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백두산은 지금까지의 예상을 훨씬 넘는 대폭발의 위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피해는 세계의 황폐를 일으킬 만큼 심대한 것이 될 수 있다고 전세계 과학자들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전문가에 따르면 최신 연구에 의해서 과거 백두산이 그동안 알려진 규모를 크게 넘는 치명적인 분화를 일으킨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백두산은 사상 최악의 피해가 우려되는 화산의 하나인 만큼 만일 큰 폭발이 일어났을 경우 주변 지역뿐 아니라 전세계 규모의 황폐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역사적으로 백두산은 946년에 가장 파괴적인 규모의 분화를 일으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기세는 굉장하여 정상에서 약 5000m의 칼데라가 형성되어 그 화산재는 약 1100km 떨어진 일본까지에 도달할 정도였습니다. 이는 2010년 4월 있었던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분출물의 약 1,000배에 달합니다.

 

 

또한 946년 백두산 분화보다 화산 지수가 2단계나 낮은 세인트 헬렌스 화산이 기록한 에너지 방출량이 350Mt으로 차르 봄바의 7배나 됐는데 만약 백두산이 다시 폭발한다면 에너지 방출량은 차름 봄바의 1,000배도 가능합니다.

 

 

그동안 백두산은 최대 규모의 분화를 일으킨 산 중의 하나이며 폭발 시의 유황의 방출량은 적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946년 당시 백두산 폭발은 최대 4500만톤의 유황을 대기 중에 방출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는 백두산이 다시 폭발하는 경우 상상을 뛰어넘는 분량의 유황이 대기로 확산되면서 지구상의 생명이 끔찍한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946년 분화로 백두산이 방출한 유황은 1815년 폭발하는 세계 곳 곳에 이상 기온을 가져온 탄보라 유황 배출량을 넘었습니다. 참고로 인도네시아 탄보라 산의 분화에서는 직접적인 피해로 약 1만명의 사망자가 나온 후 기근과 역병으로 다시 약 6만이상의 십수만명의 인명을 앗아갔습니다.

 

 

또한 이 폭발은 그 해에 일어난 세계 규모의 이상 기온 저하 외에도 이듬해에 구미 제국에 일어난 기록적인 저온현상을 초래했습니다. 당시 폭발이 백두산에서 다시 일어나면 우리나라를 비롯 러시아,중국,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농작물 흉작과 식량 부족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백두산 화산 폭발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편서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 백두산이 폭발한다면 화산재가 우리나라나 중국 쪽으로 가지 않고 태평양 쪽, 즉 일본 쪽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말그대로 백두산 폭발시 바람이 동쪽으로 분다면 일본은 아마 아이슬란드 화산보다 1,000배는 더 센 폭발의 화산재를 다 뒤집어쓸 것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백두산의 분화를 초래하는 요인의 하나로 김정은 정권에서 자행되는 북한의 핵 실험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실험의 진동이 지하의 용암에 영향을 주고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북한 핵실험이 잠자고 있는 백두산 화산을 폭발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장이 백두산까지 113km로 폭탄의 영향이 미치는 거리에 있어 앞으로 북한이 지금보다 더 큰 규모의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백두산 화산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백두산 지하에 마그마가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 북한 핵실험으로 규모 진도 7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다면 그 압력으로 백두산이 폭발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일본의 화산전문가는 백두산 폭발 확률이 2019년 68%,2032년에는 99%까지 올라간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백두산이 실제로 폭발한다면 반경 60km 이내 지역은 순식간에 용암과 화산재에 파묻혀 쑥대밭이 될 것이며 폭발 후 2시간이면 양강도 혜산, 함경남도 신포, 함경북도 청진 부근까지 덮치고 8시간이면 울릉도와 독도에까지 도달할 것입니다.

 

 

또한 천지 지하에 응축되어 있던 고밀도 이산화탄소가 폭발하면서 인근 지역 주민들은 질식사할 가능성이 큽니다. 계속되는 북한의 핵실험은  핵무기로 전 세계 평화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잠자고 있는 백두산까지 깨우고 있습니다.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경 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 6km지역에서 규모 5.5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이번 지진은 기상청 관측 사상 역대 두 번째로 강한 규모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도 각종 피해가 속속 확인되면서 피해 규모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부상자 수는 18일 현재 80명으로 집계됐습니다. 민간시설 피해 건수는 1천322건이나 됩니다.

 

 

전문가들은 양산단층이 활동성이 있는 단층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꾸준히 지진이 발생할 것이며 지진이 발생할 시기나 규모는 알 수 없지만 큰 규모의 지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라는 말은 이제 옛말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처럼 우리나라에도 쓰나미가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쓰나미가 몰려온 삼척 임원항

실제로 지난 1983년 동해안에서 쓰나미 피해로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1983년 5월 26일 일본 아키다 현 서쪽 해역에서 리히터 규모 7.7의 지진이 발생했으며 지진의 여파로 일본과 러시아를 비롯해 강원도 삼척 임원항에서도 쓰나미 피해가 발생해 당시 1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으며, 선박 81척이 부서지고 건물 44동이 붕괴됐습니다.

 

▲쓰나미가 빠져나간 삼척 임원항

당시 임원항에서는 쾅하는 폭음과 함께 깊이 5미터의 항구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한꺼번에 물이 빠져 나갔다가 10분쯤 뒤 쏴하는 소리와 함께 파도가 밀려왔으며 파고는 3.6~4미터 규모였습니다. 확보된 사진을 보면 항구에 있는 마을이 쓰나미가 닥치면서 모두 잠겨 최근 발생한 일본 쓰나미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당시 삼척 쓰나미를 목격한 주민은 "천둥 치는 소리가 나면서, 사진에 보시면 저 앞, 임원항 앞 바다가 갈라졌었다. 이날 지진 여파로 임원항 앞바다가 갈라져 바닷물이 빨려 들어갔고 사람(어부)도 2명이 그 틈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고 밝혔습니다.

 

 

만약 우리나라 동해가 아니라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날 경우에도 우리나라에 쓰나미가 상륙할 수 있습니다. 위 시뮬레이션 자료에 따르면 일본 혼슈 근해에서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부산에 도달하는 쓰나미의 파고는 최고 5.5m에 달합니다. 쓰나미가 발생하면 장소에 따라 적절하게 대피하는 요령을 숙지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해안가인 경우 일본 서해안에서 지진 발생 후 동해안에 해일이 1~2시간 이내에 도달하므로 해안가에서 작업을 중단하고 신속히 고지대로 대피해야 합니다.

 

 

해안가에 있을 때 강한 진동을 느꼈을 경우는 국지적인 해일의 발생 가능성이 있고 약 2~3분 이내에 해일이 내습할 수 있기 때문에 지진해일 특보가 발효되지 않았더라도 신속히 이동해야 합니다. 참고로 지진해일 주의보는 한반도 주변지역 등에서 규모 7.0 이상의 해저지진이 발생해 해일의 발생이 우려될 때, 지진해일 경보는 한반도 주변 지역 등에서 규모 7.5 이상의 해저지진이 발생해 우리나라에 지진해일 피해가 예상될 때 발령됩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이 잠깐이라도 살면 안 될 정도로 오염이 심각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오염된 물로 인해 질병으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구 상에서 가장 깊은 바다로 알려진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의 오염도 심각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심각한 오염으로 평균 수명이 가장 짧은 도시 15 곳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15 방글라데시 다카

방글라데시의 면적은 한국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다카는 방글라데시의 수도이자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엄청난 쓰레기 처리로 골머리르 앓고 있으며 오염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14 아르헨티나 마탄사 강 유역

이 유역의 제방에는 4000채 가까운 공장과 42곳의 쓰레기 집적장, 그리고 13곳의 빈민촌이 있습니다. 건강상의 피해도 커서 이 땅에 사는 사람의 평균 수명도 짧으며 오염의 대명사로 유명한 곳입니다.


 

 

13 멕시코 멕시코시티

최악의 대기 질로 악명이 높은 멕시코시티에서는 100일동안 8차례에 걸쳐 대기오염 비상령이 걸릴정도입니다.


 

 

12 콩고 브라자빌

강물의 수질 오염이 매우 심각한 수준인 콩고 공화국의 수도인 브라자빌에는 건강 문제, 위생 문제가 심각하며 평균 수명도 이미 아프리카에서 가장 낮은 지역입니다.


 

 

11 중국 티옌잉

중국 납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이 동네는 세계 최악의 납 오염 지역의 하나이며 가짜 크림치즈, 가짜 맥주 등 가짜 음식을 생산하면서 유명해진 곳이기도 합니다.


 

 

10 인도 야무나 강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 주에는 야무나 강이있습니다. 하지만 성스러운 강이라는 명성이 무색할 만큼 강물은 심하게 오염돼 있습니다. 인도 북부의 대도시 델리의 쓰레기의 60%가 버려져 있다고 합니다.


 

 

9 아제르바이잔 슴가이토

시대 착오적인 방법의 결과로 이 지역에 있는 40개 이상의 공업 단지는 심한 유해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주민에게 가져오는 건강 피해도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8 러시아 제르잔스크

1930년과 1988년 사이 30만t의 화학 폐기물이 제르진스크와 주변 지역에 버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유출된 침출수에서 190가지의 유해화학물질이 검출되었습니다. 이 지역 수질을 분석한 결과 허용치보다 수천 배 많은 다이옥신과 페놀이 검출됐습니다.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오염이 심한 지역으로 등재되기도 했으며 이 지역의 평균수명이 여성 47살, 남성은 42살에 불과합니다.


 

 

7 잠비아 카브웨

잠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광산 도시인 이곳의 아동 혈액 분석 결과 권장치보다 5~10배 높은 납이 검출됐습니다. 이는 1902년 시작되어 90년간 납 광산이 가동한 결과입니다. 지금은 광산이 폐쇄되었지만 광물 찌꺼기가 날려 오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6 일본 후쿠시마

세계보건기구는 후쿠시마 인근지역에서 어릴 때 노출된 방사능으로 인한 암발병 위험이 증가하기 시작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여자 아이들에게 70%의 갑상선암 발병위험이, 남자 아이들에게는 7%의 백혈병 발병위험이, 여성에게는 6%의 유방암 발병위험이 그리고 여성에게는 4%의 모든 유형의 고형암 발병위험이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5 가나 아그보그블로시

서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전자제품 폐기물 처리 시설이 있는 지역으로 폐전자제품을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중금속 오염이 심각합니다. 이곳의 토양에서 납은 미국내 허용치 400ppm보다 45배나 높은 1만8125ppm이 검출되었습니다. 알루미늄 오염도 기준치의 17배나 높습니다. 가나는 주로 서유럽에서 연간 21만5000t의 폐가전제품을 수입해 오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12만9000t이 전자폐기물으로 버려지고 있으며 2020년까지 폐가전제품 수입량이 두배로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4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1986년 4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곳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의 100배가 넘는 방사능이 누출되어 약 15만㎢의 지역이 심각하게 오염되었고 지금도 반지름 30㎞지역에 출입이 통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3 중국 린펀

린펀은 중국 석탄 산업의 중심이자 중국 에너지의 3분의 2를 제공하는 샨시성에 위치해있습니다. 이 동네에서는 “빨래를 밖에 말리면 마르기 전에 시커멓게 된다” 라는 말까지 있다.


 

 

2 북태평양 선회

태평양에는 사실 텍사스 주 2개 크기의 쓰레기 섬이 떠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조금 과장도 있지만 실제도 엄청난 양의 쓰레기 더미가 둥둥 떠다니고 있습니다.


 

 

1 이란 아바즈

이란 아바즈는 이라크 국경과 가까운 도시 중 하나인데 공기오염으로 심각한 중국은 모두 저리 가라 할 수준입니다. 낮에도 밖에 있으면 사막지역 답게 모래바람이 몰려오며 모래 바람속에는 각종 유해물질이 섞여있기 떄문에 건강에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이승엽-

 

이승엽은 누구나 인정하는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슈퍼스타이자 살아있는 레전드입니다. 많이 알려진 별명은 라이온 킹, 국민타자입니다. 이승엽은 1995년 입단해 2017년 올해를 끝으로 은퇴를 예고하였습니다. 어느덧 프로 23년 차에 접어든 이승엽이 남긴 기록들을 살펴보록 하겠습니다.


 

1. 이승엽의 데뷔 첫 홈런

경북고를 졸업한 뒤 1995년 삼성에 입단한 이승엽은 1995년 5월 2일 광주 해태전에서 이강철을 상대로 데뷔 첫 홈런을 터트렸습니다. 이승엽은 데뷔 첫해 13개의 아치를 쏘아 올리며 거포 탄생을 예고했습니다.

 

2. 데뷔 3년 만에 홈런왕 등극

이승엽은 1997년 32홈런을 터트리며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그해 타율 3할2푼9리(517타수 170안타) 32홈런 114타점 96득점을 기록하며 안타, 홈런, 타점 등 3관왕에 등극했다. 이승엽은 정규시즌 MVP와 1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동시 석권하는 기쁨을 맛봤다.

 

3.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

이승엽은 1999년 9월 2일 대구 LG전 5회 2사 1,2루 상황에서 좌완 방동민의 4구째를 받아쳐 좌월 스리런을 터트려 데뷔 첫 50홈런 고지를 밟았습니다. 그리고 1999년 54홈런을 기록한 이승엽은 2003년 심정수(당시 현대)와 대포 경쟁을 벌이며 56개의 아치를 터트리면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4. 영원한 홈런타자 이승엽

이승엽은 1997년 데뷔 첫 홈런왕(32개)에 오른 뒤 1999년(54개), 2001년(39개), 2002년(47개), 2003년(56개) 등 5차례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하며 홈런 타자의 대명사로 불렸습니다.

 

5. 6경기 연속 경기 홈런

이승엽은 데뷔 첫 50홈런 고지를 돌파한 1999년 7월 19일 사직 롯데전부터 7월 25일 대구 해태전까지 6경기 연속 대포를 가동했습니다. 6경기 연속 홈런을 때린 타자는 이승엽을 비롯해 찰스 스미스(당시 삼성), 이호준(당시 SK) 등 3명. 이후 이대호(당시 롯데)가 2010년 8월 4일 잠실 두산전부터 2010년 8월 14일 광주 KIA전까지 9경기 연속 홈런을 쏘아 올렸습니다.

 

6. 프로 최초 8년 연속 20홈런 이상 기록

이승엽은 1997년 데뷔 처음으로 20홈런 이상을 기록한 뒤 지난해 8월 11일 대구 LG전 3회 상대 선발 김광삼의 초구를 받아쳐 시즌 20번째 우월 솔로포를 터트리며 한국프로야구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7. 세계 최연소 개인 통산 300홈런

이승엽은 2003년 6월 22일 대구 SK전서 2-3으로 뒤진 8회 SK 세 번째 투수 김원형의 1구째 직구(139km)를 잡아 당겨 우월 솔로 아치로 연결시켰습니다. 이승엽은 26세 10개월 4일의 나이로 일본 왕정치가 1967년에 기록했던 27세 3개월 11일을 무려 5개월 여 앞당긴 세계 최연소 기록을 세웠습니다.

 

8. KBO리그 최고 개인 통산 400홈런
이승엽은 2015년 6월 3일 포항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6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 3회 롯데 선발 구승민에게서 홈런을 쏘아 올렸습니다. 시즌 10호째이자 개인 통산 400호째 홈런. 한국프로야구의 새 역사를 쓰는 순간이었습니다

 

9. 한일 통산 600홈런

작년 9월 14일 한화와의 홈경기에서 이재우의 3구째를 공략해 우월 솔로 아치를 쏘아 올리며 한일 통산 600홈런을 달성했습니다.

 

10. 통산 최다득점 달성

올해 5월 2일 두산과 경기에서 9회말 2사에서 슬라이딩으로 홈플레이트를 찍으면서 KBO리스 통산 1300득점을 달성했습니다. 이 득점으로 양중혁의 종전 기록 1299점을 넘어서며 KBO 역사에 또다 른 페이지를 썼습니다.

 

코리안 특급으로 불렸던 박찬호는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였습니다. 주무기는 빠른 강속구와 파워 커브, 슬로 커브, 슬러브이며 특히 파워 커브는 메이저 최고의 명품 구질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국인 야구선수로 메이저리그에서 최초로 홈런을 친 타자이기도 합니다.

 

 

박찬호는 공주고등학교 시절 고3이었던 1991년에 한미일 청소년 야구대회에 청소년대표로 미국에 간 적이 있었고, 그때부터 MLB에 대한 꿈을 가졌습니다. 공주고등학교 당시에는 4번타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당시 초특급 유망주였던 조성민, 임선동, 손경수 등 이른바 Top 3에 비해서는 그리 이름을 날리지 못했습니다. 고향팀 빙그레 이글스와 계약금 5,000만원에 거의 합의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인해 한양대학교에 진학하였습니다.

 

 

그리고 박찬호는 1991년 한미일 청소년 대회 때 숙소를 제공해 준 것으로 인연을 맺은 스티브 김을 통해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받았음을 확인했고 1994년 1월 11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계약금 120만 달러를 받고 정식으로 입단하게 됩니다. 당시 박찬호는 그 해에 NL에서 두번째로 어린 선수였습니다.

 

 

첫해인 1994년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바로 메이저리그로 직행하였으며 5선발 자리를 두고 여러선수들과 경쟁하였습니다. 그리고 박찬호의 최전성기는 많은 정상급 타자들이 약물을 복용하여 타고투저 현상이 극심하던 1997년에서 2001년 사이로 당시 그의 위치는 LA 다저스의 1선발이었습니다.

 

 

그는 그 기간 동안 시속 160KM에 육박하는 강속구와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도하는 슬러브 및 파워커브로 연평균 15승/200이닝/200삼진/3점대 방어율이라는 성적을 기록하면서 당대 내셔널리그 우완 최고 투수 중 한 명이라 평가받으며 메이저 리그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사이영상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성적을 바탕으로 FA 시장에서 투수 부문 1위로 평가받은 그는 2002년 텍사스와 5년 6500만 달러(옵션 포함 7100만 달러) 라는 초대형 계약을 맺기도 하였습니다.

 

 

1998년 아시안게임에서는 대표팀 에이스로서 야구 대표팀을 이끌었고 금메달을 획득하여 병역 면제를 받았습니다. 2006년에는 제 1회 WBC에도 참가하여 부동의 에이스로서 1승 3세이브 무실점의 성적을 보이며 4강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2010년을 끝으로 메이저 리그에서의 커리어를 마감한 그는 2011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에서 잠시 뛰기도 하였습니다.

 

 

현재까지도 패스트볼의 구위만으로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압도한 동양인 선발투수는 박찬호와 일본의 노모뿐입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고향 팀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의 대미를 장식하고 그 해 11월 29일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그리고 야인이 된 박찬호는 골프에 푹 빠져살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파워 히터인 박찬호는 탄탄한 하체를 기반으로 빠르게 클럽 헤드를 끌어내리면서 최고 137마일(220km)의 드라이버 헤드 스피드를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 평균(113마일·181km)은 물론,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127마일·204km)보다도 헤드 스피드가 빠릅니다.

 

 

그런데 최근 한화에 김성근 감독이 사퇴하고 난 후 차기 감독 후보로 다시 박찬호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한화는 이번에도 이름값 있는 감독을 선택할 확률이 높습니다. 팀이 크게 흔들린 상황에서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추슬러야 하는 입장입니다. 여기에 박찬호는 충남 공주 출신으로 지역 야구를 대표하는 스타라는 상징성도 있습니다.

 

 

한화는 “여러 가능성을 놓고, 다양한 후보를 접촉중인 단계”라며 신중한 입장입니다. 박찬호는 현재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야구 최고의 스타인 박찬호가 다시 한번 감독으로 제2의 야구 전성기를 맞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1980년대에 미국의 NASA는 우주왕복선을 개발하면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미국의 라이벌이었던 소련도 우주왕복선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러시아어로 '눈보라'라는 뜻으로 소련의 우주오아복선 계획에 의해 유일하게 완성된 부란(Буран)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부란은 미국에 비해 늦게 만들어진 만큼 미국의 우주왕복선과 달리 제작 당시 동원할 수 있는 최신 우주기술을 총동원하여 제작되었습니다.

 

 

부란의 제원은 전장 36.4M 날개 너비 24M 전체 중량 105톤, 발사 시 탑재 가능 중량 30톤, 귀환시 탑재 가능 중량은 20톤이였으며 탑승 가능 인원은 승무원 2~4명, 탑승객 6명으로 총 10명까지 가능하였습니다.

 

 

그리고 1988년 11월 15일 눈구름과 발마이 강한 카자흐스탄의 바이콘르 코스모드롬에서 부란은 거대한 에네르기아 로켓에 실려 발사되었습니다. 부란은 세 시간 동안 지구를 두 바퀴 돈 후에 아무런 오점을 남기지 않고 안전하게 착륙하였습니다.

 

▲미국 나사의 우주왕복선과 부란의 비교 사진

이 우주왕복선 오토파일럿 기능은 지상 관제 센터에서 컴퓨터로 원격 조작한 것인데, 우주선의 원격 조작은 비행기의 원격 조작이나 오토파일럿과는 차원이 다른 극도로 어려운 작업이며, 소련이 우주왕복선의 무인 비행에 성공하자 NASA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결국 NASA도 우주왕복선의 오토파일럿 기술 개발에 착수했지만 끝끝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부란은 2010년 미국의 X-37이 재돌입 후 자동 착륙을 하기까지 유일한 자동재돌입 및 착륙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작업용 로봇팔도 미국 우주왕복선은 1개밖에 없지만 부란에는 2개가 달려 하나가 고장나거나 파괴되더라도 다른 하나로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당시 NASA는 우주왕복선이 대기권 진입시 기체 내부의 온도 상승을 막는 기술이 없어서 우주왕복선의 연료가 대기권 진입시에 기체의 온도 상승이나 기체 내 압력 폭증으로 인해 폭발하지 않도록 모든 연료를 우주상에 버리고 대기권에 진입했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우주왕복선은 활공 비행을 통해 지구로 귀환했고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폭풍이 온다면 우주왕복선의 비행 경로가 틀어져 지정된 지점으로 귀환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우주왕복선은 발사 당일뿐만 아니라 귀환 당일에도 기상이 좋아야 했고, 당연히 발사일을 선정하기가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그러나 부란의 경우에는 대기권 진입시에도 기체 내의 압력과 기온을 안정되게 유지하는 기술이 적용되어 우주상에서 연료를 버리지 않고 대기권을 진입하였으며, 대기권 진입 이후에는 제트엔진을 가동하여 목표지점으로 얼마든지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단, 1988년 우주비행을 한 1호기에는 제트엔진이 없었습니다. 비행 이후 제트엔진을 달았지만 소련이 붕괴되어 처녀 비행이 마지막 비행이 되어 버렸고 유인 비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트엔진을 장착한 부란은 전시물로 전락하였습니다.

 

2002년 5월 12일에 부란이 격납고가 폭발로 무너지면서 파괴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사고가 아니라 러시아에서 직접 폭발시켜 묻어버린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실제로 부란을 보관하던 격납고는 북측동과 남측동 총 2개 동으로 1986년에 건축한 것인데 이 중 북측동은 부란을 조립하는 곳으로, 엄청난 무게의 부란을 격납고 공중에 매달아 둘 정도로 견고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너진 것을 보면 북측동과 남측동이 함께 붙어있는데도 북측동만 도려낸 듯이 무너져 버렸고 이는 폭탄에 의한 발파가 아니면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러시아 우주당국은 이 사건이 일어나자 부란의 시체잔해물과 건물의 잔해물을 씯어낸 듯이 치워버려 이러한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 주고 있습니다.

 

불리하다 보니 이기자는 생각 없이 대충 뒀는데 이겼네요

-중국 구리 九단에게 대역전승을 거둔 직후 인터뷰-

 

이세돌은 조훈현, 이창호에 이은 세계 바둑 최강의 계보를 이어가는 바둑기사입니다. 세계대회 우승 횟수가 이창호 다음으로 많고, 12세에 입단하여 한국 프로 기사 중 최연소 입단 4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1995년에 입단하지만 2000년부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이세돌은 2000년에 32연승이라는 역대 연승 3위 기록을 세우며 '불패소년'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창호의 바둑이 느긋하면서도 안정적인 계산으로 끝내기를 통해 상대를 제압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세돌은 압도적인 수읽기를 통한 흔들기로 난전으로 끌어들여 상대를 혼란시키고 압살해버리는 스타일입니다.

 

 

그리고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구글 딥마인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 대국을 치렀습니다. 알파고는 이세돌 이전에 2013-2015년 중국 프로 기사이자 유럽 바둑 챔피언인 판 후이(2단)과 대국을 하였는데 5-0으로 알파고가 이겨버렸는데, 인공지능이 현역 프로 바둑기사를 이긴 건 사상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세돌 본인은 물론 커제나 이창호를 비롯한 대부분의 바둑기사가 판 후이와의 대결 양상을 기준으로 이세돌의 5-0 완승 또는 4-1로 이길 것을 자신했으나, 판 후이와의 대결 이후 알파고의 무서운 성능 향상으로 9일에 열린 1국에서 알파고가 186수 만에
불계승, 10일에 열린 2국에서도 알파고의 불계승으로 이세돌이 2패를 당했고, 12일에 열린 3국 역시 초읽기에 들어가는 접전 끝에 알파고의 176수 불계승으로 결국 3-0이 되며 알파고의 승리로 끝이 나버리며 인공지능에 압도당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바둑계의 대사탄으로 간주되던 이세돌이 한낱 기계 앞에 대굴욕을 맛보며 처참하게 박살나는 모습에, 이 때까지만 해도 바둑계 전체는 물론 인류가 인공지능 앞에 허무하게 몰락하는 게 아니냐는 비관적이고 패배주의적인 사상이 대한민국 전체를 강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4국에서 드디어 이세돌이 알파고를 상대로 승리했습니다. 4국에서 불리한 형세에 들어간 알파고가 승률이 낮아질수록 더더욱 잦은 실수를 하였고 이세돌은 1개 남은 초읽기로 1시간가량 버티는 대혈전 끝에 알파고를 이겨 불계승을 거두었습니다. 알파고가 팝업창으로 "AlphaGo resigns. The result "W+Resign" was added to the game information"이라는 메시지를 보이며 패배를 선언하였고 해설진들은 78수를 신의 한 수라고 평가했습니다.

 


알파고와 바둑을 하면서 오히려 기력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알파고와의 대국을 중계하던 프로 9단 해설진들이 알파고의 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세돌은 표정에서 동요를 보이며 알파고의 수를 이해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세돌이 세 판 내리 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계를 제외한 인간 중에서는 최정상급의 자리를 지키는 이유를 잘 보여주는 대국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인공지능(AI) 알파고가 27일 세계 바둑 행킹 1위 커제(柯潔) 9단과의 대국을 마친 뒤 바둑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커제9단은 사실 이세돌 9단이 지난해 알파고와 첫 번째 대국에서 패배하자  "알파고가 이세돌마저 꺾었지만 나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는가 하면 두 번째 대국 패배 뒤에는 "인류 대표의 자격이 없다"며 신랄하게 비판하였지만 알파고에 완패했습니다.

 

 

이에 따라 알파고의 전적은 이세돌 9단과 5번기, 연초 인터넷 대국 60판, 커제 9단과 3번기, 단체 상담기까지 합쳐 모두 68승 1패로 남게 됐습니다. 알파고가 지난해 1월 네이처 논문으로 정식 데뷔하기 전 판후이(樊麾) 2단에게 5전 전승을 거둔 것까지 합하면 73승 1패입니다. 그렇게 알파고에 유일한 패배를 안긴 주인공은 이세돌 9단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에게 명품가방이 있다면 남자들에게는 바로 명품시계가 있습니다. 명품시계 하나 잘 가지고 있으면 대대로 물려줘도 된다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값어치 또한 올라갈 수 있어 명품시계 재테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2017년 최고의 기술력이 만든 명품시계 브랜드 순위 TOP10을 소개합니다.

 

10위 율리스 나르당

(Ulysse Nardin)

 

율리스 나르당(Ulysse Nardin)은 미닛리피터와 트루비용으로 이루어진 많은 하이 컴플리케이션 모델을 보유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고 중 최고로 불리는 모델이 있는데 시계가 괴물 같다고 하여 프리크(Freak)라고 불리는 컬렉션입니다. 프리크 컬렉션은 트루비용을 대표 컴플리케이션으로 하여 듀얼 이스케이프먼트와 실리콘 재질의 휠을 그 주요 특징으로 하지만 이런 특징을 넘어서는 심지어 괴기스럽게까지 보이는 독특하고 독창적인 외형으로 인하여 그 인지도를 얻고 있는 모델입니다.


 

9위 예거 르쿨트르

(Jaeger Lecoultre)

 

예거 르쿨트르는 우수한 시계 제작 기술력으로 인정받는 하이엔드 시계브랜드입니다. 4.05mm밖에 안 되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시계중 하나를 만들며, 3축으로 회전하는 자이로 뚜르비옹을 제작할 수 있는 회사이며 그랑 컴플리케이션도 손꼽히게 잘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계중 하나인 Hybris mechanica à grande sonnerie도 제작하여 판매중입니다.롤렉스, Omega 등의 럭셔리 워치에서 하이엔드 타임피스로 넘어갈 때 가장 많이 추천되는 브랜드입니다


 

8위 피아제

(Piaget)

 

1874년 조르주 피아제(Georges Piaget)가 스위스 쥐라 지역에 설립한 시계 제조회사이자 브랜드입니다. 기술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한데 일례로 두께 2.3mm인 세계에서 가장 얇은 시계를 제작하여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습니다. 그밖에 스포티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널리 알려진 Polo 시리즈 등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7위 블랑팡

(Blancpain)

 

스와치 그룹의 최상위 시계 브랜드입니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시계 브랜드이며, 최초의 다이버 시계인 피프티 패덤즈 등의 라인업이 유명하며 문 페이즈에 적용되는 문 디스크의 표정 또한 독특하기로 유명합니다.


 

6위 글라슈테 오리지날

(Glashutte Original)

 

전쟁이 끝나면서 독일 지역에 진주한 소련군이 이 지역의 시계 공방들을 폐쇄시켰고, 뒤이어 1951년 동독 정부가 글라스휘테 지역의 시계 공방들을 강제 통폐합함으로써 국영 시계 회사 'VEB 글라스휘테 시계공장(Volkseigener-Betrieb Glashütter Uhrenbetriebe, GUB)'을 만들었습니다.


 

5위 브레게

(Breguet)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Abraham Louis Breguet)가 1775년에 창립했으며, 이는 유명한 시계 브랜드들 중에서도 오래된 축에 속합니다. 창립 이래 많은 유럽왕족, 귀족들에게 인기를 끌었는데 마리 앙투아네트, 나폴레옹, 빅토리아 여왕, 윈스턴 처칠 등이 착용했습니다. 한마디로 당대 최고의 시계였습니다.


 

4위 아 랑게 운트 죄네

(A Lange & Sohne)

 

아 랑게 운트 죄네(A. Lange & Söhne)는 브랜드 복합 기업 리슈몽 그룹이 소유한 명품 시계 브랜드입니다. 리치몬드 그룹에 속해있는 Lange Uhren GmbH 사의 브랜드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시계브랜드를 꼽을때 빠지지 않습니다. 모든 아 랑에 운트 죄네 시계는 쿼츠 무브먼트 대신 기계식 무브먼트를 사용합니다. 또한 아 랑에 운트 죄네에 사용되는 나사는 300도에서 천천히 가열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 과정속에서 매우 얇은 자철광 막이 형성되고, 팔랑개비국화와 같은 아름다운 파란색을 띠게 됩니다.


 

3위 오데마 피게

(Audemars Piguet)

 

스위스의 시계회사로 파텍 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아 랑에 운트 죄네, 브레게와 함께 최고 하이엔드급 시계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가 딸의 14살 생일 선물로 1억 4천만원 정도하는 오데마 피게를 사주었으며 드라마 혼술남녀에서 극중 하석진이 최고로 퀄리티 있는 치장을 해야겠다고 할 때 선택한 시계로 오데마피게 로얄오크 듀얼타임을 착용하였던 시계는 약 4000만원이였습니다.


 

2위 바쉐론 콘스탄틴

(Vacheron Constantin)

 

1755년 창업하여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시계회사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존속하고 있는 하이엔드 시계회사입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 교황 비오 11세, 해리 트루먼 대통령, 순종 등이 바쉐론 콘스탄틴의 시계를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위 파텍필립

(Patek Philippe)

 

창립 이래 계속해서 시계 기술을 선도해 온 회사입니다. 1845년 세계 최초의 미니트 리피터 회중시계를 출시했고, 1925년에는 퍼페추얼 캘린더가 장착된 손목시계를 처음으로 출시하는 등 수많은 시계브랜드 중 단연 최고등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설계부터 실제 조립까지 기계화된 생산공정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마지막 마감 부분에서는 전문가들의 조정이 손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한정된 수량'과 '높은 가격'이라는 고가 브랜드의 특성을 어김없이 가지고 있습니다

 

 

 

포카리 스웨트 CF는 단순 이온 음료 광고를 넘어 청순하고 트렌디한 여배우만이 할 수 있는 광고로 통합니다. 일명 '포카리걸' 이라 불리는 역대 20명에 대해 소개합니다.

 

1. 최윤희(1987년,1988년)

 

 

아시아 인어라고 불렸던 수영 선수 최윤희는 포카리 스웨트 광고 모델로 1987년과 1988년에 활동하였습니다. 조오련 이후 10년만에 나온 아시안 게임 수영 금메달이라는 실력에 미모를 겸비했기에 당시 최윤희는 최고의 여자 스포츠스타였고 일찍이 국민 여동생의 위치에 올랐었습니다

 

2. 박영선(1989년)

 

 

2대 포카리 걸 박영선은 긴머리에 청순한 얼굴로 1989년 광고에 출연했습니다.

 

3. 김혜수(1990년)

 

 

앳된 모습의 김혜수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타고난 미인입니다. 얼굴, 몸매도 되는데 연기력까지 출중하고 예능감도 좋습니다.

 

4. 고현정(1991년)

 

 

당시 최고의 여배우였던 고현정은 해변에서 정말 청순한 모습을 보여주며 남심을 사로잡았습니다.

 

5. 김윤정(1992년)

 

 

배유 김윤정은 이 광고에서 대학생 역할을 맡아 청순하면서 풋풋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6. 김지수(1993년)

 

 

1992년 SBS 2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배우 김지수는 데뷔 1년만에 포카리 걸로 해변에서 광고를 찍었습니다.

 

7. 심은하(1994년)

 

 

많은 남자들의 이상형 배우 심은하도 포카리 스웨트 광고를 거쳤습니다.

 

8. 장진영(1997년)

 

 

1993년 미스 대전·충남 진으로 뽑힌 후 광고 모델로 활동하다 인기에 힘입어 포카리 걸이 되었습니다.

 

9. 김규리(1998년)

 

 

1994년 KBS '신고합니다'로 데뷔한 배우 김규리는 여행 컨셉로 포카리 스웨트 광고를 찍었습니다.

 

10. 손예진(2001년,2002년,2007년,2008년)

 

 

이 시리즈물의 컨셉을 정립한 손예진의 CF를 보면, 긴 생머리의 미녀가 순 백색의 옷을 입고 머리카락을 찰랑 휘날리며 남유럽의 하얀집과 푸른 해변가의 강렬한 색채 대비에 광고모델의 청순함을 극대화 시키는 CM송까지 가미하는 등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시킨 좋은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11. 한지민(2003년)

 

 

 

 

손예진에 이어 포카리 스웨트 광고 모델을 한 한지민은 워낙 순수하고 청순한 이미지였기에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12. 박신혜(2004년)

 

 

2003년 이승환의 뮤직비디오로 데뷔하고 탄력을 받아 2004년 포카리 스웨트 모델로 활동했습니다.

 

13. 이연희(2005년)

 

 

 

하얀 피부와 아름다운 미소로 지금까지도 청순함으로 많은 남심을 사로잡고 있는 이연희도 2004년 집을 짓는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으로 나왔습니다.

 

14. 고은아(2006년)

 

 

양재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2004년 9월에 데뷔하여 8개월 만에 무려 7편의 CF에 출연하며 결국 포카리 스웨트까지 출연하였습니다.

 

15. 김소은(1998년)

 

 

'지칠 떈 하늘을 봐' 귀여운 모습으로 해변에서 신발 던지기를 하는 모습이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16. 양진성(2010년)

 

 

이화여대 조형예술학을 전공한 배우 양진성은 2010년 포카리 스웨트 모델로 뽑혔습니다.

 

17. 문채원(2011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네요 문채원은 2011년 포카리 스웨트를 찍었는데 손예진 다음으로 가장 잘 어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18. 박세영(2013년)

 

 

상명대 영화과를 졸업한 박세영은 지난 2013년 포카리 스웨트 모델로 뽑혔습니다.

 

19. 이다인(2014년)

 

 

배우 견미리의 딸 이다인은 2014년 도시편 포카리 스웨트 광고에 출연하였습니다.

 

20. 김소현(2015년)

 

 

밝고 건강한 느낌을 주는 김소현은 개인적으로 손예진에 이어 장기적으로 활동해도 될 정도로 정말 잘 어울립니다.

 

 

흑맥주의 대명사 기네스(Guiness)는 흐리고 어두운 날씨에도 잘 어울립니다. 1759년 당시 34세의 아서 기네스는 아일랜드 더블린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에서 9000년간 연간 45 파운드의 임대료를 내는 조건으로 문닫은 맥주 공장을 인수해 명명했습니다. 세계 150여개국에서 매일 1000만잔 이상이 소비되는 흑맥주(Stout)의 대명사입니다.

 

 

기네스 맥주는 까맣게 볶은 보리로 만들기 때문에 다른 맥주에 비해 맛이 매우 진합니다. 또한 기네스 맥주 캔 안에는 위젯이란 플라스틱 공이 하나 들어 있는데 캔을 따는 순간 압력차로 공 안의 질소 가스가 뿜어져나옴으로써 기네스 특유의 크림 거품을 만들어냅니다. 특허가 걸려 있는 물건으로 개발에 100억 정도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다고 합니다. 자 그렇다면 엔터테인먼트 칼럼니스느 로스 보네인더가 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기네스 맥주의 비밀 5가지’를 소개합니다.


 

1. 기네스 맥주 공장 5개 중 3개는 아프리카에 있습니다.

 

기네스 맥주는 49개국에서 만들어져 150개국에서 팔리고 있지만 기네스 본사가 전세계에 거느리고 있는 직영 공장은 본사가 있는 더블린의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 공장을 비롯해 다섯 군데 밖에 없습니다. 말레이시아에 1개가 있고 나머지는 모두 아프리카에 있습니다. 나이지리아, 가나, 카메룬에 있으며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은 세계에서 기네스 맥주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로 손꼽힙니다. 하지만 아일랜드, 영국, 미국서 많이 마시는 기네스 맥주는 아프리카에서 인기 있는 기네스와는 조금 다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생맥주(약 4.0%)보다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기네스 엑스트라 포린 스타우트’(7.5%)를 즐겨 마십니다.


 

2. 기네스 생맥주는 같은 양의 오렌지 주스보다 칼로리가 낮습니다.

 

기네스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칼로리에 관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기네스 생맥주 350㏄는 125㎈ 밖에 안 되며 같은 양의 오렌지 주스(183㎈)보다 칼로리가 낮습니다. 탈지유(135㎈)보다도 낮습니다. 타 맥주 레귤러 버드와이저(143㎈), 쿠어스 오리지널(148㎈), 밀러 제뉴인(143㎈), 새뮤얼 애덤스 보스턴 라거(160㎈) 등 대부분의 맥주보다 낮습니다. 도수가 높은 ‘기네스 포린 엑스트라 스타우트’는 350㏄당 176㎈이지만 도수에 비해선 높은 칼로리는 아닙니다.


 

3. 아서 기네스는 흑맥주를 만든 적이 없습니다.

 

기네스 하면 금방 흑맥주를 떠올리지만 아서 기네스는 흑맥주(stout)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지 않았습니다. 맥주 애호가들은 포터주(브라운 에일의 일종)와 스타우트 맥주를 애써 구분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하겠지만, 아서 기네스는 창업 후 10년간은 에일 맥주를 만들었고 1770년대에 들어 더블린에 포터주가 유행함에 따라 아서도 포터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799년부터는 완전히 포터주만 생산했습니다. 4년 후 맥주 공장이 본 궤도에 오를 때쯤 아서 기네스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1821년 그의 아들 아서 기네스 2세가 ‘기네스 엑스트라 슈페리어 포터’를 만드는 양조 방법을 창안했는데 그 맥주가 오늘날 세계적으로 알려진 기네스 흑맥주의 전신입니다..


 

 

 

4. 기네스는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을 구했습니다..

 

기네스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 중 하나는 아일랜드의 수호 성인 세인트 패트릭에게 바쳐진 대성당 이야기 입니다. 기네스와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의 관계는 기네스의 창업자 아서 기네스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서는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의 채플 스쿨에 250 기니를 기부했습니다. 그후 아서의 손자인 벤자민 리 기네스는 1860년부터 1865년 사이에 쇠락한 대성당 건물의 개보수 공사를 위해 15만 파운드를 기부했습니다.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의 앞마당에는 벤자민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5. 쥐가 죽은 것과 기네스의 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기네스에 관한 전설 중 하나는 기네스 맥주는 처음엔 별로 맛이 없었는데 어느날 양조 탱크를 열어보니 쥐가 맥주에 빠져 죽어 있었고 쥐가 들어 있는 맥주를 마셔보니 맛이 기가 막히더라는 것입니다. 그후로 맥주 맛을 내기 위해 쥐의 뼈를 넣어 발효시킨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이며 기네스 흑맥주는 개발과 동시에 지금과 같은 맛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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