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에 참여한 전설적인 미국인 용병부대 플라잉 타이거즈
1937년 7월 7일 일본의 중국 침략으로 시작된 중일전쟁 당시 중국은 공군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으나 그 성과는 미미하기 그지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당장 서류상의 비행기 숫자와 실제 보유한 비행기 숫자가 완전히 다른 것은 기본인데다가 파일럿도 서류상에 이름만 걸고 실제로는 딴 일을 하는 부잣집 자제들이 상당수라서 실질적인 전투력이 바닥을 뚫을 정도로 낮았습니다.
반면 일본 육군과 해군은 중국 전토를 제 집 안마당처럼 날아다니며 폭격을 가하고 큰 피해를 주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중극은 다른 나라에서 파일럿과 전투기를 사올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리고 당시 미국에서도 곧 전쟁이 벌어질 것이란 예감을 하고 있었기에, 일본을 견제할 방법으로 미국인 파일럿과 전투기들을 보내는데 합의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여러가지 이류로 반일감정이 높았으며 중국에 대한 동정적인 여론도 형성되고 있었기에 미 정부에서 미국인 지원단이라는 이름 하에 조직을 편성하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공식적으로 전쟁에 참가한 것이 아닌 만큼, 군인은 보낼 수 없었기때문에 미군은 파일럿들에게 전역 신청을 받은 뒤, 민간인 신분으로 P-40 워호크 전투기의 제작사인 커티스사의 직원으로 '취업'시켜 중국에 '서비스'차 보낸다는 명목으로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플라잉 타이거즈라는 애칭으로 중국으로 모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모인 대원들은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미군도 전쟁에 대비하여 우수한 파일럿들은 놔두고 골칫덩어리들을 우선적으로 전역시켜 중국으로 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기본급 600달러, 편대장 650달러, 대대장 750달러에 격추가 확인되면 대당 500달러 보너스라는 두둑한 수입에 만족하며 지원하였습니다.
이들이 운용할 전투기는 커티스의 P-40B로, 영국이 구매하려다 취소한 것을 다시 중국에 판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을 속이기 위했던 것으로, 사실 영국이 구매를 취소하면 중국이 사가기로 미리 합의가 되어있었습니다. 이들이 구매해간 P-40B는 엄밀히 말하자면 P-40C와 B의 특징이 몇가지 섞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플라잉 타이거즈의 지휘관이었던 셰노는 P-40과 일본군 전투기의 특성을 파악하고 부하들의 부족한 실력도 고려하여 일본군 전투기에 대항하는 전술을 짰습니다. 즉 2인 1조로 한 목표물에 화력을 집중하는 전술로, 이는 2차세계대전 직전에 유행하던 3인 1조로 폭격기를 요격하던 전술을 약간 개량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셰노는 자신의 오합지졸 부하들이 복잡한 공중기동을 하기는 무리라고 판단하였고, 일본군 전투기의 뛰어난 선회능력에 대해 들었기때문에 부하들에게 절대로 일본군 전투기와 선회전을 벌이지 말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렇게 플라잉 타이거즈는 일본군기가 내습해오는 것을 미리 파악하고 일본군 항공기들보다 높은 고도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2인 1조로 기습공격을 가한 뒤 급강하하여 내빼는 전술을 택하였습니다. 당시 일본군이 중국에 배치해 놓은 전투기들에 비하면 P-40은 운동성은 떨어졌어도 최대속도는 더 빨랐으며, 특히 급강하를 하면 일본군 전투기들이 P-40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셰노의 전술에 대해서 영국 공군 관계자들은 꽁무니를 빼는 것도 전술이라고 비아냥 거렸지만 셰노는 "그러니까 당신들은 P-40을 쓰고서도 일본놈들한테 박살난 거다. 나한테는 무모한 조종사보다 살아서 돌아오는 조종사가 더 중요하며, 전쟁에서 페어플레이 따위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이 내 신조다"라고 말하며 영국 공군의 무모한 전법을 비난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영국군이나 미국군은 일본군 전투기의 선회성능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전쟁 초반에 일본군 전투기들에게 '비행훈련 학교에서 배운 대로' 선회전으로 대응하다가 큰 피해를 봤습니다.
공중전다운 공중전 한번 못해보던 일본군은 갑작스러운 플라잉 타이거즈의 기습에 큰 피해를 입었으며, 그 이후로도 몇번이나 플라잉 타이거즈를 소탕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매번 실패했습니다. 나중에는 심지어 전투기 대 전투기 싸움에서도 밀리며 중국에서의 제공권을 잃어가게 됩니다.
사실 P-40B도 당시 기준으로 보면 썩 고성능 전투기라 할 수는 없지만, 일본군이 이 지역에 배치해두었던 전투기는 P-40B보다도 훨씬 구식 전투기인 Ki-27로 랜딩 기어도 고정형인 전투기였기 때문에 P-40B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화가난 일본군은 더 고성능인 Ki-43 하야부사를 이 지역에 배치하지만, 이때 즈음이면 플라잉 타이거즈의 조종사들의 실력도 절정에 이르고 있던 상황이어서 일본군으로서는 Ki-43을 가지고도 P-40을 상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은 전투를 펼쳐야 했습니다. 플라잉 타이거스는 최종적으로 18명의 파일럿이 5기 이상을 격추한 에이스 파일럿이 되었습니다. 플라잉 타이거스는 일본군 항공기 296기를 격추하고 1000명 이상의 파일럿을 지옥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플라잉 타이거즈는 진주만 공습으로 일본과 미국이 정식 전쟁에 돌입한 이후로는 미군에 편입되며 사라지게 됩니다.
플라잉 타이거즈는 P-40B 기수 부분에 상어 이빨과 눈을 그려넣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매우 인상적인 외형이 되어 자신들을 알리는 상징처럼 되었습니다. 지금 현재도 미국의 여러 항공관련 기념관에서는 플라잉 타이거즈의 전과를 기리는 전시를 하고 있으며 태국과 타이완, 중국 본토에도 이들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관이 있습니다. 또한 이들에 대해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전문성, 의무에의 헌신, 특별한 영웅주의"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아직도 그들은 전설적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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