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육군 보병전투장갑차의 발전사!
안녕하세요 오늘은 자
랑스러운 대한민국 육군
보병전투장갑차의 발전사를
한번알아보려구합니다!
20세기 중반만 하여도 한반도는
세계에서 2등이라면 서러울 못사는나라였고
당연히 미국지원으로
장갑차를 받아서 사용하였습니다.
그때 처음 받은 물건은
2차 대전 당시 엄청 굴러다녔던
M8 그레이하운드 정찰장갑차와
M3 보병장갑차였습니다.
.
<광복후 상륙한 미육군의 M8장갑차>
49년 당시 주한미군이 쓰던 것들을
에치슨 선언 이후 미군이 철수하면서
우리에게 M8 27대와 M3 12대를
남긴 것을 주워서 육군본부 직할
독립기갑연대가
창설한 것이 한국군 기갑의 시초였습니다.
<여순반란 진압에 투입된 M3 장갑차.. 사진의 기관총은 M1919>
물론 당시의 사정상 연대전체가
기계화된 것은 아니었고
1개대대만 장갑수색대대로
편성을 하고 2대대는 기병대대,
3대대는 도보 수색대대로 편성하였는데
당시 가장 전장에서 가장 활약을 한 것은
기병대대였다고 합니다.
<기갑연대 기병대대의 장교들.. 전부 승마바지를 입고있다.>
<행군중인 기병대대>
M8은 37MM 직사포와 M1919경기관총으로 무장을 하였는데 이동하는 기관총진지로써 역할을 충분히 하여서 북진기간 동안 많은 활약을 하였습니다. 일부는 T-34 전차와 직접 전투를 벌여서 일부 손상을 입히는 등 낮은 성능에 비하여 상당한 활약을 한 편입니다.
M3 보병전투 장갑차는 수량도 아주 적었고 대부분 낙동강 전투에서 손실되어 큰 활약은 못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독립 기갑대대는 선전을 한 것은 사실이고 흥남 철수 때까지 최대한 전력을 유지하여 전투에 임하였고 흥남에서 기갑대대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자폭시킨 후 수송선으로 탈출하여서 대부분의 장비를 손실하게 됩니다.
한국전 이후 이승만의 외교력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지고
밴플리트와 같은 친한파장군이
미군내 많아지면서 많은 군사원조를
받게 되는 데 한국전 기간 중 대부분 손실되었던
M8 정찰장갑차와 M3 반궤도보병장갑차를
다시 보급받게 됩니다.
<50년대 중반 국군의 날 행사 당시 M8 정찰장갑차>
M8의 사용기간은 자료마다 차이가 많은 데 60년대 후반까지 일선장비에서는 퇴역을 하고 80년대까지는 치장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M3의 경우 공급 수량이 많치 않았지만
77년까지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운영되었고
계열차량인 M16 자주대공기총도
1/2 기갑여단의 대공장비로
운영되다가 발칸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수방사의 M3 장갑차.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개량한 기관총방패가 달려 있다.>
당시 한국군이 롤모델로 삼았던
이스라엘의 사례를 잠깐 보자면
비슷한 안보위협이 있던 한국과는
달리 미본토에 거의 고철수준으로
막대한 양이 방치되어 있던 M3반궤도장갑차를
헐값에 쓸어와서 계량하고
정비하여 대량배치를 하고
90년대까지 최일선에서 사용을 하였는데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과 당시 전반적으로 우수하였던
이스라엘의 공업수준 덕분에 가능하였습니다.
<1973년 4차 중동전 당시 M3 장갑차>
<1973년 4차 중동전 당시 M3 장갑차>
<M3는 최근까지도 현역이었다.. 2000년대에도 상당량이 운영되었습니다. >
M3는 독일군이 사용하던
하노마그 장갑차가 유럽에서 대활약을
하는 것을 보고
프랑스의 반궤도차량을 본따서
대량 생산을 하였던 장갑차였습니다.
<나치독일군의 하노마그 장갑차>
2차대전 당시 독일 장갑척탄병 사단에서
대활약하였고
2차대전 이후에도 70년대까지
동유럽에서 현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체코슬로바키아는 자체생산까지
하면서 운영을 하였습니다.
<독일 하노마그는 기관총 뿐만 아니라 대전차포까지
탑재가 가능한 범용성이 아주 우수하였던 장갑차였다.>
하노마그가 접지면이 크고
험지돌파력이 좋았던 것에 반해
M3는 강철케이블이 들어 있는
고무제 궤도에 접지면이 작아
속도는 70KM로 다소 빨랐지만
험지돌파력은 다소 딸리는 수준이었고
탁트인 지형의 중동과는
달리 도로가 열악하고
산이 많은 한국의 지형에는
적절하지 않은 장비였습니다.
한국군이 천제일우의 기회를
잡은 것은 월남전인데
참전의 대가로 미군의 M113 장갑차를
처음으로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M113은 나토를 위시한 서방세계에
가장 많이 보급된 보병장갑차였고
베스트셀러였다.>
먼저 주한미군 차량을
인수하였고 동시에 월남에서
수도 기계화보병사단이 현지 인수하여서
월남에서 80여대의 장갑차를
직접 전투에 사용을 하면서 기계화보병전투를
익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베트남의 도로를 질주하는
수도기계화 보병사단의 M113>
당시 주월 한국군은 기존 장비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총방패를 만들어 장착을 하는 등
실전에 맞게 계량하여
아주 요긴하게 사용을 하였습니다.
.
<한국군 특유의 기총사수방패가 설치된 모습>
M113장갑차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장갑차로 불리는 걸작인데
완전궤도식에 64KM의 속도를 낼 수 있고
알루미늄합금 장갑을 사용하여서
무게도 가벼워서 별도의 장비가 없어도
물살이 강하지 않은
하천은 둥둥떠서 도하가 가능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지금도 미군이 쓰는 장수무기체계입니다.
<맹호 M113과 미군부사관들>
한국군은 월남전 기간중에
한국본토에서도 추가 도입이 계속 되어
기갑여단의 주요장비로 편성되었습니다.
M113은 2000년대 초까지는 현역으로
사용되었지만 국산 K200이 2200대
가까이 도입되면서 지금은 거의 퇴역을 하고
치장장비로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후방사단의 장갑중대에
극히 일부 차량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80년대 팀스피리트 훈련당시 M113과 기계화보병들 >
< 수도 방위 사령부의 M113 장갑차>
당시 한국군이 돈이 없다고 무조건 미군 장비만 얻어서 사용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북한군이 대규모의 특수부대를 양성하고 있다는 것을 첩보를 통하여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있었고 후방지역 작전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시가전에 적합한 차륜형 장갑차의 도입도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미군에는 적절한 무기체계가 없어서 유럽제를 수입하기로 결정을 하고 미국 몰래 국방과학연구소 직원들이 유럽을 돌면서 후보차종을 선정하였는데 서독의 UR416을 도입하기로 하였으나 나토에서 유럽제군수물자의 역외 수출을 엄격히 제한하여서 도입을 실패하고 맙니다. 하지만 당시 요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이탈리아의 피아트社와 접촉을 하여서 CM6614차종을 수입하기로 결정하였는데 나토의 미군 감시망을 피해서 극비리에 주요부품을 분산 수출하고 서류를 조작하여서 한국으로 도입하는 대 성공합니다. 72년 당시 공업수준으로는
이 놈을 조립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도전이었죠.
당연히 뻔뻔스럽게 조립관련 기술+@를
요구하였고 돈이 아쉬웠던 피아트社는
당시 귀중한 장갑판 제조기술과 강철케이블이 들어간
전투용타이어 제조기술을 넘기게 되었고
이 기술은 훗날 K200을 비롯한
다른 한국군 장비의 개발에 요긴하게 쓰이게됩니다.
힘들게 부품을 들여와서 400대나 양산한 물건이었지만 야전부대의 평가는 좋치 못하였습니다 당시의 기술수준이 아직 높지 못하여서 잔고장등 불만사항도 아주 많았고 이놈을 운영한 초급기갑장교들이 한국군의 수뇌부로 성장하면서 이런 차륜식 장갑차에 대한 기피를 가져오게 됩니다.
KM900은 시속 100KG의 속도로 달리고 10명의 보병을 수송하여 신속히 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무기체계로 많은 수량이 퇴역을 하였지만 아직도 수방사등의 야전부대에서 200여대 정도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다른 차륜형 장갑차로 교체될 것을 예상되고 있고 이미 현대로탬에서 후속차량을 시제차량까지 만들어 둔 상태입니다.
한국산 장갑차 시대의 태동.
70년대 중반 미군은 한국군에게
아주 솔깃한 떡밥을 던졌어요.
월남전이 끝나고 미본토에는
처치곤란 할 정도로 많은 수량의
M113이 방치에 가까운 상태로 치장되고 있었고
미국은 동맹국에게 싸게 처분하려고 하였고
이스라엘은 이미 떡밥을 물어서
미국에서 M113을 쓸어가고 있는 중이었죠.
예전에 M3 장갑차고철을 쓸어갔듯이…
<미국 중고무기 성애자 이스라엘 육군의 M113.>
이스라엘은 약 13,000 각종 장갑차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로
전군의 3보앞 승차가 가능한 군사국가입니다다.
<이스라엘의 M113 계량형 젤다 장갑차>
한국군도 국방과학연구소들 실무진을 미국으로 파견하여 실사확인에 들어갔는데 치장시설을 확인한 한국군 관계자들은 크게 실망하였다고 합니다. M113이 기본형에서 각종 계열 차량들이 미국답지 않게 아주 방치에 가까운 상태에서 현황조차 없이 방치되어 있던 것이었다고합니다.
<이런식으로로 치장해 놓았다고 보면 되요.>
미군당국자는 뻔뻔스럽게 거지들의 호의를 배푼다는 식으로 그냥 쓸어가서 대충 고쳐서 쓰라는 입장이었고 화가나서 귀국한 ADD 실무자는 M113의 도입을 반대하고 자체개발쪽으로 정책을 수립하여야 한다는 보고를 올려요 당삼 국방부와 육본에서 난리가 났는데 이스라엘처럼 싸게 도입하여서 북한군의 기갑부대를 막아야한다고 아주 성화였요
ADD도 믿는 구석은 있었습니다. 이미 한국군은 대량의 M113을 운영하면서 창정비를 직접하면서 많은 기술을 미국으로부터 정비목적이라고 속이고 받아둔 상태였고 또 친한파에 뼈속까지 반공주의자였던 많은 미군기술진들이 미군당국의 반대에서 많은 기술을 공식/비공식적으로 한국군에 넘기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이 것은 당시 많은 ADD 관계자의 증언에서 확인되는 내용입니다.
국방부도 반신반의한 상황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오원철 수석등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K200사업이 ADD를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ADD가 핵심 기술과 전력요구사항을
대우중공업에 넘기면서 사업이 급진전되었습니다.
대우중공업에서 천신만고 끝에 K200양산에 성공하여 80년대부터 기계화보병사단에 집중배치된 K200 보병장갑차. 승차전투가 가능하도록 총안구가 설치된 것이보인다. 대우중공업은 당연히 이런 장갑차를
만들어 본적도 없지만
맨땅에 헤딩 하면서 사업을
시작하였고 M113을 만들었던
미국 FMC社 AIFV를 약간 참조하여서 K200을
개발하는데 결국 성공합니다.
한국의 K200성공은 미국방산업계를
놀라고 하였고
당연히 FMC社가 가장 화나있었습니다.
당시 FMC는 한국이 자신의 신형장갑차
AIFV와 M113을 해적카피 떠서
K200을 만들었다고 미군당국에 성토하고
길길이 날뛰는 상황이었고
결국 FMC의 실사단이 대우중공업을
방문하여 확인을 하게 되었는데
유럽의 장갑기술과 독일제 상용버스엔진을
군용규격으로 개조하여
장착한 엔진등 많은 부분이 FMC의 제품과
다른 독자설계의 제품이었고
결국 인정하고 물러갔다고 합니다.
<네덜란드 육군의 AIFV> FMC사의 AIFV는 미군에 판매하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네덜란드와 터키에 대량 수출되어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미군이 쓰는 M2 브레들리의 염가판이라고 보면 맞아요. K200은 당시 한국의 방산공업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한 역작이었고 걸작이었다고 생각이됩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지만 장점이 많은 장갑차입니다. 일단 장갑방호력이 M113보다 확실히 강해졌구요. K200을 수입한 말레이시아군이 보스니아에서 14.5MM 기관포탄에 얻어맞았지만 가볍게 방어했어요! 이미 실전에서 장갑방호력이 검증이 되었던거죠.
그리고 가벼운 차체에 강력한 버스엔진을 달아서 출력이 엄청나고 평지에서 74KM의 속도로 달릴 수 있고 내리막에는 110KM까지 나오는 것으로 궤도형차량으로는 세계 TOP CLASS수준입니다.
공격력은 AIFV나 미군의 M2 브레들리가
기관포을 달고 다닌 것에 비하여
약한 편이지만 M2 중기관총과
1~3정의 M60 혹은 K13 경기관총을
부착할 수 있어서 이동하는 기관총진지로
사용된 수 있을 만큼
기관총화력이 아주 강력한 것이 특징입니다.
도하중인 K200. 최근에는 대전차 공격력을 높이기 위해 사진처럼 러시아제 매티스M 미사일 을 탑재한 차량도 많이 보입니다.
K200은 군이 요구하는 다양한 계열차량의
좋은 플렛폼이 되어주기도 하였어요.
많은 계열차량이 K200을 기반으로
개발/양산되었고 기본형 1,700대 계열차량까지
2,200여대가 배치되어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습니다.
4.2" 자주박격포차. 참고로 4.2" 박격포탄의 위력은 105MM 견인포탄보다 훨씬 강력하다. 물론 보병전투장갑차로써
화력이 약한 편이었고
대우에서 많은 강화모델의
시험차량을 개발하였지만
예산문제와 군의 요구수준에
비해 성능이 떨어져서
결국 도입은 되지 않고 K21 개발로
이어지게 됩니다.
K200은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부품수급/정비등이 100% 가능하여
가동률면에서 아주 우수한 운영성적으로 보여주었고
기술적 모험이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국산 장비를 개발하고 양산배치하는 것으로
국방정책이 바뀌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우중공업이 독자적으로 육군에 제시한 화력강화형 모델. 결국 채용되지 못하였어요. 해병대 장갑차의 발전사
해병대가 장갑차를 처음 지대로
도입한 것은 LVT-3가 처음이었습니다.
<70년대 한국 해병대와 LVT-3>
원래 뚜껑이 없는 장갑차에 상판 장갑을
달아서 방어력을 높힌 모델이었다.
미해병대가 신형 LVT-5를 도입하면서
퇴역장비를 군사원조로 받은 것인데
보급에서 항상 육군에게 밀리던
해병대에서 끔찍이 아끼면서 운영을 하였고
80년때 중반까지도 현역을 장수하였습니다.
74년 신형 LVT-7이 도입된 이후에도
10년 이상을 더 현역을 운영한 것으로
아무래도 전세계에서 한국군이
가장 오래 운영을 하였을 것입니다.
지상 속도가 40KM에 수상속도가 9KM에다가
M1919기관총 하나 달려있는
약한전력이였지만 정말 잘 관리하여서
오래 잘써먹은편입니다.
<뒤에보이는 장갑차LVT5>
<미군 LVT-5 앞에서 사진찍는 해병대원>
한국해병대는 월남에서 LVT-5로 미해병대와 함께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지만 직접 운영을 하지는 않았어요.
74년 바로 LVT-7를 도입하여
2000년대까지 운영하고 퇴역시키고
지금은 신형 LVT-7개량모델을 현역을 쓰고 있습니다.
<80년대까지 한국해병대의 주력이었던 LVT-7 초기형 >
저 샤크마우스를 외국 밀리터리
매니아들이 엄청 좋아한다고 하네요 ㅎ
' <LVT-7 후기형.. 일부는 아직 현역입니다.>
<현대 한국 해병대의 KAAV7> KAAV7의 경우 방어력과 화력이 강화된 형태로 상륙후에도 해병보병의 화력지원이 가능하도록 40MM자동유탄포와 12.7MM중기관총이 강화된 개량형입니다.
물론 해병대가 상륙돌력장갑차만 쓰는 것이 아니고 육군과 동일한 K200계열 장갑차도 사용중입니다.
다만 상륙장갑차처럼 바다를 해치고상륙할 수 있는 수상기동능력이 없고 파도에 매우 취약하므로 상륙함을 통해 얌전한 상륙만 가능합니다.
지상전투 지원용이라고 보면 맞아요. 대공장갑차의 발전
한국군은 전쟁후 미군으로부터
M16 대공장갑차를 인계받아
창설을 하였던 기갑여단의
방공무기로 요긴하게 사용하였고
70년대 중반 ADD가 발칸포의 국산화에 성공을 하면서
견인식 발칸에게 교체가 되어 퇴역을 하였습니다.
<M16 대공장갑차>
<박정희대통령과 승전포> 그러나 4연장 중기관총 대공포의
무기체계는 도태되지않고
계속 사용되어 지금은 승전포라는
이름으로 2 1/2트럭에 탑재되어
여전히 현역으로 사용중이고
유용한 대공/대지화기로 사용중입니다.
<M16이 떠났어도 승전포는 계속 다른 차량에
기생하여서 대한민국의 하늘을 지켰다.>
<지금은 두돈반 위에서 사용중이다>
4차 중동전 당시 이스라엘군의
이집트군의 강력한 대공미사일에 의해
재공권을 상실하였었고
이집트공군의 폭격에 시달려야 하였습니다 .
이때 M163 자주발칸이 투입되어 겨우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합니다.
한국군도 K200의 생산과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80년대 중반에
K263을 양산하여 기계화부대의 방공망을 강화하였습니다.
<K263 자주발칸>
이에 만족하지 않은 육군은 K30비호와 천마를 개발하여 현재 각각 160대/100여대를 운영중입니다. 소련이 준 뜻하지 않았던 선물 불곰사업시대
냉전에서 소련이 망하면서
독립국가연합을 거쳐 왕거지가 된
러시아는 자존심을 버리게 됩니다.
한국도 손님으로 받게 되는
꿈 같은 상황이 오고야 말았고
냉전시대 빨갱이 동맹국에도 절대 안팔았던
최신형 T-80U와 BMP-3가
헐값에 한국에 들어오게 됩니다.
<지금도 동부전선에서 열심히 굴러다니는 T-80U전차>
한국군특유의 지렁이 위장이 의외로 아주 잘 어울리네요.
<화차에 결박되어 어디론가 개끌려가는 BMP-3> 한국군 기갑장교들과 ADD에 의해 이들 장비들은 들어보자마자 해체을 당하였고 이때 모은 DATA로 K2흑표와 K21 개발에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T80U전차의 경우 실제로 운영을 하여보니 많은 장점이 있었다고 하였지만 종합전투력면에서 한국군의 K1 수준으로 확인되어 더 이상 수입이 안되었지만 BMP-3는 경전차에 가까운 화력을 인정받아 2차 불곰사업까지 벌여 총 60대를 들여오게 되었어요. 여담인데 당시 러시아 수송기들이 장갑차를 하역한 후에 초코파이와 도시락라면을 꽉꽉 쓸어담아서 귀국하였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BMP-3는 100MM 저압포에 30MM기관포를 부무장으로 하는 강력한 화력에 70KM의 기동력, 우수한 수상기동능력으로 주목을 받았고 한국군이 선호하는 러시아무기 1순위였습니다.
100MM 저압포는 운동에너지탄의 위력은 약하였지만 대구경의 고폭탄을 날리는 투발수단으로는 아주 효과적이었고 부무장이었던 30MM기관포도 강력하여 한국군 기갑장교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측면방호력이 약하고 승차보병이 위로 하차할 수 밖에 없어 적탄에 쉽게 노출된다는 점 등등 단점도 많아서 K21이 결국 개발됩니다.
세계최강의 보병전투 장갑차 K21
한국군도 경제력에 걸맞는 보병전투장갑차를
오랜 시간에 걸쳐 준비하였고
그래서 마침내 등장한 것이 K21이었습니다.
K21은 사실 스웨덴의 CV9040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차량입니다.
장갑차가 효과적으로 잘 수 있는
최대 구경의 자동포가 40MM라고 보고
최대한계치의 대구경포를 탑재한 것으로
화력면에서 최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0MM 자동포로 무장한 스웨덴 육군의 CV9040 장갑차>
영국의 워리어가 사격통제장치가 망하여
화력투사가 아주 약한 것을 간파하고
비호자주대공포의 대공기관포용
사격통제장치지상용으로
다운그레이드한 FDS를 장착하여서
제한적인 대공사격까지 가능한 수준입니다
<급탄기구와 사격통제장치가 안좋은 영국육군의 워리어 장갑차> 최근에 영국군이 돈을 더 투자하여 포탑을 뜯고고치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동간 사격, 대공사격, 연발 사격까지
최고 수준으로 화력을 가지게 되었구요.
미군의 M2가 소구경 기관포인 것을
볼 때 미군무기체계를 능가하는
강력한 장갑차로 개발중인
국산 대전차 미사일까지 탑재하면
전차사냥꾼으로도 전장운영이
가능한 장갑차량입니다.
40MM 자동포도 워낙 대구경이다보니 전차포와 같은 대전차철갑탄을 사용할 수 있고 북한군의 T-55나 T-62계열 정도는 미사일없이 자체포로도 어느정도 격파가 가능한 수준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독자생산한 포와 포탄급탄기구>
처음 개발을 시작할 때는 BMP-3의
강력한 화력이 육군에서 100MM저압포와
30MM기관포 조합으로 가자고
주장을 하기도 하였지만
종합화력면에서 40MM 자동포가 더 강하다고 판단하여 진행되엿습니다.
이 것은 소련육군의 BMP-1의 사례을
반면교사로 삼은 것이기도 합니다.
1967년 등장한 BMP-1은 당시 차원을
달리하는 73MM 저압포를 장착하여
이 저압포라는 것이 작은 자체에
무리하게 장착하기
위해 포탄피에 장약을 줄인 것이다보니
운동애너지가
최악이었고 명중률도 아주 안좋았습니다.
<핀란드군의 BMP-1 장갑차> 소련도 중동전에서 실전경험을 토대로
BMP-2부터는 30MM 자동포 변경하여서
아프간전쟁에서 아주 효과를 보았었던 것입니다
약간 위력이 센 73MM 포보다
차라리 연발로 쏴데는 30MM자동포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BMP의
사례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이었고
한국육군도 강력한 자동포체계로
방향을 잡고 진행을 한 것이죠.
< 핀란드육군의 BMP-2. 30MM 기관포로 무장 > K-21은 강력한 독일제 엔진을 부착하여 시속 70KM로 주행이 가능하고 상당히 대형이어서 다른나라의 경쟁차량보다 많은 9명의 보병이 탑승가능합니다.
자력도하능력을 부여하려고 하다보니
장갑이 약해져서 특히
측면 방호력이 다소 약한 편입니다.
M2 브레들리의 뒤를 따라가는 K21.
차량 자체가 상당히 커서 보병수송능력도 M2보다 훨씬 우수합니다
실제로 미군의 M2 장갑차의 실내는 아주 비좁아서 사람을 구겨넣다시피한 설계였다고합니다.
최근에 한국군 무기체계가 미군을 앞서는 것들이 많다보니 미국 장교들이 자주 놀러와서 살펴보고 있다. 출처 및 참고자료:구글.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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