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AC-130 하면  게임이나 영화로

 

 

접한 사람들이 대부분일거에요.

 

그때문인지 AC-130

 

 

배치된지 얼마 안된 신형 기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사실 AC-130은 꽤 긴 시간동안을 운용해온 기체에요

 

 

 

베트남전부터 현대전까지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운용한 기체입니다^^

 

 

일단 AC-130을 설명하기전에

 

AC-130이 탄생하게된 배경을

 

제공한 AC-47 스푸키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볼게요

 

 

 

AC-47 스푸키는 C-47 스카이트레인

 

수송기를 기반으로 개조한 건쉽이에요

 

 

스푸키를 검색해보면 7.62mm 미니건을

 

3정을 장비한 기체가 많이 보이지만,

 

30구경 브라우닝 AN/M2 기관총 10정을

 

 

탑재한 기체도 있었어요

 


 

 

 

 

미니건은 이런식으로 건포드에 탑재해서 운용했어요

<AC-47의 야간 작전을 촬영한 사진>

 

보는것 만으로도 건쉽의 제압 효과가

 

상당하단걸 느낄수 있어요

AC-47은 저고도 작전을 할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베트남전동안 많은

 

피해를 입고있었고 이로인해 미군은 AC-47을

 

대체할 새로운 건쉽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그런 미군의 눈에 띈 C-130은 C-47보다

 

더 큰 탑재량을 가진 수송기였고,

 

이 덕분에 C-130은 더 강력한 무장을

 

탑재하는것이 가능했습니다. 

 

AC-47보다 강력한 무장의 탑재가 가능했던 AC-130은

 

AC-47보다 높은 고도에서의 작전이 가능했어요.

 

그리하여 C-130은 최종적으로

 

AC-130으로 개조됩니다.

 

 
AC-130 이외에도 C-119 수송기를

 

개조한 AC-119 건쉽도 있지만

 

AC-130이 건쉽 II 프로그램으로 먼저 완성됐습니다.

 

 

AC-130의 베이스인 C-130은 AC-47의

 

베이스인 C-47보다 대형인 수송기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AC-130은 더 많은 탄환을

 

탑재할수 있었으므로

 

AC-47보다 더 오래동안 화력 지원을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전에 투입된 AC-130의 무장은

 

4정의 7.62mm 미니건과 4문의 20mm M61 벌컨을

 

장착한 기체와 7.62mm 미니건 2정, 20mm M61 벌컨 2문,

 

40mm 보포스 기관포 2문을 장착한 기체가 있었습니다.


 

 

 <건쉽은 H형이지만 무장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1971년 10월 25일에는 AC-130A의

 

무장을 교체한 AC-130E가 베트남에 도착했어요.

 

AC-130E는 A형보다 더 강력한

화력을 투사할수 있었어요

 

AC-130E에는 2문의 20mm M61 벌컨, 1문의 40mm

 

보포스 기관포, 1문의 105mm M102 유탄포를 탑재했었습니다 

 

M102 유탄포는 현재 국군에서 굴리고 있는

 

그 105mm 포를 생각하면 됩니다.


 

 

 

 

AC-130은 튼튼해 보이는 외형과는 별개로

 

대공화기에 취약하단 단점이 있었어요.

 

C-130을 베이스로 개조한 기체였기 때문에

 

느린 속도와

 

거대한 크기로 인해 대공화기의

 

표적이 되기 쉬웠기 때문이죠.

 

AC-130은 베트남 전쟁동안 적의 대공포와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었어요

 

 

첫 손실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9년 5월 24일에 발생했습니다.

 

37mm 대공포에 의해 생긴 손실이었어요

 

AC-130은 이후 이라크 전쟁때 미해병대를 지원하던중

 

SA-7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에 의해

 

격추되기도 하였어요.

 


 

 

 

AC-130은 제공권이 장악된 상태에서도

 

주간 운용엔 큰 위험을 감수하여야 했어요.

 

이라크전 당시에 주간 작전도중 AC-130

 

격추된 이후로 AC-130

 

주로 야간 운용을 하게 됩니다.

 

 

 

AC-130은 베트남전과 이라크전 이외에도

 

파나마 침공, 걸프전, 코소보 등

 

많은 곳에 투입이 되어왔고,

 

현재도 분쟁지역에서 미군을 지원하고 있어요.

 


 

 

 

AC-130은 긴 체공시간과

 

넉넉한 탄약 탑재량으로 오랜시간동안

 

지상의 아군들을 지원하는것이 가능하구요,

 

 

 
AC-130의 전술적 가치는

 

한기의 AC-130이 일개 대대를

 

전멸시키는것이 가능할 정도로 상당합니다. 

 

 AC-130은 하늘의 포병이나

 

죽음의 천사로 잘 알려져 있어요

 

 

 

 

현재 미군이 운용중인 AC-130은

 

H형 스펙터와 U형 스푸키 II,

 

W형 스팅어 II, J형 고스트 라이더가 있습니다.

 

 

 

 

1.
AC-130
은 베트남전부터

 

지금까지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공중에서 미군을 지원해온

 

장수 기체들중 하나이다!

 

2.지상장비와는 다르게 공중장비는

 

빠르게 도태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3.그럼에도 불구하고 AC-130은 40년간

 

많은 개량으로 현재도 현역에서

 

미군을 지원하며 활약하고 있다 

 

4.AC-130은 비정규전이 주를 이루는

 

현재의 미군 특성상 앞으로도 오래동안 운용할걸로 예상한다

5. 말했지만 AC-130은 대공화기에 취약하다

 

 6.국군이 운용하기엔 이런 기체는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다
 
AC-130보다도 빠른 속도를 가진

 

A-10조차도 맨패드와 대공포에 두들겨 맞는데,

 

A-10보다도 더 크고 느린 AC-130의 특성과

 

저고도 방공망에 집중된 북한의 방공망에

 

전면전 발발시 베트남전보다도

 

큰 손실이 생길것은 뻔하기 때문입니다. 

 

37mm 대공포에 격추된적이 있는 AC-130이 북한의

 

저고도 방공망과 맨패드를 회피하기란 어려워요.

 

 




출처 및 참고자료 : 영문위키.위키백과.구글. 


 

 

 

특수부대 최고의요원만뽑아만든

 

특수부대 속에 특수부대 MACV-S.O.G

 

 

 

히틀러가 지옥으로 간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남 과 동시에

 

자본주의를 토대로 한 미국과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소련이 존재했어요.


이 두 국가는 자신의 이념을

 

내세워 서로 주먹질을 하게되요


이로 인해, 세계는 총성없는 전쟁

 

"냉전시대"로 뛰어들게 됩니다.


이 치고받고 싸우는 냉전시대 속에서 후에


화끈한 특수부대를 탄생 시키게 되는데


그게 바로...


 

 

 

제가 오늘 소개할 "MACV-S.O.G"입니다.



1. 창설 배경


 

 

 

 

 

냉전시대소련은 자신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


동아시아에 공산주의

 

널리 퍼뜨리기 시작합니다.


CIA는 이를 저지하려고 동아시아에 있는

 

 공산주의 군사에 맞서는,


자본주의 군사를 동아시아에

 

정착시키는 프로젝트를 실행해요.


이 프로젝트를 실행한 후 시간이 지나서는...


남베트남은 자본주의가

 

국가 이념으로 받아들여지고,


동아시아 내에서 용맹한 자본주의

 

군인들이 미국을 돕기 시작으로


상황은 순조롭게 진행되듯 쉽지만...


이 상황은 지옥 자체로 변해버리기 시작해요..

 

 

 

 

 

지긋지긋한 빨갱이들이

 

 바퀴벌레처럼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소련의 명령을 받드는 중국의 마오쩌둥의

 

 동아시아의 영향력과


믿었던 남베트남 정부는

 

각종 부정부패로 물들게 되고

 

호치민의 남베트남 국민들을 이용한

 

선동으로 공산주의 세력들은


CIA가 훈련시킨 동아시아 자본주의

 

군사들을 숫적 압도시켰어요.


엎친데 덮친격 1955년 11월 1일에

 

베트남 전쟁까지 터지게 되서


CIA는 이 힘든 상황을 도저히

 

손 쓸 수 없게 되버렸던거죠.  


든든한 아군이 필요한 CIA는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고심 끝에...


U.S 미군에게 동아시아내의 작전권을 넘겨주게되요,

 

따라서 1964년에 u.s 미군에 의해


화끈한 특수부대인

 

 "MACV-S.O.G"가 창설되게 됩니다.


 

 

 

 

 

 

공식적으로 S.O.G의 약자는 

 

(Studies and Observations Group)

 

연구 관측단이라는 약자에요


 

 

 

 

S.O.G의 영어 약자가 연구 관측단이라니 


정말 세계최고의 특수부대가  

 

피터지는 전쟁하는 마당에 동아시아에서 


쳐박혀서 식물이나 연구하는 부대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사실 이건 위장이었어요


미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연구 관측단이라는

 

 부대를 만들었다고 저런식으로 발표했지만


실제는 이 특수부대의

 

1급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부러 영어 약자를 저렇게 발표헀어요


실제 S.O.G 부대의 영어약자는

 

 (Special Operation Group)

 

특수작전단 입니다.


 

 

2.S.O.G의 부대 편제

 

자칭 베트남전의 유령이라고 부르는 이들...


S.O.G의 부대원들 도대체 누구일까요?

 

 그들은 정말 고도의 훈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미 육군 특수부대 그린베레의 부대원들 중

 

 최고의 요원들이 들어갔고,

 

(당시 델타포스는 존재하지 않았어요)


 

 

 

 

명성 높은 특수부대 네이비 씰 중에서도

 

최고의 요원들도 참여했고,


 

 

 

 

 

세계최고의 경보병 부대인 75레인저 연대

 

부대중에서도 최고들만 선발됐고,


 

 

 

 

 

 

 

미 공군,미 해병대 중에서도

 

최고의 요원들을 뽑아가기도 했어요


그리고...


 

 

 

 

 

CIA 특수요원들까지도 S.O.G

 

참여했어요.엄청나죠


이들이 서로 모였기 때문에

 

 최강의 특수부대인 S.O.G가 존재한거죠.


그럼 S.O.G 부대원들이

 

사용한 장비들을 볼게요


 

 

 

 

 

무기의 선택은 자유로웠어요

 

 AK-47까지 사용할 수 있었어요.


소형 장비 목록에서도 C4 ,

 

클레모어 , M34 수류탄 ,

 

M18연막탄 , M67파쇄수류탄 ,

 

 M7A2가스수류탄 등등


S.O.G의 장비들은

 

선진국인 미국답게 최고였죠.


이러한 장비들을 지급 받고

 

각각 자신의 역할을 맡았어요.


 

 

 

MACV-S.O.G 지휘하는

 

사령관은 전직 베트남 군사

 

원조 사령관인 

 

폴 D. 호킨스 장군이었습니다.


그 후에 사령관은 베트남 전쟁하는

 

 과정에서 여러차례 바뀌었는데,


수 많은 사령관이 편제하는 과정에서

 

 MACV-S.O.G 속에서도 3가지 부서가 생겼어요,


이 3가지 부서는 각각 활동하는

 

지역과 임무가 서로서로 달라집니다.


그럼 3가지 부서들을 한 번 알아볼게요.




1. CCN (Command and Control North's)


 

 

 

 

첫번째 부서인 CCN

 

베트남 북부를 담당했어요,

 

이들은 주로


북베트남,라오스를 침투하여

 

유격전, 도피 및 탈출 , 전복활동


등 및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거였습니다.


또한 MACV-S.O.G의 부서중에서도

 

 CCN이 가장 큰 활약을 했어요.

 

 

 

 

2. CCC (Command and Control Central)

 

 


 

 

 

두번째 부서인 CCC는 베트남 중부를 담당했어요.


이들은 산지지역인 라오스를 침투하여


임무를 수행하는게 주된 목적이었고,


또한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도

 

 활동을 했는데 주로


군 정찰팀의 위급상황 시

 

투입되어 구조를 하였습니다.




3. CCS (Command & Control South)


 

 

마지막 부서인 CCS

 

베트남 남부를 담당했어요.


이들의 주된 임무는 캄보디아를

 

침투하여 작전을 수행하는게 목표였고,


그 이유는 바로 캄보디아에

 

뿌리를 내린 "베트콩" 때문이었어요.


당시 베트콩은 정말 골치덩어리 존재였죠.


툭하면 게릴라 전술로 기습작전을 펼치지 않나,

 

기지 자체가 땅굴 속이여서

 

 공격하기도 어렵고,


베트콩이 만든 부비트랩으로

 

수많은 병사들이 전사하였죠.


이 같은 이유로 캄보디아,베트남 남부에

 

존재하는 골치덩어리인


베트콩을 소탕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서가 CCS에요.



CCS vs 베트콩








3. MACV - S.O.G의 부대성격

 

 

 

모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혹시 콜오브듀티 블랙옵스라는

 

게임을 해본적 있으신분있나요.


그 게임에서 저 사진에 나오는

 

 S.O.G 대원 프랭크 우즈가 있어요.


근데 프랭크 우즈를 보면

 

 막 성격이 더럽거든요.


욕도 아주 많이 하고,

 

그리고 군인이랍시고 정말 잔인하고,


적들한테는 자비란 자체는 없고

 

심지어 포로에게도 똑같이 대해요.


정말이지 프랭크 우즈를 보면 콜오브듀티

 

회사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아니 어떻게 MACV-S.O.G특수부대를

 

 프랭크 우즈로

 

 어떻게 저렇게 야만적이게 비유할 수 있냐고,


진짜 현실에서도 S.O.G부대가

 

 프랭크 우즈처럼 그렇게

 

야만적이겠냐고 생각드시나요?


 

 

 

좀 야만적이었어요^^;;


 

(S.O.G만의 특유의 고문법으로 제압당하는 베트콩)


제네바 협약이든 국제 조약이든 나발이든 간에


이러한 인권, 국제법을 무시하고

 

한가지 작전을 펼친 적 있는데


바로 "Phoenix Program"라는 작전이에요.


베트콩의 지도부와 세력들을 없애는

 

작전인데 위에 말했듯이 베트콩이 얼마나


골칫거리인지 잘 아시겠죠..

 

그래서 S.O.G 대원들은

 

베트콩 세력들이 모여있는 장소을


기습 공격 후 잡아들이거나,

 

베트콩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생포 하기도 했어요.


그 후 베트콩 사람들은

 

S.O.G의 고문센터로 이송해요.

 

 

 S.O.G만의  화끈한 고문을 당하는거죠


 

 

 

 

 


문제는 이 고문이 끝난 후 쓸만한 정보을

 

 캐내면 그냥 처형시켰어요


고문 후 살아남은 포로들

 

대부분은 S.O.G의 화끈한 면을

 

보고는 우울증에 걸렸다고해요.


제네바협약(포로법)은

 

 씹어삼키시고 계속 작전이 진행됐고,


 

 

 

(기념사진)


이 작전으로 26,369명의

 

베트콩들이 처형됐지만 그래도 


베트콩 지도부와 세력들을

 

많이 제거한 큰 성과을 걷었어요


아마 S.O.G대원들은

 

세계평화와 사랑을 위해서는

 

 누군가는 희생해야하는 명목으로 어쩔 수 없이 


이 작전을 시행한거 같아보여요.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하는 일과

 

대표적인 작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게요.




4. 하는일 , 대표적인 작전들

 


 

 

 

 

1. 북베트남, 캄보디아 , 라오스 등을

 

 침투하여 국가혼란 야기 및


     크메르루즈군, 파테트라오군, 베트콩,

 

 북베트남군과 비정규전을 벌여요


     적들의 후방교란과 혼란을 주도하는 일


     (S.O.G의 교란때문에 열받은 북베트남은 고작 몇명의

 

대원들을 막으려고 수만명의 정규군을 배치시켰어요)


 

 

 

 

 

2. 남베트남 군인들을

 

훈련시키고 실전 배치시켜


     남베트남의 군사력을 늘리는 일을했구요.


 

 

 

3. 적진 내에서 추락한 공군 파일럿이나,

 

포로로 잡힌 미군을 구조하는 일도 맡았죠.


 

 

 

 

 

4. 요인 암살,도청 및 적들한테

 

폭격세례을 퍼붑도록 만들고

 

적들의 탄약고를 파괴시키는 일까지합니다.


    (참고로 북베트남의 탄약고에 몰래 잠입해

 

박격포탄에 폭탄을 섞어 놓은 후 도망간 후

  

    북베트남 군인들이 박격포을 사용할 때

 

폭발사고을 일으킨 적도 있어요)




 


이제 MACV-S.O.G특수부대

 

활약한 수 많은 작전 중에


대표적인 두 작전을 알아볼게요




1. "Highway110" 작전


 

 

 

 

베트남은 정글지형이 많아 우거진

 

살림에 제대로 된 길도 별로 없었어요


이로인해 북베트남에선 호치민의

 

군사와 물자들을 이동시키는 데

 

큰 불편이 있었죠.


호치민은 군사들과 물자를

 

이동시킬만한 좋은 길을 찾고 있었고,


마침내 군사와 물자를 이동시킬

 

마법같은 길을 찾았어요.

 

 곧 군사와 물자 이동이 수월해졌어요.

 

 

호치민은  운도 참 지지리도

 

없는게 하필이면

 

이 마법같은 길을 누군가에게

 

 발각되고 말아요


일반 부대가 아닌  특수부대 S.O.G에게

 

발각되고 말아요

 

 

 

 

 

제네바 협약도 씹어삼키시는

 

S.O.G가 알아버린이상

 

 이제 마법같은 길을

 

이용하는 호치민의 군사들의 미래는


 

 

 

 

S.O.G의 무전으로 하늘에서 내리는 폭격으로

 

황천길 티켓을 구매해 버렸어요.

 

또 폭격으로 살아남은 호치민의 군인들은 

 

S.O.G에 의해 보이는

 

족족 반토막이 되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군인들

 

역시 S.O.G에게 반토막이 되버려


마법의 길은 완전히 봉쇄당했어요.

 

결국 호치민의 군사이동과 물자공급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고

 

작전은 대 성공으로 끝났어요.




2. "Bright Light" 작전


 

 

 

 

 

공군 파일럿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엄청 들어요.


그래서 파일럿이 적진 한복판에

 

불시착하면 구하러 가요

 

 이작전이 그와 같아요.


 

 

 

 

 

당시 EB-66C의

 

조종사인 Hambleton중령은

 

월맹군의 미사일에 의해 


비행기가 추락되어 월맹군 적진

 

한복판에 불시착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접한 미군은 급한대로 

 

Hambleton중령을 구출하려고


대책없이 Hambleton중령 위치에 

 

가까운 미 육군, 미 공군을

 

 빠르게 투입시키게되죠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어요.

 

왜 선진국인 미국이

 

왜 아무런 계획없이

 

급하게 Hambleton중령을


구출을 하려고 하는냐 말이죠.

 

 그 이유는 Hambleton중령이


 

 

 

 

 

탄도미사일과 전자전 전문가로 

 

각종 1급 기밀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 기밀들이 유출되면

 

월맹군들이 미국제 최고급 무기들을

 

만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하루빨리 구출해야 하지만,


대책없이 구출작전을 펼친 덕분인지

 

침투한 미 육과 미공군은...


 

 

 

 

개죽음을 당했어요.


이렇게  대처수준이 여느때와

 

달리 자폐아 수준으로 시행되어,


애꿎은 미 군인들의 생명만 빼았아갔고,

 

결국 Hambleton중령은


월맹군들한테 잡히고 말죠.

 

포로가 된 Hambleton중령의 각종 기밀들을 캐려고


하는 월맹군은 

 

 " 드디어 미제 무기 한번 쓰는구나! 하하하 "


" 미국 놈들한테 시원한 탄도 미사일 한번  날려보자! "


하면서 월맹군의 당시 상황은 월드컵을 연상시키는

 

축제나 다름없었어요.

 

 S.O.G들이 침투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또 말하듯이 제네바 협약도 씹어삼키시는 S.O.G

 

바다를 통해 은밀이 침투한 다음에...


 

 

 

 

또 지상을 은밀히 침투한 끝에.....


 

 

 

 

월맹군을 제압시키는 데 성공했어요.

 

 Hambleton중령도 무사히 구출해냈고!


작전은 그야말로 대 성공이였어요.


보기와 같이 S.O.G는 수 많은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어요.


 

 

 

 

 

저는 무공훈장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안고 싶습니다......


                                                                             MACV-S.O.G 부대원의 인터뷰 -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으로

 

만들어진 특수부대 MACV-S.O.G


그들은 당시 험난한 정글을

 

헤치고 피터지는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대원들이 전사하였고, 

 

그들 자신의 가장

 

큰 목적은 임무수행과 무공훈장도 아닌


집으로 가서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는 거였다고합니다..


 

출처 및 참고자료 : 구글. 위키백과

 

오늘은 많은 사람들이 잘몰르는 소련 미사일 R-73에 대해 써볼게요

 

 

<Su-27>

 

 

소련은 70 년 대에 Su-27 같은 최신기 개발에 힘을 쏟았어요.
 

 

 

 

소련은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R-60을 개발하여 실전배치하고

 

있던 와중인 1970년대에 새로운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개발을 시작합니다..

 

새 시대를 열 Su-27과 MiG-29 같은 고기동 전투기에 걸 맞는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이 필요했던거죠.


 

R-60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소련 수뇌부는 R-60을 개발한 우크라이나 지역의 몰리니야 설계국과

모스크바 지역의 빔펠 설계국을 놓고 어느쪽에게 신형 미사일,

 

즉 R-73의 설계를 맡길지 고민하게됩니다.

그러다 결국 몰리니야 설계국에 손을 들어주고, 몰리니야는 R-73 개발에 열중합니다.

 

그런데 R-73의 
설계가 한창 진행된 1976년, 소련에겐 R-73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눈 앞에 닥치게 되요.

 

 

바로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국가 프로젝트, 우주왕복선 부란의 개발이었어요.

결국 소련은 몰리니야 설계국이 부란 프로젝트에 올인 할 수 있도록,

 

R-73 설계에 대한 마무리는
 
앞서 경합에서 떨어졌던 모스크바의 빔펠이 맡기로 합니다.

설계가 조금씩 진행되는 한편으로 R-73 관련 설계자료와 문서,

 

기술적인 내용은 몰리니야 설계국에서 빔펠로 차근차근 넘어갔고,

 

이 개발사업 이전 작업은 5년이 지난 1981년에야 끝이 납니다.

 

그리고 다시
4년이 지난 1985년에 R-73에 대한

 

 

최종적인 설계가 마무리되고 양산에 들어가게되요.

 

실제로 미사일의 부품들을 조립/제작하는 것은 빔펠 설계국이 아니라

 

'모스크바 콤무나르 기계 
건설 제작 종합 공장'에서 맡게됩니다.

 

물론 서방이나 우리나라의 사정과 비슷하게 R-73은 이 공장에서

하나부터 끝까지 만드는 것은 아니고, 각각의 부품은 여러 다른 곳에서 만들어 왔다.

 

 

이를테면
로켓추진기관은 이스크라 설계국에서,

 

미사일 두뇌에 해당하는 조종/제어 시스템은 아비오니카에서, 

미사일의 눈에 해당하는 적외선 탐색기 부분은

 

우크라이나의 아스날 중앙 설계국에서 담당하게되었죠.

이 미사일이 서방에 최초로 노출된 것은, 1980 년 대 말엽에 R-73을

 

탑재한 소련 전투기가 자국영공 
근처에 접근한 나토연합 항공기를 내쫓는 과정에서였어요.

 

그리고 
곧 얼마 안가, 나토연합은 통일독일을 통하여 

R-73의 성능을 낱낱이 알게되었고 곧 엄청난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그에 대한 결과물로 독일의 IRIS-T, 그리고 미국의 AIM-9X로 이어지게되요.

R-73의 큰 특징은 역시 당시로서는 엄청났던 조준선 밖 조준(Off Boresight)능력이었다.

 

통상적인
사이드와인더가 상하좌우 15도 가량의 탐색범위를 가졌던 반면,

 

R-73은 45도의 탐색범위를 가졌었어요.

게다가 R-73은 이 범위 내에서 표적을 물면 발사직후 바로 표적을

 

향하여 급기동을 할 수 있는 추력편향 
노즐을 갖추고있었습니다. 

 

사이드와인더나 서방제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에 비하면 좀 통통하게 생긴 R-73.
 

 
R-73의 외형적 특징을 살펴보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기수 제일 앞쪽에 있는 받음각 측정기에요.

미사일 중에 받음각 측정기가 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

 

정확히 제어장치에서 이 측정된 받음각
값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아마도 지나치게 급격한 기동중에 한계치 이상의 높은

받음각에 빠져서 조종불능 상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듯 합니다.

 

 은색의 풍향계 처럼 생긴 것이 받음각 측정기(사실 하는 역할도 풍향계랑 비슷).

그 뒤에 있는 것은 고정형 카나드, 바로뒤에 가동형 카나드.


 
전방쪽 핀(fin : 지느러미, 보통 미사일의 날개는 핀으로 지칭)은

 

4장의 고정형 카나드와, 다시 바로 그 뒤에
있는 4장의 가동형 카나드로 구성되는데,

 

고정형 카나드는 크기가 작은 편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R-60의

그것과 닮아 있으나, 고정카나드가 가동형 카나드와 겹치는 점이 특이합니다. 

이는 급기동상황(더 정확히는 높은 받음각 상황)에서 공기흐름을

 

앞쪽의 고정형 카나드가 한 번 미사일
몸통방향으로 정렬시켜준 다음 뒤쪽의

 

가동형 카나드가 조종력을 발생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급기동 중에 조종 성능을 높여주는거에요.

가동형 카나드는 4장이 따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는 마주보는

 

한쌍의 카나드가 한 축으로 연결
되어 움직이는 방식입니다.

 

이는 AIM-9을 비롯하여 카나드를 쓰는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형상입니다.

 

R-73은 이 각각의 카나드 짝을 제어하여 비행경로를 수정하게 됩니다.

 

카나드를
움직이는 동력원 자체는 전기가 아니라 고압가스에요.

 

더 정확히는 내부에 들어 있는 일종의 고체연료가

연소하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지는 고압 가스가 만들어지고,

 

이 고압가스를 이용하는 실린더 등이 작동하여

미사일의 카나드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R-73이 개발되던 당시에는 아직 현재와 같은 소형/고성능 전기 모터가

나오기 전 시절이어서 이렇게 미사일 제어장치로

 

고압가스등을 쓰는 경우가 많았어요.(이를테면 AIM-9
M/L)

<AIM-9M/L> 


카나드 뒤로 이어지는 R-73의 몸체는 직경 170mm급으로,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중에는 상당히 두꺼운

편이다. 이는 강력한 추력을 낼 수 있는 RDTT-295 로켓모터를

 

집어 넣기 위해서였죠. 아무래도 강력한

로켓모터를 집어 넣으려면 미사일의 직경이 두꺼워지는(=항력이 증가하는)

 

딜레마는 어쩔 수 없다만, 
여튼 이 로켓모터로 R-73은 기존 AIM-9M/L 보다

 

훨씬 긴 사거리를 갖게 됩니다. 그냥 로켓처럼 

R-73을 발사해버리면 R-73은 최대 20km 이상 날아갈 정도라고합니다.

몸체 더 뒤쪽에 있는 꼬리날개(테일핀)은 상당히 큰데,

 

이는 R-73의 안정성 확보 + 비행중 양력 확보를 위한
설계로 여겨지게됩니다. 


 

 

로켓 화염이 빠져나오는 노즐부에는 4개의 '제트 탭(Jet Tab)'

 

혹은 분사방향 전환기(Deflactor)가 달려있어요.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하여

 

미사일이 선회하기로 원하는 방향의 반대쪽 부분을 탭이 막아버리면,

 

 노즐에서 뿜어져 나오는 제트가 한쪽으로 꺾여서 결과적으로

 

미사일을 급선회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즉 R-73은 이 제트 탭을 통하여 추력편향을 하는 셈이죠.

 

추력 편향 기술은 특히 발사 직후 미사일의 급선회에 도움을 줍니다.

 

미사일의 카나드나 기타 조종날개는 미사일이 발사된 직후인 느린 속도에서는

 

각도를 꺾어도 큰 조종력을 만들지 못하는데


추력편향 기술을 사용하면 미사일의 속도에 관계 없이

 

급기동을 할 만한 충분한 조종력을 만들어 주게됩니다.

즉, 미사일이 선회할 힘을 미사일의 비행속도와 관계 없이 만들어 주는거죠.

(고속에서는 조종면을 '꺾는 것'이 더 효율적이므로 결국 카나드나 이런 것이 필요하다.)

 

 

R-73의 적외선 탐색기는 초기모델은 우크라이나 지역의 아스날 중앙 설계국에서 만든 MK-80

 

 

이 적외선
탐색기는 1컬러에 열영상도 아닌 적외선 탐색 방식으로,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구식설계이지만 R-73의 등장

시기와 배치연도를 보면 특별히 뒤쳐지거나 하는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탐색가능범위, 즉 탐색기의 시야각은 당대의 AIM-9M/L등보다

 

훨씬 넓어서 상하좌우 45도까지 돌아갔습니다.

탐색기의 최대 표적 탐지거리는 15km로, 이는 R-73의 최대사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초기형 R-73은 발사 후
락온(LOAL)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반드시 이 미사일은 발사되기 전에 스스로 표적을 포착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미사일 자체는 직선으로 날아간다면 최대 20km 이상 날아갈 수 있었으나,

 

미사일 스스로가 표적을
포착하는 거리가 15km였으므로 결국 R-73의

 

최대사거리는 15km가 되는거죠. 참고로 에프터버너를 안 켠 전투기 

사이즈의 표적에 대한 탐지거리는 6~7km로 더 짧아집니다.

(이렇게 적기의 적외선 방출량이 줄으면 탐색기의 포착가능

 

  거리가 줄어드는 것은 모든 적외선/열영상 미사일의 숙명입니다.)

이 미사일이 나토연합에 알려진 이후, 나토연합이 그간 써오던

 

AIM-9L/M에 비하여 사거리도, 기동성도 모두

압도하는 바람에 각국의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관계자들은 난리가 났고,

 

결국 대략 10년 뒤인 2000년대 초반에

사거리+속도를 우선시한  ASRAAM과 TVC+오프 보어사이트 능력을

 

우선시한 IRIS-T, AIM-9X가 실전배치되기 
시작합니다.

 

 

미사일의 각종 개량형이 많기로 유명한 러시아 답게,

 

R-73도 여러가지 변종이 있지만 성능개량형 중에

실전 배치된 것은 현재까지 한 종류만 확인되고 있습니다.

 

 
최초의 R-73 변종인 R-73K는 기체둘레에 크레쳇(Krechet) 전파 근접신관을 달았습니다.

이것은 곧 표적탐지확율이 올라간 레이저 근접신관으로 바뀌었고,

 

이렇게 얀타르(Yantar) 레이저 근접 신관을 단 모델이 
R-73L입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R-73의 개량형이 언급되는데,

 

R-73M, R-74, R-74M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름이 다양한 이유가 수출 이야기가 

나올때 마다 옵션을 달리 내걸거나, 빔펠에서 내놓은 '개량 안'들이 여럿 있기 때문입니다.

이 R-73M/R-74/R-74M의 개량내용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TVC 개량, 전자장비들을 디지털 식으로 바꿈

 

2. 탐색기를 더 신형으로 교체하여 탐색범위를 45도에서 
60도로 늘림

 

3.최대 사거리를 40km로 연장.

그러나 현재 이 R-73M, R-74, R-74M에 대한 구체적인 양산 및 실전배치 계획은 없습니다.

 

기본 설계가 훌륭한 만큼 사이드와인더처럼

지속개량으로 오래 사용할 것으로 보이고,

 

현재 시리아에서 호위임무를 맡은 Su-30SM에도 쓰이고 있습니다.

 

<Su-30SM>

 

 

 

 

사진 및 자료출처 : 구글.나무위키


 

 




 


 

6.25 한국전쟁 중 일반인들에게는

 

 많이 잘 알려지지않은

 

용문산 전투에 대해 써보려고해요

 

 

 

 

6사단용문산 전투

 

1951.5.17~ 1951.5.21  경기도 가평군 용문산

 

 

국군 6사단 VS 중공군 187.188.189 사단

 

군대에대해 잘모르시는분들을위해 하나 설명드릴게요

 

분대<소대<중대<대대<연대<사단<군단

 

예하부대 3~4개가 뭉치면 한개의

 

 상급부대가 생각하시면되요.

 

ex) 3개의 대대 = 1개연대 , 3개의 연대 = 1개의사단

 

 

<당시 6사단장 장도영 준장>

 

평은 그렇게 좋은 장군은 아니였어요.

 

용문산전투가 바로 장도영준장의

 

 최대업적일꺼라 생각되요.

 

 

51년 4월말 1차 춘계대공세를 실패한 중공군은


다가오는 5월에 2차 춘계대공세를 펼치게 되는데


그 장소가 바로 군사,교통의

 

 요충지였단 용문산 일대에요.

 

6사단한국전쟁 개전 초기인

 

춘천-홍천 전투에서 북한군

 

저지하면서 유명세를 떨친 사단이었어요


 

 

 

하지만 6사단은 이전에 사창리 전투에서

 

치욕적인 패배를 맛보았기에


 

장병 모두가 결사 (죽기를 각오) 라는 문구를


철모나 머리띠에 적고 나서 전투에 임합니다.


 

 

 

 

주 저항선에는 7연대19연대가 위치해 있고


그 위로 2연대 1대대는 미사리 2대대는 울럽산

 

3대대는 353고지에 진지를 구축했어요.

 


 

 

 

 

2연대 1대대중공군 187사단

 

공격을 해오자


적 한개 연대 급을 격파하고 나산까지 후퇴를 합니다.


대대가 연대급을 격파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거죠;

그 시각 중공군 188사단

 

공격으로 2연대 2대대


 

무려 하루라는 시간 동안 버티고 버티다

 

끝내 427 고지로 후퇴를 합니다

 

<중공군의 도하>

출처 : 6.25 60주년 사업단


 

역시나 한개 대대가 사단급을

 

 상대로 하루를 버틴것도

 

 역시나 엄청나고 말도안된다고 생각됩니다.

 

아무리 지형을끼고 싸웠다고해도

 

 한대대가 한사단급을 상대로

 

가능하다는게 신기할정도입니다.


그리고 원래 작전은 후퇴하게 될 경우

 

사단의 주 저항선 이남까지 후퇴해라

 
이거 였는데 2연대 독단적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바로 후방의 고지로 들어가서 항전을 하게 되는겁니다


 

 

역시나 중공군 187사단188사단

 

2연대 섹터를 공격했어요.


여기서 중공군은 상대가 방어가

 

너무 탄탄하다고 느꼈고


그러다 보니 2연대의 독자적 저항선을

 

6사단의 주 저항선이라

 

착각을 해서후방에 있던 예비사단인

 

189사단 까지 공격에 가세.

 

국군 2연대 VS 중공군 3개 사단이 싸우게 됩니다.

 

병력차이만 어마어마 함에도

 

불구하고 결사 정신과


후방의 화력지원 밑 공군 공습으로

 

끈질기게 방어를 합니다.

 

초반에 말했듯이 3개연대가

 

모여야 1개사단입니다..


 

<미 포병대의 지원 사격 >


 

 

 

그런데 중공군 3개 사단이 총력을

 

다해서 한개 연대를 치는걸알고

 

기회다 싶어 주 저항선을 지키던

 

 7연대19연대는 적의 후방을 쳤어요.

 

중공군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자신들보다

 

 많은 병력이라고 착각을 하고는


스스로가 와해되서 대규모의 피해를 입고


21일이 되자 도망을 치게 됩니다.

 

이 여세를 몰아 국군 6사단

 

 70~80km 까지 추격하고


이 때부터 미군도 적극적으로 가세합니다.


결국 화천호에서 퇴로가 막힌 중공군 대부분을 섬멸해요


 

 

 

 

이렇게 해서 전투는 24일 까지 이어져요.


용문산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는 용문산 전투


추격 끝에 섬멸하게 되는 것을

 

파로호 전투라고 불리는데


용문산 전투 안에 파로호 전투

 

포함 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국군 피해 전사 107명, 부상 494명, 실종 33명

 

중공군 전사 1만 7,177명 포로 2,183명

 

1명당 100명 이상 죽였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전과라고 할 수 있죠.

 

<용문산 전투가 끝난 후 제 6사단 2연대 1대대

중화기소대 장병들이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미지 출처=유용원의 군사세계)

 

단일 전투로서 이만한 전과는 한국전쟁 통틀어

 

그 예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대승이였습니다..


 

 

 <중공군 포로>

<중공군 포로>


 

<승전 소식 후 이곳을 찾은 이승만 대통령 (뒤에 타있는 사람이 당시 장도영 준장)>

 

 

중공군을 섬멸한 장소가 화천호이지만

 

후에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오랑캐를 무찌른 호수) 라 명명해서


이 곳의 명칭이 지금까지도 파로호라고 불리고 있어요

 

 

 

 

<그 후에 세워진 기념비>

 

<용문산전투전적비>


 

좌.장도영 장군  우.박정희 장군

(이 때는 박정희보다 높은 자리였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부의장.  )

 

 

 

장도영 장군은 후에 국방부장관 까지 오르지만

 

박정희와 권력다툼하다 쫒겨나고

 

미국에서 생을 마감합니다.(치매도 온다)

 

아무튼 비운의 인생을 살다가신 분이죠.

 

<푸른별 제6사단 청성부대>

 

지금까지 용문산전투에대해 알아보았는데요..

 

6사단출신으로써 정신교육때 많이들었전투였지만

 

많은사람들이 모르기에 한번 써봤습니다..

 

인천상륙작전.낙동강전투등처럼 기

 

억되야할 전투라고 생각됩니다^^

 

 

 

 

출처 및 참고자료 : 나무위키.구글


 

 

안녕하세요  6월 25일

 

 한국전쟁 66주년이네요...

 

우리나라를 위해서 같이 피흘리며 싸워준

 

고마운 한국전쟁 참전국에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많은사람들이 아는것보다

 

 엄청나게 많은 국가들이 참전을 해주었어요..

 

 

 

천천히 하나하나 알아보고갈게요..

 

1.미국

 

 

참전인원 : 1,789,000 명

 

지상군 : 보병사단 8 , 해병사단 1 , 연대전투단 2 , 병력 302,483명

 

해군 : 극동해군 미 제7함대

 

공군 : 극동공군

 

전사/사망 : 36,940명 부상 : 92,134명 실종 : 3,737명 포로 : 4,439명 계 : 137,250명

 

올림피아 한국전 참전비 (Olympia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워싱턴주 올림피아시 올림피아공원내에 위치해있습니다.

 

 1993년에 건립됬는데 여기는 2차대전, 베트남전쟁 참전비가

 

같이 모여있는 현충원 같은곳입니다.


 

 

 

 

 

2.영국

 

참전인원 : 56,000 명

 

지상군 : 보병여단 2 , 해병특공대 1  , 병력 14,198명

 

해군 : 함정 17척 (항공모함 1척포함)

 

전사/사망 : 1,078명 부상 : 2,674명 실종 : 179명 포로 : 977명 계 : 4,908명

 

 

국립묘지 한국전 참전비 (Memorial Garden at National Memorial)

 

영국 국립묘지 내 추모의 숲에 위치하고 있는 이 시설은 2000년에

 

영국 한국전 참전용사회에 의해 건립됬습니다.

 

참전시설은 6개의 비석과 벤치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석의 동판에는

 

각각 참전자 추모, 한국전 정보, 영국군대의 한국전에서의 활약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특히 눈에 띠는 조형물이 있는데 희생당한 병사에 대한 애도를 표현한

 

이 조형물은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가 되면 조형물 뒤쪽의 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중앙의 브론즈 화환을 비춘다고 합니다.

 

 

 

3.오스트레일리아

 

 

 

 

참전인원 : 8,407 명

 

지상군 : 보병대대 2 , 병력 2,282명

 

해군 : 항공모함 1척 , 구축함 2척 , 피리킷함 1척

 

공군 : 전투비행대대 1 , 수송기편대 1

 

전사/사망 : 339명 부상 : 1,216명 실종 : 3명 포로 : 26명 계 : 1,584명

 

국립 전쟁기념관 한국전 참전비 (Australian National Korean War Memorial)

 

2000년에 호주 정부와 한국 정부에 의해 건립되었고 캔버라에 있는 국립 전쟁기념관 내에 있어요. 

 

추모의 공간과 함께 12m 높이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습니다.

 

 오벨리스크 벽면에는 6∙25전쟁 참전 전사자들을 기리는 문구가 새겨져 있구요.

 

 한쪽에는 철제 봉이 꽂혀진 마당 위의 3명의 군인 형상물이 있는데,

 

 철제 봉은 빽빽한 숲의 험난한 지형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가운데 서 있는 군인 형상물은 실제 호주 참전군인과 같은 크기로 만들어졌습니다.

 

 

 

 

4.캐나다

 

 

 

참전인원 : 25,687 명

 

지상군 : 보병여단 1 , 병력 819명

 

해군 : 구축함 1척

 

공군 : 수송기대대 1

 

전사/사망 : 312명 부상 : 1,212명 실종 : 1명 포로 : 32명 계 : 1,557명

 

오타와 한국전 전사자 기념비(Monument to the Canadian Fallen)

 


오타와 정부청사 앞 광장에 위치한 캐나다의 이 기념비는 6∙25전쟁 참전자였던

 

Vince Courtenay가 디자인하고 한국인 유영문이 조각한 비입니다.

 

6∙25전쟁 참전용사와 정전 후 평화 복구를 위해 한국에 주둔했던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2003년에 건립됬습니다 . 상징물은 캐나다 군인이 캐나다의 상징인

 

단풍잎을 든 한국 소녀를 품에 안고, 무궁화를 든 한국 소년과 함께 서 있는 동상이고, 

 

이 동상의 기단에는 전사자 516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요.

 

우리는 캐나다의 용감한 사람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5.네덜란드

 

 

참전인원 : 5,322명

 

지상군 : 보병대대1 , 병력 819명

 

해군 : 국축함 1척

 

전사/사망 : 120명 부상 : 645명 실종 : 0명 포로 : 3명 계 : 768명


 

생제르망앙레 한국전 참전비(Saint-Germain en Laye Korean War Menorial )

 

로테르담 시내에 위치해있고 1970년 UN에 의해 세워졌구요.

 

태극문양 아래 네덜란드 한국전 전사자 명단과 유엔마크,

 

네덜란드 참전부대 (NVDA) 마크가 새겨져 있습니다.

 

 

 

 

 

6.뉴질랜드

 

 

 

참전인원 : 3,794 명

 

지상군 : 보병대대1 , 병력 1,389명

 

해군 : 프리킷함 1척

 

전사/사망 : 23명 부상 : 79명 실종 : 1명 포로 : 0명 계 : 103명

 

웰링턴 아오테아 한국전 참전비(A Heritage Memorial, Aotea Quay)

 

 

웰링턴에 있는 이 참전비는 뉴질랜드 한국전 참전군인회에서 2000년에 건립했습니다.

 

1749명의 뉴질랜드 군인이 유엔연합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하기 위해 아오테아 선창가에서

 

승선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한 건데, 콘크리트 위의 발자국은

 

 

군인들의 출발과 귀환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비문내용 : 1749명의 뉴질랜드 군인은 유엔연합군으로서 한국전에 참전하기 위해 이 항구에서 승선했다


 

 

 

 

 

7.프랑스

 

 

참전인원 : 3,421 명

 

지상군 : 보병대대 1 , 병력 1,185명

 

해군 : 구축함 1척

 

전사/사망 : 262명 부상 : 1,008명 실종 : 7명 포로 : 12명 계 : 1,289명

 

파리 한국전 참전비 (Paris Korean War Memorial)

 

프랑스 파리  제4구에 위치해있고 유엔에 의해 1989년에 건립됬습니다.

 

 프랑스 대대의 625전쟁 참전을 기념하기 위한 조형물인데 

 

한반도 지도 모형으로 제작된게 특징이에요.

 

프랑스 대대는 625 당시 프랑스가 UN 결의에 따라 파견한 1개 대대 규모의 지상군입니다.

 

주로 미국 2보병사단 23연대에 배속되어 전투를 치렀어요.

 

뒷면에는 프랑스 대대 상징 마크가 새겨져 있는데. 이곳은 4개의 도로가 만나 이루어진 네모난 인도인데,

 

 도로명도 한국전 참전 프랑스 대대명 그대로 따라 부르고 있습니다.


 

 

 

 

8.필리핀 

 

 

 

참전인원 : 7,420 명

 

지상군 : 보병대대 1 , 병력 1,496명

 

전사/사망 : 112명 부상 : 229명 실종 : 16명 포로 : 41명 계 : 398명


마닐라 리잘파크 한국전 참전 기념비

 

(Rizal Park Korean War Monument & Filipino-Korean Soldier Monument)

 

2010년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한국 필리핀 수교 60주년기념회 등에 의해 건립됬습니다.

 

마닐라시 리잘공원에 위치하고 있고 조형물은 1명의 군인을 양쪽에서 부축하고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됬는데 한국과 필리핀의 우호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조형물과 곡선의 철제 조형물로 이루어져있어요

 

 

 

 

9.터키 

 


참전인원 : 7,420 명

 

지상군 : 보병여대 1 , 병력 5,455명

 

전사/사망 : 741명 부상 : 2,068명 실종 : 163명 포로 : 244명 계 : 3,216명

 

이스켄데룬 한국전 참전비(Iskenderun Korean War Memorial)


 

터키 정부에 의해 1953년 건립됬고 이스켄데룬시 공원에 위치하고 있어요

 

 터키 770명의 6∙25전쟁 전사자(건립당시)를 추모하고 있는 기념비에는 추모의 글과

 

 

전사자 명단이 적혀 있으며, 가족과 작별하는 군인의 모습 등 부조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비문내용 : 신성한 인류애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전에 참전한 터키의 영웅적인 군인들을 기리며


 

10.태국 


 

참전인원 : 6,326 명

 

지상군 : 보병대대1 , 병력 2,274명

 

해군 : 프리킷함 7척 , 수송선 1척

 

공군 : 수송기편대 1

 

전사/사망 : 129명 부상 : 1,139명 실종 : 5명 포로 : 0명 계 : 1,273명

 

방콕 참전협회 한국전 참전비(Bangkok Korean War Memorial)


 

대한민국 정부가 1982년에 건립한 태국 방콕에 위치한 참전비에는

 

 

 추모의 글과 함께 유엔군과 태국 국기, 태극기가 그려져 있습니다.


 

 비문 내용 : 태국 한국전 참전용사회는 유엔 연합군으로서 한국전에 참전한

태국 군과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전사하신 138명의 용감한

태국군인을 추모하고자 이 기념비를 건립한다


 

 

 

11.그리스

 

 

 

참전인원 : 4,992 명

 

지상군 : 보병대대1 , 병력 1,263

 

공군 : 수송기편대 1

 

전사/사망 : 192명 부상 : 543명 실종 : 0명 포로 : 3명 계 : 738

 

파파고스 한국전 참전비 (Monument of Greek soldiers fallen in the Korean War)


그리스 파파고스에 위치한 이 참전비는 2003년 대한민국 정부와

 

그리스 국방부에 의해 건립됬었어요. 고대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4개 기둥의 참전 기념물로

 

가운데 기념비의 동판에는 고대 그리스 역사의 상징물이 새겨져 있고,

 

양쪽의 기념비에는 186명의 그리스 전사자 명단이 적혀 있습니다.

 

 

12.남아프리카 공화국

 

 

 

참전인원 : 826 명

 

공군 : 전투비행대대

 

전사/사망 : 34명 부상 : 0명 실종 : 0명 포로 : 9명 계 : 43

 

케이프타운 한국전 참전비(Cape Town War Memorial)

 

남아공의 6∙25전쟁, 1, 2차 세계대전 참전 전사자를 추모하기 위한 시설로

 

 1924년 처음 건립됬는데, 1959년 625 참전비가 추가됬어요.

 

기념비 상층부에는 조형물이 자리잡고 있고 기념비 중앙에는

 

전투 중인 군인의 모습이 담긴 동판 부조물이 있습니다.

 

기념비 하단에는 625전쟁 전사자에 대한 추모문이 새겨져 있어요.

 

 


 

 

13.벨기에

 

 

 

참전인원 : 3,498 명

 

지상군 : 보병대대1 , 병력 900

 

전사/사망 : 99명 부상 : 336명 실종 : 4명 포로 : 1명 계 : 440명

 

 

국립대성심성당 한국전 참전 기념물(Campaign For Peace, Nationale Basiliek)

 

벨기에 국립대성심성당은 브뤼셀 시모니스에 있는 곳인데 1996년 벨기에

 

 한국전 참전용사회가 성당안에 건립했어요. 브뤼셀 국립 대성심성당 안에 설치된

 

625전쟁 참전 기념 스테인드글라스는 모두 9개의 유리창을 3개 주제로 나누어 구성되어있고,

 

 전쟁을 상징하는 야간 순찰대, 희망과 평화의 비둘기가 한반도 위를 나는 모습,

 

그리고 한국의 풍경이 각각 유리창 3개씩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14.에티오피아

 

 

 

참전인원 : 3,518

 

지상군 : 보병대대1 , 병력 1,271명

 

전사/사망 : 121명 부상 : 536명 실종 : 0명 포로 : 0명 계 : 657

 

 한국전 참전 기념탑(Ethiopia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Monument)

 

에티오피아의 참전 기념시설은 에티오피아후원회, 춘천시와 함께

 

국가보훈처에 의해 2006년에 건립됬는데 625전쟁 참전 기념탑,

 

에티오피아 122명의 위패, 참전용사회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념탑은 625전쟁 당시 전사하거나 부상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1968년 춘천시 공지천에 세웠던 에티오피아 참전 기념탑과 동일한

 

 모양과 규모로 춘천시가 아디스아바바 현지에 제작, 건립한거에요.

 

 


 

 

15.콜롬비아

 

 

 



참전인원 : 5,100 명

 

지상군 : 보병대대1 , 병력 1,068명

 

해군 : 프리킷함 1척

 

전사/사망 : 163명 부상 : 448 실종 : 0명 포로 : 28명 계 : 639

 

보고타 한국전 기념비(Bogotá Korean War Memorial)

 

보고타에 위치한 기념비는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1973년에 건립됬습니다. 

 

보고타 군부대 내에 위치한 이 기념비는 석가탑과 같은 모양과 재질로 만들어졌는데

 

 625전쟁 참전 당시 콜롬비아군이 배속되었던 미 24사단 사단장의 콜롬비아 군인의 용맹성을

 

 찬양한 비문과 함께 전사자 213 명의 이름이 동판에 새겨져 있어요.

 

주 콜롬비아 신임 한국 대사가 취임하거나 625전쟁 기념식을

 

가질 때 헌화 장소로 자주 이용되고 있습니다.

 

 


 

16.룩셈부르크 

 

 

 


참전인원 : 83명

 

지상군 : 보병소대 1 , 병력 48명

 

 

전사/사망 : 2명 부상 : 13실종 : 0명 포로 : 0명 계 : 15명

 

헌법광장 한국전 참전비(The Monument of Remembrance, Constitution Square)

 

룩셈부르크 헌법광장 내에 위치해있는데 황금여신상으로 불려요.

 

기념비 아래 부분에는 두 명의 룩셈부르크 군인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조국을 위해 전사한 동료를 애도하는 모습을 표현한거에요.


 

 

이밖에도 의료 지원해준 나라들도 있는데요

 

인도. 노르웨이 . 덴마크 . 스웨덴 .이탈리아와

 

물자지원을해준 과테말라.미얀마.이스라엘.우루과이.코스타리카.도미니카.

 

이란.베네수에라.온두라스.파나마.독일.이집트.엘살바도르.파라과이.라이베리아.

 

사우디아라비아.인도네시아.자메이카.파키스탄.월남임시중앙정부.리히텐슈타인.

 

시리아.일본.대만.페루.레바논.스위스.아이티.칠레.헝가리.모나코.아르헨티나.에콰도르

 

쿠바.교황청.멕시코.아이슬란드.오스트리아.캄보디아 등 고마운나라가 많습니다..

 

<사진자료:보훈처>

 

 

모두가 잊지않고 6.25 한국전쟁을 기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출처및참고자료:구글.위키백과.국방부

 

 

 

 

 

 

 

미국이 전쟁할때 투입되는 첨단무기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

 

파병 때 우리가 알게 모르게

 

미국은 첨단무기들을 실전에 투입시켰어요.

 

이번엔 지금 2016년에 만약 실전상황이

 

벌어진다면 투입될 수 있는

 

 미국의 첨단무기들을 알아보도록 할게요.

 

 

1. B-2스피릿

 

가격 : 한화 약 2조원

 

다들 많이 알고 있는 미국의 스텔스 폭격기 B-2 입니다.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비싼 2조원의 몸값을

 

자랑하고 있고 현재 괌에 전진배치 되어있어요.

 

15km 고도에서도 작전수행이 가능하고

 

총 22t의 무기를 내부에 탑재할 수

 

 있으며 전술핵폭탄과 MOP이라는

 

지옥까지 뚫고 들어가는

 

벙커버스터 폭탄을 장착할 수 있습니다.

 

레이더에 탐지되어도 화면상엔 기러기

 

크기로밖에 나오지 않는 괴물입니다.

 

 

유사시 한반도에는 적 중요시설과 핵시설,

 

정으니벙커를 타격하게 될거라고 예상합니다.


B-2 스피릿에 더 자세한걸 알고싶으시면

http://kimssine51.tistory.com/61

 

 

 

 

2. F-22 렙터 

 

 

 

가격 : 한화 약 2000억원

 

이것도 다들 많이 알고있는 F-22 전투기입니다..

 

현존 최강  전투기로써 지구상에 1:1로

 

 F-22를 이길 수 있는 전투기는 없어요.

 (예외가 있다. 뒤에서 설명할게요)

 

 미 해군/ 공군 주력기들을 상대로

 

 모의전투 결과 144:0 이라는

 

 외계인급의 격추비를 보여줬습니다.

 

 

 

북한전투기들은 아마 하늘에서 

 

이녀석들 얼굴도 못보고 격추당할겁니다.

 

기본적으로 스텔스기이며 레이더에는

 

거의 까마귀 정도 크기로 나타납니다.

 

오키나와 전투기지에

 

전진배치되어있고 유사시에

 

한반도 제공권 장악 및 중요시설

 

 폭격임무를 맡고있습니다.

 

 

F-22렙터에 대해 더 자세한걸 알고싶으시면

 http://kimssine51.tistory.com/56


 

 

 

 

3. EA-18G 그라울러  

 

 

가격 : 한화약 1400억원

 

해군 주력기 FA-18F 수퍼호넷을

 

개조해 만든 전자전기 그라울러입니다.

 

 EA-6B 프라울러의 대체기로

 

전자전을 수행하게 됩니다.

 

전시에는 적의 레이더 기지의 파악,

 

레이더와 방공미사일 기지 무력화,

 

대레이더 미사일로 레이더기지

 

파괴 임무를 수행합니다

 

 이녀석이 얼마나 대단한 녀석이냐면 F-22와

 

모의 공중전을 치뤄서 F-22를 격추시켯습니다.

 

어떻게 격추했냐면 먼저 전파방해로

 

랩터의 레이더를 피해 접근했고

 

랩터가 쓰는 미사일 유도시스템과 레이더를

 

무력화 시킨다음 요격시켰어요.


 

 

 

그래서 랩터를 격추한 521호기에 

 

보는봐야같이 F-22의 킬마크가 그려져있습니다.


 

 

 

  4. F - 35 Lightning II

 

 

 

가격 : 한화 약 1400억원

 

많이들 알고 있는 우리나라가 갖게될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 라이트닝 입니다.

 

명칭의 유래는 미국의 P-38 라이트닝과,

 

공동개발국인 영국의 BAC 라이트닝으로써,

 

이 두 기종 모두를 계승하겠다는 의미로

 

 Lightning II가 되었습니다.

 

 

 

개발부터 완성까지 잡음이 많았던 전투기이지만

 

 F-35B 해군형이 처음으로

 

 미 해병대에 실전배치가 되었습니다


 

 

 

 

F-22만큼은 아니지만 강력한 스텔스 기능과

 

공대지, 공대공 전투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전경험을 쌓게될 것 같습니다.


 

 

 

  5. X - 47B

 

 

가격 : 한화 약 1조 5천억원

 

 X-47B는 미해군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스텔스 무인전투기입니다.

 

근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양산은 안할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항공모함에서 이착함 테스트,

 

공중급유 테스트까지 모두 마치고

 

 비행능력이 검증된 X-47B가

 

이렇게 폐기시킬까요..

 

만약 전쟁이 터지면 미국은 추가로

 

 데이터 수집을 하려고

 

 실증기 2대를 몰래 작전에

 

투입할거라고 믿고있습니다.


 

 

 

<날개가접히는X-47B >

 

이 비행기의 임무는 2개의

 

내부 무장창에 2,000kg의 무장을 싣고

 

 적진 깊숙히 들어가 목표를 타격하는 것입니다.

 

후속기는 얘보다 더 싼가격으로 현재 개발이

 

진행중이며 2022년도에 배치가 된다고 합니다.


 

 

 

 

   6. RQ - 180

 

 

가격 : ?

 

미공군의 무인스텔스 전투기 RQ-180입니다.

 

현재 외부로 공개된 정보는 거의 없습니다.

 

 

 

 

공개된것도 이란넘들이 RQ-170

 

센티넬이라는 무인스텔스기를

 

 납치(GPS 교란을 통해 자신들의 기지에 착륙시킴) 해서

 

그 후속기의 정보가 공개된 것입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현재 비밀리에

 

비행성능과 작전능력을 테스트 하고

 

 있으며 실전배치 전 까지는

 

공개가 안될 거라고 합니다.

 

전쟁나면 한반도에 들어와 실컷 실전 수행 능력을

 

테스트하고 갈거라고 생각됩니다.


  .

 

 

  7. Phantom Ray

 

 

가격 : ?

 

미공군의 무인스텔스 제공전투기

 

팬텀레이입니다.

 

X-45C 라는 무인전투기의 후속 버전으로

 

 랩터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인기는 유인기와는 다르게

 

조종사가 없어서 엄청난 급기동과

 

고(高)각기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무인기를 유인기가 이기기 힘듭니다.


 

 

 

 

 

 

제공권 장악 임무와 주요시설

 

폭격 임무를 수행합니다.

 

 

 

   8. Zumwalt Class Destroyer DDG - 1000


 

가격 : 한화 약 5조원

 

미국국 첨단무기의 끝판왕

 

미 해군의 줌왈트급 스텔스 구축함

 

DDG-1000 입니다.

 

 이미 1호기가 일본에 전진배치 되어있습니다.

 

가격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국방예산의 1/7 수준입니다.

 

스텔스 성능이 어느정도냐 하면

 

함포까지도 스텔스 성능 향상을 위해

 

숨겨놓아서 레이더에는 꽃게잡이

 

어선 정도로 표시된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녀석은 알레이버크급

 

미국 이지스 구축함 보다

 

긴 182m 선체를 가지고 있고

 

 만재배수량이 무려 1만4000톤입니다.

 

토마호크 미사일과 SM-3 탄도미사일 요격 미사일,

 

 ESSM 대공미사일을 장착하고 있으며

 

62구경장 155mm  AGS(Advanced Gun System) 

 

함포 2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함포 성능이 너무 좋아서

 

일반탄으로도 41km 까지 발사 가능하고

 

 LRLAP 탄을 쓰면 140km~180km 까지

 

 타격 가능하다고합니다.

 

한반도에 유사시 일본에서 서해로

 

올라와서 엄청난 화력지원을

 

해줄거라고 생각됩니다.

 

 

 

 

 

이상 갈수록 발전하는 미국의 첨단무기들을 알아보았습니다. 

 

 

 

''미국은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버리는 나라가 아닙니다.''

한국전쟁당시 미국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

 

 

 

낙동강방어선전투[ 洛東江防禦線戰鬪 ]

 

 

6월 25일 기습적인 불법남침을

 

시작한 공산군은 남진을 계속하여

 

7월 말에 이르러 낙동강을

 

도하하여 대구와 부산을 잇는

 

 아군의 대동맥을 끊으려고

 

압박을 가하여 왔습니다.

 

이에 미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은 북한군의

 

 공격에 대한 최후의 방어선으로서,

 

낙동강과 그 상류 동북부의 산악지대를 잇는

 

 천연장애물을 이용한 방어선을 구축하여

 

 이를 사수하기로 하였다.

 

이 방어선을 워커라인이라고도 부릅니다.

 

 

 

 <워커장군>

 

잠시 미8군 초대사령관 월튼 해리스

 

 워커 장군에대해 알아보고지나갈게요.

 

워커 장군은

 

 "내가 죽을 때까지 한국을

 

지키기 위하여 여기에 있겠다."

(I will stay here to project Korea until my death.)

 

라고 결의하고 융단폭격 등의

 

대대적인 작전으로 대한민국의 최후보루였던

 

 "낙동강전선"을 사수하는데 성공하였고

 

 이어서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여 인천상륙작전,

 

 38선돌파 등 북진의 승기를 잡았기에

 

오늘 이 지구상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도록 한 우리 모두의 은인입니다.

  그는 서울을 수복하고 이어서 북진 중에

 

있을 때 보좌관(중령)과 함께 중부전선으로

 

 이동 중 서울시 도봉구 도봉1동 596-5 앞

 

도로에서 1950.12.23.10:45 교통사고

 

(가해자 한국군 6사단 2연대 소속 박경래;1924년생)로

 

 운전병과 함께 전사하였습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에 와서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받친 UN군 장병들의 고귀한 짧은 삶을

 

 높이 평가하고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8월 4일 새벽 1시를

 

 기해 형성된 낙동강방어선은

 

남북 160km, 동서 80km의 타원형을 이루었는데,

 

 낙동강 일대의 방어는 주로 미군이,

 

동북부 산악지대의 방어는 국군이 담당하였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을 따라

영덕-청송-의성-낙동리-왜관-남지-마산을

 잇는 방어선을 구축하는데

바로 낙동강 1차 방어선이었다.

그러나 전력이 부족한 국군으로는 이 방어선을 지킬 수 없다

 여겨 8월 11일 왜관-다부동-신령-기계-포항을 잇는

 80km 가량의 선으로 전선을 축소하여 방어했다.

이 방어선을 지키지 못하면 더 이상 반격의 희망이 없다

 여긴 국군과 유엔군은 배수진의 각오로 싸웠다>

 

7월20일 김일성은 북한군에게

 

 8월15일까지는 반드시

 

부산을 점령하라고 독촉을하였어요.

 

북한군은 수안보()에 전선사령부를

 

 두고, 미군 정면에 제1군단,

 

국군 정면에 제2군단을 배치하여

 

이른바 ‘8월 공세(1950.8.4∼8.25)’와

 

 ‘9월 공세(1950.9.1∼9.15)’의

 

두 번에 걸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해왔습니다.

 

그리하여 대구방어전투·영천()전투

 

·동해안지구전투 등 많은 공방전이

 

 전개되어 곳에 따라서는 방어선을

 

 돌파당할 뻔한 위기를 맞기도 하였습니다.

 

다부동전투[]

워커 미8군사령관은

 

정일권 육군 총참모장에게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국군부대를

 

왜관 북쪽에 배치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워커 장군이 이런 부탁을 한 이유는 왜관 북쪽

 

미군이 담당하는 낙동강 서부 지역과 국군이 담당하는

 

낙동강 북부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중간 고리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지역의 국군이 무너지면 미군마저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대구 북방 산악지대에서는 국군1사단과

 

북한군 사이에 상상을 초월하는

 

난타전이 벌어졌습니다.

 

 1사단의 방어전은 시작부터 어려움이 많았는데,

 

북한군이 먼저 유학산 등 주요 고지를

 

 점령해 버린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에 따라 1사단은 사전에 주 저항선으로

 

선정됐던 주요 고지군을 방어하면서,

 

 북한군이 선점해 버린 유학산 등지를 탈환해야 하는

 

 이중의 임무를 떠맡게 되었습니다.

 

격렬한 전투를 치르며 위기의 순간이 많았으나,

 

국군 1사단장인 백선엽 장군의 뛰어난

 

지휘력으로 결국 전선을 지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국군 최초의 4성장군 백선엽 장군>

 

마침내, 8월 22일 국군 1사단이

 

 유학산을 탈환하였습니다.

 

 

 

 

제1사단은 주 저항선을 안정시켜

 

 작전의 주도권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미 제27연대는 증원임무에서 해제되어

 

 마산의 모체부대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치열한 전투였던 만큼 피아(彼我)

 

간에 많은 전사자가 났어습니다

 

 국군은 2300명이, 북한군은 5690명이 전사했습니다.

 

 1사단이 미군에 다부동지역을 인계하고

 

 이동하게 되었을 때 미군 병사들이

 

 “저 위에 있는 시체들을 모두 파묻기

 

전엔 지역을 인수하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낙동강전선에서 죽은 북한군의

 

상당수는 ‘의용군’이라는 이름을

 

붙여 강제로 징집한 젊은이들이었다고전해집니다. 

 

<강제로 징집된 의용군>

 

다부동전투는 ‘제자리에서 버티든가, 아니면 죽는

 

’ 식의 처절하고 살벌한 싸움이었습니다.

 

당시 남한이 사실상 대구와 부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 중남부지역에만

 

 간신히 발을 걸치고 있던 상황이었던 만큼,

 

단 한 차례만 방어선이 뚫려도 대한민국의

 

 국운 자체가 위태로울 지경이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미국 장교 중 일부는 유사시

 

한국 본토가 모두 북한군에게 점령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 ‘뉴 코리아(New Korea)’라는

 

이름의 망명 정부 수립 계획까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 국군은 유학산과

 

 다부동 일대에 주 저항선을 형성하고

,

 북한군 3개 사단과 25일 동안의 교전을

 

전개하여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였습니다.

 

이는 수많은 희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다부동전투 과정에서 국군과 미군 뿐만 아니라,

 

병력 부족으로 인해 학도병도

 

 자원 참전을 하였습니다.

 

<6.25전쟁당시 학도병>

 

남한 국토의 90% 이상이 이미 점령된

 

상태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목숨 걸고 싸운 국군과 미군, 학도병들이 아니었다면,

 

<영화 " 포화속으로"中 학도병>

 

한국전쟁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에게

 

자신감과 힘을 실어주고,

 

'포기하지 않고 싸우면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

 

 다부동전투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손꼽히는

 

 전투로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조선민주주의인민군의

 

대공세를 저지시키고 대구

 

진출하려던 적들의 기세를 꺾었고

 

동양의 베르됭 전투라고도 불릴 정도로

 

 치열한 전투로 유명합니다.

 

 

 

 

 

 

 

영천전투[ ]

 

영천지역 전투는 국군 제2군단

 

 예하 제7사단과 제8사단이

 

북한의 9월 공세로 보현산 방어선까지 진출해

 

 영천 점령을 기도한 북한군 제15사단을

 

 1950년 9월 5일부터 13일까지의 공방전을

 

통해 격퇴하고 영천을 확보한 전투입니다.

 

 

<7사단칠성부대.8사단오뚜기부대마크>

 

북한군은 8월 공세에서 다부동 및 대구에

 

 대한 공격이 실패하자 제15사단을

 

의성을 거쳐 영천으로 이동시켰어요.

 

이는 영천을 점령한 후 대구 또는

 

경주로 진격한다는 의도였습니다.

 

영천에서의 전투는 주로 영천 북쪽과

 

 남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영천은 대구와 포항의 중간에

 

 위치한 교통의 중심지로서,

 

적이 영천을 점령하여 대구로 진출할 경우

 

다부동 일대의 국군과 미군이 위험에 처해

 

낙동강 방어선 전체가 붕괴될 수 있고,

 

경주로 진출할 경우에는

 

 부산교두보가 위협받을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9월 5일 북한군 제15사단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3개 방면에서 공격을 해왔어요.

 

이에 따라 국군은 방어선이 취약하여

 

분산 철수를 단행하게 되었습니다.

 

육군본부는 제8사단의 방어선이

 

돌파됨에 따라 제8사단의 배속을

 

제1군단에서 제2군단으로 변경하였습니다.

 

 그리고 영천 방어선을 유지하기

 

위해 제1사단과 제6사단에서

 

 각각 1개 연대씩을 차출해 병력을 운용하였어요.

 

 

 <1사단과 6사단청성부대마크>

 

 2차례에 걸친 공방전 끝에 국군은 북한군

 

제15사단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영천∼경주간 도로를 확보한 국군 제2군단은

 

영천 방면의 북한군을 격퇴하기

 

위해 9월 10일 반격작전을 전개하였어요.

 

 제8사단과 제7사단을 작전계획에 따라 배치하여

 

 남, 서, 북쪽의 3개 방면에서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이 작전으로 국군은 적 제15사단의

 

전차 및 화포 대부분을 파괴하고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결국 3개 연대를 투입해 영천을 점령하고

 

경주 방면으로 진출을 꾀하던

 

적 제2군단에 맞서 국군은 제8사단과

 

 제7사단 및 추가 연대를 투입해

 

방어조치를 취하는 등 영천전투를 통해

 

낙동강 방어선을 고수할 수 있었습니다.

 

국군이 수세에서 공세로 이전하는

 

전환점이 된 영천지구 전투는

 

북한의 제15사단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물러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군이 총공세를 단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의미 있는 전투였습니다.

 

 

 

 

이러한 낙동강방어선전투는 전쟁을 조기에

 

종결하여 남한 점령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초조한 의도에서 전병력을 집중하였던

 

 북한군의 전력을 크게 약화시켜

 

 아군의 인천상륙작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효과를

 

거둠으로써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및 참고자료 : 위키백과.구글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의

 

명작전중 손꼽히는 작전 

 

코드네임 크로마이트(Operation Chromite)

 

작전인천상륙작전에대해 써볼게요.

 

우리민족 최대의 격변이었던 6.25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몰아붙히며 끝날것처럼

 

보였던 전쟁이 뒤집어지게 만든

 

역사적인 작전이 천상륙작전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수행하는 해병대>

 

 

6.25 전쟁이 개전된 이래 북한군

 

 국군을 낙동강 전선까지 밀어내는데 성공하나,

 

 이곳에서 전선이 고착되게 됩니다.

 

인민군은 길어진 보급로와 계속되는 전투,

 

그리고 연합군이 미칠듯이 쏟아부은 폭격으로

 

인해 정예부대의 전투력이

 

크게 고갈된 상태였습니다.

 

당장 1950년 9월 당시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에 투입한 병력은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서

 

강제 징집한 타칭 의용군 5만여 명을

 

 포함해서도 10만 명이 되지 않았어요.

 

 <그당시 낙동강 전선>

 



산을 저지선으로 삼을 경우

 

북한군이 샛길 등으로 산을 쉽게

 

넘어가서 아군을 역포위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국군과 UN군은

 

낙동강을 주요 저지선으로 삼았는데,

 

수비를 할 때는 적이 보이므로 유리하지만,

 

역공을 하려면 도강부터 해야

 

 하고 적에게 개활지에서

 

엄폐물 없이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문제점 때문에 반격도 쉽지 않았고,

 

북한군 역시 격심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공세의 기세를 늦추려 하지 않아 낙동강 전선의

 

국군 및 UN군은 마땅한 반격의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낙동강 방어선에서

 

 UN군이 반격을 시작할 경우, 38선까지

 

도달하는데만 10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며,

 

그 기간도 상당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올 지경이었다고합니다.

 

<맥아더장군> 

 

 

 맥아더장군은 전쟁 직후 한강에

 

이르러 전선을 시찰할 때 구상했었던

 

인천상륙작전을 추진합니다.

 

하지만  인천, 군산, 해주, 진남포,

 

원산, 주문진이 후보로 있었습니다.

 

전북 군산으로 상륙작전을

 

감행 할려고 했으나

 

 극동사령관겸 태평양 사령관이었던 멕아더 장군은

 

 적의 심장부에 가까운

 

인천상륙을 해야한다고 주장했어요.

 

작전계획을 확정하기 위한

 

최종 검토과정에서 유엔군 총사령부의

 

상부기관인 미합동참모본부는 인천상륙은

 

 큰 모험이라고 하면서 작전하기에 훨씬 안전하고

 

 또 성과가 확실시되는 군산으로

 

 상륙하라고 종용하였습니다.

 

 

 

 

유엔군 총사령부의 참모진과 해군 및

 

 해병대 장교들 사이의 중론은

 

인천상륙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인천은 세 지역 가운데에서 가장 멀고

 

깊은 곳이어서 작전을 지원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뿐만 아니라,

 

조수·간만·지형 등 자연조건도

 

 불리한 지역이었기 때문이었죠.

 

인천의 험준함

 

1.조수간만의 차가 최고 수치는 9m,

 

최소 수치도 7m라서 대한민국 2위의 수치이므로

 

밀물 때 상륙하지 않으면 상륙군이

 

수백미터 이상을 엄폐물도 없이

 

질주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

 

그리고 밀물 때 상륙한 상륙선은 다음

 

밀물이 올 때까지 좌초하므로 적의

 

 반격시 탈출하기도 힘들다.

 

2.썰물이 되면 나타나는 갯벌은 수백미터

 

이상의 폭과 길이를 가지고 있으며,

 

 도보 및 차량통행이 거의 불가능하다.

 

3.위 두 항을 이유로 선발대는 상륙 후

 

 최소 9시간 동안 어떠한

 

지원이나 보급도 받을 수 없다

 

4.상륙지 주변에 모래사장은 없다고 봐야 하고,

 

 보통은 돌로 쌓은 높은 방파제와

 

 축대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배타고 방파제에 다가가서 사닥다리 놓고

 

 올라가는 전근대적 공성전을 벌여야

 

 상륙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인데,

 

당연히 방어군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5.방어시설이 잘 갖추어진 항구를

 

직접 점령하는 것은 디에프 상륙작전

 

이후 거의 금기시된 일이며,

 

설령 상륙이 성공적이더라도 적과 치열한

 

시가전을 치르면서 인천을 점령해야

 

 하는 등 난제가 산적해 있다

 

<디에프상륙작전 아픔은 2년 후

 흔히 사상 최대의 작전이라 일컬어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안이함으로 인해 겪은 아픔은 너무 컸다>

 

6.썰물이 되면 선박이 통행할 수 있는

 

수로가 비어수로라고 불리는

 

좁은 통로에 국한되므로

 

상륙작전을 하는 선박 및 지원포격을 하는

 

 선박이 모두 좁은 단일 통로에 밀집한다.

 

이는 방어군의 해안포 입장에서는

 

그냥 고정표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비어수로의 유속이 매우

 

빨라서 주의하지 않으면 엇 하는 사이에

 

엉뚱한 곳으로 배가 떠내려가기 일쑤다.

 

 이렇게 인천이 상륙하기 힘든 특징이라는

 

특징은 거의 모두 보유하는 바람에

 

일부 참모는 과장삼아

 

"성공율은 1/5000도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했고 그들은 대안으로

 

전라북도 군산이나 경기도 평택군 포승면

 

앞바다로 장소 변경을 권했던겁니다.

 

그러나 맥아더 원수는 인천상륙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았았습니다.

 

그는 인천상륙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바로 그 불리한 점 때문에 공산군도

 

인천 일대에 대한 방어를 소홀히 할 것이며,

 

따라서 그 허점을 찔러 기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였던거죠.


또한, 인천은 서울로 들어가는 지름길이어서

 

 유엔군이 한번 경인지구를 장악하게 되면

 

 북한 공산군의 병참선을 끊어

 

버리는 결과가 될 것이므로,

 

가장 빠른 시일 안에 가장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하였어요.


미합동참모본부의 수뇌들은 인천상륙에

 

대한 우려를 떨치지 못하면서도,

 

현지 야전 지휘관에게 최대한의 작전 재량권을

 

 부여해 주는 미국 군부의 오랜 전통과,

 

대일전(對日戰)을 승리로 이끈

 

맥아더 원수에 대한 신망으로 인하여,

 

그의 계획을 더 이상 만류하지 못하고

 

 승인하게되었던겁니다.

 

1950년 가을 인천 해안에서 상륙작전이 가능한

 

 만조일은 9월 15일, 10월 11일, 11월 3일과

 

이 날짜를 포함한 전후 2~3일 뿐이었습니다.

 

10월은 기후관계상 상륙하기에 늦은 시기로서

 

가장 적절한 시기는 9월 15일로 결정되었습니다.

 

맥아더는 상륙작전의 기본 계획을 확정한 후

 

상륙부대의 편성에 착수하였어요.

 

 그리고 8월 26일 상륙작전을 담당하게 될

 

 제10군단을 공식적으로 편성하였습니다.

 

 미 제10군단의 주요 부대는

 

미 제1해병사단과 미 제7보병사단이었어요.

 

<서울시가지전투중인 제1해병사단 병사>

 

미 제7보병사단은 한국에 파병된

 

 다른 부대에 많은 장교 및 기간요원들을 차출당하여

 

그 병력이 부족하자 한국청년 8,000여 명을

 

선발하여 일본에서 훈련시킨 후 배치시켰습니다.

 

 이들이 바로 카투사(KATUSA)의 시초입니다.

 

 한편 국군으로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부대는 제1해병연대와 국군 제17연대입니다.

 

인천상륙에 앞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천지역에 대한 수로, 해안조건,

 

방파제 및 북한군 상황에 대한 정보수집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첩보대를 파견하여

 

인천연안에 대한 각 섬들과 해안을

 

정찰하여 관련 정보를 확보하였어요.

 

당시 인천지역에는 월미도에

 

제226독립육전연대 소속의 400여 명과

 

제918해안포연대로 하여금

 

방어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였으며,

 

 인천시에는 제87연대가

 

방어임무를 담당하고 있었어요.

 

 미 제10군단은 북한군의 인천 방어 병력을

 

약 1,000명으로 추산하고 있었습니다.

 

마오쩌둥은 북한에게 상륙작전이

 

 벌어질 가능성에 대해 경고한 일이 있으며

 

북한군은 인천에 유엔군이 상륙할 때를

 

대비해 서해안 방어사령부를 신설하고

 

육군 제18사단과 해군과 공군에서

 

차출한 육전대 병력 등으로 여러 방어용

 

신규 부대를 편성하는 한편 월미도에 해군 인원들로

 

구성된 방어진지를 만드는 등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낙동강 전선에서 9월 공세를 진행하면서

 

병력과 장비가 모자라자 이렇게 경기도 일대에

 

 준비해 둔 방어 부대까지 빼서 동원했고,

 

그 결과 9월 15일 인천 월미도에 한/미 해병대가

 

처음 상륙했을때 당장 인천 일대에서 방어에 임하고

 

있는 병력은 월미도의 해군 육전대 2개 중대 규모의 병력과

 

인천 시가지의 2개 대대 병력 정도밖에 없었던겁니다.

물론 북한도 이런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은 하고 있었는지,

 

 소련 해군의 도움을 받아서 주요 항구에

 

기뢰를 부설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인천에 기뢰를 부설하기 시작한 시점이

 

너무나 늦어서 몇 개 부설하지도 못했으며,

 

그나마 기뢰 부설함들이 들켜서 공격을 받고,

 

부설한 기뢰도 거의 다 발견돼서

 

조기에 제거되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하기에 앞서

 

상륙부대는 양동작전을 전개하였습니다.

 

 즉 9월 5일부터 북으로는 평양에서부터

 

남으로는 군산까지, 인천을 포함한 서해안의 상륙작전

 

 가능지역에 폭격을 실시하였어요.

 

9월 12일부터는 미국과 영국의 혼성

 

기습부대가 군산을 공격하고, 동해안 전대는 9월 14일과

 

15일 삼척 일대에 맹포격을 가하며

 

그렇게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는거였죠.

 

<함포사격중인 전함>.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제7합동기동부대는

 

 미 제7함대 세력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

 

261척의 함정과 미 제10군단 예하

 

한국군 2개 연대를 포함한 미군 2개 사단 등

 

총병력 7만여 명으로 구성된

 

지상군 부대를 통합 지휘하여 9월 15일

 

 제7합동기동부대 아서 듀이 스트러블 제독의

 

 지휘 아래 항공모함,

 

 구축함, 순양함 등 8개국 261척의 함정이

 

인천 앞바다에 집결하였습니다..

 

 

 

상륙작전은 2단계로 전개되었다.

 

제1단계는 월미도 점령이었고,

 

제2단계는 인천 해안의 교두보 확보였어요.

 

제1단계(월미도상륙) : 새벽 5시에 시작된

 

공격준비사격을하였고.

 

새벽5시 45분에는 미 제15항모부대의

 

F4U 콜세어 10대가 출격하여

 

해안가 지역에 폭격을 감행합니다. 

 

이어 미 제5해병연대의

 

3대대가 전차 9대를 앞세우고

 

월미도 전면에 상륙하였어요.

 

오전8시 월미도를 점령하고

 

오전 11시 15분 소월미도까지 점령을합니다.

 

 

<F4U 콜세어 >

 

월미도는 2시간만에 완전히 미군에 의해 장악하엿고.

 

미군은 부상 7명의 경미한 피해를 입었으며,

 

 인민군108명이 전사, 106명이 포로로 잡혔고,

 

네이팜탄 투하 및 기총소사로 민간인의 피해가 컸습니다.

 

 

 제2단계(레드비치상륙)

 

9월 15일 14시 30분부터 미 해군이

 

 다른 상륙 지점 중

 

하나였던 인천항(Red Beach)과

 

인천 남동부(Blue Beach)에

 

함포 사격을 감행합니다.

 

미군의 함포사격이 진행 중일 때

 

 미 육군 7사단, 대한민국 육군 제 17연대와

 

해병 제 1연대는 미군 상륙주정에

 

옮겨서 상륙을 대기하였습니다.

H-아워 8분 전에 제5연대전투단은 차량 및

 

병력상륙정을 타고 공격개시선을

 

넘어 레드 비치로 돌진했어요.

해병 전투기들이 연속적으로

 

급강하하면서 방파제 뒤편을 공격했습니다.

 

해변에 접근하는 차량 및 병력 상륙정들은

 

 만조에 편승할 수 있었고 적의 저항은

 

 심하지 않았다고합니다.

레드 비치에 상륙한 제5연대는

 

인천 시가지 소탕, 해안 경비를

 

맡으며 작전을 진행해갔습니다.

 

 벙커에서 저항하던 북한군에 맞서 불도저로

 

짓눌러 벙커를 땅 속으로 묻어버리는 효율적인 전략으로

 

 사상자 없이 빠르게 진격해갔습니다.

 

 북한군의 잔존병력이 몇 없었기에

 

허를 찌른 격이 되어서

 

인천항의 주요 감제고지 탈환에 성공하고

 

 인천항의 도크를 확보하였으며

 

북한군을 시가지 내부에 몰아넣어 모두 소탕하였습니다.

 

 

 

 대한민국 해병 제1연대가 상륙하는 것을

 

 끝으로 인천 상륙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유엔군과 국군은 경인가도 방면으로

 

 진출하면서 인천 상륙작전을 완벽히 성공시켰습니다.

이 때 총 지휘는 맥아더 장군이 했으며

 

국군은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이 했습니다.

 

<대한민국 초대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

 

손원일 제독은 단순히 기함에서만 지휘를

 

한 것이 아니라, 해병 전투복을 입고 소총을 들고

 

해병대와 함께 상륙, 서울 수복시까지

 

해병대원들과 일선에서 함께 했다고합니다.

 

 

 

이로 인해 그는, 서울에 입성한

 

국군 최선임자라는 기록을 세웠고.

 

'대한민국 국군은 서울을 수복했다'는

 

포고문 역시 그의 명의로 작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인천은 다음날 아침까지 완전히 해방되었으며,

 

북한군의 이렇다 할 반격은 전혀 없다시피 했습니다.

 

그 결과 인천에서 유엔군이 입은 손실은

 

전사 21명에 실종 1명, 부상 174명에 불과했어요.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인천상륙작전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버금가는 

 

성공적인 작전이엇습니다

 

이후 멕아더 장군은 한국과 중국의 국경선인

 

한만국경을 원자탄으로 공격하자라고

 

 했지만 미국의 트루먼대통령은 못 마당하여

 

멕아더 장군을 미국 본국으로 소환하게 됩니다

 

<트루먼대통령>

 

인천상륙 작전에는 미군을 주축으로

 

하여 지금은 월미도가 섬이 아니지만

 

 그당시는 섬이었으며 인천의 월미도에

 

상륙하여 인천을 탈환하고 

 

우리 해병대가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합니다.

 

 

그당시 인천을 향하여 수하늘이 검은 연기로

 

안보일 정도로 많은 함포 사격을 감행하고

 

 북한군의 저항을 별로 받지 않고

 

인천에 상륙했다라 합니다^^

 

6.25전쟁에 가장 위대했었던 작전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조금있으면 개봉하는 인천상륙작전 영화도 꼭 보러가고싶네요..

 

 

참고 및 출처:위키백과.두산백과.한국민족문화대박과.구글

 

핵무기는 핵분열이나 핵융합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에너지를 이용하여

 

사람의 목숨을 빼앗거나

 

각종 시설을 파괴하는 무기이며, 

 

잘못 이용하면 전장에서 사용되어

 

군인들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며

 

 각 대도시를 파괴하기도 하는

 

 아주 무서운 무기입니다..

 

현재 핵무기 보유를 공식적으로

 

공인받은 국가는 5개국이며,

 

사실상 핵무기 보유가 확실한 국가는 4개국,

 

핵무기를 포기한 나라도 4개국이 있습니다.


 

 

핵무기 보유를 공식적으로 공인받은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이 5개국이 있습니다.

이 5개국은 모두 최소 200기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중이고

 

실용적인 무기로 사용할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친 국가들이에요.

자그럼 이 5개 국가가 가진

 

핵을 알아보도록 하죠.


1. 미국


 

 

 

 

미국은 러시아 다음으로 많은 핵을

 

보유하고 있는 핵강국입니다.


 

 

미국은 이미 제2차 세계대전때

 

 인류 최초의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일본에게 딱 두발을 투하해

 

약 8만명이 사망하였습니다.

 

 

 

현재 미국은 총 74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2014년 기준 진짜 보유중인

 

핵탄두는 4650기이고 해체 예정

 

 퇴역 핵탄두는 2700여기입니다.


 

 

 

 

 

미국 핵무기의 중심은

 

미니트맨 III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미니트맨은 미국이 보유한

 

 유일한 지상발사형 ICBM이고,

 

현재 배치된건 1970년대에 개량된

 

 아주 오래 굴려지고 있는 무기입니다.


최고 속도 시속 24,100k, 항속 거리 13,000km에

 

달하고 만약 무기로 쓰인다면

 

 공격대상을 파멸로 만들수 있는

 

 어마어마한 무기입니다.


미국은 이 미니트맨을 450기 정도 보유하고

 

있는걸로 알고있습니다.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은 1972년

 

 러시아가 전략미사일 잠수함인 델타-I를

 

 취역시키자 이에 맞서 대항하기 위해 개발되었고,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잠수함이기도 했습니다. 


2개의 스팀터빈과 1개의 가압수로형 원자로가 탑재되있고,

 

트라이던트-2를 24발이나 적재할 수 있어요.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은 약 14척 정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트라이던트2 D-5 SLBM는 정확도가 높기 때문에,

 

 간단하게 보복 공격으로

 

 도시를 공격할 뿐만 아니라 적 ICBM의 사일로에

 

 대한 공격에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사거리는 약 6천해리고,

 

사실상 지구 어디든지 핵보복이 가능합니다


트라이던트2 D-5 SLBM는

 

약 336기 정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은 B-52 전략폭격기 76대, 

 

B-1 전략폭격기 93대, B-2

 

전략폭격기 18대를 보유하고 있어서

 

 핵폭격도 쉽게 가능합니다.


 

 

 

 

 

GBI, 사드, SM-3, ABM, 레이저 요격시스템등의

 

MD전력도 완벽구비되어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지스함 80여척, 공격핵잠 60여척, 핵항모 10여척 ,

 

 

 

 전투기 수천대에 탑재된 순항미사일,

 

정밀유도폭탄, 자유낙하폭탄

 

등으로 공격대상을 손쉽게 초토화시킬수있어요.



 

 


 

 

 

 

2. 러시아

 

 

 

 

 

러시아는 전세계에서 많은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핵강국입니다.

 

2014년 기준으로 약 8500개의 핵탄두를 보유중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소련시절부터 쌓아올려온

 

핵무기노하우를 가지고 있어요.


또한 각종 다양한 미사일, 전략폭격기,

 

핵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계 역사상 최대의 ICBM라 불리는

 

R-36도 58기도 배치되어있으며


 

 

 

 

 

사거리가 1만km에 달하는 UR-100N 136기도 배치되어 있습니다.


 

 

 

사거리가 1만 500km에 달하는

 

RT-2UTTH 차량탑재형도 144기나 보유중입니다.


 

 

 

 

소련 붕괴후 러시아가 최초로

 

개발한 ICBM인 RT-2UTTKh도

 

사거리가 1만 1천Km나 된다고합니다.

 

그 외에 RT-2UTTH 78기(사일로랑 차량탑재 합친양)랑 

 

RS-24 18기 등을 보유하고 있고,


러시아가 보유한 ICBM의 수는

 

434기에 달한다고 합니다.


 

 


 

 

 

또한 SLBM와 원잠도 갖추고 있는데,

 

러시아가 보유한 SLBM의 양은

 

204기라고 합니다.


보레이급 원잠은 SLBM 12기를

 

탑재할수 있을 정도이고, 2척이 건조되어있습니다.


 

 

 

 

지구의 절반을 날려버릴수도 있는

 

세계 최대의 잠수함인 타이푼급도

 

 당연히 탑재가 가능한데,

 

20기나 탑재가 가능합니다.


 

 

 

델타4급, 델타3급 핵잠도

 

각각 12기씩 탑재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전략폭격기는 TU-160 블랙잭 폭격기 14대, 

 

TU-22 백파이어 폭격기 93대,

 

 

TU-95 베어 폭격기 63대를 보유하고 있어

 

 핵폭격이 가능합니다.


 

 

 

 

A-135라는 탄도 미사일 방어시스템도 갖추고 있고,

지대공 미사일 53T6 63기,

 

51T6 16기를 보유중입니다.


이외에도 러시아군은 공격 핵잠수함 수십척,

 

전투기 수천대에 탑재된 순항미사일,

 

정밀유도폭탄, 자유낙하폭탄 등을

 

통해 핵공격이 가능합니다.


 

 

 

 

3. 중국

 

 

중국은 핵탄두 250개로 UN 상임이사국 중에서는

 

 영국에 이어 꼴지에서 두번째에요.


중국은 1962년부터 개발을 추진했고,

 

2년만인 1964년 고비사막에서 핵실험을 성공했습니다.

 

 1967년에는 수소폭탄의 개발에도 성공했어요,

 

 

 

 

중국은 둥펑 미사일 DF-31A 30기와

 

 DF-5 24기를 보유하고 있고

ICBM은 총 54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핵잠과 SLBM으로는 094형 진급 핵잠수함 4척과

 

 XIA급 핵잠수함 1척, JL-2 SLBM 60기가 있어요.

 

(여담으로,2009년에 JL-2를 수중에서 발사했는데

 

수면을 벗어난 직후 점화가 안 되어

 

물속에 있던 발사 잠수함 위로 떨어져서 미사일을 맞은

 

 골프급 잠수함이 침몰할 뻔한 사건도 있습니다)

 

또한 IRBM으로는 DF-3A (사거리 3000km) 20기, 

 

DF-4 (사거리 5400km) 20기,

 

 DF-21 (사거리 1750km) 95기를 보유하고 있고

SRBM, 순항미사일으로는 DF-15 (사거리 600km) 400기,

 

 DF-11 (사거리 300km) 750기, 

 

CJ-10 (사거리 1500km) 500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4. 영국

 

 

 

영국은 UN 상임이사국 5개국 중

 

가장 적은 핵을 보유하고 있는데,

 

225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영국은 1946년부터 독자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고, 

 

1952년 호주 몬테벨로 섬에서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고 1957년에

 

수소폭탄의 실험에 성공하였습니다.

 

 

우선 핵잠으로는 영국 유일

 

핵잠인 뱅가드급 4척이 있어요


수중 배수량은 17,560톤이고, 

 

10개의 핵탄두를 장착한 트라이던트

 

미사일 16발을 탑재하여,

 

총 160개의 핵탄두 발사능력을 갖췄습니다.

 

 

 

영국의 유일한 핵전력은 트라이던트2 D-5 SLBM 뿐인데

 

총 64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5. 프랑스

 

 

프랑스는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3번째로 많은 핵을 보유중입니다..


프랑스는 300기의 핵탄두를 보유중이라고 해요.


드골은 1945년 10월, 핵폭탄의

 

개발을 비밀리에 명했고,

 

15년뒤인 1960년 2월 알제리에서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핵보유국이 되었어요!

 

 

프랑스는 르트리옹팡급 핵잠 4척과

 

 M45/M51 SLBM 64기를 보유하고 있어요

 

 

샤를 드 골급 핵항모도 1척 보유하고 있으며


 

ASMP-A 공대지 순항미사일 84기를

 

보유중이라고 합니다.



 

 UN 상임이사국 5개국은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핵무기 보유국이고 핵을 실용적인

 

무기로 만든 핵강국이에요

.

 다른 핵개발국은 이들처럼 아직 핵무기를

 

완벽하게 실용적으로 만들지 못한다고합니다.


<참고사진>

 

 

출처 : 구글.나무위키.네이버캐스트 

 

 

 

안녕하세요 오늘은 2016년 세계 군사력 순위

 

에대해 알아볼꺼에요..

 

일단 전체적순위(육군.해군.공군)

 

살펴보려구하는데요 ...

 

자료는 미국의 군사력 평가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 ( GFP ) 가

 

 집계한 국가별 군사력 순위로

 

1위부터 4위까지는 2013년부터 쭉

 

변함없이 그대로라고합니다.

 

 

 

 

자자 후딱 시작할게요 ! 재밌게 봐주셧으면 좋겟어요.

 

 

 

 

2016년 세계 군사력 순위

 

1위 : United States of America (미국)

 

 

경제력 1위, 육군 1위. 해군1위. 공군1위 ....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정말

 

초강대국 미국이 당연히 1위입니다...

 

 

<전세계 공군력의 54%라는 미국의 힘>

 

<우주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미국 전투기 저장구역>

 

 

 

 

 

 

2위 : Russia (러시아)

 

소련이 붕괴한 이후 러시아의 군사력이

 

경제력의 저하와 함께 상당히

 

 약화되었다고하지만

 

소련시절부터 축적해온 각종

 

군사관련 자료들과 노하우드을 통해서

 

여전히 군사강국

 

2위자리를 지키고있어요^^

 

 

 

2000년대 중후반 들어오면서 군비증강에

 

다시 박차를 가하는 모습을보여주고있구요

 

핵전력에서는 미국과 1~2위를

 

 다투는 강대국이죠.

 

인구수와 경제력,궁방비등에 있어서

 

 중국에게 압도적으로 밀리거나 크게밀리기에

 

향후 또는 장기적으로 2위 자리를

 

중국에게 넘겨줄꺼에요..

 

 

하지만 국방개혁 2020을 통해서

 

3위 이상은 장기간 유지할것으로 보여요

 

 

 

 

 

 

3위 : China (중국)

 

 

 

1980년대부터 군현대화를 추진해왔었구요

 

1990년대부터 더욱 큰폭으로

 

 추진하기시직한 중국입니다.

 

2010년에 들어서 세계2위의 경제대국으로

 

 떠오르면서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국방비를 쏟아내고있는

 

강대국으로 거듭났어요...

 

수많은 연기인력과 경제력및

 

국방비를 통해서 전체적인 군사력과

 

군사과학기술이 생각보다 빠르고

 

강하게 성장되어가고있습니다..

 

 

 

모든 변수를 고려하더라도 현재의 중국은

 

 기존강대국수준을 넘어서는

 

초강대국 반열에 들어설것으로 보여집니다...

 

 

 

 

 

 

 

 

4위 : India (인도)

 

 

많은 사람들이 인도가 못사는

 

나라라고 생각하시는분들이 많은데요...

 

실제로 인도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15년기준 1,600달러뿐이 되지않는데요...

 

빈곤층도 워낙많아서

 

맞는 생각일수도 있어요...

 

그런데 인도는 2015년 기준 세계 명목 GDP 7위,

 

 구매평가력기준 GDP 4위,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국방비 등을

 

고려해보면 신흥강대국인것은 분명합니다..

 

 

 

인도는 파키스탄과 더불어 핵탄두를 보유한

 

신흥강대국이며 아시아에서 오랫동안 항공모함을

 

운용해온 나라에요.. 또한 아시아 국가들중에서는

 

 중국외에 원자력 잠수함을 보유하고있는

 

유일한 국가입니다..

 

 

 

 

 

 

 

 

5위 : France (프랑스)

 

프랑스는 군비감축을 진행하는 추세이기하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축적해온

 

군사관련 기술과 노하우가 뛰어납니다.

 

 

 

경제력 또한 상위 10위권 안에들어가고 공격원잠과

 

략원잠을 보유하고있는

 

군사력강국입니다^^

 

 

 

 

 

 

6위 : United Kingdom (영국)

 

영국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군비감축을 진행하는 추세에요..

 

영국도 무시못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갖추고있고 경제력도 받쳐주고있어요

 

 

 

미국에 영원한 형제의 국가 영국이

 

군사력순위 6위에 올라있습니다.

 

 

 

 

7위 : Japan (일본)

 

일본이 2016년에 7위로 뛰어올랐는데요..

 

일본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전범국가이지만

 

 군대를 보유하고있는 독일과는

 

달리 군대에 준하는 자위대를 보유하고있어요.

 

 

현재 일본은 세계 5위권 내에 들어가는

 

막강한 해군력을 보유하고있구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핵탄두를

 

얼마든지 제조할수있는 강대국이죠..

 

 

 

 

 

8위 : Turkey (터키)

 

 

터키는 특별한 군사기술이나 자본력같은건

 

없지만 무기를 엄청 수입하는 나라에요..

 

그덕분에 군사력이 강력하다는거죠...

 

 

이스라엘과 우리나라보다

 

위에있다는게 조금 놀랍긴합니다...

 

 

 

 

 

9위 : Germany (독일)

 

일본이나 터키보다 군사기술이

 

많이 앞선 독일이 군사력순위가

 

더 낮다는게 좀 의아하긴합니다...

 

독일은 세계 4위 경제대국이구요 높은

 

군사기술을 보유하고있는 나라입니다.

 

 

 

 

 

 

10위 : Italy (이탈리아)

 

 

이탈리아가 왜 우리나라보다

 

높은줄모르겠지만 이렇게 나왔네요..ㅎㅎ

 

 

 

 

 

 

 

이밖에 저희나라는 11위

 

북한이 25위에 올라와있는게 눈에 띄네요^^

 

 

출처 및 참고자료: GFP . 나무위키. 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