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의 '신의 방패'가 테러범 고무보트에 뚫린 사건
2000년 10월 12일 아덴 만 해역에서 통상적 작전을 수행하던 미 해군의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 구축함 일명 콜함(DDG-67 USS Cole)은 연료 보급을 목적으로 아덴항에 입항하여 연료 보급 작업 및 통상 정비, 승조원의 휴식 등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현지시각 11시 18분 소형 모터보트 1척이 저돌적인 돌격으로 콜 함의 좌현 중앙 부분과 충돌함과 동시에 폭발했습니다.
이 모터보트에는 두 명의 선원(테러범)이 타고 있었고, 이들을 목격한 승조원들의 경계심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충돌 직전까지 웃으며 손까지 흔드는 등의 행동을 했었습니다.
미 해군 함정이 외부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것은, 1987년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 프리깃 USS 스타크 함이 페르시아 만에서 이라크 공군의 오인 공격으로 엑조세 대함 미사일에 피격당한 이후 13년만의 일이었습니다. 이 공격으로 19명이 전사하고 39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피격 부위가 콜 함의 승조원 식당 부근으로, 조리 직별 인원들 및 이른 점심 식사를 준비하던 승조원들이 주 희생자였습니다.
이후 미군 및 CIA의 조사 결과, 공격의 배후는 알 카에다로 추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명확한 물증이 없었던 데다, 시기적으로 대선이 불과 1달 앞이라 빌 클린턴 행정부가 무리한 보복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고 미국은 아무런 보복공격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알 카에다가 미국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사건이 되었으며 알 카에다의 조직규모나 능력이 지금까지의 테러 조직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 또한 증명되었습니다.
당시 함장이었던 항해중령 커크 립폴드는 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으로 얻은 미 해군의 교훈이 반영되어, 그가 승조원들에게 규정된 수준의 당직을 세우는 등 경계를 태만히 하지 않았고, 또 위와 같은 자살 테러는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감안해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공격받았던 콜 함은 이후 2년여에 걸친 수리 끝에 2003년 11월 29일 현역에 재복귀했고, 2006년에는 사고가 난 아덴 만 해역으로 재배치되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 4월 22일. 6년 동안의 법정 투쟁 끝에 이 사건으로 희생된 승조원들의 유가족들에게 최소 $200,000 이상의 보상금이 지급되었다고 합니다.
신의 방패라 불리던 미 해군의 이지스함이 테러범의 소형 보트에 어이없이 공격을 받은 사건으로 세계 해군은 자살공격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실제 이후 스리랑카 내전에서 타밀 반군이 정부군 고속정을 소형 보트를 이용한 자살공격으로 격침시키기도 하는 등, 이러한 방식의 공격이 해상력이 없다시피한 반군 세력이나 테러 조직들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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