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안녕하세요

 

6.25한국전쟁당시 중공군은 압도적인 숫자로

 

인해전술을 사용하였는데요.

 

이번에 중공군이 어떤방식으로 인해전술을

 

사용하였는지 알아보도록 할게요!

 

▲ 중공군 개입 초기 상황 지도

 

중공군 편제는 병단-군-사의 순서로

 

되어있는데 병단은 우리나라의 야전군 편제

 

군은 우리나라의 군단편제 사는 우리나라의

 

사단편제에 해당됩니다.

 

유엔군이 북진할 때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미 8군은 8개 사단,2개 여단 규모

 

미 10군단은 5개 사단 규모였습니다.

 

즉, 유엔군은 13개 사단 2개 여단 규모였는데

 

중공군은 2개병단(야전군)에 중공군 9개 군단

 

33개 사단 + 북한군 3개 군단 이였습니다.

 

즉 미군은 13개 사단인데 중공군+북한군 동맹군은

 

총 12개 군단(33개사단 +북한군)이였습니다.

 

▲당시 전체적 상황을 보여주는 지도

 

전체적으로 지도 퀄리티가 좀 떨어지긴해도

 

중공군의 공세가 어떤지는 알수가 있습니다.

 

중공군은 유엔군에 3배이상의 압도적인 병력으로

 

미 8군의 동쪽에서 유엔군 중앙을 담당한 당시

 

질적으로 많이 부실했던

 

국군2군단(군단장 유재흥 국군6.7.8사단)을

 

집중적으로 공략합니다.

 

 

그 후 국군 2군단의 궤멸로 미 8군과 미 10군단의

 

중앙 연결고리를 끊고 미 8군의 동쪽을 돌아

 

남쪽을 포위하는 전형적인 포위전술을 구사합니다.

 

즉 중공군에게 후방이 포위될 위험해 처하자

 

미 8군은 남하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이

 

38선 근처까지 계속 됩니다.

 

 

동쪽에 미 10군단 중 미 1해병사단과 7사단

 

일부 병력 앞에 중공군 1개 병단 12개사단이

 

나타나서 산악을 포위하여

 

총공세를 펼치게 됩니다.

 

 

▲위 지도를 보시면 미 해병 1개사단을

 

중공군 12개 사단이 둘러서 공격하는걸

 

알수가 있습니다.

 

미 7사단 일부병력은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전멸하였습니다.

 

이때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정규군 사단이

 

전멸하는 불명예를 기록할 뻔 했는데 그런일이

 

발생할게 뻔해보였던 탓에 미국 언론조차도

 

충격에 빠져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기세등등한 중공군 장갑차부대

 

하지만 당시 미 10군단장 알몬드의 허술한 지휘에

 

불만이 많아 사이가 안좋았던 스미스 해병사단장은

 

진격당시 비행장을 확보하고 중간 물자집적지를

 

만드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뒀던 탓에

 

중공군의 야음을 틈타 뱀의 입모양으로

 

입을 딱 벌리고 포진한 당시 장진호 전투에서

 

그나마 보급을 유지하며 후퇴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미군의 최대 약점일수있는게 바로

 

차량을 타고다니는걸 너무 좋아했다는 점이였는데

 

결국 차량을 타고 평지의 도로로만 이동하는 미군은

 

산악을 통해 침투하여 은밀하게 포진한

 

중공군을 발견할수가 없었습니다.

 

 

항공정찰로도 당시엔 육안으로 확인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무 속에 숨은 중공군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전멸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스미스 소장은

 

"후퇴가 아니라 새로운 방향의 진격"이라는

 

큰소릴 쳤고 실제로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해

 

흥남까지 철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미 1해병사단에 집중된 중공군의 공세는

 

당시 두만강쪽으로 진격했던 국군 수도사단과

 

3사단의 후퇴에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미 해병대가 중공군을 단독으로 저지하고 돌파함에

 

따라 미 10군단은 안전한 철수가 가능했었습니다.

 

 

다른쪽 전투상황을 살펴보면 덕천전투에서

 

한국군이 붕괴되고 그 옆의 군우리전투에서

 

미 2사단이 공격당하는 상황인데

 

압록강에서부터 갑작스럽게 기습을 당해

 

정신이없는 한국군때문에 미군도 지옥을 같이

 

겪어야 했습니다.

 

 

현재 한국에 주둔중인 미 2사단도 이 당시

 

중공군의 압도적인 숫자와 후방 포위에

 

값비싼 희생을 치루며 간신히 후퇴하였습니다.

 

1개 사단 앞으로 2개 군단이 튀어나와 압박하고

 

후방에 중공군 1개 사단이 도로양쪽 산악지형에

 

매복해 공격하는 작전이였습니다.

 

 

▲프랑스 대대와 미 23연대의 분투가

빛났던 지평리 전투

 

고작 1개 연대와 1개 대대규모앞에 중공군 2개군단이

 

나타나는걸 볼수가 있습니다.

 

동쪽의 한국군 3 , 5사단앞에도 무려 3개 군단병력이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 전투는 그나마 전선이 안전도이 전쟁중후반

 

경기도-강원도 라인에서 싸우던 시기였는데

 

유엔군 1개사단앞에 사단도 아닌 중공군-북한군

 

군단급이 배치되어 밀고 내려왔습니다.

 

▲사실 국군 최악의 대참패인

3군단의 궤멸도

 

무려 중공군,북한군 도합 6개군단이

 

한국군 5개사단을 공격하는 모양새입니다.

 

그 외 지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 옆의

 

미 2사단도 중공군 군단에게 공격당했습니다.

 

 

▲중공군이 XXXX 야전군급으로 나와있지만

실제로는 XXX 군단급이였습니다.

 

위에 지도에 나온 중공군+북한군 군단급이 도합

 

17개 였습니다.

 

즉 대략 41개에 사단이라는소리입니다.

 

그걸 유엔군, 국군 8개 사단정도가

 

막고있는 모습입니다.

 

즉, 1개 사단을 약 1만2천명으로 생각하면

 

거의 9만명 정도되는 인원인데

 

동구권 소련식 편제라도 41개 사단이면

 

40만명정도 되는 규모입니다.

 

게다가 중공군도 거의 300만명 정도

 

참전했다고 하는데 사망수치가 너무 적습니다.

 

 

중국에서는 우기는게

 

한국군이 14만명전사 13만명실종 71만명부상인데

 

중공군이 13만명전사 2~3만명실종 21만명부상이라고

 

하니 이건 거짓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중공군이 북한군보다 조금 죽고 조금 다쳤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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