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36vs중공군800 기적의 베티고지전투(한국전쟁)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한국전쟁 중 정말 믿기힘들
정도로 대단했던
김만술 상사가 이끄는 36명의 국군이
중공군 800명을 궤멸시킨
6.25전쟁중 가장
신화적인 전투로 칭송받은
전투입니다.
자그럼 지금부터 기적의
배티고지전투에 대해
알아보도록할게요
중공군은 휴전 성립을 목전에 두고
주요지형을 확보하기 위하여
결사적인 국지공격을 감행해
오고 있었습니다.
국군은 대대는 연대의 우 일선으로서
제5, 6, 7중대를 FEBA에 배치하고
제6중대 2소대(김만술대위)를
전초진지인 '베티 고지'에
배치하여 방어를 실시했습니다.
김만술대위
그러나 급작스러운 중공군의
공격을 받고 이에 국군은 김봉건 대령의
제2대대는 김만술 대위가 임관하기
전까지 2일에 걸쳐
중공군을 겨우 격퇴하였으나
각 소대는 병력을 절반 이상 잃게됩니다.
이 고지를 중공군이 점령한다면
국군 1사단을 몰아낼뿐만 아니라
국군 제 2군단의 돌출되어 있는
방어선을 제거하여 2군단을
위협할수도 있었습니다.
베티고지 지도
전투가 시작될때 마다
다시 군을 재편성 해야했습니다.
당시에는 병력이 많았던 중공군이
사실상 유리했었고 국군은
많은 적을 사살하였으나
그 피해가 매우 커서 1사단에게는
죽음의 고지였다고 합니다.
장마철이라서 탱크 기동에도
큰 방해가 되었고 화력운용에도
차질이 있었어습니다.
수로 밀어붙이는 중공군에게는
매우 유리한 상황이였습니다. .
15일, 제6중대 2소대장 김만술 상사는
13일∼14일간의 적 공격으로
전투력이 상실된 제7중대 1소대와 교대하여
'베티 고지' 방어임무를 인수했습니다.
김만술 대위의 소대가 베티고지에 투입되었을
당시에 3개의 봉우리중 중앙과
동쪽은 제 1 보병사단이
사수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서봉은 중공군에게 빼았겼던
상황이였습니다.
여기서 사실상 1개 소대로
그 수많은 중공군을 공격하는것은
자살행위에 가까웠으나
김만술 대위는 도박을 걸어보기로 합니다
흥에빠진 중공군
기습공격을 감행햇습니다.
항상 공격에 급급했던 중공군은
예측하지 못한 공격에 당황하여
중공군 5명이 사살당하고
8부 능선을 돌파하여 서봉을 탈환하게됩니다.
베티고지 상황도
서봉을 탈환 후에 김만술 대위는
바로 소대원들에게 방어선 구축을 명령하고
19시 30분 중공군은 서봉 재탈환을
위하여 2개 중대로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합니다 .
전설적인 베티고지 전투가
시작되었던겁니다.
중공군 중대는 야포와
박격포의 지원을 받았으나
김만술 대위는 상부에 포격지원을
요청하였으나 그마저도 포격으로 인해
통신두절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
소총과 수류탄으로 대항하던
김만술 대위의 소대는 중공군이 다가오자
백병전을 시작하게됩니다.
그 날 19:00경, 약 1개소대 규모의 적이
각종 포의 지원 하에 공격을 개시,
아군포화를 뚫고
교통호까지 접근하여 백병전을 전개했습니다.
이때 교통호로 뛰어든 적을 소대장이 선두에서
총검으로 격살하자, 공포감에 질렸던
병사들이 일시에 용기를 얻어
용전분투한 결과 적은 다수의 시체를
유기한 채 패주했습니다.
22시, 적은 다시 동 고지 중앙봉을 중심으로
좌, 우측으로 1개 중대 및 2개
중대 병력으로 각각 공격을 재개했습니다.
아마 그떄 국군 소대원 수보다
몇배는 많았습니다 .
소대장은 지원포격과 사
격으로 이를 저지하였으나,
일부 적이 교통호로 침입하여
수류탄을 투척하여 그중 1발이
동굴 내에서 폭발하여
소대의 무전기를 파괴했습니다.
소대장은 재빨리 총검과 수류탄으로
적 4명을 폭사시키고 소대원들도
계속 수류탄을 투척하여
적을 후퇴시켰습니다.
통신이 두절된 소대장은 24:00경,
연락병을 중대본부로 보내,
전황보고와 통신망 복구를 요청하였고
대대장은 즉시 대대통신병 4명을
파견해 줌으로써 16일 02:30경,
통신이 개통되어 중대와 연락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04:00경, 적은 베티 고지와 그 좌측지점에서
각각 1개 소대규모를 투입시켜 공격하였으나,
아군은 지근거리까지 유인하여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몰살시켰습니다.
이때 동굴에 접근하는 적 1명을
소대장이 총검으로 격살했습니다.
05:40, 적은 중앙봉 반사면에 1개
중대 규모이상의 병력을 투입시켜
공격을 계속하자 소대장은 수류탄전과
백병전(이때도 소대장이 3명의 적병을 사살)을
전개하였으나 수적으로 불리함을 직감하고
전소대원을 동굴 속으로 대피시키고
후방의 포사격과 더불어 진내사격을 실시한
결과 적은 북방으로 철수했습니다.
06:00, 적은 안개 낀 틈을 이용,
중앙봉과 좌측봉으로부터 다시 공격을
계속하여 약 2시간에 걸친 혈투 끝에
적은 퇴각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제2소대는 07:30까지
18시간 반 동안 무려 19회에 걸쳐
도합 3개 대대 병력의 적과 싸워
동 고지를 끝까지 사수했습니다.
중공군 피해는 전사 314명, 부상(추정)450명
포로 3명 등 발생했고,
아군 피해는 전사 24명이었습니다.
김만술 소대장을 비롯하여
12명은 생환했습니다.
적의 매복사격으로 인한 부상을
무릅쓰고 본부로 뛰어가 전황보고와
통신시설복구를 감행한 이강로 하사에겐
충무무공훈장, 각분대의
분대장인 김순구 중사와
김흥규 중사는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고
김만술 상사는 이 전공으로 후일 한국과
미국의 최고무공훈장 금성태극훈장 및
십자훈장을 수여 받게됩니다..
안타깝게도 24명의 국군용사들이 산화한
'베티 고지'는 휴전이 되면서
남방한계선 너머 비무장지대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김만술 상사를 비롯한 소대원들의
끈질긴 결사항전(변변한 지원도 없이
수류탄, 철모, 야전삽, 총검으로 또는
맨주먹으로 처절한 백병전을 감행함으로
중공군 3개 대대병력에게 큰 손실을 가해
그들의 투혼이 오늘날에도
신화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7.13 중공군의 금성 전투와
맞물린 시기에 벌어진 한국전쟁의
대미를 장식하는 격전이었습니다.
불가능하기때문에 가능한것이다
(Because it is impossible possible)
-맥아더장군-
한국전쟁 최후의결전 금성전투
http://kimssine51.tistory.com/116
6.25한국전쟁 처참한고지전
http://kimssine51.tistory.com/147
한국전쟁 피의능선 백마고지전투
http://kimssine51.tistory.com/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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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및참고자료출처:위키백과.나무위키.군사무기카페.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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