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2차세계대전당시

 

독일이 왜 그렇게 강하였는지!

 

히틀러의 강력한 전쟁무기

 

TOP10에 대해 한번 살펴볼게요

 

 

 

 

10. HO 229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

 

 개발 중이던 비행기로,

 

 나치의 비밀 무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물건입니다.

 

형체가 F-117(B-2를 닮기도 했다.) 과 흡사하여

 

 현재까지도 스텔스폭격기

 

개발되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노스롭 그루먼의 엔지니어들이 B-2의 개발과

 

 관련해서 이 기체를 연구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어느정도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일단 전투기/폭격기로의 역할을 모두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무장이 MK 103 기관포 2문이고

 

 폭장도 가능은 합니다.

 

그런데 그 폭장량이 1,100파운드 폭탄 2개,

 

그러니까 2,200파운드(1,000kg)인데

 

이건 F4U 코르세어

 

 F6F 헬캣의 폭장보다도 적은 수준입니다.

 

이론상으로는 태평양같은 익면적, 눈꼽만한 항력,

 

큰 최대양력개수, 제트엔진에서 나오는 미친듯한

 

추중비때문에 제로센보다 선회를 잘하는기체입니다 .

 


 

 

 

 

9. 하인켈 He 178

 

 

제원부터 볼게요


분류 : 단발 단좌 터보제트 실험기

전장 : 7.48m


전폭 : 7.20m

전고 : 2.10m


익면적 : 9.1㎡


엔진 : Heinkel HeS 3

원심압축식 터보제트 엔진, 추력 450kgf


자체중량 : 1,620kg


전비중량 : 1,998kg


최대속도 : 598km/h


항속거리 : 200km

 

 세계 최초로 비행에 성공한 제트기.

나치 독일하인켈 사에서 만들었으며,

 

1발의 터보제트 엔진을 사용한

 

 단순한 비행기였습니다.

 

 1939년 8월 27일 시험비행에 성공하여,

 

십 년도 지나지 않아 펼쳐질 제트엔진 시대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시속 700km로 설계되었으나,

 

비행 당시 시속 598km로 비행하였습니다

 

 

 

 

8. FL 282(1942)

 

 

1942년에 세계최초로 시험 비행에

 

 성공한 헬리콥터 'FL 282'

 

전쟁상황에 발명되어


비행한 군헬기로

 

전투에 투입된 최초의 관측용 헬기입니다.

 

 

 

 

 

7. 융커스 JU 287

 

 

2차 세계대전이 중반을 넘어서자, 독일나치는

 

점차 연합군이 가공할 규모로 퍼붓는 전략폭격에

 

물량으로 대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한번의 작전에 수백대가 편대를 지어

 

내습하는 연합군 중폭격기에

 

같은 수의 폭격기를 동원해 맞설 방법이 없었던

 

히틀러는 이 전력차를 메꿔줄

 

폭장량이 적더라도 훨씬 빠른

 

고속으로 목표를 여러차례 타격할수있는

 

제트 폭격기만이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만들어 진것이 바로 융커스 JU 287 입니다. 

 

 4개의 Junkers-jumo 004 터보제트 엔진을 장착하고

 

그당시 어떤항공기도 적용못시켰던

 

독특한 전이익(Foward Swept Wing)을

 

찾춘 혁신적인 기종이였습니다.

 

 

 

 

6. M35 철모

 

 

 

세계1차대전의 큼직하고 투박한 철모에서

 

2차대전의 독일군을 상징하는 현대적인

 

디자인의 철모가 바로 M35철모입니다.

 

 

 

 

 

 

5. 위장무늬군복

 

 

SS는 지금으로 치면 경찰 비슷한

 

알게마이네 SS(Algemeine SS, 일반 친위대라는 뜻)와

 

군대 비슷한 바펜 SS(Waffen SS, 무장 친위대)로 나눌 수 있고

 

그 중 바펜 SS는 

 

이런 위장군복을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고 합니다

 

 무늬가 들어가니 멋은 없어진느낌입니다.

 

 

 

 

 

 

4. STG44 돌격소총

 

44년형 돌격소총(독일어: Sturmgewehr 44; StG 44)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에게

 

제식화된 돌격소총이이며

 

 현대의 모든 돌격소총의 기본이된

 

 사상최초의 "돌격소총"입니다

 

2차대전당시 "기관기총(Maschinenkarabiner)"

 

계획에 의해 개발된 소총의 최종 형태로,

 

StG44가 개발되기 전까지 Mkb42(H),

 

MP43 기관단총 (Machinenpistole43),

 

MP44 기관단총 (Machinenpistole44)이란

 

프로토타입이

 

존재하나 최종적으로는 StG44로서 양산되었습니다

 

 

StG44의 설계, 배치와 사용은 보병용 소화기의

 

 일대 혁신을 가져왔으며

 

 오늘날의 근대적인 돌격소총의

 

선구적인 모델로 평가됩니다.

 

 

 

3. MG 34,42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개발된

 

독일군의 기관총입니다.

 

 7.92 x 57 mm 마우저 탄을 사용하며,

 

쇼트 리코일 방식으로 동작합니다

 

MG34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나,

 

전쟁이 끝날 때까지

 

 MG34MG42

 

모두 생산되어 사용되었습니다.

 

MG42는 분당 1200발로 단일 총열을

 

사용하는 기관총들 가운데 매우 빠른것으로 기록됩니다

 

 또한 MG42는 가격이 쌌고

 

내구력이 견고하고 신뢰성 높았으며,

 

간단하고 사용이 용이했습니다.

 

 경기관총 또는 분대지원화기로

 

사용될 뿐 아니라 삼각대 위에 얹으면 중기관총,

 

대공 조준장치를 부착하여 대공기관총으로

 

전차와 장갑차에 탑재되어 차재 기관총으로도

 

활용 가능한 다용도 기관총(GPMG)입니다.

 

 

2. V 1, 2 ROKET

 

탄도 미사일의 아버지, 탄도 미사일의 개척자,

그리고 탄도 미사일의 시작을 알린 미사일

제2차 세계대전당시 나치 독일이 만들었던 무기입니다

 

 베르너 폰 브라운이 개발을 주도하였으며,

 

 미국의 로버트 고다드가 개발한

 

로켓의 설계를 바탕으로 개발되었습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주에서 지구를 찍은 로켓입니다.

 

 

 이 로켓의 개발로 베르너 폰 브라운은

 

 기술적인 면에서는

 

적어도 20년 정도 시대를 앞서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해당 로켓이 끼친 피해로 인해

 

악마의 병기를 개발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1. Nazi UFO (HAUNEBU)

 

 

나치 u.f.o 의견은 너무 다양하고

 

 많은 설들이있어서 뭐라고

 

저도 설명드리기가 힘드네요 ㅠㅠ...

 

 

 

 

 

 

출처 및 참고자료: 위키백과.구글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역사상

 

현재까지 사람을 제일

 

 많이 죽인 무기 TOP 16

 

대해서 알아보도록 할게요

 

 즐겁게봐주세요

 

 

16위 원자폭탄

 

사망(추정) : 30~40만명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된 폭탄 무기입니다.


단기간에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무기이기도 합니다.

 

인류 사상 최초의 핵무기가 실전에서 사용된 사례이며,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 전쟁 종결에

 

쐐기를 박은 사건이에요..

 

일본을 공격하면 상륙 시 너무 많은 피해가

 

날 것으로 예상었습니다.

 

 당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은 일본을 점령하려면 미국인 100만 명과

 

 영국인 50만 명이 전사할 것이라고 예상할 정도였고,

 

 일본 본토를 공격하기 위해 준비된 몰락 작전

 

 핵탄두 20여 발과 화학탄 사용까지 상정된

 

작전이라 너무나 잔혹하기도 했습니다.

 

15위 M-16시리즈

 

사망(추정) : 100~130만명

 

M16 소총은 개머리판에 들어있는 완충 스프링과

 

가스 직동식 작동 방식 덕분에 연발 사격시 반동이 적고,

 

단발 사격시에도 사격간 조준선 유지가 용이합니다.

 

 

정밀도도 좋은 편이기 때문에 사격시

 

정확도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구요.

 

이러한 장점들로 인해 주력 제식 소총이 M16이

 

아닌 군에서도 특수부대에서는 M16이나

 

 M4 카빈을 사용하는 예가 있습니다!

 

 

14위 일본군 육군도검

 

사망(추정) : 150만명

 

 

이 검은 고태도식검의 한 계열로써

 

일본군에 가장 많이 지급된 도검입니다.

 

일본 정규군 2명중 1명꼴로 지급되었으며,

 

일제의 상징인 칼을 찬 순사와 반자이 돌격 같은 것도

 

 이 칼의 덕이 큽니다.

 

사망자 총 150여만명중 60만명 가량은

 

중국인 학살때 사용되었으며

 

"난징 대학살","100인 참수 경쟁"

 

등 전쟁 범죄와 인권 침해,

 

인간 존엄성 관련사건 에서도 자주 언급됩니다.

 

13위 B-29 슈퍼포트리스

 

사망(추정) : 400만명

 

보잉 B-29 슈퍼포트리스(영어: Boeing B-29 Superfortress)는

 

 4발 엔진을 가진 프로펠러 전략폭격기입니다..

 

역사상 사람을 가장 많이죽인 폭격기.

 

 

2차 세계대전 시기 처음 개발된 폭격기로

 

1943년 처음 생산된후 46년까

 

겨우 4년간 4000대라는 미국의 기상을

 

 떠올릴만한 생산댓수를 자랑하였고

 

폭격으로 인한 사망자 600만명중 200만명은

 

일본 민간인 이었습니다.

 

2차대전에는 태평양전선에서 주로 사용되었고

 

 몇년 뒤 6.25 전쟁에서는 제공권을 장악한 뒤

 

 북한 영토에 무차별 융단 폭격을 가해 북한의 농업

 

,공업단지를 비롯한 경제 시설들을 초토화 시키고

 

 이는 지금까지 북한이

 

사상으로 인한 것도 있지만 회복되지 못한

 

 이유중 하나입니다.

 

일본제국 역시 수천대의 달하는 폭격기 한대 마다

 

 수백개의 폭탄을 연속적으로 맞은 탓에 2차대전이

 

 종결되는데 큰 기여를 한 무기중 하나입니다.

 

세계 최초이자 마지막 이었으면 하는

 

원자폭탄 역시 "에놀라 게이" 라는

 

콜네임을 가진 이 폭격기로 부터 투하되었습니다.

 

12위 나치 독일 MG42 중기관총

 

사망(추정) : 500만명

 

 

 
MG34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사용한 기관총입니다..

 

 사격할 때 전기톱과 비슷한 소리가 났기 때문에 연합군

 

 병사들이 '히틀러의 기계톱'이라는 별명을 붙였어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준

 

무기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러시아군을 가장 많이 쏴죽인 독일의 기관총.

 

 

분당 1200~1500발 이라는 엄청난

 

연사속도로 물량전을 벌이던 연합군을

 

 벙커링으로 녹여버리게 됩니다.

 

모든 2차대전 관련 영화나 매체등에서도

 

독일군과의 전투를 다루는 서부전선 내용이라면

 

무조건 나오는 무기인 만큼 유명합니다

 

약 300만명 가량의 소련군과 민간인을 학살하였고,

 

 3주동안 연합군 병력 156만명과 차량 33만여대가

 

 투입된 세계 최대의 상륙작전인 노르망디 상륙작전때는

 

겨우 4정의 MG42가 2분만에

 

 연합군 400여명을 사살 하기도 했습니다.

 

 

 

11위 스프링필드1861

사망(추정) : 600만명

 

세계에서 가장많이 만든 소총이며,

 

머스캣을 개량발전 시킨 총입니다.

 

 19세기에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무기.

 

머스켓 소총을 바탕으로 개발된 이 볼트액션 소총은

 

뛰어난 신뢰성과 강력
한 화력으로

 

2차대전 당시 최신무기였던 M1 개런드보다

 

병사들에게 더 선호
되기도 하였습니다.

 

 

미국 남북전쟁에서도 사용된 유서깊은 명품 총입니다.

 

10위 알렉산드로스피엄 장창

사망(추정) : 800만명

 

<영화 알렉산더中>

 

마케도니아의 참모들과 알렉산더대왕이

 

 고안해낸 5m에 달하는 분리식 긴 장창입니다.

 

기원전4~3세기경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무기이며,

 

 이후 기원후 2세기까지 동유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어진 무기입니다.

 

 

분리하여 투창으로도 사용할 수 있으며

 

 고대시대 전투는 흐트러지지 않는 병사의 단결력

 

 창의 뛰어난 공격력을 이용해 "팔랑크스"라 불리우

 

대열 압박전술을 장창병으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적장들은 이러한 팔랑크스의 단결력과 공격력을

 

 알지 못하고 돌격명령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으나,

 


 

전면의 뛰어난 공격력과 측면의 방패를

 

이용한 방법으로 "망치와 모루"전술을 적극 활용한

 

 팔랑크스 전술로 인해 밀집대열로 돌격하는 적군들은

 

모두 꼬치가 되었고 흐트러진 대열로 인해

 

돌격을 멈출 수 없던 병사들 역시 측면을 노리기

 

시작하였으나 팔랑크스의 방어와

 

역공으로 모두 무너지고 맙니다.

 

 

 

9위 일본식 조총(뎃뽀)

사망(추정) : 1,200만명

 

 

1463년 유럽에서 최초로 개발되고,

 

1543년 포르투칼을 통해 일본에 전해지면서,

 

 일본에서 자체로 개량한 무기입니다.

 

이 뎃뽀(일본식 조총)은 이후 1896년까지 쓰이게 됩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주력 무기로

 

 활용되어 사망자 1200만명중 60만명가량이

 

조선인으로 부터 나온 숫자였습니다.

 

 

 

8위 몽골기병대 - 만곡도

사망(추정) : 1,500만명

 

 

몽골군 하면 말타고 화살쏘는 그런 기마대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상 몽골기병대의 70%이상은

 

만곡도라는 검을 주무기로한 돌격기마대였습니다.

 

 

가까이는 중국 멀리는 페르시아까지 몽골제국

 

전성기 시절 1세기가 넘도록

 

이 검으로 도륙이 진행되었습니다.

 

 

7위 이집트 - 하르페 칼

 

사망(추정) : 2,000만명

 

람세스2세 시대때 이집트에서

 

발명한 낫형식의 칼입니다.

 

이집트 정규군이 옆구리에 하나식 착용했구요.


이후 1300년동안 이집트를 수호하는데 사용되어 왔으며,

수많은 사람을 도륙해낸 칼입니다

 

 

하르페란말은 "낫"을 뜻하는데,

 

 낫처럼 적의 목에 걸어 베어버리는 무시

 

무시한 공격법으로 일격필살이 가능했습니다.

 

청동으로 만들어져있어 상당히 부식이 많아

 

 현재에 온전히 보존된 검은 별로없다고 합니다.

 

 

6위 잉글랜드 주목 대장궁

 

사망(추정) : 2,200만명

 

 

 

이 영국 주목장궁은 길이만 1.9미터에 달하며,

 

화살의 길이는 1m정도 입니다.

 

주목을 잘라다가 2년이상 건조시켜 만든 영국장궁은

 

400년동안 전쟁터에서 프랑스인, 독일인들을 죽이는데 씌여졌습니다.

 

 100년전쟁때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무기이기도 합니다.

 

5위 이슬람 - 칼리프단검

 

사망(추정) : 2,400만명

 

 

사용하고 휴대하기 편리해 모든

 

 이슬람 전사들이 사용한 칼입니다.

 

중세시대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무기입니다.

 

 

4위 AK - 47

 

사망(추정) : 4,000만명

 

 

 

 

가난한나라의 핵폭탄이라 불리우는

 

이 무기는 1948년 소련의 군인이자 무기설계자인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2차대전 종결 후

 

나치 독일의 돌격 소총인STG-44 에 감명받아 제작하였으며

 

단가가 매우 저렴해 한화로 약 20만원 정도

 

구매가 가능하여 짝퉁의 경우 한화로

 

최대 2천원 가량이면 구할 수 있는 인류역사를

 

바꾼 총으로 현재까지 정규군,반군,테러리스트,민병대

 

 할 것 없이 매우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AK-47은 20세기에 가장 많이 생산된 돌격소총이며,

 

역사상 사람을 가장많이 죽인 총입니다..

 

한국의 주변국으로는 북한과 베트남,중국이 사용하거

 

 사용했었고 특유의 단순함과 내구성으로 대장장이도

 

 실총을 한번 분해한 후 똑같이 만들 정도 였다고 합니다.

 

현 러시아군 역시 플라스틱과 합성소재를 사용 개량해

 

 현대식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으며

 

 

정품 생산량만 1천만정이 넘고 짝퉁생산량 까지 합하면

 

과장붙여 1억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이 생산된 총 입니다.

 

인류 보병장비 1위라는 말도 있으며

 

테러리스트들의 상징이기도합니다.

 

하루평균 100평가량이 이 총에 의해 죽고

 

 지금도 5분에 한명꼴로 이 총의해 목숨을 잃습니다.

 

3위 연노궁(추쿠노)

 

사망(추정) : 5,000만명

 

흔히 제갈량이 개발했다고 알려졌으나

 

제갈량이 개발한 것은 한번에 10개의 화살을

 

발사하는 원융(元戎)이며 현대에 전해 내려오는 연노는

 

 명 나라 시기 개발되었고 연노 역시 한자문화권에서

 

사용하는 석궁을 뜻하는 말입니다.

 

연노는 활계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무기이며

 

고대의 기관총 이라는 별명이 있는 무기입니다.

 

한자문화권 국가들은 모두 이 무기를 수입하였고

 

대적으로 개량했으나 기본기술은 모두 중국의 원조 연노를

 

 바탕으로 제작되 었다고 합니다.

 

이후 무려 1000년뒤 임진왜란에서도 사용될 만큼 뛰어난

 

무기이며 현재도 크로스보우 계열로 만들어져

 

사냥용으로 사용되는 뛰어난 무기입니다.

 

 

 

2위 당나라 당파창

 

사망(추정) : 7,000만명

중국 당나라 시절 개발된 이 무기는 모든 관군에게

 

지급되었으며 1억정이 넘는 생산량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창이기도 합니다.

 

 


 

고증오류 이지만 흔히조선시대

 

포졸을 상징하는 무기이기도 합니다.
 

 

 

1위 로마 글라디우스 양날검

 

사망(추정) : 10,000만명

 

 

 

역사상 사람을 가장많이 죽인 칼이면서,

 

 사람을 가장많이 죽인 무기 1위입니다.

 

고대 로마시대 당시에 로마 군단병들이 수세기동안

 

사용해온 양날의 단검형 무기입니다

 

기원전 7세기 부터 사용되어왔으며,

 

실용성과 휴대성이 띄어나 기원후 1500년까지도

 

 몇몇 기사들이 계속 사용해온 무기입니다.


 

기네스북에도 오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무기입니다.

 

 

 

 

 

오늘은  B.A.R 자동소총

 

에 대해서

 

알아보려고합니다!

 

M1 개런드, M1 카빈과 콜트 M1911과 함께

 

 2차대전 미군의 상징과도 같은 무기입니다.

 

 

제원을 알아보며 시작하도록 할게요

 

 

Browning Automatic Rifle (B.A.R) M1918

 

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주력 분대지원화기

 

 

종류 : 분대지원화기 (자동소총)

 

사용국가 : 미국, 한국, 베트남 외 다수 국가

 

무게 :  8.8 Kg

 

길이 : 1.214 m

 

사용탄환 : 30-06 Springfield (7.62mm x 63)

 

장탄수 : 20발 박스 탄창

 

발사속도: 분당 300발(저속), 분당 650발(고속)

 

유효 사거리 : 548 m

 

 

 


 

Browning Automatic Rifle (B.A.R) M1918A2

 

 

 

오늘 소개할 B.A.R 자동소총

 

이름에서 보다시피 1918년에

 

제식채용된 자동소총이며,

 

여기서 "자동소총" 이란 연발로

 

 발사가능한 소총이란 뜻입니다.

 

 

B.A.R 자동소총은 세계대전 또는

 

 한국전쟁은 배경으로 한 각종 매체에서

 

절대 빠지지 않은 총기이며 M1 개런드,

 

M1 카빈과 더불어 미군의 화력을 담당하였습니다.

 

 

 

 

B.A.R 자동소총은 세계 최초의 자동소총으로서,

 

 보병이 들고 다니며 소총탄을 자동연사할 수 있는

 

최초의 소총이자, 최초의 분대지원화기입니다

 

 

따라서 B.A.R 자동소총을 "일반 소총" 으로 봐야할지,

 

 "분대지원화기"로 봐야할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저는 둘 다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길이는 1.2m 정도로 그렇다치더라도,

 

무게가 심각하게 무거운데

 

이는 강력한 탄환을 연발로 발사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당시 공업기술의 한계" 라고 볼 수 있어요.


 

 

 

(영화 <씬 레드라인> 中에서)

 

 

여담으로 B.A.R 자동소총 사수의 경우,

 

B.A.R 자동소총 + 예비 탄환 240발 (탄창 12개 분량) + 콜트 1911 권총 + 권총 예비 탄창 2-3개와 수류탄, 대검 등등

 

군장의 무게가 거의 40 Kg에 육박하여

 

엄청난 육체적 부담을 느꼈다고 합니다.

 

 

분대의 부족한 화력을 메꾸고 집중타격을 퍼붓는

 

 분대지원화기는 빠른 연사력과 파괴력이 필요하였는데

 

B.A.R 자동소총의 경우 저속 분당 300발,

 

고속 분당 650발의 연사속도를 조정할 수 있었으며

 

M1918, M1918A1의 경우 반자동 사격 또한 가능하였습니다.


 

 

30-06 Springfield (7.62mm x 63)

 

 

B.A.R 자동소총에서 사용하는 30-06 탄환으로,

 

 미국인들이 몹시 사랑하는 강력한 탄환입니다.

 

미군의 前 제식소총인 M1903 볼트액션 소총, 

 

M1 개런드 소총 역시 이 탄환을 사용합니다.

 

 

탄두의 지름은 7.62mm로 AK-47 소총의 

 

M43 탄환과 동일하지만,

 

탄피의 길이가 무려 63mm나 되기 때문에

 

39mm인 M43 탄과는 비교가 안되는 강력한 탄환입니다. .


 

 

 

가장 왼쪽은 산탄총 (샷건)에서

 

흔히 쓰이는 12게이지 산탄이며,

 

2번째가 30-06 탄환입니다.

 

4번째는 모신나강 소총과 드라구노프 SVD에 사용되는

 

 7.62mm x 54R 탄환 (엄청난 반동을 자랑해요) 이며,

 

5번째는 M16소총과 K-2 소총에 사용되는

 

5.56mm x 45 NATO 탄환입니다.

 

6번째는 M1 카빈에 사용되는 .30 Carbine 탄환이에요.

 

 

특히나 많이들 아는 5.56mm 탄환과 비교해보면

 

크기부터 거의 2배에 이르니 파괴력과

 

반동이 대충 짐작이 갈거라 생각됩니다. 

 

 

 

이런 강력한 탄환을 연발로 쏘는 관계로

 

당연히 명중율과 반동은 이미 내려놓았어요.

 

아래에서 서술하겠지만 B.A.R 자동소총은

 

애초에 분대지원화기의 개념으로 제작된 소총인지라,

 

볼트액션 소총의 부족한 화력을 메꾸는 것으로

 

 제 역할은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20발 박스탄창을 사용하는데,

 

위에서 봤듯이 탄환 크기가 상당히 

 

큰 관계로 20발 탄창도 상당히 큽니다.


 

 

존 브라우닝 (John Moses Browning)

(1855-1916)

 

미국 총기의 神이라 불리우는 총기개발자.

 

 

콜트 M1911 45구경, FN M1900 권총,

 

 브라우닝 기관총, M2 중기관총, 윈체스터 레버액션 소총,

 

 B.A.R 소총 등

 

총기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미국의 유명 총기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역시 총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 존 브라우닝"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B.A.R 자동소총 외에도, 설계된지 100여 년이 된

 

콜트 45구경 권총이나 M2 중기관총 등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고

 

 주된 전투는 참호전이었어요.

 

말 그대로 참호를 파고 적과 대치하다가

 

 한 쪽이 공격하여 적의 참호를

 

점령하는 전투의 연속이었습니다.

 

 

1917년 4월, 미국은 세계대전에 참전하였으나

 

당시 주된 전투였던 참호전은 낯선 전투였고

 

 당연히 그에 따른 무기 또한 마땅치 않았던상황이였습니다.


 

 

(TV드라마 <더 퍼시픽> 中에서)

 

 

적의 참호를 점령하려면 강한 화력이

 

 뒷받침되어야 돌격에 성공할 수 있는데

 

미군은 그런 강한 화력을 가진 무기가 변변치 않았던거죠.

 

 

당시의 기관총은 이제 막 완성된 시점이었고,

 

너무나 무거워서 이동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총기의 神"  존 브라우닝은 1917년에

 

 이미 자동소총이라는 물건을 완성하였습니다.

 

당시 미군의 제식소총은 M1903 볼트액션 소총이었는데,

 

"볼트액션 소총"이란 한 발을 사격하고 손잡이 (볼트)를

 

 잡아당겨 탄피를 배출,

 

다시 밀어넣어 탄환을 재장전시키는 단발 소총이에요.


 

 

 

브라우닝은 시대를 앞서가는 총기의 神 답게

 

볼트액션 소총의 기능의 한계를 이미 간파하였던 것입니다.

 

볼트액션 소총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연사력" 이였습니다.

 

 

5발밖에 되지 않은 장탄을 수동으로

 

 한발씩 쏘는 부족한 화력을 메꿔줄 대안으로서,

 

B.A.R 자동소총이 탄생하게 되었던겁니다.

 


 

 

 

M1903 Springfield

 

 

1903년에 미군의 제식소총으로 지정되었으며,

 

 5발의 장탄수를 가진 볼트액션 소총입니다.


 

 

B.A.R 자동소총을 들고 있는 존 브라우닝의 아들

 

 

1918년 양산되기 시작한 B.A.R 자동소총은

 

 그해 4월에야 85,000 정이 유럽 전선에 배치되었으나

 

그해 11월 세계대전은 독일의 패망으로 종전되었어요.

 

 

그러나 무거운 기관총과 단발사격만이 가능한

 

볼트액션 소총으로만 무장한 대다수 국가의 군대들은

 

"보병이 들고 다니며 자동사격이 가능한"

 

이 무서운 소총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음에 틀림없었습니다.

 

 

(영화 <킹콩> 中에서)

 

"우리는 저 포악한 괴물의 모가지를 자르고 뉴욕을 지킨다."

(영화 <퍼블릭 에너미> 中에서)

 

 

1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대량의 B.A.R 자동소총이

 

 민간시장에 풀리게 되었습니다.

 

강한 화력과 자동연사 기능을 가진 B.A.R 자동소총은

 

 이내 갱들의 애총이 되었는데,

 

톰슨 기관단총과 더불어 마피아를

 

 상징하는 물건이 되어버렸어요.

 

 

1920년대 미국의 금주법 시대,

 

수많은 사람들이 B.A.R 자동소총을

 

 든 마피아에 의해 희생되었습니다.ㅠㅠ


 

 

Thompson Submachine Gun (톰슨 기관단총)

 

미국 금주법 시대의 마피아들을 상징하는 기관단총으로,

 

강한 화력과 엄청난 연사력, 많은 장탄수를 가졌습니다.


 

 

1939년,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하며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어요.

 

1941년 12월에는 일본이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에 있는

 

 미 해군기지를 기습하며 태평양 전쟁 또한 발발하게 되었고

 

미국은 독일과 일본을 상대로 2차대전에 참전하게 됩니다.

 

 

(영화 <진주만> 中에서)


 

 

Browning Automatic Rifle M1918A2

 

 

B.A.R 자동소총은 1918년,

 

 M1918이란 제식명을 달고 탄생한 이래

 

2차대전 중 두 번의 개량을 거치게 됩니다.

 

 

1939년, M1918A1 : 양각대가 부착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개량이 이루어졌습니다.

 

1940년, M1918A2 : 운반용 손잡이가 추가되고 양각대가 전면으로

이동되었으며 반자동 기능이 삭제됩니다..

                                 결정적으로 분대지원화기로서 충실하기 위해

무게를 9Kg으로 늘렸습니다.

 

 

(영화 <윈드토커> 中에서)
 
 
B.A.R 자동소총은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 킬러" 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는데,
 
압도적 열세의 빈약한 일본군을 쓸어버리는데

 

제 격이라는 인식이 널리 알려졌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반자이 돌격"을 하는 일본군들을

 

연발로 쓸어버리기 딱 좋다는 의미로 추정됩니다.

 

 

(TV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 中에서)
 
 
유럽 전선에서 미군은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상당히 고전했는데
 
일본군같은 약한 군대와 달리

 

독일군은 세계 최강의 육군을 가진 나라였기 때문이었죠.
 
미군의 경우, 8연발 반자동 소총인 M1 개런드를

 

제식소총으로 사용하였고
 
독일군의 경우는 5발 볼트액션 소총인 Kar-98k를

 

제식소총으로 운용하여
 

소규모 전투의 경우 미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했습니다.

 

MG42
 
2차대전 독일군의 다목적 기관총으로서

 

엄청난 화력을 내뿜는 괴물 기관총. (일명 "히틀러의 전기톱")
 
 
그러나 진짜 문제는 독일군의 MG42 기관총이었는데,
 
독일군의 전술은 기관총이 엄청난 화력으로

 

기선을 제압하고 소총수는

 

기관총 사수를 보좌하는 정도였습니다.
 
 
당시 미군의 기관총은 거의 모든 면에서

 

MG42에게 절대적 열세였고,
 
이런 시점에서 자동사격이 가능한 B.A.R 자동소총은

 

MG42에 대적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었습니다.
 
 

 

1950년 6월,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당시 한국군은 일본군이 남기고 간 일제 38식,

 

99식 볼트액션 소총으로 무장하고
 
군복마저도 일본군 군복에서 휘장을 떼고

 

사용하던 시기였습니다.
 
 
불과 3일만에 서울이 함락당하며

 

정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미군을 필두로 한 UN군이 한반도에 상륙했고
 

한국군은 미군으로부터 많은 미제 무기들을

 

공여받아 함께 싸우게 됩니다.

 


 

M1 Garand (M1 개런드)
 

세계 최초의 반자동 제식소총으로서,

 

강한 파괴력과 반자동 사격으로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큰 성과를 냈습니다.

 


 

M1 Carbine (M1 카빈)
 
2차 세계대전 ~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제식화기로서,

 

15발의 대용량 탄창과 적은 반동으로 국군에 사랑받은 소총입니다.
 
 
M1 개런드, M1카빈과 더불어 B.A.R 자동소총

 

또한 한국군에 의해 사용되었는데
 

앞서 언급한대로 B.A.R 자동소총은 너무 크고 무거워서

 

한국군 체격에는 맞지 않는 무기였다고 합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中에서)
 
 
"그때 그곳에서 소대장님도 선임하사관,

 

 향도 분대장님들 모두가 전사했거나 부상되었기에

 

그러니 남은 건 맨 이등병, 일등병이더군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우리가 이 고지를 따야만 상관의 죽음에 보답할 것이고,

 

고지에는 별로 적이 없는 것 같아 내가 먼저 올라갈 테니

 

너희들도 따라오라 하니 모두 그러겠다

 

하길래 먼저 뛰어 올라갔습니다.

고지 꼭대기에 올라가 고지 너머를 보니

 

교통호 속에 방망이 수류탄을 들고 12-13명이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거기다 대고 에이알을 두 탄창 쏘아 모조리 죽였습니다.

 

뒤돌아보니 아무도 날 따라온 사람이 없길래 다시 뒤를 보고

 

빨리 오라 했는데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그러는 동안 옆에 있는 고지에서

 

기관총알이 마구 날아오기에 좀 엎드렸다가

 

다시 일어나서 제지리에 돌아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에 있는 몇 사람이나마 나와 같이 가면

 

문제없이 고지를 딸 것 같아서 다시 똑같이 올라가자 하면서,

 

적이 나오면 내가 처치하겠다 하니 모두 또 그러라고 하기에

 

또 고지에 뛰어 올라가니 후사면 교통호에 또 어디서 기어나오는지

 

7-8명이 있기에 한 탄창을 가지고 모조리 사살해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앞과 똑같이 되어 버렸죠. 제자리에 돌아왔는데

 

조금 있으니 중대장의 철수라는 명령이 와서 모두 철수했습니다."
 
 
1952년 12월 한국 전쟁 당시 노리고지 전투에서

 

1사단 소속 박관욱 일병이 이 총 한 자루를 들고

 

고지를 점령해 낸 적이 있습니다.
 

B.A.R 자동소총의 성능이 가장 잘 드러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中에서

 
 
B.A.R 자동소총을 메고 차렷 자세를 취하자

 

뒤로 고꾸라졌다는 참전 용사의 증언도 있는데,
 
그런 무지막지한 조건에서도 나라를 지켜낸

 

참전 용사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1964년 발발한 베트남 전쟁에서도 한국군은

 

M16A1 소총과 M60 경기관총을 공여받기 전까지
 

M1 개런드와 B.A.R 자동소총을 사용했습니다.


 

(자칫 한국군의 포로학대로 보일 수도 있으나,

 

 사진은 월남군이 포로로 잡은 월맹군을 발로 까버리는 장면
)
 
 

월남군 (남베트남) 또한 미군의 무기를 공여받아 사용하였습니다

 

B.A.R 자동소총은 M60경기관총이 개발되고

 

실전배치되면서부터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습니다.
 
더이상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기관총이 아닌,

 

보병이 들고 다니며 사격할 수 있는

 

경기관총이 개발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M16 소총이 제식화기로 등장하면서,
 
굳이 크고 무겁고 반동도 강한데다 20발 장탄수를

 

가진 B.A.R 자동소총을 쓸 이유 또한 없어졌던거죠.
 

 

 

20발의 장탄수 또한 분대지원화기 치고는 너무나 적었으며,
 
기관총처럼 총열교환이 가능하지도 않아

 

지속적인 백업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M60경기관총 또한

 

완벽한 기관총은 아니었던 관계로
 

일부 기관총 사수들은 베트남 전쟁기간동안

 

B.A.R 자동소총을 계속 썼다고도 합니다.


 
 

 

1918년, 세계 최초로 등장한 자동소총인

 

B.A.R 자동소총은 1차대전의 참호전에서,
 
2차대전의 태평양 정글에서,

 

한국 전쟁에서 중국군의 돌격을 저지하며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분대지원화기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조용히 퇴역했습니다.
 
 
 
 
사진 및 참고자료출처 : 구글. 네이버캐스트. 나무위키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지금 이순간까지 사상

 

가장 사망자가 나온 전쟁 TOP10

 

 뽑아서 알아보려고합니다!

 

 

 

 

 

 

10위 적백내전(러시아내전)

 

사망자(추정) : 9,000,000명

 

 

 

러시아판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 직후의 러시아에서

 

벌어진 전쟁이에요

 

 원어로는

 

Гражданская война в России(Russian Civil War)

 

로 표기하며,

 

21세기 기준으로 공식 명칭은

 

 러시아 내전입니다.

 

적백내전으로 불리는 러시아내전은 혁명군인 적

 

군과 혁명을 반대하는 백군으로 싸움이에요.

 

 


전쟁의 시작은 혁명이 일어난 1917년 10월 25일.

 

 

 실질적인 끝은 흔히 1920년으로 보지만,

 

 백군 일파인 몽골의 미친 남작 운게른 슈테른베르크 같은

 

 경우 1921년까지 버텼으며 공식적인 종결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프리아무르 임시정부가 망한

 

 1922년 10월 25일으로 봅니다.

 

최후의 백군이 사라진건 1923년 6월~10월 쯤이며,

 

일본이 사할린에서 철수한 걸 따지면 1924년입니다.

 

 

 

 

 

 

9위 1차세계대전

 

사망자(추정) : 15,000,000명

 

 

 최초의 세계대전이자, 최악의 소모전

이젠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역사의 영역으로 들어선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일단은 전쟁에 관련된 국가들의 숫자만으로도

 

 35개국이 관련됨으로서 이전의 그 어떤 전쟁보다도

 

 대규모의 전쟁이었으며 전장이 확대된

 

 최초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세계대전(世界大戰)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지금도 'Great War'는

 

제1차 세계대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에요.

 

인류의 역사가 2014년에 들어서면서

 

1차대전 개전 100주년을 맞았으며,

 

2018년에는 종전 100주년이 됩니다.

 

 

 

 

 

 

8위 티무르 정복전쟁

 

사망자(추정) : 17,000,000명


 

 

 

 

칭기즈칸의 후예라 자칭했던 티무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는 잔혹한 족복자였습니다.

 

그는 목적달성을 위해서라면 기만.모략.배신.암살.학살등

 

수다노간 방법을 가리지않았어요.

 

그 같은 잔혹함위에 그는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러시아와 중동,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활한 제국을 이룩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무자비하고 성급하게 세운 제국은

 

그 자체가 사상누각이였습니다.

 

 

티무르 입장에선 단 기간에 정복왕조를 세우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고 강변 할수있지만

 

정말 그 방법 밖에 없었다면 애초에 정복왕조를

 

세우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불가능에 도전하는것과 갈 수 없는길을 가는것은

 

다르기 때문이죠.. 갈수없는 길인데도 일단 저지르고보자는

 

티무르식 건설방식은 위험했던거죠..

 

 

 

 

 

공동6위 태평천국의 난

 

사망자(추정) : 20,000,000명

 

 

 

태평천국의 난(太平天國之亂, Taiping Rebellion)

 

 서기 1850년에서 1864년까지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대규모 내전입니다.

 

 교전 상대는 만주족 황실의 청나라 조정과 기독교 구세주 사상을

 

 기반으로 한 종교국가 태평천국이었습니다.

 

 태평천국의 난의 주요 무대는

 

 강소성, 절강성, 안휘성, 강소성, 호북성이었으나,

 

14년간의 전쟁 기간 동안 북서쪽 끝의 감숙성

 

 제외한 모든 중국의 성을 최소 한번 이상 태평천국군이 지나갔습니다

 

 

태평천국의 난명청전쟁 이래로 중국 역사상 가장 대규모 전쟁이었으며,

 

 인류 전체 역사를 통틀어도 가장 유혈낭자한 내전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19세기 최대의 군사분쟁이었던 태평천국의 난으로

 

 인해 죽은 사람은 2천만 ~ 7천만 명 정도로 추산되며,

 

 난민 신세가 된 사람도 수백만 명에 달한다고합니다.

 

 

 

 

 

 

 

공동6위 스탈린의 학살

 

사망자(추정) : 20,000,000명

 

 

조셉 스탈린은 집단 종족 학살과 비인도적 범죄와

 

세계사에서 자국민을 가장 많이 죽인

 

무자비한 사람입니다.

 

 

스탈린이 했던 말이 가관입니다.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요,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이다"

 

 

 

 

 

 

 

5위 명나라의 멸망

 

사망자(추정) : 25,000,000명

 

 

명청 전쟁 17세기 중국 대륙의 패권을

 

두고 명나라청나라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입니다.

1618년 4월 1만 명의 후금군이

 

명나라 푸순성을 공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후금군은 푸순성 전투에서 성주 이영방의 항복을 받아내며,

 

쉽게 성을 함락시켰으며, 뒤이어 장승음이 이끄는

 

 1만 명의 명나라 구원병까지 무찔렀습니다

 

1618년 5월에는 무안과 백가충 등 명나라 11개 성을 함락시키고

 

7월에는 청하성 전투에서 8000명의 명나라군을 무찔렀어요.

 

명나라는 1644년 청나라의 공격이 아닌

 

내부 반란으로 인해 급속도로 쇠락합니다.

 

 

 

이자성의 난으로 반란을 일으킨 이자성시안,개봉,낙양

 

점령하고 뒤이어 북경에 입성해 스스로 황제를 칭하였습니다.

 

 이자성의 난을 들은 오삼계가 청나라에 투항하고

 

연합해 오삼계의 정병 4만 명을 포함한 18만 명의 도르곤 군대가

 

 이자성을 격파하고 윈난성 왕이 됩니다.

 

중국 북부 후베이성 으로 도망갔던 이자성은

 

 1645년 그곳 주민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이로써 청나라가 중국 대륙을 대부분 장악하게됩니다.

 

 

 

 

 

 

4위 안사의 난

 

사망자(추정) : 36,000,000명

 

제국 중엽인 755년부터 763년까지 당현종부터

 

당숙종, 당대종까지 약

 

10년동안 벌어진 대규모 군사반란입니다.

 

'안사의 난'이라는 이름은 주동자인 록산(安祿山)과

 

 후기 지도자 사명(史思明)의 성을 따온 것이며,

 

사사명을 배제하고 그냥 안록산의 난으로,

 

 혹은 당시 연호를 따서 '천보(天寶)의 난'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당시까지 중국 역대 통일왕조에서 있었던

 

 반란 중 가장 대규모였고 그 파급력도 가장 컸던 전란으로,

 

사실상 당을 붕괴로 몰고가기 시작한 전란이었습니다

 

 이후 당나라는 당헌종때에 중흥기를 맞이하여

 

100여년의 시간동안 제국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모습은 끝내 되찾지

 

못한 채 멸망해버려요..

 

 

 

 

 

 

공동2위 몽골의 정복전쟁

 

사망자(추정) : 40,000,000명

 

 

 

몽골의 정복전쟁

 

13세기 내내 계속되어

 

 광대한 몽골 제국을 형성했습니다.

 

 1300년경이 되면 몽골 제국의 영역은

 

아시아의 대부분과 동유럽에 이르렀어요.

 

역사학자들은 몽골의 침략과 약탈을

 

인간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 중

 

하나였던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또한 몽골인들이 팽창하면서 선페스트가 그들을 따라

 

 아시아와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이는 흑사병이라는 대규모 인명손실로 이어집니다.

 

 

몽골 제국은 중앙아시아 및 서아시아에 일련의

 

정복과 침공을 행하면서 세력을 불렸고,

 

1240년대에 동유럽에 도달합니다.

 

몽골 제국은 1260년경 제국이 분할될 때까지

 

러시아계 국가들을 지속적으로 약탈했습니다.

 

 또한 14세기가 되면 중국 전역을 영향권 아래 두게 되어

 

 원 황조가 성립되었습니다.

 

한편 페르시아 지방에서는 15세기를 지나면서

 

 티무르 제국이 몽골 제국의 후계자를 자처합니다

 

인도는 몽골의 침략을 받지 않았지만 19세기에

 

티무르 제국의 후예인 무굴 제국에게 정복됩니다.

 

 

 

 

 

 

공동2위 마오쩌둥의 학살

 

사망자(추정) : 40,000,000명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정치가이자

 

국가 주석으로 중국식 공산주의 혁명가 이른바 모택동.

 

마오쩌둥이 주도한 대학살은 4천만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최근 조사로는 7천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1945년 중국 공산당 당수가 된 그는 1946~48년에 있었던

 

내전에 승리를 거두고 1949년 10월1일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하며 국가 주석이 됐습니다.

 

 이후 1958~60년사이 대약진 운동이라는 이름로 산업화,

 

군사화, 농지의 강제 국유화를 의욕적으로 추진.합니다

 

그런데, 대약진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나라 전체가

 

 대기근에 시달리며 4~5천만명이 굶어 죽었어요.

 

 또한 그는 삶을 마감할때까지 1,500~2,000만명에 이르는 도시 주민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반혁명분자 전용 교도소와 수용소에 전 국민의 2퍼센트에

 

해당하는 숫자가 체포되었습니다

 

이때 그 곳에서 굶어죽거나 질병, 사형으로 죽은 사람의

 

 수는 2천만명에 달했다고합니다.

 

 

국가 주석이자 민중의 지도자 마오쩌둥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냉정한 성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유쾌하고 흥을 즐기는 사람이었다고합니다.

 

금욕주의자였던 히틀러나 스탈린과 달리

 

그는 사치와 방탕한 성생활을 즐겼다고 합니다.

 

 

 

 

 

1위 2차 세계대전

 

사망자(추정) : 70,000,000명 ~ 130,000,000명

 

 

최악의 전쟁. 20세기 최고의 비극. 인류가 했던 최악의 흑역사.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추축국

(나치 독일, 일본 제국, 파시스트 이탈리아)이

 

 일으킨 연합국추축국 사이의 인류 역사상 두번째로

 

 시작된 세계대전이자,

 

가장 참혹했던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

 

전쟁에 발단은 제1차 세계대전 패배로 인한 독일의 붕괴,

 

영국프랑스의 경제적 혼란,

 

공산주의 세력 확대에 대한 불안 등 매우 복잡합니다.

 

 일반적으로 세계 대공황에 따른 경제 위기로

 

 부상한 파시즘과 이에 따른 베르사유 체제에 대한

 

 독일의 반발 및 일본의 보상심리

 

등을 원인으로 보여집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엄청난 사상자와 피해가 발생했고,

 

 추축국들이 현대는 물론 당시의 기준으로 봐도

 

 심각한 수준의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추축국의 상당수는

 

기존 정부가 붕괴되는 상황을 맞이하였고,

 

특히 추축국 삼인방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연합군이 영토 전체를

 

 점령하는 등 일시적으로 국가가 소멸한 후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는 수준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정부 관료들에게 말하였듯이,

 의원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뿐이라고. 우리의 앞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앞에는 투쟁과 고통으로 점철될 수많은 세월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책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이와 같이 답변하겠습니다.

, , 을 가리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힘을 가지고,

 이제껏 인류가 저질러 온 수많은 범죄 목록 속에서도 유례없었던

극악무도한 폭정에 맞써 싸우는 것이라고. 그것이 우리의 정책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한 단어로 대답하겠습니다.

 그것은 승리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어떠한 공포가 닥쳐와도,

갈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승리 없이는 생존도 없기 때문입니다.


-
윈스턴 처칠의 유명한 전시 수상 취임 연설

 



출처 및 참고자료: 위키백과.구글

 

1944년 10월 23일 ~26일 필리핀 근해에서

 

 제3함대와 제7함대가 주축을 이룬

 

 미해군일본 연합함대가 해상의 쿠르스크전투라고

 

 불리는 레이테만 해전을 벌이게되요.

 

그결과 일본 연합함대는 항공모함 즈이카쿠,

 

경항공모함 즈이호, 치요다, 치토세, 전함 무사시,

 

후소, 야마시로, 중순양함 아타고, 마야, 쵸카이, 모가미, 스즈야,

 

치쿠마, 경순양함 노시로, 아부마마, 타마, 키누, 구축함 와카바, 미치시오,

 

 아사구모, 야마구모, 아키즈키, 하츠즈키, 하야시모, 노와키,

 

우라나미등 총 28척이 피해를 입었고,

 

 사실상 해군전력이 와해되었어요.

 

그럼 레이테만 해전에서 작지만

 

<사마르해전에 참전한 미군의 호위 항공모함을

묘사한 일루스트레이션>

 

강한 구축함들이 분전한 사마르 해전

 

알아보도록할께요!

 

 

 

 

 

레이테만 해전에 참가한 "태피3" 기동함대

 

 각각 함재기 24기를 탑재할 수 있는 6척의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 판쇼 베이(CVE-70) 세인트 로(CVE-63), 

 

화이트 플레인스(CVE-66),  칼리닌 베이(CVE-68),  킷쿤 베이(CVE-71), 

 

감비어 베이(CVE-73) 와 5인치 함포와 어뢰로 무장한 

 

3척의 플레처급 구축함 USS 호엘(DD-533), USS 히어만(DD-532),

 

 USS 존스턴(DD-557)과 무장은 플레처급과 비슷하지만

 

 내구도가 낮은 4척의 존 C. 버틀러급 호위구축함 USS 데니스(DE-405),

 

 USS 존 C. 버틀러(DE-339), USS 레이몬드(DE-341),

 

 USS 사무엘 B 로버츠(DE-413)으로 구성된 소규모 함대였어요.

 

 공중 지원을 맡을 예정이었죠.


 

USS 감비어 베이

 

USS 호엘

USS 히어만

USS 사무엘 B. 로버츠

USS 존스턴

일본 함대에 치욕당한 윌리엄 홀시 제독

 

그런데 윌리엄 홀시 제독이 이끄는 제38기동부대가

 

 오자와 지사부로에게 낚여서

 

모두 일본 함대 항공모함 추격에

 

 나서자 상황이 달라졌어요.

 

산 베르난디노 해협이 뻥 뚫리게 되었고

 

"태피3"는 구리다 다케오 제독이 이끄는

 

 일본 연합함대 중앙해군과 만나게 되어버렸어요.

 

일본 연합함대는 전함 야마토와 나가토, 순양전함 공고,

 

하루나, 중순양함 초카이, 하구로, 토네, 치쿠마와

 

 12척의 구축함으로 이루어진 함대였습니다.

 

 "태피3"와는 상대가 되지않는 전력이었죠...

 

 

 

일본 연합함대 중앙군 사령관 구리다 다케오 제독

 

그에게 맞서싸운 클리턴 스프레이그 제독

스프레이그 제독은 철수하려했지만,

 

그의 상관 토마스 킨케이드 제독은 상륙중인 육군과

 

보급함대의 안전을 위해서 철수 금지를 명령했어요.

 

 스프레이그 제독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전 함재기를 무장 유무에 상관없이 모두 발진시키고,

 

 경항공모함내의 모든 폭탄을 바다로 버리도록 명령합니다.

 

미드웨이 해전때 처럼 무장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면

 

적에게 선공을 당하게되어 전멸할 것이라는

 

 판단때문이었습니다.

 

급히 출격한 전투기들은 무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적에게 맞서싸웠어요.

 

 가진 것이라고는 기관총이 전부였기에 적의 함선을 향해

 

 가지고 있는 모든 탄을 소비했습니다.

 

 주로 적의 어뢰 발사관과 함교, 주포를 향해 공격했어요.

 

 폭탄과 어뢰가 없었지만 공격하는 시늉을

 

 펼치며 일본 연합함대를 교란시켰고,

 

 구리다 다케오 제독은 맹렬한 항공기 공격에 윌리엄 홀시 제독의

 

 제38기동부대로 착각하게 됩니다.

 

용감하게 싸운 함재기들은 연료와 탄약이 떨어지자

 

육상기지로 퇴각했지만,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태피1", "태피2"의 함재기들이 어뢰와 폭탄으로

 

 무장하고 "태피3"를 도우러 오게됩니다.



 

 

 

연막을 피우며 적의 시야를 방해하는 "태피3"

 

절망적인 상황에 스프레이그 제독은

 

 "30분만 버텨도 오래 버틴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바로 그때 USS 존스턴 호가 함장 어니스트 에반스 중령의

 

독자적인 판단하에 일본 함대를 향해 돌진합니다.

 

 USS 존스턴은 지그재그 항행으로

 

적의 포탄을 피해가며 적함대에게 돌진했습니다.

 

 근접하면 포사격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었어요.

 

 USS 존스턴 호는 모가미급 중순양함 쿠마노의 함교를

 

 함포로 박살내고 어뢰로 함수를 파괴하는데 성공합니다.

 

 

모가미와 충돌을 피하려고 모가미급 중순양함 스즈야는

 

 속도를 줄이다가 함재기들의 맹공에 2발의 폭탄을

 

얻어 맞고 전선을 이탈하다가 "태피2"

 

함재기들의 어뢰 공격에 격침당합니다.

 

 하지만 USS 존스턴 호는 순양전함 공고에게

 

 3발을 맞게 되어 주포가 작동하지 않게되는등의

 

 피해를 입고 뒤로 빠졌어요.

 

호위 구축함 USS 사무엘 B. 로버츠도 USS 존스턴의

 

 뒤를 이어 분전에 가세하게됩니다.

 

 USS 사무엘 B. 로버츠호는 타카오급 중순양함 초카이에게

 

 어뢰와 함포를 퍼부었습니다.

 

그다음에는 토네급 중순양함 치쿠마와 근접해서 포격전을 벌였죠.

 

치쿠마의 함교와 포탑을 날려버렸지만,

 

 USS 존스턴 처럼 공고에게 함포를 얻어 맞아 결국 침몰하게 됩니다

 

그다음에 뛰어든 구축함은 플레처급 USS 히어만이었어요.

 

USS 히어만은 토네급 중순양함 치쿠마, 묘코급 중순양함 하구로,

 

 공고급 순양전함 공고, 하루나에게 어뢰를 쏘았지만,

 

 모두 빗나갔어요 .

 

하지만 놀랍게도 2발의 어뢰가 전함 야마토에게 직격했고,

 

함대의 기함이었던 야마토와 나가토가 전선을 이탈하게 됩니다.

 

그뒤 USS 히어만은 "태피1", "태피2"의 함재기들의 지원을 받아

 

 토네급 중순양함 치쿠마를 격침시키고

 

 토네급 중순양함 토네를 퇴각하게 만듭니다.

 

다른 플레처급 구축함 USS 호엘 역시

 

다른 구축함들의 분전에 힘입어 공고에게 덤볐지만,

 

 하구로와 공고의 포탄세례에 40발을

 

피격당하고 침몰하게 됩니다.

 

가장먼저 침몰한 구축함이었어요.

 

USS 존스턴은 급하게 포탑을 복구하여 다시 전투에 임하였습니다.

 

아가노급 경순양함 야하기가 4척의 구축함을 이끌고

 

 호위항공모함들을 격침시키려 하자

 

 홀로 그앞에서서 교전하다가 포격전 끝에 침몰하였습니다.

 

 

구축함들의 분전에 호위항공모함들과

 

 나머지 구축함들도 전력으로 응전하였어요.

 

 가지고 있는 모든 함포를 이용하여 적에게 반격하였습니다.

 

 그결과 타카오급 중순양함 초카이가 어뢰가

 

 유폭되어 격침되었고, 다른 구축함들이 도망쳤어요.

 

일본 함대의 공격에 호위항공모함들이

 

하나 둘씩 피격되었지만,

 

격침된 것은 USS 감비어 베이 뿐이었습니다.


 

 

 

침몰하는 감비어 베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싸움에 선공을 당한 일본 함대는

 

 상황 오판과 전투대형 전개등을 하지 못하였고,

 

미해군 구축함들의 용감한 분전에 오히려 기함이 퇴각하고

 

 주요 전함들이 격침당하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졌어요.

 

게다가 구리다 다케오 제독의 함대에

 

후방에 적함대 출현이라는 불가능한 첩보가 도착하자

 

구리다의 함대는 퇴각하게 됩니다.

 

 

 

퇴각하는 일본 함대

 

미해군은 적이 퇴각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비록 3척의 구축함과 2척의 호위항공모함을 잃었지만

 

 사마르 해전은 승전임이 분명했죠.

 

만약 이들이 응전을 하지않고 도망쳤다면

 

 필리핀에 상륙하는 미육군은 커다란 피해를 입었을 것이고

 

 전쟁은 좀더 길어질 수도 있었죠.

 

제일 먼저 돌격한 USS 존스턴 호의 함장 어니스트 에반스 중령은

 

 함선이 침몰할때까지 살아있었으나 부상을 입은 상태였고,

 

 결국 전사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그의 과감한 용기를 높이사

 

 의회명예 훈장(메달 오브 아너)를 수여하게됩니다.


 

 

 

생전의 어니스트 에반스 해군 중령

 

 

미해군 구축함들의 영웅적인 분투

 

사마르 해전은 전설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탄막의 끝판왕 기관권총의 아버지 Ingram M-10

 

 

갱이 판치던 1970년대

 

최고의 주가를 올린 이 기관권총은,

 

미국 내에서 아직까지 상당히 유명한 놈으로써

 

"기관권총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어요.

 

 

그럼 일단 재원부터 살펴 볼까요??

 

 

Ingram M-10

 

종류 : 기관권총


구경 : .45 ACP / 9x19mm parabellum


전장(스톡 폈을때/스톡 접을때): 548mm /269mm


총열: 146mm


무게: 2.84Kg


장탄수:16/30/32/50발 상자형 탄창  

< 일반적으로 32발 탄창이 가장 많이 쓰인다>


발사속도(발/분) : 1145 (MAC-10 .45),

                          1090 (MAC-10 9mm)


유효사거리: 25m,최대 100m

 

 

 

일단 이 기관권총은,

 

분류부터 지금까지 공방이 계속 되고 있어요.

 

기관권총으로 분류해야 할것인가,

 

기관단총으로 분류해야 할 것인가.

 

사실, 기관단총으로써 사용해도 무리가 없지만,

 

 기관권총으로 사용하기에는 크기가 크긴 해요.

 

다만 기관권총으로 분류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미국의 총기발명가인 고든 B.

 

잉그램에 의해 탄생했으며,

 

 1966년부터 1980년대 까지

 

회사가 계속 바뀌면서 생산됐어요.

 

 

무게는 2.8kg으로 크기에 비해 꽤 무겁구요.

 

 M16A1의 무게와 맞먹어요;;.

 

하지만 이 무게를 가지고도 너무 빠른 연사력 때문에

 

 제어가 안되는데, 더 가벼웠다가는

 

발사 시 총이 날아다닐거에요.

 

 

 

 

사용탄환은 당시 미국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던 권총탄인 9mm 탄환과

 

45구경 탄환을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 9mm 탄환을 많이 썼다고 해요.

 

45구경탄환을 사용시 반동이 너무 강해

 

 도저히 연발로 사용하기는 힘들었겠죠

 

 

 

 

뒤에 달린 부분은 개머리판인데,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어요.

 

잉그램은 오픈볼트 방식의 기관권총으로써,

 

탄이 없을 때는 약실이 열려있다가

 

방아쇠를 당기면 급탄과 격발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는 구조인데,

 

이는 적은 부품으로 빠른 연사가 가능하게 만들어

 

주지만 격발시 내부 부품들이 많이 움직여서

 

초탄 명중율은 낮은 편이에요.

 

 

또 잉그램은 엄청나게 빠른 연사력을 가지고 있는데,

 

 거의 초당 1-20발의 발사속도를 지녀서

 

32발 탄창을 다 비우는데

 

2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요.

 

이는 거의 명중율을 포기한다는 뜻과

 

 마찬가지인데 우스갯소리로

 

"이 총으로 적을 맞추려면 적과 함께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야 한다."

 

는 말까지 나올 정도죠 ㅎㅎ.

 

거의 분무기에 가까운 총이에요.

 

 

 

 

무엇보다 작은 크기가  휴대성을 극대화

 

시키기는 했지만 길이가 너무 짧아 보조

 

손잡이를 달 공간조차 부족,

 

멜빵고리 같이 생긴 저 부분을 잡고

 

많이 쐈다고 해요.

 

또 너무 짧은데 연사력은 엄청 빠르니

 

 아무리 숙련된 사수라도 반동제어가

 

 힘들었다고 해요.

 

그러나 후에 기술하겠지만,

 

 저 총에 도트사이트와 그립을 단

 

밀리터리덕후들도 있어요.

 

 

 

체코제 SA vz. 24나 우지 등

 

 동시대 기관단총들의 구조를

 

모방하면서도 보다 간단한 구조와 작은 크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낮은 생산가격을 가진

 

기관총을 고안했어요.

 

 

이로써 탄생한 기관권총이 잉그램으로,

 

실제로 가격이 굉장히 싼 편이었고

 

후에는 정당 6.5 달러에 판매된 적도 있다고해요.

 

또한 철판을 찍어내서 용접만 하면 만들어지는 구조라

 

생산속도도 빠르고, 내부 부품이 아주 간단해

 

고장날 확률도 적었어요.

 

이게 "기관권총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에요.


 

 

 

 

당시 CIA 출신으로 소음기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중이던 미첼 워벨과의 합작으로,

 

 소음기가 기본적으로 장착돼요.

 

워벨의 소음기는 이중구조로 탄속은 줄이지 않고

 

소리만 줄이는 기술로 개발되어,

 

소음 효과도 괜찮았다고 합니다.

 

 

 

 

 

원래 잉그램은 미군에 납품할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앞서 설명한대로 너무 연사력이 빠르고

 

반동제어가 힘들어

 

결국 물 건너갔어요.

 

네이비 씰에서 채용이 된 사례가 있는데,

 

 적의 살상 목적보다는 초반의 기선

 

제압을 위해 탄을 뿌리는 용도로,

 

즉 견제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해요.

 

빠른 연사력을 어필, 대테러부대에도 들이대봤지만,

 

 "이건 마약상이나 사용할 물건"

 

이라는 말만 들어요..ㅎ;;

 

이런 반동제어도 힘든 분무기를 가지고

 

인질 구조를 하다가는 범인이고 인질이고

 

 할 것 없이 다 벌집이 될게 뻔했죠.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유명한 기관단총,

 

독일 H&K 社의 MP5가 잉그램에

 

비해 대테러 부대에게 주목받았었어요.


 

 

 

독일 H&K 社의 MP5

 

 

기관단총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총이에요.

 

MP5에 대해 자세히 알고싶으시면

http://kimssine51.tistory.com/75

 

한국 707 특임대와 경찰특공대를 비롯,

 

전세계 대테러 부대의 제식

 

기관단총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어요.

 

 

해외로의 수출도 고려했지만,

 

 당시 미국법은 기관단총용 소음기는

 

수출을 금지했기 때문에

 

큰 메리트가 있던 소음기를 떼고 판매했지만

 

판매는 부진했고 결국 MAC 社는 파산하고 말아요.

 

 

그리고 잉그램의 제작 설비는 SWD 社를 거쳐

 

 코브레이 社에게까지 흘러갔고,

 

86년 미국 민간 연사총기 금지법과 94년 돌격총기 금지법이

 

 나오며 여러 개량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어요.

 

현재 생산은 중지되었지만,

 

유지 보수용 부품은 코브레이 社에서

 

 계속 판매하고 있다고 합니다.

 

 

코브레이 社에서 만든 M11

 

경찰용으로 제작되었지만

 

민간에 많이 풀렸다고 합니다.

 

 

잉그램의 바리에이션

 

가장 위의 사진은 미첼의

 

소음기 구조를 보여주고 있어요.

 

 

 

 

밀덕들의 잉그램 개조

 

사실 길이가 짧아 손잡이 달 공간도

 

없다고 하던데, 충분히 가능한걸로 보여집니다.


 

 

미국 SCA 社에서 기존의 잉그램을 개조한 버젼

 

개머리판을 바꾸고 길이를 늘려

 

반동제어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졌어요.


 

 

 

소설이 원작인 만화 <배틀로얄>에서

키리야마 카즈오가 사용하는 잉그램 MAC-10

 

저걸로 상당수 아이들을 학살하고 다니죠

 

재밌는건 그렇게 쏴제껴도

 

 탄환은 거의 무한적으로 가지고 있다는거에요 ㅎ

 

영화 <배틀로얄>에서는 우지를 들고 나와요

 

 

대부분 영화 <배틀로얄>을 많이 봤을텐데,

 

원작 만화가 더 재미있어요.


 

피망의 아바온라인에 등장하는 잉그램

 

미친듯한 연사력은 크게 살려내지 못했지만,

 

일반적인 기관단총과 비슷한 성능을 내는

 

 보조무기로 등장합니다.

 

 

자료는 찾기 힘들지만,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후반부에

 

주인공을 죽이는 총이 잉그램이었어요


 

이제 마지막으로 모델건을 소개하며 마칠께요

 

일본 마루이 社의 잉그램 MAC 10이야

 

가스건인데, 마루이의 제품인만큼

 

 성능은 좋다고 합니다.

 

다만 단종되어서, 국내에선 구하기는 힘들어요.


 

 

 

일본 KSC 社의 잉그램 M11A1

 

성능은 그냥저냥 굴릴만 하다고해요

 

역시 가스건인데,

 

연사 가스건은 가스를 엄청나게 먹는다고해요.

 

그나마 이게 지금 구하기 쉽다고해요

 

신품가 3-40만원 정도 하는걸로 알고 있어요.

 

 

 

 

 

 

 

 

사진 및 참고자료출처: 구글  .엔하위키. 나무위키

 

 

 

 

 

 

 

 

현대전의 용병 상남중에 상남자

 

프랑스 외인부대에 대해 알아볼게요!

 

 

 

 

인류 역사상 두번째로

 

 오래된 직업 "용병"


지금의 용병은 "민간군사기업"(PMC)에

 

채용되는게 보통이지만...


한 나라가 직접 선발 후 실전배치

 

시키는 용병부대가 있는데


바로 그 유명한 "프랑스 외인부대"에요

 


 

 

 

 

"기를 버리느니 차라리 목숨을 버리겠다."

(프랑스 외인부대의 신조) 




창설 배경

 

과거 제국주의 시절, 프랑스의 식민지 중

 

 하나인 알제리에서 큰 반란이 일어나게되요


프랑스 국왕 루이 필리프 1세는

 

이 반란을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하다,

 

 고심 끝에 찾은 방법이

 

국왕에게 벨기에출신 모험가

 

라크로와라는 사람이 제안을한방법이였어요


바로 5개 대대의 용병부대를

 

창설해 진압하는 것이였어요. 


이 사건이 오늘날의 

 

"프랑스 외인부대"

 

 창설계기입니다.

 

 

 

<외인부대의 마크>

 

활동기간 : 1831년 3월 10일 ~ 현재

 

국가 : 프랑스

 

병과 : 혼성군

 

종류 : 외인부대

 

역활 : 전투부대

 

규모 : 약 7,700명

 

본부 : 오바뉴

 

별명 : La Légion (영어: The Legion)

 

군가 : 부댕 (Le Boudin)

 

지휘관 : 크리스토프 드 생카마 준장

 

기념일 : 4월 30일 (카메론 전투)

<65명의 외인부대가 2천명의

멕시코 육군과 싸워 5명만 남고 전멸했다.>

 

 
창설된 후 알제리의 반군을

 

성공적으로 진압함을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무수한 업적을 만든

 

 프랑스 외인부대는

그 여파로 만들어진 영화도 있어요.

 

<영화 스페셜포스>

(외인부대 내에서 최정예 부대가

인질이 된 여인을 구출하는 내용)


부대 구성

 

 



입대 과정


이런 용병부대의

 

선발은 어떠할까요


과거에는 주로 범죄자 위주로

 

 선발을 진행했어요


그렇다면 오늘날도 과연

 

범죄자 위주로 선발할까요?


그건아니에요.

 

러시아 전직 스페츠나츠 요원도

 대거 들어오고 있고,

동유럽의 우수한 군인들도 들어오고 있고,

 

 

아시아 각국의 특수부대원들도 들어오고 있고,

가난과 내전으로 부터 벗어나고

 

새로운 삶과 돈에 대한 열망으로


어려서 부터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입대하는 이들도 있어요.

 


물론 우리나라 성인들도 지원이 가능합니다

(지원 불가능 나라 = 북한 , 쿠바 , 시리아 )


지원이 가능한 나이는 만 17세~40세

 

 남자들만 해당돼요


또한 그렇듯이 불어(프랑스어)도

 

기본적으로 알야해요.

 

 

 

 

 <프랑스 외인부대원들>

 

무전내용이나 교관의 말을

 

어느정도 알아야 겠죠.

 

 

(입대후에도 프랑스어를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이렇듯 전세계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오는

 

 프랑스 외인부대의 경쟁률은

 

매우 높다고 할수 있어요.


훈련도 매우 혹독하다고 합니다

 

 

 

<외인부대 극한의 혹한기훈련>

 

4개월 동안의 혹독한 훈련을

 

 마지막까지 견디고 통과하면,


5년 동안의 복무 기간을 가지면서 용병부대인

 

 프랑스 외인부대원일원이 되는거에요.

 

 

 

프랑스 외인부대는 소수의 정예군이

 

 많은 적군을 상대로 승리할수 있는

 

정말 지옥같은 훈련을 시켜요.

 

 

체력과 담력을 키운뒤

 

적진에 투입되기위해

 

훈력목표를 세계 최강부대의

 

 기준으로 받구요.

 

프랑스 정규군보다

 

더 높은 강도의

 

훈련을 받습니다.

 

 

프랑스 외인부대의 전적들

 

1. 프랑스 식민지 내의 전쟁 및 파병

 

2. 1차세계대전 참전

 

3. 2차세계대전 참전 (아프리카)

 

4. 6.25전쟁 파병

 

5. 베트남 전쟁 파병


 제국주의에 걸쳐 냉전시대까지 등등,

 

참전한 기록이 있고,

 

 

현대전 참전기록 

 

1. 사라예보 내전

 

2. 걸프전


등의 전쟁에서 참전을 하였어요


보기와 같이 하는일은

 

 분쟁지역에서 파병을 하거나,


용병답게 프랑스 자국 병사들의

 

일들을 대신 하며,


전쟁에서 최전방으로 다른 부대보다 빠르게

 

투입하는 등, 각종 일들을 맡고 있어요.


지금도 분쟁지역에서 파병이 오가는 중이에요.

 

그럼 자세히 한번 알아볼까요


 

 

프랑스 정부는 훈련을 통과한

 

최초의 외인부대 요원을

 

5개 대대 규모로 키웠어요.

 

이 외에도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않는

 

병과에까지 인원을 확대해

 

알제리 반란을 진압하는데 성공합니다

 

 

그 후부터 프랑스 외인부대는

 

프랑스 해외 파견군의 주력으로

 

등장하기 시작하구요.

 

 

훗날 많은 전투에서 강력하고

 

용감한 군대로 명성을 얻으며

 

오늘에 이르고있습니다.

 

 

외인부대는 육해공이 따로 구분되지 않을만큼

 

 정말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외인부대

 

 1837년 콩스탕틴전투와

 

1863년 카메론전투는

 

신화적인 전투로 세계에

 

널리알려지고

 

외인부대의 찬란한

 

역사로 남습니다.

 

 

먼저 콩스탕틴 전투에서

 

있었던 일화인데

 

전투부대의 대령 미셀 콤 부대장은

 

 승리의 낭보를 직접 상관인 여단장에거

 

전하기 위해 여단본부에 들려서

 

 직접보고하고있었어요.

 

부대장 대령 미셀 콤은 이미 가슴에

 

 두 군데 적으로부터 맞은 총탄으로

 

쓰러질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보고를하고있던거였습니다.

 

여단장은 부대장의 승리의 보고를

 

받던 중 제지를 시키면서

 

대령에게 물었습니다.

 

"이봐! 콤 대령 귀관은

 

 지금 부상이 심한것 같지않은가"

 

"지금 자네 상태가 어떠한가?"

 

 

콤 대령은 눈하나 깜짝하지않고

 

이렇게 대답했다고합니다.

 

"저는 이미 전사했습니다."

 

다음날 콤 대령은 결국 사망했다고합니다.

 

 

 

카메론 전투에서도

 

있었던 일화에요

 

외인부대는 프랑스에 대한 애국심보다

 

 부대에 대한 충성심을 우선으로해요

 

 

 

1863년 카메론 전투는

 

 2천여명의 멕시코 군과

 

프랑스 외인부대원 60여명이 치룬

 

상상을 초원하는 정말

 

 치열한 전투였어요.

 

식량은 물론이고

 

 단 한방울의 몰도없이 유일하게

 

남은 것은 단 한 발씩에 가까운 실탄과

 

6명의 대원뿐이였습니다.

 

 

 

더 이상은 물러설 곳도 후퇴할곳도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 마지막 남은

 

 실탄 한발씩을 쏜 뒤 그들은

 

항복하기보다는 총검을 착검하고

 

 마지막 돌격으로 중과부적의

 

백병전을 벌이게 되지만

 

결국 장렬히 전사하게됩니다.

 

 

 

1892년 전투가 끝나고 프랑스 정부는

 

이곳에 기념비를 세웁니다.

 

"60여 명도 안되는

 

 사나이들이 적의 부대와

 

맞서 버티고 서있었다.

 

그들의 힘은 적의 부대를 압도했으며,

 

용기를 버리지않고 목숨을 기꺼이 버렸던

 

이들은 우리 프랑스의

 

위대한 군인들이었다"라고...

 

 

 

 

 

 

혜택

 

 

 

 

 

외인부대를 나오면 각종 공공시설

 

혜택을 누릴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5년간의 계약 기간이 끝나고 3년동안

 

세금을 납부하면 시민권 신청이 가능해요


프랑스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거죠.

 

월급은 처음에는 낮은계급으로 150만원정도

 

지급되고 열심히 복무하고 호봉이 조금올라가면

 

700만원이상으로 받을수있다고합니다.

 

그리고 가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처럼

 

위험지역으로 파병을 가게되면

 

추가수당이 붙어 300만원정도

 

보너스로받고 거기에 기타보너스까지

 

합치면 웬만한 특수부대 뺨치는

 

월급을 받는다고할수있어요.

 

혹시나 외인부대에 입대하고싶으신분!

 

외인부대는..

 

대부분이 외국인으로 구성되어있기에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하고 험난한작전에는

 

프랑스 정규군이 아닌 외인부대가

 

투입됩니다..

 

<외인부대에서 일어나는 고참들에 가혹행위>

 

<미 해병대와 프랑스 외인부대>

 

 








끝으로...


용병이란 고용주에게

 

보수를 받고 복무하며


계약조건에 따라서

 

아군이나 적군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소속을 바꾸는 군인을 말해요


충성심과 용기가 없으면

 

용병이 되기란 불가능해요

 

 

 

사진 및 참고자료 : 구글. 위키백과.캐피백과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 2차 세계대전

 

독일이 다른 연합 측 국가들보다

 

뛰어난 기술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몇 가지

 

요인들에 대해 알아볼게요!

 

 

첫번째로 독일을 패배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놈에 대해 설명할게요.

 

 

바로 독일의 지도자였던

 

 아돌프 히틀러에요!

 

왜 히틀러라고 의아해하시분들도

 

 계실텐데요

 

왜 그가 독일의 패배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했는지 지금부터 알아보도록해요.

 

 

1. 그는 독일 장군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어요.


 

 

 

 

히틀러는 다른 최측근 장군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만의 전략만 내새웠어요.

 

또한 히틀러는 군사 전략가가

 

 아니었기때문에, 아마츄어 적인

 

그의 전략은 전쟁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어요.

 

그렇게 장군들의 말을 무시하고

 

결과는 비참했죠.

 

자신을 자살로 몰고갔으니 말이죠.

 

 

 

 

 

2. 괴링에게 독일 공군 지휘권을 줬어요.

 

 

 

 

히틀러는 자신의 오른팔 괴링에게

 

공군 지휘권을 줬어요.

 

그가 비록 1차 세계대전

 

공군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지만,

 

지휘에는 소질이 없었을 뿐더러,

 

약물 중독자였던 그가 올바른 지휘로

 

 공군을 이끌어 나갈지 의문이었어요.

 

괴링은 결국 무능한 지휘관으로 낙인 찍히며,

 

영국 항공전에서 실질적 패배를 맛보게됩니다.

 

괴링의 신뢰도는 급격하게 떨어졌지만,

 

히틀러는 괴링의 공군 지휘권을

 

박탈시키지 않았어요.

 

결국 괴링은 독일 공군을 말아 먹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3. 히틀러는 영국을 마무리 짓지 못한

 상황에서 소련을 공격해버려요.

 

 

 

영국을 목표로 뒀던 히틀러는 이제 눈을

 

 돌려 소련을 공격하기로 결정합니다.

 

그의 장군들은 무모한 짓이라며,

 

히틀러를 설득하려했지만,

 

히틀러는 오직 자신만의 생각대로

 

 계획을 실행에 옮겨나갔어요;;.

 

 

 

1941년 6월 22일 그렇게 소련을 기습 침공하여,

 

 초반은 순조롭게 소련 영토의 대부분을

 

점령하는데 성공했지만,

 

히틀러가 장군들의 말을 경청치 않아,

 

전략상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또한 전쟁이 지속화 되면서,

 

독일군들은 혹독한 소련의 겨울 추위를

 

 맛보게 됩니다.

 

 

 

이로인해 독일군들이 얼어 죽고,

 

 장비의 고장도 잦아지게되버렸죠.

 

또한 독일에서 소련까지 보급품을

 

보내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을뿐더러,

 

소련의 포위 전술로 인해

 

보급선 마저 끊기게 되버리죠.

 

결국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

 

 제 6군이 포위되어 항복하는 바람에,

 

독일은 후에도 여러 작전에서

 

소련에게 지속적으로 패배하게됩니다.

 

 

 

 

4. 히틀러는 무모하게 영국과 소련을 남겨두고,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합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었던 직후

 

독일은 일본과 맺은 조약에 따라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했어요.

 

이것은 영국과 소련을 마무리짓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것은 정말 미친짓이었죠.

 

하지만 진주만 공습이 있었던

 

직후가 1941년 12월 즈음이라,

 

독일에게 있어서는 동부전선

 

소련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했겠다,

 

자신감이 붙었는지 선전포고를 하게된거죠.

 

그리고 얼마 안있다가,

 

 

 

동부전선에서 소련에게 참패를 겪게됩니다.

 

또, 후에 미국이 직접 유럽에

 

 상륙하여 서쪽을 공략하게되요.

 

이로인해 영국과 미국의 서부전선,

 

북아프리카 전선 , 소련의 동부전선으로

 

전선이 다양화 되기 시작하고,

 

결국 독일은 양쪽에서 몰려오는

 

 세 군대를 상대 해야했어요;;.

 

 

 

 

 

 

5. 히틀러는 후퇴를 허락치 않았어


 

 

 

 

 

히틀러는 어떠한 악 조건속에서도

 

 절대 후퇴는 없다를 외쳤어요.

 

덕분에 후퇴 후 반격할수있는

 

 작전에도 절대 후퇴는 없다를 외치며,

 

작전을 무산시키는데 일조,

 

결국 스탈린그라드에서 육군 원수

 

 파울루스와, 독일 제 6군을

 

한꺼번에 잃는 참패까지 겪게됩니다.

 

또한 그는 패망 직전인 1945년에는

 

 측근들의 연합군과의 협상 제안에도

 

절대 협상, 항복은 없다를

 

외칠 정도로 그는

 

적에게 굴복하는것을 아주 싫어했어요.

 

 

 

 

 

 

 

 

6. 히틀러는 세계 최초의 돌격소총을

채택하지 않습니다.

 

 

 

 

 

현대 소총의 주력인 돌격소총

 

시초는 바로 독일이에요.

 

전쟁 말 독일이 세계 최초의 돌격소총

 

STG-44를 개발하는데 성공하지만,

 

(STG-44 자세한내용 http://kimssine51.tistory.com/65)

 

히틀러는 이 돌격소총의

 

생산을 폐기시켰고,

 

지휘관들은 STG-44를 MP-43이라 재명명하여, 

 

히틀러 모르게 계속 생산을 해나갔어요.

 

나중엔 히틀러가 그것을 알게되자,

 

격분하여 또 다시 폐기 시켜버려요;.

 

하지만 뒤늦게 히틀러는 STG-44의

 

 효용성을 듣고 재검토를 명령하지만

 

이미 STG-44로 전세를

 

바꾸기엔 너무 늦어버리게 됩니다.

 

 

 

 

 

 

7. 히틀러는 세계 최초의 제트기

 Me-262를 오용했어요.

 

 

 

 

 

1943년 전쟁 말 독일은

 

세계 최초의 제트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합니다.

 

그 제트기의 이름은

 

바로 Me-262로 명명되었고,

 

처음부터 요격기로 설계되었어요.

 

하지만 히틀러는 이 Me-262를

 

보고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되요,

 

"이 비행기에 폭탄을 달수 있나?"

 

"물론 달수는 있습니다."

 

히틀러는 이 Me-262를 요격기로 생산하지 않고,

 

전투 폭격기로 생산하라는 명령을 내려버려요.

 

그렇게되면,

 

엔진 부품과 다른 기계적인 부품들을

 

전혀 다른 방면으로 다시 개조해야되는데,

 

결국 1944년 말이 되서야 전투 폭격기로

 

 생산이 뒤늦게 이루어지게되요.

 

하지만 결과는 비참했죠.

 

전투 폭격기로써의 활약은 딱히 없었어요.

 

뒤늦게 히틀러가 요격기로 생산을 명하지만,

 

이미 제공권을 되찾기엔 너무 늦어버려요.


 

 

결국 1945년 4월 20일 그의 생일날

 

자신의 관저 앞으로

 

소련군의 포탄이 떨어지게 되면서,

 

최고의 생일을 보내게 되는가 하면,


 

 

 

 

베를린에는 이미

 

 소련국기가 휘날리고있었어요.

 

결국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자살하면서,

 

사실상 전쟁은 끝나게됩니다

 

남은 독일 무장친위대와 저항군들이

 

 끝까지 결사항전하긴 했으나,

 

5월 7일 완전히 항복이 선언되면서,

 

 무장헤체와 함께 2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패망으로 끝을 장식하게되요.


 

 

 

 

전쟁 기간동안 약 5000만명의

 

민간인 또는 군인이 사망했고,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으로

 

 기록되었어요.

 

 


이런 전쟁은 다시는 없어야겠죠..

 

2차세계대전 전범국가

 

계속 반성을해야겠죠...

 


 

 


 

이번에는 산탄총에 대해 알아볼꺼에요

 

 

 

 

영어로 Shot Gun, 남자라면

 

 누구나 알 법한 남자의 총이죠.

 

산탄총의 역사는 꽤나 오래되었지만

 

오늘 리뷰할 산탄총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도

 

 자주 쓰이는 명작이에요.

 

 

1차대전, 독일군이

 

" 미군은 지금 비인도적인 무기를 쓰고 있다"

 

라고 비난할 정도의 화력을

 

가진 어마어마한 놈이에요

 

 

 

제원부터 알아보도록 할게요

 

 

M1897 Trench Gun

 

1차대전 미군의 산탄총

 

 

사용국가 : 미국

 

제작사 : 윈체스터 (Winchester) 社

 

제작자 : 존 브라우닝 (John Moses Browning)

 

생산시기 : 1897 - 1957

 

무게 : 3.6kg

 

길이 : 1206mm (30인치 총열)

 

사용탄환 : 12게이지 산탄

 

장전 수 : 5발

 

 

(이하 "M1897")

 

 

굉장히 투박해보이면서도 뭔가 미국스러운

 

이 산탄총은 1차대전과 2차대전에서

 

큰 활약을 펼쳤으며,

 

민간에 판매된 경력을 가지고 있어

 

지금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모델이에요


 

 

무게는 3.6kg으로 산탄총치곤

 

적당한 무게를 가지고 있으며

 

길이는 군용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

 

30인치 총열을 장비한 모델의 경우 1.2m이며

 

20인치나 36인치 모델도 판매했다고 합니다.

 


 

 

 

 

12게이지 산탄

 

 

산탄총인만큼 일반적인 총탄을

 

쓰지않고 산탄을 사용하는데,

 

1게이지는 1파운드 (454g)의 납을 녹여

 

동그란 탄을 만들었을 때의 지름을 말합니다.

 

12게이지는 그 탄약이 12분의 1파운드의

 

납으로 만들어졌을 때의 지름입니다.

 

 

 

 

따라서 12게이지 산탄 안에는 454g의

 

12분의 1 무게의 쇠구슬들이 들어있으며

 

게이지 숫자가 적을수록 강한 파괴력을 지니게되요.

 

 

왕구슬 하나가 들어있는 슬러그탄 (가운데)와

 

 새를 잡기 위해 조그만한 구슬 수십개가

 

들어있는 버드샷 (Bird Shot)도 있어요.

 

<버드샷과 벅샷 >

 

12게이지 벅샷 (일반적인 산탄)의 경우

 

 한국에서도 수렵용으로 사용하는데,

 

주로 곰이나 사슴 등 큰 동물들을

 

사냥할만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어요.

 

 

<1, 2차대전시 미군이 사용한 산탄 탄입대>


 

 

 

 

존 브라우닝 (John Moses Browning)

(1855-1916) 

미국 총기의 神이라 불리우는

총기개발자.

 

 

콜트 M1911 45구경, FN M1900 권총,

 

브라우닝 기관총, M2 중기관총,

 

윈체스터 레버액션 소총, B.A.R 소총 등

 

총기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미국의 유명 총기들을 만들어냈습니다.


 

 

 

<Winchester M1893>

 

 

존 브라우닝에 의해 개발된 M1897의 전신으로,

 

흑연화약에서 무연화약으로 교체되던

 

시기에 태어난 작품입니다.

 

그러나 흑연화약만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진

 

 이 산탄총은, 무연화약을 사용할 경우

 

폭발의 위험성이 있었는데,


 

 

 

실제로 폭발해버리고 말아요.

 

사용자는 크게 다쳤고, 윈체스터 社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이미지에 큰 흠집이 났어요.

 

 

그래서 존 브라우닝은 이 산탄총을 무연화약을

 

 사용할 수 있게끔 고쳤는데,

 

이 모델이 바로 M1897입니다.

 


 

 

 

 

민수용으로 판매한 M1893과는 달리 M1897은

 

 민수용 외에 군용, 경찰용으로도 제작이 되었는데

 

특히 군용에는 착검장치 및 열보호대가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M1893의 내구도를 향상시키고

 

기타 자잘한 문제를 보완한데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어요.

 

덕분에 이 산탄총은 존 브라우닝이 만든

 

 산탄총 중에서도 가장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1, 2차 대전을 넘어 지금까지도

 

 민간에서 사용된다고 합니다

 


 

 

 

 

< 경찰용 M1897 Riot 모델의 모습>

 

 

군용 M1897의 경우 착검장치가 추가되어

 

 M1907 대검을 착검할 수 있어요

 

백병전이 주를 이루던 시절이고,

 

참호전이 대다수인 시절이라 상당히

 

긴 대검을 장착한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M1897은 일명 "슬램파이어" (Slam Fire)

 

방식을 채용한 산탄총인데,

 

이는 쉽게 설명하자면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상태에서 펌프질을 하면 연속으로 발사가 된다.>

 

는 말이에요.

 

 

해머 차단기가 없는 관계로 연사력은

 

월등히 높아졌지만, 당연히 안정성은 별로였어요.

 

그래도 아래에서 설명할 참호전에서는

 

 엄청난 능력을 발휘합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당시는 참호전이 주 전투였어요.

 

 

참호를 길게 파고 어느 한쪽이 공격하여

 

적의 참호를 점령하는 전투가 대부분이었는데,

 

당시에는 제대로 된 전투기나

 

기갑전력이 없었기 때문에

 

볼트액션 소총이 주무기인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참호에서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어요.


 

 

 

 

>세계최초 독일군의 기관단총, MP18

(20발 탄창 / 32발 드럼탄창)

 

 

역시나 독일은 한발 앞서 세계 최초로

 

 MP18 기관단총을 만들어냈지만

 

2차대전에서도 STG44가 너무 늦게 나왔듯이

 

 MP18도 1차 대전 종전이 되는 연도에 나오게 돼요.

 

 

좁은 참호에서 치고 받고 싸우는 전투에서

 

기관단총을 갈겨버리면 ...끝나는거였죠

 

아무튼, 당시로서는

 

최강의 화력을 뿜어냈던 놈이에요.

 

 

 

 

1917년, 미군이 1차대전에 참전하고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MP18에 의해 너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미군은 M1897을 독일군들에게 갈겨버려.

 

 

앞서 언급했다시피 방아쇠를 당기고 있으면

 

펌프를 당길 때마다 자동으로

 

발사가 되는 점이 M1897의 특징이에요.

 

덕분에 참호전의 제왕은 M1897이 되었고

 

"Trench Gun (참호 총)" 이라는 이름을 떨쳤어.요


 

 

 

M1897의 잔혹함에 질려버린 독일군은

 

 미국에게 서신을 보내고 국제 언론에다 대고,

 

 

" 미군은 지금 비인도적인 무기를 사용하고 있다. "

 

 

하며 당장 산탄총의 사용을 중지시키라고했고

 

 

 미국의 대답은 당연히

 

 

" ㄴㄴ그렇게는 못함 "

 

 

였으며 이에 빡쳐버린 독일군부는,

 

 

" 앞으로 미군 산탄총 사수는 포로로

 

 취급하지 않고 즉결 총살하겠다. "

 

 

하며 또다시 화를 내요.

 

이 사건들을 통해서,

 

 M1897이 당시 얼마나 

 

무서운 무기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죠.


 

 

 

당시 M1897의 닉네임인 "Trench Gun" 외에도

 

"Trench Bloom", "Trench Cleaner"

 

등으로 불렸다고 해요.

 

참호청소기라..

 

어느 정도의 위력을 보여줬을지

 

상상이 가질않네요.


 

 

 

M37 Ithaca (M37 이사카)

 

 

1차대전 종전 후에도

 

미군은 꾸준히 산탄총을 사용하며

 

2차대전에서는 M1897과 더불어

 

M37 이사카 산탄총으로 일본군을 박살냈어요.

 

 

사실 미군은 이미 필리핀과의 전쟁에서부터

 

 참호 또는 정글과 같이 복잡하고

 

 좁은 공간의 전투시에

 

산탄총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태평양 정글에서 벌어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도 이를 잘 이용해먹었어요.


 

 

 

 

<M1897을 들고 있는 미군 병사>

 

 

그 이후, 베트남 전쟁의 정글전에서도

 

 미군은 산탄총을 사용했고

 

심지어는 현재까지도 미 육군,

 

미 해병대에서 산탄총 사수를 운용하고 있어요.


 

 

 

 

<미군 제식 산탄총 Beneli M4를 사격중인 미군>

 

 

근접전 이외에도, 잠겨진 문을 부수기 위해서,

 

 물자파괴 등 다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피망 FPS 게임인 <아바>에 등장하는 M1897 트렌치건

 

 

다만 아바에서는 최악의 쓰레기샷건으로 불리우는데

 

사격할 때마다 에임이 휙휙 벌어지고

 

 점프할 때도 벌어지는

 

에임으로 점프샷이 불가하며

 

무엇보다 근거리에서 원샷이 잘 안나요...

(쓰레기샷건이 도태되는 가장 큰 이유)

 

 

그래도 고증은 잘 살려서 마우스를

 

 누르고 있으면 빠르게 연

 

발로 발사가 되기는 해요.

 

아바에서만큼은..

 

Trench Gun이 아닌 Trash Gun...


 

 

 

지금까지 독일을 벌벌떨게했던 최강의 산탄총 참호청소기 M1897 에 대해서 알아봤어요^^

 

 

 

 

사진 및 참고자료 : 나무위키.두산백과.실총판매사이트


 

 

굉장히 특이한 외관과 2차 대전,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많은 영화에 출연해서

 

많이 낯이 익었을 총기라고 생각되네요

 

 

 

제원부터 알아보도록 할게요

PPSH-41 (Пистолет-Пулемёт Шпагина)

 슈파긴 기관단총

 

2차대전 소련군의 기관단총

 

 

사용국가 : 소비에트 연방 (소련)

 

생산연도 : 1941년 -1950년

 

무게 : 3.63 Kg

 

길이 : 26.9 cm

 

사용탄환 : 7.62x25mm Tokarev

 

장탄 수 : 35발 박스탄창 / 71발 드럼탄창

 

최대사거리 : 200m

 

연사속도 : 900발 /분

 

생산량 : 600만 정

 


 

 

 

 

<오늘 소개할 PPSH41 기관단총>

 

 

굉장히 특이한 외형으로 인기가 많으며,

 

성능 또한 당대

 

최고의 기관단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풀네임은 Пистолет-Пулемёт Шпагина

 

(슈파긴 기관단총)이며,

 

러시아어로 "뻬뻬샤" 라고 불려요.

 

별명인 "파파샤"는 "아빠"라는

 

 뜻의 러시아어에요.

 

 

발음이 쉽긴하지만,

 

세계적으로 흔히 "파파샤"로 알려져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 (소련)에서

 

사용되었으며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부터

 

사용되어 1950년에 생산이 종료되었어요.

 

 

무게는 3.6kg으로,

 

당시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독일군의

 

기관단총 MP40 (4Kg)과 비교해서

 

가벼운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71발 드럼탄창을 장전할 시 무게는 5Kg 이상이 된다.)

 

길이 또한 27 cm인데, 기관단총치고는

 

적당한 무게와 길이를 가졌다고 할 수 있어요.


 

 

 

 

파파샤의 연사력은 분당

 

900발 이상으로 알려져있는데,

 

오픈볼트 방식으로서 연사력은

 

미친듯이 높지만 약실이 항상 개방되며

 

먼지나 모래 등 이물질의 유입이 쉽고,

 

명중율이 낮았으며 떨어뜨릴시

 

오발의 가능성이 높다는 단점이 있어요.


 

 

 

 

 

<7.62 x 25mm Tokarev 탄환>

 

 

파파샤의 사용탄환으로,

 

 당시 소련군에서 널리 사용된 권총탄이에요.

 

애초에 파파샤는 권총탄을 사용하는 기관단총이므로,

 

권총탄이라고 해서 헷갈리지 마세요.

 

 

탄두의 지름은 7.62mm이지만

 

탄피의 길이가 짧고 화약이

 

그만큼 적게 들어가기 때문에

 

AK 소총에서 사용하는 7.62mm 소총탄과

 

같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아무튼, 파파샤는 권총탄을 사용하는 관계로

 

유효사거리가 100m가

 

 채 안되고 최대사거리 또한 200m에 이릅니다.

 

 

 

당시 소련군의 제식 권총인 <Tokarev TT-33>

 

 (일명 토카레프)이 이 탄환을 사용해요.

 

 

 

 

<파파샤의 71발 드럼탄창>

 

 

파파샤의 최대 장점 중 하나가

 

바로 드럼탄창을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미군의 톰슨 드럼 기관단총도 있지만,

 

미군의 경우 급탄 불량 문제 등으로 거의 M1A1 톰슨,

 

즉 박스 탄창이 달린 군용 톰슨 기관단총을

 

사용했기에 일단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Thompson M1928 (톰슨 기관단총)

 

 

파파샤는 71발이 장전 가능하지만,

 

당시 소련의 공업기술의 한계로 65발 이상

 

장전할 시 급탄 불량이 심했다고 합니다.

 

주로 탄환을 밀어올리는 스프링의 장력이

 

약하고 품질이 좋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래서 소련군 병사들은 71발을 모두 채우지 않고

 

 60여 발 언저리로 채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또 일반적인 드럼탄창의 경우

 

태엽을 모두 감고 탄환을 장전하는데,

 

파파샤는 반대로 탄환을 모두 넣은 후

 

 태엽을 감았기 때문에 만약 급탄 불량이 일어날 경우

 

최악의 경우 탄창을 버려야 했다고 합니다.

 

(드럼 탄창 사용시 급탄 불량 문제가

생기면 태엽을 감기만 하면 되는데

파파샤의 탄창을 그럴 수 없었다.)


 

 

 

드럼 탄창의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자,

 

소련군은 일반적인 박스 탄창을 보급했어요.

 

 

총 35발이 장전되는데,

 

이도 적은 장탄 수는 아니었지만

 

일선 병사들은 장탄 수가 절반으로

 

뚝 떨어지자 갖은 불평을 했고,

 

종전 시까지 드럼탄창을 사용하며

 

예비 용도로 박스탄창을 휴대했다고 합니다.

 

<PPD-40 기관단총>

 

1934년 설계된 소련군의 前 기관단총

 

 

절삭가공 방식으로 생산하여 가격이 비싸고, 

 

제조시간이 길었으며 성능도 좋지 못했어요.

 

무엇보다 소련군은 여태껏 기관단총의

 

실용성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1936년, 소련은 핀란드를

 

침공해 겨울전쟁을 일으키게됩니다.

 

당시 소련군에겐 PPD-40 이란 파파샤의

 

형뻘 되는 기관단총이 있었는데

 

사실 소련군은 이때까지도

 

기관단총의 실용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겨울전쟁 중 숲과

 

시가전에서 주로 전투가 이루어졌었는데,

 

좁고 나무가 빽뺵한 숲 속에서 핀란드군의

 

 수오미 기관단총은 엄청난 성능을 보여주었습니다.


 

<수오미 기관단총의 모습>

 

 

핀란드군 스키부대가 쏴대는

 

수오미 기관단총에 막대한 피해를 입은 소련은

 

그제서야 기관단총의 무서움을 깨닫고

 

 PPD-40을 대량으로 생산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대로 절삭가공으로 제작되는

 

 특성상 단가가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릴 뿐더러,

 

성능도 그렇게 좋지 못했어요.

 

결국 소련군은 새로운 기관단총의 개발을 지시하는데,

 

 이것이 바로 파파샤 기관단총입니다.

 

 

 

(영화 <다운폴> 中에서)

 

당시 소련군 중대 중에는 파파샤 기관단총으로만

 

 무장한 "기관단총 소대"가 존재했다고 합니다.

 

 

게오르기 슈파긴이 개발한 파파샤는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졌는데,

 

PPD-40 보다 적은 부품을 가지며 구조가

 

단순해졌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였던

 

절삭가공 방식을 프레스

 

제조방식으로 바꾸는데 성공했습니다.


 

 

 

 

따라서 제작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었고,

 

단가 또한 훨씬 내려가게 되었어요.

 

파파샤의 1정 제작 속도는 약 7시간으로,

 

 많은 기계도 필요없이 손쉽게 제작이 가능했습니다.

 


 

 

 

<파파샤의 분해도 및 부품도>


 

 

 

 

1941년, 독일-소련 전쟁이 발발했고 파파샤는

 

 그 성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특히나 파파샤를 난사하며 수천명의 우라돌격이

 

감행될 때는 진심으로 엄청난 광기를 불러일으켰어요.

 

 

단가가 싸고 빠른 시간내에 만들 수 있으며,

 

연사력이 분당 900발에 71발의 장탄 수를 가진데다

 

여느 소련제 총기가 그렇듯 혹한의

 

추위 속에서 고장이 잘 나지 않았어요.

 

 

이렇게 파파샤 기관단총은

 

모신나강 소총과 함께

 

소련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영화 <마이웨이> 中에서)

 

 

물론 장점만 가진 총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문제점은 명중율이 낮다는 것인데,

 

기관단총은 근접전에서 탄을 뿌리는 역할을 하는

 

무기인지라 명중율은 그렇게 문제가 되지도 않아요.

 

 

 

 

 

 

그러나 전쟁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당시 남아돌던 모신나강 소총의 총열을

 

반으로 잘라 두 개의 파파샤 총열을

 

 만들었다고 할만큼

 

조악하게 만들어지던 시절도 있었는데

 

 

심한 경우 드럼 탄창을 풀로 갈기면

 

총열이 녹아서 흐물흐물해진

 

 사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독일-소련 전쟁,

파파샤로 무장하고 있는 독일군 병사

 

 

독일군과 소련군은 서로의 기관단총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선, 독일군은 만성적인

 

 물자 부족으로 전쟁 내내 고생을 했어요.

 

 

전선이 확대되면서 보급선이

 

너무 길어진 문제였는데

 

자연적으로 적의 무기를

 

노획하는데 열중하게 됩니다.


 

 

 

 

소련군에게서 빼앗은 파파샤를

보고 만족해하는 독일군의 모습

 

 

특히 파파샤 기관단총의 경우 엄청난 성능을

 

 가진데다 소련군의 우라돌격을 한번 막아내면

 

거의 무한대로 노획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당량의 파파샤가 독일군에 의해 사용되었어요.


 

 

 

 

 

(영화 <마이웨이> 中에서)

 

파파샤 기관단총으로 소련군의 우라돌격을

 

 저지하고 있는 독일군의 모습!


 

 

 

독일군에 의해 개조, 사용된

9mm 버젼의 파파샤 기관단총

 

 

아예 독일군은 제식명까지

 

붙여가며 소련군의 무기를 애용했는데

 

본국에서 수급이 가능하고 자국의 제식 권총탄인

 

 9mm 탄환으로 개조해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독일군들은 이 총의 생김새와 격발음이 자기네

 

악기인 "발랄라이카"와 유사하다고 생각해서

 

"발랄라이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독일군의 제식 기관단총, MP40

 

 

소련군도 이에 질세라 독일군의

 

 MP40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는데

 

정밀하게 만들어진 독일제 무기라는

 

 인식이 강했고 9mm 탄환을 사용하는 관계로

 

반동이 적고 연사력도 분당 500발 수준으로

 

낮아서 사용하기 편하다고

 

많이 노획해서 사용했습니다.

 


 

 

 

 

소련군의 엄청난 포화 속에

 

독일의 수도 베를린이 점령되며

 

2차대전이 종전되었습니다.

 

 

이후 1947년, AK-47 소총이 개발되자

 

파파샤는 곧바로 2선급 무기로 분류되어

 

도태되었고 후방에서나 사용하거나

 

 창고로 치장되었습니다.


 

 

 

 

 

종전 이후

 

, 미국과 소련은 냉전 체제로 돌입하게 되는데,

 

전세계의 위성국들에게

 

각자의 무기를 공여하게 됩니다.

 

 

주로 중국이나 북한, 우크라이나 등의

 

공산국가에 대량의 파파샤가 뿌려졌는데,

 

특히나 북한으로 공여된 파파샤의 경우는

 

전쟁동안 닳고 닳은 폐기 직전의 물건들이 많았어요.

 

 

북괴의 수장인 김일성은

 

 파파샤 기관단총을 아주 좋아했는데

 

1949년,  "49식 기관단총" 이란

 

명칭으로 북한에서 직접 생산하기에 이릅니다.


 

 

 

 

북괴에서 생산된 "49식 기관단총"을 들고 한컷 박은

 

 김일성과 그의 수하 빨갱이들의 모습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中에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발발한

 

 한국전쟁 당시 엄청난 수의 북괴군이

 

파파샤를 들고 남침을 해왔어요.

 

당시 국군의 무장은 일부 부대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일제 38식, 99식

 

보병총이었는데

 

분당 900발의 연사속도를 가진

 

파파샤 앞에서는 어림도 없는 무기였어요.


 

 

 

 

(영화 <고지전> 中에서)

 

"오발로 보고해."

 

 

한국전쟁 초기, 파파샤는

 

 국군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실제로 한국전쟁 초창기

 

수많은 국군용사들이 이 총에 산화했어요.

 

 

그러나 앞서 언급한대로 북한군의 파파샤는

 

 성능이 떨어졌다고 알려져있어요.

 

 

한국전쟁에 참전한 참전용사

 

 신재준 씨 (82)의 증언에 따르면,

 

 

"M1과 카빈 소총인데 성능이 좋았어.

 

인민군이 갖고 있는 따발총은 성능이 떨어졌지.

 

인민군은 약아서 우리가 잠복근무를 나간 밤에

 

등 뒤에서 따발총을 쐈어.

 

아군들이 많이 죽었지."

 

 

라고 회상합니다.


 

 

 

 

(영화 <포화속으로> 中에서)

 

 

당시 국군은 이 괴상하게 생긴 소련제 무기의

 

 이름을 모르는데다

 

격발음이 "따따따따-" 했기 때문에

 

"따발총" 이라고 불렀는데,

 

아직도 당시 전쟁을 경험하신 어르신들은

 

이 총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고합니다.


 

 

 

 

1965년 발발한 베트남 전쟁에서도

 

다수의 소련제 무기를 공여받은

 

북베트남군이 파파샤 기관단총을 사용했습니다.

 

북베트남군은 가장 흔히 사용된 AK-47 소총

 

 이외에도 모신나강, 파파샤, 심지어 소련군에

 

의해 노획된 독일제 무기들도 사용했어요.

 

 

 

소련에서는 이미 2선급 무기로 전락하여

 

대다수의 파파샤는 치장되었지만

 

최근까지도 준 군사집단에서

 

사용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어요.

 

 

 

 

 

노획한것으로 보이는 파파샤 기관단총에

포어그립과 슈어파이어, 이오텍 사이트를 장착하여

 사용중인 미군

 


 

 

 

 

미국에서는 아직까지도 대전 당시의

 

무기들을 스포츠 용도로 사격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대다수의 소련제 무기들은 가격은 얼마 하지 않지만,

 

탄환 수급이나 부품 수급의 문제 및 노후화,

 

저품질 등의 문제로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합니다.


 

 


 

 

 

출처및참고자료  : 나무위키 .구글 , IMFDB http://www.imf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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