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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지 않는 살신성인의 혼  이인호 소령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 출생으로 경상북도 대구 대륜고등학교를 거쳐 해군사관학교 11기로 진학하여 1953년 졸업하고 해병대 소위로 임관되어 여러 부대를 거쳐 해병대 대위로 진급하였으며, 해병대 1사단 수색중대장으로 근무하다가 베트남 전쟁청룡부대 3대대 5중대장으로 파견되었습니다

 

해풍작전중 동국수색을 하는 故 이인호대위의 전사직전 모습

 

1966년 8월 11일 청룡부대는 '투이호아' 일대에서 '해풍작전'을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3대대 정보장교였던 이인호 대위는 생포한 여자 베트콩이 제공한 정보에 의해 1개 소대를 이끌고 베트콩이 숨어있는 동굴을 수색하던 중 캄캄한 동굴 속으로부터 적의 수류탄이 날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인호 대위는 침착하게 수류탄을 재빨리 주워 던져 베트콩 5명을 사살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날아온 또 하나의 수류탄을 처치할 겨를도 없이 폭발할 것을 직감하자 이인호 대위는 부하들에게 "모두 엎드려!" 라고 고함치며 터지는 수류탄 위에 자신의 몸을 덮쳐 버렸습니다.

 

1966년8월31일 국립묘지에서의 안장식

 

故 이인호 소령은 그렇게 자신을 희생해 대원들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그의 살신성인 정신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고 전군의 귀감이 됐습니다.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되고 대위에서 소령으로 특진했습니다. 1967년 그의 희생과 군인 정신을 기리기 위해 해군사관학교 입구에 동상을 건립됐고 2004년에는 국가보훈처로부터 현충 시설로 지정되었습니다. 대구 대륜고 교정에도 흉상이 건립되어 있습니다.

 

 

‘월남전을 말할 때 고 이인호 소령을 먼저 말하지 않는 것은 해병정신에 대한 결례다’ 라고 할 정도로 그의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은 지금까지도 해병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의 투철한 사명감과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은 베트남 전장에 임하는 국군뿐만 아니라 미군에게도 좋은 귀감이 되었습니다.

온몸으로 부하를 구한  강재구 소령

 

대한민국에서 수류탄 이야기하면 사고 사례로 꼭 언급되는 인물입니다. 1965년 한국군 1개 사단의 월남 파병이 결정됨에 따라 맹호부대 제1연대 제10중대장에 보직되었습니다.

 

 

그해 10월 4일, 베트남으로 파병을 앞두고 홍천군 부근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실시했는데, 부임 전 제1군 부사관학교에서 수류탄 교관으로 근무했던 그는 누구보다 수류탄의 위력과 유의사항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 분의 운명을 가르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강재구 소령이 장렬하게 산화한 사건을 다룬 당시의 신문기사들.


훈련 중에 한
이등병이 안전핀을 뽑은 수류을 실수로 놓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손을 몸 뒤쪽으로 올린 상태에서 놓친 터라 수류탄은 불행히도 몸 뒤로 빠져 중대원들 쪽으로 굴러갔고, 그 광경을 본 그는 본능적으로 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막았습니다. 수류탄은 매정하게 터져버렸고, 그는 중대원 100여 명의 목숨을 구하고 산화했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그가 몸으로 수류탄의 파편을 막아준 덕에, 그 한 명을 제외하면 주위에 있던 중대원들은 큰 부상이나 사망자 없이 전원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사고 당시 강재구 소령이 신고 있던 군화

 

산화당시 착용했던 故 강재구 소령의 전투복

 

이러한 희생정신으로 실제로 재구 대대라는 부대가 편성되었고, 재구 대대로 명명된 맹호 1연대 3대대는 베트남 전쟁 때 많은 전과를 올렸고, 그들이 평정한 마을을 재구촌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살신성인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그가 산화한 그곳에 기념비를 세우고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하여 교육 도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성동로 275 강재구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