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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선정한 인류역사상 최악의 군지도자 TOP10

 

공동10위 버나드 로 몽고메리

 

 

1943년 시칠리아 상륙작전, 1944년 6월에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영국군 총사령관으로서 활약하여 원수로 진급했습니다. 종전 후 참모총장을 거쳐 1951년~1957년까지 나토(NATO) 군 최고사령관 대리로 있었습니다.군사 작전에 신중함을 중시했던 몽고메리는 행동에 옮기기 전에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준비를 했으므로 조지 패튼이나 아이젠하워등 연합군 사령관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었고, 군사적 쇄신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공격하기 전에는 병사와 장비를 완벽하게 준비해놓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방침으로 몽고메리는 느리기는 하지만 확고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향과는 반대로 조급한 성격과 거만한 면모가 있었으며,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배척하는 경향이 있었고 지나친 자부심이 심했다는 점 등 비판적인 측면이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 그의 독단적인 행보로 인해 개시한 1944년 9월 17일부터 9월 25일까지 수행된 마켓가든 작전에서 많은 희생을 치렀다는 비판등이 많습니다.

 

 

공동10위 에르빈 롬멜

 

 

 

에르빈 요하네스 오이겐 롬멜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가장 유명한 독일군원수 중 한 명입니다.  독일 아프리카 군단을 이끌어 능수능란하게 지휘하여 적과 아군 모두로부터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독일 장성들 가운데 파란만장한 경력을 자랑하며 매력적인 인물 중 한명으로 손꼽힙니다.그는 특별히 나치 신봉자는 아니었고 나치 당원도 아니었으나 히틀러를 매우 유능한 지도자로 생각했었다는점 등에 논란이 있습니

 

 

9위 미카와 군이치

 

 

미카와 군이치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 해군의 제독입니다.그는 진주만 공격에 참가해 1942년 7월, 제8함대 사령관으로 제1차 솔로몬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 후 항해학교장, 제2남파함대사령장관, 남서방면함대 사령장관, 제 13항공대 사령장관을 역임하였고, 1945년 5월에 예비역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제1차 솔로몬 해전에서 적 순양함 5척을 격파하고, 적의 수송선단을 궤멸하는 등 지금도 훌륭한 제독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미국인들은 당연히 그를 좋아할수가 없습니다.

 

 

8위 사담 후세인

 

 

이라크내 소수종파인 수니파 출신으로, 세속적 범아랍주의아랍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바트당의 지도적 인물이었습니다. 사담은 바트당의 장기 집권을 가져온 1968년 군사 쿠데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1979년 7월 17일, 바크르가 병을 이유로 대통령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하자, 사담은 이라크공화국 제 5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 집권 직후 바트당 내 반대파를 숙청, 처형하고 민심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 이라크 변방의 떠돌이 소수민족인 쿠르드 족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대량 학살을 기획하였고  1979년이란 혁명이 이라크 국내의 시아파에게도 파급하는 것을 두려워해 1980년에 이란을 선제 공격, 이란-이라크 전쟁을 발발시켰습니다. .

 

 

7위 조지 B.매클렐런

 

 

조지 브링턴 매클렐런미합중국의 군인, 정치가. 남북 전쟁 중 북군(Union Army)의 소장으로 유명합니다. 남북 전쟁 초기, 매클렐런은 북군 부대를 훈련시키고, 조직화된 군대하기 만들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계획과 준비에 철저했기 때문에, 전투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상대의 기습 공격 능력을 꾸준히 봉쇄하였으며. 또한 그는 나폴레옹 시대에 비해 무기가 발달해서, 공격을 하는 측이 현저히 불리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전력 차에서는 무모한 정면 총돌격을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북부 장군이 몇 번이나 패배한 남부의 로버트 E. 리 장군에게 승리 또는 큰 손상을 초래할 수 있었습니다.

 

 

6위 로베르 조르주 니벨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의 총사령관으로써, 프랑스군 최악의 졸장 으로 손꼽힙니다. 도대체 어떻게 총사령관이 되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군사적 재능은 전무하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달았을 1916~1917년은 연합국에게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래서 연합국은 새로운 전세를 뒤집을 새로운 전략을 요구받고 있었는데. 니벨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확고히하고자 단기간에 전략적 승리를 약속하며 준비한 공세의 일환에 맞춘 전략을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비극의 시작인 니벨 공세의 서막의 시작이 됩니다. 단 24시간만에 이 공세작전에서 프랑스군은 무려 10만명이라는 전사자를 냈습니다. 결국 4월 20일에 1차 공세를 중시하고 2차 공세는 프랑스 장군단과 정치논쟁으로 무산되게 됩니다. 이 공세로 프랑스군은 18만명 이상의 전사자를 냈으며 목표했던 전선돌파는 실패했습니

 

 

5위 더글러스 헤이그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위스키 양조장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06~1909년 육군부 군사훈련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쓸모 있는 예비군을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1914년 8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제1군단을 이끌고 북부 프랑스로 진격했으며, 곧이어 영국 원정군의 총사령관이 되었습니다. 솜 전투의 막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파스샹달 전투(1917. 7~11)에서도 엄청난 전사자를 내 영국민들을 경악시켰습니다.

 

 

4위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남북전쟁 당시 크게 활약하다 인디언 전쟁에서 전사한 미국의 군인입니다. 미국의 확장주의와 오랜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분쟁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조지 커스터 중령은 '야만스런 인디언에 맞선 백인 영웅'의 이미지로 포장되고 찬양받아 왔으나, 오늘날 들어 원주민들의 권리가 신장되고, 학자들에 의해 리틀 빅혼의 전투가 체계적으로 연구되자 영웅은 커녕 커스터 중령이 리틀 빅혼의 전투에서 결정적인 삽질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자 오히려 겁쟁이나 학살자 정도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3위 더글러스 맥아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찬사와 비난을 함께 받는 군인입니다. 국내에서는 인천 상륙작전의 주역으로 유명하며, 아래에서 곧 이야기하듯이 미군 역사에서 전설적인 군인 중 하나이지만 군인은 상명하복이 기본임에도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명령도 무시하는 독선적인 면이 군사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이 가졌던 대통령에 대한 야망의 실패는 물론 역사적 평가조차 떨어뜨렸습니다. 대통령 트루먼은 자신의 회고록 "Memoirs"에서 맥아더가 워싱턴의 수뇌부를 기만했다고 분노했으며,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맥아더의 폭주가 미국과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2위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

 

 

멕시코 제1공화국의 정치 지도자였습니다. 초기 멕시코와 스페인의 정치, 정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었습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싸웠으며 지지를 받으면서 장군 계급까지 올라 격변의 40년 경력 중 많은 시간 대통령을 했었습니다. 22년여의 기간동안 10차례 멕시코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현실이 가상을 능가하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의 일대기를 제3자의 눈으로 보면 그야말로 재미가 있을 정도입니다.

 

 

1위 아돌프 히틀러

 

 

극단적 사상(파시즘, 인종차별주의) 바탕으로 유럽대륙을 비극에 빠뜨린 제2차 세계 대전 추축국 나치 독일의 대표격인 인물입니다. 히틀러에 대해서는 어떤한 설명이 필요할까요...인류 최악의 독재자이자 학살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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