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한국전쟁 발발 이후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북한군의 진격에 밀려버린 국군은 UN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낙동강을 사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병력이 부족했던 국군은 포항 지역 방어에 학도병들을 투입하게 됩니다. 그렇게 16~18세의 푸르른 청춘들이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하기위해 펜대신 총을 들었습니다.

 

 

8월 10일 오전 7시

 

포항역에 도착한 71명의 수도사단학도의용대 출신 학도병들은 임시 숙소로 지정된 포항국민학교로 이동했습니다.

 

 

이 곳에서 한국군 제 3사단 작전처 보좌관인 김치련대위와 만났으며 이후 제 3사단 후방사령부가 위치한 포항여중학교로 숙소를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저녁 10시 학도병들은 M1소총과 개인당 실탄 250발을 지급받았고 투표를 통해 중대를 편성한 이후 취침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겐 군번도 없었습니다..

 

 

8월 11일 새벽 3시..

 

영화'포화속으로'中 포항여중전투 학도병

 

포항시내에서 총성이 울렸습니다. 한국군 제 3사단 후방사령부 지휘책임자인 사단인사참모 김재규 소령은 사령부 잔여병력을 이끌고 시내 쪽으로 들어갔고 학도병에게 사령부 방어를, 작전처 보좌관인 김치련대위에게 행정요원 60여명으로 편성된 2개 소대를 지휘하게 하여 학교 뒷산에 배치하는 한편, 일부병력으로 사단 보급품과 기밀문서를 후송하게 하였습니다.

 

 

학도병들은 학교 울타리를 따라 제1소대는 학교 정문 우측으로 부터 강당 측면까지, 제 2소대는 정문 좌측으로 부터 본관 측면까지 경계를 하였습니다.

 

 

8월 11일 새벽 4시..

 

 

소티재 방향에서 녹색 신호탄이 발사되었고 학교 정문 100m 전방에 소속 불명의 병력이 나타났습니다. 당시 3사단 학도의용군 중대장 김용섭은 적군과 아군이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암구호 질문을 고민하였으나 이내 시야로 들어온 병력이 북한군으로 판단하고 20m 거리에서 일제 사격으로 북한군 첨병대를 제압하였습니다.

 

 

8월 11일 새벽 6시..

 

영화'포화속으로'中

 

북한군은 공격을 재개하였으나 실패하였지만 학교 뒷산에 배치되었던 한국군 제 3사단 행정요원 2개소대는 북한군의 공격으로 30여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고 후퇴하였습니다.

 

 

그렇게 북한군은 학교 뒷건물로부터 포위망을 좁혀 들어 왔고 이에 학도병들은 백병전을 벌여가며 11시간 동안 용전분투하여 네차례나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그러나 북한군 5사단 12연대는 오전 9시에 이르러 대량의 포격과 함께 공격을 다시 재개하였고 오후 3시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전사자 37명과 부상자 17명이라는 비참한 결과로 점령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당시의 포항여중 전투는 북한군의 포항시내 진출을 지연시켰으며 그 결과 제 3사단의 보급품의 안전한 이송과 중요 행정문서를 무사히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어느 학도병의 유품(교복단추)

 

1950년 8월 포항 여중 전투에 참가했던 학도병 이우근의 일기가 그의 주머니 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일기는 어느 여군 정훈 장교에 의해 기록되어졌는데 수첩의 핏자국으로 인해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나의 고막을 찢어버렸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귓속에는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니,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순수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아주시던 백옥같은 내복과

내가 빨아입은 내복을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壽衣(수의)를 생각해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당시 전투에 참전하였던 71명 학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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