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굉장히 특이한 외관과 2차 대전,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많은 영화에 출연해서

 

많이 낯이 익었을 총기라고 생각되네요

 

 

 

제원부터 알아보도록 할게요

PPSH-41 (Пистолет-Пулемёт Шпагина)

 슈파긴 기관단총

 

2차대전 소련군의 기관단총

 

 

사용국가 : 소비에트 연방 (소련)

 

생산연도 : 1941년 -1950년

 

무게 : 3.63 Kg

 

길이 : 26.9 cm

 

사용탄환 : 7.62x25mm Tokarev

 

장탄 수 : 35발 박스탄창 / 71발 드럼탄창

 

최대사거리 : 200m

 

연사속도 : 900발 /분

 

생산량 : 600만 정

 


 

 

 

 

<오늘 소개할 PPSH41 기관단총>

 

 

굉장히 특이한 외형으로 인기가 많으며,

 

성능 또한 당대

 

최고의 기관단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풀네임은 Пистолет-Пулемёт Шпагина

 

(슈파긴 기관단총)이며,

 

러시아어로 "뻬뻬샤" 라고 불려요.

 

별명인 "파파샤"는 "아빠"라는

 

 뜻의 러시아어에요.

 

 

발음이 쉽긴하지만,

 

세계적으로 흔히 "파파샤"로 알려져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 (소련)에서

 

사용되었으며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부터

 

사용되어 1950년에 생산이 종료되었어요.

 

 

무게는 3.6kg으로,

 

당시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독일군의

 

기관단총 MP40 (4Kg)과 비교해서

 

가벼운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71발 드럼탄창을 장전할 시 무게는 5Kg 이상이 된다.)

 

길이 또한 27 cm인데, 기관단총치고는

 

적당한 무게와 길이를 가졌다고 할 수 있어요.


 

 

 

 

파파샤의 연사력은 분당

 

900발 이상으로 알려져있는데,

 

오픈볼트 방식으로서 연사력은

 

미친듯이 높지만 약실이 항상 개방되며

 

먼지나 모래 등 이물질의 유입이 쉽고,

 

명중율이 낮았으며 떨어뜨릴시

 

오발의 가능성이 높다는 단점이 있어요.


 

 

 

 

 

<7.62 x 25mm Tokarev 탄환>

 

 

파파샤의 사용탄환으로,

 

 당시 소련군에서 널리 사용된 권총탄이에요.

 

애초에 파파샤는 권총탄을 사용하는 기관단총이므로,

 

권총탄이라고 해서 헷갈리지 마세요.

 

 

탄두의 지름은 7.62mm이지만

 

탄피의 길이가 짧고 화약이

 

그만큼 적게 들어가기 때문에

 

AK 소총에서 사용하는 7.62mm 소총탄과

 

같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아무튼, 파파샤는 권총탄을 사용하는 관계로

 

유효사거리가 100m가

 

 채 안되고 최대사거리 또한 200m에 이릅니다.

 

 

 

당시 소련군의 제식 권총인 <Tokarev TT-33>

 

 (일명 토카레프)이 이 탄환을 사용해요.

 

 

 

 

<파파샤의 71발 드럼탄창>

 

 

파파샤의 최대 장점 중 하나가

 

바로 드럼탄창을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미군의 톰슨 드럼 기관단총도 있지만,

 

미군의 경우 급탄 불량 문제 등으로 거의 M1A1 톰슨,

 

즉 박스 탄창이 달린 군용 톰슨 기관단총을

 

사용했기에 일단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Thompson M1928 (톰슨 기관단총)

 

 

파파샤는 71발이 장전 가능하지만,

 

당시 소련의 공업기술의 한계로 65발 이상

 

장전할 시 급탄 불량이 심했다고 합니다.

 

주로 탄환을 밀어올리는 스프링의 장력이

 

약하고 품질이 좋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래서 소련군 병사들은 71발을 모두 채우지 않고

 

 60여 발 언저리로 채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또 일반적인 드럼탄창의 경우

 

태엽을 모두 감고 탄환을 장전하는데,

 

파파샤는 반대로 탄환을 모두 넣은 후

 

 태엽을 감았기 때문에 만약 급탄 불량이 일어날 경우

 

최악의 경우 탄창을 버려야 했다고 합니다.

 

(드럼 탄창 사용시 급탄 불량 문제가

생기면 태엽을 감기만 하면 되는데

파파샤의 탄창을 그럴 수 없었다.)


 

 

 

드럼 탄창의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자,

 

소련군은 일반적인 박스 탄창을 보급했어요.

 

 

총 35발이 장전되는데,

 

이도 적은 장탄 수는 아니었지만

 

일선 병사들은 장탄 수가 절반으로

 

뚝 떨어지자 갖은 불평을 했고,

 

종전 시까지 드럼탄창을 사용하며

 

예비 용도로 박스탄창을 휴대했다고 합니다.

 

<PPD-40 기관단총>

 

1934년 설계된 소련군의 前 기관단총

 

 

절삭가공 방식으로 생산하여 가격이 비싸고, 

 

제조시간이 길었으며 성능도 좋지 못했어요.

 

무엇보다 소련군은 여태껏 기관단총의

 

실용성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1936년, 소련은 핀란드를

 

침공해 겨울전쟁을 일으키게됩니다.

 

당시 소련군에겐 PPD-40 이란 파파샤의

 

형뻘 되는 기관단총이 있었는데

 

사실 소련군은 이때까지도

 

기관단총의 실용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겨울전쟁 중 숲과

 

시가전에서 주로 전투가 이루어졌었는데,

 

좁고 나무가 빽뺵한 숲 속에서 핀란드군의

 

 수오미 기관단총은 엄청난 성능을 보여주었습니다.


 

<수오미 기관단총의 모습>

 

 

핀란드군 스키부대가 쏴대는

 

수오미 기관단총에 막대한 피해를 입은 소련은

 

그제서야 기관단총의 무서움을 깨닫고

 

 PPD-40을 대량으로 생산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대로 절삭가공으로 제작되는

 

 특성상 단가가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릴 뿐더러,

 

성능도 그렇게 좋지 못했어요.

 

결국 소련군은 새로운 기관단총의 개발을 지시하는데,

 

 이것이 바로 파파샤 기관단총입니다.

 

 

 

(영화 <다운폴> 中에서)

 

당시 소련군 중대 중에는 파파샤 기관단총으로만

 

 무장한 "기관단총 소대"가 존재했다고 합니다.

 

 

게오르기 슈파긴이 개발한 파파샤는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졌는데,

 

PPD-40 보다 적은 부품을 가지며 구조가

 

단순해졌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였던

 

절삭가공 방식을 프레스

 

제조방식으로 바꾸는데 성공했습니다.


 

 

 

 

따라서 제작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었고,

 

단가 또한 훨씬 내려가게 되었어요.

 

파파샤의 1정 제작 속도는 약 7시간으로,

 

 많은 기계도 필요없이 손쉽게 제작이 가능했습니다.

 


 

 

 

<파파샤의 분해도 및 부품도>


 

 

 

 

1941년, 독일-소련 전쟁이 발발했고 파파샤는

 

 그 성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특히나 파파샤를 난사하며 수천명의 우라돌격이

 

감행될 때는 진심으로 엄청난 광기를 불러일으켰어요.

 

 

단가가 싸고 빠른 시간내에 만들 수 있으며,

 

연사력이 분당 900발에 71발의 장탄 수를 가진데다

 

여느 소련제 총기가 그렇듯 혹한의

 

추위 속에서 고장이 잘 나지 않았어요.

 

 

이렇게 파파샤 기관단총은

 

모신나강 소총과 함께

 

소련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영화 <마이웨이> 中에서)

 

 

물론 장점만 가진 총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문제점은 명중율이 낮다는 것인데,

 

기관단총은 근접전에서 탄을 뿌리는 역할을 하는

 

무기인지라 명중율은 그렇게 문제가 되지도 않아요.

 

 

 

 

 

 

그러나 전쟁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당시 남아돌던 모신나강 소총의 총열을

 

반으로 잘라 두 개의 파파샤 총열을

 

 만들었다고 할만큼

 

조악하게 만들어지던 시절도 있었는데

 

 

심한 경우 드럼 탄창을 풀로 갈기면

 

총열이 녹아서 흐물흐물해진

 

 사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독일-소련 전쟁,

파파샤로 무장하고 있는 독일군 병사

 

 

독일군과 소련군은 서로의 기관단총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선, 독일군은 만성적인

 

 물자 부족으로 전쟁 내내 고생을 했어요.

 

 

전선이 확대되면서 보급선이

 

너무 길어진 문제였는데

 

자연적으로 적의 무기를

 

노획하는데 열중하게 됩니다.


 

 

 

 

소련군에게서 빼앗은 파파샤를

보고 만족해하는 독일군의 모습

 

 

특히 파파샤 기관단총의 경우 엄청난 성능을

 

 가진데다 소련군의 우라돌격을 한번 막아내면

 

거의 무한대로 노획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당량의 파파샤가 독일군에 의해 사용되었어요.


 

 

 

 

 

(영화 <마이웨이> 中에서)

 

파파샤 기관단총으로 소련군의 우라돌격을

 

 저지하고 있는 독일군의 모습!


 

 

 

독일군에 의해 개조, 사용된

9mm 버젼의 파파샤 기관단총

 

 

아예 독일군은 제식명까지

 

붙여가며 소련군의 무기를 애용했는데

 

본국에서 수급이 가능하고 자국의 제식 권총탄인

 

 9mm 탄환으로 개조해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독일군들은 이 총의 생김새와 격발음이 자기네

 

악기인 "발랄라이카"와 유사하다고 생각해서

 

"발랄라이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독일군의 제식 기관단총, MP40

 

 

소련군도 이에 질세라 독일군의

 

 MP40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는데

 

정밀하게 만들어진 독일제 무기라는

 

 인식이 강했고 9mm 탄환을 사용하는 관계로

 

반동이 적고 연사력도 분당 500발 수준으로

 

낮아서 사용하기 편하다고

 

많이 노획해서 사용했습니다.

 


 

 

 

 

소련군의 엄청난 포화 속에

 

독일의 수도 베를린이 점령되며

 

2차대전이 종전되었습니다.

 

 

이후 1947년, AK-47 소총이 개발되자

 

파파샤는 곧바로 2선급 무기로 분류되어

 

도태되었고 후방에서나 사용하거나

 

 창고로 치장되었습니다.


 

 

 

 

 

종전 이후

 

, 미국과 소련은 냉전 체제로 돌입하게 되는데,

 

전세계의 위성국들에게

 

각자의 무기를 공여하게 됩니다.

 

 

주로 중국이나 북한, 우크라이나 등의

 

공산국가에 대량의 파파샤가 뿌려졌는데,

 

특히나 북한으로 공여된 파파샤의 경우는

 

전쟁동안 닳고 닳은 폐기 직전의 물건들이 많았어요.

 

 

북괴의 수장인 김일성은

 

 파파샤 기관단총을 아주 좋아했는데

 

1949년,  "49식 기관단총" 이란

 

명칭으로 북한에서 직접 생산하기에 이릅니다.


 

 

 

 

북괴에서 생산된 "49식 기관단총"을 들고 한컷 박은

 

 김일성과 그의 수하 빨갱이들의 모습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中에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발발한

 

 한국전쟁 당시 엄청난 수의 북괴군이

 

파파샤를 들고 남침을 해왔어요.

 

당시 국군의 무장은 일부 부대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일제 38식, 99식

 

보병총이었는데

 

분당 900발의 연사속도를 가진

 

파파샤 앞에서는 어림도 없는 무기였어요.


 

 

 

 

(영화 <고지전> 中에서)

 

"오발로 보고해."

 

 

한국전쟁 초기, 파파샤는

 

 국군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실제로 한국전쟁 초창기

 

수많은 국군용사들이 이 총에 산화했어요.

 

 

그러나 앞서 언급한대로 북한군의 파파샤는

 

 성능이 떨어졌다고 알려져있어요.

 

 

한국전쟁에 참전한 참전용사

 

 신재준 씨 (82)의 증언에 따르면,

 

 

"M1과 카빈 소총인데 성능이 좋았어.

 

인민군이 갖고 있는 따발총은 성능이 떨어졌지.

 

인민군은 약아서 우리가 잠복근무를 나간 밤에

 

등 뒤에서 따발총을 쐈어.

 

아군들이 많이 죽었지."

 

 

라고 회상합니다.


 

 

 

 

(영화 <포화속으로> 中에서)

 

 

당시 국군은 이 괴상하게 생긴 소련제 무기의

 

 이름을 모르는데다

 

격발음이 "따따따따-" 했기 때문에

 

"따발총" 이라고 불렀는데,

 

아직도 당시 전쟁을 경험하신 어르신들은

 

이 총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고합니다.


 

 

 

 

1965년 발발한 베트남 전쟁에서도

 

다수의 소련제 무기를 공여받은

 

북베트남군이 파파샤 기관단총을 사용했습니다.

 

북베트남군은 가장 흔히 사용된 AK-47 소총

 

 이외에도 모신나강, 파파샤, 심지어 소련군에

 

의해 노획된 독일제 무기들도 사용했어요.

 

 

 

소련에서는 이미 2선급 무기로 전락하여

 

대다수의 파파샤는 치장되었지만

 

최근까지도 준 군사집단에서

 

사용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어요.

 

 

 

 

 

노획한것으로 보이는 파파샤 기관단총에

포어그립과 슈어파이어, 이오텍 사이트를 장착하여

 사용중인 미군

 


 

 

 

 

미국에서는 아직까지도 대전 당시의

 

무기들을 스포츠 용도로 사격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대다수의 소련제 무기들은 가격은 얼마 하지 않지만,

 

탄환 수급이나 부품 수급의 문제 및 노후화,

 

저품질 등의 문제로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합니다.


 

 


 

 

 

출처및참고자료  : 나무위키 .구글 , IMFDB http://www.imf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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