >


 당시 레스덴의 인구는 총 64만,

 

도시의 80%이상이 파괴되었고

 

 2만 5천명~ 6만명의 사상자를 냈다는

 

연합군의 집계를 믿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방공호에서 발견된 새까맣게 타버린 여자의 시체>

 

시민의 절반이상이 폭격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주장도 


꽤나 설득력 있을만큼 3차공습에서는

 

피난민을 겨냥한 기총소사도 불사

 

 했다고 전해집니다.

 

 

<유모차에 있는 아기들을 돌보다 같이 타죽은 엄마>


 

 

 

 

 

작전의 지휘관은 영국 하더 해리스 장군으로

 

 1942년 퀼른 공습 ,

 

43년 함부르크 대공습, 드레스덴을 포함 


총 60만명에 이르는 사상자는 낸 인물입니다.

 

"나는 사람을 죽이라고 이자리에 앉혀졌다"

 

"적국의 민간인이라도 적은적이다.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그런적을위해 눈물을 흘릴필요없다."

 

이런말을 할정도로

 

그는 아주 악명이 높았다고합니다.

 

그래서 별명이 '폭탄해리스'또는

 

 '영국의악마'로 불러지기도합니다.

 

<화장하기 전의 시체들을 찍은 사진>

 

이 작전이 소련군의 독일 진군을

 

 도와주기 위한 방편이라 했지만 


지금도 이작전에대한 논란이 일고 있으며,

 

융단 폭격으로 독일군의 사기를 꺾는 의도, 혹은 


영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독일의 도시하나를

 

 논스톱으로 폭격하여 연합군의 작전수행,비행능력을 


보여주려는 야심이었다는

 

 말도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전쟁후 자신의 폭격전술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크게 실망한 해리스는 1948년 남아프리카로 건너갔고

 

1953년 까지 남아프리카 해운 회사에서 근무 하였습니다.

 

 영국 공군 교회 앞, 해리스의 동상을 세웠는데

 

동상의 제막은 엘리자베스 왕대비가 하였습니다.

 

제막당시 누군가가 "해리스는 전범이다!"라고

 

소리를 쳐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동상은 반대자들의 위협속에서

 

24시간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아서 해리스의 동상에 빨간색

스프레이로수치스럽다는 뜻의 Shame이 적혀있습니다.>


 

 

 

 

< 무참히 짓밟힌 드레스덴을 바라보는

여인상,친철을 의인화한 동상이라고한다 >

<폭격후의 드레스덴 희생된 시민들 >

 

< 어느 지하실에서 소사한 일가족들.. >


 

 

 

<현재의 드레스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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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

역사는 사기꾼들로 가득차 있다.

 

그가 살아있으면 우린 죽는다.

 

 그렇다면 그가말한 사실만 다 기록되고

 

우리 것은 기록되지 않겠지.

 

-존 프라이스 대위-

 


 

출처 및 참고자료:구글.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