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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2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묘역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때는 5년간 단 한건도 군사적 충돌이 없었고 국민과 장병의 안타까운 희생이 단 한병도 없었다"고 말하며 안보에 유능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국뿐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도 싫은 소리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최초의 사병출신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 정부부터 계속 이어져 오던 이지스함 도입사업, 공중조기경보기 도입사업, 초음속 대함 미사일 최신기술 등 확보, KT-1 기본훈련기, T-50 고등훈련기 등 한국형 전투기 개발, 아시아 최대의 강습상륙함 ‘독도함’ 도입, K1A1, K2, k9등 육군 화력 증가. 병사들 월급 인상 등을 실현했습니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국방예산이 해마다 평균 8.8% 증가했고, 각종 무기와 장비를 도입하기 위한 전력 증강 예산인 방위력 개선비의 평균 증가율은 무려 11.7%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2003년 6월 2일, 조영길 당시 국방부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핵 추진 잠수함 건조 계획을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한국형 핵 잠수함 개발 사업은 이렇게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날짜를 따서 ‘362 사업’이라고 명명돼 비밀리에 착수됐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우리 해군은 벌써 핵 잠수함 2척을 확보했겠지만 아쉽게도 362 사업은 1년 여 만에 종료됐습니다. 비밀 사업이었는데 한 언론의 보도로 외부에 노출됐기 때문이였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북송금특검, 이라크파병, 한미FTA, 제주해군기지 등 중요한 외교안보사안이 있을 때 항상 내부에서 찬반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거쳤습니다. 사안의 성격상 필요하면 민정수석실과 정무수석실(후엔 시민사회수석실), 국민참여수석실 등 비외교안보 부서까지 토론에 참여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언제나 토론을 모두 경청한 후 최종 결단을 내렸습니다. 대통령이 혼자 결정하는 법이 없었습니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반미였다고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한미 동맹에 대한 그 기여는 전두환·노태우 그 이상이였습니다.

 

 

그가 퇴임하는 2008년 2월 현재 한미동맹은 훨씬 강하고 좋아졌다. 노 대통령은 미국·영국 다음가는 대규모 이라크 파병에다가 FTA체결, 주한미군 용산기지 이전 등 정책적으로 한미 동맹에 큰 공헌을 했다. -전 미 NSC마이클 그린 선임 보좌관 -

 

그리고 전시작전통제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기에 강력하게 추진했었습니다. 그리고 재임 당시인 2006년 12월 21일,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 자리에서 전시작전통제권 관련해 작심하고 기존 군 장성들을 비판했습니다.

 

"자기들 나라, 자기 군대, 작전통제도 한 개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놓고,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을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기입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사진출처: 노무현 재단)

전작권 환수 문제는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 간에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2006년 노무현-부시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통해 전작권 전환에 공감대를 모았습니다. 이듬해인 2007년 2월 한미 양국은 국방장관 회담에서 2012년 4월 17일자로 전작권을 한국에 반환하기로 합의해 최종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전작권 전환 시기가 연기되었고 시간이 지나 전작권 전환은 기약 없이 무산되었습니다. 하지만 임기동안 열심히 대한민국의 자주국방을 꿈꾸고 노력하셨던 진정한 안보 대통령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