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라디오가 탄생한 후 전쟁이 벌어지면 적군을 상대로하는 선전 방송이 요란했습니다. 특히 제2차세계대전에서 선전 방송의 여성 아나운서 여러명이 크게 활약했던 때이기도 합니다. 영국군과 미군에게 여러 독설을 퍼부었던 독일의 엑시스 샐리도 있으며 태평양 전쟁과 한국 전쟁에서도 선전 방송은 존재했습니다. 목소리로 적군의 사기를 꺽어놓은 대표적인 선전 방송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도쿄로즈(Tokyo Rose)

 

 

하와이 침공으로 미군과 전쟁을 벌이던 일복 측에서 미군에 대한 심리전의 일환으로 영어방송을 실시했습니다. 당시 미군들은 영어방송을 하는 일본측의 아나운서들은 특유의 나긋나긋하고 애절한 목소리로 미군 병사들에게 인기가 높았는데 그래서 '도쿄 로즈'라는 별명을 붙었습니다. '도쿄로즈'는 진행자가 14명에 이르지만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은 1916년생인 아비바 토구리라는 일본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일본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941년 7월 친척의 간병을 위해 일본을 방문하였는데 그해 12월 7일에 곧바로 발발한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미국으로의 귀국이 불가능해졌고 일본군에 의해 미국 국적을 포기하라는 협박과 심한 감시를 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 마지막 선택지로 연합군 포로로 구성된 '라디오 도쿄'의 영어방송 진행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도쿄로즈는 미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기 위해 주로 "당신들은 왜 무모한 전쟁에 참가해 고생을 하십니까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아내와 애인이 그립지 않느냐 그러니 항복해라"라는 말을 자주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도쿄 로즈를 생포해서 본 모습을 보기 위해 일본을 떄려잡으려는 병사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종전 직후 미군에게 체포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공산당 때려잡기의 기수로 막강한 힘을 행사했던 방송인 월터 윈첼의 압력 때문에 1948년에 다시 체포되어 반역죄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는데 반역죄 혐의를 받은 이유는 단 두 문장 "태평양의 고아들아 너희들은 이제 진짜 고아들이야 너희들의 배들이 모두 침몰했으니 너희들은 어떻게 집에 돌아가겠니?"였는데 결과적으로 이 방송은 연합군측이 해전에서 대승한 다음에 나온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바는 갓 결혼했던 남편과도 강제로 이혼당한 채 6년 동안 형기를 살다가 1956년에 석방되었습니다.

 

 

이후 아이바의 반역 혐의에 대한 증인들이 거짓 진술을 했다는 것이 밝혀져서 1977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사면 및 복권조치를 내렸습니다. 석방 후 본인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41년의 일본 방문은 아버지의 강권(사실상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고, 자신은 절대로 일본에 가기 싫다고 했으나 아버지의 강요를 이기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후 평온하게 살다가 2006년 90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노이 한나

 

 

베트남 전쟁에서 월맹은 미군을 상대로 하는 심리전 방송을 하였습니다. 방송을 하는 아나운서는 트린 티 느고(Trinh Thi Ngo)라는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매일 방송을 시작하면서 자신을 '가을의 향기'란 뜻의 투 홍(Thu Houng,秋香)이라 소개했습니다. 미군들은 모두 트랜지스터라는 라디오 한개씩을 가지고 있었는데 베트남 미군 방송이나 BBC 방송을 청취하다가 심심하면 전파가 잡히는 하노이 방송을 청취하였습니다.

 

 

이름처럼 달달한 그녀의 음성은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미군들의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미군들은 그녀를 '하노이 한나'라고 불렀습니다. 그녀는 하루에 20세번 20분씩 그날 그날 미군 전사자의 명단을 읊어주었는데 미군 전사자가 발생한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미군 전사자의 이름과 고향까지 라디오에서 말했습니다.

 

 

하노이 한나는 미군들을 위해 록 음악을 많이 틀어주었습니다. 그녀는 그 음악을 하노이에 방문한 진보적인 미국들에게 구입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방송의 주요 목적은 당연히 미군 병사들에게 탈영이나 상관 공격을 부치기는 거였습니다. 당시 일부 미군들은 방송을 들으면서 미군의 위치나 전투준비와 전상자에 관해 그렇게 정확한 정보를 가질 수 있는지 놀라워했습니다. 이후 심리전에 복무한 8년간의 활동을 인정받아 국가로부터 일급 저항훈장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현재 호치민시에서 엔지니어 출신의 남편과 함께 평범한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제 전쟁은 끝났습니다. 미국과 한국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와도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서울시티 수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 초기에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던 북한군이 8월 낙동강전선에 주춤할 때였습니다. 당시 라디오 다이얼을 돌리던 미군 병사들은 감미로운 미국 본토 발음의 여자 아나운서 방송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목소리에 주인공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전 서울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안나 윌리스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안나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 의해 강제로 '서울 라디오'방송에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북한 측이 심리전에 동원시킨 여성으로 당시 한국전에 나선 미군들은 대부분 신병들이 많았는데 순진한 젊은 미군들에게 모성애를 자극하는 방송을 하였습니다. 한국 땅에서 영어 방송 목소리의 주인공은 젊은 여성이 아니라 중년 여성으로 미군 병사들에게 모성애를 나타내듯 고향소식을 전했습니다. 미군들은 당시 미국의 인기 여가수 '수 시티 수' 이름을 본따 '서울시티 수'라고 불렀습니다.

 

 

매일 생포된 미군포로들의 명단과 전사자 명단을 호명하며 미군 병사들의 기를 죽였습니다. 또 "왜 이름도 모르는 조선에와서 남의 나라 통일전쟁에 귀한 목숨을 버리는거야 빨리 투항하면 아름다운 아가씨들 품에 안겨 잠들수 있어"라고 달콤하게 유혹했습니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미군과 한국군이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해 서울시티 수를 체포하려고 했으나 이미 북한군과 북쪽으로 사라졌습니다. 휴전이 된 후에도 그녀는 평양에서 라디오 방송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65년 평양 백화점에서 모습을 보였으며 1969년에 숙청당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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