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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1월 독일 수상에 취임한 아돌프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정말로 세계를 정복하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히틀러는 동맹국이었던 일본과 함께 소련을 박살낸 후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한가운데에 미리 미래의 국경선을 협의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하였다면 세상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특히 히틀러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하여 세계를 정복한 뒤 베를린을 재건축하여 인구 1억 명의 거대 도시 게르마니아(Welthauptstadt Germania)를 만들어 세계의 수도로 삼기 위해 베를린 외곽에서 실제로 공사를 진행했었습니다. 그리고 히틀러는 '게르마니아는 파리나 런던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오직 고대 바빌론과 이집트 그리고 로마에만 비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침공 이후 히틀러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도 함께했던 슈페어  

 

게르마니아의 건설은 히틀러가 총애하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가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당시 파리를 방문했던 히틀러는 슈페어에게 평생 꼭 한 번 와보고 싶은 곳이 파리였으며 파리를 파괴할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게르마니아가 완성되면 파리보다 더 위대한 도시가 될테니 파리를 파괴하지는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히틀러 생각처럼 세계수도 게르마니아는 정말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우선 120m 폭의 중심도로를 7㎞에 걸쳐 놓고 약 100만 명이 운집할 수 있는 거대한 광장을 중심으로 500m 길이의 회랑이 있는 지도자궁, 개선문, 군사령부, 제국의회, 18만 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돔 건축물인 국민대회당(Volkshalle)을 건설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건물에 대리석과 화강암등의 고급재료를 사용하여 반영구적으로 건물을 유지시키려했습니다.

 

 

특히 290m짜리 돔 구조물 국민 대회관과 120m의 개선문이 압권이었는데 개선문은 평양 개선문(60m, 세계 최대의 개선문)의 2배이며, 판테온을 모델로 한 국민 대회관의 돔은 현재 세계 최대의 돔인 카우보이 스타디움(275m)보다도 더 크고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보다 17배나 큰 규모였으며 돔 상부에 있는 채광탑의 지름(46m)은 석재 돔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 지름보다 약간 더 컸습니다.

 

 

히틀러와 슈페어는 건물을 최대한 웅장하게 보이게 원했으며, 수천년이 지나 건물이 파괴되더라도 웅장한 흔적이 남을 것을 신경썼습니다. 역사에서 퇴장한 후에도 당시 시대에 남은 크고 아름다운 건축물로 존재를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계획은 공사 시작 이전에 개전이 닥쳤음에도 부지가 확보되었으며 토목 공사가 실행되었으며 계획이 실행되자 다른곳에서 멀쩡하게 지내던 15만 명을 베를린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로 변한 베를린

 

그러나 초중량 지구체라는 지반공사만 진행된채 1939년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함에 따라 전략자원부족 문제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전쟁 종전까지 베를린은 폭탄으로 쑥대밭이 되가면서 건물들은 모두 무너져 내려갔고 그렇게 히틀러는 나폴레옹처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전함으로써 세계 정복에 실패했습니다.

 

 

그렇게 히틀러가 꿈꾸었던 세계수도 게르마니아는 이루지 못했지만 계획의 일부로 계획되어 건설이 진행되던 흔적이 지금 현재까지도 베를린에는 남아있습니다.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과 지하차도와 지하철 터널의 일부가 베를린 지하에 남아있습니다.)

 

 

참고로 이 당시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도 히틀러 못지 않은 높이 415m에 100층짜리 거대한 소비에트 궁전을 지으려했고 1937년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독소전쟁이 발발하면서 공사는 중단되었고 공사 자재를 모스크바 앞에 대전차 방어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만약 이 소비에트 궁전도 지어졌다면 당시 최고층 빌딩이었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381m)를 제치고 세계 최고층 마천루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