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6.25 한국전쟁 시작과 함께 철도직원 약 67%인 1만9300여 명의 철도직원이 교통부 산하 전시군사수송본부에 배속돼 병력과 군수물자, 피난민을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이 중 287명이 전사했습니다. 이 중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딘 장군 열차구출작전'은 미국 특수부대와 대한민국 철도원이 함께 펼친 철도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깃든 구출작전으로 꼽힙니다. 그 중 가장 뜨거운 애국심을 보여준 김재현 기관사에 대해 소개해보겠습니다.

 

 

김재현(金裁鉉 예안 김씨 26대손)은 1923년 9월 21일 현재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944년 일제강점기 당시 철도국에 입사하여 대전기관차사무소 기관사로 일하였습니다. 그러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였고 임시수도였던 대전을 방어하던 미 육군 제24보병사단장인 육군소장 윌리엄 F. 딘(William Frishe Dean)장군은 퇴각중 북한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사실 F.딘 장군은 맥아더 장군의 모든 전술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7월 19일 새벽 북한 육군의 포로가 된 F. 딘 장군을 구출하기 위해 미 특공대원 33명이 대전 전투에 투입되었습니다. 이들의 작전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았고 이들의 생환 가능성은 희박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이동 수단은 바로 기관차였습니다. 그런데 두려움에 기관차를 운전할 기관사가 지원을 안 하는 상황이였습니다.

 

 

바로 그때 가장 먼저 김재현 기관사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이 위험한 작전에 자원하였습니다. 당시 김재현 기관사의 나이는 28살이였으며 1남 1녀의 가장이었습니다. 본무조사 황남호, 보조조사 현재영 등과 증기기관차 미카 3-129호, 석탄차, 화차 각 1량씩을 연결된 열차를 몰고 미 육군 특공대 33명과 함께 저녁 6시경 이원역을 출발, 대전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증기기관차 가감간을 잡고있는 김재현 기관사 모습

 

그러나 특공 대원들이 딘 장군을 발견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다시 옥천역으로 후퇴하던 중, 세천역 부근 세천터널에서 매복해 있던 북한 육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대부분의 특공대원과 함께 28살 꽃다운 나이에 마지막 순간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고 순직했습니다. 특공대원들은 다수의 사상자가 났으며 남은 승무원 2명 중 1명도 총에 맞아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그의 유해는 동료들에 의해 영동산 아래에 묻혔다가 휴전 후 고향 논산으로 이장되었고, 1983년 기차 기관사로는 최초로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영관급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역무원으로 근무하였고 외손자는 2005년 코레일에 입사하여 대전광역시에 있는 시설장비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외할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2011년 철도기관사 면허를 땄습니다.

 

 

2012년 미국 국방부로부터 '특별공로훈장’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이 상을 받는 사람은 김재현 기관사가 유일합니다. 민간인 신분으로서, 살아올 가망이 희박한 작전에 참여를 자원하여 공을 세운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편 김재현 기관사의 유품은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철도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가 몰았던 미카 3-129 증기기관차는 2008년 10월 17일 등록문화재 제415호로 지정되었으며 한 때 대전철도차량관리단에 정태 보존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옮겨 현충원 내 철도추모관에 야외전시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