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AH-64 아파치란?


 

 

일단 아파치의 역사부터 알아보고갈게요

 

때는 베트남전 당시로 올라가요

 

당시에는 베트남전 전까지는

 

미 육군은 공격헬기에

 

관해 관심은 있었으나 필요성도

 

 못 느꼈으며 미 공군의 반대로

 

 인해 결국 무산되었어요.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베트남전

 

당시에는 보병이 뛰어다니는 일이 많아서

 

정찰헬기가 내려주면 알아서 작전 수행한 뒤

 

상부에 무전 날려서

 

어디 어디를 점령했다고 말하는 게

 

당시의 일반적인 전략이었어요


 


 

 

 

 

하지만 여기서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헬리콥터는 착륙할 때가 가장 취약해서,

 

숲에 있던 베트콩들은 헬리콥터가

 

착륙하는 사이에 공격한 뒤,

 

숲 안에서 교전하는 전술을 썼어요

 

이에 대해 미군은 정찰헬기인 UH-1 이로쿼이 (휴이)를

 

공격형으로 개량한 UH-1C를 써요

 

<UH-1>


 

<UH-1C>

 

UH-1C는 장시간 체공을 위해

 

연료탱크의 용량을 크게 늘리고,

 

 피탄했을 경우를 대비해

 

이중 유압계통을 사용했어요.

 

 물론 엔진도 바꿨고,하지만

 

본래 정찰헬기로 쓰이던 놈이니까

 

 방어력은 물론이고 무기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면 느려질 수밖에 없죠,

 

 더군다나 보병과 같이 다니면서 비교적 근거리에서

 

 교전하는 일이 잦다 보니 격추율이 높았어요

 

(물론 위력적이었지만 기체 형상의 문제로

무기사용 시 반동과 기체에도 무리가 많이 갔죠)


 

 

결국 미 육군은 공군의 반대로 무산되었던

 

 공격헬기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합니다


이때, 공격헬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벨 항공사와,

 

 록히드 마틴의 경쟁이 일어났어요.


우선 첫번째 경쟁에서는

 

록히드 마틴의 승리했습니다.

 

 

 

 

 


AH-56 샤이엔

 

 

개발 시작은 1965년 첫 비행은

 

1967년 9월 21일이었어요

 

미 육군은 "오 괜찮은데? 너, 나와 계약해서

 

이걸 양산해라!"라며 양산계획을 잡아요

 

하지만 양산계획이 잡힌 뒤에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해서 결국 계획은 취소됐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긴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수송헬기와의 운용 문제였어요

 

 록히드 마틴은 현대 공격헬기와 같이

 

강한 화력으로 적을 압도한 뒤 빠져나가는

 

 전술을 택했었어요,

 

미 육군은 수송헬기와 운용 가능한 호위용이었습니다.)

 

 

 

 



결국, AH-56이 취소된 뒤 미 육군이

 

눈독 들인 건 벨 사가 개발했던 AH-1이었어요

 

AH-1은 딱히 별 검증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왜냐구요?

 

그 이유는 AH-1은 양산 계획이 잡힌 뒤

 

 현장에 투입됐기 때문이에요

(AH-56이 양산될 때까지 임시로 쓰이는 기체 취급이었죠)

 

하지만 양산 계획이 취소되자 신뢰성도 좋고,

 

 성능도 좋은 AH-1을 그 자리에서 바로 채택합니다.

 

 



 

 

AH-1 코브라


 

 

 

이후 AH-1, 코브라는 개발된 뒤

 

전장에서 수 많은 베트콩들을 죽이고,

 

 구정 공세에서 MACV(당시 미군의 특수부대)

 

본부 방어에 많은 도움을 줬어요


베트남전 이후에도 많은 공을 세웠는데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전쟁이나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에서 쓰였어요

 

각 전쟁 당시의 교환비는 당연히 코브라가 우세!


심지어 시리아군과의 교전 당시

 

기갑차량과의 교환비가 1:80이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런 다양한 전투로 인정받으면서

 

두고두고 업그레이드 해가며

 

 다양한 나라에서 쓰고있어요


아무튼, AH-1은 각종 업그레이드를

 

받으면서 살고 있지만

 

AH-64 아파치는 1981년에야 맥도널드-더글러스 사에

 

 의해 시제기가 만들어져서 첫 비행을 시작합니다

 

첫 실전은 1989년 12월 20일

 

파나마 침공 작전에서 겪었어요.

 

 

이후 1990년 8월 2일 걸프전에서 

 

500대의 전차,500대의 장갑차와

 

대공포 기지 30곳,포병기지 120곳을 쓸어버려요

 

이런 대단한 성능을 본 미군은

 

 감탄하고 또 감탄하였어

 

하지만 이런 대단한 성능에도

 

부족한 점이 있는 마련이죠

 

하지만 미군은 "나의 강력한 아파치는 약해선 안 된다!"라며

 

 개조를 하게됩니다

 

이후 생겨난 결과물이 AH-64D, 롱보우 아파치에요


 

 

 

 

 

저 위에 초코파이처럼 생긴 게 레이더에요

 

저 레이더는 약 8km 정도를 탐지할 수 있습니다.

 

사실 A형(기본형)과 D형의 차이점은

 

 레이더의 유무 차이에요

 

하지만 이 레이더의 유무 차이는

 

 헌터-킬러 전술의 아주 뛰어난 강점이 될 수 있어요

 (헌터-표적 탐지역할, 킬러-표적 사살역할)

 

그리고 무장 중에 하나인

 

헬파이어 미사일과도 호환이 돼서 동시에

 

16개를 조준할 수 있기 때문에 순간 화력이

 

뛰어난 공격헬기입니다.


무장 이야기가 나왔으니 아파치의 무장은

 


30 × 113mm 체인건 1문 (탄환 약 1200발 적재가능)

 

히드라 70 혹은 CVR7 공대지 로켓

 

AGM-114 헬파이어, AGM-65 메버릭, AIM-92 스팅어,

 

 AIM-9 사이드와인더 혼용


이렇게 사용해요!

 

이상 전투헬기 아파치에 대해 알아봤어요^^

 


 

6.25전쟁 발발직후 우리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던이유가

 

 바로 북한의 전차부대때문이라는건 전쟁에 관심없는 많은분들도 알고있으시죠.

 

 그럼 오늘은 이토록 "무서웠던" 북한군 전차의 현재 운용수량, 제원등을 한번 알아볼게요 

 

 


먼저, 북한군 전차는 크게 4종류가있어요. T55,천마호,폭풍호,선군호입니다.

 

이들의 수량은 총 4000여대 가량으로, 국군의 전차수량보다 1700대정도 많아요.

 

하지만 지금부터 이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큰 위협이 되지않는다는걸 알수있게될거에요!.

 

 


T55

 

 

북한의 양적주력, 2000여대 가량을 운용하고있어요. 

 

기본적으로 1947년도부터 생산된 1세대 전차이고, 소련이 북한한테 대량으로 공여해준거에요.

 

100mm포를 장착하고있어서 개발당시에는 서방권 전차들을 보는족족 격파시킬수있을줄알았으나,

 

실상은 서방권의 90mm포에비해 명중률이 매우떨어지고, 위력도 별 차이가 없었고,

 

 방호력도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라서, 몇십년도 전부터 동네북취급당하고있어요.

 

 

전면장갑은 200mm 정도로, 한국군의 K21의 40mm기관포한테도 전면장갑이 관통당합니다

 

 

 

 

-Type59

 

중국이 T55를 베껴서 만든전차입니다. 기본적인 사항은 T55랑 동일한데,

 

야간작전용 적외선 서치라이트와 주포안정장치가 빠져있어서

 

 쓰레기취급받는 T55보다도 더 못한전차에요.

 

북한은 이 전차를 약 175대 보유중인걸로 추정됩니다.

 

 

 

 

 

천마호(T-62)

 

 


 

 

<천마호 마형>

 

천마호는 북한이 소련의 T-62전차를 카피,개량한 전차에요.

 

북한군 최초의 2세대 전차이고, 1000대이상 운용중이라 개량형도 많은데,

 

 가~바 형까지 개량형이 있어요. 천마호 가 형은 T-62랑 동일하고,

 

 

<천마호 가형> 

 

 

나 형부터는 점차 개량되어 마지막 마 형정도되면 본판인 T62모습을 찾기힘들정도입니다.

 

그러나, 원판불변의 법칙으로 여전히 별로 성능이 좋지못해요.

 

 

 

천마호는 115mm활강포와 14.5mm KPVT 대공기관총, 7.62mm PKT 동축기관총을 장착하고있습니다.

 

 대공기관총은 특이하게 다른 동구권 국가들처럼 12.7mm를 쓰지않고 14.5mm를 사용하는데,

 

이는 북한의 낙후된 대공전력때문으로 추정되고있어요.

 

<천마호 바형>

 

 

 

 대공화기가 충분치않으니, 전차에도 대구경 기관총을 달아서 헬리콥터 등에

 

대해서 최소한의 생존성을 보장할수있게만들겠다는 노력인거죠. 


천마호의 방호력은 개량형마다 다르지만, 240-350정도라서,

 

초기형의 경우 한국군 M48a4k패튼의 90mm 포에도 생존성을 보장못해요.

 

우리국군에선 낡아서 거의다  퇴역한 전차가 북괴군에선 1000대이상 운용하는전차보다

 

비슷하거나 좋다고해요 !

 

 

 

폭풍호

 

 

 

폭풍호는 천마호 개량형을 바탕으로만들어진 전차이고, 약 500여대가 운용중인 북한군에서 비교적 신형이에요.

 

물론 2세대 전차라는점은 변함없어요.

 

대충보면 천마호 마 형과는 구별이 잘 되지않을수도있는데, 이녀석은 차체가 달라요.

 

기존 T62계열의 차체를 바탕으로 길이를 좀더 늘려서,

 

좀더많은 하중을 버틸수있게하고 공간도 넓혀놓았습니다.

 

천마호는 보기륜이 5개, 이녀석은 보기륜(바퀴)이 6개구요. 거기다가

 

포탑 뒤쪽이 좀더 튀어나와서 구별이 가능해요.

 

거기다가 장갑재와 사격통제장비 등을 개량하여 좀더 좋아졌다하는데

 

북한군 전차의 정보는 워낙 제한적이라 자세하게 뭐가 어떻게 좋아졌는지는 확실치않아요.


2000년대 들어서 생산된 이녀석은 115mm활강포와 14.5mm KPVT 대공기관총,

 

 7.62mm PKT 동축기관총을 장착하고있습니다. 천마호와 별다를게 없어요.

 

2000년대 생산된 전차와 1960년대 생산된 전차가 화력에서 별 차이없다는거에요

 

무게는 39t가량, 최고속력은 60km. 엔진은 800마력 이하로 추정되고, 방호력은 450mm 이하로 알려져있어요.

 

현대 전차와 비해서는 매우 뒤떨어지는 방호력입니다. 

 

 

M48/K1 전차의 105mm탄에 구멍이송송나는거죠

 

폭풍호도 마찬가지로 개량형이있는데

 

기존 폭풍호에다가 SA-16 이글라 지대공 미사일과 9M111 (AT-4) 대전차 미사일 2 개를 얹었어요.

 

 이글라 지대공 미사일도 14.5mm기관총과 마찬가지로 부족한 북한의 대공전력을

 

조금이나마 보완하기위해서 올려놓은거고, AT-4대전차미사일도 영 좋지않은 주포의

 

화력을 보조하기위해서 설치한거에요. 돈이없어서 어쩔수없이 하는거죠.


 

 

선군호

 

 

 북한군의 최신전차인 선군호입니다. 

최신전차라고 해봤자 T62계열이고, 2.5세대에요

약 4-500여대가 배치되어있는것으로 알려져있고

북한군이 가지고있는전차중에 가장 성능이 좋은 전차에요

포탑이 기존 전차들에 비해 대형화되어서 방호력과 거주성이 향상된것으로 추정되고,

차체전면 글라시스에 반응장갑을 붙여서 방호력을 증가시켰어요.

 그러나, 포탑이 대형화된것에 비해 무게는 5톤정도밖에 증가하지않은 44t이라,

 방호력은 크게 향상되지않은것같아요. 전자장비쪽 개량에 중점을 두고 개발한듯합니다.


포는 115mm냐 125mm냐 많은 논란이있었는데, 아직도 확정된 바가 없어요.

신형탄을 사용해서 포탑이 커진듯보여요

그러나 115mm던 125mm던 국군전차에 큰 타격을 주지못하는건 변함없어요^^


스펙은 115mm활강포(혹은 125mm활강포), 14.5mm KPVT대공기관총, 7.62mm

PKT동축기관총, SA-16이글라 지대공 미사일이에요. 50년전이랑 무장이 변함없어요.;;

방호력은 450mm정도로 추정되고 최고속도는 70km/h , 엔진은 1000마력 정도로

폭풍호와 비교했을때 기동성이 상승했어요.

북한군의 최신전차라 하지만 대한민국 국군의 K1전차보다도 못한성능이죠..


이 선군호도 개량형이있는데, 반응장갑을 포탑전면에 장착한 형태에요.

 북한기술력으로 미루어 보았을때, 기껏해야 보병의 대전차 화기에만 작동하는

기초적인 수준의 반응장갑으로 추정됩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북괴군의 전차는 국군의 K1/K1a1/K2의 전면장갑을 뚫을수가없어요.

그러나 모든 국군의 전차는북한군 전차를 쉽게 뚫어버릴수있죠.

 

 

 

 게다가 북한군 전차의 사격통제장비 등은

한국군에비해 한참 뒤떨어지는수준이고, 엔진기술도 매우 뒤처져있어요. 

국군의 M48계열은 북괴의 115mm포에 맞으면 관통이될수도있지만,

 곧 퇴역시킬예정이라 괜찮아요. 국군의 숫적 주력은 K1/K1a1시리즈이고

이 전차들은 북괴군 전차에 비해 몇십배는 뛰어난 전차들이니, 걱정안해도됩니다!!


 

 

 



 


 

 

 

 

 

 

정말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MP5 기관단총에대해서

 

 알아보려고합니다.

 

전세계 특수부대의 상징, MP5 기관단총을 알아보죠

 

 


 

 

 

MP5A2 (Maschinenpistole 5)

 

 

 

종류 : 기관단총

 

개발국가 : 독일 (H&K 社)

 

사용국가 :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한국, 일본, 대만 외 상당수 국가

 

설계생산시기 : 1964년~66년

 

무게 : 2.54 Kg

 

길이 : 680mm

 

사용탄환 : 9 x 19mm Parabellum

 

장탄 수 : 15발 / 30발 박스탄창

 

유효사거리 : 200m

 

발사 속도 : 분당 800발

종류는 기관단총으로 "권총탄 등

 

약한 탄환을 연발로 발사하는

 

가벼운 무게를 가진 총기" 이다.

 

 

1966년, 생산이 시작된 이래 120여 종에

 

이르는 파생형이 존재하여

 

정확한 무게와 길이를 제시하기 힘든데

 

평균적으로 2.5 ~3 Kg 의 무게와 680~ 700mm의

 

 길이를 가지고 있다.


 

 

Maschinenpistole 5


독일어로 기관단총 5이며 제작사인

 

H&K 社에서 기관단총을 5로 표기하는 관계로

 

처음에는 HK54 (5: 기관단총, 4: 9mm 권총탄) 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되었으나,

 

MP5 기관단총이라 명명되었다.

 

 

전세계에 수많은 기관단총들이 존재하지만

 

MP5 기관단총은 현대 기관단총 중

 

가장 널리 알려지고 성공한 원조이며,

 

지금까지도 수많은 국가의 군대,

 

경찰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Heckler & Koch (H&K)

 

 

헤클러 - 코흐 社 , 독일의 총기회사이다.

 

세계 3대 돌격소총이라 불리우는

 

독일군의 前 제식소총 G3 소총,

 

현 독일군 제식소총 G36소총과

 

전세계의 특수부대에서 사용하는 MP5 기관단총 등을 설계,

 

제작한 굉장히 유명한 회사이다.


 

 

9 x 19mm Parabellum

 

 

MP5 기관단총에서 사용되는 9mm 권총탄으로,

 

베레타, 글록 등 상당수 권총에서 사용된다.

 

 

전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흔한 권총탄으로서

 

크기가 작고 공격력, 사거리, 관통력이 낮지만

 

 명중율이 높은 탄환이다.


 

 

 

 

MP18 기관단총

 

1차 세계대전 말기에 독일군에 의해

 

개발된 세계최초의 기관단총


 

 

MP40 기관단총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독일군의 기관단총

 

 

독일은 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8년,

 

세계최초로 기관단총을 개발한 이래

 

2차 세계대전에서는 유명한 MP40 기관단총을

 

개발하여 사용하였다


 

(영화 <미스터&미세스 스미스> 中에서)

 

 

당시의 기관단총은 오픈볼트 방식을

 

채용한 관계로 초탄 명중율이 상당히 낮았다.

 

(오픈볼트 : 방아쇠를 당기면 노리쇠가 전진해

 

약실에 탄을 밀어 넣고 폐쇄된 뒤

 

격발해서 발사하는 방식이다.

 

즉, 발사준비 상태에 약실이 개방되어 있고,

 

방아쇠를 당기면 노리쇠가 전진하며

 

 탄환의 뇌관을 쳐서, 격발시킨다.

 

 

오픈볼트 방식은 공이나 용수철 등

 

부품이 따로 필요하지 않아 비용이

 

 절감되고 무게가 가벼우며,

 

무엇보다도 빠른 연사가 가능하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노리쇠가

 

 움직이기 때문에 명중율은 낮다.

 


 

 

(영화 <D-WAR> 中에서)

 

 

반대로 클로즈드 볼트 방식은,

 

 오픈볼트 방식과는 반대로 발사준비 상태에

 

 약실이 닫혀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면 노리쇠가 움직이는 것이

 

 아닌 공이만 움직여서 탄의 뇌관을 쳐서, 발사한다.

 

(M16 소총이나 K2 소총을 분해

 

조립하면 나오는 그 공이다.

 

 

따라서 내부부품이 적게 움직여

 

초탄명중율이 우수하지만,

 

오픈볼트 방식보다는 복잡하고 부품이 많아져

 

 가격과 무게가 올라간다.


 

 

1960년대, 서독의 국경경비대 (GSG-9)와

 

 경찰의 기관단총을 개발하게 된 H&K 社는

 

기존의 오픈볼트 방식에서 클로즈드 방식을

 

 적용한 기관단총을 설계한다.

 

 

전투에서 사용하기 위한 군용 기관단총이 아닌,

 

 경찰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초탄 명중율이 높은 클로즈드 방식을 채용한 것이다.


 

 

G3A3 소총

 

M16, AK47 소총과 더불어 세계 3대 소총으로

 

 유명한 독일군의 前 제식소총

 

 

또한 H&K 社는 자사가 만든 G3 소총의 장점 몇가지를

 

 가져와 MP5 소총 개발에 접목시켰는데,

 

롤러 지연식 블로우백 시스템과 가늠자,

 

가늠쇠 부분이 채택되어 그대로 적용되었다.

 

 

1966년, 마침내 기관단총 역사에 엄청난 획을

 

 그은 대작 기관단총이 탄생했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서독 국경경비대

 

(GSG-9)와 경찰에 채용되었지만,

 

비싼 가격으로 인해 그리스, 이란 등

 

일부 국가의 경찰 또는 경비 목적으로

 

소수가 판매되었다.

 

 

더군다나 자동소총이 실용화되면서

 

기관단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각국의 군대에서는

 

오히려 "그런거 왜 만드는거야?"

 

라는 분위기까지 존재했다.

 

 

그러나 1970년대, 두 차례의 사건으로 인해

 

MP5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다.


 

 

 

루프트한자 여객기 납치 사건 (1977)

 

 

1977년 10월 13일,

 

스페인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던

 

루프트한자 181편 여객기가 팔레스타인

 

인민 해방전선 공작원 4명에 의해 납치된다.

 

기장을 살해하고 부기장을 시켜

 

최종적으로 소말리아 모가디슈에 착륙하였는데,

 

독일에서 파견한 국경경비대 GSG-9 특수부대에 의해

 

3명이 사망, 1명이 생포되며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난다.


 

 

<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귀국한 독일 GSG-9 특수부대원들의 모습>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대테러부대의

 

필요성을 실감하여 델타포스 (Delta Force) 를

 

창설하게 되었고,

 

덩달아 GSG-9 부대원들이 사용한 정체불명의

 

기관단총 또한 주목받게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아 그런 총이 있었어?"

 

정도의 분위기였다.


 

 

 

이란 대사관 인질구출 작전 (1980)

 

SAS's Operatre Nimrode (SAS 님로드 구출작전)

 

 

1980년 4월 30일 오전 11시 20분,

 

런던의 이란대사관에 '아라비스탄해방 민주혁명운동'

 

극렬분자 6명이 총기를 들고 난입하여

 

수감된 아라비스탄 테러리스트 91명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이란 대사관에는 26명의 인질이 있었으며

 

작전개시 전, 인질의 40%가 사망할 수 있다는

 

 조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의 특수부대 SAS는 불과 11분만에

 

 테러리스트 5명을 사살, 1명을 생포하였고

 

 인질 1명이 사망했지만

 

SAS 특수부대의 피해는 부상자 몇 뿐이었다.

 

이 작전은 "인질구출 작전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손꼽히며 대대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리고 SAS 특수부대가 사용한 MP5 기관단총

 

또한 엄청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담으로 SAS 특수부대는

 

얼마 전까지 자국의 스털링 기관단총을 사용하였는데,

 

독일 GSG-9의 루프트한자 여객기 납치사건에서

 

 MP5를 보고 삘을 받아 제식채용하여 쓰고 있던 터였다.

 

결국 독일산 기관단총을 독일 특수부대가

 

광고한 셈이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란 대사관 인질구출 작전의 성공으로

 

전세계 특수부대에서는 MP5 기관단총

 

지대한 관심을 표시했고,

 

MP5 기관단총은 말그대로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세계최고의 특수부대들이

 

큰 사건에서 성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이제보니 인질구출 작전에서

 

이만한 물건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얼마안가 전세계 상당수의 특수부대는

 

 이미 MP5 기관단총을 채용했거나,

 

채용 예정이거나 둘 중 하나인 지경에 이르렀고

 

MP5 기관단총은 "특수부대 기관단총의 대명사"

 

로 알려지게 되었다.


 

 

MP5 N 기관단총

 

 

미군에서도 이러한 물건을 놓칠리 없었고

 

오히려 네이비씰 등지에서 자기들의 요구에

 

맞춰 주문생산까지 하였다.

 

이 물건들이 MP5N으로 알려진

 

 네이비씰의 기관단총이다.


 

 

영화 <다크나이트> 中에서

 

 

MP5 기관단총은 전세계의 특수부대에서

 

 사용하는 기관단총으로,

 

주로 경찰 특수부대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경찰에서 주로 기관단총을 쓰는 주된

 

이유는 2가지를 들 수 있다.


 

 

영화 <다크나이트> 中에서

 

 

1. 강한 화력이 필요하지 않다.

 

앞서 언급한대로 기관단총은

 

권총탄을 주로 쓰는 화기이기 때문에

 

소총에 비해 공격력도 낮고 사거리도 낮으며,

 

 관통력 또한 낮다.

 

 

주로 도심이나 좁은 건물 내에서

 

전투하는 경찰의 특성상

 

강한 화력을 가진 무기가 필요하지 않고

 

명중율이 높아야 한다.


 


 

2. 인질구출 작전에 투입될 경우가 잦다.

 

경찰특공대의 주된 임무 중 하나가

 

바로 인질구출 작전이다.

 

 

이 경우 소수의 범죄자와 다수의 인질,

 

시민들 사이에서

 

정확히 범죄자를 제압해야한다.

 

따라서 공격력과 관통력이 낮고 명중율이 높은

 

기관단총을 사용한다.

 

 

왜냐하면 일반 소총을 사용할 경우,

 

 범죄자를 관통하여

 

뒤에 있는 인질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미국 SWAT, SEAL과

 

독일 GSG-9, 영국 SAS 등 세계적인

 

특수부대에서 사용중이며

 

한국의 특전사 (특수전 사령부) 707특임대와

 

경찰특공대 등지에서 사용하고 있다.

 

 

 

 

한국 특전사 부대와 경찰특공대를

 

비롯한 다수의 특수부대에서

 

MP5 기관단총을 사용중이다.


 

 

2011년, 소말리아 해상에서 납치된

 

"삼호 주얼리호"를 구출하기 위한

 

"아덴만 여명작전" 에서

 

 한국 UDT/SEAL 에서 MP5 기관단총을

 

 사용하였다.


 

 

<MP5 기관단총을 사용하는

전세계 특수부대의 모습이다.>

 

그러나 MP5 기관단총의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테러, 인질구출의 목적으로 사용된

 

9mm 기관단총은 너무 공격력이 낮고 사거리가

 

낮아서 제한된 상황에서만 사용이 가능하였다.

 

 

예를 들면 실내전투에서나

 

사용이 가능하지 야전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했다.

 

또한 방탄복의 기본성능이 9mm 권총탄쯤은

 

막아내는 것이라 방탄복을 입고 있는

 

적에게는 데미지를 줄 수가 없었다.

 

 

또한 독일제 무기답게

 

내부구조가 복잡하고 정교하여

 

야전에서 막 굴릴 경우, 이물질의 유입으로

 

 고장이 잦다는 문제점 또한 발견되었다.

 

 

MP5 / 10

 

 

90년대에 이르러서 FBI 등의

 

요구에 따라 10mm 권총탄을 사용하는

 

 MP5/10 기관단총이 개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는 이미 변했고, 방탄복을 뚫는 것이

 

주 목적인 PDW (Personal Defence Weapon) 총기들까지

 

 등장하기 시작하며

 

MP5 기관단총의 시대는 이대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P90 PDW 기관단총 (일명 피구공)


 

 

KAC PDW 기관단총

 

 

대표적인 PDW (Personal Defence Weapon)

기관단총들이다.

 

200m 거리에서 교전이 가능할 것,

 

방탄복을 관통할 수 있는 탄환을 사용할 것,

 

무겁거나 길면 안될 것,

 

사용이 편리하고 반동이 적을 것 등의

 

조건이 붙는다.

 

즉, 후방부대나 비전투 요원들, 경비부대, 전차승무원 등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쉽게 다룰 수 있는 현대적인 기관단총" 계획이다.

 

 

 

 

그러나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MP5 기관단총의 수요는 오히려 대폭 증가하게 된다.

 

사실 PDW 기관단총들은

 

이제 막 뜨기 시작한 "검증되지 못한"

 

총기들이었는데 반해

 

MP5 기관단총은 수십년간 다양한 작전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낸 "검증된"

 

기관단총이었기 때문이었다.

 


 

 

(영화 <터미네이터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 中에서)

 

 

또한 방탄복은 고사하고 총기조차 구하기

 

 어려운 한국 등 대다수의 나라에서는

 

아직까지 MP5 기관단총

 

충분히 현역의 위치를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총기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미국, 유럽의 경우에는 도저히 권총탄이나

 

 쓰는 MP5 기관단총이 못 미더운지

 

다시끔 M4A1 소총 등 강력한 위력을

 

 가진 소총으로 갈아타고 있는 추세이다.

 

이미 미국 SWAT에서는 MP5 기관단총

 

상당수가 물러났고 M4A1 소총으로 대체되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범죄자들이 방탄복을 갖춰입고

 

 소총을 들고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데,

 

몇몇 사건에서는 MP5 기관단총

 

무력함이 제대로 부각되기도 했다.


 

 

 

MP7A1 기관단총

 

 

MP5 기관단총의 후계자 역할을 맡게 된

 

 MP7 기관단총으로서, 택티컬한 외관과

 

뛰어난 휴대성을 자랑하는 PDW 총기이다.

 

무엇보다도 현대전에 맞추어 방탄복을

 

관통할 수 있는 4.6mm 탄환을 사용한다.

 

한국 경찰특공대에서 MP5 기관단총

 

더불어 사용중인 모습이 확인되었다.

 


 

 

 

<MP7 기관단총을 사용중인 한국 경찰특공대의 모습>


 

 

MP5SD5 기관단총

 

 

MP5 기관단총의 베이스에 소음기가

 

결합된 특수목적용 기관단총이다.

 

뛰어난 소음효과를 자랑하여 후방 침투나

 

야간 침투시 활용가능하다


 

MP5K 기관단총

 

 

다양한 전장의 요구에 맞춰 제작된

 

MP5 기관단총의 단축형 모델이다.

 

K는 독일어 Kurz, (쿠르츠, 짧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영화 <레지던트 이블 2 : 아포칼립스> 中에서)

 

극중 앨리스 (밀라 요보비치 분)가

 

양손으로 사격하는 MP5K의 모습이다.


 

 

 

비록 특수부대에서는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일선에서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관들은

아직도 MP5 기관단총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2010년 G20 정상회담 당시 MP5 기관단총을

 들고 경비를 서고 있는 한국 경찰특공대의 모습>

 

 


이상으로 MP5 기관단총에 대해서 알아보았어요 ~

 

 

 

 

<일부 참고, 인용된 사진 및 설명자료 출처>

 

사진 : 네이버 캐스트 <무기의 세계 : MP5 기관단총> , 나무위키 및 구글 해외사이트

 

설명 : 네이버 캐스트 <무기의 세계 : MP5 기관단총>,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나무위키



 

 

 

언제나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민국포병!

 

엄청난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포병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볼게요

 

 

건군시기의 한국군 포병

 

건국과 건군 이후 모든 분야가

 

 그렇치만 역시 미국의 의해서

 

대한민국 땅에 화포라는 물건이

 

 들어오게 되었어요.

 

처음 들어온 재대로된 화포는 박격포나 

 

 바주카포 같은 것은 재외하면

 

사실상 M3 105MM 견인곡사포와

 

 M1 57MM 대전차포 정도였어요.

 

<한국전 발발전에 훈련중인 포병들과 M3 견인포>

 

 M3 견인곡사포는 미국에서 2400여문 정도

 

 생산이 되었던 포였는데

 

공수부대나 산악부대, 해병대등

 

가벼운 화포가 필요한 부대들을

 

 위해 만들어진 화포다 보니

 

가볍기는 하지만 사거리가 겨우 6.5KM 정도로

 

 당시 박격포보다 조금 더 날라가는 수준이었고

 

 설상가상으로 91문 밖에 인수하지 못한대다가

 

이중에 3문은 이미 고장난 상태에서

 

 넘겨진 것이었어요. 

 

당시 미국이 한국에 막대한 군수지원을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발발 이후로 

 

 그 이전에는 미국내 악성재고를

 

 넘기는 수준이었어요.

 

 M1 57MM 대전차포는 영국군이 사용하던

 

 6파운드 대전차포를 미국이 복제생산을 한 것으로

 

2차 대전당시 많이 쓰인 것이지만

 

이미 2차대전 당시에도 위력부족으로

 

 도태가 시작되던 화기였고

 

제고로 처박혀 있던 것을 한국군에 인계한 것이죠.

 

 수량도 100여문 정도였어요.


 
 

<M1 57MM 대전차포와 대전차포병들>

 

이 것으로는 당연히 T-34 전차를 격파할 수는

 

 없었지만 한국군 대전차포병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응전하여서 의외로 궤도를 파괴하거나

 

전차의 관측창을 격파하는 등의 사격으로

 

북한군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습니다.


 

 

<북한군 T-34전차를 향해 57MM 대전차포탄을

 장전하는 포병들..거의 자살공격이나 다른 바 없었다.>

 

 야전부대에서는 57MM 대전차포가

 

크게 고전을 하자 급히 미군으로부터

 

당시 최신형이었던 M20 3.5인치 바주카포를

 

인수하여 일선부대에 보급하였고

 

금방 전과를 올리기 시작합니다.


 

 

<M20 3.5인치 슈퍼바주카포와 한국군 사수들.

앞에 서있는 사수는 M3 기관단총을 휴대하고 있다. >

(M20은 80년대까지 한국육군에서  

현역으로 사용되었다)

 

 한국군이 3.5인치 대전차 로켓으로 최초의 전과를

 

 거둔 것은 1950년 8월 대구 북방 가산 전투에서였는데,

 

 8월 초 한국 육군1사단은 미군으로부터

 

 3.5인치 대전차 로켓 3문을 최초로 인수했습니다.

 

 1사단 12연대에서 사수·부사수·탄약수 2명 등

 

4명으로 구성된 대전차특공조 세 개를 편성,

 

일주일 동안 특별 훈련을 거쳐

 

8월9일 최초로 실전에 투입했습니다.

 

12명의 대전차특공조 대원은 특공대장 김성룡 대위의

 

 지휘 아래 대구 북방 석적부락 부근에서

 

단숨에 적 전차 4대를 파괴하고 1대를

 

노획하는 전과를 처음 올렸습니다.

 

 낙동강전투와 인천 상륙작전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북괴군전차가

 

 전멸해 버려서 57MM 대전차포도 점차 전장에서

 

 사라지고 미군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신형 화포가

 

 속속 한국군에 지원되기 시작합니다.

 

 

 

 

한국군 포병의 아버지 신응균 중장

 

 

여기서 잠깐 한국군 포병의 아버지라고 불린

 

 신응균 예비역 중장에 대해서 알아보고갈게요. 

 

 일본육사 53기이므로

 

박정희 대통령보다 4기수 선배였어요.

 

그리고 일본군내에서도 인정을 받은

 

 엘리트 장교로써 일본육군과학교를 이수하고

 

포병장교로써 근무하였고 대본영에서도

 

잠시 근무하였습니다.

 

당시 일본육군내에서도 총명한 신응균을

 

무척 아껴서 조선인으로는 드물게 참모장교로

 

 주로 근무할 수 있었다고합니다.

 

 1945년 당시 미군의 오키나와 공격에 맞서

 

수비군의 중포부대 소속으로 전투에 참가하였으나

 

 그의 부대는 압도적인 미군의 화력에 초토화되고

 

살아남은 부하들과 산으로 올라가 게릴라전을 하다가

 

심한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일본인 여성에게 구조되어

 

 1946년까지 은거생활을 하기도 하였어요.   

 

 신응균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노라노의

 

 전남편이기도 하였다습니다.


 

<30대 시절 노라노>

 

  1945년 그가 오키나와에서 전사한 것으로 생각한

 

시댁의 압박으로 노라노는

 

강제 이혼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노라노의 증언에 따르면 유족보상금과 연금을

 

막 시집온 며느리에게 나누어 줄수 없어서

 

그랬다고 하는데 당사자만 알 일이죠.

 

 

 신응균은 이후 진명여고에서 수학교사를

 

 하면서 생활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자 돌연 집을 나와

 

 육군에 이등병으로 입대를 하였습니다.

 

주변의 지인들이 한사코 장교임관을

 

독려하였지만 일본군출신임을

 

속죄하여야 한다면서 계속 사병으로 근무하다가

 

 전쟁이 임박해지고 확군이 시작되자

 

 결국 포병장교로 임관합니다.

 

 그는 군내 신망을 받았고 바로 포병사령관으로써

 

 한국전쟁에 참전하였고

 

박정희 소령도 한때 신응균의 제자이자

 

 부하장교로 근무하였습니다.

 

그 시기의 한국군 포병의 체계를 잡고 미군과는

 

 약간 다른 한국군 포병의 기초와 뿌리를

 

 다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응균은 51년 미국군사유학을 다녀왔고 59년 중장으로

 

예편하였으나 5.16혁명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신응균을 기억하고 그를 중요하게 쓰셨습니다. 

 

 

 

 

한국전 발발 이후 미군 포병장비의 도입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낮은수준에

 

 포병화기만 가지고 있던 한국군은

 

122MM 곡사포로 무장한 북한군에게

 

 크게 밀릴 수 밖에 없었고 상황이 심각해지자

 

미군에서 긴급히 50년 7월부터 M2 105MM

 

견인곡사포 13문을 시작으로 한국군 포병화력을

 

공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중에 가장 많은 공급은 단연 105MM M2 견인포였어요.

 이미 2차 세계대전 당시 엄청난 수량이 생산된 모델이고

 미군내에 치장물자도 충분하였구요.

 성능도 당시 동급 화포중에 가장 성능이 좋았어요.


 

 

무게가 2톤 정도로 가벼운 편이었고

 

 사거리도 11KM로 나쁘지않은 수준이었습니다.

 

RAP탄을 사용하면 14.6KM까지 날라갑니다.

 

추진장약과 탄두가 일체형이다보니 장전속도도 빨라서

 

분당 3발에서 빨리 속사를 하면 10발까지

 

 사격을 할 수 있는데 이런 속사 능력

 

 때문에 이 구식화포를

 

21세기인 현재까지도 도태시키지 않고

 

 운영을 하고있어요.

 

50년 9월부터 이미 구식인 M3 곡사포를

 

 대체하여 한국군의 주력화포가 되었습니다.


 

 

 

<휴전후 1950년대 중반 1사단의 105MM 견인포>


 

 M2 견인포는 중복명칭이 많아 후에  M101로

 

명칭이 변경되었는데 M2 / M101 / KM101 모두 같은 포에요.

 

 

 미국은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를 살리기위해

 

한국 전쟁 기간에 육군장비만

 

M2 105㎜ 곡사포 1,127문을 비롯하여

 

 M114 155㎜ 곡사포 303문, M1 소총 47만여 정

 

 M1/M2카빈 21만9000여 정

 

M1919A4 경기관총 7700여 정 등

 

필수 장비의 대부분을 지원했구요.

 

여기에 3억4300만 발의 M1 소총탄 등

 

 막대한 양의 탄약까지 지원했어요.

 

 이승만의 외교력과 미국의 한국 수호의지는

 

지금의 국제사회의 기준으로는

 

 정말 경이로운 수준이었죠

 

 1950년 당시 한국군 포병대의 숙원사원은

 

 미군의 M114 155MM 견인포를

 

 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백선엽이나 신응균과 같은 전선의

 

야전장교들은 미군의 155MM포의 위력에

 

큰 감동을 받은 상태였고 미군에게

 

155MM 견인포 원조를 강력히 요청하였지만

 

미군입장에서도 워낙 중화기라서 쉽게

 

인도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한국전 당시 한국군의 M114 155MM 곡사견인포>

 

이 때 밴플리트장군과 같은 친한파 장교들의 많은 도움으로

 

155MM 견인포가 한국군에도 303문이

 

 종전시까지 인계되었습니다..

 

 

 

 

한국육군의 아버지라 불린 밴플리트 대장


 

 

<밴플리트 미8군 사령관 >

 

 밴플리트는 그외에도 한국군과

 

한국의 발전을 위해 엄청난 일을 하였습니다.

 

 미군 1일 포격량을 5배가 늘리는 밴플리트포격을

 

 구사하여 미의회로부터 출석요구를 받기까지 하였고

 

 1951년에 경남 진해에 육군사관학교를

 

재신축하여서 한국군 사관생도를 양성시켰죠.

 

 이때 배출된 신임소위들이 바로 전두환과 노태우

 

 김복동 같은 육사11기 장교들이었습니다.


 

 

밴플리트는 한국군의 기장 큰 문제가

 

장교들의 경력이 너무 짧다는데 있다고 보고 전시중임에도 불구하고

 

 영관급 장교들은 미국유학을 갈 수 있도록 주선해주고 전선의 위관급

 

장교들도 OBC /  OAC (초군반/고군반) 교육을

 

 다시 받도록 배려하였는데요.

 

이때 신응균과 박정희도 미국에서

 

군사유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과 밴플리트 장군이 한국군

 장교단 앞에서 화동을 보고 있다.>

 

 

1950년대 미국군사유학을

 

다녀온 많은 영관급 장교들은

 

훗날 한국군의 엘리트 장교단으로 성장하였고

 

 5.16혁명의 주도세력이 되었습니다.


 

<한국전 당시 용맹을 떨친 박태준 중령.  당시 만 24세였다.>

 

 포병장교들은 양성이 아주 어려운 편이고

 

수학적 소양과 지식은 물론 냉철한 판단력과 공간감각이

 

필요한 일이어서 한국군 수뇌부들은 일찍이

 

포병병과의 양성이 노력을 하였고

 

많은 우수한 보병장교들이

 

포병으로 전과를 하였는데 그중에 하나가

 

 당시 박정희 대령이었습니다.

 


 

 

<한국전 당시 박정희 중령. 맨 오른쪽이다.>

 

밴플리트는 퇴역후에도 57년에 코리아소사이어트를

 

 설립하여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으로

 

한국을 지원하였고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한 후에

 

 한국의 재철소와 발전소등 중공업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였습니다. 당시 박정희대통령은

 

 김종필을 보내서 밴플리트를 방문시켰는데

 

 

 이때 많은 미국산업계 인사들과의

 

인맥을 주선해주었다고 합니다.



 

 밴플리트가 이토록 한국군과 한국의 발전에 경이로운 지원을

 

 한 것은 개인적인 사연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밴플리트의 외아들 제임스 공군중위가 52년 4월 3일

 

 B-26을 조종하고 북한의 순천지역의 군용열차를

 

야간폭격하는 임무를 수행중 북한군의 대공포에 맞아

 

격추되었고 실종처리 되었다고해요.


 

<B-26 폭격기>


 재임스중위의 네 번째 출격이면서

 

최초의 단독 폭격임무였습니다

 

 그의 B-26폭격기는 03:00쯤

 

김포공항 레이더에 잡혔고, 03:30분에는 주표적이

 

구름에 가려져 새로운 예비 표적을 받고

 

 날아갔으나 그 후 레이더에서 사라졌어요.

 

밴 플리트는 10:30분 미5공군사령관

 

 에베레스트 중장에게 이 소식을 듣고도,

 

다음날 4월 5일 내색없이 국군2군단 창설식에

 

참석했다고해요. 그는 아들이 실종된 것을 이미 알고 있었죠.

 

밴플리트 장군은 결국 더큰 피해를 막기위해

 

 아들의 수색작전의 중단을 직접 명령하였다고해요.

 

 이 것은 당시 회의에 참석하였된

 

채명신 장군의 회고에서도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벤플리트의 한국군 지원정책과 한국전의

 

적극적인 전투행위는 워싱턴의 비판을

 

 자주 받았다고합니다.

 

 당시 워싱턴은 유럽의 NATO육성과 소련군의

 

 유럽전선에 대응하는 데 주력하는 입장이었고

 

밴플리트의 한국군지원은

 

자신들의 역량을 소모하는 것이라

 

 믿었고 한국전에 빠른 휴전에만 골몰하고 있었어요.


 

 

 

 

<1953년 8군 사령관직의 퇴임을 앞두고

 전쟁고아원을 방문한  밴플리트 대장.>

 

하지만 밴플리트는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53년 3월 퇴임할 때까지 엄청난 지원을

 

한국군에 쏫아부었고 훗날

 

한국육군의 아버지로 불리게 됩니다.

 

 

 

 

미국 군사원조 화포시대

 

 이런 미국의 군사원조품중에는 105MM 견인포 이외에도

 

 중요한 장비들이 많았습니다.


 

 

 


 

 

 

M2A1 4.2" 박격포는 군사원조로 한국군에 도입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포병에서 운영을 하였어요.

 

군필남자들은 잘 알겠지만 박격포는

 

 보병이 운영하는 화포입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군의 차량보급률이 너무 낮았고 보병부대는

 

대부분 도보나 우마차 정도로 이동하는 수준이어서

 

도저히 4.2" 박격포를 보병부대에서 운영할 수가

 

없어서 포병에서 함께 운영을 하였죠.

 

 1964년이 되어서야 겨우 보병연대

 

 전투지원중대에서 운영이 가능해졌습니다.


 

 

<파월 해병2여단의 4.2" 박격포>

 

 4.2 인치는 구경이 105MM 견인포보다 커서

 

 사거리는 짧지만 고폭탄의 위력이

 

훨씬 강해서 중요한 화력지원수단으로

 

 고지전에서 크게 활약을 하였어요.

 

 

 M114 155MM 곡사견인포는 1951년 5월에

 

 처음 한국군에 도입이 되기

 

시작하였는데 강력한 위력으로 한국군에게는

 

금쪽같이 귀중한 포였습니다.


 

 

 

<최대 3분에 4발을 발사할 수 있어서 발사속도가 느린 것이

 흠이지만 고폭탄의 위력이 워낙 강하여서

 중요한 공격수단으로 이용되었다>


 

<파월 포병과 M114 155MM 견인포>

 

 한국전 이후에는 미군이 철수하거나 장비를 교체할 때마다

 

물려받아서 거의 1000문을 보유하게 되었고

 

지금도 사용중입니다.


 

 

<소량이기는 하지만 8인치 M115 곡사포도 휴전이

 가까워지는 1953년에 50여문이 한국군에 인도되었다>


 

<한국전 당시 8인치 곡사견인포>

 

 사거리가 16KM정도에 운영인원이 16명이나

 

 필요한데다가 무게만 14.5t이 나가는 포는

 

 분당 발사속도는 최대 3분에 2발에 불과함에도

 

2000년대까지 현역으로 사용되었는데 고폭탄의 위력이

 

155mm견인포에 비해 거의 1.7배 정도에 반경79m를

 

 초토화할 수 있는 위력이어서

 

 군단포병대에서 아주 아끼며 사용되었습니다


 

일단 고폭탄의 위력면에서는 지금기준으로도 엄청 강력하다.


 

 

<군단포병 8인치 견인포의 야간사격. 

 조명탄이 필요없을 정도다. >


 

<포구를 떠나는 거대한 포탄이 보인다>.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정말 거대하고 강력한 포임을 알 수 있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치만 M59 155MM견인포도

 

 한국군에게 53년에 50여문이 인계되었어요.


 

 

 

사거리가 23KM에 분당 2발을 발사할 수 있었는데

 

군단급 포병화기로 요긴하게 사용되었고

 

한국군이 국산화한 KM114가 대량 생산이

 

 되면서 80년에 퇴역하였어요.

 

일부는 전시물로 사용중이고  극히 일부만

 

 치장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국군에 인계된 포병장비중에 좀 특이한 놈이

 

있는데 바로 M36 대전차 자주포에요.


 

 

<한국군의 M36 대전차 자주포>

 

이 놈은 전차처럼 생기기는 하였지만

 

어디까지나 포병장비인 대전차 자주포에요.

 

2차대전 당시 독일의 5호전차 판터, 6호 전차 타이거같은

 

 야수전차들에게 미군기갑부대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었고 응급처치로 만들어진

 

 자주포로 대공포로 쓰이던 90포를

 

 대전차포로 개조한 것을 부착하여

 

포병이 운영하였던 장비였습니다.


 

 

 

<나치 독일의 야수 타이거탱크. 

이녀석 잡을려고 만든 것이 M36이다.>


 

 

당시 미군에서는 M36을 이미 퇴역시키던 상태여서

 

제고가 충분하였고 한국전 기간중

 

 264대가 인계되었어요.

 

 당시 한국군 포병이나 기갑이나 보병 모두

 

아직 병과 구분이 명확하지않은

 

 시절이었고 그 정도로 체계도 잡혀있지도 않던 시절이었죠.

 

기갑병과는 있었지만 겨우 경장갑차 정도 밖에 없던

 

 시절이어서 이 자주포를 기

 

갑병과에서 운영을 하였습니다.

 

 M36이 도입될 시기에 이미 북괴군의 전차들이

 

대부분 미군의 전폭기나 전차에 격파된

 

 시기여서 M36은 자주포로써 운영이 되었어요

 

 특히 강력한 직사화력으로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분쇄하거나 고지전에서

 

북한군 진지를 초토화시키는 전법으로

 

아주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한국전 당시 한국군의 M36>

 

치열한 한국전이 휴전된 이후에 219대의 M36이

 

살아남았고 미군으로부터 M47을 인계받을 때까지

 

기갑부대의 중요한 장비로 사용되었고

 

 1959년에 퇴역을 하였습니다


 

 

<1957년 중부전선의 M36 자주포진지.>


 

<1950년 후반의 한국군

M36자주포와  승무원들>

 

 M36은 엄청난 구식장비임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까지 예비치장되었습니다. 

 

 M36의 주포가 지금도 현역으로

 

 사용되는 90MM대전차포이다보니

 

현재도 엄청나게 재고로 가지고 있는 포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M36 자주포와 동일한 90MM 대전차포를

사용하는 M348A3K 전차. 아직도 현역이다>.

 

 

 

 

 

 

한국군 곡사자주포 시대의 시작


  60년대 초는 한국도 격변기였지만

 

다른 곳에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냉전이 극으로 치달아서 쿠바에서 핵미사일건으로

 

 미해군과 소련해군이 전쟁 할뻔하고 ,

 

중동에서는 유태인들과 샌드니거들의

 

대규모 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1967년 6일전쟁 당시 아랍동맹군을 향해

 돌격하는 이스라엘군의 M50 개조셔먼.>

 

 북한은 이미 후루시초프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었고 북한군의 전력은

 

한국전 당시보다 더욱 한국군을

 

압도하는 상황이었어요.

 

쉽게 알려주면 한국군이 M1소총으로 땅야땅야 할 때

 

 AK-47소총을 들여와서 드르르륵 갈기는

 

 수준이었던 것이죠.

 

  이때 박정희대통령은 J.F케네디와

 

한국군의 파병을 협상하셨어요.

 

주한미군의 월남차출을 막고  한국군의

 

실전경험을 위한 대통령의 도박이었습니다.

 


 

 

<파월 해병 2여단 장병들>

 

 월남에서 전사한 5,000여명의 희생덕에

 

 결국 대한민국을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미친 빨갱이들로 지키고 후손에게 번영을

 

 남긴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죠.

 

 미국은 당시 국제 왕따였어요. 심지어는

 

영국도 미국의 파병요청을 거절하던 시기였습니다.

 

호주와 뉴질랜드, 태국군이 파병은

 

 하였지만 숫자상 미미했죠.

 

한국군은 연인원 32만명이 참전하였고

 

5만의 병력을 상시주둔하였습니다.

 


 

 

 

즉 한국군의  8%가 항상 월남에서 정글을

 

치고 북배트남군과 배트콩들과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파월 해병 포병들>

 

69년부터 미군이 썰물처럼 철수를 시작하였고

 

 70년부터는 사실상 한국군이

 

자유연합군의 최대군대였고

 

 가장 치열하게 전투를 하였어요.

 

72년에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이 승리한 안케패스는

 

당시 자유연합군이 승리한

 

거의 유일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미 다른 동맹군대들도 철수를 하였고

 

 월남군은 엄청나게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미군도 상당한 성의표시를 하고 있었어요.

 

 66년에 처음으로 M110 자주포가 넘겨지기 시작하였고

 

총 99대가 한국군에 인계되었습니다.

 

당시 미군에게도 비교적 신형장비였고

 

 전술핵포탄을 쏠 수 있어서 미군도

 

 금쪽같이 아끼던 장비였어요.

 

  13명의 운영이 필요한 중포였고 강력한 위력의

 

8인치 (203MM)곡사포가 부착된 놈으로

 

포탄의 위력만큼은 지금 기준에도

 

 엄청난 놈이었죠.

 

16.8KM/ RAP탄 30KM의 사거리를

 

가졌고 분당2발 발사가 최대였구요.

 

 포탄이 워낙 커서 이 이상의 속도로

 

발사는 불가능하였어요.

 

한국군은 금쪽같이 아끼며 사용하였고

 

 군단 직할 포병이 2000년대 중반까지

 

현역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지금은 퇴역을 하여서 일부는 외부전시물로

 

사용중이고 일부는 치장되고 있습니다,

 

미군으로부터 인계받은 포탄제고가

 

 너무 많아서 한동안은 계속 치장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워낙 구형이고

 

 아무런 방호장갑이 없는

 

덕분에 자주포병들이 이동할 때 포상위에

 

 방울방울 매달려서 눈,비 다맞고 이동을합니다;;


 

 

자주포치고는 방열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노가다도 좀 많았다고 .


 

 

M110과 M548 탄약운반차가 항상 세트로 다녔다. 지금은 둘다 예비 치장장비다.

 

1971년에는 M107 175MM 자주포도 인계되었는데

 

 미군에서도 괴물자주포로 통하는 물건이었어요

 
 

 

 

 

사거리도 30KM/ RAP탄 40KM에 달하는

 

 괴력을 가졌고 강력한 전술핵포탄을

 

사격하는 놈이었어요.

 

90년대까지 주한미군 포병들과 함께 실제로

 

 핵포탄 사격훈련도 하였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1군단 포병여단의 M107>

 

물론 사격속도가 최대 분당 2발이라서 지금 기준으로는

 

별로지만 67KG에 달하는 고폭탄을

 

 날리는 굉장한 놈이었어요.

 

군단급 포병의 핵심자주포로 수량은 50량 정도를

 

 운영하였다고합니다


 

 

 

M110/M107 모두 미군에서는 90년대 초에

 

 퇴역을 하였는데 이 때 100여대의

 

 예비차채와 60만톤의

 

포탄을 한국군에 넘겨주어서 엄청나게

 

쟁겨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은 M107도 K9이 실전배치되면서 퇴역을 하였지만

 

한반도 통일결전에 순간에는 치장시설에서

 

 나와서 엄청난 포격을 할 것이 틀림없어요^^.


 

<M110과 M107은  항상 국군의 날 주인공이었다.>

 

 

 번개사업 그리고 국산화포시대

 

 6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소련의 지원에 취한

 

 김일성은 자기 환갑잔치는 서울에서 하겠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어요.

 

사실 이말이 헛소리는 아닌 것이 미군이 이미

 

 월남전에서 자신감을 골로 보내고

 

 고립주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었고

 

주한미군도 호시탐탐 철수하려고 하였기 때문이엇죠.

 

 월남전도 점점 소강상태로 들어가고 있었고

 

 미국의 지원도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하였어요.

 

그동안 꽁짜로 원조하던 장비들을

 

돈주고 사가라고 하기 시작한 거죠.


 

박정희대통령은 깊은 시름에 빠졌어요.

 

미국이 한국군의 월남참전의

 

대가로 한국군의 현대화와

 

장비확충, 차관지원, 한국업자의 월남사업지원등의

 

 양해각서인 브라운 각서의 이행도

 

저조해지는  심각한 상황이었죠.

 

실제로 워싱턴에서는 한미상호조약이고

 

나발이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라고 성화였고

 

71년 미 7사단이 철수하는 일이 벌어지기까지합니다...

 

이제 미2사단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이 오면서

 

국방을 더 이상 미군에 의지할 수 없는

 

절대절명의 위기의 순간이 오고말아요..
 

 박정희대통령은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자주국방의 계획을 세우는데 이 때 설립된 것인

 

ADD 국방과학연구소에요..

 

박정희대통령은 자신의 포병 스승이자

 

 일본육사 선배인 신응균을 부르게됩니다.


 

 

 

 

신응균 소장. 무척 미남이어서 청년 장교시절부터

 

 여성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오키나와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죽어가는

 

 중에 일본여자에게 구조되어

 

 살아남은 것도 이해가 갑니다.

 

신응균은 1959년 중장으로

 

예편후 한동안 직업외교관의 길을 가고 있었어요.

 

 신응균은 의외로 한국현대사의 많은 페이지에

 

 등장을 하는데 주서독대사시절 재독한국인들과 함께

 

서독의 광부/간호사 파견에도

 

 많은 역활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박정희대통령으로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신응균 ADD소장>

 

 신응균이 소장으로 취임하면서

 

 먼저 연구진을 찾아다녀야 했어요..

 

당시 의뢰를 받았던 대학교수란 자들은

 

전부 대한민국에서는 화포를 만들수 없다는

 

패배주의적 발언한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거지나라에 인재가 있을리가 없었고

 

민간 / 군 모두 쓸만한 인재들이 없어서

 

한참 고생을 하다가 하는 수 없이

 

 육사/해사/공사의 현역장교

 

이공계교관들을 차출해서

 

특무부대 건물 한칸을 빌린 사무실에

 

처넣은 것이 ADD의 시초였어요.

 

당시 끌려온 장교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말 책상하고 의자만 있었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는 간단했어요.

 

예비군 20개사단을 무장할 장비를

 

 당장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M16은 오원철 수석이 중앙정보부를 시켜서

 

만든 베트남의 위장고철회사에 밀반입한 것을

 

 역설계해서 시제품을 만든 후에

 

설계도를 미국콜트사에 받아내었지만,

 

60만정만 만들 수 있었고 1985년까지만

 

면허생산을 할 수 있어서 예비군용으로

 

M1, 카빈, M1919, 박격포, 3.5인치 로켓포를

 

 미군몰래 역설계해서 양산해서 공급하는 계획이었죠.


 

 

번개사업으로 만든 시제 국산총기

(미제복제)를 시찰하시는 박정희대통령

(출처:동아일보)

 

 공돌이들을 갈아넣어서 소병기들은 겨우

 

 성공하였지만 각하는 예비군도 포병을 편성해야한다고

 

지시하셔서 처음으로 105MM 곡사 견인포

 

 복제에 들어가게 됩니다.


 

 

 

 당시  알보병이었던 예비군에게도

 

105MM 견인포를 배치하실 계획이었습니다.

 

 총기하고 포는 차원을 달리 하는 물건이고 하는 수 없이

 

 하는 수 없이 ADD의 해군사관학교출신

 

 구상회 연구원이 미대사관을 통해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어요.


 

 

 

 

ADD의 구상회 해군소령.

 

훗날 대한민국 육군화포와 탄도미사일사업을

 

주도하게 됩니다.

 

ADD 부소장을 역임하였습니다.

 

구상회연구원은 포병대에서 105MM 견인포를

 

 하나 가져와서 완전분해를 한 후에

 

역설계를 하였어요.

 

 포신깍을 가공장비가 없어서 일본에서 기계를

 

 수입하고 또 ADD 직원들이 청계천상가에서

 

 미군기술교범 같은 것을 수거해서

 

천신만고 끝에 1973년 허름한 구로동 대한중기

 

 공장에서 처음 시제 M101 105MM 곡사견인포를

 

 완성한 것이 한국군 화포의 시초가 되었어요.

 

대한중기는 훗날 기아그룹에 인수되어 기아중공업으로

 

사명이 변경되었고 현재는 현대그룹에 인수되면서

 

 지금은 '현대위아'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당시 브라운각서의 이행차원에서 한국군에 있는

 

 미군장비의 정비와 부품조달의

 

기술지원하기위해 Clyde D. Hardin을

 

 단장으로하는 기술지원팀 5명이 ADD에 파견되어 있었어요.


 


 

 

Clyde D. Hardin 단장.

 

하딘은 2차대전에 미해군으로

 

참전한 철저한 반공주의자였고

 

 단원이었던 Urich는 미육군 대령출신으로

 

 총포전문 병기장교출신이었어요.

 

 처음에 하딘은 ADD가 105MM 견인포를

 

개발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심드렁한 반응이었어요,

 

 하지만 105MM 견인포 시제품이 나오고

 

젊은 연구원들이 아무런 안전장비없이 목숨을 걸고

 

시험사격을 직접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꾸고

 

 적극적으로 미군의 도면이나 기술자료를

 

넘기기 시작했어요.

 


 

 

<다락대 사격장에서 국산 105MM 견인포를

 시험사격중인 ADD 직원들>

 

 같은 엔지니어끼리 통하는 것이 있었고

 

이들은 곳 친한파로 변신하여서 막대한 자료를

 

 넘기고 도면해석기술과 자신의 노하우를 넘겼어요.

 

 당시 하딘팀의 이런 지원을 미군당국에서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고

 

감시를 강화하기 시작하였어요.

 

 하딘팀은 미국의 방산기밀자료까지 자신들의 권한으로

 

 최대한 수집하여서 넘기기 시작하였고

 

결국 Urich가 넘긴 극비자료가

 

결국 미군당국에 감시에 발각이 되면서

 

하딘팀 5명은 미국으로 강제송환되고 말아요..

 

후에 이들 대신 현역장교들로 구성된

 

JUSMAK-K팀이 들어오는데 이들은 기술지원보다는

 

 오히려 ADD의 감시와

 

 본국보고에 주력하였었어요.

 

미국은 한국이 자신의 통제권을

 

벗어나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이죠.


본국으로 돌아간 하딘은 방산연구자로써

 

계속 일을 하였고 자신의 연구논문과

 

기술자료집을 한국ADD에

 

기증하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종종 방문하여

 

ADD에서 강연을 하시는 등

 

한국에 대한 많은 도움을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하였다고 해요.

 

  이 과정에서 신응균 ADD소장이 과로로 건강을

 

망쳐 결국 쓰러지고 마는 등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합해서 1977년에 대한중기에서

 

KM101 105MM 곡사견인포가 양산되었고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어요.


 

 

 

105MM 견인포는 포탄과 추진장약이 한덩어리여서

재장전이 엄청빠르다. 물론 견인포병들의

강한 체력은 기본 옵션이다.

 

 105MM 곡사 견인포는 군사원조로 받은 것까지 합하면

 

 거의 3000문을 가지고 있고, 너무 수량이 많아서

 

 1000문은 전시예비치장을 하고 2000문은

 

동원사단이나 향토사단에서 사용중이에요.


 

 

 

<보병사단 포병연대에서 지금도 잘만 쓰고 있다.

사격DATA가 많이 축적되어서 엄청 잘맞는다고 한다.>


 

<중량이 가벼워서 UH-60으로도 충분히 수송이 가능하다.> 

 

 

 미군이 105MM급 화포를 전부 퇴역시키면서

 

미국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포탄을 넘겨받아서

 

앞으로 수십년은 더 현역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ADD는 자신감에 충만해서

 

KM114 155MM 곡사견인포도 바로 국산화에 성공하고

 

 1977년에 국산 155MM 견인포로 장비한

 

 포병대대를 창설하는데 이르렀어요.


 

 

<KM114는 지금도 동원사단의 주력견인포로 운용중이다>

 

 

 

자체개발 견인포 KH-178, KH-179의 성공.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ADD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최고의 견인포를

 

 만들기로 독하게 마음을 먹고

 

시작한 것이 KH-178이었어요.


 

 

M101의 포신을 연장하고 각종 구성품의

 

 성능을 계량하고 강화하는 형태로

 

ADD와 기아중공업이 중심이 되어

 

개발이 된 KH-178은 당대 최고의

 

105MM 곡사견인포였어요.

 

 사거리가 14.7KM/RAP탄 18KM에 발사속도도

 

 최대 분당 15발 사격이 가능한 엄청난 속도를

 

가진 최고의 105MM 견인포였어요.

 

 1983년에 개발성공한 화포는 한국군보다는

 

 인도네시아와 칠레등 수출용으로

 

 더많이 만들어졌어요.

 
 이미 한국군포병은 105MM 포로는

 

성이 안차는 상황이었고 북한포병을

 

대포병사격으로 분쇄하기위해 보다

 

 강력한 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게 KH-179 155MM 곡사견인포입니다.

 

 KM114를 기본으로 포신을 연장하고 구성품을

 

강화한 것으로 M114보다

 

1톤만 중량이 증가한 것에 반에

 

거의 2배길이의 거대한 포신을 장착하고 있고

 

 나토표준 155MM 포탄을 모두 사용할 수 있고

 

 사거리는 23KM/RAP 30KM로

 

북한의 대부분의 화포들과

 

 대포병사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어요.

 

 발사속도도 분당 최대 4발이어서

 

 중화포치고는 아주 빠른 편입니다.

 

몰론 포병들의 고릴라 같은 팔힘과 강한 체력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임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지죠

 

 

 

 

 

 한국군 포병대에서는 KH-179의 성능에

 

크게 만족해서 수출용으로 주로

 

생산된 KH-178와는 달리

 

1000여문 가까이 생산되어 대부분 사단포병연대에

 

 배치되었고 당연히 지금도 일선에서 사용되고 있어요.


 

 

철주를 박아줘야 한다.


 

 

 

 

발사!

 

지금은 K9이 대량배치되면서

 

 K55 자주포가 사단급까지

 

 내려오면서 지금은 점차 후방으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이에요.

 

 

 

 

정말 방열할 때 보면 '저것이

진짜 포병이구나'라는 생각이 누구나 들거에요.


 

 

 

수출도 재법 잘되어서 동남아국가와 중동국가에

상당히 많이 수출했고 지금도 구매문의가

 자주 들어오고 있다고해요


 

 

 

대통령의 특별지시속에 만들어진

 

K-136 구룡다연장 로켓포


박정희 대통령께서 갑자기 북괴군이

 

보유한 것과 동일한 다연장 로켓을

 

개발할 것을 ADD에 지시하셨어요.

 

당시 ADD는 맨붕에 빠지게 되는데 각하의 명령에

 

따라 지금까지 목숨을 걸고 무기를

 

개발하고 만들어온 ADD연구진이지만

 

다연장은 정말 미지의 영역이었어요.

 

지금이야 저 정도야 껌이지~라고

 

 할 수 있지만 사연이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서방국가에서는

 

서독이외에 다련장이라는 장르를

 

 취급하는 나라가 없었어요

 

 그것이 다 이유가 있는데 다련장 로켓포라는

 

것이 단시간에 엄청난 고폭탄을 갈기는 맛이 있지만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명중률이 좋지않고

 

자원의 낭비가 상당히 심한 무기인 것이

 

사실이고 항공기의 발달도

 

그다지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에요.

 

미국도 2차대전때 약간 만들어 쓰다가

 

 버렸기 때문에 물어볼 곳도 없었죠.

 

 우리의 ADD는 다시 맥가이버 빙의하여 자료를

 

찾기위해 서독을 가서 자료달라고도 해보고

 

 첩보사진으로 소련군이 많이 사용하는 BM-21 방사포 사진

 

을 연구하기도 하고 엄청 고생을했다고해요.


 

 

<ADD가 많이 참조한 소련제 BM-21 방사포>

 

 여러분들도 박정희대통령이

 

 포병장교출신인 것은 잘 알거에요.

 

한반도 전장은 인류역사상 아주 좁은 횡심에

 

막대한 병력과 장비가 집결한 전장이고 예비군까지

 

 집결하면 정말 미어터질 지경이 됩니다.

 

인류최대의 전장이라는 2차대전 독소전장도

 

 이 정도의 병력집결도는 나오지 않을 거에요.

 

 군간부출신 남자들은 북한군 전술 배우면서

 

 군포군 / 연포군 / 사포군이라는 용어를

 

공부한 적이 있을겁니다.

 

군단이나 사단의 예하포병을 집결하여서

 

화력투사를 한다는 개념인데 워낙 포장비가

 

 많고 제대가 많다보니

 

어느정도 집결하여서 운영할 수 밖에 없어서

 

이런 개념이 나오는 거에요.


 

 

즉 좁은 한반도의 전장에서 다련장로켓은

 

 상당한 위력이 있다는 것이

 

대통령의 판단이었죠.

 

잘 알려지지 않은 비사인데 당시 한국군은

 

비밀리에 소련제 BM-21 1대와 포탄을

 

입수하는데 성공하여서

 

 비밀리에 개발에 성공을 거두었죠.

 

국군의 구룡은 상당히 BM-21가 비슷하게

 

생겨먹게 된 것이이죠^^.


 

 

 구룡은 일단 단기간에 158문이 생산/배치가

 

되어 군단급 직할 포병의 핵심화력이 되었어요.

 

 130MM 36연장 로켓을 18초만에

 

퍼불 수 있는 강력한 놈이었는데

 

 사거리만 초기형이 22KM,

 

후기형은 36KG에 달하는 대다가

 

 64KG의 고폭탄을 날리는 강력한 놈이죠.

 

 제인연감에 올라갈 정도로 서방세계에서는

 

 독보적인 놈이었어요

 

 물론 지금 나오는 최신형 천무에 비하면

 

구식이다보니 아쉬운 부분도 많은 것이 사실이에요.

 

일단 장전을 포병들이 일일이 한발씩 포신에

 

넣어야 하는 데 상당한 노가다이고 시간도 오래 걸려요..


 

다련장포병의 얼굴에서 힘듬이 느껴진다.


 

 

 

그리고 고폭탄 역시 인마살상용만 생산이 되어서

 

 전차와 같은 중장갑장비를 완전격파가

 

 약간 어려운 편이에요.

 

아직까지는 워낙 제고포탄들이 많아서

 

전혀 퇴역할 기미가 없는 무기체계이고

 

 한동안 대한민국을 지킬예정입니다.

 

 

 K55 자주포의 도입


80년대 초중반까지 한국군의 신형 KH-179의 성능에

 

 크게 만족을 하고 있었고 신나게

 

야전포병부대에 보급을 하고 있었어요.

 

한국군의 첩보망에 북괴가 자주포를 엄청나게

 

대량 배치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분석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성능이야 조잡하지만

 

 북한포병의 절반은 자행포로써 배치를 마무리한

 

상태라는 충격적은 내용이었어요.


 

 

 

<북한군의 170MM 자주포. 

 사거리 54KM에 자동장전장치가 달린 자주포다.>

 

소련군이 쓰다버린 해안포를 받아서 T55전차위에

 

 올린 형태로 사거리는 길지만 명중률이

 

 낮고 발사속도도 느리다고합니다.

 

당시 ADD에도 자주포 개발을 위한 선행연구를 하고

 

있었지만 당장 짧은 기간내에 개발을 해서

 

 배치하는 것은 무리인 상황이었어요.

 

 한국군에는 M107 / M110 자주포가 있기는

 

 하였지만 수량이 너무 적고 구식이라

 

 당장 장만을 하여야 하였어요.

 

일단 물색을 해보았는데 서방군대들은

 

전부 미국의 M109를 사서쓰고 있는 상황이었죠.


 

 

 

면허생산권을 미국에 부탁하여 받기로했는데 

 

 단 조건은 주포와 포탑부 일부는 미국에서

 

 사서쓰는 조건이었어요.

 

당시 주포를 생산하는 미국공장이

 

워싱턴주에 있었는데

 

 그곳 하원의원이 동네경제 망한난다고

 

 주의회에 양해각서고 나발이고

 

그 동네공장에 있는 포를 해외에서 생산을

 

 못하게 법안을 내놓았는데

 

이게 통과가 된 것이죠...

 

결국 주포는 기아중공업에서 KH-179 155MM 포신을

 

 잘 만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사서달아야 했어요.

 

당시 생산입찰은 삼성항공이 받아서 정말 4~5년의

 

 단기간에 1,180대나 뽑아댔는데

 

미국도 놀랄 정도의 생산속도였다고 해요.

 

K55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만

 

면허생산을 하였고 지금은 세계최대의 운영국입니다.


 

K55는 원래 18KM/RAP 24KM 사거리에

 

 최대 분당 4발을 쏘는 준수한 놈이었어요.

 

방열이나 사격재원 넣는 것은 반자동식으로

 

 K9에 비교할 수 없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엄청낫던거였어요.

 

 기존 자주포와는 달리 밀폐형 포탑이 있고

 

 알루미늄 합금장갑으로 포병들의 방호력도 좋아졌죠. 

 

 삼성항공에서 면허생산을 위해 많은 기술자료를

 

 미국으로부터 받아서 기술력도 엄청나게

 

 축적할 수 있었어요.

 

 세월이 지나 지금 다른 M109도입국들은

 

창정비를 못해 전전긍긍하고

 

가동률이 떨어지고 있지만

 

 한국군 생산라인과 정비시설이 시퍼렇게

 

살아있어서 지금도 가동률이 좋은 상황이에요.

 

독일/이스라엘/다른 유럽국가들이 부러워 한다고해요^^

 

한국에서 잘 만들어쓰다보니

 

이름도 M109를 버리고 K-55라는

 

독자이름으로 사용중이에요.

 

 단 주한미군은 곧 죽어도 절대 K-55라고

 

 안부르고 M109A2K라고 부르고 있어요.

 

 세월이 강산을 2번은 바꾸면서 K-55도 연식이 되었고

 

K-9에 점차 주력의 지위를 넘기고 있지만

 

절대 이 정도만 쓰고 버릴 포방부가 아니었어요.

 

 K-9을 개발하면서 축적된 기술을 K-55에 드리부어서

 

 개량하는 개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올리는 데

 

 K55A1개량사업이에요.

 

혹은 PIP개조사업이라고도 부르고 있어.

 

목표는 K55를 K9의 70%정도로 성능을

 

높히는 개조작업입니다.

 

 주요내용은 이래와 같다.

 

1. 포의 차제/현수장치/주퇴복좌기를 강화하여 최대사거리 32KM연장하고


2. 방열속도를 K9급으로 강화하고 (약 45초) 아예 스페이드도 때버림.


3. GPS를 달아서 측지속도를 단축시키고


4. 사격통제장치를 K9급으로 교체하기
 
  거의 미군의 주력인 M109A6 팔라딘보다 우수한 성능의

 

 자주포로 대개조를 한다는 것인데 전량을

 

 지금도 개조중이라고 합니다.

 

 

 

 MLRS M270의 직도입과 국산

신형 다련장 천무

 

걸프전에서 한국군 포병장교들은

 

다른 건 몰라도 MLRS의 무시무시한 위력에

 

 깜놀한 상황이었어요.

 

사실 MLRS를 보고 그냥 구룡보다

 

좀더 쌔겠지 정도였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로켓탄의 위력이 한국군이 쓰는

 

155MM 곡사포8발을 동시에 쏘는 것보다

 

 강력하였던 것입니다.

 

한발을 쏘면 그것이 공중에서 자탄으로 분해되면서

 

 포탄낙하지점을 완전히 초토화하는 물건이었죠. 

 

 정말 왠만하면 자체개발을 하던가,

 

아님 최소한 면허생산이라도 하는

 

대한민국이지만 MLRS만큼은

 

정말 급하게 사서 총 58대를 도입하였어요.


 

 


 

 

 


일단 주한미군과 완벽하게 동일한 무기체계여서

 

탄약보급이나 정비까지 큰 문제는 없는 상황이에요.

 

한때 한국군은 MLRS에 너무 놀라서 1개 대대 위력이

 

 155MM 곡사포 36개 대대  위력이 난다고 난리도 아니었죠.


 

 

 

사거리 45KM의 다련장탄은 물론

 

 사거리 160/300KM짜리 에이테킴스 로켓탄도

 

 장만한 상태에요.

 

총12연장의 로켓포탄을 발사가 가능하고

 

 구룡과 달리 로켓발사관을 통채로 넣었다 뻬는

 

 방식이라 재장전에 신형은 3분이면

 

가능하다고합니다.

 

그리고 궤도차량베이스라서 진동이

 

 적어서 명중률도 최고였어요.

 

구룡의 경우 인마살상용 고폭탄만 있었지만

 

MLRS의 경우 이중목적고폭탄이어서

 

전차나 장갑차를 터트리는 게

 

 가능한 강력한 로켓탄이에요.

 

포방부에서는 더 사들이고 싶었지만 포탄/ 차량 모두

 

 가격이 너무 비싸서 결국 포기하여

 

M270를 굴린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형 다련장 발사체인 천무를 개발하게 됩니다.


 

 
 

<신형 국산 다련장 로켓포 천무.. 워낙 신형이어서 

엄청 강한 놈이란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끝판왕 K-9의 개발


 

 

 

 

 

국산 자주포의 개발은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어요,

 

당연히 그 중심에는 ADD가 있었죠

 

70년대부터 선행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KH-179가 대성공을 거두고 M109까지

 

 국산화에 성공을 거두자 ADD의 연구진들은

 

 야전포병장교들과 구체적인 요구성능을

 

 체크해 나가기 시작하였어요.

 

당시 이미 미국은 꿈의 자주포인

 

크루세이더 계획이 있었고 갓독일은 PZH2000사업을,

 

 영국은 AS90사업을 진행을 하던 시기였는데

 

 한국은 약간 후발주자의 위치였었죠.

 

 ADD와 포병, 삼성항공은 이제는 꿀릴게 없다는

 

 입장이었고 의욕적으로 작업을 시작하였어요.

 

당시 ADD의 목표성능발표에

 

육군 포병장교들은 큰 감동을 받았고 적극적으로

 

국방부를 설득하였고 예산확보에 성공하여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던거죠.

 

 그와중에 미국은 럼스펠트 국방장관이

 

 가볍고 기동력있는

 

장비로 개편하는 중이어서 크루세이더계획을

 

 백지화한 상황이었어요.

 

크루세이더는 일단 가격이 너무 비쌋어요.

 

 PZH2000을 4~5대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비싸서 결국 취소시킨 것인데

 

 이 것으로 미군수뇌부와 국방부가 정면대결을

 

하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었고 결국 럼스팰트가

 

사임하는 결과가 발생하였죠.

 

결국 이 일로 주한미군에 한국군 포병에게

 

무시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죠.


 

 

 

 

 

<순탄치 않은 재임시절은 보낸 럼스팰트 국방장관>


 

물론 이게 전부 럼스팰트의 잘못은 아닌 것이

 

미국방산업체들이 정치권에 로비를하면서

 

 엄청나게 폭리를 취하는게 사실이고

 

 이미 미군도 학을 띄는 상황이죠.

 

심지어 많은 친미국가들도 미국제무기를

 

외면하면 지경이이에요. 

 

 지금 미공군 훈련기사업도

 

미국업체들이 엄청난 개발기간과

 

 천문학적인 가격을 부르면서

 

미공군을 질리게 하였고

 

 결국 한국이 T50을 앞세워 강력한 후보로

 

입찰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거에요

 

 

  92년 당시 미국의 방산업체들도

 

한국의 움직임을 눈치까고 공동개발제의를

 

 하는등 분주하게 접촉을

 

시작하였지만 ADD와 삼성항공 모두 추후 수출진행에

 

 발목이 잡힐까봐 모두 거절하였다고해.요

 

야심차게 개발을 90년대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였고

 

 다른 국가에 비해 압도적으로

 

 빠르게 진행이 되고 있었어요.

 

육군과 국방부에 약속한 전력일정인

 

 98년에 맞추어 박차를 가하였죠.

 

 

 


 

 

K10 탄약수송장갑차를 통하여 자동 송탄이 가능하다

 

 K9은 외화별이에도 재미를 봐서 터키에

 

기술수출을 하였는데 그동안 독일제

 

 무기체계를 가지고 있던

 

터키군은 K2흑표전차와 함께 한국군의 무기체계로

 

가져오게 되어서 독일을 따돌리고 방산거래의

 

활성화가 가능해진 소득을 얻었죠


 

 

<포신 길이에서 이미 넘사벽이다.>

 

 

 현재 노르웨이군 입찰에 참여 중인데 

 

 스위스의 M109G, 독일의 PZ2000, 

 

케사르자주포와 경쟁중이에요.

 

M109G와 케사르자주포 성능이 별로고

 

독일의 PZH2000은 발사속도과 포탄적재능력이

 

K9보다 아주 약간 앞서지만 기동력이 딸리고

 

가격이 2배가 넘으므로 K9이 유리한 상황이에요.


 

 

 

<독일연방군의 PZH2000>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주포중에 

 

 유일하게 가격이 2배 비싼

 

독일의 PZH2000만이 K9과 대등한 수준이어서 

 

 많은 외화벌이가 가능할 전망이에요.


 

 

 

<영국 육군의 AS-90>

<

 

폴란드의 경우 포탑은 영국에서 AS-90을

 

도입하고 차재는 국산을 쓰기로 하였는데

 

 폴란드 방선업체가 성능과

 

납기준수에 실패를 하면서 어부지리로  폴란드군으로부터 

 

 차제를 120대 주문받아서 팔아먹고 있어요.

 

 그리고 인도군에서도 약 100여대의

 

발주협상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


[

 

 

 

K9은  K55와 비슷한 수량을 배치할 예정이고 이미

 

운영을 한지가 10년이 넘어서

 

개조작업이 예정되어 있어요.

 

 

 

 

 

105MM 똥포 아직 안죽었다.

105MM 자주포 개조사업

 

한국군에서 약 3,000문의105MM 견인포가 있고

 

 이중에 1000문은 치장중이에요.

 

 즉 아직도 2,000문이 시퍼렇게 굴러다니고

 

있는 것인데 천조국으로부터 받은 것,

 

국내생산한 것까지 모두 350만발의

 

포탄재고가 한국에 있다고합니다.

 

지구상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거에요.

 

즉 퇴역을 시킬래야 시킬 수가 없는 상황인거죠.

 

그래서 포방부에서 약 500문을 5톤 포차에

 

결합하는 개조작업을 하기로 하였고 

 

 보병연대에 4.2" 박격포를 퇴역시키면서

 

이 빈자리에 105MM 자주포 포병대대를

 

 편성하는 것으로 계획중입니다. 

 

 

 

이 자주포는 기존 견인포에 비해

 

운영포병을 11명에서 5명으로 줄이고 K9과 같은

 

신형사격통제장치를 달아서 대포병전에서도

 

전투가 가능한 수준으로 개조하는 작업이죠. 

 

 장전을 재외하고는 모두 K9급의 자동방열,

 

 재원입력이어서 약 56초만에 초탄 발사가

 

가능한 수준이에요.

 

장갑판도 부착해서 포병의 생존성도 높힐 계획이에요.

 

 이것이 예정대로 진행이 되면

 

보병연대의 화력이 강해지면서

 

더 이상 사단사령부의 노예가 아닌

 

연대전투단으로써 탈바꿈하는 거죠.

 

 한화태크윈에서 사업을 받아서 하고 있는데

 

외화벌이를 위해 수출판촉도 열시미 하고 있는 중이에요.

 

 주로 동남아나 남미같은 개도국에서

 

많이 문의가 오고 있다고합니다.

 

 

드디어 세계3위 포병강국 대한민국

 

 포병에 대해 알아보았어요 !!!

 

 

 

 

 전쟁하면 전차의 중요성을 뺴놓을수없겠죠..

 

세계 전차순위 TOP10을 한번 써볼까하는데요 ..

 

의견이나 부족한점이있다면 댓글부탁드려요^^

 

 

 

 

10위 중국의 Type 99

 

 

 

승무원 : 3명

 

중량 : 52t(전투중량)

 

엔진 : 1,200마력(98) , 1,500마력(99)수냉식 디젤

 

크기 : 전장 :11.00m 전고 2.20m 전폭: 3.40m

 

지면압박 : N/A

 

주행거리 : 450km 또는 외부연료탱크를 포함한 600km

 

도로 최고속도 시속 70~80km 야지 최고속도

 

 시속 60km 야지 평균속도 35km

 

도하깊이 : 스노켈 장착시 수심 5m

 

주포 : 125mm활강포

 

 

125mm주포에서 발사 가능한 러시아의

 

 9M 119Refleks(AT-11스나이퍼)대전차 유도 미사일 시스템을

 

 가지고있습니다.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100m ~ 4,000m에 이른다고합니다.

 

주포는 자동장전장치를 이용하여 분당 8발을 발사 할수있구요

 

장전은 유압식이며 전차에 41발의 포탄을 싣는다고합니다.

 

부무장으로는 7.62mm 동축기관총과 전차장용 큘폴라에

 

12.7mm 대공기관총이 장착되어있습니다.

 

포탑의 양측면에는 76mm 84식 5연장

 

연막탄발사기가 부착되어있어요

 

 

 

 

 

 

9위 프랑스 AMX Lecerc

 

 

 

중량: 54.5t
전장 : 9.87m
전고 : 2.53m
전폭 : 3.71m
탑승인원 : 3명
장갑 :
티타늄, 세라믹, 기타 극비 혼합물
주무장 : 120mm CN120-52 활강포
부무장 : 12.7mm
M2HB 중기관총,

 7.62mm AA-52 다목적 기관총
엔진 : V8X-1500 디젤엔진 (Wärtsilä)
마력 : 1500hp
당 마력 : 27.52hp/t
변속장치 : 오토매틱(전진6단, 후진2단)
현가장치 : 유기압 현수장치(고정식)
속거리 : 550~650km
속도 : 71km/h(야지에서는 55km/h)

 

프랑스군의 3.5세대 MBT다. 이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유 프랑스군 기갑사단을

 

 이끌고 파리를 해방한 르클레르(Leclerc)

 

장군이름을 붙였습니다.

 

세계 최초의 3.5세대 전차라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디지털식 사격통제장치와 자동장전장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전차의

 

모든 기기와 장비들을 한 대의 컴퓨터 통제하에

 

 운용하는 베트로닉스를 최초로 구현하면서

 

기존 3세대 전차와 큰 차이가 있다고 해서,

 

 르클레르를 3.5세대로 분류하기 시작했습니다.

 

 

개량형으로 시가전에 맞추어 반응장갑등을

 

추가한 업그레이드버전이 터키 차세대 전차사업에

 

등장하여 K-2흑표와 맞서기도했으나패배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자국의 르끌레르를 2020년까지

 

 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할 계획이라고합니다.

 

 

 

 

 

 

8위 우크라이나의 T84 Oplot-m

 

 

 

T-84는 T-80UD를 베이스로 새롭게 디자인된

 

포탑을 갖추고 능동방어장치인 쉬토라를 장착하였으며

 

 엔진파워를 1000마력을 1200마력으로

 

올린 신형엔진 6TD-2를 장착하였습니다.

 

최초 1994년에 시제차량이 나와 1999년부터

 

 우크라이나 육군에 공급되기 시작됐습니다.

 

해외 수출 실적은 T-80UD 시절에

 

파키스탄에 수출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에서는 PT-91에 물을 먹고, 터키에서는

 

 YATAGAN 형식이 제안되었다가

 

우리나라의 K-2 흑표에게 패하고 맙니다.

T-84는 그 기본이
러시아T-80이기 때문에

 

 T-80의 약점을 대부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친서방 정책을 추진한 우크라이나가

 

여러 서방제 기술을 다수 도입하여 T-84를 개량하였습니다.

 

 

기존 라피라3 주포가 우크라이나제

 

 라이센스 형인 KBA-3로 교체되어 있습니다.

 

성능 차이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T-84의 특징은 1200마력 디젤엔진으로 46톤이라는

 

전차중에서는 가벼운 축에 드는 중량과

 

고출력 엔진의 결합을 통해 톤당

 

마력비 26hp/t로 우수한 기동력과 연비를 발휘합니다.

 

 

7위 일본의 Type 10

 

승무원 3명(지휘관, 포수, 조종수)
길이 9.42 m
높이 2.30 m
폭 3.24 m
중량44.0 t
주무장 120mm 활강포
주포개발 Japan Steel Works, Ltd
사용 포탄 APFSDS, HEAT
사통 장비 레이저 거리 측정기, 열영상 조준경,

 주포 안정화 장치가 결합된 사격통제장비
장전 방식 자동장전장치
부무장 12.7mm M2 중기관총, 74식 7.62mm 기관총
엔진 수냉 4행정 8기통 엔진
마력 1,200 hp
출력/중량 27.27
현가장치 능동형 유기압식
노상 속도 70km/h
무단 변속기
방어력 전면 장갑 KE 800mm 이상 HE 1000mm 이상 방어,

 측면 장갑 - 강철구조물, 증가장갑 상부 장갑 - 강철구조물
증가 장갑 전면, 측면, 상면 (부착가능)
장갑 방식 모듈식 복합장갑

 

10식 전차는 90식 전차 이후 일본이

 

새롭게 개발한 전차로서 90식 전차의 대체가 아닌

 

74식을 교체하기 위한 전차로서 개발되었습니다.

 

 개발 당시 명칭은 TK-X이었습니다

 

주포인 120mm 44구경장 활강포는

 

 Japan Steel Works에서 개발하였으며

 

 새로운 철갑탄의 개발은 2006년 7월 6일에 있었던

 

 미쓰비시 중공업의 "범용기 특차사업본부의 사업설명"이라는

 

 자료를 살펴보면 10식 전차의 탄약개발에

 

 대한 언급이 분명히 나옵니다.

 

따라서 기존에 90式에서 사용되고 있는

 

 JM-33 APFSDS탄 보다 높은 위력을

 

 가질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2001년 정책평가서에서도

 

 "90式보다 고위력화"라는

 

 항목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2008년 2월 13일에 발표한 언론 자료를

 

 살펴보면 포탑측면장갑은

 

교체가 가능한 모듈식을

 

채용하였다고 밝히고 있습니.

 

포탑측면장갑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프랑스의 르끌레르와 거의 같은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크기가 비슷할 뿐

 

분명히 한쪽 측면당 각기

 

 다른 크기의 3개 블록으로 분할을 해놓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모듈식 장갑으로만 쓰이는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6위 영국Challenger 2 (첼린저2)





개발사

Alvis plc, BAE Systems

중량 62.5t
전장 8.3m/11.5m(포신 길이 포함)
전폭 3.5m/4.2m(TES 개수 사양)
전고 2.49m
승무원 4명
장갑재 복합장갑-쵸밤/도체스터 레벨 2
주포 L30A1 120mm 55구경장 강선포
120mm 55구경장 활강포
[3]
부무장 7.62mm L94A1, 7.62mm L37A2
엔진 퍼킨스 CV-12 12기통 디젤엔진 (1200마력)
톤당 마력 톤당 19.2마력
연료 적재 1,592 리터
항속 거리 도로 : 550km
야지 : 250km
최대 속도 59km/h
야지 : 40km
생산량 446대

 

챌린저 2 전차는 제2세대 초밤장갑이

 

장착되어 방어력이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최고 속도는 시속 59Km, 최대 항속 거리는 450Km

 

 알려져,동급 전차 대비 기동성은

 

약간 떨어진다는 평입니다

 

영국 국방성은 1990년대 초 챌린저 2 전차와

 

미국의 M1 에이브람스 전차 그리고

 

 독일의 레오파르트 2 전차를

 

참여 시켜 영국 육군의 차기 전차를 선정했습니다.

 

1991년 6월 챌린저 2 전차가

 

영국 육군의 차기 전차로 선정되었습니다.

 

 챌린저 2 전차는 포탑이 재설계 되어,

 

챌린저 전차와는 다른 모습이 되었습니다.

 

전차 장갑은 제2세대 초밤장갑이

 

장착되어 방어력이 한층 강화되었고,

 

적외선과 레이더 등의 탐지율을 저하시키는

 

스텔스 설계가 도입되었습니다.

 

 또한 전차장용 조준경이 새로 장착되어,

 

 헌터 킬러 기능을 갖게 되었습니다.

 

주포는 L30A1 120mm 강선포가 탑재되어,

 

관통력이 강화된 신형 APFSDS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동성은 이전의 챌린저와

 

 동일한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1993년부터 생산된 챌린저 2 전차는

 

2002년 까지 총 400여 대가 생산되었습니다.

출처:네이버캐스트

 

 

 

 

 

 

 

 

 

 

 

 

 

5위 이스라엘의 Merkaca MK IV

 

제조 : MANTAK / IDF 병기군단

무게 : 65t (143.000파운드)

길이 : 9,04m 폭 : 3.72m 신장 2.66m

인원 : 4명(사령관.드라입.포수 및 로더)

엔진 1,500마력 터보 디젤엔진

연료 : 1,400리터

속도 : 도로 64km 오프로드 55km

 

 

2005년에 이스라엘 군은 첫번째 작전운용

 

가능한 메르카바 Mk 4 전차를 갖춘

 

 기갑대대를 전투 준비가완료되었다고

 

 인증했다고 합니다.

 

현재 이스라엘 군은 메르카바 Mk 4 전차를 갖춘

 

 기갑여단을 최소 2군데 운용 중이라고 합니다.

메르카바 전차의 초기 모델의 초점은

 

 개수 및 현대화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개수 프로그램으로 모든 메르카바 MK 1 전차가

 

메르카바 Mk 2 구성으로 사실상 업그레이드 되었고,

 

모든 메르카바 Mk 1 및 Mk 2전차가 대규모 점검을 받게 될 때

 

 선별된 메르카바 Mk 3 장비도 장착한다고 합니다.

2006년의 레바논 전쟁

 

(Operation Change of Direction)에서의 여파로,

 

이스라엘 정부와 이스라엘 군당국은 메르카바 MBT

 

(Main Battle Tank)에 대한 우선사항을

 

재평가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메르카바 프로그램 (특히 메르카바 Mk 4 생산라인)은

 

이스라엘 정부와 군당국 사이의 이견을 가져왔다고 하네요.

 

 

 

 

 

 

 

4위 미국의 M1A2 (에이브람스)

 

 

중량
 63.0t
 
전장
 9.77/7.93m(+포신/차체)
 
전고
 2.44m
 
전폭
 3.66m
 
탑승인원
 4명 (조종수, 포수, 장전수, 전차장)
 
장갑
 열화우라늄으로 가공된 복합장갑, 반응장갑
 
주무장
 120mm M256 활강포 / 105mm M68A1 강선포(M1, IPM1)
 
부무장
 50구경 M2HB RWS 중기관총 1정,

동축 M2HB 1정, M240 기관총 2정
 
엔진
 제너럴 일렉트릭스 LV-100 다중 연료 가스터빈 엔진 /

허니웰 AGT-1500C 다중 ,가스터빈 엔진(M1A2 이전)
 
엔진 출력
 1,500shp
 
톤당마력
 23.8hp/t
 
변속장치
 앨리슨 DDA X-1100-3B
 
현가장치
 토션 바
 
연료용적
 1500L
 
항속거리
 390km
 
최고속도
 67.7km/h[4] (야지주행시 48.3km/h)

 


M1 에이브람스(M1 Abrams)는

 

베트남 전쟁의 영웅인 미국 장군

 

 크레이튼 에이브람스의 이름을 딴 전차

 

1979년부터 야전부대에 실전배치되었습니다.

 

 가스터빈 엔진을 장비하여 가속능력이

 

 우수하며 최고속도 70km/h,

 

초도배치 당시에는 중량이 55톤 이었으며

 

105mm 강선포에서 이후 개량작업을 통해

 

120mm 활강포를 갖추고 있습니다.

 

적외선암시장치·레이저 거리측정기·탄도계산

 

컴퓨터를 갖추고 있어 주야간 전투가 가능하며

 

 감손우라늄을 이용한 복합장갑을 장비하고

 

대(對)NBC 설비(화학·생물·방사선 무기에 대응하는 것)를

 

갖추어서 이러한 전장 상황에서도 임무수행이 가능합니다.

 

 

 

 

 

 

 

3위 대한민국의 K-2 흑표 (k2블랙팬더)

 

생산업체

현대로템

중량

56톤

크기

전장 7.5m(포신 포함시 10m), 전폭 3.6m, 전고 2.2m

운용 인원

3명(전차장,포수,조종수)

주포

120mm 55구경장 활강포, 탄약 32발 자동장전식. APFSDS 16발 HEAT-MP 16발

부무장

12.7mm K6 기관총. 탄약 12000발 전차장 기관총

엔진

1차 양산분 : MTU MT-883 ka501
2차 양산분 :
두산인프라코어 DV 27K

항속 거리

450km

최대 속도

평지 70km/h, 야지 50km/h


 

주 무장은 기존 3.5세대 전차의 일반적

 

무장인 55구경장 120mm활강포를 채택했습니다.

 

 이 포는 기존 44구경장 120mm 전차포 보다

 

관통력이 높아졌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입니다. 

 

사격통제장치는 4세대  사격통제장치가 탑재됩니다.

 

이  장치는 목표물의 자동획득 및

 

자동추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목표물 탐지 및 선택과 동시에 사격통제 시스템은

 

 전차 차체의 움직임과 상관없이

 

포신과 포탑을 움직여 목표물 조준이 가능합니다.

 

 레이저 거리측정으로 목표물의 거리를 계산하고,

 

포탄이 날아가는 탄도를 예측하여 발사각을

 

 조정하는 탄도보정이 자동화되어 있습니다.

 

 포탄의 장전은 자동장전 시스템이 도입 되었습니다.

 

포탑의 상부에 동적포구감지기는 포신의 상태를 점검,

 

 사격통제시스템에 보정 데이터를 입력해주는 덕분에

 

포수는 목표물을 선택하고 포를 발사 하기만하면 됩니다.

 

 주포와 사격통제 시스템뿐만 아니라, 다른 전차와 데이터를

 

 공유하면서 통합된 전투가 가능하도록 설계 되었습니다.

 

 

더 많은 내용은 >>>> http://kimssine51.tistory.com/72

 

 

 

 

 

2위 러시아의 T-90MS Tagil

 

 

 

 

 

전투 중량 46.6t

전장 9.63m 전폭 3.78m 전고 2.22m 

 엔진출력 1,000 마력(HP

 최고속력 60Km 항속거리 550Km

 승무원 3명

무장 2A46M

 125mm 활강포,

7.62mm 동축기관총,

12.7mm 중기관총

 

 

  T-90 전차는 현재 러시아 육군의 주력 전차이며,

 

1,600 여대가 생산되어 러시아를

 

 포함하여 5개국에서 운용 중에 있습니다.

 

T-90 전차는 T-72 전차의 차체를 사용함으로써,

 

운용 유지 측면에서 T-80 전차에 비해 우수했습니다.

 

 T-80 전차의 경우 가스터빈 엔진을 채용했는데

 

기동성은 우수했지만, 디젤엔진을 장착한 T-72 전차에 비해

 

연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이밖에 T-72 전차의 차체를 사용함에 따라,

 

대량으로 공급된 T-72 전차의 차체부품을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방어력이 취약했던 T-72 전차의 오명을 벗고자,

 

T-90 전차는 방어력을 대폭 향상 시켰습니다.

 

T-90 전차의 전면장갑은 복합장갑을 사용했으며,

 

추가적으로 반응장갑(Reactive Armor)을

 

광범위하게 채용했습니다.

 

반응장갑은 금속상자 내부에 장갑판재와

 

 폭약을 넣은 것으로, 전차의 장갑표면에 부착합니다

 

-90 전차는 방어력과 함께 생존성도 향상 시켰으며.

 

T-90 전차의 포탑에는 Shtora-1

 

능동방호체계를 장착했습니다.

 

 능동방호란 적의 다양한 대전차 위협 수단으로부터

 

전차의 생존성을 보장하기 위해,

 

위협을 조기에 탐지하여 대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T-90 전차에 장착되는 Shtora-1

 

능동방호체계는 레이저 신호 감지기와

 

적외선 방사 장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전차나 대전차 미사일은 레이저로

 

거리를 측정하고 사격을 합니다.

 

 T-90 전차는 레이저 신호 감지기로 적의 공격의도를 감지하면,

 

연막탄 발사를 통해 연막차장을 펼치고

 

 바로 회피기동을 실시합니다.

 

 또한 대전차 미사일의 경우 적외선 방사 장치를

 

 사용해 강렬한 적외선을 발산하여,

 

 대전차 미사일 유도 체계를

 

교란시켜 미사일을 빗나가게 합니다.

 

T-90 전차는 1999년 제2차 체첸 전쟁에

 

최초로 실전에 참가했습니다.

 

당시 전투에서 T-90 전차 한대는 7발의

 

 RPG 대전차 로켓포를 맞고도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T-90 전차는 1993년 등장 이후 지속적으로 개량되었으며,

 

러시아 육군은 1999년부터 엔진 출력이

 

 향상되고 사격통제장치가 향상된

 

T-90A 블라디미르(Vladimir) 전차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군은 T-90A 전차를 성능이

 

 향상된 T-90AM 전차로 개량할 예정입니다.

 

 

출처:네이버캐스트

 

 

 

 

 

 

 

 

 

 

 

 

1위 독일의 Leopard 2A7 (레오바르트2)

 

길이 : 10,97m 넓이 4,00m 높이 2,64m

중량 : 67.5t

엔진출력 : 1,500 PS / 1,100kw

최고시속 : 72km

운용반경 : 450km

주무장 : 55구경장 120mm 활강포

부무장 : 12,7mm 1문 ,40mm

고속유탄발사기 1문 7,62mm 공축기관총1문

 

 

각종 첨단 디지털 장비들이

 

 대거 장착되고 있습니다.

 

이중 네트워크를 강화한 NCW와 C4I 시스템을

 

 비롯해 하이브리드 네비게이션 시스템,

 

열 이미징 및 레이저 거리 측정기,

 

드라이버 나이트 비전 등이 추가됐습니다. 

 

소형 카메라 설치로 근접 관측 능력을 확보하였으며

주포 동축에 탐등을 설치하여

 

탐지 능력을 개선하고 차체 전면에

 

도저 블레이드를 장착하여 시가전에 대응하고

 

차량 전체에 시가전 대응 위장도색 등이 주된 개량점입니다.

 

 

 

으하 드디어 끝 너무 오래걸렷네요

 

 즐겁게 보셧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에 자랑스러운 국산전차 K-2 흑표를 알아보도록 할게요.

 

 

3.5세대 전차 K-2 일명 흑표라는 애칭을 가지고있구요. 블랙팬더라고도 불리웁니다.

 

생산업체 현대로템
중량 56톤
크기 전장 7.5m(포신 포함시 10m), 전폭 3.6m, 전고 2.2m
운용 인원 3명(전차장,포수,조종수)
주포 120mm 55구경장 활강포, 탄약 32발 자동장전식. APFSDS 16발 HEAT-MP 16발
부무장 12.7mm K6 기관총. 탄약 12000발 전차장 기관총
엔진 1차 양산분 : MTU MT-883 ka501
2차 양산분 : 두산인프라코어 DV 27K
항속 거리 450km
최대 속도 평지 70km/h, 야지 50km/h

 

출처:나무위키

 

 

구릉지가 많은 한반도의 특수한 작전환경상 장갑과 화력, 기동성같은 통상적 성능도 뛰어나지만

 

타국 MBT에 비해 자동장전장치나 전자장비에 비교적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자동장전장치를 채용해서 탄약수가 필요없기에 운용 인원이 1명 줄었구요.

 

 또한 화생방 방호 능력도 좋아져서 양압장치를 갖췄고 수심 4.1m까지 도하가 가능해

 

한반도 대부분의 강을 별도의 도하 장비없이 도하할 수 있다고합니다.

 

60도의 가파른 언덕도 잘올라갈수있구요 높이 1미터 30센치 정도의 수직 장애물도

 

넘어갈수있다고하니 산악지역이많은 우리나라환경에 최적화되있는 전차에요.

 

표적획득 능력도 좋아지고 방어력도 좋아져서 생존성도 상승했습니다.

 

 

K-2에 탑재되어있는 무기는 라인메탈사의 55구경 120mm 활강포가 1문이있구요.

 

7.62mm 기관총이 1문.  차장이 조작할수있는  k-6 12.7mm 기관총이 1문있어요

 

 

포 공격이 필요할떄는 활강포로 하구 저의 보병 및 헬기들을 상대할때는 기관총 2문을 작동하여서 적을 섬멸합니다.!

 

주포인 활강포는 장전이 자동화 시스템으로 신속하게 방렬후 연속 포사격이 가능하게 설계가 되어있구요

 

포탑 후부에 벨트식으로 된 자동화 장전 장치가 있습니다.

 

 

포탄은 자동 장전장치에 16발이 탑재되어 있구요 24발은 차내에 탑재되어있습니다.

 

총 주포의 포탄은 40발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구요 12.7mm 기관총은 3,000여발을 장전하고 있습니다.

 

7.62mm 기관총 탄약은 무려 12,000여발을 탑재하고있다고합니다!!

 

 

 

 

 

K-2흑표의 방어체계는 기본적인 두꺼운 장갑이지만 보병들의 접금을 막기위한 근접 방어탄도 있어요

(공중에서 폭발하여 파편으로 전차주위에 있는 보병들을 섬멸)

 

또한 적외선 유도미사일을 피하기위한 적외선 플레어가 있어서

 

어느정도의 유도미사일에 대한 방어능력도 지니고있습니다.

 

 

그리고 2016.05.13일 우리 국방부가 북한 전차전력이 증감하에따라

 

K-2흑표 MBT를 100여대 추가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합니다.

 

이 방안이 통과되어 K-2흑표 100여대가 추가도입이 된다면

 

사단의 M계열 전차를 모두 대체할 것이라고 합니다^^

 

 

 

 

6ㆍ25전은 끝을 맺지 못한 전쟁입니다.

 

국토는 전쟁 이전처럼 계속 분단된 상태고,

 

 북의 계속되는 도발로 인해 이전보다

 

더 팽팽히 대치중인 상태입니다.

 

정확하게 3년 1개월 2일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었던

 

6ㆍ25전쟁은 지금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1950년 미군 제7보병사단과 국군17연대의 도보행군 모습>

출처:https://commons.wikimedia.org/

 

그런데 3년이 넘는 시간

 

이 전쟁을 분석해 보면 군사적으로

 

가장 극적인 전투가 벌어진 순간은

 

 전쟁 초기 1년간뿐이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한지 거의 1년이 되는

 

1951년 5월말의 중공군 제6차 공세 이후부터

 

 휴전까지 전선의 변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쉽게 말해 전쟁 초기 1년 동안

 

서울의 주인이 무려 4번이나 바뀌었을 만큼

 

남북으로 무려 2,300여 킬로미터를

 

 쉴 새 없이 오르내렸지만, 나머지 2년 동안은

 

겨우 50여 킬로미터 정도를 밀고

 

 당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 한반도에 내려온 중공군은 엄연히

 

교전 대상이었는데 단지 이들을 만주로

 

몰아낸다고 과연 중국이 전쟁을

 

포기할 것인지는 의문이었습니다.

유엔군 입장에서 압록강과

 

두만강은 정치적 한계였지만,

 

참전을 단행한 중공군 입장에서는

 

 단지 하나의 강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정치 외교적으로 종전을 이루지 못하는

 

 한, 군사적 공세로 전쟁을

 

마무리 짖지 못할 가능성이 컸고,

 

때문에 군사적으로 우위에 섰음에도

 

 재 북진을 주저한 것입니다.

 

 

 

중국도 미국도 전쟁을 일방의

 

 승리로 끝낼 수 없다고 판단이 서자,

 

 지지 않는 선에서 전쟁을 마무리

 

짖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

 전쟁 이전과 비슷한 상태로 전선이

 

 형성된 바로 지금, 휴전을 하는 것이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었습니다.

 

 결국 회담은 시작되었고, 그러다보니 전쟁의 목표는

 

 휴전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로 6ㆍ25전쟁 후반기를 상징하는

 

 고지전이 개시된 것입니다.

 

 

 

 

출처: 국가보훈처

 

당시 전선의 중앙인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

 

 있던 무명의 395고지는

 

 특히 중요한 위치였습니다.

 

연일 혈전이 계속되던 철원-평강-김화로

 

 이어지는 철의 삼각지 중에서

 

이 고지가 서남쪽 꼭짓점의 견부(肩部)를

 

구성하게 되자 순식간 전쟁의

 

핵심지역으로 부각되었습니다.

 

 험준한 산악이 연속하여 하늘과 맞닿은 강원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야산에 불과했지만

 

 이곳에서 국군의 전설이 피로 쓰여 지게 됩니다.

 

 

 

<철의삼각지: 철원,평강,금화(김화)지구를 삼각형으로

 이은 전략적요충지 서울과 그밖의

여러곳을 연결해주는 교통중심지였다>

395고지를 아군이 점령하더라도

 

 북쪽에는 이곳을 내려다보는

 

더 높은 고지들이 많아

 

 크게 유리한 측면은 없었지만, 반대로 적이

 

 이곳을 차지하면 철원~김화로 이어지는

 

 평야지대를 모두 적에게 내주고

 

아군은 약 15킬로미터 정도 뒤로 물러나야 하며

 

 중부전선의 주요 통로를

 

차단당하게 되는 위치였습니다.

 

예를 들어 북악산을 적이 차지한다면

 

남산까지 물러나 방어선을

 

 쳐야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395고지에서 남동쪽으로

 바라본 철원평야 일대>

 

1951년 10월 17일을 기하여 미 제3사단과

 

교대한 제9사단이 계속하여

 

395고지를 점령하고 있었는데

 

그때까지 별다른 이상 징후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1952년 10월이 되면서

 

 쉽게 타결될 것 같은

 

휴전 회담이 결렬되자 전선은

 

상대에게 더욱 압박을 가하기 위해 격화되었고

 

 395고지 일대의 상황도

 

급박하게 돌아갔습니다..

 

395고지를 공격하려 북쪽 효성산에 3개 師(사단)로

 

 구성된 중공군 제 38군이 집결하였는데,

 

 

 

 

 이들은 여타 중공군 부대와

 

달리 이곳에 투입을 목적으로

 

오랫동안 후방에서 훈련받았고 화력도

 

 막강하게 편성하여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만큼 적도 이곳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고 격전은 예견되었습니다.

 

아군에게 유리한 상황이라면 화력이었는데,

 

 문제는 피아가 뒤엉켜 싸우는

 

 고지전에서 화력지원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 "고지전" 中>

 

당연히 병력이 많은 쪽이 우세할 수밖에 없고,

 

 이것은 인해전술을 펼치는 중공군이

 

 절대적으로 유리하였습니다.

 

 때문에 아군은 반드시 고수할

 

고지만 선별적으로 확보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필요한 손실을 막기

 

 위해 전략적으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395고지는 반드시 사수해야 했고

 

 당연히 피를 쏟아 부어야 했습니다.

 

 승리의 관건은 집결한 적을 향하여

 

 화력을 집중시킬 타이밍이었습니다

 

 

 

 

 

1952년 10월 6일, 적들이 역곡천을 고의로

 

 범람시켜 아군의 증원을 차단시킨 후,

 

제30연대가 점령하고 있던 395고지 일대의

 

 진지에 격렬한 포격을 개시하면서

 

 피의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포격 후 연이어 개시한 중공군의 3차례 공격을

 

 아군이 모두 격퇴하였지만 병력을

 

 대폭 증강한 적이 너무 지쳐있던 아군을

 

 

10월 7일 재차 공격하자 고지가 피탈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습니다.


 

<점령된 고지위에 남겨진 적 시신>


후방에 대기하고 있던 제28연대가 즉시 반격에

 

 나서 고지를 탈환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아군은 최대한 불필요한 사상을 막고

 

전투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예비대를

 

적절히 활용해 순차적으로 작전에 투입하였습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아군의 희생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고

 

 395고지는 아군과 적들이 흘린 피로 뻘겋게

 

 물들어가면서 양측 모두 인명 피해가

 

 급격히 늘어갔습니다.

 

 



전투 개시 불과 3일이 경과하였을 때,

 

 돌아가며 방어와 탈환에 나섰던

 

제28, 30연대들은

 

 더 이상 전투에 투입되기 곤란할 만큼

 

출혈이 심하였습니다. 하지만

 

적 제113, 114사 또한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전선에서

 

물러나야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양측 모두 예비로

 

 아껴두었던 제29연대와 제112사 마저 동원되었고

 

 이들 또한 처절하게 피를 흘려 고지를 적셔갔습니다.

 

1952년 10월 6일부터 장장 열흘에 걸친

 

전투로 무려 12차례의 쟁탈전이 벌어졌고

 

7번이나 고지의 임자가 바뀌었습니다.

 

 

<영화"고지전"中>

 

 

 

해발 400미터도 되지 않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양측이 퍼부었던 포탄만 해도 무려 30만

 

 발 정도로 추정되고 하루 동안에 주인이 서로

 

 뒤바뀐 경우도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아군의 인내심은 중공군을 압도했고

 

이런 놀라운 9사단의 모습에 중공군은

 

서서히 질려갔습니다.

결국 10월 15일, 9사단의 놀라운 분투에

 

중공군은 백기를 던졌습니다.

 

사실 중공군 38군은 지구에서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더 이상 투입할 자원도 없었습니다.

 

 고지 주변에서 확인된 중공군 시신만도

 

1만 4,389구였는데 이는 38군의 60퍼센트 정도였고

 

 부상자까지 따진다면 38군이 전투를

 

지속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한마디로 무참하게 녹아버린 것이었습니다.

 

아군의 피해도 컸습니다. 3,146명의 국군이

 

고지를 사수하기 위해 희생됐습니다.

 

 

 

 

<영화"고지전"中>

 

 하지만 전쟁 내내 국군이 하나의 거점을

 

 사수하기 위해 이렇게 엄청난 희생을 각오하고

 

 대대적인 승리를 거둔 경우도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이 전투의 후유증이 얼마나 컸던지

 

중공군이 더 이상은 피를 부어대는

 

고지전에 매달리지 않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병력을 마구 소모할 줄만 알던

 

중공군도 무서움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국군은 철원평야를 아군의 통제 하에

 

 두면서 작전 주도권을 계속

 

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95고지는 전투 중 실시된 엄청난 포격으로

 

말미암아 높이가 1미터정도

 

낮아졌을 정도로 황폐화됐는데,

 

능선의 모습이 마치 말 등처럼 생겼다 하여

 

이후 백마고지로 명명되었고 국

 

군 역사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적 1개 군단을 궤멸시킨 제9사단에게는

 

 백마부대라는 영광된 호칭이 부여되었습니다

 

 

한국군 부대의 전투능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과 미군은 21만 9954발,

 

 중공군은 5만 5000발,

 

총 27만 4954발의 포탄을 쏟아부었습니다.

 

한국전쟁 중 단일 최다 포탄소비를한 전투입니다..

 

 

 

 

 

한국군과의 전투를 거의 연전연승으로

 

 자랑하는 중국군의 궁식전사에도 드물정도로

 

한국군의 승리를 인정하는

 

 전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백마전투에 백마3군신이라

 

불리우는분들도 기억해주시길바랍니다..

 

제30연대 제1대대 제3중대 제1소대장

 

 강승우 소위 . 요봉규 하사 . 안영권 하사 등은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공격정면에서

 

지형상 포병 및 공군 화력으로

 

 도저히 제압할수없는

 

난공불락의 적 특화점에 수류탄 다발을 안고

 

 육탄 돌입하여 파괴함으로써

 

국군이 백마고지를 탈취하는데

 

절대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이들이 바로 오늘날까지 백마고지 3군신으로

 

 불리우고있는 용사들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희생하신

 

그분들이 있기에 우리가 지금

 

 있는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의 숭고한 헌신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다도 [茶道] 차를 달여 손님에게 권하거나 마실 때의 예법

 

차는 5천년의 오랜 역사를 거치며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알려진 여러 가지 질병치료효과떄문에 귀한 약으로 사용 되었어

 

귀한 약용품 이자 기호식품으로 발전한 차는 왕실이나 귀족들의 제례용으로 사용되었고 그에 차를 마시는 예법이 생겨나게 된거지

 

 

일반 사람들이 차에 입문 해보려고 알아보다가 처음으로 방문 하는곳이 보통 전통찻집이나 중국찻집이다

 

방문하면 다 그런건 아니지만 보통 한복입은 아저씨들이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다도에 대해 일장연설이 들어가면서

 

각종 다도 절차를 진행하면서 차를 우려주는데 이런게 나쁘다고 말할순없지만 너무 번거롭고 불편하게 느껴져

 

내가 볼 때 바쁜 현대인들에게 차라는 정말 좋은 기호식품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봐

 

뭔가 수행하거나 도를 딱는 사람이 아니고선 불필요하게 보여진다는거지

 

노자의 도덕경 첫머리에 이런 구절이 있다


 

 

 

 도가도비상도( 道可道非常道 )

 

도를 도라고 말하면 (도가도) 그것은 늘 그랬던 도가 아니다 (비상도)

 

추상적인 개념이라 너무 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난 이 자리를 빌려 이렇게 해석하고 싶어

 

다도라는 것을 틀에 박힌 옛 예법 따위로 규정지어버린다면 그건 더 이상 다도라 부를수 없다

 

시대는 변화하고 그 변화에 맞춰 예법 역시 변해야 된다고 봐

 

해서 불필요한 허례의식의 예법 따윈 잠시 제껴 두고 차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귀찮음 따위 싫어하는 사람들 만의 다도를 이야기해볼게

 

 

 

목차

. 서론

. 차가 유익한 이유

. 차를 마시는 방법

IV. 차의 종류

1. 백차 2. 녹차 3. 청차 4. 홍차 5. 흑차

 

1편에서 서론. 유익한 이유.

2편에서 차 마시는 방법 차 종류 설명 살짝

3편부터 8편까지 각 차마다 1편씩 할애해서

 

백차(월광백,백호은침) 녹차(한국녹차.용정차) 청차(철관음,대만우롱차,봉황단총)

홍차(기홍,전홍,랍산소우총,대만계 홍차) 흑차( 각종 보이차)

직접 찻잎 사진과 차 우리는 사진을 직접 찍어 올리면서 설명해볼게

 

 

인간의 생명을 단축하고 노화를 촉진하는 직접적인 원인인 활성산소(유해산소)

 

 

 요즘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앓고 있는 질환 중 상당수가 이 유해산소와 연관이 있어

 

현대인들은 생체의 과잉활성산소와 과산화지질에 의해 생기는 질병시대에 살고있어

 

이런 활성산소(유해산소)를 스트레스 산소라고도 부른다


 

 

 화라는 책을 쓴 탁닛한 이라는 스님은 우리 마음 한가득 독이 퍼져있다고 했어

 

그 독이 평상시 우리 마음속에 숨겨져 있으나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으면 반사적으로

 

마음 한가득 퍼지고 우리는 그 독으로 인해 불행을 느낀다고 하네

 

그 독은 바로 두려움.절망.미움,응징같은 감정이며 이 독을을 묶어 화(anger)라고 표현했어

 

화는 만병의 근원이며 유해산소를 만드는 지표이기도 해

 

 

이런 유해산소를 없에는게 바로 항산화제야

 

 

 

 

항산화제는 인체 내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효소계 항산화제

 

그리고 외부로부터 음식등으로 공급받는 비효소계 항산화제가 있어

 

이 비효소계항산화제 즉 다량의 항산화제가 포함된 것으로 10대 건강식품이 선정되었는데


 

 

 

야채에 토마토,시금치,귀리.마늘.브로콜리.견과류

과일에 블루베리

생선에 연어

술은 적포도주 

음료는 차가 선정되었어

 

이들 10대 건강식품의 공통점은 뭐 당연하겠지만 엄청난 항산화물질들이 함유되어 있다는거지

 

이들 음식에 산화방지제로 주목되었던 물질은 비타민인데

 

요즘 산화방지제 연구대상의 관심이 비타민에서 폴리페놀이라는 물질로 옮겨가고 있다

 

이유는 비타민류에 비교해볼떄 폴리페놀이 몇십배에서 100배이상 항산화 효과가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기 때문인이야

 

10대 건강식품에서 폴리페놀이 가장 많이 포함되어 있는 식품이 바로 차이고

 

적포도주에도 조금 있는데 차에 비할게 안돼


 

 

 폴리페놀의 주성분이 카테킨인데 이 카테킨이 항혈전증,항동맥경화,항염증등의 효과가 있다는 논문들이 계속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야

 

폴리페놀 말고도 찻잎에는 비타민A,E가 상당량 함유되어 있어

 

비타민E 역시 강력한 항산화제로 성인병 예방에 큰 도움을 주는 물질임

 

근데 아쉽게도 비타민A,E는 물에 녹지 않는 성분으로 찻잎자체를 뜨거운물에 우려도

 

용출되지 않어 갈아서 찻잎자체를 먹지않는이상 섭취하기 힘들지

 

( 이런면에서 일본 말차를 마시는 방법인 점다법 찻잎을 갈아마시는건 참 좋은거같다)


 

 

 찻잎 가루내는중


 

 

폴리페놀은 굉장히 떫고 쓴맛이야

 

몸에 좋은 약은 쓰듯이 차 역시 굉장히 쓴맛이 강한 폴리페놀 그리고 강력한 항산화제 효과탓에 예로부터 약제로 사용되었는데

 

차는 폴리페놀 말고도 또 다른 중요한 성분이 있어

 

바로 아미노산

 

아미노산은 굉장히 감칠맛과 단맛을 내는 성분으로 이 성분탓에

 

약재정도로 사용되던 차가 기호식품으로까지 격상하게 돼

 

찻잎에서 물에 가장 잘 녹는 성분은 아미노산인데 찻잎을 우렸을 때 가장 빨리 나오는 성분이기도 하다 반면에 폴리페놀은 가장 늦게 나오는 성분이고

 

해서 고급녹차를 마시는 것을 보면 우리는 속도자체를 아주 짧게 우려

 

첫물에 3~5??? 두 번째 우릴 때 역시 10초안짝?

 

이렇게 짧게 짧게 우리면 쓴맛의 폴리페놀은 적게 용출되고 감칠맛,단맛의 아

 

미노산만 많이 나오기 때문에 굉장히 달달하게 마실수 있게 되는거야

 

 

근데 위에까지 읽어보니까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    강력한 항산화제인 폴리페놀을 많이 못먹게 되잖아 라고....

 

뭐 어쩌겠어 단맛만을 좋아하는게 인간이거늘

 

차 자체를 기호식품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대다수 짧게 우려 아미노산을 즐기게 되는거고

 

의학이 어마어마하게 발달된 현대에 차 자체를 약으로 볼순없지만 그래도 차의 약효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아주 길게 우려서 최대한

 

폴리페놀을 용출시키고 찻잎마저 가루내어 마시게 되면 유익한 모든 성분을 섭취하는거겠지

 

의학이 발달하지 않던 예전엔 저렇게만 찻잎을 먹었어도 상당히 건강에 도움이 되었을건 의심할 여지가 없어

 

그렇다고 아미노산자체가 단순히 단맛만 낸다고 볼순없어

 

아미노산에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데아닌이라는 성분인데

 

지구상에서 찻잎 외에 다른 식물에서 발견되지 않은 성분이다 몇몇 버섯종류에서 미량 발견되었지만 찻잎의 데아닌에 비할바가 아니고

 

위에서 불필요한 허례의식뿐인 다도라고 했지만 사실 다도는  차라는것을 매개로 삼아 도를 펼치는 과정이야

 

다도는 자아의식이 불안정한 우리들에게 자아의식을 넘어서 더 깊은곳에서  참된 자아를 발견하고 정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행위이지

 

 

현대의학에서 고통을 덜어주는 의약품 중 몰핀이라는 것이 있어

 

몰핀은 아편의 주요 성분으로 강력한 진통제인데

 

이런 몰핀보다 몇백배 강한 진통작용을 하는 물질이 채내에서 만들어져

 

그건 바로 엔돌핀 

 

엔돌핀은 몸안에서 만들어지는 몰핀이라는 뜻인데 체내에 엔돌핀이 농도가 높을수록 행복도도 비례해서 높아져

 

엔돌핀은 체내에서 자동으로 생산되는 것은 아니고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야 생산되는 물질이야

 

지금은 돌아가신 황박사가 웃음전도사 엔돌핀전도사셨지엔돌핀은 한번 분비되면 그 효과가 5분정도임

 

그래서 이 엔돌핀을 계속 분비시키려면 계속 즐거운 생각, 행복한 마음을 유지시켜야 하는데 쉬운건 아니지

 

연구에 따르면 깊은 명상에 빠졌을 때 뇌의 주의력을 관장하는 영역이 활성화가 되고 위치나 방향을 관장하는 영역은 비활성화가 돼

 

위치나 방향을 관장하는 뇌의 영역의 신호가 차단되면 자아의 경계가 사라지며

 

무한의식을 체험하게 되는데 이때 사람들은 행복감을 느낀다고 하네

 

고대 수행자들이나 승려들이 명상을 하는 이유가 바로 저기에 있어 명상을 통해 무한의식을 체험하면서 찾아오는 무한한 즐거움

 

이런 즐거운 상태이거나 깊은 깨닮음을 얻을 때 측정되는 뇌파가 알파(α)파인데

 

데아닌을 섭취하면 바로 이 알파파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마음이 편안해져

 

지구상의 생명체 중 오직 찻잎에서만 다량 함유하고 있는 물질 데아닌이 바로 

 

 우리들에게 별다른 부작용 없이 행복감을 안겨주는 물질인것이야

 

이게 바로 우리 여러분들이 차를 마셔야하는 이유인 것이다

 

모두들 화를 가라앉히고 매사 고마운 마음 행복한 마음 착한 마음 갖자

 

 

 

 

 

 


 

 

 

 

미군은 육군 특수부대에

 

배치될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미니 드론 '블랙호넷(검은 말벌)'

 

 

영국군이 2012년부터 사용한

 

이 드론에 관심을 가진 미 육군은 지난해

 

야전배치를 위한 시험을 마치고

 

올해부터 배치할 것이라고 하네요.

 

 적외선 열영상 카메라를 탑재한

 

 블랙호넷은 소리 없이 적에게 접근해 위치와

 

동태를 파악해 아군에게 영상을 보내는

 

탁월한 성능을 가졌다고합니다 엄청무섭죠.

 

 

 

블랙호넷은 지금까지 야전에

 

배치된 드론중 가장 작은크기에요

 

드론 강국인 미국이 아니라 노르웨이의

 

프록스다이내믹스라는 업체가 만들었다고합니다.

 

창업자인 페테르무렌이 설계한

 

 드론의 정식 명칭은 PD-100 블랙호넷입니다^^

 

 

헬기모양의 블랙호넷은 무게가

 

약 18 그램에 불과하구요 회전날개 길이가 12cm,

 

동체기리는 16cm정도입니다..

 

 

 미국의 군사용 드론 등을 제작하는

 

 에어로바이런먼트사가 개발한 소형드론

 

와스프나 허밍버드(벌새)보다 작아요.

 

 

와스프 

허밍버드

 

 고해상도의 주야간 감시카메라를

 

내장한 와스프는

 

길이 25.4cm,무게 453g의 크기에요.

 

허빙버드는 무게 19g에

 

날개길이 16cm, 몸길이 8.4cm로

 

 작지만 추진기나 프로펠러 없이

 

날개를 퍼덕이며 나는 게 특징입니다.

 

벌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어요.

 

창틀에 앉아서 실내를 감시할 수 있지만

 

카메라 해상도가 낮은 게 좀 아쉬운점이라고합니다.

 

 

날씨에 따라 시속 27~38km의 속도로 1km

 

면적을 정찰할 수 있으며 25분 이상

 

공중에 떠 있을 수 있어요.

 

 

 

이 드론의 대당 가격은 4만 달러(4500만 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구요.

 

 

 

 

미국 CIA에서는 모기를 닮은 비행체를

 

개발하여 적진에 침투시켜 타겟에 공격을

 

가하는 것을 연구중에 있습니다.

 

이처럼 초소형 비행체의 개발은

 

그 쓰임새가 무궁무진합니다.

 

프로펠러 방식으로 나는 이 비행체는

 

야간에 LED조명으로 인하여 UFO

 

 종종 오인되기도 합니다

 

 

 

 미래의 전쟁 무기인 초소형 드론은

 

 비밀리에 임무수행을 위해서 정보수집을 하고

 

침투를위하여 현장모습을

 

비밀스럽게 알아낼수있어서

 

더 개발될거같구요..

 

 

사실 이런 드론들 발전이 한편으로

 

 신기하면서 반갑기도하지만

 

무섭기도한 느낌이 듭니다.

 

 

 

이미 엄청 작은 드론들이 많이 발전했구

 

 

멀리서보면 드론인지

 

진짜 모기인지 구분이 안갈정도로

 

작고 모양도 다양한 드론이

 

 개발되고있다는게..

 

정말 밤에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도

 

 않을 벌레같은 드론들이 날아다니지

 

않을까요 ^^

 

 

대부분의 군필남자들은 21개월 이상을 이 총과 같이 동고동락하며 지냈을테고

 

나 또한 K2 소총을 들고  군생활을 했어요.

 

 

따라서 상당히 많은 남자들이 K2 소총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텐데

 

 

 저의 추억이 깃든 총이고

 

우리나라 제식소총이니 당연히 써야지 라는 생각으로

 

쓰게 되었어요.

 

 

 

제원부터 알아볼게요.

 

 

 

K-2 자동소총 (K-2 Assault Rifle)

 

대한민국 군대의 제식소총

 

 

사용국가 : 한국, 페루, 나이지리아, 레바논, 이라크 정부군 ..etc

 

사용기간 : 1986년 - 현재

 

생산연도 : 1984년 (대우정밀, 現 S&T 모티브)

 

무게 : 3.26 kg (30발 탄창 장전시 3.7 kg)

 

길이 : 970mm (개머리판 접을 시 730mm)

 

사용탄환 : 5.56 x 45 mm NATO (K100), .223 Remington (KM193)

 

장탄 수 : 20발 / 30발 탄창

 

유효사거리 : 600 m (K100) 450 m (KM193)

 

최대 사거리 : 2653

 

 

 

 대한민국 제식소총 K2 자동소총입니다.

 

현재 배치가 끝났으며 후방 또는 해군, 공군에서는 아직 M16A1을 쓰고 있어요.

 

해군에서는 전투함 및 특수전 부대에서 사용중이며 공군에서는 방공포대 병력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정확한 통계가 아닌, 부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해요.

 

 

육군부대 중에서도 후방부대에서는 아직 M16A1을 사용중인 부대가 많아요

 

최근 전역했음에도 K2 소총을 만져본 적 없는 예비역들이 꽤나 있는거같더라구요


 

 

<분대전술 훈련중인 112 타격대의 모습>

 

112타격대는 경찰서마다 배치된 분대 단위의 소규모 부대로 대간첩, 대테러 작전을 수행하고 있어요.

 

 

대한민국 경찰에서도 M16A1과 같이 운용중인데

 

경찰에서는 유사시에 대비해 구비해놓은 물량 외에 경찰서 112타격대 및 공관 경비부대를 포함한 의경들이 사용하고 있어요.


 

 

<前 제식 소총인 M16A1 의 모습>

 

아직 상당수의 M16A1이 현역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예비군에서 많이 운용되고 있어요.

 

 

70년대 한국이 콜트 社의 M16A1을 라이센스 생산, 제식소총으로 지정했으나 60만 정 제한이라는 계약 조건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께서 한국산 소총의 개발을 지시하셨고

 

 1972년 국방과학연구소 (ADD)에서 개발을 시작, 많은 시험용 소총이 제작된 끝에

 

 1984년부터 K-2 양산이 시작되었으며 1986년부터 배치가 시작돼요.


 

 

 

1974년 XB-1 소총 개발을 시작으로 점차 개량, 발전되어 만들어진 K2 소총의 모습


 

무게는 3.2 kg으로 M16A1 (2.89kg) 보다는 좀 더 무거우며, 길이는 970mm로 M16A1 (986mm)보다 좀 더 짧구요.

 

다른 나라의 제식소총에 비해서 가벼운 무게, 적당한 길이를 가지고 있어요.


 

 

 

사진과 같이 개머리판을 접을 수 있어요.

 

 

육군에서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동시 개머리판을 접고 어깨에 매면 상당히 편리하고 덜렁거리지 않아서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

 

전차와 같이 좁은 공간에서 사용할 때도 아주 유용합니다.


 

 

 

 

K2 소총의 사용탄환은 5.56mm NATO 탄환이며, M16A1 과 M4A1, 89식 소총, SA80 및 HK416에 이르기까지

 

현재 상당수 미국 우방국의 제식소총 탄환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KM193 탄은 .223 Remington 탄환 (5.56mm) 이고, K100 탄은 5.56mm NATO 탄환으로 같은 탄이지만

 

K100탄이 KM193 탄보다 사거리가 긴 것이 특징이에요

 

 

탄창은 20발/30발 탄창이 있으며 장탄 수도 이와 동일해요.

 

M16A1과 탄창, 탄환이 호환되며 대검 또한 호환이 가능하구요.

 

 

내부부품 또한 노리쇠 뭉치를 포함해 M16 A1과 상당히 유사한데,

 

분해 조립까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작동방식은 오히려 AK-47과 비슷한데,

 

M16A1이 가스 작동식 (가스가 곧바로 노리쇠에 힘을 전달)인데 비해

 

K2 소총은 롱 스트로크 피스톤 방식 (가스가 피스톤을 거쳐 노리쇠를 움직임)이다.

 

하지만 회전 노리쇠 방식인 점은 M16 A1과 유사해요.

 

 

따라서 같은 탄환을 사용하는 M16A1보다 K2 소총이 더 반동이 강하다고 느낀 이유가 이거에요.

 

AK-47과 비슷한 작동방식이라서에요.

 

여담으로 M16A1의 개머리판 안에 완충 스프링이 있어 반동을 줄여준다고 해요.

 

 

또한 당시 최신 소총이었던 FN-FNC 의 외형적인 부분 (소염기, 핸드가드)에서 유사하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여러 소총의 장점을 혼합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K2 소총을 사용중인 페루군의 모습

 

 

K2 소총은 한국 외에 각국에 수출이 되었는데, 주로 페루와 레바논, 나이지리아, 이라크 등의 개발도상국 급의 나라들이에요.

 

M16과 비슷하면서도 저렴한 가격, 괜찮은 성능을 가진 덕분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제식소총급이 아닌 수천 정 정도의 규모로 사용이 되는데 K2 소총 이외에도 다른 소총들이 섞여 사용된다고 해요.

 

 

최근 IS 에서 K2C 등의 한국 소총이 사용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었는데

 

이라크 정부군에게서 노획된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미국 수출 버젼인 DP-200의 모습이

 

 

80년대 미국 민수용으로 AR100 이라는 명칭으로 수출했었던 적이 있었지만

 

이후 미국 내 총기법이 바뀌면서 대검 장착 불가, 권총 손잡이 불가, 개머리판이 접혀지면 안된다는 조항이 생겨나면서

 

 

위와 같은 방식으로 수정, DP-200 이라는 명칭으로 판매되었어요.

 

미국 내에서는 적당한 가격에 성능 또한 좋은 편이라고 알려져있어요.


 

 

 

K201을 장작한 K2를 사용중인 한국군의 모습

 

 

M16A1에 달아서 사용하던 M203 유탄발사기와 상당히 유사한 유탄발사기로서, K2에 장착해서 사용한다.

 

K2에 처음 장착하도록 만들어진 유탄발사기라는 의미에서 명칭이 K201이라고 해요.

 

무게는 1.62kg이며 K2 소총에 결합시 무게는 4.88kg이 된다


 

 

K2 소총 사격 중인 한국 해병대의 모습

 

 

레일과 도트사이트가 장착되어있는데 현재 운용되고 있는 대다수의 병력은 도트사이트는 고사하고 레일조차 달려있지 않아요.

 

그러나 K2 개발 당시 도트사이트와 같은 광학장비의 운용을 계산하지 못하고 개머리판을 가늠자, 가늠쇠에만 특화된 문제점이 있다고 해요.

 

 

개인화기, 장비 수준은 북한군과 큰 차이가 없는데..

 

국방비 확대, 방산비리 척결이 한국군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K2 소총은 AK만큼 오염에 강한 구조가 아니라 자주 정비해야할 소총이에요.

 

 

AK는 워낙 구조가 간단하고 이물질이 들어가기도 쉽고 나오기도 쉬운 구조이고,

 

M16은 빈틈이 없이 만들어졌으며 탄피배출구 부분도 수동으로 덮고 장전하면 자동으로 열리는 덮개가 있지만

 

K2 소총은 그런게 없고 노리쇠 부분이 항상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먼지 또는 이물질이 들어가기 쉬워요.


 

 

 

또 한가지 문제점은 가스마개가 잘 없어지고 장전손잡이가 잘 부러진다는 점이에요.

 

 

장전손잡이는 발사 시 계속해서 왔다갔다 하는데, 이게 휘어버리면 내부 부품을 다 긁어 총 자체를 망칠 위험이 있어서

 

휘어질 바엔 그냥 부러지라고 만들어놓았다고 해요.

 


 

 

 

 

K2의 가격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현재 66만원 정도로 알려져있어요.

 

항상 가격이 같은게 아니라 생산량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과거 23만원부터 39만원, 50만원 대에서 지금은 100만원이 넘는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지만

 

병기계 출신의 말에 따르면 60만원 선에서 공급이 되고 있으며 폐기 시 90만원 가까이 나온다고 해요.

 

 

정확한 가격의 추산은 힘들지만 이 정도 가격이면 성능대비 괜찮다고 생각해요.

 

당장 일본 자위대의 89식 소총만 봐도 K2와 비슷한 성능이라 평가받지만 가격이 28만엔이에요.

 


 

 

 

 

수출용으로 제작된 K2 소총의 단축형 카빈 버젼인 K2C의 모습

 

총열이 310mm로 줄었으며 개머리판을 M4 개머리판 스타일로 만든 모델도 있어요.

 

 

아프리카 밀라위에 수출이 되었으며, 세계 각국에 수출중이라고 해요.

 

한국군에서도 K1A 기관단총을 K2C로 대체할 계획이라고 하네요.


 

 

 

K2C를 사용중인 한국 특전사의 모습


 

 

K2 소총의 개량형인 K2A의 모습

 

레일은 K2C의 레일을 그대로 사용해서 짧다고 한다.

 

 

현재 28사단에서 시험 운용중이며, 평가가 좋을 시 올해부터 20만 정을 생산하고 제식소총으로 배치한다고 해요.

 

또한 기존의 K2를 예비군으로 돌린다고 한다.

 

(궁극적인 목적은 예비군의 카빈을 모두 도태시키겠다는 의도라고 해요.)

 

 이제라도 한국군의 총기와 장비가 현대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영화 <GP506> 中에서)

 

 

한국 영화에서는 최초로 K2 소총이 등장한 영화로, 일부는 자생토이즈의 K2 모델건이 사용되었다고 해요.

 

 

 

 

 

(한국영화 <연평해전> 中에서)

 

 

 영화 <연평해전>에서 해군이 사용하는 K2 소총의 모습이에요.

 

정말 감동적인 영화였어요.

 

이상 대한민국 대표 소총 K2에 대해 알아보았어요.

 

 

 

 

 

 

 

<인용된 사진 및 설명자료 출처>

 

사진 : 나무위키 및 위키피디아, 유용원의 군사세계

 

설명 : 나무위키 및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